"나는 최근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무언가 받거나 구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에 대해 정말 잘 숙고해 볼 것이다. 왜냐 하면 만약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무엇이든 받게 된다면, 나는 하느님 밑에서 종처럼 될 것이며 주는 그는 주인처럼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생에 있어서는 이래서는 안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 밖에서 무엇을 얻거나 받으면 이는 옳지 않다. 우리는 하느님을 자기 자신 밖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거나 간주해서는 안 되고, 자기 자신의 것으로 그리고 자신 안에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서든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든 혹은 자기 밖의 그 어떤 것을 위해서든, 어떤 목적을 위해 봉사하거나 일해서도 안된다. 오직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어떤 순진한 사람들은 하느님은 저기 계시고 자기들은 여기 있는 것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망상을 한다. 그렇지 않다. 하느님과 나, 우리는 하나다."

"....그는(예수) "아버지여, 나와 당신이 하나이듯이, 그들이 하나이기를 나는 원합니다"(요한 17,20)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자가 본질과 본성에서 성부와 하나이듯이 그대도 본질과 본성에서 그와 하나이며, 성부가 자기 자신 안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듯이 그대도 그대 안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그대는 그것을 하느님으로부터 빌릴 필요가 없다. 왜냐 하면 하느님은 그대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대가 취하는 모든 것을 그대는 그대 자신의 것으로부터 취하며, 무슨 일이든 그대가 그대 자신의 것으로부터 하지 않으면 그 일들은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 죽은 것이다. 그런 것들은 그대 밖에 외적 원인들에 의해 움직여지는 일들로서, 생명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죽은 것이다. 왜냐 하면 자기 자신의 것으로부터 움직여지는 것만이 살아 있는 것이 때문이다. 그런적, 사람이 하는 일들이 산 것이 되고자 할진대, 외적으로 혹은 자기 밖으로부터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자기 자신의 것으로부터 해야 한다."

길희성 저,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 사상 (분도출판사, 2003), pp. 271-273에서 인용.

중세 신비가 에크하르트가 그려주는
신앙인의 삶, 하느님 아들됨의 삶이
내 영혼 깊은 곳까지 공명해온다.
신앙의 깊이와 방향에 대해 빛을 던져준다.
시원한 성령의 바람....
그 모습에 대해 뭐라 입을 열기도 머뭇거려지는
잔잔하며 깊은 울림.
잠잠히 입을 다물고
그냥 그대로 옮겨놓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4-05-17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무늬 2004-05-17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문적인 이론과 논쟁들이 공허해지지않고 일상이 표피를 뚫고 들어가는 것은 님처럼 삶의 한 부분으로 품어 안고 고민하며 기도하는 궁행을 통해서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역시 오랜 기도의 힘이 추진력이 되시는게 아닌지....

전 요즘 제 생각의 여백마다 예수의 삶과 죽음에 대해, 저의 신앙과 진심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살고 죽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묵상하는 "깨인 시선"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분주한 일상의 속도에 취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의지자체의 속도에도 취할 수 있다는 경계 또한 늦추지 않아야 하겠죠.

가끔은 외롭다는 생각이 의식의 표면 위로 불쑥 솟아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안에 또 다른 나가 있고 그의 시선과 음성에 귀기울이면서 외로움이 고독으로 변하더군요. 어차피 "나"란 의식의 수면 위에 비친 존재의 잔영일 뿐, 어차피 삶은 그렇게 자신과 모든 존재를 비춰주는 그 "님"을 만나는 사귐이라는 깨침이 봄바람처럼 살포시 스쳐갑니다.

2004-05-18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무늬 2004-05-18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움에 너무나 힘겨워 하던 여린 감성이 세월의 흐름에 군살이 배기고 많이도 무감해졌습니다. 이런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가 하는 생각이 들때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아쉽고 그리운 느낌이 뒤엉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문득 외로움이 고개를 드니 조금은 당황스러웠어요. 오랜만이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기도 하고. 소중히 여기는 친구는 워낙 홀로로도 충분해하는 녀석인데다가 멀리 있고.....
요즘들어 제 마음의 여백마다 묵상과 관상으로 채워가고 있었는데, 문득 그 외로움을 바라보는 제 안의 또 다른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제 안의 그 님이 함께 있다는 깨달음이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꿔주더군요.
그래도 제가 고민하고 묵상하며 느끼는 것들을 함께 나누고 그런 서로의 느낌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친구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이곳에서라도 님의 생각을 만나고 함께 나누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는 이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