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에서 깊이로;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하나님 됨으로
서평; "영성 목회와 영적 지도", 하워드 라이스 저, 최대영 역(은성 출판사, 2000)
들어가면서
오늘날 급속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한국 개신교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문제의식은 이제 일반화되고 있다. 교인수의 감소추세1), 사회적 공신력 상실, 사회갈등의 원인이라는 비판, 개신교가 타종교나 비종교인으로의 유입이 가장 높은 종교라는 현실, 특히 젊은층과 고학력층의 이탈률이 높아지는 문제 등의 현실2)이 그 위기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런 문제 상황을 돌파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근본주의적 경향을 강화하면서 성령체험을 강조하는 방식에서부터 콘서트 형식을 빌은 열린 예배, 스포츠 교회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이 혼재해 있다는 것이다.
위기와 문제 상황의 심화 그리고 혼란스러울 만큼 다양한 대응 방식의 중심에는 너무도 무거운 짐을 짊어진 목회자가 홀로 서있다. 교회 전체가 즉 신앙인 모두가 함께 짊어지고 해결해 나가야할 문제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결국 문제 상황을 진단하고 급속히 변하는 현실의 문제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토대로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식을 결정하는 지도력의 책임은 주로 목회자에게 지워져 있다.
이런 위기 속에서 목회자들은 소위 부흥된 교회들의 방법들, 주목받고 인기 있는 목회방식들을 쫓게 되기 쉽다. 그러나 각기 다른 독특한 상황 속에서 적용된 목회 방식은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만의 또 다른 상황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그 결과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게 되고 자신의 무능력함을 자책하게 되는 양상들이 적지 않게 나타나게 된다. 목회자들은 뒤에는 이집트의 대군이 추격해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힌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 모세의 상황처럼 절망적인 위기에 직면한 형국이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목회자들에게 “과연 목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이런 절박한 질문에 대해 하워드 라이스는 목회자이자 목회학 교수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성 목회와 영적 지도‘라는 책에서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것은 유행하는 다양한 방식 중에 하나라기 보다는 그 모든 방법들의 토대가 될 근본에 관한 것이다. 그는 영적 성장을 돕는 섬김의 사역으로서의 목회를 제안한다. 목회란 그 무엇보다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동감 넘치는 임재를 체험케 하고 그 관계가 내면적인 측면으로부터 실천적인 측면으로까지 깊어지고 확장되도록 돕는 사역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그가 제안하는 ”영적 인도로서의 목회“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그것은 어떤 통찰력을 제공하는 지, 그것은 충분한 대답이 될 수 있는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몸 글
저자는 오늘날의 목회 현장이 심각한 혼란과 혼동 상태에 있다(p.13)3)고 진단한다. 그가 제시하는 난제들은 복잡해지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교회가 자신의 역할을 상실해 가고 교인들은 줄어가는 현실과 목회자들이 너무나 다양한 신자들의 요구들에 부응해야 하는 현실이다. 결국 목회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고 권위를 상실하며 혼란과 자책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 상황에 대해 저자는 교회와 목회의 정체성, 무엇보다 소명을 재확립함으로써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려 한다.
그는 소명을 재확립하기위해 우선 교회사에 나타난 다양한 목회상과 현대교회에 나타난 목회 이미지를 비판적으로서 검토한다. 현대교회의 목회상인 교육, 상담, 사회 변화 그리고 경영으로서의 목회가 나름대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해줬지만, 세속적인 훈련에 의존하고 적장 신학적 기초 위에 세우지 못한 한계로 인해 적절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근본적인 목사 상으로 회귀할 필요성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곧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영성이 성장하게 돕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목회’가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해결책을 토대로 소명과 교회의 정체성의 근본이 될 영적 지도 방법을 영적 돌봄, 예배, 교육, 사회 참여, 교회 관리 및 경영의 구체적인 영역에 적용하고, 그 근본적인 변화의 양상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서 영적 지도라는 목회자 상이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고 해결책으로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지, 무엇보다 목회의 신학적 기초가 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이 모든 창조적 변화를 이끌어낼 지도자인 목회자가 자신의 영성을 생동감있고 깊이 있게 유지할 수 있고 진정한 권위를 확립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한다.
이 모든 내용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통찰력은 먼저 현대의 세속화 상황에 직면한 교회의 문제를 분석하는 관점이다. 문제 상황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한국 개신교회의 문제 상황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에 설득력을 지니고 있고, 문제 상황에 정직하게 직면하고 해결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그리고 현실적 문제에 대해 무조건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방식보다 오히려 문제 상황을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아야한다는 도전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진단에는 사회 변화 곧 세속화의 거센 흐름에 대한 목회자의 피해의식이 반영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사회가 변했고 신자들의 다양화된 요구가 목회자를 궁지로 몰아간다는 식으로 그 상황을 분석한다. 그리고 목회자의 설교가 지배력을 상실하고 권위도 상실되면서 신분저하감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런 문제 상황은 사회의 변화를 직시하지 못하고 신자들의 다양한 요구들 속에서 가장 근본적인 아픔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 안일함에 기인한 것은 아닌가? 섬기는 자로서의 자리를 망각하고 무의식적으로 권위적 지배자의 자리에 안주한 것은 아닌가? 이단, 신흥종교, 종파나 제의(cult) 종교라고 폄하하곤 하는 종교들은 오히려 세속화의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아픔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교세를 넓혀가고 있다. 이런 대조적 상황과 비교할 때 이런 반문은 부정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이런 냉정하고 치열하며 정확한 자성이 토대를 이룰 때 문제의 해결이 보다 확실한 토대에 설 것이다.
저자가 개신교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다양한 전통으로부터 영성 훈련의 방법들을 자유롭고 폭넓게 가져와 제시하고 있는 것은 한국 개신교 영성의 한계를 극복기 위한 중요한 통찰과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 개신교 전통에서는 전통적으로 해오던 부흥집회나 성경 묵상, 통성 기도 등에 영성이라는 이름만 붙여서 답습하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이런 경향은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한 도구의 차원으로 전락하여 그 궁극적 가치와 목적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바로 이런 상황이 역자가 말하는 것처럼 영성 목회가 무엇인지 막연하기만 했던 문제점을 극복하게 하는 측면이다. 저자가 피정, 침묵 기도, 향심 기도 혹은 관상 기도, 영적 독서 등의 기독교 오랜 전통 속에 면면히 이어져오는 다양한 영성 훈련의 방식들을 제안하는 것은 한국 개신교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통찰력이 된다.
그리고 ‘제8장 영적 지도자로서의 관리’에서 교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모임들을 통해서도 영적 성숙을 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한 것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영적인 모임으로 생각하지 않는 회의들이 교회 안에서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분석한다. 일반적인 회의 절차가 찬성자와 반대자를 갈라놓고 그 중에 소수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만들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의무감, 불만, 좌절을 안겨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저자의 분석은 교회의 현실 속에서 많이 접했으면서도 그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었던 문제 상황을 정확하게 드러내줬다.
그리고 그에서 그치지 않고 회의의 형식으로서 ‘서로를 위한 나눔의 기도’, ‘개인의 성장력 나누기’, ‘침묵’, ‘선물 나눔; 각자가 모임에서 얻은 것’ 등을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물론 이런 대안은 구체적인 적용에서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개신교 상황은 너무나 많은 교회 내부 활동이 신자들의 영적 힘을 고갈시키고 있다. 그런데 회의 시간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활동들을 더 첨가하는 것은 오히려 사람들을 더욱 지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행정적이고 경영적인 측면까지 세심하고도 철저하게 영적 나눔과 성장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자세 자체는 중요한 통찰력이자 도전으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제9장 인격자인 목사: 영혼을 살리는 자’에서는 목회자가 영혼을 살리는 자로서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영성을 유지하고 성장하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한다. 사실 한국 개신교 신학대학에서 목회를 준비하는 신학생들은 학문적 접근에 치중하게 되는 환경적 요인에 처해 있다. 이로 인해 구체적으로 목회를 해나가면서 닥치는 문제 상황에 대해서는 지적이고 실천적인 면에서 부족하기 쉽다. 특히 목회 현장에서 자신의 영적 깊이를 어떻게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가하는 구체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부족하고, 단순히 기도와 말씀을 통해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는 원론적인 측면에서 머물기 쉽다. 저자가 성직자들에게 무의미해지는 예배와 설교 문제, 성직자 킬러 문제, 자신의 영적․개인적 문제를 털어놓을 사람을 찾기 어려운 문제 등 구체적으로 목회자가 겪게 될 위기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하는지 제안하는 것은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데 중요한 도움이 된다.
물론 이 책에 제시되고 있는 영성 목회에 대한 해석과 적용은 적지않은 부분에서 너무 원론적인 측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로 인해 구체적인 현장에서 과연 적용될 수 있을 지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려운 측면들도 있다. 예를 들어 화석화된 예배를 갱신해야 하고 예배는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거나 모든 학습 순간은 학습자의 신앙 성장을 위한 기회라거나 하는 등의 제안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그리 쉽게 적용되지 않는다. 사실 잘 알고 있지만 현실의 다양한 변수들 속에서 쉽게 적용될 수 없는 것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 이 책의 제안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 제안의 원론적 측면이 정당하다면 오히려 그것을 현실 속에 구체화시킬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할 것이다.
나가는 글 : 하나님됨을 향한 돌파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찰력과 그 의미 그리고 보완점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으로 나가는 글을 대신하려 한다. 그것은 교회가 처한 문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유행하는 방법론들보다는 근본적인 토대로부터 대안을 구성하려 한 토대로부터의 갱신이다. 저자는 계몽주의 이후 다양한 인문학의 발전을 교회 내적으로 수용하면서 목회를 교육, 상담, 사회 변화 그리고 경영으로 개혁한 과정을 분석했다. 그는 이런 적극적 수용이 이전의 목회가 지닌 문제점들을 극복하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각각의 방법이 한계에 부딪히게 된 현실을 제시하면서 한계를 지니게 된 것은 세속적인 방법에 치우친 나머지 목회의 근본을 신학적 기초에 세우진 못한 문제점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뛰어난 교수, 상담자, 자신의 삶을 다 바치는 혁명가, 치밀한 경영자 그 모두가 줄 수 없는 것, 곧 영적 목마름과 궁핍함의 문제를 도와주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목회가 가장 근본적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관점을 토대로 교육, 상담, 경영 그리고 사회 변혁의 각 차원이 영적 지도로서의 목회를 통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 지를 이어지는 각각의 장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근본적인 기초를 적확하게 재확립할 때 너무나 다양하게 유행하는 방법들에 현혹되거나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교회에 필요한 목회를 창조적으로 구성해갈 수 있다. 근본 토대으로부터 급진적이고 확고한 해결의 길이 생겨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너무나 중요한 통찰력이다.
그러나 저자가 재구성하려는 영적 목회에는 중요한 통찰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계점이 있다. 그가 정의하는 영성 개념은 이원론적이고 개인적이며 수직적인 차원에 치우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영성을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를 추구하는 과정”(p.48)이고 “하나님을 향한 추구”(p.43)하는 것, 즉,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체험하는 것으로 전제하면서 바로 그런 영성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영성 목회로 봤다. 물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한 영성의 요소이자 근본적인 뿌리임에 틀림없기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영성에는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수직적 차원과 동시에 고통받는 모든 존재자들-사람과 동물 및 무생물 모두를 포함하는-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무엇보다 그들을 위해 자신을 비우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영성의 수평적 차원도 존재한다.
물론 저자 역시 이런 수평적 차원을 7장 영적 지도로서의 사회 참여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1장에서 6장에 이르는 과정에서 수직적 차원만을 강조하고 있다. 즉, 영혼의 돌봄, 예배, 교육, 영적 지도라는 핵심적 개념들에서 하나님과 신앙인 개인의 관계만을 중시하는 영성 개념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영성은 개인이 겪는 실존적 허무감을 채워주는 하나님의 임재에 기초한다. 그것은 비우고 내어주는 영성보다는 자신을 채우는 영성에 근거한다. 그 결과 아무리 수평적 차원을 다시 강조한다고 해도 그 두 차원의 이분화를 막기 어렵다. 즉, 수직적 차원이 근원이 되고 수평적 차원은 그 결과 중에 하나가 되는 구조로 틀지기 쉽다는 것이다. 적어도 위계적 선후관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분화는 공동체적인 측면보다는 개인적인 것을,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것을, 일상의 모든 영역보다는 예배나 기도 등의 성스러운 시공간을 우선시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저자가 아무리 수평적 차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해도 이웃과 모든 존재의 고통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쫓아 자신을 비우는 것보다는 우선 자신의 아픔을 해결하고자 하나님을 찾게 되고, 모든 일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하는 것보다는 예배와 찬양, 기도와 묵상에 무게를 두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한계점은 그가 공동체적인 것을 강조하면서도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향한 실천적 참여와 연대의 영성은 간과하고 단지 개인의 영성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이웃의 개념에 머무는 것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또한 상처받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는 성육신의 영성이 영적 감수성을 개발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의 차원에서만 논의되는 것에서도 단적으로 나타난다.(p.155) 그리고 영성이 정신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세계와의 연속성을 지녔다고 강조하면서도 생물과 무생물까지 포괄하는 우주적 영성의 차원에 이르지 못하는 한계 역시 나타난다. 특히 이런 한계는 믿음과 행위의 이분적 구조 속에서 신앙의 실천적 영역 곧 성화 영역이 등한시 되는 한국 개신교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기 어렵다.
기독교 영성은 성과 속, 안과 밖, 너와 나의 구분을 허물고 모든 시공간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만나고 그 결과 자신을 비워 모든 존재자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전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4) 이런 영성은 이원론적이고 개인적이며 수직적인 분리를 극복할 수 있는 개념으로써의 ‘뿌리-은유’(root-metaphor)5)를 재구성하는 근본적 개혁을 통해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임재라는 ‘뿌리-은유’가 내포하고 있는 이원론적 가능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은유가 재구성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개인의 수직적 관계를 근원에 두는 영성에 기초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직적이면서 수평적인, 그 두 차원 자체의 이분적 구조가 전제되지 않은 영성개념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뿌리-은유의 재구성을 위한 영성 모델은 중세 신비가 엑카르트의 영성에서 중요한 모범을 찾을 수 있다. 그의 영성에 대해 길희성 박사는 “우리에게 어떤 특별한 종교적 경험이나 행위에 집착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일상적 삶에 매몰되지도 않으며, 성과 속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의 영혼의 근저에 뿌리박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참다운 자유의 길을 가르쳐 준다.”6)고 평한다. 엑카르트의 영성이 그 절정에서 드러내는 “하느님 아들의 삶”은 영혼의 근저에 태어난 하느님에 근거하여 '하느님 없이' 자기 충일성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이다. 그것은 안과 밖, 내면과 실천, 종교적 삶과 일상의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그 사이로 비껴가면서 하나로 아우르는 삶이다. 이런 하느님 아들의 삶은 철저한 자기 부정을 통해 절대적 긍정으로 도약하는 삶의 궁극적 차원을 보여준다.
'하느님 없이', '이유 없이', '목적도 없이' 등의 표현은 하느님과 나, 안과 밖 사이의 남아있는 모든 간격이 해체되는 철저한 하나됨의 경지를 보여준다. 하느님이 없다는 것은 나의 밖으로부터 나를 압도해오는 절대적 권위의 하느님을 부정함으로써 내 영혼의 뿌리로부터 샘솟아 하느님 아닌 영역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하느님에 대한 절대긍정을 이루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느님이 될 때 어디에도 하느님은 없는 것이다. 이유와 목적이 없다는 것은 완전히 나와 하나되지 않고 나의 밖으로부터 강제되는 어떤 이유도 부정하면서 동시에 모든 존재의 이유와 완전히 하나되는 절대긍정인 것이다.7)
이처럼 엑카르트의 영성의 궁극적 단계를 표현하는 “하나님 아들의 삶”이라는 뿌리-은유는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 안과 밖,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면서도 내안에서 샘솟는 하나님의 신성을 통해 밖으로 확장해가는 영성을 표현해 준다. 여기서 수직적 차원인 임재의 은유는 깊이의 차원인 근저의 은유로 변이되고 있다. 하워드 라이스가 제시하는 영성은 에크하르트의 영성처럼 통전적인 영성 모델과 개념으로 확장될 수 있는 뿌리-은유를 재구성함으로써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 참고도서 □
하워드 라이스 저, 영성 목회와 영적 지도, 최대형 역 (은성출판사, 2000)
김진 저, 기독교의 총체적 영성을 향하여, ‘말씀과 신학’(한국 기독교장로회 신학연구소, 1997/12 제17호), pp. 92-106.
길희성 저,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 사상 (분도출판사, 2003)
맥페이그 저, 은유신학-종교 언어와 하느님 모델, 정애성 역 (다산글방, 2001)
이원규 저, 한국교회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한기독교서회, 2000)
한인철 저, 선교의 또 다른 문지방을 넘어서, “새길 이야기” (도서출판 새길, 2000 여름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