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블루 1
외르크 카스트너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1660년을 전후로 렘브란트의 말기,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렘브란트라는 거장의 작품을 소재로 풀어 나가는 팩션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렘브란트의 작품들을 알아봤다. 책에서 밝힌 것과 같이 렘브란트가 파란색을, 그것도 파란색이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색을 사용한 작품을 딱 한 작품 발견했다.

 

 

그 작품은 위의 David Presenting the Head of Goliath to King Saul이라는 작품으로 성서적인 내용인 것 같다. 파란색과 노란색은 성서적으로 신을 상징하거나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색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것은 동서양이 황금에 대한 생각이 같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도 파란색은 악마의 색이라고도 한다. 마치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는 것처럼 파란색이 들어 있는 그림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평소와는 달리 잔인한 살인자가 되어 버리고 자신과 함께 일하던 동료가 그런 일을 겪자 화가이면서 한때 렘브란트의 제자였던 주인공이 그림 추적에 나선다.


이 작품에는 그림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 그 당시 시대상이 등장한다. 동인도 회사도 등장하고 그들의 무역, 네덜란드가 당시 처한 국제적인 상황과 죄인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심지어 아들을 잃고 몰락한 거장 렘브란트의 사생활까지 엿볼 수 있다. 그가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던가는 그가 아들의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빠르게 전개되고 빠르게 읽힌다. 당시 힘이 약했던 한 나라가 강대국 사이에서 어떤 위치에 놓이게 되는 지, 아들을 페스트로 잃은 화가가 어떻게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화가들의 고단한 삶은 변함이 없고 그때 그들에게 주지 못한 영광이 후세에나 이루어지게 된 점이 렘브란트 탄생 400주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만 느껴진다.


작품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끝까지 블루에 대해서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블루에 대한 것은 단순히 소재로만 이용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렘브란트라는 거장이 중심이라기보다는 다른 것에, 이를테면 네덜란드의 당시 시대상황에 더 큰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다빈치 코드>나 <최후의 만찬>을 따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수하게 렘브란트를 위한 작품이 아닌 렘브란트를 이용한 듯한 느낌이 들어 안타까웠다. 그것이 이 작품 내내 되풀이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 이 작품의 장점은 무엇일까? 다른 화가와 그림을 소재로 한 팩션 작품들이 그림 자체에 숨겨진 비밀을 다룬 반면 이 작품은 렘브란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색과 빛의 마술사로 찬양받고 있는 화가를 등장시켜 파란색이라는 회화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색에 담긴 비밀을 찾는 독특한 점이다. 이것은 다른 작품들과 대단히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이 작가의 작품이 차별되는 이유 중 하나가 색에 대한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그 색에 대한 대가 렘브란트의 말년 속에 잘 포함시켰다는 점은 자고 일어나 내가 서평을 다시 쓰게 만들었다. 이 점은 쓸 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래도 한번 잡으면 주인공이 너무 위기에 금방 빠지기 때문에 이 작자가 어떻게 빠져나오는지가 궁금해서 계속 다음 장을 읽게 된다. 어리버리한 주인공 때문에 독자는 속이 탄다. 그리고 책을 덮은 뒤에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의 위치와 다름없던 네덜란드를 우리는 지금이라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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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2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날 것같아요

비로그인 2006-04-21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이런 팩션이 많은가 봅니다. 제가 얼마전에 읽은 건 포우의 어린 시절이 나오는 얘기였어요. 그래도 현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얽힌다는게 더 가슴뛰게 하는 뭐가 있기도 하지요...

물만두 2006-04-22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재미있어요.
맨시님 재미는 있는데 너무 많이 갑자기 등장하니까 좀 그랬습니다^^:;;

메이즈리크 2006-04-22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다빈치 코드류 작품은 그만~~ 작품들도 그렇게 좋은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이리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물만두 2006-04-22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진님 저도 그 생각이 좀 들었는데 아무래도 팩션이 대세인 것 같아요. 한 장르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도 재미있습니다~^^ 이번에는 렘브란트니까 뭐 이런 식으로 화가들을 모두 만나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2006-04-22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04-22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올렸습니다!

로드무비 2006-04-23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누릅니다.(일단^^)

물만두 2006-04-23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감솨합니다^^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김경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우연히 티비 드라마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추리적인 요소가 괜찮았다 싶었다. 이 정도면 어디서 본 듯한 소재라도 책은 더 낫겠지 싶어서 샀다. 그리고 이 작가가 <장국영이 죽었다고?>로 말이 많은 작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작가가 제목에 자살한 연예인을 넣는 것이 작품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 속의 모든 코드는 말하자면 자살은 인생의 완성이다... 뭐 이런 것이다. 마지막 평론가는 이 작가가 김영하와는 다르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나는 읽는 내내 또 한 명의 김영하를 보는 듯 했다. 느낌이 같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같은 시대를 공유하고 같은 생각을 담고 살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완벽한 독자성을 갖기 어렵다. 아무리 90년대 시대의 작가라 할지라도 이미 인이 박힌 듯 떨쳐내지 못한 응어리는 쉽게 대물림되고 유산처럼 남아 사생아 같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도대체 커트 코베인을 누가 죽였느냐가 뭐가 중요하냐고. 그 사회가 그를 죽였다. 자살로 몰아  갔다. 한 청춘이 자살을 선택해야 할 만큼 냉혹했다. 그래서? 내가 원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김영하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는 괜찮은데 하는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이 작가에게는 그런 느낌조차 없다.


끼인 세대도 아니면서 끼인 세대처럼 글을 쓰고 오롯이 자신만의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지 못한 채 과거로 침전되는 글들, 변화 없는 사람들, 딱 한 작품 <선인장>만 좋았다. 선인장은 가시가 많다. 물을 너무 많이 줘도 죽는다. 꽃도 자주 피지 않는다. 그래도 사막에서도 자란다. 그런 선인장처럼 우리는 질기게 살고 있다. 그리고 살아야 한다. 글도 써야 하고 읽어야 한다. 하지만 비슷한 것은 당장 유행품처럼 버려지게 마련이고, 너무 가시가 많은 것은 아프고 성가셔서 가시가 잘리기 십상이다. 릴케의 장미의 순수를 이 시대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서트 코인>같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작품과 죽음에 대한 설 좀 풀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통은 한 편 한 편 생각을 읊어 가는데 이 단편집은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김영하도 그랬듯이 한 편으로 만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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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6-04-20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하루(春) 2006-04-20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커트...>는 원작을 바탕으로 새롭게 쓴 거 아니었나요? 저는 최근작 <장국영이 죽었다고?>를 먼저 읽고, 이 책도 계속 염두에 두고 있는데 아직 못 사고 있긴 하지만요.. 나름 기대 중인데...

물만두 2006-04-20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언니 말씀을...
하루님 맞습니다. 전 그래도 원작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거든요. 이 작가는 극과 극인 것 같아요. 좋으면 <장국영...>도 읽어볼까 했는데 아쉬워요. 읽고 리뷰 쓸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더라구요 ㅠ.ㅠ 아마 제가 이해를 못해 더 시니컬해진 것 같아요.
 

 러시아의 가장 유명한 시인으로서 대중에게는 혁명 그 자체를 상징하던 인물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의 삶을 사랑과 죽음을 모티프로 살펴본 책. 서른여섯의 그는 한 장의 편지를 남겨둔 채 권총으로 자신을 쏘았다. 편지에는 "릴리, 나를 사랑해주오"라고 쓰여 있었다. 그녀는 과연 어떤 여자였고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비에트 당국은 릴리가 유대인이었다는 이유 때문에 마야코프스키에게서 그녀의 존재를 떼어낸 채 기억하려고 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소비에트 사회에서는 유대인 배척운동이 아직까지도 기세를 떨치고 있다. 게다가 그녀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고, 마야코프스키는 릴리는 물론 그녀의 남편과도 함께 살면서 릴리와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 공식적인 소비에트의 도덕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마야코프스키의 삶 전체를 통해서 그녀가 파고들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20세기 러시아의 위대한 혁명시인’ 마야코프스키와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문제작 「전함 포춈킨」의 감독’ 에이젠슈테인. 이 책은 현대 러시아 예술에 있어서 변혁의 상징적 인물로서 러시아 예술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두 천재의 삶과 예술가 정신을 ‘평행전기’라는 독특한 기법으로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서로 다른 두 인물의 영상 속에서 시대의 무한한 가능성과 부침(浮沈)을 확인하려 한다.”는 듀오그래피(duographie)의 모토 아래 이 책에서 마야코프스키와 에이젠슈테인이라는 두 인물이 인생 여정 가운데 꽃피운 예술혼을 비교 서술하면서, 두 사람이 견뎌내야 했던 당시의 러시아의 시대적 상황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두 인물은 성장환경에서부터 차이가 있었다. 서민출신으로서 마야코프스키가 정신적, 예술적 발전의 측면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면, 부유한 중산층 출신인 에이젠슈테인은 어려서부터 엘리트 교육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능력을 키워갔던 인물이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함께 묶어낼 수 있는 것은 변혁을 갈구하는 예술가 정신과 독특한 자의식을 갖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러시아 10월 혁명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혁명의 이념을 각각 문학과 영화라는 영역에서 꽃피우려 노력했던 인물들인 것이다.
마야코프스키는 미래주의자와 교우하면서 예술을 삶을 변혁하는 수단으로 간주, 기존의 전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운 예술형식과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다. 소위 아방가르드 운동에 전면에 서서, 혁명시, 서정시, 희곡, 포스터 등 다양한 문학 영역에서 자신의 이념적 정신을 열정적으로 담아냈다. 에이젠슈테인 역시 혁명 정신을 영화에 담아내 영화사상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인물이다. 흔히 ‘에이젠슈테인 레슨’이라 불리는 몽타주 기법을 최초로 영화「전함 포춈킨」에 담아내면서 미학적 정신과 혁명적 실천을 동시에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같이 한 시대의 우상으로 존경을 받던 두 예술가가 결국 비극적 운명을 맞게 한 것은 무엇일까. 푸슈킨 이래 가장 위대한 러시아의 시인이라는 칭송을 들었던 마야코프스키가 불과 37세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세계적 명감독으로 군림했던 에이젠슈테인이 50세의 나이에 여든 살 노인의 심장을 가질 만큼 자신을 혹사시키며 서서히 자살을 준비해왔던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이들의 불행을 ‘시대’와의 불화에서 나왔다고 밝힌다. 혁명의 이상과 불온한 현실 가운데서 자신들의 예술가적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되었다. 검열을 이용해 창작활동에 무분별하게 개입하는 스탈린식 문화정책, 그리고 혁명의 이념과 동떨어진 관료주의가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수록 두 사람은 자신만의 예술적 확신에 따라 작업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했다. 예술까지도 프롤레타리아의 사유 재산으로 설명되는 시대적 상황은 예술가의 자율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두 사람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던 것이다.
마야코프스키와 에이젠슈테인, 두 사람 모두 ‘나’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남겼다고 한다. 이 제목을 통해 이들이 고민하고 좌절해야 했던 ‘나’와 ‘우리’, 즉 ‘개인’과 ‘공동체’의 화해불가능성뿐만 아니라 예술가에게 창작의 자유와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엿볼 수 있다. 러시아 예술의 선구자였던 두 예술가의 삶을 통해 우리는 예술과 사회의 관계, 예술과 현실의 관계에 관해 깊이 성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2살 나이에 마르크스주의 문학서클에 가입하여 15살에 이미 정치범으로 세 번 체포된 소비에트 혁명기의 천재시인 마야꼬프스끼. 소싯적부터 기름진 인간들을 저주했던 그 다가올 혁명의 구세주를 앞질러 선포하는 복음서의 열세번째 사도였던 그는 그러나 장님이 되어가는 이의 하나 남은 눈 처럼 고독했다. 혁명의 고착화 속에서 문학관료들과 속물계급에 포위된 그는 1930년 서른일곱 아직 젊은 나이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언어의 위력과 예언력을 믿었던 시인 마야꼬프스끼는 자신의 시가 시간의 암석을 뚫고 낡았지만 여전히 무시무시한 무기처럼 먼 훗날까지 살아남으리라고 에언했다. 오늘날 그의 예언은 성취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흔히 혁명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말합니다. 이제 계급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기술이야말로 인류의 완전한 유토피아적 미래를 약속합니다. 문학은 쇠잔한 노인의 목소리처럼 점점 더 희미하게 들려올 뿐입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쌓아올리는 과학 기술의 바벨탑이 닿게 될 곳은 어디일까요?
무수한 혁명을 겪었지만 우리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미완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어야 하는 혁명의 숙제 때문입니다. 나의 유토피아는 숨 막히는 완전 사회에 대한 꿈이 아니며 독일의 철학자 블로흐가 주장한 것처럼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지향입니다. 비록 여기 번역된 나의 시가 지금의 한국 독자들에게는 "언젠가 그 안에 담겨 있었을 진정성과 절실함은 휘발되어버리고 단지 우스꽝스러운 기표로만 남겨진 시대착오적인 구호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믿고 있습니다.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시도 문학도 새로운 힘과 사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는 마야코프스키의 작품 중 문학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받는 단시와 장시 그리고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선언문들을 선별하여 실었다. 특히 이 책은 파격적인 형식과 혁명 정신을 결합시킨 러시아 미래주의 미래파라고도 한다. 20세기 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운동으로 전통을 부정하고 역동성과 혁명성을 강조했다.
의 기수로서 마야코프스키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선언문들을 싣고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악마에게로 꺼져라!〉,〈우리 역시 고기를 원한다〉등의 선언문들에는 마야코프스키의 미학적 급진주의와 유토피아적 이상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이를 통해 볼셰비키 혁명을 지지하고, 새로운 형식의 혁명적 예술을 추구한 마야코프스키의 정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의 언어를 거리의 언어로
마야코프스키와 그의 미래주의자 동료들은〈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에서 동시대인들뿐만 아니라 푸슈킨과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같은 과거의 고전들도 “현대라는 기선에서” 던져버리라고 선언한다. 볼셰비키 혁명을 지지한 최초의 예술가 집단으로서 미래주의자들의 선언은 당시 문단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들은 러시아 전역을 돌며 연설과 시낭송회를 하면서 미래주의를 대중화했고, 마야코프스키는 이 선언문과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 시?산문집에〈밤〉과〈아침〉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미래주의의 첫 선언문〈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외에도 이 책에 실린〈악마에게로 꺼져라!〉,〈우리 역시 고기를 원한다〉,〈타르 한 방울〉,〈판관의 덫 II〉 등에는 시의 언어를 거리의 언어로 끌어내림으로써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창조하려 했던 마야코프스키의 이상이 잘 나타나 있다.
마야코프스키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혁명과 예술을 동일시한 마야코프스키는 시의 형식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관습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운율과 압운을 구사한 그의 시는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는 인습적인 행(行)을 해체함으로써 시에 새로운 운율법을 도입했고, 거리의 거친 말을 가져옴으로써 시적 어휘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특히 시 구절을 계단 모양으로 배열한 일련의 계단 시(?타마라와 악마〉,〈관료주의자의 계단〉,〈배가 된 인간〉,〈자아비판에 대한 비판〉등)는 그의 혁신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 가장 혁신적인 것은 사회 변혁을 가져왔던 역사적 사건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10월 혁명 등과 같은 급진적인 사회 혁명에서 영감을 얻었고 자신의 시가 옳다는 확신을 뒷받침할 증거들을 찾아냈다. 물론 소비에트 연방이 몰락한 지금, 마야코프스키의 문학은 시효가 만료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온 열정을 다해 미래를 추구했으며, 해방된 인간, 자유로운 인간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마야코프스키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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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4-19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 어디서 옮겨오신 건가요? 출처가 궁금해서요...

2006-04-19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04-1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이버에서요~ 책에서 찾으면 다른 서점에 있는 내용이 비교할 수 있게 되어 있더군요.
속삭이신님 네~
 

 일종의 스토이씨즘의 작가 헤밍웨이는 결국 권총 자살을 한다. 그의 최후를 예시하기나 하는 듯한「킬리만자로의 눈」회저(壞疽), 보기 흉한 독수리, 산꼭대기의 흰 눈 등의 탁월한 상징 속에서의 작가의 자의식의 묘사. 폭력에 대한 묵묵한, 그리고 강인한 저항을 묘사한「살인자들」. 우리는 헤밍웨이의 주옥같은 단편들을 읽으면서 그에게 반해버리지 않을 수 없다.

 

  {1980년 5월에,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는 쿠바의 마리엘 항(Mariel)을 개방했다. 표면상으로는 미국에 거주하는 쿠바 사람들의 가족상봉 허가였다. 72시간 이내에, 3,000척의 미국 선박들이 쿠바로 향했다. 카스트로는 선주들에게 그들의 가족 뿐만 아니라 감옥의 인간 쓰레기들도 함께 싣고 갈 것을 강요했다. 플로리다에 상륙한 12만 5천명의 난민 중 대략 2만 5천명이 전과자였다.}
 1980년 5월 쿠바가 마리엘 항을 개항하여 반카스트로 지지자들이 미국 플로리다에 입항한다. 토니 몬타나와 마니리베라도 그런 망명자 중에 끼어있다. 꿈의 실현을 위해 미국에 온 그들이지만 입국 검사 결과 이민 수용소로 보내진다. 3개월 후 마니가 수용소에 있는 레벤가라는 자를 살해해 주면 신분증을 입수해 주겠다는 일을 받아 수용소에 폭동을 일으켜 레벤가를 암살한다.
 접시닦이로 근근히 살아가던 토니는, 다시 레벤가 처치를 의뢰한 프랭크의 부하로부터 콜롬비아 마약상과의 거래일을 맡았다가 위험천만한 위기를 넘긴다. 그 사건을 계기로, 토니는 프랭크의 신임을 얻고 그의 부하가 되지만, 수 개월 후 결국 자신을 없애려는 프랭크를 죽이고 조직을 장악, 보스 자리에 오른다. 마침내 토니는 콜롬비아의 마약왕 소니와 손잡고, 마약 공급을 대대적으로 펼쳐 큰 부자가 된다. 그러나 화려한 그의 생활은 정신적으로 점차 고립되어 가고, 성격도 포악해져가는데.

 시대와의 불협화음을 통한 삶의 복원
책세상 니체전집 2권《비극의 탄생 · 반시대적 고찰》이 출간되었다. 니체의 대표적인 초기 저작이자 그에게 명성을 안겨다준 〈비극의 탄생〉(1872)과 〈반시대적 고찰〉(1873~1874)을 엮은 이 책은 니체가 평생 동안 추구한 사유의 내용과 방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두 글은 각각 고대 그리스와 현대 독일의 학문과 예술을 탐구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당대의 학문과 시대에 대한 비판이다. 니체에게 근대는 속물 교양인, 천박한 욕망, 이기주의 등으로 가득 찬 타락의 온상이다. 니체는 여기서 자신을 시대의 일탈자로 규정하며 이러한 감정을 반시대성이라고 명명한다. 그에게 〈비극의 탄생〉이내용상 반시대적이라면, 〈반시대적 고찰〉은 시대와의 불화를 반영하며, 이 두 글에서 공통된 주제는 다름 아닌 ‘삶’이다. 그는 근대적 삶에서 상실된 삶과의 역동적, 생산적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그리스 예술 정신을 끌어들이며, 삶을 왜곡하고 경직시키는 현대적 문화를 비판하기 위해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반시대성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반시대성에서 출발하는 현실 인식은 우리에게도 우리의 시대를 제대로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그리스 대 현대, 예술 대 학문, 과거의 힘으로부터 현재를 바라보다
〈비극의 탄생〉은 근대인이 삶의 전형으로 여기는 그리스인에게 비극이 왜 필요했던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니체에게 이 질문은 실존적 가치에 대한 의문이다. 이 책에서 니체는 그리스 비극에 대한 문헌학적, 역사적 해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극적 구조의 두 원리인 아폴론적인 꿈과 디오니소스적인 도취가 삶과 실존의 두 원리이기도 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처럼 실존의 문제를 가지고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는 것은 현재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니체는 현재의 문화를 퇴폐로 이끈 원인을 이성 중심적, 형이상학적 학문의 문제로 규정하고 이를 고대의 예술과 대립시킨다.
〈반시대적 고찰〉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시대의 유행을 거슬러서 당대에 함축된 미래의 가능성을 미리 파악하고자 하는 니체의 노력이다. 세 편의 반시대적 고찰은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승전 후 나타난 독일 문화와 문명에 대한 비판이다. 니체가 자신의 당대에서 발견한 시대적 특징은 대중문화의 평범함과 교양 속물적 학문이다. 니체는 이러한 시대적 경향과 불화하고 이를 상대로 투쟁을 벌임으로써 자유로워지고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시대를 위한 예술을 찾아서
근대와 근대적 학문에 대한 니체의 비판적 인식은 이미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미학을 선취하고 있다. 그러나 니체의 철학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은 그의 철학이 단지 예언과 선취로서의 철학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실존의 조건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현재적 삶의 극복과 정당화를 위해 고민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우리의 삶과 세계가 예술적으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대답한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우리의 실존적 조건은 니체의 진단처럼 실상 우리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니체는 우리에게 시대와의 불화를 통해 우리 시대를 살기 위한 예술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찾아볼 것을 권한다. 예술이 더 이상 아름답지도 않고 더 이상 예술일 필요도 없는 우리 시대에 니체 철학은 이런 의미에서 현재성을 지니는 것이 아닐까.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 분)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백성희 분)와 젊은 시절 상처한 한 아버지(박인환 분), 고모(신신애 분)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겨울 그는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이영애 분)를 만난다.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은수는 상우와 녹음 여행을 떠난다.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두 사람은 어느 날, 은수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낸다.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상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빨려든다.
 그러나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의 관계는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면서 삐걱거린다.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상우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다며 부담스러운 표정을 내비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 상우에게 은수는 그저 "헤어져"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랑이 변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우는 어찌 할 바를 모른다. 은수를 잊지 못하는 상우는 미련과 집착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서울과 강릉을 오간다.

 암흑가에서 성장한 송자호(적룡 분)는 경찰의 길을 걷는 동생 아걸(장국영 분) 때문에 손을 씻으려 한다. 그러나 음모에 말려 체포, 감옥에 들어가고, 친구 소마(주윤발 분)는 그의 복수를 하다가, 총에 맞아 한 쪽 다리를 저는 불구가 된다.
 3년의 세월이 흘러 대만에서 출옥해 홍콩으로 와 새 생활을 시작한 자호는, 옛 부하인 아성(이자웅 분) 밑에서 자동차 세차나 하고 푼돈을 받고 있는 소마를 발견하게 된다. 지하 주차장에서 찬 도시락을 먹는 소마와 눈물 겨운 재회를 하는 자호. 소마는 의리를 저버리고 지금의 암흑가 보스가 된 아성으로부터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송자호는 자신들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하고 갱생의 길을 걷는다. 암흑가의 새 보스 아성은 송자호의 출현에 긴장을 한다. 처음에는 그를 회유하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자, 킬러를 보내 아걸의 집에 침입, 아버지를 죽이게 한다. 이 일로 아걸과 자호의 사이는 더욱 벌어지고 이에 아성은 소마를 기습하여 집단 린치를 가한다.
 간신히 아호를 구출해 낸 소마가 산 위에서 반짝거리는 홍콩 시가를 보면서 절규한다. "네 모습을 봐. 나쁜 짓을 할 때는 남한테 욕을 먹고, 좋을 일을 하려고 해도 쫓겨다니잖아." 비장한 침묵 뒤 시가를 바라보며 "홍콩의 밤은 버리기에 아깝다"고 말하면서 두사람은 최후의 일전에 나설 각오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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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4-18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인하고 진탕 싸우고나서 술을 퍼마시고 쓴 <노인과 바다>도 매혹적이지..
오늘 왼종일 일 하느라고 그대 벤또에 참석 못혀서 미안허이.
흙바람이 어찌나 심술궂은지 지금도 목이 켁켁 막혀.
하지만 밴또 잘 치루시길 빌며
오늘은 굿 나잇 인사 내가 먼저 하네..
아웅, 졸려~!

물만두 2006-04-18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인과 바다는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생각안나요. 벤또는 진행중입니다~ 안녕히 주무세용^^

물만두 2006-04-19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마요? 흠... 이 단편은 읽어볼려구요~ 뭐, 작가가 독자를 떠나는 건 당연하죠^^;;;
 

애니타 블레이크는 에니메이터를 겸하고 있는 뱀파이어 헌터이다. 동시에 넓은 의미로 그녀는 몬스터 사냥꾼이기도 하다. 때로 사람을 사냥할 때도 있는 그녀는 자기 자신이 괴물은 아닌지 혼란을 겪을 때가 있다.  
애니타는 우리가 사는 현실과 비슷한 세계에 살고 있다. 차이점이라면 소설 속 이야기들은 우리 세계의 밤에서도 현실이라는 것이다. 세상엔 흡혈귀, 마법, 좀비, 늑대인간 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자신을 위해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생활해 가고 있다. 
애니타는 에니메이터 주식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정기적으로 좀비, 죽었지만 유언이 모호한 자들을 소환한다. 마찬가지로 애니타는 당신의 상속자들에게 유언을 들려주고자 죽은 당신을 불러낼 수 있다. 누군가가 죽은 당시에 품었던 진심을 알고 싶다면 그들의 입으로 직접 듣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애니타는 또한 RPIT(Regional Preternatural Investigation Team)라고 불리는 세인트 루이스 경찰 소속 ‘지역 초자연 수사 팀’의 컨설턴트로도 일하며 초자연적 범죄를 담당하고 있다. 
애니타의 상관인 에니메이터 사의 버트 본 또한 당연히 이런 일의 전문가이다. 그는 합당한 보수를 받으면 어떤 일이든 처리할 것이다. 물론 돈만으로 이들이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어떤 이들은 그들의 거절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애니타는 터프한 여성이며 사격의 명수이니까. 때로 무기가 도움이 되지 않는 사건도 있다. 시티의 마스터인 늑대인간이 그녀에게 구혼해 왔던 사건같이. 당신이 이 혼란한 세계에 너무 정신을 뺏기지 않기를 빈다! 
애니타가 세상의 온갖 끔찍한 미스터리들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 동참해 보자. 당신이 미스터리 팬이라면 이 판타지 제국 속에서 활약하는 이 당당하고 터프한 여성 애니타가 당신이 찾던 바로 그 인물이 될 것이다. 
아직 확신이 가지 않는가? 묘지로 가서 묘석을 손에 들어 보라. 그곳을 둘러싼 공기와 책의 앞뒤 표지가 전해 주는 마력으로 당신은 곧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고 싶어지지 않았다면 당신은 스스로의 감성이 마비된 건 아닌지 검사를 받아보기를 권한다.

http://cafe.naver.com/mscbook.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24

아, 뱀파이어는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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