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가장 유명한 시인으로서 대중에게는 혁명 그 자체를 상징하던 인물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의 삶을 사랑과 죽음을 모티프로 살펴본 책. 서른여섯의 그는 한 장의 편지를 남겨둔 채 권총으로 자신을 쏘았다. 편지에는 "릴리, 나를 사랑해주오"라고 쓰여 있었다. 그녀는 과연 어떤 여자였고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비에트 당국은 릴리가 유대인이었다는 이유 때문에 마야코프스키에게서 그녀의 존재를 떼어낸 채 기억하려고 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소비에트 사회에서는 유대인 배척운동이 아직까지도 기세를 떨치고 있다. 게다가 그녀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고, 마야코프스키는 릴리는 물론 그녀의 남편과도 함께 살면서 릴리와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 공식적인 소비에트의 도덕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마야코프스키의 삶 전체를 통해서 그녀가 파고들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20세기 러시아의 위대한 혁명시인’ 마야코프스키와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문제작 「전함 포춈킨」의 감독’ 에이젠슈테인. 이 책은 현대 러시아 예술에 있어서 변혁의 상징적 인물로서 러시아 예술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두 천재의 삶과 예술가 정신을 ‘평행전기’라는 독특한 기법으로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서로 다른 두 인물의 영상 속에서 시대의 무한한 가능성과 부침(浮沈)을 확인하려 한다.”는 듀오그래피(duographie)의 모토 아래 이 책에서 마야코프스키와 에이젠슈테인이라는 두 인물이 인생 여정 가운데 꽃피운 예술혼을 비교 서술하면서, 두 사람이 견뎌내야 했던 당시의 러시아의 시대적 상황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두 인물은 성장환경에서부터 차이가 있었다. 서민출신으로서 마야코프스키가 정신적, 예술적 발전의 측면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면, 부유한 중산층 출신인 에이젠슈테인은 어려서부터 엘리트 교육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능력을 키워갔던 인물이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함께 묶어낼 수 있는 것은 변혁을 갈구하는 예술가 정신과 독특한 자의식을 갖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러시아 10월 혁명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혁명의 이념을 각각 문학과 영화라는 영역에서 꽃피우려 노력했던 인물들인 것이다.
마야코프스키는 미래주의자와 교우하면서 예술을 삶을 변혁하는 수단으로 간주, 기존의 전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운 예술형식과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다. 소위 아방가르드 운동에 전면에 서서, 혁명시, 서정시, 희곡, 포스터 등 다양한 문학 영역에서 자신의 이념적 정신을 열정적으로 담아냈다. 에이젠슈테인 역시 혁명 정신을 영화에 담아내 영화사상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인물이다. 흔히 ‘에이젠슈테인 레슨’이라 불리는 몽타주 기법을 최초로 영화「전함 포춈킨」에 담아내면서 미학적 정신과 혁명적 실천을 동시에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같이 한 시대의 우상으로 존경을 받던 두 예술가가 결국 비극적 운명을 맞게 한 것은 무엇일까. 푸슈킨 이래 가장 위대한 러시아의 시인이라는 칭송을 들었던 마야코프스키가 불과 37세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세계적 명감독으로 군림했던 에이젠슈테인이 50세의 나이에 여든 살 노인의 심장을 가질 만큼 자신을 혹사시키며 서서히 자살을 준비해왔던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이들의 불행을 ‘시대’와의 불화에서 나왔다고 밝힌다. 혁명의 이상과 불온한 현실 가운데서 자신들의 예술가적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되었다. 검열을 이용해 창작활동에 무분별하게 개입하는 스탈린식 문화정책, 그리고 혁명의 이념과 동떨어진 관료주의가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수록 두 사람은 자신만의 예술적 확신에 따라 작업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했다. 예술까지도 프롤레타리아의 사유 재산으로 설명되는 시대적 상황은 예술가의 자율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두 사람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던 것이다.
마야코프스키와 에이젠슈테인, 두 사람 모두 ‘나’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남겼다고 한다. 이 제목을 통해 이들이 고민하고 좌절해야 했던 ‘나’와 ‘우리’, 즉 ‘개인’과 ‘공동체’의 화해불가능성뿐만 아니라 예술가에게 창작의 자유와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엿볼 수 있다. 러시아 예술의 선구자였던 두 예술가의 삶을 통해 우리는 예술과 사회의 관계, 예술과 현실의 관계에 관해 깊이 성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2살 나이에 마르크스주의 문학서클에 가입하여 15살에 이미 정치범으로 세 번 체포된 소비에트 혁명기의 천재시인 마야꼬프스끼. 소싯적부터 기름진 인간들을 저주했던 그 다가올 혁명의 구세주를 앞질러 선포하는 복음서의 열세번째 사도였던 그는 그러나 장님이 되어가는 이의 하나 남은 눈 처럼 고독했다. 혁명의 고착화 속에서 문학관료들과 속물계급에 포위된 그는 1930년 서른일곱 아직 젊은 나이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언어의 위력과 예언력을 믿었던 시인 마야꼬프스끼는 자신의 시가 시간의 암석을 뚫고 낡았지만 여전히 무시무시한 무기처럼 먼 훗날까지 살아남으리라고 에언했다. 오늘날 그의 예언은 성취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흔히 혁명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말합니다. 이제 계급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기술이야말로 인류의 완전한 유토피아적 미래를 약속합니다. 문학은 쇠잔한 노인의 목소리처럼 점점 더 희미하게 들려올 뿐입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쌓아올리는 과학 기술의 바벨탑이 닿게 될 곳은 어디일까요?
무수한 혁명을 겪었지만 우리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미완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어야 하는 혁명의 숙제 때문입니다. 나의 유토피아는 숨 막히는 완전 사회에 대한 꿈이 아니며 독일의 철학자 블로흐가 주장한 것처럼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지향입니다. 비록 여기 번역된 나의 시가 지금의 한국 독자들에게는 "언젠가 그 안에 담겨 있었을 진정성과 절실함은 휘발되어버리고 단지 우스꽝스러운 기표로만 남겨진 시대착오적인 구호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믿고 있습니다.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시도 문학도 새로운 힘과 사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는 마야코프스키의 작품 중 문학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받는 단시와 장시 그리고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선언문들을 선별하여 실었다. 특히 이 책은 파격적인 형식과 혁명 정신을 결합시킨 러시아 미래주의 미래파라고도 한다. 20세기 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운동으로 전통을 부정하고 역동성과 혁명성을 강조했다.
의 기수로서 마야코프스키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선언문들을 싣고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악마에게로 꺼져라!〉,〈우리 역시 고기를 원한다〉등의 선언문들에는 마야코프스키의 미학적 급진주의와 유토피아적 이상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이를 통해 볼셰비키 혁명을 지지하고, 새로운 형식의 혁명적 예술을 추구한 마야코프스키의 정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의 언어를 거리의 언어로
마야코프스키와 그의 미래주의자 동료들은〈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에서 동시대인들뿐만 아니라 푸슈킨과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같은 과거의 고전들도 “현대라는 기선에서” 던져버리라고 선언한다. 볼셰비키 혁명을 지지한 최초의 예술가 집단으로서 미래주의자들의 선언은 당시 문단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들은 러시아 전역을 돌며 연설과 시낭송회를 하면서 미래주의를 대중화했고, 마야코프스키는 이 선언문과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 시?산문집에〈밤〉과〈아침〉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미래주의의 첫 선언문〈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외에도 이 책에 실린〈악마에게로 꺼져라!〉,〈우리 역시 고기를 원한다〉,〈타르 한 방울〉,〈판관의 덫 II〉 등에는 시의 언어를 거리의 언어로 끌어내림으로써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창조하려 했던 마야코프스키의 이상이 잘 나타나 있다.
마야코프스키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혁명과 예술을 동일시한 마야코프스키는 시의 형식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관습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운율과 압운을 구사한 그의 시는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는 인습적인 행(行)을 해체함으로써 시에 새로운 운율법을 도입했고, 거리의 거친 말을 가져옴으로써 시적 어휘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특히 시 구절을 계단 모양으로 배열한 일련의 계단 시(?타마라와 악마〉,〈관료주의자의 계단〉,〈배가 된 인간〉,〈자아비판에 대한 비판〉등)는 그의 혁신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 가장 혁신적인 것은 사회 변혁을 가져왔던 역사적 사건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10월 혁명 등과 같은 급진적인 사회 혁명에서 영감을 얻었고 자신의 시가 옳다는 확신을 뒷받침할 증거들을 찾아냈다. 물론 소비에트 연방이 몰락한 지금, 마야코프스키의 문학은 시효가 만료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온 열정을 다해 미래를 추구했으며, 해방된 인간, 자유로운 인간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마야코프스키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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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4-19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 어디서 옮겨오신 건가요? 출처가 궁금해서요...

2006-04-19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04-1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이버에서요~ 책에서 찾으면 다른 서점에 있는 내용이 비교할 수 있게 되어 있더군요.
속삭이신님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