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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김경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우연히 티비 드라마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추리적인 요소가 괜찮았다 싶었다. 이 정도면 어디서 본 듯한 소재라도 책은 더 낫겠지 싶어서 샀다. 그리고 이 작가가 <장국영이 죽었다고?>로 말이 많은 작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작가가 제목에 자살한 연예인을 넣는 것이 작품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 속의 모든 코드는 말하자면 자살은 인생의 완성이다... 뭐 이런 것이다. 마지막 평론가는 이 작가가 김영하와는 다르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나는 읽는 내내 또 한 명의 김영하를 보는 듯 했다. 느낌이 같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같은 시대를 공유하고 같은 생각을 담고 살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완벽한 독자성을 갖기 어렵다. 아무리 90년대 시대의 작가라 할지라도 이미 인이 박힌 듯 떨쳐내지 못한 응어리는 쉽게 대물림되고 유산처럼 남아 사생아 같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도대체 커트 코베인을 누가 죽였느냐가 뭐가 중요하냐고. 그 사회가 그를 죽였다. 자살로 몰아 갔다. 한 청춘이 자살을 선택해야 할 만큼 냉혹했다. 그래서? 내가 원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김영하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는 괜찮은데 하는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이 작가에게는 그런 느낌조차 없다.
끼인 세대도 아니면서 끼인 세대처럼 글을 쓰고 오롯이 자신만의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지 못한 채 과거로 침전되는 글들, 변화 없는 사람들, 딱 한 작품 <선인장>만 좋았다. 선인장은 가시가 많다. 물을 너무 많이 줘도 죽는다. 꽃도 자주 피지 않는다. 그래도 사막에서도 자란다. 그런 선인장처럼 우리는 질기게 살고 있다. 그리고 살아야 한다. 글도 써야 하고 읽어야 한다. 하지만 비슷한 것은 당장 유행품처럼 버려지게 마련이고, 너무 가시가 많은 것은 아프고 성가셔서 가시가 잘리기 십상이다. 릴케의 장미의 순수를 이 시대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서트 코인>같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작품과 죽음에 대한 설 좀 풀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통은 한 편 한 편 생각을 읊어 가는데 이 단편집은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김영하도 그랬듯이 한 편으로 만족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