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은 죽었다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2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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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와카타케 나나미의 까칠한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두번째 작품이다. 첫번째 작품 <네 탓이야>에서 일어난 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단편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언니의 자살로 어울리지 않는 은둔 생활을 하던 중 전에 몸담고 있던 하세가와 탐정 사무소 소장의 부름을 받고 돈도 떨어진 터라 계약직 탐정으로 일하기로 한다. 나이 스물 아홉에 어딘가 정착을 하거나 장래 생각을 할 때도 되었건만 하무라는 발을 땅에 붙이고 사는 것이 무리라는 듯 빈곤하지만 자유로운 생활을 선택한다. 그런 그에게 들어오는 조사가 여전히 그에게는 트러블만 남기는 것 같이 느껴진다.  

계절별로 사건이 하나씩 일어나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맡은 사건들이 펼쳐진다. 처음 사건은 마지막 사건과 이어지는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짙은 감색의 악마>는 유명인이 된 여자를 스토커로부터 지켜주는 이야기인데 그녀를 지킨다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고 그 뒤에 누군가 있음을 하무라가 직감하면서 사건을 다시 파헤치는 이야기다. <시인의 죽음>은 친구 약혼자의 자살 이유를 알아내는 이야기다. 친구의 불행으로 친구가 신혼집으로 장만한 아파트에 방 하나를 공짜나 다름없이 얻어 살게 된 하무라는 그 뒤 공짜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람에게는 벗어나려 애를 쓰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가 있고 벗어나려고 애쓰는 시늉만 하면서 자기 위안으로 삼는 굴레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 한번은 벗어나고 싶은 굴레였다면 벗어나게 되는 모양이다. 그것이 어떤 식이 되든간에. 

<아마, 더워서>는 사건을 일으킨 여자 엄마가 의뢰를 하는 일이다. 직장에서 남자를 찌른 여자는 정신 병원에 갇혔다. 그녀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주간지 가십적인 문제였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었는지 하무라는 파헤치고자 한다. 사건은 왜 일어나는 것인지 그 근원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더운 여름이 지나서 다행이다. <철창살의 여자>는 서지학을 위해 인물의 정보를 모으는 대학생의 의뢰로 한 자살한 화가의 자료를 모으게 된 하무라가 그 작가의 은둔 생활과 자살, 그리고 하나의 그림에 의문을 가지면서 조사하게 되는 이야기다. 읽다보니 마치 조세핀 테이의 <진리는 시간의 딸>이 생각났다. 

<아베마리아>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실을 알아내달라는 의뢰를 받고 1년만에 탐정 일을 시작한 미즈타니가 하나의 살인 사건과 그 사건을 일으킨 여자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는 이면에 그의 크리스마스이브의 이야기이기도 한 작품이다. 겨울의 이야기들은 모두 이상하고 쓸쓸하고 왠지 서글프다. 그리고 차가운 공포의 여운을 남긴다. <의뢰인은 죽었다>는 친구의 친구에게 묘한 건강검진 결과가 왔다는 상담을 받고 가짜라고만 말해준 하무라는 며칠 뒤 그녀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책한다. 의뢰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있었다면 살았을텐데를 생각하며 하무라는 그녀의 자살을 조사한다. 건강검진 때문에 자살했다는 건 말이 안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여탐정의 여름휴가>는 하무라의 공짜를 싫어하는 성격으로 뜨악해하지만 그녀의 집주인인 친구 미노리가 의문을 풀어가는 이야기다. 탐정 친구 3년이면 준 탐정은 되는 모양이다. <내 조사에 봐주기는 없다>는 또 미노리의 엄마 친구의 공짜 의뢰다. 방값을 해야 하기에 또 맡는 하무라는 아무래도 정많고 의리 있는 친구다. 십년 전 친구의 자살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다. 그 친구의 죽음은 자살인지, 타살인지, 자살이라면 이유는 무엇인지 인정사정없이 하무라는 파헤친다. <편리한 지옥>은 맨 처음 사건에 등장한 이상한 남자가 등장해서 하무라가 알고 싶어하는 친구가 죽은 이유를 알려주겠다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주문한다. 알고 싶은 과거의 일과 현재의 주변 사람에게 일어날 일 가운데 어떤 것이 소중한 지, 그리고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마지막이 오싹한 작품이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죽은 이의 삶을 조사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 죽음은 극복하지 못한 하무라의 가정사에 원인이 있다. 죽은 이에대한 집착은 하세가와 소장의 말마따나 하무라가 언니의 자살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원인이 있을거라는 것이 끈질기게 조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것은 까칠하고 냉소적이며 쿨한 탐정이라는 하무라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기 때문에 더욱 가시를 세우고 살아가고 있는 인물인지 모른다. 학교때 왕따 경험도 있다니까. 

등장인물들은 살면서 만나면 짜증이 날만한 인물들이다. 그 주변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살아가는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만큼 죽는데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유가 있다. 하지만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사건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사는 게 지옥이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이 맞다는 걸 작은 일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가는 이런 작품에 능란해서 내 일상도 불안하게 만든다. 누가 알겠는가. 내 작고 소소한 일상도 사건이 숨어 꿈틀대고 있을지. 다음 작품이 기대되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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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 미스터리 야! 5
야나기 코지 지음, 안소현 옮김 / 들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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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책이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읽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 덕이다. 한마디로 별 사건은 없는데 아주 유쾌한 작품이다. 당시 시대 상황을 보면 재미있을만한 상황이 아닌데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가 그렇게 썼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유머러스하게 적고 있다. 

러일 전쟁을 벌이던 일본의 백년 전, 1905년이 작품 배경이다. 영어를 가르치지만 영어를 싫어하고 하이쿠와 가면극, 만담을 좋아하는 아주 별난 구사미가 나쓰메 소세키의 분신같은 선생님으로 등장하고 사건의 중심에 놓이게 되는 고양이가 이름도 없이 살고 있다. 여기에 화자인 '나'는 집안이 몰락해서 셋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선생님 댁에 서생으로 더부살이하게 된다. 이들과 선생님의 괴짜 친구들인 미학자인 한마디로 뻥쟁이 메이테이, 박사를 꿈꾸며 늘 이상한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는 간게쓰씨가 등장한다. 

각기 단편으로 이루어졌지만 별 다른 추리적이랄 것도, 사건이랄 것도 없는 이야기들이 펼처진다. 사건마다 늘 고양이가 관련되어 있고 서생이 탐정처럼 사건을 해결한다. 게으르고 신경질을 잘 내는 선생님은 귀찮은 일은 모두 서생에게 시킨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대화속에, 사건 이면의 사회속에 담겨 있다. 작품은 그 시대상을 잘 보여주며 읽는 내내 낄낄거리게 만든다. 

<나는 고양이가 아니다?>는 러일전쟁에 참가하는 군인들을 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시작은 선생님 댁 고양이가 쥐를 가로채는 도둑 고양이로 몰리면서 그 사연을 알아내는 것이었지만. 여기에 지식인의 고뇌가 담겨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반대할 수도 없어 바보처럼 굴기로 작정한 것 같은 모습이. 외아들을 전쟁터에 보내는 노모의 눈물을 오늘날 일본인들은 떠올리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그것보다 서민들은 쥐를 잡아 받는 돈이 더 중요했다는 사실은 각박한 현실은 언제나 소시민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는 이 또한 그런 이들일테고. 나쓰메 소세키를 돈에 넣으면 뭘하나? 반성없는 역사는 여전한데.
 
<춤추는 고양이>는 떡을 먹고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던 고양이와 그 고양이 친구 얼룩이의 죽음의 내막을 알아보는 이야기다. 그 시대 서양 문물을 마구잡이식으로 들여오고 비판없이 받아들인 것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들어 있다. <도둑과 '코’사랑>은 선생님 댁에 도둑이 들어 참마를 훔쳐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가네다라는 자본주의를 너무도 잘 받아들인 집안이 등장해서 선생님과 악연이 된다. <라쿠운칸 대 전쟁>은 정말 유치찬란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선생님도 이정도면 손발 다 들게 만드는데 라쿠운칸 학생들이 하는 야구를 전쟁이라 생각하고 날아드는 공을 덤덤탄이라 여기는 선생님의 모습은 접하지 않았던 문물에 대한 나이 든 사람의 반응과은 아이들의 반응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또 어쩌다 미국에서 온 비싼 야구용품으로 야구를 하게 됐는지도 참 어이없었다.  

<교풍 발표회>는 읽으면서 어린 시절 읽었던 전래 동화가 생각났다. 그 이야기의 시발점이 어딘지가 궁금해졌다. 내가 아는 이야기는 중국에서 잘난 사신이 왔는데 조선에서는 떡보를 내보내 중국(명인지 청인지는 모르겠다.) 사신이 하늘은 둥글다고 손으로 원을 그리자 떡보가 네모를 그리고 그걸 사신은 땅은 평평하다로 받아들이고 삼강을 아느냐고 손가락 3개를 폈더니 떡보는 손가락을 5개를 폈는데 그걸 사신은 오륜도 안다로 받아들여 학문이 대단하다고 느끼고 물러났다는 이야기다. 떡보야 가래떡을 아냐고 해서 인절미도 안다는 뜻으로 네모를 보여준 거고 3개까지 먹는다고 해서 자기는 5개도 먹는다고 한 거였다. 이 선문답이 일본에서는 메롱~까지 가니 포복절도했다. 우리 얘기보다 더 웃겼다. 정말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어쩌면 책을 읽는다는 건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봄바람이 부는 달밤에 고양이, 가출하다>는 그래도 고양이가 사라지자 고양이를 찾으려고 모두 애를 쓰는 모습이 고양이가 그 집에서 산 보람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원래 드는 자리는 몰라도 나는 자리는 안다고 있을 때 잘해줘야 하는 법이다. 뭐, 이 선생님께서 얼마나 기억할 수 있을지가 문제겠지만. 고양이가 가출할 이유를 그렇게나 자세히 기억하는 걸 보면 마음에 고양이가 있었던 거 아닐까 싶다. 제목은 멋있는데 내용은 사실 별거 없었지만. 

정말 내용이 별거 없고 말들이 자꾸 옆으로 새서 책을 덮자마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다. 이것을 정말 염두에 두고 나쓰메 소세키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썼다면 대단한 작가다. 그 대가의 작품을 똑같이 쓰면서 추리소설로 만든 야나기 코지도 대단하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다르게 읽기인지 아니면 색다르게 즐기기인지는 원작을 안 읽어서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캐릭터를 잘 묘사한 점은 높이 사고 싶다. 또한 그 시대를 잘 표현한 것도, 웃을 수 없는 상황을 웃음으로 풍자한 것도 좋았다. 가끔 보여주는 뼈 있는 말은 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한마디로 사건과 추리도 괜찮았지만 그보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참, 서생의 이런 외침이 들리는 듯 하다. '나는 서생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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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9-1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리뷰를 읽으니 이 책을 꼭 읽고 싶네요^^
나는 고양이다도 한번 읽어보세요.무척 재미있읍니다.

물만두 2009-09-15 10:15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그래볼려고 생각중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9-15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세키를 좋아하는지라 몇번 들었다 놓았는데 읽어야겠네요 ^^

물만두 2009-09-15 10:15   좋아요 0 | URL
재미있습니다^^
 
남의 일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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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작가의 작품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공포와 광기의 소품집이었다. 다른 작가에 비해 더 잔인하거나 그로테스크하지도 않았고 과도한 광기에 집착한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작가는 그저 적절하게 현대 사회의 모습을 어두운 쪽에서 그려냈을 뿐이다. 세상을 밝게 보는 건 동화책이면 충분하다. 로맨스 소설도 있다. 그러니 어둡게 보는 것도 있어야 균형이 맞는다. 그 작가가 이번에는 좀 더 의미심장한 제목인 <남의 일>이란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남의 일>은 교통사고를 당한 남녀가 사람을 발견하고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차에 다리가 끼어 운전석에서 나올 수 없는 남자와 다친 여자, 밖으로 튕겨져 나간 딸 아이를 걱정하는 모습과 그런 그들의 애원을 남의 일로 치부하고 도와주지 않는 남자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그들의 모습속에서 보이는 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자식 해체>는 자식이 커서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부모를 구타하는 지경에 이르자 자식을 살해하려고 모의하는 부부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남편은 돈 버느라 힘들게 살았다는 이유로 아내와 아들을 구타하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인물이다. 그정도는 누구나 하는 일이라고. 아내는 남편에게 맞고 살았는데 아들에게까지 맞고 산다고 한탄을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기막힌 반전이 마지막에 등장한다. 자식 해체가 아닌 가정 해체라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과 더불어 <정년 기일(忌日)>은 회사에서 정년 퇴직을 하자마자 부하직원들에게 그동안 자신이 그들에게 했던 것에 대한 앙갚음을 당하는 씁쓸한 퇴직자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렇게 맞고 도망치듯 나온 뒤 앞서 정년을 맞이한 친구를 만난 주인공이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더욱 놀랍다. 가정과 회사에서 모두 설 자리를 잃어버린 아버지들의 이야기와 그들 삶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역설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거기에 늘어나는 노인 인구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와 국가의 모습은 곧 우리에게도 닥칠 현실이라는 불안감을 안겨준다.
 
<딱 한 입에......>는 마치 스탠리 앨린의 <특별 요리>, 로알드 달의 <맛>, 던세이니의 <두 병의 소스>를 생각나게 만드는 작품이다. 한 노인이 자신의 딸을 유괴했다고 집으로 쳐들어 온다. 그 집은 요리 평론가의 집이다. 아내는 남편의 비평에 망한 요리사라고 생각한다. 역시나 남자는 자신의 요리를 남편이 맛보면 딸을 돌려보내주겠노라고 한다. 그리고 아내는 맛없는 그의 요리를 맛보고 남편이 혹평은 당연했다고 생각한다. 남편도 그의 음식을 맛본다. 그리고 딱 한 입에 알아낸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추리소설다운 작품이었고 마지막까지 오싹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포비아 소환>은 한 조직 폭력단에서 외국인 노인과 소녀에게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거나 말썽을 피운 사람들을 제거하는데 이용하는 이야기다. 소녀는 순식간에 사람을 넋 나간 사람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이것은 그녀가 인간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는 공포를 조종할 줄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자신이 두려워하는 끝없는 공포속에 갇히게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데 그런 공포를 이용하는 자들이 이미 세상에 너무 많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이 아닌 집단의 공포를 조종하고 악용하는 일 말이다. 

<레저레는 무서워>는 한 특별한 아이들만 다니는 사립 고등학교에서 레저레가 무서워서 자살하겠다는 편지를 받은 담임이 학교와 상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작품은 정말 우리 사회가 계급 사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게 하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하고 있는 계급으로 이미 나뉘어 버린 사회에서 무엇을 외치고 있는 것인지 나도 저 레저레가 무섭기만 하다. 

<인간 실격>은 인간이 어디까지 바닥을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살을 많잉 하는 다리에서 불치병에 걸려 자살하려는 여자와 동반 자살을 했다 자신만 살아 다시 자살하려는 남자가 만나 서로 먼저 자살하겠다고 한다. 자살 그 자체가 인간 실격일까? 아니면 자살을 구경하는 것이 인간 실격일까? 죽을 사람에게 장난을 치는 것은? 앞에서 등장한 <새끼 고양이와 천연가스>처럼 현실과 게임을 동일시하고 인간의 죽음, 살인은 남의 일이라고 만연된 생각이 남을 불행하게 만들고 남의 불행을 즐기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만 아니면 되고 나만 즐거우면 그만인 세상이니까.   

추리소설과 공포소설의 경계는 모호하다. 범죄라는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추리소설도 그 기반에 공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범죄 자체가 이미 공포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작가의 작품은 공포소설과 추리소설이 공존하는 범죄소설이고 개인적으로는 현대 사회를 통찰하게 하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대인의 심리적 공포는 그 사회에서 기인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현대 심리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작품들은 세상을 '나'위주로 살다가는 큰 코 다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 결코 아니고 '나'와 '남'은 결국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존재임을 각인시키고 있다. 공포란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사회의 문제점이 감춰져 있다가 썩어서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 등장하는 것이다. 그 형태는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만 결국 몇 가지로 요약된다. 가정의 문제, 사회가 가지고 있는 학교와 기업 등의 문제, 그리고 국가의 문제다. 가장 기본은 역시 사회의 최소 단위인 가정, 그 가정을 구성하는 가족의 문제로 돌아간다. 또한 그런 그들 가족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가 유입되어 유발된다. 그러니 어느 하나가 아닌 전체 시스템의 문제라 할 수밖에 없다.  

가족에게조차 공포를 느껴야 한다면 이 세상에 무섭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말이다. 가족의 무관심, 폭력, 냉대는 학교와 사회 생활을 하게 되는 조직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는 것이고 그것은 도돌이표처럼 끊을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시 돌아와 나를 망치고 남을 방관자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를 남으로 만들어 무관심을 확대하고 재생산한다. 현대 사회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공포가 문제가 아니라. 본질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작품을 볼 때 겉의 잔인함과 광기, 살인과 엽기적 발상을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그것이 표현하고자 한 것을 봐야 한다. 그것 자체가 <남의 일>을 남의 일이 아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은 무심한 눈길로 누군가를 그저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비켜 지나가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누군가 당신을 똑같이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나만 아니면 돼.'는 결국 '그러니까 너만 아니면 돼.'가 된다는 이기심이 공포인 것이다. 나는 곧 너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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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9-09-12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재밌나요? 왠지 기대되는데 책 표지가 너무 취향이 아니라 꺼리게 되더라고요.ㅠ ㅠ
저도 횡메르카토르 지도 재밌게 봤는데 이 작품도 꼭 봐야겠어요.^^

물만두 2009-09-12 10:16   좋아요 0 | URL
이 책이 전 더 재미있었습니다.
표지가 별로인 작품이 어디 이 작품뿐인가요?
이 작품은 그나마 양호하다 생각됩니다 ㅡㅡ;;;

세실 2009-09-12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잘 지내시죠?
요즘 통 근황을 몰라서 문득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동갑내기 친구의 우정이어요. 히~~

물만두 2009-09-12 15:55   좋아요 0 | URL
세실니임~ 방가방가요^^
님도 잘 계시죠?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시인의 계곡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0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0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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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를 처음 본 이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처음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 작품인 <블랙 에코>를 본 해는 2001년이었다. 그 뒤로 장장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인이 다시 등장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같다. 이런 절묘함이라니. 그런데 읽는 내내 나는 우울했다. 고독한 코요테 LAPD 해리 보슈는 은퇴한 사립탐정이 되어 있었고 5살짜리 딸을 둔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그가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동안 나는 그와 함께 할 수 없었다. 도대체 내 기억 속의 해리 보슈는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지. 이래서 시리즈는 제발 순서대로 출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해리 보슈가 등장하지 않는 <시인>의 후속작이기 때문에 연속성을 가지고 본다는 장점을 준다. 시인이라는 전대미문의 연쇄 살인범이 사라진지 8년만에 FBI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한 레이철 월링 요원에게 소포를 보낸다. 그리고 시인은 레이철의 뒤를 밟는다. 그 즈음 해리 보슈는 친구이자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전직 FBI 프로파일러 테리 매컬럽의 아내에게서 죽은 남편이 살해된 것 같다는 의뢰를 받는다. 해리는 친구를 살해한 살인범을 잡기 위해 그가 예전 사건을 조사하던 문서와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을 보다가 추적을 시작하는데 거기서 레이철과 조우하게 된다. 

라스베이거스에는 해리의 전처와 딸이 산다. 그리고 그곳으로 테리는 그를 인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미 그곳에서 많은 피해자들을 발견한 FBI가 진을 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 시신들이 있는 이유를 모른다. 그들이 어디에서 온 이들인지도 모른다. 삼각형의 한 점을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고 해리는 발견한다. 거기에서 해리와 자신이 단지 그들이 시인을 잡기 위한 유인물일뿐임을 알게 된 레이철은 해리와 함께 해리가 발견한 곳에서 시인의 자취를 찾아 나선다.   

전작 <시인>이 긴장감 넘치는 스릴을 선사했다면 이 작품은 짜임새있으면서 근원적인 악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마치 하나의 작품을 1부와 2부로 나눠서 작가가 1부에서는 범죄를 다루고 2부에서는 그 범죄의 이면을 다룬 느낌이다. 여기에 빈틈없고 물러서지 않는 해리 보슈의 노련함은 잘 어울린다. 그의 어린 딸이 세상의 악에 노출되기 전까지 순수함을 간직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해리는 어린 시절의 시인을 불쌍히 여긴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못박지만. 

크라임 스릴러에서 이렇게 탐정 추리소설로 작품은 변신을 한다. 하지만 변신을 해도 악마적인 연쇄 살인범 시인의 그림자는 늘 드리워져 있다. 거기에 시인이 찍은 테리 맥컬럽의 가족 사진과 해리 보슈를 아는 그의 모습에서 그의 딸 매디의 안위까지 걱정하게 만든다. 범죄의 공포는 픽션일지라도 무섭다. 하지만 이 점이, 가족이 등장하는 모습이 작품에 균형점을 찾게 해준다. 단순한 크라임 스릴러가 아닌 시인의 어린 시절 그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에게서 자랐다면 그의 모습이 지금과 다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서 가족과 사랑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생각해보면 시인이 왜 등장했는 지 알 수 있다. 시인의 성격을 안다면, FBI가 정치적인 면을 버렸다면 진작에 그의 타깃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작품은 전작 <시인>에 비하면 스릴은 적다. 하지만 그곳에서 느끼던 속도감 대신 이 작품에는 해리 보슈가 있다. 해리 보슈를 통해 전통적 추리소설의 맛을 현대에 잘 살려내고 있다. 시인을 해리 보슈가 상대하게 만든 것은 작가의 일종의 메시지다. 정치적으로 휘둘리고 자신들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무시하는 FBI의 능력으로는 많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거기에 마지막 반전까지 기막히게 잘 어울어지고 있다. 그 반전은 진정한 반전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해준다. 
 
이 작품은 해리 보슈라는 캐릭터만으로도 충분한 작품이기도 하다. 변함없이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친구의 살인자를 잡으려는 해리, 딸을 생각하고 예전 월남전을 생각하며 강에서 살아 남은 것을 기뻐하는 해리, 다시 경찰이 되기로 결심한 해리 보슈와 그가 선사하는 고독이. 천상 경찰인 해리 보슈는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혼자 파트너없이 다니던 그가 파트너를 원하게 되고 딸을 위해 전화로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들으며 딸에게 불러줄 생각을 한다. 여전히 그에게 세상은 어둡고 나이가 들어 희망적일 것도 없지만 그는 다시 천사 없는 천사의 도시로 돌아와 천사는 보이지 않는 거라는 딸의 말을 믿으려 한다. 그런 해리 보슈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한번 헐리우드의 코요태는 영원한 코요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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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향기 2009-09-1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가 제대로 출판되지 않을 때,,, 전 분노합니다 ㅠ ㅠ
읽기 힘들어요!!

물만두 2009-09-11 19:08   좋아요 0 | URL
전 워낙 많이 당해서 그러려니합니다.
이젠 화낼 기운도 없습니다 ㅜ.ㅜ

[그장소] 2013-08-03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순간에 집중하고 휘리릭 읽어버린 기억!!
 
실종증후군 증후군 시리즈 1
누쿠이 도쿠로 지음, 노재명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누쿠이 도쿠로는 <통곡>이라는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났다. 조금은 진부한 듯한 면이 있었지만 캐릭터에 대한 충실함과 휴머니즘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런 그의 대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증후군 시리즈를 읽게 되어 무척 기대했다. 시리즈 첫 작품은 이 작품 <실종증후군>이다. 실종이라는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썼을지 궁금했다. 

누구나 사라지고 싶을 때가 있다. 힘이 들때, 삶에 지쳤을 때,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을때, 위협을 느낄때. 하지만 대부분은 참고 산다. 하지만 가끔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이 사라지면 가출이라고 한다. IMF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어른 가출이 늘었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사라지면 찾기가 힘들게 된다. 이런 상황을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작가는 작품을 썼다.  

경찰청에 조금 특이한 인물이 있다. 다마키라는 남자인데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은데 자리를 자주 비워도 뭐라는 사람이 없고 속을 드러내지 않는 아주 비밀이 많은 남자다. 그에게 형사부장이 친척의 실종을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한다. 대학생의 자발적 실종같은데 찾을 수가 없다고. 이 평범한 부탁을 다마키는 중요한 사건을 맡는 것처럼 받아들인 이유는 그동안 실종 신고가 된 사건을 정리한 자료를 살펴본 뒤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기 떄문이다. 

그리고 그는 곧 자신의 비밀 팀원들에게 집합 명령을 내린다. 그들은 경찰에서 물러난 뒤 탐정 일을 하고 있는 하라다, 막노동을 하는 구리모치, 탁발승 무토다. 그들은 모여서 한 명씩 실종자들을 맡아 조사를 하기로 한다. 하라다는 자신이 찾아야 하는 학생의 자취를 찾아 다니다가 과격한 밴드 젠키를 따라다니는 팬들과 멤버들을 만나는데 그들과 한창 반항중인 자신의 딸이 관련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작품은 일본 젊은이들의 자발적 실종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이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 대해 안타까운 시선을 보낸다. 부모가 조금만 이해를 해주고 자신의 바람과 자식의 꿈이 다를 때 자식의 꿈을 좀 더 믿어주고 밀어줬다면 좋았을 텐데 언제나 그렇듯 부모의 기대는 너무 높고 자식은 그 기대에 짓눌리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결국 그런 일들이 쌓여 자기 안에 주체할 수 없는 폭력성을 기르고, 사회에 대한 반발과 반항심만 키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지키지 않는 도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니 아이들이 그것을 들을리 만무고 자신들은 잘못하면서 아이들에게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니 아이들의 일그러진 모습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모습이다. 사회가 빚어낸 다음 세대인데 지금 세대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자신들의 잘못도 모르고 반성도 못하는데 다른 사람의 미래를 알 턱이 없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과 같은 모습의 세대일 뿐이니까. 

무엇보다 작품 속 사건을 쫓으면서도 하라다 일가의 가정 문제를 포함시켜 현대 가정의 문제점을 생각하게 한 점은 좋았다. 어느 날 착하기만 하던 자식이 대화를 거부하고 전혀 다른 남이 되어 버린다. 부모는 이유를 추측만 할 뿐 모른다. 자식은 말을 하지 않고 부모는 들을 기회가 없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대화는 미뤄지고 그러다가 골은 깊어져 벼랑끝으로 몰린다. 자식의 자살이라는. 여기에서 작가는 말하고 있다. 부모도 자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지 않으려 하지만 자식 또한 마찬가지라고. 그래도 방법은 대화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 이해밖에는 없다고. 부모와 자식 모두 바라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의 아쉬운 점은 작품의 결말이 그야말로 실종되었다는 데 있다. 물론 그 자체가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이라 생각되서 이해는 가지만 하라다의 딸이 가지고 있던 것과 문제의 발단이 된 인물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 또 다른 궁금증을 자아낸다. 자발적 실종이니 찾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나저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방법의 자발적 실종이 실현 불가능하니 일본의 실생활 문화에 대해 우리와 다른 점을 또 한가지 알게 되었다. 
 
단순한 플롯의 전개로 일관하고 있지만 각각의 캐릭터의 묘한 매력과 자발적 실종이라는 사회 문제에 대한 한발 앞선 문제 제기가 작가만의 개성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작가가 사회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마치 다마키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보여주려 자제한 점을 높이 사고 싶다. 해결점이 없는 자발적 해결이 필요한 문제고 사회와 개인의 인식이 함께 달라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다는 듯이 하라다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표현하고 있다. 이런 점이 평범해보이는 작품을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아마도 이것이 이 작품 최대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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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9-04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설이던 작품인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

물만두 2009-09-04 11:18   좋아요 0 | URL
좀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여운은 남는 작품입니다.

순오기 2009-09-04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여전히 즐독하시는군요.
가을바람이 산들 불어오는 저녁나절~~~ 좋아요.^^

물만두 2009-09-04 20:0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방가방가요^^
저는 방콕족이라 바람이 부는지는 잘 모르겠고 신종풀루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핑크팬더 2009-09-09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곡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물만두님의 리뷰을 읽어보니 이작품도 끌리는군요.(믿거나 말거나 반전을 중간에 눈치채고 말았지만요. ㅡ.ㅡ;;) 사가와택배의 도를 지나치는 불친절함에 알라딘을 그만 떠나려 했는데 물만두님 때문에 떠나지를 못하겠네요. 뭐 다음에 주문할때는 우체국 등기로 주문하면 되지만요. 아무튼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세요~

물만두 2009-09-09 19:21   좋아요 0 | URL
반전은 저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좋았습니다. 이 작품도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그장소] 2013-08-03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쿠이 도쿠로, 책이 무겁지만..난반사..통곡..신월담..자꾸 손이 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