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문 베이 연쇄살인 우먼스 머더 클럽
제임스 패터슨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제임스 패터슨의 우먼스 머더 클럽 네번째 시리즈 작품이다. 세번째 작품에서 네 명의 주인공 중 한명인 질을 잃어버린 일이 어떻게 수습될까 생각했는데 역시 또 다른 인물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변호사다. 작품은 두 가지 사건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그 사건들의 성격이 전혀 다르게 진행된다. 하나는 법정 스릴러로, 다른 하나는 연쇄 살인 사건을 쫓는 범죄 스릴러로. 

우선 시작되는 법정 스릴러는 안타깝게도 계속되는 십대 소년들의 살인 사건과 '아무도 신경 안 써.'라는 문구때문에 더 신경이 쓰여 비번임에도 파트너의 요청으로 함께 용의자를 쫓던 중 운전자가 두 명의 십대 남매라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도와주려던 린지와 그의 파트너 제코비가 그 어린 살인범들의 총에 맞고 반격하는 과정에서 누나는 죽고 남동생은 크게 다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이 왜 법정 스릴러라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느냐 하면 그들의 부모가 경찰을 고소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나쁜 경찰도 있고 착한 경찰도 있다. 세상에는 억울하게 경찰에게 당하는 선량한 시민도 있고 범죄자도 있다. 범죄자를 무조건 총을 쏴서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찰도 인간이기에 범죄자에게서 자신의 생명 방어가 기본이라는 이야기다. 경찰이라고 목숨을 내놓고 범죄자를 잡으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일단 경찰이 쏜 총에 맞았다고 보도가 나가면 경찰은 나쁜 인간이 된다. 살인을 즐기는 미친 범죄자가 아닌 다음에야 아무리 정당방위라고는 해도 어린 아이에게 총을 쏘고 싶은 경찰은 없을 것이다. 이런 난김한 일을 겪게 된 린지를 돕기 위해 변호사 유키 카스텔라노가 나선다. 

또 다른 사건은 집을 떠나 동생 집이 있는 해프문 베이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던 린지는 자신이 십년 전 미해결한 사건과 유사점을 보이는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신원미상 피해자가 늘 마음에 남았던 린지는 이 사건을 조사하기에 이르는데 누군가 그녀를 감시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도대체 살인범들은 무엇 때문에 사건을 저지르고 피해자들은 왜 피해자가 된 것인지 알기 위해, 범인을 잡기 위해 린지는 과감하게 사건에 뛰어든다.  

법정 스릴러는 긴장감 넘치게 진행된다. 아무리 범죄자라해도 미성년자에게 총을 쏜 것이고 린지 자신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 변호사는 아이들이었다는 점과 피해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배심원들에게 동정표를 구하고 린지쪽 변호사는 린지의 정당방위와 그녀가 좋은 경찰이었음을 내세워 일진일퇴하며 아슬아슬하게 이어간다. 린지의 경찰 생명이 이 재판 결과에 달렸으니 보는 이도 마음 졸이게 만든다. 

한편 해프문 베이에서는 범인들이 사건을 일으키고 다니는 것을 독자에게 알려주지만 마지막 반전으로 그들은 남겨둔다. 여기에서 법정 스릴러와 범죄 스릴러가 어떻게 이어지는 가를 보여준다. 하나의 범죄는 하나로 끝나지 않고 다른 범죄로 점점 넓혀진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악의 씨앗 하나가 꽃을 피워 많은 악의 씨앗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또 복수와 증오와 광기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고 한번 경계를 넘은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린지 박서는 쿨한 경찰이다. 범죄자의 범죄 동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경찰은 응당 그래야 한다고 작가가 표준을 제시하는 것만 같다. 경찰은 범죄자를 잡는 일만 하면 된다. 그 이상까지 깊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 그런데 왜 신원 미상 피해자의 미해결 범죄에는 그렇게 신경을 쓴 걸까? 단지 해결하지 못해서라면 너무 단순하게 느껴진다. 피해자의 사연과 피해자와 가해자의 기준이 점차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범죄자의 범죄 이유까지 듣고 공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떤 면에서는 드라마처럼 느껴지지만 어떤 면에서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오히려 절제하고 경찰의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에. 

아이들이 살인을 하나의 게임으로 여기고 다니는 세상, 아이들이 위험에 처해도 구해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이 작품은 그런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아니다. 경찰의 사건 해결이 가장 주된 목적이고 범죄자는 반드시 잡아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는 원론에 입각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라면 무엇이든 가능하고 걸리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해도 좋다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범죄자의 이야기에 린지가 좀 더 귀를 기울이는 자세였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신경 안 써.'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건이 다 해결되고 새로운 멤버가 들어와 이제 우먼스 머더 클럽은 제 2기를 맞이한 기분이다. 쿨한 경찰 린지 박서와 그의 친구들의 모습이 이제 조금씩 내 눈에 남는다. 처음보다 작품 보기가 참 좋아져서 다행이다. 법정 스릴러와 범죄 스릴러를 동시에 보고 싶다면 이 작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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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자를 믿지 말라 스펠만 가족 시리즈
리저 러츠 지음, 김이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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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달콤 살벌한 스펠만 가족이 돌아왔다. 전작 <네 가족을 믿지 말라>를 읽고 기대하던 작품이다. 여전히 독특하고 개성적 매력을 발산하고 있지만 처음의 신선함과 발랄한 엽기에는 좀 면역이 된 듯 싶다. 뭐, 놀랍지 않다는 얘기다. 오히려 예방 주사를 한 방 맞고 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자벨의 스토킹이나 레이의 살인 미수 사건보다 그들이 그런 일 와중에 변화하는 모습이 더 새롭게 느껴졌다. 레이의 순한 양이 된 듯한 모습이라니. 어찌 전작에서 이런 발전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내가 레이 부모 스펠만 부부라면 레이를 헨리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양녀로 보내거나 아니면 더 아주 미안하지만 이자벨과 어떻게든 가짜가 아닌 진짜 약혼을 시켜 가족으로 만들겠다. 그들에게는 정말 헨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실 헨리도 그다지 아주 싫은 것 같지는 않다. 

스펠만 가족 중 특히 이자벨의 집착은 남다르다. 그 남다름때문에 유치장에서 독자와의 두번째 만남을 시작한다. 죄목은 이자벨이 괴롭히는 중인 이웃 존 브라운이 신청한 접근금지를 어겼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자벨은 왜 그의 이웃 존 브라운을 의심하는 것인지 이제 이야기는 시작된다. 스펠만 가족이 이자벨만 이상한 건 아니다. 사실 경찰 아저씨 헨리 스톤을 따라다니다가 운전 연수를 배우는 사이가 된 레이가 헨리를 차로 치어 살해할 뻔한 사건도 있었고 아버지의 우울증과 엄마의 밤 나들이에 대한 미스터리도 수상하다. 여기에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던 오빠 데이비드까지 엄마와의 사이에 금이 가고 망가진 모습으로 두문불출하게 되니 이 가족의 문제점 해결이 사건의 핵심인지 존 브라운의 미스터리가 사건의 핵심인지 파악하기도 힘들어진다. 

작품은 이자벨이 유치장에서 벗어나 모트 변호사 할아버지에게 그간의 경위를 낱낱이 밝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모트와의 대화, 레이와 헨리의 대화를 녹음한 일명 라디오쇼, 부모님의 행방불명(이 가족에겐 휴가가 행방불명, 가출이 휴가다.)때 보낸 이메일과 그 사이사이 존 브라운을 왜 의심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름이 너무 흔해서 의심스럽고, 집에 있으면서 방문을 잠가 두기 때문에 의심스럽고, 종이를 찢어서 버리기 때문에 의심스럽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 의심스럽다는 것이 이자벨이 그를 추적하는 이유다. 하지만 내가 존 브라운이면 이자벨이 더 의심스럽겠다. 직업도 사설조사원에 나이는 서른인데 열다섯살 동생과 싸우기나 하니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울 것 같다. 

작가는 이런 미스터리를 하나하나 작은 에피소드로 엮어 풀어간다. 그 작은 에피소드가 모여 큰 이야기가 되고 그런 이야기들이 결국 인간의 인생을 이룬다고 보여준다. 또한 과거는 결코 지난 일이 아니며 현재 진행중일 수도 있다는 점도 알려준다. 이자벨도 자신의 과거가 레이를 통해 되풀이 되는 것, 자신의 모습을 동생이 답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나이 서른 헛먹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아웅다웅하지만 서로가 위태로울 때 걱정해주는 모습은 이 시리즈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이 작품의 등장 인물 중 가장 평범한 인물은 헨리 스톤 경위다. 어쩌다 스펠만 가족과 엮여서 생고생중이다. 그런데 이 헨리 스톤이 스펠만가에 변화를 가져온다. 의심과 도청, 기싸움으로 일관하던 이들에게 가족이 가져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먼저 자리잡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그들에게는 축복 그 자체인 인물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들 모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자신의 남자친구 후보인 이웃 존 브라운을 의심하느라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의 미스터리를 늦게, 그리고 왜곡해서 알게 되는 이자벨 또한 후회와 반성과 함께 서른에 달라지려는 모습을 보인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것이라 생각한다. 제목 '네 가족을 믿지 말라'와 '네 남자를 믿지 말라'는 스펠만가에게는 반어적 표현이다. 하지만 책 내용에서 보면 아주 적절하고 타당한 제목임을 알게 된다. 모든 키는 정말 존 브라운이 쥐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심각하게 다른 작가들이 썼을 내용을 심각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 유머 가운데 진실과 사회를 바라보는 냉철한 시각이 있다. 점점 작가의 작품을 웃음만으로 보게 하지 않는 작가의 진화가 놀랍기만 하다. 2년 반이 지난 뒤 이자벨과 헨리는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그리고 사과는 그때그때 하는 것이 좋다. 미루면 괴로움만 커진다. 스펠만 가족 이야기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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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총새의 숲 살인사건 미스터리 야! 4
아시하라 스나오 지음, 김주영 옮김 / 들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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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없는 인간은 없다. 문제없는 가정이 없기 때문이다. 작던 크던 우리는 늘 자기만의 문제를 가지고 살아 간다. 여기 한 여자가 자신의 젊은 날에 묻어 두었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어려서 아버기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나가 버린 뒤 애늙은이가 되어 책만 읽고 달리기는 걸 그저 좋아하던 구와야마 미라가 글로 당시를 이야기한다. 그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 

남자같은 아이 미라에게 한 소녀가 다가온다. 이름은 사기리, 부잣집 외동딸인데 미라가 좋아서 전학을 왔다고 한다. 황당하지만 미라는 그녀와 친구가 된다. 그런데 어느날 그녀를 재수없게 생각하던 학교 불량소녀들과의 싸움을 목격하게 되는데 거기서 사기리의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을 보고 의문을 가지게 된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여고생들의 이야기라 할만 하다. 무언가 고민이 있는 것 같은 친구, 자신과 다른 친구의 집안과 자신의 집안을 비교하지만 기죽지 않고 어울리는 모습, 우정을 쌓아가고자 첫발을 내딛는 아이들의 모습은 밝고 경쾌하기만 하다. 그 어디에서도 어두운 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기리의 폭력성으로 찾게 된 그녀의 대저택에서는 그녀의 이모이자 계모가 사기리가 태어날 때 쌍둥이였는데 쌍둥이 오빠가 사산되고 엄마가 직후에 죽은 것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자기 안에 오빠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니까 폭력적인 모습이 나올때는 마치 이중인격이 있는 것처럼 사기리의 쌍둥이 오빠라는 것이다. 사실인지 고민을 하는데 사기리의 할머니는 집안의 내력을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집안이 망할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하며 사기리를 부탁한다. 집안 모든 사람들이 이상하게 미라에게 사기리를 부탁하고 있다. 참 묘하고 이상한 집안이지만 너무 다른 수준 차 때문에 어안이 벙벙하던 것도 잠시 여름 방학에 별장으로 놀러갔다가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제 후반부는 추리소설의 면모를 드러내며 작품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마치 인간에게는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고 소설에도 청춘소설과 추리소설이 공존할 수 있다고 보여주는 것 같은 작품이다. 초반부의 경쾌함에 넋놓고 있다가는 후반부를 순식간에 지나치게 된다. 작가는 여기에서 템포 조절을 하는 것 같다.  

물총새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을 감상하다 먹이를 잡기 위해 물 속으로 빠르게 뛰어들어 순간적으로 먹이를 낚아채듯이 말이다. 미라는 물총새를 보러 갔다가 물총새를 본 값을 톡톡히 치른다. 엄마와 자신을 버린 아빠가 사준 책에서 본 물총새라는 이야기는 그녀의 내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물총새가 사는 숲에 별장을 가진 부유한 집안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이라는 아이러니한 면도 보여준다. 물총새는 가족에 대한 상징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미라에게는 눈을 뜨게 하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제목이 왜 '물총새의 숲'인지 잘 표현하고 있다. 

작품은 에드거 앨런 포가 포인트임을 미리 이야기하고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연쇄 살인 사건은 순식간에 일어나 주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고 경찰을 혼란에 빠트려 차분히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독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설령 독자가 범인이 누군지 알았다 하더라도 에드거 앨런 포를 다 읽지 않았다면 알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이 작품 이전에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집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추리 소설의 아버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가지고 살인 사건을 벌이는 범인, 그 범인은 너무 늦게 알게 되는 미라, 한 집안의 문제가 오랜동안 수면 아래 잠자고 있다가 한순간 대폭발을 하듯 벌어지는 한가운데서 비밀은 결국 드러나고 만다. 너무도 충격적인 결말로. 에드거 앨런 포스런 공포와 정신 문제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단순하지만 강렬하게 작가가 에드거 앨런 포를 담아내고 있어 읽어볼 만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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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10-1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읽어 볼 걸 그랬습니다.

물만두 2009-10-13 11:57   좋아요 0 | URL
제가 침바른 작품에 그러시면 아니되옵니다^^
 
흔들리는 바위 - 영험한 오하쓰의 사건기록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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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는 사회파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다. 처음 읽은 그의 작품 <화차>에서 <이유>, <모방범> 등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런 그가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쓴 작품은 사회파나 미스터리와는 좀 다른 일종의 기담집, 전설이나 요괴 이야기의 단편집이 많았다. 하지만 그 가운데 장편 작품은 그 시대의 미스터리와 사회의 문제점을 작가 나름의 식견을 가지고 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좋은 예가 <외딴집>이다.  

처음 이 작품의 제목과 부제처럼 쓰인 '영험한 오하쓰의 사건기록부'라는 말에서 단편집인줄 생각했다. 교고쿠 나츠히코처럼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요괴 이야기나 괴담을 미스터리 사건으로 풀어낸 것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일본의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한다. <미미부쿠로>란 기담집에 움직이는 바위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가 두 가문  사이의 칼부림과 그로인해 한 가문이 몰락하고 무사들이 주인을 위해 난을 일으켜 몰살당했는데 그 집안에 있던 바위가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는 기이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그 사건 이면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작가가 상상하여 만든 작품이다. 

그 이상한 사건인 겐로쿠시대 아사노가와 기라가의 사건이 일어난지 백년이 흐른 1802년이 이 작품의 배경이다. 한 가난한 초를 파는 장사가 갑자기 급사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런데 그의 장례를 치르려는 순간 그가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와 친하게 지내던 이웃은 그를 피한다. 또 다른 곳에서는 오하쓰라는 16세 소녀가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듣는 영험한 능력을 타고난 아이다. 그런 이유로 남쪽 행정 부교와 가까워 그의 의뢰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는데 이번에도 기이한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죽은 자의 몸에 사는 시비토쓰키인지 사령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일이다. 여기에 심문관 요리키의 아들 우쿄노스케를 달고 다니게 되었다. 

사건을 조사하고 오다가 오하쓰는 기름통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그곳에 어린 아이가 빠져 있는 것이다. 이 사건과 상관없이 오랜 무사 가문의 뜰에 있는 바위가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러 가게 된다. 거기서 오하쓰는 백년전 사건 속 모습을 느끼게 되고 한 무사가 걱정하며 부르는 이름을 듣는다. 계속 사건은 일어나는데 원인을 알 수가 없어 초장수의 변사 사건에서부터 조사를 다시 하면서 급기야 백년전의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난감한 일은 이런 이야기는 오캇피키인 오하쓰의 오라버니 로쿠조와 새언니, 그리고 부교님만이 아는 능력인지라 일반 사람들에게 사건 자체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리 시대가 괴담을 믿기 좋아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을 사령이 죽였다고 증명할 수 없는 일을 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난감하기만 하다. 여기에 사령을 어떻게 할지도 더더군다나 알 길이 없으니 막막하기만 하다. 

읽을 수록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지고 잔인한 사건 이면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작가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역사가 어떻게 왜곡되고 한번 왜곡된 역사는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하지만 왜곡된 진실 속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 구천을 떠돌겠느냐고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주신구라가 이런 일본 역사적 사건에서 만들어진 연극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연극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극적이고 흥미진진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기만을 바란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도 우리가 가는 길이 어쩌면 왜곡된 역사를 무심코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또한 인간의 나약한 마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사령이 몸을 지배하게 만든다는 것은 마음에 병이 든다는 것이다. 마음에 병이 든 자는 무슨 짓이든지 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집념은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많은 무명씨들이 자신들의 작은 삶마저 지켜내지 못하고 살다 갔을 것이다. 그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한이 쌓여 역사를 만들고 야사를 만들고 괴담과 연극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그 속에서 미래를 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이들의 소박함을 깨지 말고, 그런 이들의 삶이 억지춘향이 되지 않도록 역사를 통해 오늘과 내일이 더 나아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이고 그 필력의 한계가 과연 있을지가 의문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다. 글 한 줄에서 이런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전에도 기이한 초자연적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을 썼었다. <마술은 속삭인다>와 <크로스 파이어>는 현대물로서 초자연적 힘을 가진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들 작품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된다. 이유는 역사의 이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회의 이면을 조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다. 역시 미야베 미유키는 대단히 놀라운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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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9-10-09 1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새삼스러운 이야기를....매번 놀라는 작가지요.
전 심지어 외딴 집을 2권부터 봤는데도 그게 2권인지를 몰랐어요.흑흑

물만두 2009-10-09 19:25   좋아요 1 | URL
읽으면 읽을수록 놀란다는 얘기지요.
그렇게 많은 작품이 나오고 읽었는데 놀라기가 쉽지 않잖아요^^
파비아나님 추석 잘 보내셨죠?
뻘쭘 인사드리네요.
 
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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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경찰이 현장 감식을 하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헐리 반장은 시건에 투입된 심리분석관 라일라 스펜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그녀의 등장은 흥미롭다. 그리고 정직 경찰 매코이가 등장한다. 어딘가에서 잠이 들었다 깬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준다. 악랄한 연쇄 살인범 데니스 코헨을 잡다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아직도 심리 상태가 불안정하고 머리 속 총알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만 복직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사건에 단순 참관자 정도의 자격이 주어진다. 총도 뱃지도 없지만 그는 받아들인다. 사건이 점차 연쇄 살인 사건이 되어 가면서 데니스 코헨의 사건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늘 의심했다. 정말 그가 죽었는가를. 그는 그자가 살아있다고 믿고 그를 잡으러 독자적 행동에 나선다. 여기에 서서히 드러나는 라일라의 또 다른 모습까지 사건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범인은 찾을 길이 없고 경찰들은 서둘러 사건을 해결하려고 애를 쓰기만 하는데 성과는 없는 날들이 이어진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탐정 포와로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작품인 <커튼>에서 자신의 손에는 피 한방울 안묻히고 다른 사람의 내면에 숨어 있는 살의를 자극해서 살인을 유도하는 범죄자가 등장한다. 이 작품은 그 작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살인으로 죄책감이 들어 자살을 하거나 살인을 하게 만들고 있다. 연쇄 살인이 다중 살인으로 번지는 것이다.  

작가는 하나의 사건이 이유없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연쇄 살인범도 추악한 범인이지만 피해자를 피해자로 만든 것은 그들 주변의 인물들이 아니냐고. 죽는 것만 못한 삶을 살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 차라리 죽는게 나은 삶도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자는 피해자를 웃는 표정을 짓고 죽음을 맞이하게 만들었다. 기괴한 표정.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입은 웃고 있는 그로테스크함. 어쩌면 이것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도시를 감추고 있는 안개처럼. 

크리스 매코이는 독자적으로 범인을 쫓는다.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찰은 그를 믿지 않는다. 여기에 그를 쫓고 감시하는 이들이 있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오로지 라일라 스펜서만이 그를 믿어준다. 그리고 그의 심리 상담을 해야 하는 그가 오히려 그에게 상담받는 결과가 된다. 또한 크로스워드 퍼즐에서 범인이 단서를 남겨 살인을 예고함을 아는 것도 크로스워드 퍼즐을 즐기는 매코이다. 크로스워드 퍼즐은 작품 속에 독자도 풀어보라고 나온다. 예고 살인격인데 그 방법이 괜찮다. 작가가 나름 고심한 면이 엿보이는 소재라고 생각된다.  

작가 이정명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역사적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재로 팩션을 쓴 작가다. 그의 팩션은 참 좋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현대 범죄 소설을 들고 왔다. 배경은 뉴아일랜드. 침니랜드의 바닷가에 있던 바위에 만든 인공 섬이다. 사람들은 침니랜드에 사는 못사는 사람들과 뉴아일랜드에 사는 잘사는 사람들로 나뉜 곳이다. 바닷가라 안개가 많이 끼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 안개의 도시에 대한 묘사가 좋다. 주인공의 마음을 안개로 대변한 느낌은 마음에 들었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인간의 심리와 모든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 그리고 숨겨지고 감춰진 진실을 찾는 것이 이 작품이 주는 매력이다. 안개가 끼었다 걷혔다 하는 것처럼 보일듯 말듯한 느낌을 작가는 잘 표현하고 있다.  

이중 인격이 등장하고 기억상실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도시 개발에 대한 부와 권력 비판, 범죄 피해자에 대한 관심과 그들의 트라우마에 대해 인식, 경찰 조직 자체에 대한 문제점 지적 등 다양하게 사회적 문제와 추리소설로서의 트릭, 스릴있는 반전까지를 담아내기에는 다소 작품이 짧다. 좀 더 길어서 세밀하게 묘사하고 긴장감을 더욱 확실하게 고조시켰더라면 더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작가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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