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의뢰인은 죽었다 ㅣ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2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와카타케 나나미의 까칠한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두번째 작품이다. 첫번째 작품 <네 탓이야>에서 일어난 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단편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언니의 자살로 어울리지 않는 은둔 생활을 하던 중 전에 몸담고 있던 하세가와 탐정 사무소 소장의 부름을 받고 돈도 떨어진 터라 계약직 탐정으로 일하기로 한다. 나이 스물 아홉에 어딘가 정착을 하거나 장래 생각을 할 때도 되었건만 하무라는 발을 땅에 붙이고 사는 것이 무리라는 듯 빈곤하지만 자유로운 생활을 선택한다. 그런 그에게 들어오는 조사가 여전히 그에게는 트러블만 남기는 것 같이 느껴진다.
계절별로 사건이 하나씩 일어나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맡은 사건들이 펼쳐진다. 처음 사건은 마지막 사건과 이어지는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짙은 감색의 악마>는 유명인이 된 여자를 스토커로부터 지켜주는 이야기인데 그녀를 지킨다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고 그 뒤에 누군가 있음을 하무라가 직감하면서 사건을 다시 파헤치는 이야기다. <시인의 죽음>은 친구 약혼자의 자살 이유를 알아내는 이야기다. 친구의 불행으로 친구가 신혼집으로 장만한 아파트에 방 하나를 공짜나 다름없이 얻어 살게 된 하무라는 그 뒤 공짜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람에게는 벗어나려 애를 쓰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가 있고 벗어나려고 애쓰는 시늉만 하면서 자기 위안으로 삼는 굴레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 한번은 벗어나고 싶은 굴레였다면 벗어나게 되는 모양이다. 그것이 어떤 식이 되든간에.
<아마, 더워서>는 사건을 일으킨 여자 엄마가 의뢰를 하는 일이다. 직장에서 남자를 찌른 여자는 정신 병원에 갇혔다. 그녀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주간지 가십적인 문제였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었는지 하무라는 파헤치고자 한다. 사건은 왜 일어나는 것인지 그 근원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더운 여름이 지나서 다행이다. <철창살의 여자>는 서지학을 위해 인물의 정보를 모으는 대학생의 의뢰로 한 자살한 화가의 자료를 모으게 된 하무라가 그 작가의 은둔 생활과 자살, 그리고 하나의 그림에 의문을 가지면서 조사하게 되는 이야기다. 읽다보니 마치 조세핀 테이의 <진리는 시간의 딸>이 생각났다.
<아베마리아>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실을 알아내달라는 의뢰를 받고 1년만에 탐정 일을 시작한 미즈타니가 하나의 살인 사건과 그 사건을 일으킨 여자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는 이면에 그의 크리스마스이브의 이야기이기도 한 작품이다. 겨울의 이야기들은 모두 이상하고 쓸쓸하고 왠지 서글프다. 그리고 차가운 공포의 여운을 남긴다. <의뢰인은 죽었다>는 친구의 친구에게 묘한 건강검진 결과가 왔다는 상담을 받고 가짜라고만 말해준 하무라는 며칠 뒤 그녀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책한다. 의뢰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있었다면 살았을텐데를 생각하며 하무라는 그녀의 자살을 조사한다. 건강검진 때문에 자살했다는 건 말이 안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여탐정의 여름휴가>는 하무라의 공짜를 싫어하는 성격으로 뜨악해하지만 그녀의 집주인인 친구 미노리가 의문을 풀어가는 이야기다. 탐정 친구 3년이면 준 탐정은 되는 모양이다. <내 조사에 봐주기는 없다>는 또 미노리의 엄마 친구의 공짜 의뢰다. 방값을 해야 하기에 또 맡는 하무라는 아무래도 정많고 의리 있는 친구다. 십년 전 친구의 자살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다. 그 친구의 죽음은 자살인지, 타살인지, 자살이라면 이유는 무엇인지 인정사정없이 하무라는 파헤친다. <편리한 지옥>은 맨 처음 사건에 등장한 이상한 남자가 등장해서 하무라가 알고 싶어하는 친구가 죽은 이유를 알려주겠다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주문한다. 알고 싶은 과거의 일과 현재의 주변 사람에게 일어날 일 가운데 어떤 것이 소중한 지, 그리고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마지막이 오싹한 작품이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죽은 이의 삶을 조사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 죽음은 극복하지 못한 하무라의 가정사에 원인이 있다. 죽은 이에대한 집착은 하세가와 소장의 말마따나 하무라가 언니의 자살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원인이 있을거라는 것이 끈질기게 조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것은 까칠하고 냉소적이며 쿨한 탐정이라는 하무라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기 때문에 더욱 가시를 세우고 살아가고 있는 인물인지 모른다. 학교때 왕따 경험도 있다니까.
등장인물들은 살면서 만나면 짜증이 날만한 인물들이다. 그 주변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살아가는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만큼 죽는데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유가 있다. 하지만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사건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사는 게 지옥이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이 맞다는 걸 작은 일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가는 이런 작품에 능란해서 내 일상도 불안하게 만든다. 누가 알겠는가. 내 작고 소소한 일상도 사건이 숨어 꿈틀대고 있을지. 다음 작품이 기대되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