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님과 나
우타노 쇼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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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주인공이 마흔네살이나 먹은 히키코모리라니. 여기에 여동생이라며 인형하고 대화를 나누고 어린 여자 아이를 좋아하는 롤리팝이라고 하니 원 앞으로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고 그다지 개운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작품은 이런 신토 카즈마라는 볼품없는, 아니 이 나이에 부모에게 얹혀 살며 가끔 부모를 폭행까지 하는 인물이 열두살의 어린 여학생을 만나 그 어린 아이가 하자는데로 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다가 그녀의 친구들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녀를 지키기 위해 범인을 밝혀내기 위해 애를 쓴다. 

처음 만난 여자 아이에게 조련당하듯이 끌려 다니는 남자와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는 어린 아이의 조화가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엽기적으로 보였다. 픽션이니까도 한계가 있는 것이고 현실이라고 해도 좀 이상할 상황인데 어느날 갑작스러운 상황은 불쑥 처음부터 등장하는지라 원래 이렇게 시작하는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이 작가의 힘이지 싶다. 뭐, 따지고 보면 뜬금없기로는 동화 속 이야기들도 만만치않으니까 말이다. 허구란 원래 그런 것이니 더 허구적이면 어떠랴 싶은 생각마저 나중에는 들게 만든다. 

세상에는 별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게 이상한 사람이 많다. 마흔네살에 인형을 여동생이라 생각하며 대화하는 이는 정상이 아니다. 열두살짜리가 어른에게 롤리팝을 길들인다고 끌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다. 등장하는 모든 이들의 상황이 비정상적이다. 그런데 왜 완벽한 허구라는 생각이 안드는 걸까?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작품이라고 일본에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은 모두 거기서 거기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가 꿈꾸는 환상적 낙원이 허상이었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아서. 

히키코모리의 마흔네살 먹은 남자가 탐정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원빈같은 아저씨만이 어린 소녀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 의도가 어떤지 노리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본인은 순수함을 강조하지만. 그래서 그가 오히려 범인으로 몰리는 상황이 되자 불쌍하게까지 느껴졌다. 주인공의 모습만으로, 그의 평소 행동만으로 그가 저지르지 않은 죄를 물을 수는 없는 거니까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세상은 이 남자를 어떻게 바라볼까? 이 작품과 같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편견이란 무서운 것이다. 자신에게도, 사회에게도.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세상 이치니까. 무섭고 불공평한 세상의 이치. 원빈같은 아저씨만을 원하는 세상이 지금의 세상이니까 말이다. 뒤집어 말한다면 잘생기고 직장있고 멀쩡해보이는 남자가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세상이 지금의 세상이라는 말도 되는 것이다.  

우타노 쇼고의 작품답기도 하고 반면 읽기 찜찜하기도 했지만 히키코모리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내용은 추리적 기법을 잘 따르고 있어서 그것 하나만은 인정하고 싶다. 몸만 어른인 아이도 많고 몸은 아이인데 정신연령은 어른인 아이도 많고 세상이 공평한 건지 불공평한 건지 만화경처럼 어지럽게 돌아가는 것만 같다. 이런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니 이걸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참 난감한 일이다. 작가의 작품이 이런 의문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 장에 가서야 비로소 조금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것도 나름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모순될지는 몰라도.  

작가가 우타노 쇼고라는 점은 처음부터 이 작품을 정독하게 만든다. 작은 단서 하나만으로도 뒤에 가서 뒤통수를 맞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작가의 특징을 아는지라 곳곳에 작가가 단서를 눈에 보이게 들이대도 믿을 수가 없었다. 작가의 이야기 자체에 또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 자체가 트릭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아마도 작가는 그것을 노렸던 것 같다. 믿을 수 없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보이는 것만을 믿지 마라. 보여도 믿을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 그 이면을 파악하는 습관을 들여라. 추리소설이 사회를 담아내는 방법이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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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흩날리는 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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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93년도 작품으로 미로 시리즈 첫번째 작품이다. 기리노 나쓰오, 그녀는 인간의 어두운 마음을 그리는 작가다. 우리 내면에 있는 작은 잔인함을 잘 표출해 낸다. 이 작품은 친구의 실종과 그녀가 가지고 간 야쿠자의 돈을 찾으려는 친구 애인과 야쿠자에게 친구와 한패라는 오해를 받는 주인공이 친구의 행방을 찾아 나서면서 밝혀지는 이야기다.  

어느날 밤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 미로에게 엄청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건으로 발전한다. 친구 요코가 1억엔을 가지고 도망을 갔다고 그녀에게 돈을 맡긴 애인 나루세가 야쿠자와 함께 그녀를 찾아온다. 요코와 한패로 오해를 받게 된 미로는 일주일 안에 요코와 1억엔을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된다. 그 일주일 안에 그녀는 남편의 죽음으로 세상과 단절했던 자신을 털어버리고 친구를 찾아 단서를 쫓게 되는데 르포라이터였던 요코는 그녀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시체 사진 애호가, 이상한 점쟁이, 요코의 물건을 훔치는 것 같은 비서와 요코의 책을 담당한 편집자, 그리고 요코가 베를린에 가서 취재하려 했던 내용에 대해 접근하며 진실에 다가서게 된다. 

작품은 내가 이미 예전에 읽었었지만 새롭게 다가온다. 어쩌면 <다크>와 자꾸 비교하게 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미로가 위기에 처한 것을 알고 미로를 찾아온 아버지 무라젠과의 사이는 평범한 부녀사이로 보이고 미로도 평범하면서 자존심 강한 보통 여자로 나온다. 야쿠자를 위해 일했던 사립탐정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미로는 탐정 기질을 잘 보여준다. 그녀가 평범하게 자라지 않았다는 것이 여자를 내세운 하드보일드 작품을 완성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세상은 남자를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그 세상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살아낸다는 게 맞을 것이다. 요코도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을 친 건지 모른다. 그리고 남편을 자살로 내 몬 미로의 변화도 어쩌면 여자로서 세상을 살아내는 것을 그만두고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비정하게 비쳐진다면 비정한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리라. 작가는 여자를 내세워 그들이 그들만의 길을 개척하라 한다. 미로는 그래서 그녀만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작품은 인간이 겉과 속이 얼마나 다른 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보여지는 면에 치중하는 인간과 그 보여주는 면만을 보는 인간에게 그 이면을 알아가면서 다가오는 것은 충격일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잘 보이려 애를 쓰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자신의 약점을 감추는 것도 인간의 본능이다. 그리고 인간을 이용하고 악의를 감추는 것도 인간의 본능이다. 이것은 우리가 어린 시절 늘 보고 자란 동화에서도 잘 표현되고 있다. 양의 탈을 쓴 늑대, 착한 할머니 모습으로 사과를 팔던 계모로 말이다. 그러니 그것에 속는 것 또한 인간의 어리석은 본능이다. 그 보여주는 모습 자체를 믿으려하는 것 말이다.  

미로는 요코의 진짜 모습을 몰랐다. 그리고 자신의 진짜 모습도 몰랐다. 아니 외면했다. 사랑한다는 것이 버거운 짐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친구를 안다는 사실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미로가 요코를 찾는 과정은 친구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었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미로도 뭔가 보여줬어야 했기 때문이다. 보여주지 않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다. 나도 모르는 내 속을 남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 작품 속 미로는 독하지 않지만 독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잔인하지 않지만 잔인해질 수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미로 시리즈의 진정한 시작은 마지막 한 장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이 느껴진다. 

기리노 나쓰오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는 초기 작품이다. <다크>처럼 어둡지 않고 아주 심하게 냉혹하지도 않다. 하지만 역시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둡다. 일본 야쿠자의 이야기를 여성 작가가 이렇게 깔끔하게 표현한 작품은 처음 본다. 물론 구체적으로 야쿠자의 조직이나 남성적인 하드보일드한 면은 그다지 없지만 오히려 그런 면의 배제가 작품을 한층 빼어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세상에 딱 한 사람만 믿을 수 있다면 우린 누구를 믿을 수 있다고 말할까. 누가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겠는가. 부모, 형제, 친구, 남편 또는 아내, 자식 등등. 이들 중 우리는 사실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우리가 진짜 믿을 수 있고 믿게 되는 존재는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진정한 이해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그러니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한 존재인가. 얼굴에 흩날리는 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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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곳에달 2011-06-27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가가 여자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박력있으면서 냉정한 작품이었답니다.
저는 다크보다 이 작품이 더 좋았어용
 
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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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 본 만화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한 남자가 시한부선고를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사는 것과 어느날 갑자기 죽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나은가를 이야기하는 내용인데 남자는 자신의 처지와는 다른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모르고 살다 죽고 싶다고 하고 여자는 그래도 자신의 남은 날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진다는 건 갑자기 죽는것보다 낫다고 한다. 그 대화를 하고 돌아가다가 여자는 교통사고로 죽는다. 처음 이 작품의 시작을 접했을 때 나는 이 만화 생각이 났다. 그 여자도 이 작품의 여자처럼 많이 억울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인생이 끝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사람들은 편하게 위안삼으려고 팔자니 신의 뜻이니 말하지만 피해를 당한 사람의 마음은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가해자들이 더 뻔뻔스럽게 나온다면 죽은 이는 얼마나 더 억울할까 싶다. 교통사고를 일으킨 신스케는 자신이 일으킨 교통사고로 사망한 여자의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뒤 기억 상실증에 걸린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경찰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사람들에게 묻고 다니는데 그의 주위 사람들은 그저 그 사건을 들추지 말라고 한다. 잊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신스케는 자신말고도 가해자가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가해자는 전혀 복수를 당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그의 바에 찾아오는 루리코라는 여자에게 빠져드는데 그 여자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여자라는 느낌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가 있던 바의 사장은 그에게 교통사고는 흔하다고 말한다. 아침에 텔레비전을 틀면 사건, 사고 뉴스에 빠지지 않는 것이 교통사고일만큰 흔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교통사고 가해자가 십만엔짜리 절도범죄자와 비슷한 형을 선고 받는다는 것 또한 의아한 일이다. 사람 목숨이 십만엔짜리 물건과 같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작가는 이런 교통사고로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와 그 가정이 어떻게 되었는지보다 가해자들이 얼마나 양심없이 살아가고 있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교통사고 가해자가 일부러 사고를 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삶이 단절된 사람,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해본다면 나 좋자고 아무 거리낌없이 발 뻣고 자는 일은 있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가해자들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작가도 이런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피해자의 죽어가는 눈이 너무 불쌍해서 말이다. 가해자에게는 그 죽어가는 눈이 공포가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그 사람을 통로로 한 하나의 세상, 하나의 우주의 소멸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세상을 사는 개개인에게는 단 하나의 각각의 세상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타인에 의해 너무도 간단하게 끝이 난다면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세상이 산 사람을 위주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피해자로 죽은 사람과 그 사람을 잃은 가족의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영원히 죽을때까지 가해자로 사는 건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삶을 빼앗기고 미래를 빼앗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 사람의 고통에 비할 것은 없다. 제발 고통스러워 하는 가해자,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가해자들이 많은 세상이 내가 사는 세상이기를 이 책을 보면서 바란다. 

책을 덮은 뒤 역시 이 작가는 대단하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간단명료하게 잘 전달이 된다. 사회의 문제를 핵심을 꼬집는데는 이만한 작가도 드물다. 탄탄한 구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왜 히가시노 게이고 붐이 일어나는 지 잘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 간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었는데 그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시각이 가끔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뭐,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느끼겠지만. 제발 그 눈을 보며 양심을 갖을 수 있기를 바라고 싶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의 걸작을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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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10-09-03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라시노게이고.전 레몬이 굉장히 충격이었스요.
제목이 좀 틀린 듯 한데..그당시 관심사와 맞닿아있어서 였겠죠.

물만두 2010-09-03 19:21   좋아요 1 | URL
관심있는 내용이 나오면 사회파 추리소설은 더 충격적이게 되죠. 이 작품도 늘 우리 주변에 있는 이야기니까 읽어보시어요.

해리포터7 2010-09-08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여전하시니 알라딘들어올 맛이 나는군요.
저 그동안 물만두 먹을때마다 님생각 마니했답니다. 죄송^^
히가시노게이고는 역시 대단한 작가라는 말에 저도 동감합니다.
선택되는 사회적인 주제들이 읽고나서는 한동안 떠나질 않아서 누군가를 붙잡고 토론이라도 해야 스르르 충만해지는 그런 기분이랄까....(솔직히 토론이란 말은 넘 거창하네요)
여기저기 추리소설을 뒤지다가 결국엔 선택되는 작가는 히가시노게이고가 된답니다.

물만두 2010-09-08 14:12   좋아요 1 | URL
해리포터님 방가요^^
다른 좋은 작가들도 많은데 추리소설만 읽는게 아니라면 선택은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마음에 많이 남게 되는 이야기를 풀어놔서 그런 것 같아요.

maniac 2017-01-1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다잉 아이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도깨비불의 집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시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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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의 <유리 망치>를 읽은 독자라면 그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변호사 아오토 준코와 조금은 수상한 명목상 방범장치 회사를 하고 있지만 도둑임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에노모토 케이의 기묘한 한쌍이 펼치는 밀실 살인을 풀어내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다시 한번 등장하는 단편집이 바로 이 단편집이다. 또한 그들이 등장하기에 밀실 살인만으로 꾸민 작품들이 네편이다. 지금부터 기시 유스케가 보여주는 네가지 밀실 트릭 살인 사건속으로 들어가 어떻게 그것을 풀어내는지, 어떤 견고한 장치가 있는 지 발견하는 재미를 만끽해보자. 

<도깨비불의 집>은 한 집에서 딸이 살해당하고 그것을 아버지가 발견한 것을 이웃이 보고 신고하면서 시작된다. 용의자로 아버지가 몰리고 이를 변호하기 위해 아오토 준코가 나서면서 이 집이 밀실이라는 사실을 알고 에노모토 케이에게 조언을 구하게 된다. 문은 잠겨 있었고 그 문을 연 것은 아버지였다. 강도가 들어왔다고 생각되는 것은 도난당한 것이 있었기 때문인데 문제는 그것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기가 어렵다는, 아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창문이 열려 있지만 그 창문으로는 나갈 수가 없다. 마치 도깨비가 일으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것이 밀실 트릭을 풀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도깨비는 없으니까. 그리고 불가능한 범죄 또한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점차 붕괴되는 가정에 대해 너무도 실날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검은 이빨>은 독거미를 유산으로 남기고 죽은 남자와 그 거미들을 차지하기 위한 거미 마니아와 죽은 남자의 아내 사이에서 처음에는 사고사인 줄 알았던 사건을 아오토 준코가 사건임을 감지하고 그 거미들 속에서 휴대전화로 에노모토 케이와 통화를 하며 사건을 풀어가는 내용이다. 이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사건은 에노모토 케이가 전부 풀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오토 준코는 사건을 의뢰하는 역할 정도다. 그러니까 탐정은 에노모토 케이, 조력자나 조수는 아오토 준코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과는 조금 다른 점이 아오토 준코의 대부분 강압적 부탁이나 협박과 다름없는 강요에 의해 에노모토 케이가 사건을 풀어낸다는 점이다. 뭐, 지은 죄를 가리려면 상부상조해야 한다는 생각일 수도 있고. 암튼 독특한 캐릭터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장기판의 미궁>은 서양에서 체스가 소재인 작품이 많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바둑이나 장기가 소재인 작품들이 꽤 있다. 이 작품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다. 호텔에서 한 남자가 살해된 채 발견되는데 그 남자는 장기 기사다. 그리고 그 남자의 애인도 여류 장기 기사다. 에노모토 케이는 이번에는 단순히 경찰의 의뢰로 잠겨진 문을 열기 위해 왔다가 사건에 참여하게 되고 아오토 준코는 죽은 남자에게 조언을 해 준 인연이 있어 서로 얼굴을 맞대게 된다. 물론 그 이전에 에노모토 케이는 장기 대회가 열리는 곳에 가서 그들의 대국을 구경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애인이 피해자와 원한 관계가 있다는 사람을 만나보기도 한다. 하지만 에노모토 케이가 체스나 장기를 잘 안다는 것이 범인을 찾는 열쇠가 된다. 에노모토 케이,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이 작품에서는 이 남자의 매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개는 알고 있다>는 연극단 단장의 죽음으로 알리바이가 없다고 아오토 준코를 찾아온 단원을 통해 단장 살해범을 찾아내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이 어떻게 밀실이 될 수 있는지는 알리바이가 없는 3인에 의해 밀실이 됨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은 개털 알러지가 있고 한 사람은 개가 너무 짖어서 다가갈 수도 없고 본인은 아니었고 개가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짖지 않았다고 하는 점이 밀실이라는 것이다. 범인은 반드시 세 명 가운데 한 명이고 말이다. 독특한 밀실이다. 하지만 이 밀실을 에노모토 케이는 한순간 무너트린다. 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 없는 밀실, 피해자가 문을 잠그고 들어가 만든 밀실, 의도하지 않은 밀실, 개에 의한 밀실. 네가지 각기 다른 밀실 트릭이 선보이고 그 푸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시 유스케는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는 작가인데 이런 정통 밀실 트릭에 의한 추리소설도 잘 어울리는 작가다. 또한 이번 기회에 단편에도 능함을 보여줬으니 아오토 준코와 에노모토 케이가 등장하는 시리즈도 좋고 다른 정통 추리소설도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밀실의 한게는 어디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인간의 탐욕과 범죄가 도깨비불을 만들고 밀실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잘 보여준 단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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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1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1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1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2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10-09-03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비밀이 많은거얏!!!!!!!!!!!!!!!!!!
동생, 추천은 내가 했당! ㅋㅋㅋㅋㅋㅋㅋ

물만두 2010-09-03 09:52   좋아요 1 | URL
우와, 진주 언니 방가방가... 눙물이 ㅜ.ㅜ
흐흐흐 나이가 먹음 비밀이 많아지는 거잖아요^^
감사감사 ㅎㅎㅎㅎ

김시바 2010-12-18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먼곳에달 2011-06-27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기 나오는 케이라는 탐정 좋아해요 ^^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46
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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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르 까레의 대표작이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한 시대, 냉전 시대의 스파이 이야기다. 스파이 소설 중 가장 높이 평가되는 작품 가운데 한 작품이다. 읽을 때마다, 변하는 시대마다 느낌을 다르게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리머스, 문트, 리즈, 피들러. 네 명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냉전의 시대를 살아간 이야기. 사랑을 하면 절대로 안 되는 스파이 리머스. 하지만 그는 리즈를 사랑하게 된다. 이제는 역사로만 남은 독일의 분단시절, 영국 첩보원 리머스는 변절자로 자신을 위장하고 동독에 들어가 문트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고 수행을 한다. 동독에서 리머스는 문트의 부하인 피들러를 이용해서 문트를 변절자로 몰아 제거하려고 한다.    

동독에서 스파이로 활동을 해 온 사나이가 다시 동독으로 잠입을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너무 다르다. 동독 내의 알력이 있고 스파이가 해서는 안 되는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가 동독에 잡혀 있다. 그들은 베를린 장벽을 무사히 넘을 수 있을까. 서로의 전술을 이용하려 애쓰고 반전에 반전을 더하며 인간을 체스판위의 말처럼밖에 생각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속에서 누구나 할 것 없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을 애처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동서로 분단된 냉전 시대가 배경이고 한번 스파이는 영원한 스파이로 절대 죽음 이외의 방법으로는 어떤 안식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논리 아래 동독으로 잠입하는 한 스파이와 그가 구해 내야 하는 어리석은 이념에 빠진 이용당하는 한 여인의 운명이 그 시대의 암울한 느낌만큼 어둡게 전개되는 작품이다.   

읽고 나면 이런 소재를 다룬 모든 작품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을 변함없이 느낄 수 있다. 씁쓸하고 서글픈. 인간이 한낱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정치 상황과 어떤 진영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음을 언제나 잊지 말기를. 

스파이물은 이제 한물 간 장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아니게 되었다. 세상이 다시 탈냉전시대에서 서서히 새로운 냉전시대로 변하는 조짐이 보이고 역사가 늘 되풀이되듯이 종교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처럼 사상에 대한 변화도 보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힘을 잃은 이들이 권력을 얻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사상이고 과거에 대한 향수니까 말이다. 그래서 요즘 서서히 다시 스파이물이 등장하고 있다. 읽으면서도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분쟁에 가장 휘말리기 쉬운 위치에 있는 나라에 사는 관계로 말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탈냉전시대를 만끽하느라, 나라 사정이 눈에 보이는 사상과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었던 관계로 별 감동은 없었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잘못된 시대를 반성할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또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사상은 어느 만큼의 무게를 가져야 인간이 짓눌리지 않고 인간을 위해 뜻을 펼칠 수 있을까.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이 책을 읽은 느낌은 약간 다르다.  

물론, 80년대까지의 냉전시대에 읽었다면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겠지. 조국의 안녕을 위해 스파이로 살아야 하고 그것을 위해 꼭두각시가 되어 죽더라도 그것으로 좋은 사람. 조국의 사상과 인민을 위해 총살을 당해도 항의하지 못하는 사람. 사랑을 하는 사람. 진정한 변절자. 이중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진정한 변절자 한사람뿐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진실이다.  

시대가 변해 이미 사실감을 상실한 작품이지만 어릴 적 동서독의 비극을 다룬 영화를 보고 운 기억이 있어 그 느낌을 알 수 있었다. 동서독은 통일이 되었는데 아직 분단된 조국에서 사는 우리는 언제나 이런 과거가 되어 버린 작품을 읽어도 작품 자체로만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을지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첫 장에서 카를이 철의 장벽을 넘다가 동독군의 총에 맞는 것을 본 리머스는 한마디한다. 차라리 죽기를. 사상이란 인간을 쓰다 버리는 건전지쯤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스파이 소설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고 싶은 작품이다. 스파이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명성도 있고 그 명성에 어울리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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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8-30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파이 소설은 스파이가 희생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주지요.존 르카레와 함께 에릭 엠블러의 '어느 스파이의 묘비명'도 걸작으로 꼽힙니다.혹시 안 읽으셨으면 읽어보세요.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마지막 장면...

물만두 2010-08-30 16:42   좋아요 1 | URL
어느 스파이의 묘비명 읽었습니다.
전 그래서 스파이 소설 잘 못 읽겠더라구요.
넘 슬퍼요.

pjy 2010-08-30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파이소설은 슬프다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만, 리뷰를 이렇게 우아하게 작성하시니 결국 봐야겠습니다~~

물만두 2010-08-30 20:58   좋아요 1 | URL
존 르 까레의 스마일리 시리즈는 좋은데 특히 이 작품이 더 좋죠. 보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