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흩날리는 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1993년도 작품으로 미로 시리즈 첫번째 작품이다. 기리노 나쓰오, 그녀는 인간의 어두운 마음을 그리는 작가다. 우리 내면에 있는 작은 잔인함을 잘 표출해 낸다. 이 작품은 친구의 실종과 그녀가 가지고 간 야쿠자의 돈을 찾으려는 친구 애인과 야쿠자에게 친구와 한패라는 오해를 받는 주인공이 친구의 행방을 찾아 나서면서 밝혀지는 이야기다.  

어느날 밤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 미로에게 엄청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건으로 발전한다. 친구 요코가 1억엔을 가지고 도망을 갔다고 그녀에게 돈을 맡긴 애인 나루세가 야쿠자와 함께 그녀를 찾아온다. 요코와 한패로 오해를 받게 된 미로는 일주일 안에 요코와 1억엔을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된다. 그 일주일 안에 그녀는 남편의 죽음으로 세상과 단절했던 자신을 털어버리고 친구를 찾아 단서를 쫓게 되는데 르포라이터였던 요코는 그녀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시체 사진 애호가, 이상한 점쟁이, 요코의 물건을 훔치는 것 같은 비서와 요코의 책을 담당한 편집자, 그리고 요코가 베를린에 가서 취재하려 했던 내용에 대해 접근하며 진실에 다가서게 된다. 

작품은 내가 이미 예전에 읽었었지만 새롭게 다가온다. 어쩌면 <다크>와 자꾸 비교하게 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미로가 위기에 처한 것을 알고 미로를 찾아온 아버지 무라젠과의 사이는 평범한 부녀사이로 보이고 미로도 평범하면서 자존심 강한 보통 여자로 나온다. 야쿠자를 위해 일했던 사립탐정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미로는 탐정 기질을 잘 보여준다. 그녀가 평범하게 자라지 않았다는 것이 여자를 내세운 하드보일드 작품을 완성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세상은 남자를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그 세상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살아낸다는 게 맞을 것이다. 요코도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을 친 건지 모른다. 그리고 남편을 자살로 내 몬 미로의 변화도 어쩌면 여자로서 세상을 살아내는 것을 그만두고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비정하게 비쳐진다면 비정한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리라. 작가는 여자를 내세워 그들이 그들만의 길을 개척하라 한다. 미로는 그래서 그녀만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작품은 인간이 겉과 속이 얼마나 다른 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보여지는 면에 치중하는 인간과 그 보여주는 면만을 보는 인간에게 그 이면을 알아가면서 다가오는 것은 충격일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잘 보이려 애를 쓰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자신의 약점을 감추는 것도 인간의 본능이다. 그리고 인간을 이용하고 악의를 감추는 것도 인간의 본능이다. 이것은 우리가 어린 시절 늘 보고 자란 동화에서도 잘 표현되고 있다. 양의 탈을 쓴 늑대, 착한 할머니 모습으로 사과를 팔던 계모로 말이다. 그러니 그것에 속는 것 또한 인간의 어리석은 본능이다. 그 보여주는 모습 자체를 믿으려하는 것 말이다.  

미로는 요코의 진짜 모습을 몰랐다. 그리고 자신의 진짜 모습도 몰랐다. 아니 외면했다. 사랑한다는 것이 버거운 짐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친구를 안다는 사실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미로가 요코를 찾는 과정은 친구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었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미로도 뭔가 보여줬어야 했기 때문이다. 보여주지 않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다. 나도 모르는 내 속을 남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 작품 속 미로는 독하지 않지만 독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잔인하지 않지만 잔인해질 수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미로 시리즈의 진정한 시작은 마지막 한 장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이 느껴진다. 

기리노 나쓰오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는 초기 작품이다. <다크>처럼 어둡지 않고 아주 심하게 냉혹하지도 않다. 하지만 역시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둡다. 일본 야쿠자의 이야기를 여성 작가가 이렇게 깔끔하게 표현한 작품은 처음 본다. 물론 구체적으로 야쿠자의 조직이나 남성적인 하드보일드한 면은 그다지 없지만 오히려 그런 면의 배제가 작품을 한층 빼어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세상에 딱 한 사람만 믿을 수 있다면 우린 누구를 믿을 수 있다고 말할까. 누가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겠는가. 부모, 형제, 친구, 남편 또는 아내, 자식 등등. 이들 중 우리는 사실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우리가 진짜 믿을 수 있고 믿게 되는 존재는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진정한 이해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그러니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한 존재인가. 얼굴에 흩날리는 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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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곳에달 2011-06-27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가가 여자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박력있으면서 냉정한 작품이었답니다.
저는 다크보다 이 작품이 더 좋았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