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살인자 밀리언셀러 클럽 109
로베르트 반 훌릭 지음, 구세희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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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당나라를 시대 배경으로 한 마을의 수령이라는 관직에 있는 디 공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살인사건을 풀어내는 활약상을 담아내고 있는 시리즈를 네덜란드 외교관 출신의 작가 로베르트 반 홀릭은 그림까지 삽입해서 독자들의 흥미를 자아내게 잘 만들었다. 작품 속 실존인물인 디 공은 포청천을 연상시키지만 포청천의 이미지는 아니다. 하지만 당시 대다수 중국 관리가 이런 스타일로 정형화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등장하는 사건들은 모두 실제로 디 공이 해결한 사건을 작가가 추리소설의 형식에 맞게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이라고 하니 더욱 놀랍다. 

명판관 디런지에, 통칭 디 공으로 불리는 디 공에게는 그를 옆에서 보좌하는 홍 수형리와 녹림회라는 패거리에 있다가 디 공에게 감화되어 그의 부하가 되기로 자처한 마중과 차오타이가 있다. 작품은 명판관 디 공의 활약과 법 집행과정, 관리로써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디 공이 등장하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그의 고뇌를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은 디 공이 한위안이라는 고을의 수령으로 부임한지 두어달이 지나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 것이다. 그에 앞서 하나의 괴이한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하고 있는데 호수에 대한 괴담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읽는 내내 어떤 연관성을 찾으려 애를 썼지만 못 찾았다. 명나라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오타인지 아니면 후대의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디 공을 초대해서 마을 유지들이 호수에 꽃배를 띄우고 기녀를 불러 놀던 중 한 기녀가 디 공에게 마을의 비밀을 알릴 것이 있다고 말한 뒤 살해당한다. 디 공도 마을이 너무나 조용해서 무언가 의심을 하고 있던 차에 이런 일이 일어나 우선 단순 살인 사건에 대한 일로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연회에 참석했던 이의 딸이 결혼한 다음날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거기에 신랑은 호수에서 자살한 것으로 알려지고. 사돈지간에 고소 고발이 오가고 그 와중에 며느리의 시신을 임시로 관에 넣어 절에 안장했는데 관뚜껑을 열자 왠 남자의 시신이 들어 있는 헤괴한 일까지 벌어진다. 조용했던 마을이 본색을 드러내는 것인지 디 공은 의문만 쌓여가는데 용의자로 지목했던 이가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전해오니 사건은 단순한 치정 사건을 넘어 더 큰 위험을 알리며 디 공을 불안하게 한다. 

아기자기하게 소품정도로 시작한 사건이 하나, 둘 이어지면서 눈덩이가 구르면서 커지듯이 스케일이 커지는 양상을 띠어 마지막에는 조금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만 사건 하나 하나의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과 그 시대상을 보여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하나의 작품에 인간의 모든 욕망이 담겨져 있고 그것이 살인 사건마다 달리 표현되는 것이 좋았다. 여기에 바둑을 이용한 트릭이라던가 고전적이면서도 그 시대에 통용되었을 법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 트릭은 트릭대로 좋았다. 디 공과 주변인들의 모습은 활력넘쳤다. 마지막 그는 사건 해결과 동시에 자신의 목숨도 구한다.
 
그 옛날 당나라에서 살인 사건이 있었다. 현대에서 일어나는 그런 사건과 다르지 않은 사건이고 사람들 사는 모습도 다르지 않다. 또한 사랑과 오해, 편견이 섞여 디 공의 판단을 흐리고 호수의 괴담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언제나 진실보다 거짓이 더 그럴듯 해보인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인 모양이다. 디 공 시리즈는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일본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 비교하게 되고 서양의 역사 추리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디 공 시리즈가 더 많이 출판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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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5-31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디공 시리즈가 또 한권 추가 되었네요^^

물만두 2010-06-01 09:53   좋아요 0 | URL
2권이 한꺼번에 출간되었지요.
황금 살인자도 나왔습니다^^
 
초록 캡슐의 수수께끼 노블우드 클럽 7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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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서 무차별 독살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으로 한 젊은 여성이 지목된다. 마저리 윌슨. 마커스 체스니라는 특이한 성격의 부자의 조카다. 하지만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 그들은 19세기 일어났던 독살 사건을 떠올리며 그녀를 경계한다. 사탕 가게에 독 초콜릿을 넣어 어린 아이가 죽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집안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 여행을 가고 거기서 마저리는 하딩이라는 남자를 만나 약혼을 하고 돌아온다. 그들은 거기까지 경찰이 따라갔다는 건 몰랐다. 엘리엇 형사가 그들을 조사하기 위해 따라갔다가 마저리를 사랑하게 된 채 돌아왔다. 

작품의 서두가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무차별 독살 사건을 다룬 작품인가 생각했다. 그런 작품이 꽤 있었기에 딕슨 카의 작품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런 독살 사건이 아닌 그의 장기인 밀실 트릭, 아니 심리 트릭까지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일어나는 독살 사건을 들이댄다. 이 작가의 대범함은 어디까지인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스니 가에서 마커스는 조카딸의 혐의를 풀 방법을 알아냈다고 퍼포먼스를 준비한다. 펠 박사도 초대하지만 그는 가지 않았다. 거기에는 마커스의 동생인 의사 조 박사가 마을 임산부의 분만 때문에 참가하지 않은 것을 빼면 그 집안 사람 모두가 참가했다. 조카딸 마저리, 그녀의 약혼자 하딩, 마커스의 친구이자 심리학 교수인 잉그람 교수, 하딩이 필름에 그 퍼포먼스 장면을 담기로 하고 그들은 마커스가 한 모든 행동과 일어난 일에 대해 설문지에 대답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직후 마커스가 청산가리에 독살되었음을 알게 된다. 퍼포먼스의 중간에 누군가 들어와 그의 입안에 직접 넣은 초록 캡슐속에 들어 있던 것을 삼키고고 죽은 것이다. 게다가 하인 윌버 에밋은 누군가에 맞아 쓰러진 채 정원에서 발견되었다가 다시 독살당한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였을까? 범인은 외부인일까, 내부인일까? 내부인이라면 이들의 견고한 알리바이는 믿을 만한가? 외부인이라면 이런 모임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또한 이 일은 마을의 무차별 독살 살인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지 궁금증은 증폭되고 런던 경시청 형사는 지방 경찰이 범인으로 이미 단정지어 버린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경찰은 범인에게 사건을 꿰어 맞추려고만 한다. 이때 펠 박사는 자신을 자책하며 늦게 사건에 뛰어 들어 범인의 범죄를 증명하러 나선다. 

너무도 한정된 공간에서 너무도 한정된 인물들 사이에서 범인을 가려야 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그런 것이 더 어렵다. 왜냐하면 마커스가 펠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 적혀 있듯이 '모든 증인들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검은 안경을 쓰고 있는 거나 다름 없소. 그들은 명백하게 볼 수도 없고 그들이 본 걸 제대로 해석하지도 못할 거요.'가 정답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 작가가 남긴 단서만 잘 따라가도 범인을 펠 박사처럼 찾게 되는데 그 단서를 명백하게 볼 수도 없고 본 걸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 그래서 추리 소설이 재미있는 것이다. 앗, 하고 머리를 치며 놓친 것을 아쉬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모든 것을 보며주면서 그것이 더욱 당혹스럽게 만드는 심리트릭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 범인을 일찍 찾게 되면 너무 싱거워 의심하게 되고 뻔하다 생각하게 된다. 한번 꼬아서 생각하다보면 이미 작가의 심리전에 말린 것이다. 누구의 말도 믿어서는 안되고 스스로 보고 들은 단서만을 제대로 챙겨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펠 박사처럼 논리적으로 구성할 수는 없더라고 범인은 누구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단순한 이야기를 이렇게 치밀하게 구성하다니 역시 존 딕슨 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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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수집하는 노인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현정 옮김 / 아고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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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롤 오츠가 쓴 다섯 명의 저명한 미국 작가들의 말년,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마크 트웨인, 헤밍웨이, 헨리 제임스, 에드거 앨런 포우, 에밀리 디킨슨의 실화를 섞어 근사한 픽션을 선사하고 있다. 작품들은 사실적으로, 몽롱한 허무한 꿈처럼, 아름다운 환타지로, 포우적 느낌으로, SF적인 블랙 유머로 포장되어 있다.  

처음 작품을 읽을 때 나는 내가 또 실수했음을 느꼈다. 정말 이 책이 아닌가벼~였다. 미스터리나 적어도 고딕적 느낌의 작품들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제목에서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사실적 이야기인지 전혀 몰랐고 알았더라도 <소녀 수집하는 노인>이라면 좀 그렇지 않은가 싶다. 차라리 제목을 뒤에 등장하는 <죽은 이후의 에드거 앨런 포 그리고 등대>나 <에밀리 디킨슨 레플리럭스>였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어 낯설다. 하지만 독특한 작가만의 세계가 엿보인다. 다른 작가에 대한 꼼꼼한 조사와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 글을 쓰는 것은 대단한 모험일 것이다. 그런 일을 과감하게 해내다니 역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만 하다 싶다. 읽으면서 작가들의 모르던 면을 알게 되고 작가 나름의 고찰에 내 생각까지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며 문학이란 이렇게 이어지는 인류의 유산임을 거창하게 되새기게 되었다. 

<소녀 수집하는 노인>은 소녀들과 펜팔을 했다는 마크 트웨인의 실명의 존재를 등장시켜 그 남자가 마크 트웨인 사후에 마크 트웨인 대역을 하며 살아가면서 소녀들을 좋아하고 그런 소녀중 한명과 나누는 편지와 일상을 담아내고 있다. 노인과 소녀, 아버지와 딸,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으로 요약되는 작품 속에서 마크 트웨인의 노년을 본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너무도 치밀하게 작가는 마치 자신이 마크 트웨인인냥 쓴 것 같이 느껴졌다.

<아이다호에서 보낸 헤밍웨이의 마지막 나날들>은 헤밍웨이의 유년의 상처와 노년의 절망이 고스란히 담긴 가슴 아픈 작품이다. 대가의 말년이 이렇게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면 그의 자살은 정당했다고 말하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헤밍웨이에 대해 작가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자살을 결심하지만 자살하지 못하고 아내를 경멸하지만 결국 그 아내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게 만든 작가가 마지막에는 잔인하게 느껴졌다. 내가 헤밍웨이를 동정하게 될 줄이야... 이 작가의 이런 면이 나를 놀라게 한다. 

<성 바르톨로뮤 병원의 대문호>의 주인공 헨리 제임스의 작품 <나사의 회전>의 그 고딕적 분위기를 좋아했기에 그의 등장이 반가웠다. 자신이 나이가 들었지만 전쟁중에 무언가 하고자 자원봉사를 성 바르톨로뮤 병원에서 하며 노년의 사랑에 눈을 뜨게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간호부장이 몽둥이를 든 일과 그래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은 점은 시대상과 그의 성격을 잘 나타낸 것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노인네의 자기 과시 또는 자기 만족, 작가 특유의 집착이라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가서 그의 환상인지 아니면 사실인지 몰라도 그의 마지막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죽은 이후의 에드거 앨런 포 그리고 등대>는 에드거 앨런 포에게 정말 딱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고독, 그의 비참했던 말년을 생각하면 외로운 등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존재 그 자체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이 이야기가 실화이기를 바란다. 작가의 작품 가운데 가장 작가의 독창적 느낌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모를 일이다. 죽은 이후 정말 에드거 앨런 포가 어딘가 외로운 등대 하나 꿰어 차고 앉아 누군가와 소박한 행복을 꿈꾸고 있을지. 자신이 살아 생전 단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것을 말이다. 나는 정말 그가 그런 삶을 살고 있기를 작품으로나마 꿈 꾼다. 그것이 비상식적이라해도 말이다.

<에밀리 디킨슨 레플리럭스>은 책을 좋아하고 작가를 동경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꿀 만한 이야기다. 미래, 내가 좋아하는 실존 인물의 사이보그 인형을 살 수 있다. 한 부부는 망설이다가 에밀리 디킨슨을 주문한다. 시인과의 대화라니 멋있지 않은가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에밀리 디킨슨은 그가 살던 시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주인님과 주인마님이 된 그들은 그가 불편하다. 마치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주는 작품인데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고 작품의 엔딩이 이 모든 작품들의 주제를 대변하는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었다. 

다섯 작가, 다섯 명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죽음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나이듬과 병들고 고독과 싸우다 소멸하게 되는 것이 죽음이지만 그래도 그 죽음을 그저 기다리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하며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은 대문호들의 모습이나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이나 매한가지다. 덧없고 후회되는 날들, 원말과 집착으로 얼룩진 인생이지만 마지막 소멸의 순간이 올때까지 나름의 꿈은 간직하고 죽음을 맞이하라고 작가가 대문호들의 모습속에서 속삭이는 것 같이 느껴져 이해되지 않던 처음과는 달리 마지막 책을 덮으며 웃을 수 있었다.  

나는 오늘 또 한명의 좋은 작가를 만나 즐거웠다. 소멸을 향해 가는 나의 하루들 중 그로 인해 행복한 며칠이 또 채워졌음에 감사한다. 죽음은 탄생의 또 다른 말이고 소멸은 생성과 같은 말임을 나는 안다. 인간의 범 우주적 삶은 그러한 것들의 연속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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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10-06-01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작품으로 캐롤 오츠를 시작해볼랍니다^^

물만두 2010-06-01 14:43   좋아요 0 | URL
그러시와요^^
 
이방의 기사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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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으로 시마다 소지의 첫 작품인 이방의 기사는 작가가 너무 오래 묵혀두었다가 내놓은 작품이라 마치 미타라이 시리즈의 번외편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미타라이와 그의 친구 이시오카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 하는 점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이다. 아니 이시오카의 이야기만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한 남자가 잠을 자다 벤치에서 깨어난다. 그런데 남자는 자신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 그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울을 보면 자신의 얼굴이 괴물처럼 보여 거울도 보지 못한다. 세상에 혼자 남은 것처럼 무섭고 외로운 이 남자에게 한 여자가 다가온다. 호스테스인지 기둥서방에게서 도망을 가려는 여자다. 남자는 그녀와 동거를 하며 자신의 운명이 그녀임을 느끼고 불안한 가운데 매일매일 행복을 느낀다. 그러다 그는 직장 근처의 점집에 들러 미타라이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나는 미타라이가 무슨 일을 할 줄 알았다. 남자의 기억을 되찾아 주던가 아니면 남자의 과거를 알아내는데 도움을 주던가 말이다. 물론 남자는 자신을 유부남이라 생각하며 과거로 돌아가기를 꺼린다. 지금 만난 료코와의 삶을 계속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료코가 변한다. 다시 호스테스의 일을 하면서 남자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남자는 그것을 자신의 과거에 대한 불안으로 여기고 자신의 운전면허증에 있던 주소를 찾아간다. 거기서 남자는 기가 막힌 이야기를, 참담한 그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가 복수의 칼날을 갈 수밖에 없는. 

등장 인물들의 나이가 50년대생이라 의아했는데 작품은 1979년에 쓴 <점성술 살인사건>보다 앞선 작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복수 이야기는 신파같은 느낌이 들어 시마다 소지가 왜?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났다면 정말 작가의 습작으로 치부되었을텐데 추리소설은 꼬아야 제맛이라고 반전에 반전을 더하며 이야기를 점점 시마다 소시식 미타라이의 장광설에 더해 첫사랑이라는 아름다운 테마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가고 있다. 이것이 아마도 뒤늦게 발표했어도 호평을 받으며 <점성술 살인사건>을 제치고 독자들이 선정한 미타라이 시리즈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작품으로 뽑힌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이시오카에게 그런 아름다운 사랑이 있었다니 이시오카가 다시 보인다. 이방의 기사는 이시오카가 마지막에 돈키호테같은 미타라이와의 만남을 언급하며 미타라이를 이방의 기사인냥 추켜세우지만 이방의 기사는 이시오카다. 료코의 기사, 료코의 이방의 기사이기 때문이다. 역시 미타라이 시리즈에서 이시오카가 없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었다. 냉정한 미타라이와 인간적 온도차이를 맞추려면 이런 열정을, 사랑을 마음 깊이 품고 있는 이시오카가 반드시 작품에 인간적인 면을 많이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아, 정말 이시오카의 로맨스만으로도 충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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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0-05-2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와정의 이시오카 이야기네요.용와정 읽으면서 좀 황당했었는데...미타라이가 전 마지막에라도 나올줄 알았는데 결국 이시오카가 해결했지요. 재밌겠네요.

물만두 2010-05-20 15:14   좋아요 0 | URL
처음엔 그닥... 이러다가 마지막에 마음에 드는 작품입니다.
 
유골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8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8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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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코넬리가 창조한 다크 히어로 이름도 거창한 히에로니무슈 보슈, 즉 해리 보슈는 고톡한 코요테같은 인물이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그는 그런 고독을 온 몸에 휘감고 혼자 사건에 뛰어들어 북치고 장구치고 다했다. 그래서 동료들, 특히 상관들은 그를 싫어했다. 다루기 힘들고 제멋대로였지만 솜씨 하나는 끝내줬으니까. 그런 그가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고 경찰 생활 25년이라는 연금 혜택을 받을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세월에도 변함없이 그는 고독하고 고독한 사건과 마주하고 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사건에 해리 보슈가 주목한다. 헐리우드 언덕에서 개가 어린이의 뼈를 물고 온 것이 발단이 되었다. 그냥 어린 아이의 뼈였다면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이는 뼈만으로도 심하게 학대당한 흔적이 너무 뚜렸해서 뿌리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아이는 그곳에 80년도 즈음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었고 남자 아이, 두개골에 수술한 흔적이 있었다. 조사는 다각도로 진행되었지만 그러던 와중에 그 근처에 살던 한 남자가 성추행 전과가 있다는 것만으로 용의선상에 오르고 남자는 자살을 하고 만다. 또 자신의 남동생이 가출했는데 그 아이가 아닌지 묻는 전화도 걸려온다. 도대체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해리 보슈는, 작가는 묻고 있다. 

가정 폭력은 심각한 사회문제다. 하지만 대부분 은폐되고 인식되어도 근절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어떤 범죄보다 가장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범죄인데 정작 사람들은 방관만 하고 있다. 그러다 피해자가 나와야만 사건으로 인정하고 관심을 갖게 된다. 30년전이나 지금이나 그 사실은 변함없다. 가정이 가장 안전해야 할 곳인데 그 가정이 가족에게 가장 불안하고 무서운 곳이 된다면 그보다 더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 나왔을때 이들은 어찌되겠는가를 생각하면 답답하다. 남편과 아내, 아이들은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 아이의 뼈를 발견한 후에야 경찰들은 움직인다. 그렇게 움직이게 된 경찰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작품 속에는 딱히 가해자로 볼 인물이 없다. 가해자도 피해자인 경우가 있고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등장 인물들은 모두 불완전한 가정에서 자랐거나 이혼을 했거나 나이가 들었어도 가족과 단절한 채 혼자 사는 이들이 많다. 해리 보슈는 어려서 위탁 가정을 전전했고 지금은 이혼을 했다. 그의 파트너도 이혼을 하고 아들을 만나는 날만 기다린다. 해리가 새로 사귄 말단 순경은 부와 명성을 버리고 변호사에서 경찰이 되었다. 무언가에서 도망을 다니는 느낌을 준다. 여기에 경찰은 사건을 축소시키기 위해서 범인을 미리 단정지으려 하고 언론은 무자비하게 마녀 사냥으로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 천사의 도시에서 천사는 어디 있는 건지 사람들 모두 상처주기 위해 사는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다.    

9000년 전에 두개골이 깨진 유골이 발견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그 당시에도 살인 사건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긴 인간성이라는 것이 변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자체가 좀 우습기도 하다. 인간은 유골 위에 집을 짓고 도시를 건설했다. 인간의 역사가 그런 토대를 가진 역사다. 그러니 이 작품의 제목이 유골의 도시인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작가는 별거 아닌 것 같은 사건을 가지고 여러 이야기를 다각도에서 진행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다양한 인간성을 보여준다. 한 아이의 죽음은 단지 한 아이의 죽음이 아닌 나비 효과와 같이 인간의 사회에, 인간의 역사에 토네이도같은 일이 일어나게 할 수도 있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참회하기 위해서라고 해리 보슈는 말한다. 한 아이의 죽음조차 막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인간은 참회만 가지고 살아도 모자랄 것이다. 

오래전에 이미 죽은 아이의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세상에는 해결된 사건도 많지만 해결되지 않은 사건도 많고 어떤 면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사건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것이 경찰이 가질 수 있는, 경찰이라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삶의 참회의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작품이다. 하지만 결국 해리 보슈는 그것마저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가 되고 말았지만. 마지막 엔딩에서 내리는 비는 눈물일까, 핏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흘린 눈물, 그와 그의 동료들이 흘린 그 많은 피와 땀. 그렇게 밤길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에서 코요테의 쓸쓸함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해리 보슈의 진정한 캐릭터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작품이 가장 탁월하다. 정말 엔딩이 압권인 말이 필요없는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그 자체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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