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공지다. '분당고전클럽'에서 내년 상반기에 한국근대문학 다시 읽기를 진행한다. 비대면 병행으로 격주 수요일(오전10시-12시)에 진행되는데,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유료강의이며 문의 및 신청은 010-2482-6874 전주혜).


한국근대문학 다시 읽기


시즌1


1강 1월 08일_ <춘향전>



2강 1월 22일_ 이광수, <무정>



3강 2월 05일_ 김동인, <감자>



4강 2월 19일_ 염상섭, <만세전>




시즌2


1강 3월 05일_ 염상섭, <삼대>



2강 3월 19일_ 이광수, <흙>



3강 4월 02일_ 김동인, <운형궁의 봄>



4강 4월 23일_ 심훈, <상록수>




시즌3


1강 5월 07일_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2강 5월 21일_ 박태원, <천변풍경>



3강 6월 04일_ 이상, <이상 소설 전집>(1)



4강 6월 18일_ 이상, <이상 소설 전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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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대표작 <세계사의 구조>가 재번역돼 나왔다. 개정된 이와나미 문고판 내지 영어판에 맞춘 개정판으로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거의 모든 문장을 손보았다˝고 역자는 밝힌다. 이미 후속작 <힘과 교환양식>도 번역본이 나와있는 상태라 <세계사의 구조>를 다시 읽기 위한 여건은 마련되었다.

<일본 근대문학기원> 강독 이후 가라타니 고진의 주저 읽기 강의를 계속 만지작거리던 차였는데 내년에는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달력을 한장 남겨놓고 있지만 마음은 벌써 2025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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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초부터 12월말까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전시실에서는 고 김윤식 교수의 학문세계를 되돌아보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혼신의 글쓰기-김윤식의 한국현대문학사‘. 오늘 회원들과 단체로 관람하며 잠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학부 1학년 가을학기 때 강의실에서 선생을 처음 대면했으니(어느덧 나는 그때의 선생보다 나이가 많다) 벌써 37년의 시간이 흘렀다. 선생의 첫 저작이 나온 게 1973년의 일이니 87년에 저자는 아직 젊은 나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론 학부와 대학원에서 여러 학기 강의를 들었고 2001년 퇴임강연도 경청한 기억이 있다. 90년에 타계한 평론가 김현과 함께 내게는 문학공부의 기초를 만들어준 분이어서 전시회를 둘러보는 감회가 없지 않았다.

책으로는 <한국근대문학의 이해> 같은 책이 강의 교재여서 처음 구매한 것일 듯싶은데 80년대 중반부터 나온 책들은 대부분 손에 들어보았다. 그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책으로는 <이상 연구>(1987)와 <낯선 신을 찾아서>(1988)가 생각난다. <이상 연구>는 아마도 1학년 겨울방학 때, 그리고 <낯선 신을 찾아서>는 2학년 가을에, 단풍이 물든 풍경을 보며 교정(중앙도서관)에서 읽었다. 독자이자 학생으로서 충만한 느낌을 가졌었다.

오늘 전시회에서 두세 권의 책은 실물로 처음 보았는데, 그중 하나는 이번 전시기간중에 나온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다(전시실에는 표지만 걸려 있었다). 1973년 한얼문고에서 초판이 나온 책으로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토대로 한 것이다. 지난달말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새로 나온 건 한글 교열판이다. 일지사에서 나온 판본을 소장용으로 갖고 있었는데 이번 한글판은 독서용으로 삼을 수 있겠다(귀가길에 동네서점에서 바로 구입했다). 책과 함께, 독자와 함께라면 저자는 결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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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2024-11-26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7학번이신가요...그러면 27년 전이 아니고 37년 전이네요. 세월을 상기 시켜드린 거 같아 죄송^^;;
‘낯선 신을 찾아서‘는 저도 너무 좋아한 책이었습니다.

로쟈 2024-11-26 23:06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주디스 버틀러의 간판작 <젠더 트러블> 개정판이 나왔다. 원저도 1990년 초판에 이어 1999년에 개정판이 나왔었는데 한국어판도 2008년에 나온 초판에 이어서 16년만에 개정판이 나온 것. 두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일단 여성주의 이론 분야의 스테디셀러라는 점, 그리고 독서 트러블을 일으키는 책을 이번에는 완독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점.

이런 종류의 책이 대개 그렇듯 책의 요지는 친숙하지만 독서는 만만치않다(세미나를 하지 않는다면). 대개는 번역서와 원서를 같이 놓고 봐야해서다. 이번에는 초판과 개정판 사이 16년도 염두에 두고 읽어봐도 좋겠다(가령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2007년에 출간됐기에 노벨문학상 수상까지 얼추 같은 기간이다). 거기에 더해서, 요즘의 관심사이기도 한데 버틀러의 젠더론과 정체성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싶다(<젠더 트러블>의 부제가 ‘페미니즘과 정체성의 전복‘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페미니즘은 정체성 정치와 매우 강한 친화성을 띠기도 하기에).

그나저나 독서는 시간의 문제이기도 한데 멍석을 깔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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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자 경향신문에 실리는 글을 옮겨놓는다.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를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룬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해서 다뤄달라는 청탁에 응해 쓴 글이다. 







경향신문(24. 11.15)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연결하는 확실한 '실선'이 그어졌다

난달 10일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 작가 한강을 호명한 지 한 달여 지났다. 실시간 발표를 지켜본 기억이 새로운데, 사실 중국과 러시아의 여성 작가 찬쉐와 울리츠카야가 유력한 수상자 후보로 거명되고 있었고 나의 예측도 비슷했다. 첫 호명에 어리둥절해하다 ‘한강’이란 이름이 재차 불리고 나서야 비로소 ‘아! 한강’이라고 되뇔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새로운 현실, 새로운 시작과 마주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노벨 문학상의 상징적 효과에 기대어 말하자면, 한국문학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강 작가의 수상이 갖는 여러 가지 의미와 의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겠지만 개인적인 소회도 더 얹고 싶다. 세계문학 고전들에 대해 강의하고 글을 써온 처지에서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은 계속 고심해온 주제였다. 한국 현대문학을 세계문학의 관점에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화두로 삼기도 했다. 난점은 정확한 척도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한국문학의 수준과 성취를 측정할 만한 기준이 없었기에(언어가 달라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연결선을 가상의 점선으로 대신해야 했다. 한국문학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은 다른 한편으론 세계문학의 공간에서는 별다른 존재감을 갖지 못한다는 콤플렉스에 침식당하기 일쑤였다. 이번 한강 작가의 수상은 우리의 오랜 콤플렉스와 함께 이러한 난점을 일소해주었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연결하는 확실한 실선을 그려줌으로써 말이다.

스웨덴 한림원의 표현에 따르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 한강 문학의 요체이다. 스웨덴어로 번역된 한강의 작품은 현재까지 네 편(<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이지만 한강 문학의 핵심과 의의를 정확히 짚고 있다고 생각된다(물론 심사위원들은 영어나 불어, 독어 등으로 번역된 한강의 작품들까지도 염두에 두었다). 언어와 국적에 제한을 두지 않고 전 세계 작가들을 대상으로 시상하면서 스웨덴 한림원은 매번 문학의 존재 근거와 명분, 그리고 의의도 함께 제시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한강 문학은 한국문학의 성취이면서 현 단계 세계문학의 존재론이기도 하다. 문학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란 질문에 답하는 작품들인 것이다.

‘시적 산문’이라는 형식적 특징을 따로 제쳐놓는 게 가능하다면 한강 문학은 ‘역사적 트라우마’와 ‘인간 삶의 연약함’을 다룬다. 이 두 요소는 물론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 연약한 존재로서 인간은 너무도 쉽게 상처받고 훼손당한다. 하지만 그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 트라우마에 맞서며 버텨내는 존재가 또한 인간이다. 한강은 그러한 인간적 양상을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다뤄왔다. 그렇게 하여 이뤄낸 성취는 한강 문학의 고유한 개별성이기도 하지만 세계문학의 맥락에서 보면 면면한 계보를 잇는 것이기도 하다. 상처(트라우마)가 문학 창작의 주요 동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는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사례에서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의 역사를 ‘폭력의 세기’로 부를 만큼 20세기의 경험은 전쟁과 폭력, 학살 등으로 얼룩져 있다. 비약적인 경제 성장과 번영의 이면이다. 20세기 문학은 자연스레 그러한 경험의 실상을 묘사하고 의미를 반추하는 책무를 갖는다. 2차 세계대전을 분기점으로 할 때, 전후 첫 번째 노벨상 수상 작가(1946년 수상)인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1943)가 좋은 사례다. 1930년대 초반부터 집필하기 시작하여 10여년의 노고 끝에 완성한 대작 소설에서 헤세는 고도의 정신주의를 견지하면서 미래의 유토피아적 공동체상을 제시한다. 그가 겨냥한 것은 당대의 타락한 현실로 헤세는 소설에서 ‘잡문시대’라고 부르며 격하한다. 헤세식 정신주의가 도드라지는 작품이지만 한편으로 동시대 역사는 추상적으로만 다뤄진다.








헤세(국적을 스위스로 바꾸지만)와 함께 독일문학의 쌍벽을 이루던 작가 토마스 만(1929년 노벨상 수상)도 후기 대작 <파우스트 박사>(1947)를 통해 20세기 초반부터 나치의 집권으로 이어지는 독일 현대사를 소설적 숙고의 대상으로 삼았다. <파우스트 박사>는 <유리알 유희>와 마찬가지로 예술가 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데, 주인공인 음악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전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도 ‘유리알 유희’의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전기로 쓰인 <유리알 유희>와 공통적이다.

두 작가 모두 19세기 후반 시민계급 출생으로 20세기 양차 대전까지 겪은 세대로서의 현실 인식과 시대 비판을 예술가 소설을 수단으로 삼아 담아내고자 했다. 이러한 작업은 그다음 세대를 대표하는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1999년 노벨상 수상)에게 계승되면서 변용된다.








그라스는 대표작 <양철북>(1959)을 통해 2차 대전 전후 시기 독일 소자본가 계급이 어떻게 전락해갔는가를 묘파한다. 하지만 앞세대 작가로서 헤세와 토마스 만이 취했던 예술가 소설의 형식이 그라스에게선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시민계급과 소시민계급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 마체라트는 네 살 이후 성장을 멈춘 난쟁이로 소리를 지르면 유리창을 깨뜨릴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다. 소설은 오스카가 살인 누명을 쓰고 정신병원에 수감돼 있는 동안 쓰게 되는 자서전 형식을 취한다. 그라스 소설에서 당대적 현실에 대응하는 지성과 예술적 영감은 현저하게 약화되는 대신, 추하고 그로테스크한 현실묘사와 역겨운 현실에 대한 불쾌한 정념은 강화된다. 소설적 서사가 불가해한 현실에 더 밀착할 때 빚어지는 결과로 해석된다.








라틴아메리카 붐 소설의 대표 작가로 1982년 노벨상을 수상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년의 고독>(1967) 역시 새로운 문학적 상상력의 이정표가 된 작품이다. 지리상 발견과 함께 시작된 유럽과의 조우 이후에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겪어온 역사적 경험과 비극이 한 가문의 7대에 걸친 가족사를 줄거리로 하여 펼쳐진다. 소위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서사 형식을 통해 마르케스는 믿기지 않는, 비현실적인 현실을 문학이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한 예시를 제공한다.

가령 작품에서 바나나농장 노동자 학살사건(1928년의 실제 사건이 모델)은 3000명이 희생되었음에도 공식적으로는 부정된다. 공식 역사가 역사적 진실을 부인하고 부정할 때 문학은 역사의 편에서 억압된 진실의 수호자이자 전달자가 될 수밖에 없다. 비록 마르케스는 이 소설이 한 집안의 반복적인 근친상간으로 끝내 저주대로 돼지 꼬리 달린 아이가 태어나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했지만.







중국 작가 최초로 2012년 노벨상을 수상한 모옌도 세계문학의 관점에서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계보를 잇는 작가다(스웨덴 한림원은 마술적 리얼리즘 대신 ‘마환적’ 혹은 ‘환영적’ 리얼리즘이란 표현을 썼다). 모옌은 다수의 작품을 통해 중국의 전통 서사와 서양 현대소설의 융합을 시도해왔는데 초기 대표작 <붉은 수수밭>(1986)은 중국 산둥성의 한 지방을 배경으로 하여 일제에 맞서는 민중의 저항을 화려하고 박력 있게 그려냈다. 장편소설에 대한 기본 규정이 ‘근대 부르주아 계급의 서사시’(루카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마르케스-모옌은 새로운 소설 종을 발명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바흐친 같은 이론가라면 중세 라블레 소설의 계보라고 지적할 것이다).

지역을 막론하고 근대로의 전환기는 근대와 전근대라는 두 가지 세계의 충돌로 특징지어진다. 유럽에서는 그 충돌이 ‘도시와 시골’ 같은 지역 간의 갈등과 차이로 다뤄졌다면(산업화된 북부 도시와 남부 시골을 대비시킨 영국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북과 남>(1855) 같은 소설), 유럽 바깥에서는 유럽이라는 식민화의 힘(제국주의)과 이에 맞서는 전통적 공동체의 구도로 전개되었다. 동아시아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서양의 무력(미국의 군함)에 놀란 일본이 먼저 근대국가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이어서 구미 열강을 흉내 내어 주변 국가들을 침탈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 대한 경험의 공유는 자연스레 문학적 형상화에도 반영된다. 모옌 세대 중국문학의 성취를 마르케스를 비롯한 비서구 지역 문학과 비교해보도록 하는 근거이다.







20세기의 혹독한 역사 경험, 혹은 트라우마에 맞서는 민중의 형상은 2015년 노벨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목소리 소설’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1985)를 필두로 하여 <세컨드핸드 타임>(2013, 한국어 개정판 제목은 ‘붉은 인간의 최후’)에 이르기까지, 알렉시예비치는 비록 구술 기록과 동일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실제 경험자들의 육성을 고스란히 들려주고자 했다.

전쟁의 참상과 고통, 체르노빌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목소리, 20세기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를 살아낸 이야기가 생생한 다큐 영상처럼 전달된다. 알렉시예비치가 ‘목소리 소설’이라는 자기만의 형식을 고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기존의 소설 서사가 20세기의 새로운 경험을 담기에는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알렉시예비치는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현대의 작가들에게도 핵심 경구라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룬 한강의 작품은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거기에 <흰> 같은 작품을 간주곡으로 끼워 넣을 수 있겠다. 주제로 보면 국가 폭력과 학살을 다룬 작품들이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과 제주 4·3 사건을 한국 현대사의 특수하고 예외적인 사건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역사상 유사한 여러 사건들과 병치해놓고 보편성을 추출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유사한 사례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 20세기 대표적 악몽으로서 유대인 집단학살(홀로코스트)이다. 나치 독일에 의해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이 끔찍한 학살극을 문학은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아우슈비츠를 포함한 나치 수용소 생존자들의 증언부터 그다음 세대(포스트 메모리 세대)의 추적담까지 홀로코스트 문학도 방대한 목록으로 채워져 있는데 2002년 스웨덴 한림원은 그 가운데서 헝가리의 유대계 작가 임레 케르테스를 호명했다. 15살의 나이에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생활하다 기적적으로 생환한 체험을 자전소설 <운명>(1975, 원제는 ‘운명 없음’)에 담아냈고 이후 세 편을 더 추가했다. 트라우마적 체험의 기록이라는 면에서 비교될 수 있지만 동시에 한강의 소설들이 작가의 빙의 체험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구별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는 2000년대 초반 독어권의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 작가였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영예를 비껴간 W G 제발트와 한강을 비교하는 것도 가능하다. 두 작가 모두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의 직접적인 체험자는 아니지만(제발트의 마지막 소설 <아우스터리츠>) 어떤 체험담 못지않게 강렬하면서 동시에 실험적인 문학적 서사를 창조했다. 이제 한강은 이들과 함께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되었다. 세계문학의 계보도에 한강의 이름을 당당하게 적어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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