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의 <동학제>(전7권)가 다시 나오면 좋겠다...

-유독 장흥에서 문인이 많이 배출됐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바다가 있잖아요. 그리고 장흥이 갖고 있는 역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장흥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굉장히 저항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동학혁명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 이웃에 있는 강진에는 군수가 한 사람밖에 없었던 반면, 장흥에는 장흥부사 · 벽사역장·회진만호 세 사람이 있었어요. 그만큼 약탈과 착취가 심했어요. 내 고향에 만호가 살았어요. 어머니가 기억력이 아주 비상하셨는데 어려서 부른 동요를 다 기억하셨어요. ‘벽사원님 밥상에는 콩잎 반찬이 열두 가지요, 만호원님 밥상에는 감태 반찬이 열두 가지라...‘ 감태로열두 가지 반찬을 만들 정도니 반찬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벽사원님의 밥상에 콩잎으로 열두 가지 반찬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걸게 먹었겠어요. 동요에 그런 내용이 다 들어 있었을 정도죠. 동학군이 공주 우금치를 넘다가 일본군한테 저격을 받아서 뒤로 밀려 전봉준의 지도부가 무너지니까 장흥까지 밀려왔어요. 장흥에서 관아를 접수하고 부사와 수성군들을 다 죽였어요. 그랬는데 일본군들의 기총소사에 동학군들은 전멸했습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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