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북커진이라는 새로운 형식 책(혹은 잡지)이 출간됐다. 혁명(Revolution)의 머릿글자를 딴 잡지 'R'이 그것인데, 매호 주제별로 묶인다는 첫호의 주제는 '소수성의 정치학'이다. “주변화가 지배적 척도에 의한 존재의 부차화를 가리킨다면 소수화는 그 척도로부터의 탈주를 가리킨다.”는 기획의 변 자체는 별로 새로울 게 없지만 그것이 한 권 분량의 책으로 출간되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거기엔 '물질적 노동'이 관여하기 때문에. 관련리뷰와 책을 낸 출판사 그린비의 유재건 대표와의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7. 05. 05) 권력·자본으로부터 탈주… 소수의 가치를 실험하다

“다수는 상대적으로 큰 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표준의 결정을 의미한다. 백인, 성인, 남성 등 다수성이 지배의 상태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의 상태가 다수성을 뜻한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다수성과 소수성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수적으로 우세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가치 척도’를 쥐고 있기 때문에 ‘다수적 지위’를 차지한다. 반면 그 척도에서 벗어나 있는 자들은 비주류, 즉 소수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 척도에 의해 억압받고 차별받는다.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여전히 ‘진행형’인 한국 사회에선 이같은 ‘소수성’이 다양한 형태로 양산되고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위해 공유수면에서 추방당한 어민들, 안보를 명목으로 삶의 터전에서 추방당한 평택 대추리의 농민들, 법체계에서 추방당한 이주노동자들,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추방당한 중증장애인들….

도서출판 그린비와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공동 기획한 반연간 인문사회지 ‘R’는 이처럼 권력과 자본에 의해 추방된 타자들에 주목한다(R는 alter(다른)+Revolution(혁명)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그간 ‘전체’를 위해 희생이 불가피한 ‘일부’로, 정상에서 벗어난 ‘예외’로 취급됐다. 그런데 이 ‘일부’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져서 우리 사회의 대다수 ‘대중’의 형상이 됐다. “전체를 위해 희생해야 할 ‘부분들’이 사실상 전체이고, ‘정상’에서 벗어난 ‘예외’가 정상을 이루는 것”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 의 연구원이 평택 대추리의 철거된 건물 위에 ‘모두가 소수자’ 라는 의미를 담은 깃발을 꼽고 있다. <도서출판 그린비 제공>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추장’인 고병권씨는 총론격인 ‘주변화 대 소수화:국가의 추방과 대중의 탈주’에서 이같은 문제의식을 여실히 드러낸다. 지난 10년간 권력과 부의 영역에서 대중들은 지속적으로 추방당해왔다. 그는 이를 ‘주변화’(Marginalization)라고 정의하면서, 이 ‘마진’(Margin)의 사전적 의미(주변, 한계, 이익, 여백 등)에서 많은 것을 읽어낸다. 첫번째 의미인 ‘주변’은 권력과 부의 영역에서 부차화된 대중의 지위를, ‘한계’는 대중들의 삶이 처한 상황을, ‘이익’은 권력과 자본이 주변화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점을, ‘여백’은 이같은 주변화가 정치권에서는 전혀 사고되지 않는다는 점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주변화’와 ‘소수화’(Minoritization)를 구분한다. “주변화가 지배적 척도에 의한 존재의 부차화를 가리킨다면 소수화는 그 척도로부터의 탈주를 가리킨다.” 책은 바로 여기에 주목한다. 권력과 자본은 대중들을 추방하고 주변화하지만, 대중들은 그만큼 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탈주하고, 다른 삶을 실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희선의 글 ‘새만금의 노모스’에선 새만금 어민들의 삶과 투쟁이 기존 법의 소유권 개념을 어떻게 뒤흔드는지를, 신지영의 글 ‘대추리의 코뮨주의’에선 “올해도 농사짓자”는 농민들의 투쟁이 재화를 독점하는 국가적 공공 개념의 모순을 어떻게 폭로하는지 보여준다.

‘이주노동자와 이동’ ‘중증장애인, 비인간의 탈인간 되기’ 등의 글도 대상만 다를 뿐 소수자와 탈주의 새로운 가능성을 얘기한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책 말미를 장식하는 진은영 시인의 글은 짧지만 의미심장하다. “소수는 모든 사람이다. …소수자는 우리가 특별히 만나야 할 어떤 인물, 어떤 계층이 아니다. 그는 기준에 벗어나는 모든 순간을 만들어내는 우리 자신이다.”(김진우 기자) 

한겨레(07. 05. 04) "사회이슈 깊이 파고든 ‘책잡지’랍니다”

처음 유재건 그린비 출판사 대표를 인터뷰하겠다고 했을 때 그는 손사래를 쳤다. “제가 나설 자리가 아니고, 한다면 당연히 고병권씨가 해야죠.”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대표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래도 출판사에서 이런 독특한 잡지를 낼 용기를 냈다는 것 자체가 이야기해볼 만한 주제 아닌가요?” 그는 거듭되는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쑥쓰럽네요.” 그래도 여전히 그는 주인공은 ‘수유+너머’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야기의 주제는 그린비 출판사가 펴낸 잡지 (아르)다. 이 잡지의 품목명은 특이하게도 ‘부커진’이다. “북(책)과 매거진(잡지)을 합성한 말인데요, 1980년대에 자주 나왔던 ‘무크’(매거진+북)를 뒤집어놓은 꼴입니다. 그 시절 무크라는 게 단행본 형태로 된 부정기 간행물이었잖습니까? 무크가 잡지의 성격이 강했다면, 우리가 내는 부커진은 책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보면 됩니다. 기존 잡지가 주제 하나를 깊이 있게 파고들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단행본 책 형식을 취해 그 깊이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이 ‘책-잡지’는 일반 단행본 책처럼 독자적인 제목이 있다. 이번에 나온 첫 호의 제목은 ‘소수성의 정치학’이다.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발견되는 소수성의 문제를 이슈로 삼았습니다. 새만금 문제라든가 한-미 에프티에이 문제, 평택 미군기지 문제, 장애인 문제 같은 이슈들을 소수자의 관점에서 접근한 거죠.”

이 책-잡지의 특이함은 ‘부커진’이란 이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통상의 잡지나 무크가 일인 대표 편집위원 체제로 굴러가는 것과는 달리, 이 잡지는 매번 편집인이 바뀐다. 이번호 편집인은 고병권 대표다. 그가 고병권 대표를 자꾸 앞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번 대표 편집인이 바뀔 예정인데, 해당 이슈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열정적으로 그 이슈를 이야기할 사람이 편집인을 맞는 게 옳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수유+너머’가 기획을 주도했다고는 해도, 출판사의 적극적 참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저희 출판사와 ‘수유+너머의 연구원들이 함께 고민해서 이슈를 잡았습니다. ‘소수성의 정치학’이라는 주제 아래 쓴 글들은 ‘수유+너머’ 연구원들이고요, 저희는 이슈로 묶은 글 외의 다른 글들을 책임진 셈이죠.”

유 대표가 이 잡지를 처음 생각한 것은 5~6년 전이었다고 한다. 대중과 만나는 접점을 넓혀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싶다는 욕구가 컸던 것이다. “기획을 구체화한 것은 1년 전쯤입니다. 지난해 사회적 이슈가 많았잖아요? 한-미 에프티에이 반대 시위나, 평택미군기지 반대시위에 ‘수유+너머’ 사람들과 함께 나갔죠. 지난해 5월에는 ‘수유+너머’ 회원 20여명이 새만금에서 평택을 거쳐 서울까지 20여일간 도보행진을 했는데, 거기에 저희 출판사 사람들이 잠시 동참하기도 했고요. 그 무렵 잡지를 만들자고 합의했던 거죠.”

혁명(Revolution)의 영문 알파벳 첫 글자를 딴 제목 ‘아르(R)’의 의미는 고병권 편집인이 쓴 ‘창간사’에 소개돼 있다. “모든 혁명은 첫 글자 ‘R’만을 필요로 한다. 혁명이란 완성할 수 없는 것이어서가 아니라, 매번 새로 쓰지 않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기에 그렇다. 우리는 과거 혁명이 제 자신의 철자를 계속 이어가려 할 때마다 단호하게 미래 혁명의 첫 글자 ‘R’을 쓴다.” 다시 ‘아르’(R)의 의미는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R’을 쓴다. 너무나 오랫동안 발전해온 ‘발전’과 결별하기 위해, 너무나 선진화된 ‘선진’과 결별하기 위해 ‘R’이라고 쓴다. 우리에게는 발전론 자체가 낡은 과거다. 아니 반대로 말해도 좋다. 발전론과 결별한 우리에게는 어떤 과거도 충분히 미래적이다.” 말 그대로, 탈근대적 혁명을 꿈꾸는 전사들의 선언문이다.

이 전사 동맹에 가담한 유 대표는 이 동맹이 열린 동맹임을 강조했다. “이 잡지를 저희(그린비와 ‘수유+너머)가 시작하기는 했지만, 저희들만의 소유물로 남겨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능하면 다양한 연구자들이 이 매체를 통해 여러 목소리를 내줬으면 합니다. 반드시 정치적 입장이 같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이슈들을 제기한다면, 그게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고명섭 기자)

07. 05. 05.

P.S. 반년간 문예지인 <작가와 비평>의 작년 하반기호 주제도 '타자-마이너리티-디아스포라'였다. 아마도 요즘 가장 유행하는 주제가 아닌가 싶은데, '소수성의 정치학'이란 주제도 그런 면에서 보자면 '소수적' 주제는 아니다. 거기서 내가 관심을 갖는 건 '소수성의 아포리아'이다. 들뢰즈의 정의를 따라 어떤 표준 혹은 '지배적 상태'를 다수성이라고 한다면, '소수성'은 언제나 상대적으로만 규정될 수 있다. 따라서 “소수는 모든 사람이다"는 규정은 아포리아적이다. 그것이 참이라면 "다수는 모든 사람이다"라는 반대적 규정 또한 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소수이면서 다수이다(장애인이 '소수성'이라면, 정상인은 무어라고 규정되는가? 혹은 우리는 알고보면 저마다 '장애인'이라고 규정해야 하는가?). 나는 차라리 그러한 이중성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나, 라고 생각한다(<소수성의 정치학>에 실린 글들은 모두 '소수성의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을까?). 언제나 '다수성'을 전제하며, 그에 따라 대타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탈근대적 혁명'의 기획은 그 유예의 기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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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저자들을 만나는 일은 어릴 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던 일 만큼이나 신나는 일이다(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물론 책으로 사귀는 저자들은 '일방적인 면식'이라는 점에서 '우리, 친구 아이가?'라고 고집하기엔 멋쩍지만. 지난주에 그렇게 사귄 친구에 일본의 근대사상사학자 '고야스 노부쿠니'가 있다("일본에도 '사상'이 있는가?"란 관련 페이퍼는 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aperId=1014133).

 

 

 

 

이번에 <일본근대사상비판>(역사비평사, 2007)이 번역돼 나온 저자는 1933년생이니까 나이 지긋하다. 알고보니까 역사비평사에서는 아예 고야스 노부쿠니의 '사상사연구' 시리즈를 기획하고 <동아 대동아 동아시아>(역사비평사, 2005), <귀신론>(역사비평사, 2006)에 이어서 이번에 세번째 책을 출간한 것인데, 앞으로 <한자론>,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을 정밀하게 읽다>가 더 나올 책으로 목록에 올라와 있다(<야스쿠니의 일본, 일본의 야스쿠니>(산해, 2005)는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다. 역자는 <일본근대사상비판>과 마찬가지로 김석근 교수).

 

 

 

 

일본 사상사에 관하여 한 저자의 책이 이렇듯 집중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마루야마 마사오에 이어 두번째가 아닌가 싶고, 실제로 고야스 자신이 마루야마의 사상사를 비판/극복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후쿠자와 유키치 다시 읽기' 프로젝트에서도 암시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을 정밀학 읽다>는 마루야마의 <'문명론지개략'을 읽는다>(문학동네)를 막바로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이다(마루야마 책은 역자와 출판사도 '옮긴이의 글'에 나와 있지만 행방을 찾아볼 수 없다. 근간 예정인 책인 듯하다. 그런데 정작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은 왜 소개되지 않는 걸까?). 요컨대, 일본의 근대와 근대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후쿠자와-마루야마-고야스'의 핫라인을 읽어둘 필요가 있겠다. 물론 현재로선 미래를 기약할 수밖에 없는 독서계획이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1996년에 출간된 저자의 <근대적 지식의 고고학>을 증보해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역자에 따르면 저자가 시도한 것은 "일본 '근대'의 '지', 특히 일본에서의 근대적 지식과 학문에 대한 근원적 비판, 다시 말해 일종의 '지식고고학적'적 탐구라 할 수 있"다. 근대적 국민국가는 "국제정치 내지 정치사적으로 근대 세계시스템 내에서 '주권국가'라는 독립된 행위자로서 공인받는 것이라면, 사상사적으로도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근대적 지식의 형성을 수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책의 부제가 '국가-전쟁-지식인'인 것은 이와 관련된다(저자는 이전 타이틀인 '근대적 지식의 고고학'이 메시지를 훨씬 더 잘 전달해준다는 뜻을 역자에게 전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물론 '지식의 고고학'은 푸코의 방법론이며 그러한 탈근대적 입장을 통해서 "근현대 일본사와 일본사상을 비판적으로 '해체'해가면서 동시에 '재구성'해가고 있"는 것이 고야스의 작업이라고 한다. 우리도 지식경영서들 틈에 지식고고학 책 한두 권쯤은 가져도 좋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고야스의 책과 함께 주문했던 책은 피터 버크의 <지식>(현실문화연구, 2006)이다. 피터 버크의 <이미지의 문화사>(심산, 2005)를 최근에 집어들었던 사정과 연관이 되는데(같은 역자의 작품이기도 하다), 국역본은 제목에 덧붙여 '그 탄생과 유통에 대한 모든 지식'이란 장황한 부제를 달고 있지만 원제는 <지식의 사회사: 구텐베르크에서 디드로까지>이다. 그냥 '지식의 사회사'란 제목이 더 섹시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아직 구입하지 않은 책으로 눈길을 끄는 건 제임스 버크의 <지식혁명이 남긴 위대한 유산>(청아출판사, 2001). "서구 지성사와 발명사의 '다이제스트' 판"이라고 하는데 미더운 저자인지는 모르겠다.  

07. 05. 05.

P.S. <일본근대사상비판>에 대한 알라딘의 소개는 "<에도 사상사 강의>, <방법으로서의 애도> 등으로 국내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고야스 노부쿠니의 지식 고고학 저서. 원래 제목이었던 <근대적 지식의 고고학>에서 잘 보여지듯이 동아시아의 세계화 과정에서 일본 제국을 실현한 일본, 그 속에 형성되(*형성돼) 있던 지식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다."라고 돼 있다.

첫문장은 알라딘의 것인지 출판사 홍보자료의 것인지 모르겠지만 "<에도 사상사 강의>, <방법으로서의 애도> 등으로 국내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이란 표현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나는 혹시나 해서 여기저기 검색해보았지만 <에도 사상사 강의>나 <방법으로서의 애도>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국내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것이 되나? 나는 '국외독자'인가? 게다가 <방법으로서의 도>는 <방법으로서의 에도>의 오기이다. 사실 '애도'란 말에 이끌려서 저자의 홈피까지 들어가봤지만 그가 낸 책은 <方法としての江戸>(2005)였다. 애도까지는 아니지만 유감이다...

 

 

 

 

P.S. 본문에서 근간 예정인 것 같다고 적은 마루야마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문학동네, 2007)가 드디어 출간됐다. 8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이다(오랜만에 '중량감'이 느껴지는 책이 출간되어 반갑다). 구내서점에 갔다가 실물을 보게 됐는데, <문명론의 개략>이 재출간된다면 같이 읽어봄 직하다. 참고로, <문명론의 개략>(홍성사, 1987)의 번역자이기도 한 정명환 선생의 후쿠자와 유키치론('후쿠자와 유키치의 세권의 책')은 비평집 <문학을 생각하다>(문학과지성사, 2003)에 수록돼 있다.  

07.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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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ology 2007-05-05 23:03   좋아요 0 | URL
<문명론의 개략>(광일문화사, 1989). 절판되었지만 소개되긴 했지요.. 재미있는 책이 많이 소개되는 것 같군요..

로쟈 2007-05-05 23:19   좋아요 0 | URL
네, 정명환 선생의 번역으로 <문명론의 개략>(홍성사, 1987)로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광일문화사판도 같은 역자네요). 다시 찍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는 의문입니다...

로쟈 2007-05-06 00:53   좋아요 0 | URL
역자에 따르면 <근대적 지식의 고고학>을 근간으로 하고 거기에 네 편의 글을 덧붙인 것이 <일본근대사상비판>이라고 합니다.

열매 2007-05-06 01:58   좋아요 0 | URL
마루야마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것인가요? 검색에는 안나오는데요...

로쟈 2007-05-06 10:18   좋아요 0 | URL
본문에 적었지만 근간예정인 것 같습니다...

열매 2007-05-07 00:54   좋아요 0 | URL
번역 나온 줄 알고 흥분해서 못본듯^^;
고야스 노부쿠니의 제자라는 분의 일본사상사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고야스는 일본에서 동경대 학자들로부터 '오사카 해체학파'라고 불리운다고 하더군요. 자기만의 학설보다는 주류 담론에 대한 저항적인 담론을 내는 것에 대한 비아냥인 것처럼 들렸습니다.
여하튼 근대 동아시아 삼국의 개항 전후의 사상은 여러 분야에서 공백으로 남아있는데, 마루야마의 <번역의 사상>을 비롯한 여러 책들이 번역되어 나왔음 좋겠군요.

로쟈 2007-05-07 01:09   좋아요 0 | URL
동경대를 나와도 주류로는 안 끼워주는 모양이군요...
 

어린이날이라지만 '생계'에 매달려 있는지라 가족들은 놀러 내보내고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커피나 마실 시간에(잘못 따라놓은 쥬스를 마시면서) 엊저녁에 읽은 리뷰 기사나 옮겨놓는다. 며칠 뒤 어버이날에 더 걸맞는 기사이지만 사정상 어버이날 행사도 다음 주말쯤으로 미뤄놓은지라 이래저래 反가족적적인 아빠와 남편과 아들 노릇을 하는 한 주가 될 듯하다(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칠순의 아들이 아흔의 노모를 모시고 중국 전역을 여행하는 '해외토픽'감의 사연을 담은 첵이 최근에 출간됐고 기사는 그 리뷰이다.

문화일보(07. 05. 04) 中 대륙 울린 ‘칠순 효자’의 사모곡

책을 읽다 몇 번이나 책장을 덮었습니다.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가슴이 먹먹해져 더 이상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습니다. 하릴없이 서성거리며 한 숨을 돌리고 나서야 다시 책을 집어들 수 있었습니다. 책은, 일흔네살의 아들이 아흔아홉의 노모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중국 전역을 여행하는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부인과 사별하고 자식들까지 분가시킨 왕일민(王一民)씨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홀어머니가 살고 계신 흑룡강(黑龍江)성 탑하(塔河)로 갑니다. 이곳은 중국의 동북에서도 북쪽 끝이지요.



탑하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몇 년을 살던 왕씨는 어느날 어머니에게 여행을 떠나지 않겠느냐고 묻습니다. 어머니가 자신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삶의 생채기를 끌어안고 사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어머니, 세상구경 가실래요?” “세상구경? 어떻게?” “제가 어머니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떠나는 거예요.”

이렇게 시작된 여행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최종 목적지인 서장(西藏)을 향합니다. 티베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노모가 무슨 이유에선지 그곳까지 가자고 나선 까닭이지요. 물론 그 거리가 얼마나 먼지 노모는 짐작도 못 합니다. 단지 지도를 보고 “이렇게 쭉 가면 되겠네”하며 마치 이웃집 나들이 가는 마냥 쉽게 여깁니다.



일흔네살 아들은 노모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길가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과 풀잎에도 노모는 즐거워합니다. 갑작스런 소나기를 만나고서야 우비를 준비하고, 가파른 산을 넘어가며 수레를 끌기 위해 밧줄을 마련하는 등 도중에 필요한 것들을 갖춰가면서 이들은 조금씩 여행에 익숙해져 갑니다.

노모는 수레에서 밤을 새우고, 아들은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구들 삼아 이슬을 맞으며 잠을 청합니다. 하루 종일 페달을 밟고, 고갯길에선 밧줄을 어깨에 걸쳐 수레를 끌면서 아들은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어머니를 모십니다. 어머니가 칼국수를 먹고 싶다고 하자 아들은 길가에 수레를 세우고 부랴부랴 준비합니다. 밀가루 반죽을 밀기 위해 땅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조심조심 밀가루를 폅니다. 신문지가 찢어지고 반죽에 흙이 묻지만, 아들은 묻은 흙을 털어내고 정성껏 칼국수를 만듭니다. 그저 소금물에 면만 넣고 끓인 칼국수지만 노모는 맛있다며 더 달라고 합니다.

이들의 사연은 중국 중앙방송, 흑룡강TV 등 30여개 방송사에서 앞다퉈 다뤄 중국 전역에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여행길 곳곳에서 모자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대 마지막 효자’라며 아들을 치켜세웁니다. 하지만 아들은 이 같은 세상의 환대를 탐탁지 않아 합니다. 자신은 단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여행길에 나섰을 뿐 세상이 알아주기를 바란 것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자신을 높이 치켜세움으로써 효도를 보통사람들이 행할 수 없는 지고지순한 행위인 양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아들은 ‘금세기 마지막 효자라는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당연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평가받는다는 것은 여러 모로 부담되는 일입니다. 무얼 어떻게 하는 것이 불효인지는 잘 압니다. 그저 불효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어머니를 대하고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절강(浙江)성 지나 복건(福建)성 깊숙이 들어선 산골에서 모자는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노모의 끼니는 챙기면서도 비상식량이 모자란다고 생각한 아들은 두 끼를 굶습니다. 꼬박 사흘이 걸려 산에서 빠져나온 모자를 보고, 인근 마을 사람들은 기적이라며 닭과 돼지를 잡아 대접합니다. 이처럼 사연 하나마다 더할 나위 없는 효심이 드러나, 읽는 이를 웃기기도 울리기도 합니다. 노모의 기색을 항상 살피며, 말 한마디 표정 하나라도 거스르지 않으려는 아들의 효심은 새삼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2년여에 걸쳐 3만㎞를 돌아본 이들의 여행길은 서장의 라싸까지 이르지 못하고 중국 최남단 해남(海南)섬에서 꺾입니다. 이미 100세를 넘긴 노모가 점점 기력이 쇠잔해지는 것을 보다 못한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지요. 하지만 서장까지 가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은 책 2부에서 결국 이뤄집니다. 더욱 감동적인 사연이 펼쳐지지요.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유현민씨는 한국작가입니다. 지난 2002년 중국에서 유적을 답사하고 있던 유씨는 이들 모자의 사연을 듣고 아들을 만나기 위해 2년여에 걸쳐 왕씨를 수소문했습니다. 친구의 집에 머물고 있는 왕씨를 겨우 만난 유씨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합니다. 하지만 왕씨는 “그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을 뿐이지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려 한 일이 아니다”면서 단호히 거절합니다. 이미 숱한 중국 작가들의 똑같은 청도 뿌리쳐 왔던 왕씨였습니다.

밤새 술잔을 나눈 두 사람은 그저 이야기만 주고 받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펑펑 쏟아진 함박눈은 떠나려던 한국작가의 발길을 잡고 맙니다. 순간, ‘어머니가 생전에 가보고 싶어하시던 한국에서 책이 나오면 어머니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왕씨는 결국 유씨에게 사연을 털어놓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이후 일주일에 걸쳐 두 사람은 동고동락하며 같이 지냈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해서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선을 보이게 됐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책에서 인명과 지명은 모두 한국식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왕씨가 이를 원했다는군요. 굳이 중국식 발음을 피한 것은 그만큼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신문표기법에도 어긋나지만 왕씨의 뜻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기사에서도 이를 따랐습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바랍니다.(김영번 기자)

07. 05. 05.

P.S. 늙은 모자는 처음에 목표했던 티베트의 '서장'에는 가지 못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이' 서장 가는 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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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서 연재되고 있는 '사진으로 보는 러시아의 20세기'의 두번째 편이다. '붉은 혁명'은 물론 1917년의 10월 혁명을 가리킬 텐데, 사진은 1945년 2차 대전의 종전 무렵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다음주면 종전(러시아로서는 승전) 62주년이 되는군...

 

중국과 영국에 이어 지난 20세기 러시아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한 <20세기 포토다큐 세계사 3-러시아의 세기>(지은이 브라이언 모이나한)를 연재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장무도회에서 1917년 혁명으로, 스탈린의 잔혹한 시대에서 냉전의 시대로, 글라스노스트에서 1993년의 제2차 혁명으로, 그리고 현대 러시아의 혼란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솔제니친,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 등 그들의 놀랍고도 극적인 모습들이 실려있다. 여기 대부분의 사진은 공개된 적이 없는 것으로 생생한 현장감이 살아있다. 이번에도 출판사 ‘북폴리오’의 도움을 받았다. 러시아의 세기는 모두 6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순서는 1. 로마노프 왕조의 나라 2. 붉은 혁명 3. 볼셰비키 4. 예술의 꽃 5. 노동자의 삶 6. 사회주의의 죽음 등이다.

한겨레(07. 05. 04) 사진으로 보는 러시아의 20세기 ② 붉은 혁명

» 정치범들. <북폴리오> 제공
정치범들 = 2월 쿠데타가 시작되고 처음 며칠 동안 페트로그라드의 슐루셀베르크 요새에서 정치범들이 석방되었다. 볼셰비키는 유능하지 못한 음모가들이어서 차르의 비밀경찰이 쉽게 침투했다. 혁명 36시간 전에 레닌의 여동생을 포함한 수도의 마지막 대규모 그룹이 체포되었다. 따라서 볼셰비키는 거의 어떠한 역할도 못 했고, 레닌과 트로츠키는 모든 사태가 종결된 뒤 망명지에서 돌아왔을 뿐이었다. 깃발에 적힌 문구는 이렇다. “감옥 문을 연 인민 만세”, “모두 다 인민을 위해 : 공장, 토지, 자유.”

» 제국을 끝장낸 사람들. <북폴리오> 제공
제국을 끝장낸 사람들 =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의 병사 분과가 국가두마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모든 색깔의 좌파 대표들을 포함한 소비에트는 사진의 플래카드에서 보듯이 아직 볼셰비키의 도구가 아니었다. 제일 위 왼쪽에 있는 플래카드에는 “레닌 타도”라고 쓰여 있다. 또 다른 플래카드에는 “민족의 자유를 위한 전쟁…… 독일 군국주의를 완전히 파괴할 때까지”라고 적혀 있다.

» 내전의 결정적인 해. <북폴리오> 제공
내전의 결정적인 해 = 1919년 서부 러시아에서 부상당한 적군들. 몇몇 전선에서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로 진격한 백군은 근거지를 벗어나면서 약해진 반면, 적군은 전선이 압축되어 전선들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더욱 강해졌다.

» 내전의 붉은 영웅. <북폴리오> 제공
내전의 붉은 영웅 = 1918년 기관총 사수 안톤 블리즈냐크. 소매의 줄무늬가 보여주듯이 블리즈냐크는 13번 부상당하고 한쪽 눈을 잃었다. 손에 든 시가는 보상이다. 트로츠키의 장갑열차는 내전 기간에 구하기 어려웠던, 특별히 마련한 담배와 시가들을 싣고 다녔고 트로츠키는 이것들을 우수한 병사들에게 나눠주었다.

» 당 활동가. <북폴리오> 제공
당 활동가 = 검은 셔츠를 입은 당 활동가가 추바쉬 공화국에서 농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쿨라크, 즉 부농에 대해 일종의 히스테리 상태를 조성한다. “그들은 마술에라도 걸린 양 꼬마들을 ‘쿨라크 짐승들’이라 부르고 ‘흡혈귀’라고 소리치면서 총으로 사람들을 위협하곤 했다.”라고 한 목격자는 썼다. “그들은 이른바 쿨라크를 혐오스럽고 역겨운 소, 돼지로 간주했다. 쿨라크는 영혼이 없었다. 쿨라크는 악취가 났다. 쿨라크는 모두 성병에 걸렸다. 쿨라크는 인민의 적이었다.”

» 코러스 라인. <북폴리오> 제공
코러스 라인 = 1936년 선전팀이 투르크메니스탄의 마을들에 당 노선을 보여주고 있다. 당은 끊임없이 선전을 해댔다. 그것은 피할 수 없고 계속 되풀이되었으며 바다 위에 있는 배의 엔진 소리처럼 끊임없이 지속되는, 모든 당 활동의 배경이었다. 깃발과 슬로건 없이는 어떤 추수도 어떤 파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 베를린 상공의 붉은 깃발. 사진/Y. 할데이. <북폴리오> 제공
베를린 상공의 붉은 깃발 = 제국의회 의사당 꼭대기를 오르는 러시아 병사. 1945년 4월 30일 이른 오후 베를린 상공에 붉은 깃발을 내걸기 위해 러시아 병사가 제국의회 의사당 꼭대기에 오르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은 파괴된 도시로부터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살했다. 주검은 러시아군 카츄샤 로켓의 일제 포격으로 쓰레기장에서 불탔다. 이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독일군은 제국 의사당 지하에서 전투를 계속했다. 그들은 5월 2일 새벽까지 버텼다. 러시아군의 총성은 그날 오후 3시에 멈췄다.

07. 05.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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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비평에서 흥미로운 리뷰 기사 하나를 옮겨놓는다. 이광수와 베르그송의 관계를 다룬 논문에 대한 소개인데, 이광수를 낭만주의자로 이해하는 논문의 결론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이광수에게서 '감상적 계몽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지울 수 있는가?) '이광수와 베르그송'이라는 아이템 자체는 신선해 보인다. 지난 3월의 '사회적 독서' 목록으로 <무정>을 올려놓은 적이 있는데, 그 참고자료로 분류해둔다.  

담비(07. 05. 03) 이광수가 과연 계몽주의자인가

이광수를 계몽주의자가 아닌 낭만주의자로 해석하는 문제적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철호 동국대 강사(국문학)는 최근 ‘비교문학’ 제41집에 발표한 ‘생명으로서의 문학-‘무정’의 생명론과 낭만적 자아의 문제’에서 1920년대에 이루어진 이광수의 베르그송 독서를 통해 이같은 논리를 개진하고 있다.

1920년을 전후해서 이광수는 새로운 문학세대를 준엄하게 설교하는 자로 군림했다. 그는 ‘창조’, ‘폐허’, ‘백조’, ‘영대’ 동인들을 도덕이라는 심판대 위에 불러 퇴폐한 것들이라고 규정해버렸다. 고민, 허무, 죽음, 눈물 등의 문학적 수사에 대해서 이광수는 민족 혹은 민족문학의 발전을 훼손시키는 데카당스의 망국정조일 뿐이라며 일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광수가 이들 동인지세대와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기성의 권위나 억압에서 자아의 해방을 역설하는 데 가장 나섰던 인물은 바로 이광수였다. ‘무정’은 정의 만족이 곧 문학이라는 이광수식 믿음의 산물이다. 이광수는 이형식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것을 실현했으며 복잡한 내적 과정과 자아와 타자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영적 체험을 전경화시키는 등 많은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이광수가 다이쇼의 생명주의 사상에 기대 자신의 지적 갱생을 도모했다는 것은 그의 자전적 소설들에 암시돼 있다. 교사생활을 청산한 후 쓴 ‘金鏡’의 경우, 일본유학때 까지의 이광수의 내밀한 심경이 토로되어 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난 수년간의 교사생활을 덧없이 반추한다. 이 단편의 중심내용은, 화자가 자기희생으로 일관했던 교사시대와결별하고 새로운 지적 포부를 토로하는 데에 있다. 톨스토이와 바이런을 난생 처음 접한 후 ‘번민’, ‘고통’, ‘죽음’에 시달리던, 그래서 그의 “靈에 폭풍광란에 雷雨까지 더하여 거의 狂할 뻔하였”던 유학시절은 현재의 교사생활에 견주면 오히려 삶의 활력으로 충만했던 시절이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자신의 학식이 턱없이 부족함으로 토로하며 베르그송을 거론하는 부분이다. “벨그손의 철학을 외우다가 이해하지 못할 학리와 술어가 많음을 보고, 비로소 규범과학을 연구함이 연학의 초보임을 깨달아”하는 부분이다.

그가 미처 이해하지 못한, 그러나 도쿄 유학의 실행을 심리적으로 가능케 한 책이란 다이쇼 시기 전반에 걸쳐 널리 애독된 필독서 중 하나였던, 니시기다 요시토미의 ‘베르그송의 철학’(1913)이었다. 이 시기에 일본지식인 사회에 널리 회자한 베르그송의 ‘생의 철학’은 니시다 기타로에게 고스란히 전수되면서 다이쇼기 ‘생명주의’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1910년대 후반부터 동인지 세대의 문학 청년들 역시 니시다 기타로가 일본적 맥락에서 번안하고 집성한 베르그송의 생철학 사상에 적잖이 침윤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베르그송 철학을 원전이 아닌 다른 매개, 이를테면 이쿠다 쵸코, 쿠리야가와 하쿠손 등을 통해 수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 직접 영향을 받은 작가들로는 김동인이나 염상섭이 대표적이지만, 그 당시 일본에 유학중이었던 김여제, 주요한, 최승구 등도 시라카바의 이상주의적인 경향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창작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광수를 계몽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은 문학사의 실상과 부합하지 않는다. 그의 주된 관심이 불합리한 관습과 윤리도덕의 혁신에 있었던 만큼, 이광수의 사회적 위상을 계몽주의의 차원에서 해석할 여지가 없지 않지만, 그는 ‘무정’을 연재했을 때나 데카당스의 미학을 비난하며 민족윤리에 봉사하는 문학의 소임을 강조했을 때나 낭만주의자로서 군림했다(*나로선 지나친 단순화이며 논리적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1920년대 이후의 이광수는 초기의 진보적 성격을 상실해버렸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 시기의 이광수는 비판적 활력을 상실한, 화석화된 낭만주의자의 잔영을 보여줄 따름이라고 이철호 씨는 결론짓는다.(리뷰팀)

07. 05. 03.

P.S. 이광수의 계몽적 기획와 <무정>에 관한 이해에 유익한 자료는 김현주의 <이광수와 문화의 기획>(태학사, 2005)이다. 저자의 학위논문을 보완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무정>에서 '정'이 갖는 의미에 관하여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시각에 더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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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5-04 01:32   좋아요 0 | URL
이쪽 분야로는 김현주의 논문도 좋지만 손유경의「한국 근대소설에 나타난 ‘동정’의 윤리와 미학에 관한 연구」(2006), 도 꽤나 자세히 이광수가 보여준 동정의 미학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동정 담론의 기저에 망탈리테가 깔려있다고 보는게 손유경 논문의 핵심인 것 같더군요. 이광수의 계몽은 동정의 공적 발휘이며 상호부조론에 의해 타인의 고통을 개인이 구체적 감각으로 인지하면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지위와 계급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동정이 존재할 수 없다며 막연한 연민으로써의 인도주의를 비판하고 동정의 사상, 이념적 연동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광수에 대한 여러 연구자의 새로운 접근은 근대문학의 이분법적 구도를 탈피하는 유효한 접근이자 가능성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기인 2007-05-04 07:10   좋아요 0 | URL
오옷, 소이부답님 역시 부지런하시네요! 저는 아직도 손유경 선생님 논문을 못 읽었는데 -_-;;;; 등잔밑이 어둡다는(말이 되는지? -_-;;; ) 여튼 이광수 주요한 등이 시라카바학파의 영향을 받은 것도 맞고, 낭만주의적 경향이 있는 것도 긍정할 수 있는데 낭만주의와 계몽주의를 당대 조선의 상황에서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반이성/이성이라는 도식인지요... 당대 조선에서 계몽주의라는 운동이 낭만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도 가능할 듯 한데요 ^^

기인 2007-05-04 07:14   좋아요 0 | URL
뭐 원문 글을 읽어보고 판단해야할 문제이지만, 그래도 이런 도발적(^^) 문제제기들이 활력을 주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국문학 공부하다보면 그래도 2~3년에 한번은 이렇게 재미난(?)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07-05-04 15:08   좋아요 0 | URL
전공자들은 다 모이셨군요.^^ 손유경씨의 논문은 아직 출판이 안된 거지요?(논문 파일은 어제 다운받아놓았습니다). 2-3년에 한번씩 재미난 일이 터진다면, 가물에 콩나는 식인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