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저자들을 만나는 일은 어릴 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던 일 만큼이나 신나는 일이다(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물론 책으로 사귀는 저자들은 '일방적인 면식'이라는 점에서 '우리, 친구 아이가?'라고 고집하기엔 멋쩍지만. 지난주에 그렇게 사귄 친구에 일본의 근대사상사학자 '고야스 노부쿠니'가 있다("일본에도 '사상'이 있는가?"란 관련 페이퍼는 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aperId=1014133).

 

 

 

 

이번에 <일본근대사상비판>(역사비평사, 2007)이 번역돼 나온 저자는 1933년생이니까 나이 지긋하다. 알고보니까 역사비평사에서는 아예 고야스 노부쿠니의 '사상사연구' 시리즈를 기획하고 <동아 대동아 동아시아>(역사비평사, 2005), <귀신론>(역사비평사, 2006)에 이어서 이번에 세번째 책을 출간한 것인데, 앞으로 <한자론>,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을 정밀하게 읽다>가 더 나올 책으로 목록에 올라와 있다(<야스쿠니의 일본, 일본의 야스쿠니>(산해, 2005)는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다. 역자는 <일본근대사상비판>과 마찬가지로 김석근 교수).

 

 

 

 

일본 사상사에 관하여 한 저자의 책이 이렇듯 집중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마루야마 마사오에 이어 두번째가 아닌가 싶고, 실제로 고야스 자신이 마루야마의 사상사를 비판/극복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후쿠자와 유키치 다시 읽기' 프로젝트에서도 암시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을 정밀학 읽다>는 마루야마의 <'문명론지개략'을 읽는다>(문학동네)를 막바로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이다(마루야마 책은 역자와 출판사도 '옮긴이의 글'에 나와 있지만 행방을 찾아볼 수 없다. 근간 예정인 책인 듯하다. 그런데 정작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은 왜 소개되지 않는 걸까?). 요컨대, 일본의 근대와 근대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후쿠자와-마루야마-고야스'의 핫라인을 읽어둘 필요가 있겠다. 물론 현재로선 미래를 기약할 수밖에 없는 독서계획이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1996년에 출간된 저자의 <근대적 지식의 고고학>을 증보해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역자에 따르면 저자가 시도한 것은 "일본 '근대'의 '지', 특히 일본에서의 근대적 지식과 학문에 대한 근원적 비판, 다시 말해 일종의 '지식고고학적'적 탐구라 할 수 있"다. 근대적 국민국가는 "국제정치 내지 정치사적으로 근대 세계시스템 내에서 '주권국가'라는 독립된 행위자로서 공인받는 것이라면, 사상사적으로도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근대적 지식의 형성을 수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책의 부제가 '국가-전쟁-지식인'인 것은 이와 관련된다(저자는 이전 타이틀인 '근대적 지식의 고고학'이 메시지를 훨씬 더 잘 전달해준다는 뜻을 역자에게 전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물론 '지식의 고고학'은 푸코의 방법론이며 그러한 탈근대적 입장을 통해서 "근현대 일본사와 일본사상을 비판적으로 '해체'해가면서 동시에 '재구성'해가고 있"는 것이 고야스의 작업이라고 한다. 우리도 지식경영서들 틈에 지식고고학 책 한두 권쯤은 가져도 좋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고야스의 책과 함께 주문했던 책은 피터 버크의 <지식>(현실문화연구, 2006)이다. 피터 버크의 <이미지의 문화사>(심산, 2005)를 최근에 집어들었던 사정과 연관이 되는데(같은 역자의 작품이기도 하다), 국역본은 제목에 덧붙여 '그 탄생과 유통에 대한 모든 지식'이란 장황한 부제를 달고 있지만 원제는 <지식의 사회사: 구텐베르크에서 디드로까지>이다. 그냥 '지식의 사회사'란 제목이 더 섹시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아직 구입하지 않은 책으로 눈길을 끄는 건 제임스 버크의 <지식혁명이 남긴 위대한 유산>(청아출판사, 2001). "서구 지성사와 발명사의 '다이제스트' 판"이라고 하는데 미더운 저자인지는 모르겠다.  

07. 05. 05.

P.S. <일본근대사상비판>에 대한 알라딘의 소개는 "<에도 사상사 강의>, <방법으로서의 애도> 등으로 국내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고야스 노부쿠니의 지식 고고학 저서. 원래 제목이었던 <근대적 지식의 고고학>에서 잘 보여지듯이 동아시아의 세계화 과정에서 일본 제국을 실현한 일본, 그 속에 형성되(*형성돼) 있던 지식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다."라고 돼 있다.

첫문장은 알라딘의 것인지 출판사 홍보자료의 것인지 모르겠지만 "<에도 사상사 강의>, <방법으로서의 애도> 등으로 국내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이란 표현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나는 혹시나 해서 여기저기 검색해보았지만 <에도 사상사 강의>나 <방법으로서의 애도>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국내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것이 되나? 나는 '국외독자'인가? 게다가 <방법으로서의 도>는 <방법으로서의 에도>의 오기이다. 사실 '애도'란 말에 이끌려서 저자의 홈피까지 들어가봤지만 그가 낸 책은 <方法としての江戸>(2005)였다. 애도까지는 아니지만 유감이다...

 

 

 

 

P.S. 본문에서 근간 예정인 것 같다고 적은 마루야마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문학동네, 2007)가 드디어 출간됐다. 8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이다(오랜만에 '중량감'이 느껴지는 책이 출간되어 반갑다). 구내서점에 갔다가 실물을 보게 됐는데, <문명론의 개략>이 재출간된다면 같이 읽어봄 직하다. 참고로, <문명론의 개략>(홍성사, 1987)의 번역자이기도 한 정명환 선생의 후쿠자와 유키치론('후쿠자와 유키치의 세권의 책')은 비평집 <문학을 생각하다>(문학과지성사, 2003)에 수록돼 있다.  

07.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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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ology 2007-05-05 23:03   좋아요 0 | URL
<문명론의 개략>(광일문화사, 1989). 절판되었지만 소개되긴 했지요.. 재미있는 책이 많이 소개되는 것 같군요..

로쟈 2007-05-05 23:19   좋아요 0 | URL
네, 정명환 선생의 번역으로 <문명론의 개략>(홍성사, 1987)로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광일문화사판도 같은 역자네요). 다시 찍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는 의문입니다...

로쟈 2007-05-06 00:53   좋아요 0 | URL
역자에 따르면 <근대적 지식의 고고학>을 근간으로 하고 거기에 네 편의 글을 덧붙인 것이 <일본근대사상비판>이라고 합니다.

열매 2007-05-06 01:58   좋아요 0 | URL
마루야마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것인가요? 검색에는 안나오는데요...

로쟈 2007-05-06 10:18   좋아요 0 | URL
본문에 적었지만 근간예정인 것 같습니다...

열매 2007-05-07 00:54   좋아요 0 | URL
번역 나온 줄 알고 흥분해서 못본듯^^;
고야스 노부쿠니의 제자라는 분의 일본사상사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고야스는 일본에서 동경대 학자들로부터 '오사카 해체학파'라고 불리운다고 하더군요. 자기만의 학설보다는 주류 담론에 대한 저항적인 담론을 내는 것에 대한 비아냥인 것처럼 들렸습니다.
여하튼 근대 동아시아 삼국의 개항 전후의 사상은 여러 분야에서 공백으로 남아있는데, 마루야마의 <번역의 사상>을 비롯한 여러 책들이 번역되어 나왔음 좋겠군요.

로쟈 2007-05-07 01:09   좋아요 0 | URL
동경대를 나와도 주류로는 안 끼워주는 모양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