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가기 대 반복하기'는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2006)의 결론이다. '되돌아가기'와 '반복하기'의 목적어로 걸려 있는 것은 '레닌'이다. 즉, 지젝이 대비시키고자 하는 것은 '레닌으로 되돌아가기'와 '레닌을 반복하기'의 차별성이고, '레닌을 반복하기'야말로 지젝 고유의/특유의 정치적 전략 혹은 프로그램을 집약해주는 표현이다.

 

 

 

 

비록 작년 여름에 출간된 책이지만, 그리고 때로 부당한 폄하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나는 <혁명이 다가온다>야말로 지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에서 '혁명'이 갖는 의미와 그 가능성을 질문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유익한 책이며(왜냐면 분량이 제일 만만하니까!) 특별히 10월 혁명 90주년이 되는 올해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87년 6월을 기념하는 일은 한 30년쯤 뒤로 미뤄두면 안될까?).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도서출판b, 2007)를 좀 훑어보면서 올 여름에 이 두권의 책을 정리해두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거기에 밀린 숙제를 보태자면 <까다로운 주체>(도서출판b, 2005)와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를 마저 읽어야겠다). 그것이 몇 차례 관련 페이퍼를 쓴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이 책을 손에 든 한 가지 이유이다.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이 책이 생각만큼 널리, 그리고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 이면에서 분량만큼 만만치는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읽히고 너무 쉽게 평가되고 너무 쉽게 제쳐놓여진다는 점(그래서 그들은 전진하고 있는가?). 지젝은 비의적인 저자가 아니기에 대단한 수수께끼나 퍼즐, 음모 등을 숨겨놓지 않는다. 때문에 그의 책들은 굳이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읽으면 된다. 물론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상으로는 그냥 읽어나가는 게 대놓고 수월하지만은 않다(수월하게 읽히는 가라타니와 비교해서도 그렇다). 번역이 낳는 예기치 않은 장애들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지젝에 대한 오해의 일부는 그러한 장애에 기인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읽어 넘어가기', 혹은 '넘어/너머 읽기'이다. 일단은 '결론'부터 넘어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덕분에 시오랑에 관한 페이퍼가 당분간 미뤄지게 됐다). 혹 몇 분의 독자가 이 책을 좀더 재미있게,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국역본 외에 내가 참조한 건 영어본(2002)과 러시아어본(2003)이다. 이전에 적었지만 국역본은 독어본(2002)을 옮긴 것이며, 이 독어본은 러시아본과 일치한다. 하지만 영어본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영어본은 레닌의 1917년 문건 선집에 지젝인 붙인 후기로 구성돼 있고, 이 후기의 내용이 <혁명이 다가온다>와 대략 일치한다. 하지만 차이가 나는 대목들도 적지는 않다.

"소련의 전체 역사는 프로이트의 로마에 대한 이미지와 같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로마의 이미지에는 현재가 고고학적 유물의 서로 다른 층위라는 겉모습으로 침전되어 있다. 마치 트로이의 일곱 층위(서로 다른 모델)처럼 새로운 층은 앞선 아무것도 아닌 것을 덮고 있어 역사는 더 오래된 시기를 향한 회귀에서 점점 더 깊이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고고학자같이 된다."(265쪽)

프로이트는 생전에 로마를 여러 차례 방문한 것으로 돼 있는데(특히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에 많은 감화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 도시의 역사가 여러 겹의 고고학적 지층이 퇴적돼 있는 걸로 봤다는 것이고 지젝에 따르면 소련사가 바로 딱 그러한 이미지-모델과 비슷한다. 혹은 '또다른 모델(another model)'을 찾자면('서로 다른 모델'이 아니다) '트로이의 일곱 지층'에 비유될 수 있다('층위'보다는 '지층'이 낫겠다). '일곱 지층'이라고 돼 있지만 백과사전의 내용을 참고해보면 전체로는 '아홉 개의 지층'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그 중 트로이에 해당하는 것만을 카운트한 듯하다.  

슐리만과 되르펠트는 집들이 건설되어 사람들이 살다가 마침내는 파괴되어 버린 아홉 기(紀)를 나타내는 9개 주요지층의 순서를 밝혀냈다. 제1~7기 트로이는 요새, 트로아스의 수도, 왕의 가족·신하·노예들이 살았던 왕의 거주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1~5기는 청동기시대 초기(BC 3000경~1900)와 대체로 일치한다. 이 기간 동안의 주민들이 에게 해 제도, 키클라데스 제도, 미노아 문명의 크레타 섬, 헬라도스 문화기의 그리스 본토에 살던 주민들의 선조였을 것이며, 아나톨리아 남서부 또는 시리아로부터 온 것으로 추정된다. 트로이 제6·7기는 청동기시대 중기와 말기(BC 1900경~1100)에 해당한다. 불과 한 세대 동안 지속되었던 제7a기는 BC 13세기경 발생한 화재로 파괴되었는데, 아마도 이때의 트로이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묘사된 프리아모스 왕의 도시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때의 파괴 이후 약 400년간 이곳은 사실상 버려졌다. 그리스인이 처음으로 정착한 것은 제8기이며,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의 일리온은 제9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소련사는 어째서 이러한 도시들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가? "소련의 (공식 이데올로기) 역사는 배제의, 인간의 비인간으로의, 역사의 회고적인 다시 쓰기와 동일한 축적이 아닌가?" 즉, 공식 이데올로기상으로 소련사는 지속적인 배제의 축적이요, 사람들을 비인간으로 내모는 일의 축적이자, 거듭 역사 다시쓰기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탈스탈린화'는 '복권', 즉 당의 과거 정치에서 '잘못'을 인정하는 반대의 과정이라고 신호되었다." '신호되었다'고 옮겨진 단어는 영어본에서는 '지시되었다(indicated)'로, 러시아어본에서는 '수반되었다'로 옮겨졌다. 내 식으로 다시 옮기면, "'탈스탈린화'가 정반대의 과정, 곧 점차적인 '복권'과 당의 과거 '오류들'에 대한 인정을 통해 표시되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논리적이다." 여기서 흥미를 끄는 것은 '점차적인' 복권의 과정/순서이다.

"악마처럼 취급되던 볼셰비키 옛 지도자들의 점진적인 '복권'은 아마 소련의 '탈스탈린화'가 어느 정도(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민감한 지표로 기능할 수 있다." 해서 가장 먼저 복권된 사람들이 1937년에 총살당한 (투하체프스키 같은) 군 지도자들이고 맨마지막으로, 그러니까 고르바초프 시기 공산주의 정권 붕괴 직전에 복권된 이가 부하린이었다.

미하일 투하체프스키(1893-1937)는 소련군 최고사령관(1925-28)을 지낸 고위 장성이지만 1936년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을 순방한 것이 빌미가 되어 이듬해 군내 트로츠키파 조직을 건설하고 독일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그리고 저명한 볼셰비키 니콜라이 부하린(1888-1938)은 혁명직후 <프라우다>지의 편집장을 지냈고 여러 권의 사회주의 경제이론서를 집필했다. 1921년 신경제정책(NEP)을 주도적으로 지지하면서 '우파'의 우두머리가 된다. 역시나 1937년 트로츠키파란 혐의를 뒤집어쓰고 비밀리에 체포되어 이듬해에 처형당했다. 국내엔 <과도기 경제학>(백의, 1994) 등이 번역돼 있으며, 단행본 연구서로는 김남국의 <부하린: 혁명과 반혁명 사이>(문학과지성사, 1993)가 유일한 게 아닌가 싶다. 부하린의 복권은 1988년에 이루어졌다.

"이 최후의 복권은 자본주의로 돌아간다는 명백한 신호였다. 복권된 부하린은 1920년대 '부자가 되자!'라는 유명한 구호를 내걸고 노동자와 농민 간의 동맹을 주창했고 강제 집산화에 반대했다."  이 유명한 구호(슬로건)가 영어로는 "Enrich yourselves!"이다. 딱 "부자되세요!". 부하린의 복권과 함께, 그리고 '부자되세요!'란 구호의 부활과 함께 러시아는 다시 자본주의 사회로 돌아가게 된 것.

그리고 "의미심장하게도 절대 복권될 수 없는 인물, 공산주의자뿐 아니라 반공주의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에게도 배제되는 한 사람, 레온 트로츠키, 혁명의 '떠돌아다니는 유대인', 진정한 반스탈린주의자, '일국 사회주의 건설'의 아이디어에 대립되는 '영구혁명'을 주창한 철천지원수가 있다."(266쪽)

 

 

 

'철천지원수'란 표현은 영어로는 'arch-enemy'이며 러시아어로는 '저주받은 적'('불구대천의 원수')이라고 옮겨져 있다. 1920년대 권력암투의 트로이카 '부하린(우파)-스탈린(중도파)-트로츠키(좌파)'에서 트로츠키만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복권될 수 없는 인물(포지션)로 남아 있는 것(*최근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전기 3부작이 완간되었다 -07. 25.). 

 

 

 

 

"우리는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근원적(기초적) 억압과 무의식 속에서의 부차적 억압 사이의 구별과 위험을 무릅쓰고 나란히 다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물론 트로츠키는, 트로츠키의 배제는 '근원적 억압'에 해당한다. "1990년 이전의 현존 사회주의에서뿐 아니라 1990년 이후의 현존 자본주의에서 심지어는 공산주의에 대해 향수를 가지는 경우도 트로츠키의 영구 혁명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트로츠키는 어떤 자리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아마 '트로츠키'라는 기표는 레닌주의의 유산에서 다시 찾을 가치가 있는 가장 적절한 호칭일 것이다."(266-7쪽)

분량상 레닌주의의 유산으로서의 트로츠키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07. 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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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6-13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맛만 보다가 만 느낌입니다. 후편도 어서 써주시길 ^^

그런데 소련사가 로마의 지질학적 지층과 같은 여러 겹의 지층을 가지고 있다는 비유가 적절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 공식 이데올로기상으로 소련사는 지속적인 배제의 축적이요, 사람들을 비인간으로 내모는 일의 축적이자, 거듭 역사 다시쓰기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인 것 같은데 트로츠키와 같은 여러 당내인물들의 배제가 축적되어온 역사라는 것을 굳이 고고학적 지층과 연계시키는 이유는? 그냥 문학적 수사인 것인지..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요.

로쟈 2007-06-1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님은 그냥 읽어보셔도 될 거 같은데요.^^

yoonta 2007-06-13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다..산다 하고 계속 뒤로 밀리게 되네요. 로쟈님 페이퍼때문이라도 어서 한권 사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

2007-06-28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6-2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지젝의 레닌론이 많은 도움이 되실 거 같습니다. 주객분리론에 대해서도. 제 생각은 7월로 넘어가야 보탤 수 있을 거 같고요.^^;

노승영 2008-10-29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트로츠키 론(『Terrorism and Communism』 서문)을 번역하는 중에
프로이트의 로마 이미지를 검색해 보니 로쟈 님 블로그로 연결되더군요.
지젝이 레닌에게 써먹은 표현을 많이 차용하고 있어서 이 블로그의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번역 비평 글이 있길래 마감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도 다 찾아 읽었습니다.
답례(?)로 제 번역을 올립니다.
혹시 출간 전 원고를 읽어보실 의향이 있으면 연락 주세요.
ⓞ①⑧⑤⑤③①①①③@paran.com

소 비에트 연방의 전체 역사는 프로이트가 로마를 표현한 유명한 이미지와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로마 역사는 여러 겹의 고고학적 지층이라는 형태로 저마다의 현재에 퇴적되어 있다. (또 다른 모델인) 트로이의 일곱 지층과 마찬가지로 새 지층이 이전 지층을 차례로 덮고 있다. 따라서 역사는--앞선 시대를 향해 퇴행하며--고고학자가 깊숙이 더 깊숙이 땅을 파헤치며 새 지층을 발견하듯 나아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비에트 연방의 (공식 이데올로기적) 역사는, 배제하고 인간을 비(非)인간으로 전락시키고 역사를 소급하여 다시 쓰는 행위가 누적된 것이 아니었던가? 따라서 ‘복권’ 과정, 즉 당의 과거 정책에서 ‘오류’를 인정하는 정반대의 과정이 탈(脫)스탈린화의 신호탄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다.

The entire history of the Soviet Union can be comprehended as homologous with Freud’s famous image of Rome, a city whose history is deposited in its present in the guise of the different layers of the archaeological remainders, each new level covering up the preceding one, like (another model) the seven layers of Troy, so that history, in its regression towards ever older epochs, proceeds like the archaeologist, discovering new layers by probing deeper and deeper into the ground. Was the (official ideological) history of the Soviet Union not the same accumulation of exclusions, of turning persons into non-persons, of the retroactive rewriting of history?Quite logically, ‘de-Stalinization’ was signalled by the opposite process of ‘rehabilitation’, of admitting ‘errors’ in the past policies of the party.
 
세계공화국으로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7년 6월
품절


일반적으로 마르크스는 아나키스트와 대립되는 국가사회주의자로 생각됩니다. 마르크스주의자 중에 그런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마르크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회주의이념은 명확히 프루동의 것입니다.(...) 프루동은 경제적 계급 대립을 해소하면, 그리고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면 국가는 소멸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가 그 자체가 자립성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을 그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사고도 계승했습니다. 그가 일시적으로 국가권력을 잡아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자본제경제와 계급사회를 지양한다는 블랑키의 전략을 승인했던 것은 국가주의적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결함은 국가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자립성을 보지 않은 아나키즘에 있는 것입니다. -24-25쪽

(1990년 이후) 국가사회주의가 쇠퇴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리버테리언 사회주의도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리버테리언 사회주의(어소시에이션이즘)가 단순히 이념적이어서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거기에 자본, 네이션, 그리고 국가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소시에이션이즘은 자본, 네이션, 국가를 거절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좋지만, 왜 그것이 존재하는가를 충분히 사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결국 그것들에 걸려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가령 리버테리언 사회주의와 같은 종류가 부활한다고 해도 자본, 네이션, 국가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입니다.-27쪽

내가 이 책에서 생각하고 싶은 것은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는 길, 바꿔 말하면 '세계공화국'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 네이션, 국가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 네이션, 국가는 각기 간단히 부정할 수 없는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지양하려고 한다면 먼저 그것들이 무엇인가를 인식해야 합니다. 단순히 그것들을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자본이나 국가의 현실성을 승인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이념'을 조소하게 될 뿐입니다.-27-28쪽

내가 가장 공감하는 사람은 칸트와 프로이트다. <실천이성비판>이든 <쾌락원칙을 넘어서>든 모두 60살이 지나서 이루어진 훌륭한 작업들이다. 나도 내 생각이 정리된 것은 60살을 먹은 이후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극이 된다. 그들은 80살 정도까지 살았다. 나는 100살까지 하고 싶다. 내 작업은 이제부터다.('옮긴이 후기'에서 재인용)-235-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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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늦게 TV를 켜니 6.10 항쟁 기념식이 끝나고 있었다. 이게 원래 TV로도 방영된 기념식인지 올해가 20주년이어서 처음 방영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학생의 상당수가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른다는 사건이니만큼 이젠 '기념'할 때도 된 듯하다('6월 혁명'이라고 부르자는 '오버'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을 터이다). 관련기사들이 쏟아지는 틈바구니 속에 선불교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벽암록> 완역 소식이 묻혀 있었다. 불교 신자도 아니고 선(禪)에도 평균치 이상의 관심은 갖고 있지 않은 터여서 이 '장서용' 책을 서가에 꽂아놓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생각날 때 도서관에서라도 들춰볼 완역서가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책은 각권 500쪽 내외로 전체 12만원이라 한다). 역자인 지현 스님의 10여년의 노고가 온축됐다고 하니까 더욱 기릴 만하다. 관련기사 두 개를 옮겨놓는다. 알라딘에는 아직 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문화일보(07. 06. 08) 禪 불교의 정수… 10여년 걸쳐 완역 출간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 원나라 초기(1314~1320), 거사 장명원이 불타 버린 ‘벽암록(碧巖錄)’을 되찾아 복간하면서 책 머리에 붙인 말이다. 여기서 ‘종문’이란 ‘선문(禪門, 禪家)’을, ‘제일서’란 첫 번째로 꼽는 책이란 뜻이다. 그만큼 선불교의 정수가 모여 있는 책이 바로 벽암록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로 시작한 선불교는, 그러나 언어와 문자를 통한 탐구로 전승될 수밖에 없었다. 이 언어 문자를 통한 탐구는 송나라 때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는데, 선어록(禪語錄)은 이미 당나라 때부터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었다. ‘조주록(趙州錄)’, ‘임제록(臨濟錄)’등이 당대에 출간된 책이라면, ‘조당집(祖堂集)’(전20권), ‘전등록(傳燈錄)’(전30권)과 같은 방대한 공안사서(公案史書)는 송대에 출간된 책들이다. 이런 책들이 출간된 뒤 공안에 대한 본격적인 주석서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들 가운데 가장 윗자리에 있는 책이 벽암록이다. 벽암록이 나온 뒤 벽암록만큼 불교 선 수행자와 유교 사대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책은 없었다.

벽암록은 완전히 불타 없어졌다 다시 살아난 부활의 책이기도 하다. 벽암록을 쓴 원오극근(1063∼1135)의 제자 대혜종고(1089∼1163)가 벽암록이 출간된 지 30년쯤 뒤 판각과 잔본을 모두 회수해 소각해 버렸다. 수행자들이 벽암록의 본 뜻을 저버린 채 언어만을 익히고 수행은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벽암록은 불에 타거나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벽암록이 불탄 190년 뒤, 거사 장명원이 벽암록을 되살린 것이다.

벽암록은 100개의 공안(公案), 즉 본칙을 중심으로 일종의 머리말인 수시(垂示), 촌평이라 할 본칙 착어(著語), 해석격인 본칙 평창(評唱), 공안에 대한 깨달음을 예지와 영감에 찬 시로 읊은 송(頌), 송의 착어, 송의 평창 등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된 벽암록치고, 수시에서 송의 평창에 이르기까지를 완전히 번역한 책은 없었다. 본칙은 모두 번역했으되, 수시나 착어, 평창 등은 빼고 번역했다.

이번에 나온 책은 국내 최초의 벽암록 완역 해설본으로, 벽암록 전문의 원문을 수록하고 토를 달았다. 벽암록 네개의 이본(異本)을 대조하고, 100칙 공안 하나하나마다 활구(活句·참선으로 깨달아야 할 부분)와 사구(死句·읽어서 이해할 부분)를 일일이 구분해 제시했다. 역주작업에 10년, 출판에 3년이 걸렸다고 한다. 벽암록, 속어 낱말 사전까지 합쳐 전5권에 이르는 대작이다. 불교출판이 난숙해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김종락기자)

동아일보(07. 06. 07) 禪어록의 백미 ‘벽암록’ 완역 출간

“벽암록 번역에 착수하고 나서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긴 했네요. 최선은 다했는데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뤄 낸 일에 비하면 돌아온 답변이 매우 겸손하다. 벽암록(碧巖錄)은 선(禪)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 출가한 스님들도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난해한 선어록의 백미다. 중국에서 나온 이 책의 번역을 시작한 지 9년, 교정과 편집에만 2년 반이 걸린 끝에 총 5권(사전 1권 포함)으로 펴낸 석지현(60·사진) 스님.

벽암록은 선의 문헌 가운데 첫 번째로 꼽는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로 알려져 왔다. 당대 선승들의 선문답과 어록을 담은 ‘조주록’과 ‘임제록’, 송대에 발간된 ‘조당집’ ‘전등록’ 등의 방대한 사서에 대한 주석서가 바로 벽암록이다. 설두중현(980∼1052) 선사가 조당집과 전등록 등의 책에서 가려 뽑은 옛 공안(公案)을 바탕으로 송나라 원오극근(1063∼1135) 선사가 이 책에 수시(垂示·일종의 머리말), 착어(著語·속담과 속어 등으로 이뤄진 촌평), 평창(評唱·본문에 대한 설명과 주석)을 붙인 것이다. 원오의 제자 대혜종고 선사가 “수행은 하지 않고 책만 읽는다”며 나중에 벽암록 판각과 잔본을 모두 회수해 불살라 버렸지만 190년이 지난 뒤 거사 장명원에 의해 전10권으로 부활했다.

그러나 벽암록은 여전히 어렵고 정복이 힘들었다. “선 수행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이 책이 마지막 관문이지요. 이 이상은 없습니다.” 지현 스님은 13세 때 충남 부여 고란사로 출가했다 명상에 심취해 1970년대 중반 인도를 방랑했다. 인도의 명상가 라즈니시의 서적들을 최초로 한국에 소개한 이도 지현 스님이었다. 그는 명상의 끝이 결국 선에 이를 것이라고 결론짓고 1980년 다시 송광사로 재출가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출가 후 덕산 스님에게서 선어록을 공부한 이래 거의 독학하다시피 해 ‘선시감상사전’ 등을 집필하기도 했다. “벽암록은 모두 당송 시대 평민들의 사투리인 속어로 돼 있습니다. 문장체가 아닌 구어체이고 생활용어들입니다. 속어를 공부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당송 때의 속어사전까지 원전을 구해 공부했지요.”

스님은 벽암록을 번역하면서 아예 ‘벽암록 속어낱말사전’을 출간했다. 책을 발간한 민족사 윤재승 사장은 “책 번역하면서 사전 한 권까지 만들어 냈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벽암록이 3, 4종 나왔으나 일부만 번역돼 있거나 해설 없이 출간됐다”며 “돈과는 전혀 관계없는 책이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윤영찬 기자)

07. 06. 10

P.S. 그간에 <벽암록> 번역으로 가장 많이 읽힌 건 안동림 역주의 <벽암록>(현암사, 1999)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아니고 대신에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은 김용옥의 <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통나무, 1998)이다. 불교에 문외한이더라도 교양서로 충분히 일독할 만한 책이다. 그밖에 '선'과 관련하여 내가 상식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은 스즈키 다이세쓰나 토머스 머튼 같은 학자/명상가들의 이름이다. 찾아보니 스즈키의 <선이란 무엇인가>(이론과실천, 2006)가 작년에 다시 번역돼 나왔고, 머튼의 책은 <신비주의와 선의 대가들>(고려원, 1994) 등이 절판된 듯하다. 가장 최근에 나온 <토머스 머튼과 틱낫한>(두레, 2007)이 소개서로는 유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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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6-10 21:48   좋아요 0 | URL
잘 읽고 갑니다.
퍼갑니다.

반조 2007-06-10 23:24   좋아요 0 | URL
로쟈 님의 안목을 거쳐 소개되는 글들 고맙습니다. 특히 저는 선어록에 관심이 많은데 무척 흥미로운 기사이군요.

그런데, 문화일보의 "국내에 번역된 벽암록치고, 수시에서 송의 평창에 이르기까지를 완전히 번역한 책은 없었다"는 말은 틀린 듯합니다. 장경각에서 선림고경총서로 번역한 3권짜리 벽암록은 본칙의 수시, 착어, 평창, 그리고 송의 착어, 평창을 전부 번역하였습니다. 번역도 매우 훌륭하다고 봅니다.

"국내 최초의 벽암록 완역 해설본"이란 타이틀은 아마도 "역자의 해설까지 곁들인 완역본"의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해설은 정말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완역+해설"은 국내 최초이긴 하지요. (그러나 제 예감으로는 이 "해설"이 한문 자구에 대한 해설이지 내용에 대한 해설이 아닐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해설은 환영할 만하겠지요.) 그러나 국내 최초 완역본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지현스님은 "지금까지 벽암록이 3, 4종 나왔으나 일부만 번역돼 있거나 해설 없이 출간됐다"는 촌평을 했겠지요. 제가 볼 때, 이 완역본의 최대 의의는 5권의 벽암록 속어낱말사전일 것같습니다. 이제까지 누구도 그것을 해내지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언급하신 안동림 번역본은, 제 판단으로는, 인터넷 용어로 '안습'입니다. 아직 구입하지 안으셨다면 구입하지 마세요. 누군가 이 번역본을 제대로 혹평(!)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로쟈 2007-06-10 23:3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그쪽으로는 반조님이 정확하시겠습니다. 사실 '해설본'이라거나 '속어낱말사전'만으로 '완역'의 의의를 평가할 수는 없겠고, 기존의 '완역본'과 대조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 안동림 역은 아무래도 '가장 구하기 쉬운 번역본'이라는 게 한몫했을 거 같습니다. 아무도 문제가 많은 번역에 대한 '비평'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 당연해 보이기도 하네요. 다들 수양이 깊으신 탓이겠지요...

테렌티우스 2007-06-11 08:02   좋아요 0 | URL
지금은 아마 절판되었겠지만 정음사에서 이전에 에리히 프롬과 스즈키 다이세쓰, 그리고 리차드 데마르티노라는 세 사람의 논문을 차례로 묶은 '선과 정신분석'(정음사)이라는 책이 있었지요. 마지막 데마르티노라는 사람의 글만을 제외한다면 참으로 훌륭한 선에의 입문서입니다. 절판된 것이 무척 아쉬운데, 그후로 새로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물론 번역의 질이 들쑥날쑥 하지만 그럼에도 장경각의 '선림고경총서'(36권?)도 빼놓을 수 없지요.^^

로쟈 2007-06-11 08:44   좋아요 0 | URL
'선과 정신분석'은 저도 생각이 나네요. '선과 푸코' 같은 글도 언제 한번 쓰셔야겠습니다.^^

테렌티우스 2007-06-12 20:26   좋아요 0 | URL
흠 그렇지 않아도 푸코가 1978년의 두번째 일본방문때 한 선방을 방문해서 고승(이름은 생각이 안 나네요...) 및 그 절의 선승들과 대화한 대담이 남아있어요. 제목이 '푸코와 선불교'이지요.

제가 이후에 '푸코의 일본강연'이라는 제명으로 (첫번째 방문인 1971년 그리고 이 1978년의) 약 10여개의 학회발제, 발표, 대담 등을 묶어서 해제와 함께 번역해볼 작정입니다(분량이 아주 꽤 됩니다...).

책이 좀 나갈까요?^^

로쟈 2007-06-12 20:40   좋아요 0 | URL
'아주 꽤' 된다면 흠... <주체의 해석학>도 그다지 안 나가는 듯해서요.^^

yoonta 2007-06-13 03:07   좋아요 0 | URL
앗 재미있겠습니다. 테렌치우스님 책 내신다면 한권 미리 예약합니다. ^^

테렌티우스 2007-06-13 22:34   좋아요 0 | URL
이름을 다시 테렌티우스로 바꾸었습니다. 요즘 라틴어를 배우는데 Terentius는 기원전 2세기의 인물이므로 글 중간의 ti를 중세 라틴어 이후의 발음인 '치'가 아니라 '티'라고 읽어야 한답니다... ㅠㅠ 이름을 자꾸 바꾸고 헛갈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레디앙에서 이샤야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애플북스, 2007)에 대한 리뷰 하나를 옮겨놓는다. 나는 책이 나오자 마자 원서와 함께 대조해 가면 절반쯤 읽었더랬다. 그 이상은 다른 일들에 치어 잠시 미뤄졌는데, 번역돼 나온 것이 반갑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좀 무성의한 대목들이 자주 눈에 띄는 번역서이다. 항상 사정권 안에 있던 책이 당장 눈에 띄지 않아서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지적하기로 한다. 미리 말해두자면, '톨스토이의 역사관에 대하여'란 부제대로 책은 일단 톨스토이와 그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고급스런 에세이로 읽혀야 한다. 무슨 경영서나 처세서로 포장한 출판사측의 '기획'에 대해서는 거듭 유감을 표하고 싶다(그런다고 책이 더 팔리지도 않는다). 아래 리뷰 또한 그런 지적을 포함하고 있다.    

레디앙(07. 06. 09) "톨스토이, 고슴도치라 생각한 여우"

인간은 크게 보면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모든 것을 하나의 핵심적인 비전, 즉 명료하고 일관된 하나의 시스템에 관련시키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이런 시스템은 모든 것을 조직시키는 하나의 보편 원리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런 시스템에 근거해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생각하며 느낀다. 다른 한 부류는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 목표들은 흔히 서로 관계가 없으며 때로는 모순되기도 한다. 물론 심리적이고 생리적인 이유에서 사실적인 관계를 갖지만 도덕적이고 미학적 원리에 근거한 관계는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고 행동지향적이며, 생각의 방향을 좁혀가기보다는 확산시키는 경향을 띤다.”(p.7~8)

이사야 벌린, 우리에게는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로 잘 알려진 저자는 전자를 고슴도치형 인간, 후자를 여우형 인간이라고 명명한다. 그에 따르면 플라톤, 단테, 파스칼, 헤겔,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입센, 프루스트가 고슴도치형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 셰익스피어, 몽테뉴, 에라스무스, 몰리에르, 괴테, 푸슈킨, 발자크, 조이스는 여우형이다. 그렇다면 톨스토이는 어느 쪽에 속할 것인가? 이사야 벌린은 이 질문으로 『고슴도치와 여우』를 시작한다. 곧 “톨스토이가 일원론자인지 다원론자인지, 결국 톨스토이가 하나의 비전을 추구했는지 다양한 비전을 추구했는지”(p.11)를 묻는 것이다.

이사야 벌린은 톨스토이의 작품 중 가장 논란이 많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과 평화』를 텍스트로 삼는다. 『전쟁과 평화』는 문학적 작품성은 높지만 작가의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언설이 결정적인 흠으로 지적되는 작품이다. 곧 톨스토이의 장점과 단점이 다 담겨져 있는 셈이다. “젊은 지식인들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특징답게 설익은 지식으로 가르치려는 (그 결과로 예술적 가치를 손상시키는) 톨스토이의 성향 탓…중략…일탈의 전형적인 예” “톨스토이가 훌륭한 사상가라기보다 훌륭한 작가라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천만다행이다” 등등.(p.19) 하지만 이사야 벌린은 접근을 조금 달리한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왜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는가를 묻기 때문이다. 달리 말한다면 『전쟁과 평화』를 톨스토이의 진정한 작품으로 말하고자 한다. 결론을 줄여 말한다면, 톨스토이는 스스로를 고슴도치라고 믿었던 여우다. 근원적인 질문에 근원적인 대답을 원했지만 그 질문과 대답은 늘 구체적이고도 세부적인 것들 속에서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톨스토이의 모습을 한낱 한계라는 짧은 단어로 규정해 버리면 안 된다. 그것은 자아와 세계에 대한 작가의 정직함이자 성실함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자아와 세계를 묻지 않는 작가가 그 얼마나 많은가?

“톨스토이 식으로 말하면 삶을 만들어가는 진정한 구성 요소인 ‘생각, 지식, 시, 음악, 사랑, 우정, 증오, 열정’을 기록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할까?”(p.45)

그렇다면 톨스토이를 “여우냐 고슴도치냐”라고 묻는 이사야 벌린 자신은 여우일까 고슴도치일까? 책을 번역한 강주헌은 “전통적인 자유주의 지지자였으며, 다원주의를 신봉했다. 사회를 조직하는 문제에 단 하나의 해결책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했다”라는 벌린에 대한 평가를 인용하며 “여우형에 가깝다”라고 평한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이 책 『고슴도치와 여우』는 어떤 유형의 책일까? 책을 장식하고 있는 붉은 색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방어형의 고슴도치 경영과 공격형인 여우 경영이 적절히 조화되어야 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말씀이시다. 이건희의 멘트가 등장하니 경제경영서? 띠지 뒤쪽에는 “당신은 여우로 살 것인가 아니면, 고슴도치로 살 것인가? 이 책은 톨스토이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당신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쯤이면 자기계발서가 될 노릇이다.

한마디로 『고슴도치와 여우』는 겉과 속이 다르게 포장된 책이다. 카피문구나 책의 장정과 편집 스타일은 경제경영이나 자기계발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띄고 있지만 그 속 내용은 톨스토이라는 대작가의 역사관과 내면을 짧지만 깊이 있게 파헤치고 있는 인문서이기 때문이다. 상술이 본질을 압도하고 있음이다. 형식이 내용을 앞지른다. 그것이 책을 읽는 내내 가시가 되어 찌른다. 자본주의라는 고슴도치가 여우를 찌른다.(김용필/ 텍스트)

07.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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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대해서는 여러 모로 '인연'을 갖고 있고 강의에서도 자주 다루게 된다. 이번 학기에는 특히나 오랫동안 자세히 읽기를 시도했는데, 그렇다고 아직 연구서 한권 낼 만한 형편은 안되기에(석달 정도의 자유시간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읽을 거리들을 참고자료로 제시하곤 한다. 가장 최근 자료로 참고할 만한 것은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웅진지식하우스, 2006)의 저자 김용규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통해서 본 ‘죄’와 ‘벌’의 의미'로 얼마전 한겨레에 2회 걸쳐서 분재됐다. 아마도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의 속편에 포함될 듯하다.

 

한겨레(07. 05. 19) 인간의 경계 뛰어넘은 ‘자만의 죄’ 고발

1849년 12월 22일, 러시아 세묘노프스키 광장에서는 사형이 집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황제의 특사가 내려 사형 직전의 한 청년이 살아났다. 그는 시베리아에 있는 수용소로 보내져 4년간 혹독한 강제노동을 했다. 간질발작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의 날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청년이 가장 참기 어려웠던 것은 자신의 신념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수용소에 갇히기 전, 청년은 무신론적 사회주의자과 어울렸다. 그들과 함께 황제를 모독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런데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생각이 변했다. 왠지 사회개혁을 위해 무릎을 세우고 일어서는 혁명가들보다 쓰러진 자들을 일으키려고 허리를 굽히는 사람들이 더 선하게 여겨졌다. 이성과 과학을 숭배하는 합리적 지식인들보다 그리스도를 숭배하는 바보 같은 민중들이 더 지혜롭게 생각되었다. 그는 그 이유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런데 청년은 소설가였다. 그래서 남은 생애동안 바로 이 문제, 오직 이 문제와 싸우며 글을 썼다. 그 결과 위대한 작가가 되었다. 청년의 이름이 도스토예프스키이고, 바로 그 문제를 다룬 첫 장편소설이 <죄와 벌>이다.

이제부터 ‘죄’와 ‘벌’ 둘로 나누어 살펴볼 이 작품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상트페테르부르그에 사는 법학생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우연히 알게 된 창녀 소냐의 권고를 받아 자수하게 된다는 게 전부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불후의 명작이 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심리학자들마저 격찬할 만큼 뛰어나게 인간의 심리를 그려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에게 죄와 벌이 과연 무엇인가를 신학자들마저 경탄할 만큼 심오하게 파헤쳐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우선 죄를 보자. 라스콜리니코프는 죄인이다. 이견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왜 죄인인가?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아니다. 바로 여기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고 이 다른 생각이 이 작품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그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기 이전부터 이미 죄인이었다고 생각했다. 무슨 소리인가 보자.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는 동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심리적 억압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연구가인 모출스키의 주장처럼, 상트페테르부르그의 무더운 날씨, 어머니와 여동생마저 돌보지 못하는 가난한 자신의 처지가 분명 그를 심리적으로 억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을까? 아니다. 더 중요한 동기가 따로 있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가 나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을 자신이 인류를 위해 봉사하게끔 학비로 사용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사회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와 같이 <비범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법률을 위반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솔로몬과 마호메트, 그리고 나폴레옹을 예로 들어 자기를 정당화했다. 이들이 그랬듯이 새로운 사회와 법률을 위해서는 낡은 것들을 파괴해야만 하는데, 희생이 불가피하다면 그것이 당연히 허용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라스콜리니코프는 한 점 죄의식조차 없이 전당포 노파와 그녀의 여동생을 도끼로 살해했다. ‘초인사상’으로 일컬어지는 이런 생각을 도스토예프스키는 “공기 중에 유유히 떠다니는 이상하고 온전치 못한 사상”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인간이 이런 생각을 갖는 것 자체가 ‘범죄 이전의 죄’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사실인즉 <죄와 벌>을 썼다.

그는 ‘범죄 이전의 죄’라는 개념을 기독교 종파인 러시아 정교에서 얻었다. <구약 성서>에 서 아담은 뱀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같이’ 된다고 해서 그것을 따먹었다. 그리고 죄인이 되어 낙원에서 쫓겨났다. 원인은 “하나님같이 되리라”였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신처럼 되려고 자신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자만’이라고 부른다. 자만이 곧 ‘범죄 이전의 죄’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진 죄가 바로 이것이다.

<죄와 벌>에서 ‘죄’라는 의미로 사용된 러시아어 ‘prestuplenie’는 본래 ‘경계를 뛰어넘다’라는 뜻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단어를 ‘법률의 경계를 뛰어넘다’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다’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인간이 자신의 경계를 뛰어넘는 경우 그의 죄에는 죄의식이 없다. 그의 이성이 모든 것을 스스로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인간’의 이 무참한 죄를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고발하고 또 경고했다. 그런데 돌아보자. 우리가 그로부터 과연 무엇인가 배웠는가를. 20세기 들어 수백만 명을 학살한 독일 나치나 러시아 공산당이 어땠는가를. 그리고 생각해보자. 21세기인 오늘날에는 이처럼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를. “공기 중에 유유히 떠다니는 이상하고 온전치 못한 사상”이 없는가를. 한번 생각해보자.  

한겨레(07. 06. 02) 죽음보다 끔찍한 벌 벗는 길은 희생

<죄와 벌>은 죄보다 벌에 관한 작품이다. 분량만 보아도 그렇다.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모두 7부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죄는 1부에 다 드러난다. 나머지는 모두 지옥 같은 벌에 대한 설명이다. “단테처럼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지옥의 모든 단계를 통과한다. 그런데 이 지옥은 〈신곡〉의 중세적 지옥보다 더 끔찍하다.” 모출스키의 말이다. 돌아보자. 죄가 무엇이었는지. 그래야 벌을 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죄는 자만이었다. 그것은 원초적 죄로서 모든 악행과 범죄가 여기에서 나온다. 기독교적 사변이다. 그럼 벌은 무엇인가? <구약성서>에서 신은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그 벌로 “정녕 죽으리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막상 선악과를 따먹자 죽이지 않았다. 추방했다. 그럼 성서는 처음부터 신의 거짓말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학자들의 생각이다.

기독교에서 신은 생명이다. 따라서 그로부터의 추방은 곧 죽음이다. 기독교에서 신은 빛이다. 따라서 그로부터의 추방은 곧 어둠에 속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신은 진리다. 따라서 그로부터의 추방은 곧 거짓에 서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신은 선함이다. 따라서 그로부터의 추방은 곧 악함에 머무는 것이다. 신은 이러한 벌들로 자신의 약속을 어김없이 지켰다. 이것이 성서에 나오는, 바깥 어두운 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던 벌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에서 총 6부에 걸쳐 고발한 그 벌이다. 모출스키가 <신곡>의 지옥보다 더 끔찍하다는 그 지옥 체험이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받은 바로 그 벌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벌을 살인이라는 범죄로, 그 범죄에서 오는 심리적 어둠으로, 그 범죄를 숨기려는 거짓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악행을 차례로 체험함으로써 받았다. 그것이 얼마나 무겁고 괴로운지를,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지옥 체험인지를, 오직 그것만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수백 쪽에 걸쳐 묘사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수를 한 것은 결코 양심의 가책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괴로워한 것은 단지 악을 체험하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고통 때문이었다. 바깥 어두운 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갊 때문이었다. 이 벌의 성격을 예심판사 포르피리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도망가면 어쩌죠?”라고 묻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자넨 도망가지 않을 거야. (…) 자네가 도망간다 해도 아마 스스로 되돌아올걸? 자넨 우리 없이 지낼 수 없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단지 이 끔찍한 지옥에서 벗어나려고 차라리 자수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에는 같은 벌을 받는 인물이 하나 더 등장한다. 스비드리가일로프다. 그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다른 악의 짝이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사회주의 이상을 내세워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죄를 지었다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자유주의 이상을 내세워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죄를 짓는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자기 부인을 살해하고, 하인을 학대하여 자살하게 하고, 14살 어린 소녀를 능욕하여 자살하게 했다. 그의 범죄는 개인적인 정욕과 쾌락에서 나왔다. 범죄 동기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와 다르지만, 원인은 같다. 그에게도 욕망과 쾌락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자만이 있었다.

결국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려는 것은 단순하다. 개인적 이익과 욕망을 위해서든, 사회적 이익과 개혁을 위해서든,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자만이 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지옥보다 더 끔찍한 지옥에 갇힌다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라스콜리니코프는 차라리 수용소에 가려고 자수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권총으로 제 머리를 쏘았다. 그가 한 마지막 말은 “미국에 가기 위해서야”였다.

그렇다면 이 죄와 그 벌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는가? 있다. 의외로 간단하다. 자만이 원인이면 겸손이 해법이다. 날 세운 이성이 원인이면 바보 같은 신앙이 해법이다. 타인 희생이 원인이면 자기 희생이 해법이다. 창녀 소냐가 그 일을 맡았다. 그녀는 비참하게 살아가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며 자기희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인간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를 ‘유로지비’라고 불렀다. 러시아 정교에서 ‘성스러운 바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죽은 나무에 수년 동안 물을 길어다 부어 마침내 어느 날 푸른 잎을 피워낸 어떤 수도사를 일컬은 말이다. 눈뜬 이기주의와 눈 먼 합리주의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키는 성스러운 자유를 가졌던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다. 소냐가 바로 그다. 소냐는 이 방법으로 라스콜리니코프를 구했다.

그럼 생각해보자. 오늘을 사는 라스콜리니코프와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누군가를. 그리고 우리가 속한 시대와 사회를 구할 진정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보자.(김용규/ 자유저술가-<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저자)

07. 06. 09.

P.S. '유로지비'는 '성스러운 바보'를 뜻하지만 작품에서는 문맥상 '광신도', 곧 '신에 미친 여자'란 뜻도 내포한다. 라스콜리니코프와 소냐를 대립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형식논리적이며 이 작품의 역동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감이 있다. '날 세운 이성'뿐만 아니라 '바보 같은 신앙' 또한 인류사에서 많은 죄의 근원이지 않았던가. 이에 대한 자세한 검토는 물론 '새로운 이야기'에 속하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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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그 2007-06-10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처럼 주 독자층을 청소년으로 생각하고 쓴 글이라 구도가 좀 더 단순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자"도 같은 맥락일 것 같고요.^^

로쟈 2007-06-11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자층에 대한 고려도 있겠도 분량 제한도 있겠지요. 한데, 모든 해설이 갖는 함정이지만 작품읽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