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마르크스는 아나키스트와 대립되는 국가사회주의자로 생각됩니다. 마르크스주의자 중에 그런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마르크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회주의이념은 명확히 프루동의 것입니다.(...) 프루동은 경제적 계급 대립을 해소하면, 그리고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면 국가는 소멸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가 그 자체가 자립성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을 그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사고도 계승했습니다. 그가 일시적으로 국가권력을 잡아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자본제경제와 계급사회를 지양한다는 블랑키의 전략을 승인했던 것은 국가주의적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결함은 국가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자립성을 보지 않은 아나키즘에 있는 것입니다. -24-25쪽
(1990년 이후) 국가사회주의가 쇠퇴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리버테리언 사회주의도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리버테리언 사회주의(어소시에이션이즘)가 단순히 이념적이어서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거기에 자본, 네이션, 그리고 국가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소시에이션이즘은 자본, 네이션, 국가를 거절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좋지만, 왜 그것이 존재하는가를 충분히 사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결국 그것들에 걸려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가령 리버테리언 사회주의와 같은 종류가 부활한다고 해도 자본, 네이션, 국가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입니다.-27쪽
내가 이 책에서 생각하고 싶은 것은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는 길, 바꿔 말하면 '세계공화국'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 네이션, 국가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 네이션, 국가는 각기 간단히 부정할 수 없는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지양하려고 한다면 먼저 그것들이 무엇인가를 인식해야 합니다. 단순히 그것들을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자본이나 국가의 현실성을 승인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이념'을 조소하게 될 뿐입니다.-27-28쪽
내가 가장 공감하는 사람은 칸트와 프로이트다. <실천이성비판>이든 <쾌락원칙을 넘어서>든 모두 60살이 지나서 이루어진 훌륭한 작업들이다. 나도 내 생각이 정리된 것은 60살을 먹은 이후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극이 된다. 그들은 80살 정도까지 살았다. 나는 100살까지 하고 싶다. 내 작업은 이제부터다.('옮긴이 후기'에서 재인용)-235-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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