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한국학 분야는 나로선 (조금 과장하자면) 기계공학만큼이나 덜 관심을 갖고 있는 쪽인데 이 분야에서 한꺼번에 네 권의 학술서가 출간돼 눈길을 끈다. '네 권'이란 수치는 대단한 게 아니지만 이 네 권을 한 사람이 집필했다고 하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한국학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 아닐까?(얼핏 조동일 교수가 한꺼번에 몇 권의 책을 냈었다는 기억이 떠오르긴 한다.) 저자는 강명관 교수이고 <조선의 뒷골목 풍경>(푸른역사, 2007) 등으로 이미 대중적인 인지도까지 얻은 학자이다. 최근 몇년 동안 한국학쪽에서는 유독 18세기를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 시대가 특별한 것인지 (우연의 일치로) 이 시대 전공자들이 모두 뛰어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정민, 안대회, 강명관 교수 등을 염두에 둔 말이다). 아무려나 성실한 학인의 자세는 동료-후학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맨날 서재질이나 하고 있으면 언제 책을 쓰나?). 내일자 조간에 실릴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7. 08. 27) '민족문학·근대·국가’ 환상을 벗기다…김명관교수 학술서 출간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등을 통해 조선 후기 일상생활을 복원했던 부산대 한문학과 강명관 교수가 최근 묵직한 학술서 4권(소명출판)을 내놓았다. 웬만한 학자가 한 권도 아닌 4권을 한꺼번에 출간하기란 쉽지 않은 일. 그러나 강교수는 전화 인터뷰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오래 전부터 준비한 책들이 함께 출간된 것뿐입니다. ‘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은 16년 전부터 써오던 논문을 모은 것이고 ‘농암잡지평석’도 10년 걸렸죠.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는 재작년에 정리했고 ‘안쪽과 바깥쪽’이 최근에 쓴 책입니다. 성격은 각각 다르지만 서로 연관성이 있어요. 제일 얄팍한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가 세 권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책이고 나머지 세 권은 각론이에요.”

이들 책은 모두 조선 후기 한국학연구의 주요한 이론인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자성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내재적 발전론은 조선 후기에 이미 근대화의 싹이 자생적으로 텄다는 이론으로서 일제의 식민사관을 배격하기 위해 1970년대 출현했다.

“이 책들은 근대라는 개념에 대한 깊은 반성에서 출발했습니다. 제가 91년에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중인문학을 주제로 택했습니다. 양반문학과의 차별성을 바탕으로 논문을 쓰려고 연구를 진행시켰는데 막상 중인문학과 양반문학 사이에 크게 다른 특징이 안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곤혹스러웠지요. ‘내가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왜 조선후기 문학사에서 근대를 찾으려고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죠.”



내재적 발전론이 서양사의 보편성을 한국사에서 뽑아내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이 같은 깨달음은 책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에서 조목조목 민족문학과 근대, 국가 등에 덧입혀진 환상을 벗겨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책에서 강교수는 국문학사가 기본적으로 민족과 근대라는 두 어휘를 통해 구성됐음을 지적한다. 민족과 국가라는 개념이 근대에 고안된 개념인 만큼, 한 민족의 문학적 특질을 찾으려는 국문학 역시도 실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또 연구가 심화할수록 국문학의 본질이 드러날 것이라는 생각 역시 환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한국 문학사 연구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강교수는 국문학사에서 민족과 근대라는 내피를 제거하고 타자를 통해 조선후기 문학사를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타자란 중국문학이다. 한국사가 중국 및 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한문학계는 조선후기 문학의 자생성에 힘을 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 문학사에서는 중국의 의고문체와 공안파의 문예이론 등이 끼친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문단에 수용된 의고문체는 중국 진한대의 산문을 본받아 예술적 성취를 이루자는 명대의 복고적인 창작론. 신흠, 김상헌, 유몽인 등 당대 일류 문인들이 진한대의 고문을 숭앙했다. 조선 후기 문학의 대가였던 농암 김창협은 이 같은 의고문체를 강력히 비판했다. 그의 문학에 대한 짧은 언설로 구성된 ‘농암집’ 권 31 잡지 외편에는 중국의 고전에 대한 농암의 사유와 비판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농암문학 연구의 필독서였으나 그간 제대로 번역된 적이 없다. 때문에 강교수가 번역하고 주석을 단 ‘농암잡지평석’은 앞으로 많은 국문학사 연구자들에게 유용한 기초자료로 쓰일 듯 싶다. 원문을 번역하고 자료를 찾으며 준비하는 데만 10년이 걸렸다.

모든 것이 농암에게로 흘러들어가서, 그로부터 다시 나왔습니다. 한데 기존의 한문학 연구를 살펴보면 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논리를 구축해놓고 필요한 자료만 뽑아 쓰곤 했어요. 그렇게 해서는 전모를 살필 수 없습니다. 농암이 중국의 고전을 읽고 비판했다 하면, 원전이 뭔지 찾아 읽어야 어떤 맥락에서 비판을 했는지를 알 수 있죠. 이잡듯이 읽어보자고 마음 먹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 시간을 끌 줄은 몰랐네요.”



‘안쪽과 바깥쪽’은 그간 민족적 주체를 강조하면서 외부의 영향을 무시했던 연구풍토를 비판하고 있다. 한문학이 전근대 동아시아에 보편적으로 출현한 문학 양식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이를 중국의 동시대 문학과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폐증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공안파와 조선 후기 한문학’은 좀더 상세한 분석을 담고 있다. 구상에서 집필완료까지 16년이 걸렸으니 네 권의 책 중 가장 공력을 들인 책이다. 강교수는 사람들이 연암 박지원을 조선 후기의 독창적인 지식인, 이단아로 알고 있지만 그를 비롯한 이덕무, 이옥, 이언진 등의 비평론과 창작론은 중국 명대 공안파(公安派)의 문예론에 빚을 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안파는 봉건적 권위와 도덕을 무시한 탁오 이지(李贄)의 영향을 받아 개성적인 자아 표현을 중시하고 옛사람들의 낡은 사고를 배격한 문예집단이다. 강교수는 책을 통해 조선의 근대적 지식인으로 일컬어지는 박지원 일파의 성취가 실은 공안파의 문예론에 기댔다고 강조한다. 연암일파는 기본적으로 한문학을 기반으로, 공안파의 비평을 수용해 조선어의 어휘와 속담을 받아들여 창작했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민족문학적 성격’을 찾으려는 노력은 철회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10년이 넘게 아침 일찍 출근해 하루 종일 한적을 뒤적이고 컴컴한 밤이 돼서야 퇴근을 했다는 강교수는 안식년 중에도 연구실에 틀어박혀 읽고 썼다. 이번 책들은 그 특유의 연구열과 성실함이 만들어낸 성과다.

조만간 일반 독자들을 위한 역사교양서도 출간된다. 조선시대 책과 관련된 인물들을 통해 지식이 조선이라는 사회와 국가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구성해냈는가를 살핀 인문교양서와 어떻게 조선의 유교이념이 열녀사상을 만들어내고 여성들의 성적욕망을 억압했는지를 추적한 책이 올 가을 출간될 예정이다. 조선 후기를 바라보는 강교수의 신선한 사유가 기다려진다.(윤민용기자)

07. 0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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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읽을 책들은 아니지만 '인간의 본성과 포스트휴먼' 정도의 주제를 다룰 때 참조할 만한 책들이 최근에 출간됐다. 라메즈 남의 <인간의 미래>(동아시아, 2007)과 스펜서 웰스의 <인류의 조상을 찾아서>(말글빛냄, 2007)이 그 책들이다. 이 분야 관련서들이 이미 적잖게 나와 있지만 그럼에도 참고문헌의 수를 조금 더 늘려놓는다. 중앙일보의 리뷰기사가 유익하기에 챙겨둔다.  

중앙일보(07. 08. 25) 유전자는 알고있다 인류의 시작과 끝을

인간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고민은 역사와 철학의 과제만은 아니다. 이는 과학의 숙제이기도 하다. 특히 도약을 거듭하고 있는 유전학은 인간 기원의 실마리와 함께 그 미래 전망을 동시에 제공하는 핵심 도구다. 미국의 과학전문가 라메즈 남은 인류의 미래를, 인구유전학자인 스펜서 웰스는 기원을 각각 찾아 나선다.

고객: 올여름 해수욕장에 가서 우람한 가슴근육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전문가: 그런 유전자를 담은 바이러스 주사를 두 대 맞고 몇 달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이 대화는 농담도, 공상도 아니다. 이미 눈앞에 다가온 유전공학적 현실이다. 상용화는 시간 문제일 뿐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이세진 박사팀이 그 실마리를 찾았다. 이 팀은 근육 생성을 억제하는 마이오스테틴이라는 호르몬이 선천적으로 부족한 생쥐를 교배를 통해 만들었다. 이 쥐는 보통 쥐와 비교해서 근육이 2-3배나 되며, 체지방은 70%에 불과했다. 이제 이렇게 유전자를 조작하는 기술만 보태면 된다. 그런데 런던대의 조프리 골드핑거 팀은 아무런 운동을 하지 않고도 근육량이 20%, 근력은 25%나 증가시키는 MCF유전자를 이미 찾아냈다. 그러니까 유전자만 조작하면 힘든 운동을 하지 않고도 군살 하나 없는 몸매를 가질 수 있는 시대가 기술적으론 이미 우리 앞에 와있는 셈이다.



몸뿐이 아니다. NGF(신경성장인자)는 신경세포의 성장을 촉진해 알츠하이머병(치매)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아울러 쥐 실험 결과, 학습능력과 기억력도 향상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까 NGF 생산과 관련한 유전자를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다면, 이른바 스마트 약(똑똑하게 해주는 약)이 되는 것이다. 미국에선 벌써 10여 개 제약사가 상품화에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200세 수명 연장도 허풍만은 아니다. 심지어 출산 전에 유전자를 바꿀 수도 있을 정도니까. 더 나아가면 인간의 뇌가 컴퓨터 네트워크와 연결되고, 인간은 무한한 생명을 누릴 수도 있을 게다. 그야말로 ‘멋진 신세계’가 아닐 수 없다. 몇 세대만 지나면 우리의 후손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종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부작용도 당연히 있을 게다.

하지만 이러한 유전공학의 도도한 물결을 막을 방법도, 논리도 없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과학발전의 현실은 인정하지만, 인류 미래라는 과제 앞에서 지나치게 자유만 강조하는 그의 사고방식은 논란을 부를만 하다.



“약 3만 년 전 한 남자에게 P31이라는 유전표지가 나타났다. 이 남자는 동아시아에 거주했으며, 그 후손은 남쪽으로는 동남아시아, 동쪽으로는 한국과 일본까지 뻗어나갔다.”

2005년 4월 시작한 제노그래픽 프로젝트가 거둔 성과의 하나다. 5년간 4000만 달러를 사용하는 이 거대 사업의 목적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열쇠는 유전학에서 나왔다. 모든 인간은 부모의 세포 핵 속에 있는 게놈이 서로 혼합된 결과물이지만 섞이지 않고 계속 대물림되는 독특한 유전물질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에게만 있는 Y염색체는 서로 혼합되지 않고 계속 대물림된다. 그래서 Y염색체를 조사하면 먼 과거까지 부계 혈통을 추적할 수 있다.



여성의 경우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 기관에 있는 mtDNA가 있다. 이는 핵이 아닌 세포질에 있어 유전 형질 혼합을 피할 수 있는데다, 어머니만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어 모계로만 유전된다. 그래서 이를 살피면 모계 혈통을 파악할 수 있다.

Y염색체와 mtDNA는 인류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알 수 있는 도구이다. 여기에 고고학·언어학·고인류학을 더해 조사했더니 다양한 인류 집단의 이동 과정이 상당히 드러났다. 앞에 제시한 성과는 그 일부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인류가 6만 년 전까지 아프리카에 살다 전세계로 퍼졌다는 점이다. 그 뒤 2000여 세대 동안 인류는 피부색은 물론 신체치수·언어·문화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어지러울 정도로 엄청난 다양성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다양성이 이렇게 최근에 이뤄졌다면 인류가 한 가족에서 비롯했다는 이론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차이보다 공통점이 더 많은 게 인류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따라서 인류는 서로 다른 점을 존중하며 다양성이라는 깃발 아래 공존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유전학이 제시하는 세계 평화의 과학적 배경이다.(채인택 기자)

07. 08. 26.

 

 

 

 

P.S. 기억의 편의를 위해서 독서목록에 올려놓고 있는 책 두 권을 적어둔다. '인류의 조상'과 관련된 책으로 이언 태터솔의 <인간되기>(해나무, 2007)와 '포스트휴먼' 관련서로 도미니크 르쿠르의 <인간복제논쟁>(지식의풍경, 2005)이 그 두 권의 책이다. 나머지는 한 차례 열풍이 지나가기도 했던 '인간복제' 관련서들인데, 이미 서가 한 칸 정도는 채울 만큼 출간돼 있다('인간복제'라고 검색해보시길). 국내 필자가 쓴 책 몇 권의 이미지만을 나열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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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6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6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로 나온 책들 가운데 <전통과 중국인>(플래닛, 2007)이란 책이 너무 두꺼워보여 그냥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중국의 '반체제' 지식인 류짜이푸(1941- )가 공저자의 한 사람이다. 몇 년전에 대가급 지식인 리저허우(1930- )와의 대답집 <고별혁명>(북로드, 2003)을 같이 낸 이가 류짜이푸이다. 과문하지만, 이 두 사람이 중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지식인 계보를 잇는 게 아닌가 싶다('반전통 지식인'이라고 해야 더 타당할까?).

해서 <전통과 중국인>을 <고별혁명>과 같이 모아놓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유감스럽게도 이 생각에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포함돼 있지는 않지만. 나는 당장 지젝도 읽어야 하고 톨스토이도 읽어야 하고 소포클레스도 읽어야 한다). 미리 관련기사들을 모아놓는다. 세계일보의 기사는 '편집장과 한권의 책'이란 유익한 연재물인데, 이번주에는 <전통과 중국인>을 펴낸 플래닛의 안성열 편집장이 직접 책소개에 나섰다. 그리고 중앙일보의 칼럼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사상의 계보를 잘 요약해주고 있다.

세계일보(07. 08. 25) 유가·도가·불가 사상이 중국인의 국민성에 미친 영향은?

전통은 그에 부합하는 인간을 만들어 냄으로써 생명을 유지한다. “유가의 학설 속에는 매우 뿌리 깊은 도덕에 대한 광신의 물결이 숨겨져 있었다. 애초에 그것은 검토를 거치지 않은 단순한 원칙일 뿐이었으나, 나중에는 신성불가침의 철칙으로 변했으며 갈수록 거세져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물결로 변했다. 개인의 인생에서 그것은 이성을 잃은 완고하고도 영문을 알 수 없는 도덕적 영웅주의로 표현되었고, 한 나라에서는 공상 속의 천국에 대한 이상을 신하와 백성들에게 주입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통치자는 이를 위해 ‘실천하라’고 부단히 강요했다. 이 도덕에 대한 광신의 물결은 과거 십여 세기 동안 중국을 석권했으며, 결국 중국을 쇠퇴의 위기로 몰고 갔다.”

‘전통과 중국인’은 전통문화가 중국인의 국민성에 미친 영향을 지식고고학적 방법으로 추적하면서, 중국 근대라는 격변기의 정신사적 특수성을 포착하려 한 역작이다. 지은이들은 공맹으로 대표되는 유가뿐만 아니라 노장의 도가와 불가, 그리고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중화주의까지 중국의 문화적 전통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에 비판과 해석의 메스를 가한다.

루쉰, 천두슈, 후스, 리다자오, 우위, 저우쭤런 등 이른바 ‘사상계의 청소부’라고 불린 중국 근대 지식인들이 전통에 대해 취했던 비판적 태도와 논점의 핵심들을 제시하고 자신들의 관점을 더했다.
또 유가, 도가, 불가 사상의 철학적 핵심을 사상 그 자체의 관점에서 제시하면서 각각의 사상적 기원에서부터 제도화 과정, 그리고 말류들에 의한 왜곡과정까지 세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지은이들의 논의의 바탕에는 ‘인간’의 본원적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열망이 깔려 있다. 류짜이푸와 린강, 두 지은이는 중국인들이 도덕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치우고 해탈의 단꿈에서 깨어나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때 화제를 몰고 왔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김경일 지음, 바다출판사)라는 책과 주제가 유사하지만 서술의 폭과 깊이에서 차이가 크다. 인문의 의미에 값하는 책이다.(안성열 플래닛 편집장)

중앙일보(07. 08. 25) “공자가 중국을 쇠퇴의 길로 몰고 갔다”

아편전쟁에서 치욕스런 참패를 맛 본 뒤에도 중국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고 나머지는 다 오랑캐라는 ‘천조(天朝)심리’를 떨쳐버리지 못한다. ‘전쟁에서 번번이 패한다’는 누전누패(屢戰屢敗)를 ‘완강하게 버티며 굴복하지 않는다’는 누패누전(屢敗屢戰)으로 고쳐 말함으로써 현실을 교묘히 비켜간다. 루쉰(魯迅)을 비롯한 5·4운동의 ‘문화 선구자’들은 그러나 부끄러운 자화상을 외면하지 않는다. 루쉰은 중국인들을 건달에게 얻어맞은 뒤에도 “그래도 내가 (나 자신을 경멸하는 데는) 제1인자”라고 자위하는 주관적 승리법의 달인, 아Q에 빗대 마음껏 조롱한다.



중국인들이 그 꼴이 된 것은 수 천 년 찌든 전통의 묵은 때 탓이었다. 루쉰에게 그것은 중국의 ‘츠런(吃人=食人)’ 전통이다. 츠런은 인육을 먹는 야만적 풍속(실제 중국에 존재했다) 외에도 “독립적인 인격과 개인 정신에 대한 부정과 거세”를 뜻한다. 즉 자신보다 강한 자한테 억압받고 약한 자는 억압함으로써 ‘인간다운 인간’은 없고 노예와 상전만 존재하는 현실 말이다.

그러한 전통의 대표선수는 공자다. 이 책의 부제가 ‘공자와 루쉰의 대결’인 이유다. 저자들은 범도덕주의를 표방하는 유가(儒家)의 예치질서가 중국인들의 자아와 주체를 제거했으며 궁극적으로 중국을 쇠퇴의 길로 몰고 갔다고 주장한다. 반면 전통을 거부하는 ‘아버지 세대에 대한 심판(審父)’으로 불합리를 만들어 내는 사상적 근원, 즉 전통적 가치관을 용도폐기하고 현대적 의미로서의 국민성 개조를 추구한 루쉰·천두슈(陳獨秀)·후스(胡適)·리다자오(李大釗) 등 중국의 근대 지식인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들이 열망한 것은 인간의 본원적 존엄성과 자유가 보장된 사회였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반대파의 공격에 직면했을 때 후진타오 총리가 도피처를 마련해줄 정도로 저명한 석학인 류짜이푸(劉再復)는 현재 홍콩성시대학 중국문화센터 명예교수·미국 콜로라도 대학 객좌 교수로 재직 중이며 린강(林崗)은 중산대학 교수로 있다.(이훈범 논설위원)

07. 0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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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방문자수가 '이상하게' 뜬다. 일시적으로 그러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지속적'인 경우는 없었던 듯하다. 알라딘의 카운트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이다(이 밤중에 무슨 일로 몇 백 명이나 이 서재를 찾겠는가?). 그러나저러나 나는 나대로의 일을 할 뿐이다. 지난주에 스크랩해 두려던 기사를 이제야 시간을 내서 정리해둔다.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인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가 쓴 러시아 관련칼럼이다. 원문도 같이 붙여놓았다(왼쪽 정렬을 해놓아도 화면상으로는 양쪽맞춤으로 뜨는 탓에 유감스럽게도 단어들이 깨져서 보인다).

경향신문(07. 08. 18) 러시아, 강대국으로 복귀하다

지난 몇 년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는 다시금 자신감 넘치고 매우 공세적인 나라가 됐다. 필자는 20년전 저서 ‘강대국의 흥망’에서 이 거대한 나라가 많은 외압과 내홍에도 쉽게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세계 무대 중심에 이렇게 빨리 복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많은 이들은 석유와 가스의 값이 급등했고 러시아가 운좋게도 방대한 양의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러시아의 회복 배경이 취약하다고 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르웨이나 두바이처럼 석유 수입이 지혜롭게 투자될 경우 국가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늘어난 부가 크렘린에 공세적인 외교정책을 펴도록 자신감을 불어넣었다는 점이다.

현재 러시아 일방주의적 행동을 능가하는 이는 지난 6년간 백악관이 유일할 것이다. 미국이 국제기구에서 특수한 지위를 이용해 이스라엘을 보호해 온 것처럼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 행사로 코소보의 독립 희망을 짓밟았다. 푸틴 정부 관리들은 이웃 국가들에 러시아 에너지 공급에 대한 의존도를 인식시켜 압박하는 이른바 ‘송유관 외교’를 구사하는 데 능숙하다. 서구 석유 회사들도 러시아 정부가 에너지 사용계약을 법적 의무사항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러시아는 군축 협정을 폐기하는 속도로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패배와 치욕을 경험했던 전통적인 파워엘리트가 자산과 권위, 위협력을 회복하는 시점에서 보이는 단계적 행동 패턴이다. 만약 이같은 현상이 지금 더 눈에 띈다면 세계의 맹목적인 석유 의존도와 부시 미국 행정부의 이라크와 테러리즘에 대한 강박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국가주의 나아가 민족주의적 기운을 강화하기 위해 푸틴 행정부가 실행하는 광범위하고도 미묘한 조치들이다. 애국주의적인 청년단체 조직과 러시아 역사교과서 수정작업이 여기에 해당된다.

‘나시(‘우리들’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청년단체는 불과 2년 남짓 됐지만, 민주진영의 푸틴 정권 비판에 맞서 극우주의자 친위대로 삼으려는 정부의 의도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나시가 옹호하는 주요 정책들은 모국에 대한 경외, 가족과 러시아 전통, 결혼에 대한 존경, 외국인에 대한 혐오 등이다(나치 히틀러의 구호와의 유사성을 외면하기 힘들다).



푸틴이 고등학교 역사교범 집필자들을 불러 칭찬했다는 것도 그렇다. 역사학자로서 필자는 교육부가 국가의 과거에 대한 어떤 형태의 공식적인 의견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에 망설이는 입장이지만, 러시아의 역사 교범이 민주국가 연합에 참여하는 것이 미국에 주권의 일부분을 내주는 것으로 기술한 것은 충격적이다.

장기적으로 볼때 나시 극단주의자들의 돌출 행동은 역사에 모호한 자취로 남을 수 있다. 반면에 젊은이들에게 의도적으로 사상을 주입하고 그들이 물려받을 위대하지만 극심한 혼란을 겪은 국가의 역사를 수정하는 것은 우리의 21세기에 중대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정리|김유진기자)

WORRIED ABOUT PUTIN’S RUSSIA?: READ ON
By Paul Kennedy

For the past several years, the Russia of Vladimir Putin has been sending very clear signals that it is no longer the weakened, troubled and Western-dependent state that it was compelled to be following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Russia is now once again a proud and very assertive nation, increasingly recognizable by its actions to historians of its Czarist and Communist predecessors. Twenty years ago (in my book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I predicted that this enormous country, though deeply troubled by internal fractures and external exhaustion, would not go down without a fight; but I did not think Moscow’s return to the center of the world stage would occur so fast.

Now, many will say that this recovery is based on shallow foundations, in fact that it rests almost totally upon the high price of oil and gas — and Russia’s fortunate possession of vast supplies of those vital commodities. That is true. But oil revenues, if invested wisely (as has been done by two countries as different as Norway and Dubai during the past decade), can enhance national infrastructure, industrial and technological developments, and military security. The Dutch Republic was built upon the herring fisheries of the North Sea; the good burghers of Amsterdam knew how to reinvest their profits in other directions.

In any case, it is perfectly clear that not only is Putin’s regime making smart strategic investments — in infrastructure, laboratories, a revived and modernized military — but also that its flow of wealth is giving the Kremlin the confidence to pursue assertive foreign policies, secure for the moment in a set of global circumstances that has hobbled the United States, turned the attention of China and India elsewhere (toward growth and internal modernization), and given all the world’s oil-producing states immense leverage. Even the incompetent administrations of the late Messrs. Chernenko and Breznhev could not have frittered away such strong cards. And Putin seems, by all measures, a truly formidable poker player.

Right now, the list of Moscow’s unilateralist actions is probably only exceeded by those of the White House over the past six years. Take an obvious example: Russia uses its veto power on the U.N. Security Council to support Serbia and crush Kosovo’s hopes of independence, just as the U.S. uses its privilege to protect Israel and block pro-Palestinian resolutions in the world organization. In a similar negative way, Russia controls what the Security Council may, or may not, do regarding actions against Iran and North Korea.

The list goes on. Putin’s ministers are adept at using what has come to be called “pipeline diplomacy” to force neighbors like Belarus and Ukraine to bend to Moscow’s will and recognize their dependence upon Russian energy supplies, and it is clear that this is intended to have a secondary intimidation effect upon the states of Western Europe as well. Estonia and Latvia are browbeaten over what are regarded as anti-Russian acts, such as the removal of Soviet war memorials or treatment of Russian-speaking citizens.

Western oil companies are discovering that a contract for control of energy resources is not necessarily viewed by the Moscow government as a sacred legal obligation; as the Russian state returns to power, it is insisting upon altered conditions, all of which ensure that the Kremlin and its agencies have the majority share. Thus, massive international corporations such as BP, Exxon and ConocoPhillips, long regarded as powerful independent actors, are now, literally, being put over the barrel, forced to recognize their weaker bargaining position.

Many of their CEOs must have rubbed their eyes at the reports that Russia has just claimed extensive rights at the North Pole, with implications for rights to the exploitation of seabed energy resources. Moscow seems to be advancing its international claims with about the same speed that it denounces arms-control accords. Really, it is hard to keep up.

If all of this is unsettling, especially to Western business interests and to left-wing theorists of global capitalist conspiracies, it is by no means unusual. Actually, compared with extravagant policies and proclamations of Venezuela’s Hugo Chavez and Iran’s Mahmoud Ahmadinejad, Russia’s actions are rather predictable. They are the steps taken by a traditional power elite that, having suffered defeat and humiliation, is now bent upon the recovery of its assets, its authority and its capacity to intimidate.

There is nothing in the history of Russia since Ivan the Terrible to suggest that Putin is doing anything new. “Top-down” policies from the Kremlin have a thousand-year provenance. If they seem more noticeable at this moment in time, it may simply be because of two (possibly temporary) factors: the modern world’s blind dependence upon petroleum, and the Bush administration’s obsession with Iraq and terrorism. All Putin is doing is walking through an open gate — opened, by and large, by the West.

So the reports from Russia that interest me most are not those concerning drone submarines under the Arctic icecap, or putting the screws upon Belarus to pay backdated oil charges. What intrigues me are the broader and more subtle measures being instituted by the Putin regime to enhance national — and, even more, nationalist — pride. Unless I am mistaken, they point to something much more purposeful, and potentially quite sinister.

Two examples will have to suffice here: the creation of a patriotic youth movement, and the not-too-subtle rewriting of Russia’s school history books. The youth movement called “Nashi” (it translates as “ours” or “our own”) is only a couple of years old, but it is growing fast, encouraged by government agencies determined to instill the right virtues
into the next generation and to use this cadre of ultra-Russianists to buttress Putin’s regime against domestic (read: liberal) critics.

The policies that Nashi advocates are eclectic, although probably the same could have been said about the Hitler Jugend 70 years ago. Among the main features are reverence for the Fatherland, respect for the family, Russian traditions, and marriage (the phrase “Kinder, Kueche, Kirche” is hard for this historian to resist), and a pretty complete detestation of foreigners; it is hard to tell whether American imperialists, Chechnyan terrorists, or Estonian ingrates are at the bottom of their list of those who threaten the Russian way of life.

Right now, Nashi is training tens of thousands of young diligents; right now, they are in summer camps where they do mass aerobics, discuss “proper” and “corrupt” politics, and receive the necessary education for the struggles to come. Vast numbers have recently been mobilized to harass the British and Estonian ambassadors in Moscow (don’t say the Foreign Ministry was unaware of such stuff), following Moscow’s disputes with those two countries. According to The Financial Times, Nashi is training 60,000 “leaders” to monitor voting and conduct exit polls in elections this coming December and March. One doubts if their impartiality will reach that of, say, an international U.N. electoral observer unit. I find this all pretty creepy.

So, too, are the reports that Putin has personally complimented the authors of a new manual for high school history teachers that seeks to instill a renewed pride in teenagers of their country’s past and encourage national solidarity. As a professional historian, I always shrink from the idea that education ministries should approve some sort of official view of the national past, although I know that bureaucrats from Japan to France do precisely that, that the PRC leadership would get highly upset if it learned that schools in China could choose their own textbooks, and that American fundamentalists try to put their own clumsy footprint on what children in the land of the free should actually be exposed to.

But it is one thing for French kids to be told about Joan of Arc’s heroism or American kids about Paul Revere’s midnight ride; everyone is entitled to a Robin Hood or William Tell or two. It’s a bit more disturbing to learn that the new Russian history manual teaches that “entry into the club of democratic nations involves surrendering part of your national sovereignty to the U.S.” and other such choice contemporary lessons that suggest to Russian teenagers that they face dark forces abroad.

What does this all mean? Should oil prices collapse — should pigs fly — then Mr. Putin’s efforts at a Russian nationalistic renaissance might also tumble. But there is no doubt about the coherence of this plan to rebuild Russian pride and strength from the top down (BEGIN ITALICS) and (END ITALICS) the bottom up.

Over the longer run, the current street agitations against Britain’s ambassador and the tearing down of the Estonian flag by Nashi extremists may be obscure footnotes to history. By contrast, the deliberate campaigns to indoctrinate Russian youth and to
rewrite the history of the great though terribly disturbed nation that they are inheriting might be much more significant for the unfolding of our 21st century.

XXXX
Paul Kennedy is the J. Richardson Professor of History and the director of International Security Studies at Yale University. His most recent book is “The Parliament of Man,” about the United Nations.
COPYRIGHT 2007, TRIBUNE MEDIA SERVICES, INC. (8/10/2007)

07. 0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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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들'을 둘러보다가 요아힘 바우어의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에코리브르, 2007)이란 책에 눈길이 갔다. "경쟁과 도태를 기본으로 하는 다윈주의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에 반하여 '협력'을 인간의 본성으로 바라보고 있는 책. 인간을 움직이는 모든 동기의 핵심이 이기심이 아닌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인정, 존중, 배려, 애정을 발견하고 주고받는 '협력'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소개를 보면 웬 뒷북인가 싶은 책인데, 의외로 원서는 작년에 나왔고 저자는 국내에 다른 책들까지 소개돼 있다. 말하자면 외양은 '멀쩡한' 책인 것이다.

호기심에 독일 아마존에까지 들어가서 원서를 확인해보니까 몇몇 독자평의 별점이 넷이다. 다행히(?) 한 독자는 별점을 하나 주었다. 내가 읽을 수 있는 독어는 인칭대명사 정도여서 내용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라면 이 독자의 편을 들고 싶다.

알라딘에 덧붙은 소개는 "지은이는 신경학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협력이 불러오는 '인간성'의 원칙에 대하여 논증하고 있으며, 생물학적인 관점에 있어서도 유전자가 전혀 이기적이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을 가장 내부에서 움직이게 하는 동인이 다윈의 '자연의 투쟁' 이 아닌 협력, 거울현상과 공감이라는 것을 논증한다."인데, 엉터리 같은 소리이거나 하나마나한 소리이다.

<다윈주의 좌파>에 대한 리뷰(http://blog.aladin.co.kr/mramor/1486776)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협력의 진화'라는 건 이미 진화생물학에서는 상식적인 것이고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재판부터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거기에 저자가 몇 마디 더 보태는 줄 알았더니 소개상으로는, 그리고 이어서 찾아본 리뷰기사상으로는 도킨스와 '협력'하려는 게 아니라 '경쟁'하기 위한 의도에서 씌어진 듯하다. 저자의 인간 본성론에 기대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반칙' 아닐까?



저자인 요아힘 바우어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인간의 내면에 사랑하고 협동하려는 성향이 있다면 공격성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최근의 학문적 성과에 따라 인간 존재가 지닌 위협적인 특성인 공격성의 위상은 새롭게 설정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 이른바 '인간성의 원칙'이 경제, 직장 생활, 교육, 교양, 의학 등 사회의 각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앞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와 같은 질문까지 관심을 갖고 다루려 한다." 그런 방대한 질문을 260쪽 분량에 갈무리해놓은 건 저자의 역량인 듯 보이지만, 나로선 신뢰할 수 없는 역량이다(공격성에 대해서라면 콘라트 로렌츠와 에드워드 윌슨의 책을 참조해볼 수 있다). 내친 김에 리뷰까지 찾아 읽었다(동아일보의 기사만 뜬다).

동아일보(07. 08. 25)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

“생명체는 유전자의 최대 증식을 위해 고안된 유전자의 생존 기계다.”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에 발표해 인간 본성의 문제로 확대된 ‘이기적 유전자’론이다. 유전자는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며, 생존을 위해 무한 투쟁을 한다는 게 그 주장의 요체이다. 달리 말해 투쟁과 경쟁, 그에 따른 도태를 내세운 다윈주의가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이나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으로 부활한 것이다. 신경생물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이기적 유전자론에 맞선다. ‘이기적 유전자’는 과학이 아니라 공상이었으며 유전자는 투쟁이 아니라 협력하는 존재라는 것이다.(*아무래도 저자가 윌슨이나 도킨스를 잘못 읽은 게 아닌가 싶다. 기자는 안 읽은 듯하고).  



저자는 ‘이기적 유전자’의 초판 서문에 도킨스가 ‘이 책은 사이언스 픽션으로 읽혀야 한다. 이 책은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쓰였기 때문이다’라고 했다가 10년 뒤 2판 서문에는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이미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볼 수 있다’로 고쳐 쓰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됐다고 지적했다.

사회생물학이 적자생존이나 생존 투쟁 등 다윈의 모델과 시장경제원리를 무비판적으로 끌어들였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미국의 여성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투쟁이나 적자생존은 경제학에서 파생돼 생물학에 적용된 인위적인 개념일 뿐이며 경제학의 지배적인 개념들은 생물학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요즘 '투쟁과 적자생존'만을 강조하는 생물학자가 있는가? 국내에서도 로버트 어그로스 등의 <새로운 생물학>(범양사, 1994) 같은 책이 소개된 게 벌써 13년 전이다).

저자는 도킨스의 주장처럼 세포는 이기적 유전자의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유전자 간 협력으로 탄생했다고 말한다. 한때 박테리아였던 미토콘드리아도 세포 내 공생의 과정을 통해 원시 단세포 생물과 한 몸이 됐다는 것이다(*마굴리스의 '고전적인' 주장이다).

결국 저자의 주장은 인간 본성의 문제로 이어진다. 인간의 본성은 투쟁이 아니라 협력 공생이라는 특질이라는 것.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저자는 동기부여체계(보상체계)나 사회적 뇌, 후성학(유전적 배열의 변화를 포함하지 않는 유전형질에 관한 연구를 하는 학문) 등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동원한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부여체계는 목표지향적인 행위를 유발한다. 이를 촉진하는 도파민 옥시토신 등 신경전달물질은 애착이나 신뢰에서 생성되는 행복전달물질. 러셀 퍼낼드가 주장한 ‘사회적 뇌’도 동기부여체계의 목표가 사회적 결속이며 성공적인 인간 관계, 나아가 모든 형태의 사회적 상호 작용이라는 점을 밝혔다. 최근 후성학은 유전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 환경에 반응하며 ‘타고난 범죄자’ 같은 유전자의 고정 타입은 환경에 의해 달라진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에 따르면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 애정의 결핍은 동기부여체계의 기능을 현저히 저하시켜 공격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유일하게 흥미로운 대목이다. 저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만 환경에 의해서 타락됐다고 보는 듯하다.)



저자의 논증을 따라가다 보면 유전자의 동인이 투쟁이나 경쟁이 아니라는 점에 납득이 가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연이나 사회 환경에서 생존 투쟁이 격렬하게 발생하는 현실을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기적 유전자’와 ‘협력적 유전자’의 접점에 기대가 모아진다. 양자의 논쟁은 해묵은 것인데도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이유도 그것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인 듯하다.(허엽 기자)

07. 0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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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7-08-26 13:35   좋아요 0 | URL
그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게 인간인가봅니다.

로쟈 2007-08-26 18:10   좋아요 0 | URL
네. 하지만 '과학'은 아니지요...

가을산 2007-08-27 00:04   좋아요 0 | URL
물론 믿고 싶은 것을 믿는것이 과학은 아닙니다.
과학이 아니지만 과학적인 방법을 (편향되게) 이용해서라도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것이 특히 지식틍일수록 강하게 나타나는 특성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입장에 이로운 사실이나 정황만을 선택적으로 취하는 것, 이것은 객관적으로 인정된 사실이잖아요? (무슨 오류라고 하더라...)
단지 대체로 남들이 그러는 모습은 잘 보여도 자기가 그러고 있는 것은 도대체 인식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로쟈 2007-08-27 00:35   좋아요 0 | URL
저의 예단일 수도 있지만, 책소개나 리뷰를 참조하면 이런 책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좀 의아합니다. 제가 보기엔 자기 주장의 합리화 이전에 상당히 '게으른' 책이어서요.--;

심술 2007-08-26 19:04   좋아요 0 | URL
잊은 생물학 용어를 찾고 있는데요 답은 무슨무슨 생물이었던 거 같고 정의는 주변 환경을 말해 주는 생물인가 뭐 그렇고 예를 들자면 어떤 물고기가 어느 강에 있으면 그 강은 아주 깨끗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거였거든요. 이 용어가 뭣인지 아시겠는 분 도움 좀 주세요.

심술 2007-08-26 20:12   좋아요 0 | URL
아, 맞다. 지표생물. 저기 한 가지만 더요. 땅 속 깊이 들어갈 때 공기가 모자라게 될 걸 알려고 카나리아를 갖고 들어가잖아요? 이런 경우 카나리아를 가리키는 생물학 용어가 있나요?

가을산 2007-08-27 00:01   좋아요 0 | URL
혹시 mine-shaft canary를 말씀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