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챔피언이 된 김연아 선수의 선전이 국민들을 기쁘게 한 휴일이었지만, 좋은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경기 수원역 광장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되고 있는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시민단체 회원이 경찰에 연행돼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니까. 매일같이 '이런 나라, 이런 대통령이 어디 있나'라고 개탄해보지만, 알다시피 이미 눈하나 꿈쩍할 이들이 아니다. 이럴 땐 작년 여름의 시간이 다시금 상기되면서 '복잡한 반성'쪽으로 생각이 흘러가기 마련이다. 최근에 나온 '촛불 관련서'에 대한 대학가의 서평을 옮겨놓는다. 혹 참고가 될까 싶어서...  

중앙대 대학원신문(09. 03. 23) 그래도 촛불은 뜨거웠습니다  

2008년 여름은 뜨거웠다. 너도나도 ‘뜨거운’ 촛불을 손에 들고 ‘뜨겁게’ 외쳤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1987년을 회상시키는 뜨거운 향연은 국내외 언론들의 주목을 받으며 약 두 달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촛불은 끝났다. ‘30개월 미만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연령 제한’이라는 석연치 않은 결과를 남기고 끝나버린 2008년의 여름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 본 책이 출판되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와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가 그것이다. 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촛불 집회가 소통을 원하는 국민들의 염원을 반영한 시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세계에서, 무엇보다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민주화의 효과가 중단되는 역사적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눈길이 ‘운동’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p.8)

‘시민들은 광우병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진심 어린 서찰을 원했다. 그러나 빈번히 단단하게 막히 차벽 앞에서 소통을 말하는 정부의 민심과의 불통을 확인해야 했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p.92)
 

특히 촛불에 대한 기록을 담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는 기본적으로 촛불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기억의 낭만화를 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머리말과 달리 ‘평화롭게 아스팔트 길 위에서 유모차를 끌고 걷는 광경은 눈물겹도록 감동스러운 것이었다’, ‘데모를 하러 나온 건지, 애들 데리고 마실 나온 건지 모르게 촛불시위는 유쾌, 상쾌, 통쾌와 발랄함이 넘치는 공간이 되었다’ 등 기본적으로 촛불을 ‘우리 편’으로 가정하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오히려 그 해의 촛불이 민주주의의 상징임을 남기기 위한 기록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반면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는 머리말에서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촛불시위가 문제적이다’라는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촛불 시민들은 운동권보다 더 무서운 놈들이 되어갔다’고 표현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와 달리 촛불집회가 ‘현 정부를 길들이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담았다. 촛불집회가 진정한 직접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1부와 문화정치학적으로 분석한 촛불에 대해 다룬 2부, 그리고 촛불의 숨어 있는 주체에 대해 짚어 본 3부까지 촛불집회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이 이어진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에서 ‘촛불소녀와 더불어 촛불집회의 상징이 되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유모차 부대에 대해서도 이 책은 전혀 다른 입장을 보인다. 1부 첫장 에서 저자는 유모차 부대의 등장을 ‘유모차에 탄 아이들의 절대적인 나약함을 ‘무기’로 삼은 것’이라고 표현하며 ‘나약한 동료 시민을 곤경에 몰아넣은 것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던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전반적으로 ‘이론은 늘 비관주의적이어야 한다’는 1부 두 번째 장의 주장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지만 지나치게 회의주의로 빠지는 부분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것이 1부 첫 장이다. 저자는 폭력이 수반되지 않아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다시 한 번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경우 다른 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책에서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발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방법은 제시하지 못한다. 단지 ‘왜 그렇게 무기력 했을까’ 라는 비관적인 논조로만 첫 장의 끝을 맺어 아쉽다.

비판 일색으로 보이지만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속에서도 촛불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10일 집회 중 일어난 일이다. 컨테이너 장벽 앞에 연단을 쌓는 것에 대해 ‘장벽 앞에 연단을 쌓는 것 자체가 폭력이다’는 의견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연단으로 표출하자’는 의견이 갈렸다. 결국 컨테이너 높이의 스티로폼을 쌓았지만 경찰 해산 전까지 시민들간의 토론과 연설은 계속되었다.

저자는 이 사건에 대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자치의 힘을 과시했다’는 한 문장 외에 어떤 평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민들의 자발적인 토론을 통해 조금씩 적극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촛불집회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을지 모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가 말하는 것처럼 아무리 꺼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해 촛불은 언젠가 다시 타오를 ‘가능성’이기 때문이다.(박고은기자)   

대학신문(09. 03. 28) 촛불을 그리워하는 그대에게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5%를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정치에 신경 쓰기 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정치가 설 자리를 잃어버린 이 때, 『당대비평』 기획위원회는 촛불시위에 다시 주목한다. 경제 문제에만 관심을 갖게 되면 정치는 실종될 수밖에 없거니와 ‘촛불에 대한 성찰’은 한국 민주주의의 오늘을 사유하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는 『당대비평』 기획위원회를 비롯해 인터넷 논객, 기자, 교수 등의 필자들이 참여해 2008년을 뜨겁게 달군 촛불시위를 성찰한다. 『당대비평』은 “그간의 촛불 담론이 긍정적 효과에 주목했다면 이 책은 촛불 주체들의 성격을 규명하고 그 한계를 살펴보고자 했다”며 집필 의도를 설명했다.

촛불시위는 복잡한 쟁점들을 담고 있는 사안이었다. 저자들은 각자의 전공 분야에서 촛불시위를 분석한다. 그들은 촛불시위 때 과학 담론이 정부, 대중, 전문가 사이에서 어떻게 사용됐는지, 비정규직 문제에 촛불 주체들이 왜 참여하지 않았는지 설명한다.

『당대비평』 한보희 기획위원은 촛불 주체들의 정체성을 ‘법’을 통해 살펴본다. 당시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집시법과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범법자로 여겨지곤 했다. ‘법에 대한 무지는 핑계가 될 수 없다’는 형법의 원칙은 모든 실정법이 그 원리로 따르고 있는 ‘법들의 법’ 중 하나다. 이에 따르면 촛불시위 참여자들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법들의 법’조차 국민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법의 속성을 고려하면 이는 섣부른 결론이 될 수 있다.

국민이 국민일 수 있는 자격은 법률로 그 요건이 정해진다. 그렇다면 국민의 자격을 부여하는 법률 판결의 주체가 국민보다 우선한다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헌법으로 제정된 권력의 주체인 ‘대한민국 국민’과 헌법을 만드는 권력의 주체인 ‘대한국민’을 구분해 이 딜레마를 해결한다. 법 속에 ‘대한민국 국민’이 있다면 법 이전에 ‘대한국민’이 있는 것이다. 이런 법적 해석을 바탕으로 저자는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으로만 살아오던 이들이 촛불시위를 통해 ‘대한국민’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촛불은 꺼졌고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이 책은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라며 우리를 채근하지 않는다. 대신 촛불에 대한 관심 혹은 반성만은 끄지 말 것만을 당부한다. 행동에는 관심과 반성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유병준기자)  

09. 03. 29. 

 

P.S. 그간에 나온 '촛불 관련서'를 다시 '호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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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시 들추어 본 촛불 시위 관광기
    from Post-Modern Times 2009-03-29 19:39 
    하나,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의 당선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그 동안 간헐적으로 드러났던 '시대 정신'이 구체적인 실체로, 하나의 인간으로 등장한 모습에 몸서리 쳤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다. 정책이고 뭐고 간에 그냥 저 한 사람, 저 대표자, 가 싫다는 감정이 뭉게뭉게 피어 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한국 땅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선거 과정, 당선, 그 이후에 전개된 별의 별 상황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
  2. jjjismy의 생각
    from jjjismy's me2DAY 2009-03-29 22:04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Sati 2009-03-29 22:02   좋아요 0 | URL
아는 분과 휴대폰 얘기하다가, 애니콜 기본 벨소리중에 "여보쪠요. 쪈와와쪄요." 이거가 좋긴 하지만 삼성꺼라 번번이 싸이언을 사게된다고 했더니, "긍정적으로 살아. 그냥 사. 삼성 없으면 어쩔려구? 우리나라 1위 기업인데."하더라는... 나로 말하면 삼성이 바다에 기름부어놓고 배째라 하고 있는 것이 미워서 불매운동중인데, 아무데나 지네 편한데 갖다 붙이는게 '긍정'의 '시크릿'이라는. 반말 ㅈㅅ요^^

로쟈 2009-03-29 23:28   좋아요 0 | URL
사회가 덜 성숙하고 시민사회의 역량이 부족한 탓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이 호구 노릇이나 하지요...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이 출간된 김에 '지젝의 주저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시차적 관점>의 출간을 앞둔 시기에 그가 자신의 '주저'라고 꼽은 책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1989)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1993) <까다로운 주체>(1999)를 포함한 네 권이었다. 모두가 국내에 소개돼 있으므로 바야흐로 읽어주기만 하면 되겠다. 읽기로 마음 먹으면 여름까지는 풍성한 읽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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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적 관점- 현대 철학이 처한 교착 상태를 돌파하려는 지젝의 도전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서영 옮김 / 마티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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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rallax View (Paper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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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주체- 정치적 존재론의 부재하는 중심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성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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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icklish Subject (Paperback)- The Absent Centre of Political Ontology
Zizek, Slavoj / Verso Books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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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슴츠레 2009-03-29 18:03   좋아요 0 | URL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은 2판이 나와있군요. 지젝 스스로가 몇몇 부분은 비판했던 책이니만큼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궁금합니다. 큰 수정없이 표지만 바꾸고 서문만 덧대서 그대로 나왔을런지? 한국에도 2판이 번역되어서 나오면 좋으련만...요원한 일이겠죠?

로쟈 2009-03-29 18:21   좋아요 0 | URL
짐작엔 서문만 다시 썼을 듯싶은데요(원서의 편집 미스는 교정될 수 있겠지만). 어차피 한국어판이 절판된 마당인지라 2판의 번역판이 다시 나오면 좋겠어요. 제목도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이라고 바로 잡아서...

[해이] 2009-03-29 18:19   좋아요 0 | URL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은 도대체 언제 재판이 나올까요....

로쟈 2009-03-29 18:22   좋아요 0 | URL
이게 안 팔리는 책은 아니니까 다시 나오겠지요. 몇몇 오류를 바로 잡아서 빨리 나오면 좋겠습니다...
 

'이주의 문학서'를 꼽는 걸로 새로 나온 책들에 대한 '눈팅'을 마무리할까 한다. 샨사나 조이스 캐롤 오츠 같은 저명한 작가들의 신작들이 출간됐지만 한 권만 고르라고 한다면 아라빈드 아디가의 <화이트 타이거>(베가북스, 2009)다. 작년 부커상 수상작이라고 하니까 작품성은 이미 공인받은 터이고(인도 출신 작가로는 살만 루시디, 아룬다티 로이, 키란 데사이에 이은 네 번째 수상자라 한다), 요즘 관심의 한 축이 인도쪽으로 쏠리고 있는 탓에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게다가 '날 것 그대로의 인도'를 보여준다고 하는 점도 마음에 든다(비카스 스와루프의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바로 연상케 한다). 일단은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9. 03. 28) 부조리와 비극, 날 것 그대로의 인도 

“절대로 갠지스강에 들어가면 안됩니다. 똥이며, 지푸라기며, 물에 잠긴 시체의 일부며, 썩은 물소 고기며, 일곱 가지 산업폐기물 따위를 입안 가득히 담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인도에 대한 낭만과 환상을 싹 걷어낸 인도 작가 아라빈드 아디가(35)의 장편소설이다. 가난과 차별, 악취와 오물, 살인과 부패로 가득한 소설은 ‘진짜 인도’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비천한 계급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기업가가 된 주인공 발람이 인도를 방문하는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통해 인도사회의 위선과 부조리를 거침없는 입담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뼈마디가 앙상하고 온몸에 가난이 새긴 흉터가 가득했던 발람의 아버지는 아들만이라도 다른 삶을 살게 하기 위해 학교를 보내지만 결국 발람은 학교에서 끌려나와 미래라고는 없는 노예의 삶을 강요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델리의 부잣집에 운전기사 겸 하인으로 들어간 발람은 주인 아쇽을 존경하고 충성하지만 주인은 결국 아내가 저지른 자동차 사고를 하인인 그에게 덮어씌우려 한다.

주인에 대한 애증 속에 갈등하던 발람은 결국 주인을 죽임으로써 종살이로부터 탈출을 기도한다. 그리고 ‘기술 및 아웃소싱의 세계적 중심지’ 방갈로르로 숨어들어 반짝이는 샹들리에가 달린 사무실과 은색 랩톱을 가진 기업가가 된다. 발람이 털어놓는 ‘살인의 추억’은 속죄를 위해서가 아니다. 발람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옹호하거나 방어하지 않지만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위해 단 한 번의 살인이 필요했다”고 또렷이 말한다.

“저는 그날 밤 델리에서 주인의 목을 따버린 것이 실수였노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저는 말할 것입니다. 단 하루라도, 단 한 시간이라도, 아니, 단 일 분이라도, 하인으로 살지 않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불편한 진실로 가득한 소설이 무겁지 않은 것은 걸쭉한 입담과 블랙유머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작가의 필력과 작가가 전하려는 희망적 메시지 때문이다. 소설은 인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노력의 소중함을 역설하며 현재진행형인 인도사회의 부조리와 비극을 끊어내려 한다. “인도의 젊은이들이여, 그대 혁명의 책은 바로 그대들의 뱃속에 들어 있도다. 그것을 배출해내서 읽으라!” 2008년 부커상 수상작이다.(이영경기자) 

09. 03. 28. 

 

P.S. 이번주 신간 중에는 샤시 타루르의 <네루 평전>(탐구사, 2009)도 포함돼 있다. 한겨레의 짧은 책 소개는 이렇다  

인도. 한국인들에게는 ‘종교·명상·카스트의 나라’다. 하지만 국제정치의 영역에서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로 불린다. 두 인식 사이의 골은 깊고 넓다. 이를 메우려면 인도의 첫 총리를 지낸 자와할랄 네루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 그는 간디와 함께 ‘현대 인도’를 빚어낸 두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네루 평전>(원제 Nehru-The Invention of India)의 지은이는 말한다. “네루가 인도에 끼친 영향은 너무 커서 주기적으로 재점검해 봐야 할 정도다. 오늘의 인도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네루라는 한 사람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

왜 그런가? 인도라는 거대한 집을 오래도록 떠받쳐온 네 개의 기둥, 곧 ‘민주주의 제도+세속주의+사회주의 경제+비동맹 외교’를 세운 이가 바로 네루라는 게 지은이의 평가다. ‘카스트의 나라’ 인도가 오늘날 국제정치 무대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도 ‘다원적 민주 국가’로 불릴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것이다. 네루는 최상층 힌두 브라만 계급 출신이었지만 농민과 일체감을 느꼈고, 종교를 중시하는 종파주의는 극단적으로 멀리했다. 영국의 식민지배에 맞서다 9번 체포되고 10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격정적이고 급진적인 성품이었지만, 인종과 언어가 복잡한 인도의 통합을 위해 필요한 중도적 리더십을 지향했다. 네루는 이렇게 ‘자기’를 눅이며 무엇을 꿈꿨을까? “바라건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4억의 인민입니다.” 네루의 꿈은 아직 현실이 아니다. 네루 사후 인도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그래도 인도의 지식인들은 ‘네루’를 쉼 없이 재검토한다.(이제훈기자) 

한데, 얼마전에 읽은 <거꾸로 가는 나라들>(난장이, 2009)에서 저자 판카즈 미시라의 네루에 대한 평가는 박한 편이었다. 첫 여성 총리를 지낸 그의 딸 인디라 간디에 대한 평가는 더욱 신랄했고. 네루에 대한 상반된 역사적 평가가 있다는 점 정도는 알아두어야겠다. 여하튼 이 복잡한, 복잡해보이는 나라를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로 몇 권의 책을 꼽아둔다. 저자가 모두 인도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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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3-28 23:20   좋아요 0 | URL
소설과 함께 인도인이 보는 인도는 흥미롭네요. 특히 네루 평전요

로쟈 2009-03-29 08:28   좋아요 0 | URL
네루나 간디에 대해선 세계위인전으로만 읽는 터라 우리가 약간의 환상도 갖고 있는 듯해요...

노이에자이트 2009-03-29 17:14   좋아요 0 | URL
인도가 티벳 분쟁때 달라이라마에 동조하고 중국과 국경분쟁도 하는 등 중국과 사이가 안 좋은 시절엔 중국 공산당에서 네루를 완전히 악질로 취급하더군요.

로쟈 2009-03-29 23:26   좋아요 0 | URL
언젠가 둘이 전쟁도 했지요. 러시아까지 포함해서 참, 이해하기 어려운 대국 트리오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3-30 23:12   좋아요 0 | URL
예.그때 소련이 인도 편들었는데 인도가 참패했지요.중소 분쟁이 한참 심할 때였지요.제3세계의 맹주는 누구냐를 두고 인도,중국,인도네시아가 3파전을 벌였던 때입니다.
 

이번주에 주목을 끄는 철학서는 장 살렘의 <고대 원자론>(난장, 2009)과 한자경 교수의 <헤겔 정신현상학의 이해>(서광사, 2009)이다. 후자는 국내 필자가 쓴 <정신현상학> 해설서 가운데 가장 상세한 듯싶다. 하지만 별다른 소개기사는 눈에 띄지 않기에 <고대 원자론>에 관한 기사만 옮겨놓는다.  

   

한겨레(09. 03. 28) 2500년 전 원자론, 인류에 쾌락을 선사하다

<고대 원자론>은 ‘원자론’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세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년경~360년경·사진), 에피쿠로스(기원전 342~271년), 루크레티우스(기원전 94년경~55년경)의 사유 세계를 해설한 책이다. 고대철학 전문 연구자인 장 살렘 프랑스 파리1대학 교수가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용으로 썼으며, 그 밑에서 에피쿠로스 철학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양창렬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이 원자론자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지닌 의미는 이 책의 부제 ‘쾌락의 원리로서의 유물론’에 드러나 있다. 지은이는 이 세 사람이 유물론적 세계관을 정초했으며, 거기에 입각해 ‘쾌락의 윤리학’을 설파했다고 말한다. 이 세 원자론자, 그중에서도 특히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이 현대 철학의 관심사가 된 것은 젊은 카를 마르크스의 연구에 힘입은 바 크다. 22살의 마르크스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이 두 사람의 사상을 비교한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를 썼다. 마르크스는 이 논문을 통해 헤겔 관념론의 자장 안에서 커가던 자신의 사유를 일신할 계기를 마련했다. 일종의 유물론적 도약의 발판을 찾아낸 셈이다.

장 살렘의 <고대 원자론>은 마르크스의 이 논문을 서술의 배경 또는 발단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고대 유물론자들의 사상을 해석한다. 마르크스가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를 극적으로 대립시켜 선배를 기각하고 후배의 편에 선다면, 살렘은 두 원자론자의 차이보다는 같음 쪽에 무게를 싣는다. 원자론이라는 큰 묶음 속에서 두 사람의 생각의 이어짐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의 관계는 어떤가. 지은이는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를 각각 장을 나눠 따로 설명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두 사람의 철학은 포개진다고 말한다. 에피쿠로스보다 200여년 뒤에 살았던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는 철두철미하게 에피쿠로스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의 저작에서 에피쿠로스의 발자국을 그대로 좇았다. 루크레티우스의 의미는 에피쿠로스 철학의 탁월한 주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300편에 이르는 많은 저작을 남겼지만, 그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의 사상을 알려면 루크레티우스의 충실한 해설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루크레티우스를 설명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에피쿠로스 철학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가 공유하는 유물론적 세계관은 “전 우주는 물체와 허공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명제로 집약된다. 우주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 내부는 물체로 채워져 있되, 물체가 운동할 수 있는 것은 허공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물체는 더는 나눌 수 없는 미립자의 집합이다. 이 미립자, 곧 원자를 일종의 레고라 한다면, 이 세계는 그 레고들의 결합인 셈이다. 이 ‘레고랜드’에는 창조주나 절대자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런 신적 존재 없이 이 세계는 스스로 작동하고 변화한다. 여기까지는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이 갈라지는 지점은 ‘원자의 운동’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들이 무게를 지니고 있어서 빗방울처럼 위에서 아래로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고 말한다. 떨어지면서 충돌하고 되튀고 얽힌다.

그런데 같은 속도로 평행하게 떨어진다면 서로 충돌할 일이 없다. 이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에피쿠로스가 제안하는 ‘클리나멘’(편위)이다. 에피쿠로스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원자들이 조금씩 수직에서 비껴나는 이탈 운동을 한다고 말한다. 이 이탈이 바로 편위다. 이 편위가 있기 때문에 원자들은 서로 충돌할 수 있고 일종의 ‘브라운 운동’을 할 수 있으며, 그 편위의 자유 운동 속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통해 세상 만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원자론적 자연학에 기반해 윤리학이 펼쳐진다. 에피쿠로스에게 자연의 세계는 윤리의 세계와 친연성을 넘어 어떤 일치성이 있다. 자연의 클리나멘은 사유의 클리나멘으로 이어지며, 이 사유의 클리나멘에서 사유의 의지, 사유의 자유가 도출된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흔히 ‘쾌락주의 철학’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데, 그때의 쾌락주의는 ‘오늘을 즐겨라’(카르페 디엠) 식의 ‘안달하는 쾌락주의’와는 종류가 전혀 다르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에피쿠로스가 쾌락이야말로 최고선이라고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쾌락은 욕망의 절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고통의 부재’에 가깝다. 에피쿠로스는 그런 쾌락을 두고 ‘아타락시아’(평정심)라고 했고, 아타락시아를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아테네 교외의 정원에 세운 학교(‘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 가르친 것은 아타락시아에 이르는 길이었다. 철학이란 “추론과 토론을 통해 행복한 삶을 얻어내는 활동”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유물론적 세계관이 신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없이, 다시 말해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삶을 지혜롭게 통찰해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다. 유물론이 쾌락의 원리, 행복의 원리가 되는 이유다.(고명섭 기자) 

09.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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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3-28 21:23   좋아요 0 | URL
한자경씨의 책들은 참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ㅎㅎ 새 책을 내셨다니 너무 반갑네요~

로쟈 2009-03-28 22:20   좋아요 0 | URL
이 분이 칸트철학과 불교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두 번 받으셨죠. 저도 칸트에 관한 학위논문은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주의 과학서'는 영국의 여성 유전학자이자 방송인 앤 무어의 <브레인 섹스>(북스넛, 2009)다. 제목의 '섹스'란 말 때문에 아무리 '브레인'을 앞세워도 서점직원에게 찾아달라고 하기가 좀 멋쩍은, 그런 책이다. 남녀간의 성차가 이미 뇌의 구조와 기능에 각인돼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니(남성 과학자라면 감히 주장하기 어렵겠다)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하다(성정체성이 그렇게 명확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과 비교해서 읽어봄 직하다). 한편으로 뇌과학 관련서는 하나의 트렌드라고 봐도 좋을 만큼 쏟아지고 있는데(전담 길잡이가 있었으면 싶다), 이주에는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에릭 캔델의 자서전 <기억을 찾아서>(랜덤하우스, 2009)도 챙겨놓을 만한 책이다. 알라딘에는 사회과학서로 분류돼 있는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에코리브르, 2009)는 내가 서평도서로 다룰 뻔한 책인데,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뭔가 적고 싶다(같이 참고할 책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과 <자음과 모음>(2008년 가을호)에 실린 슬라보예 지젝의 기고문 '벌들과 새로운 냉전'이다). 이 책들에 대한 리뷰기사를 하나씩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09. 03. 28) 남녀는 똑같다? 뇌 구조부터 다르다! 

"남자와 여자의 능력이 똑같다고? 우스운 소리 말라고 해. 남녀의 공통점은 인간이라는 것밖에 없어요. 엄연히 다르지."

회식에 함께한 여직원들 앞에서 한 남자 동료가 이런 얘기를 떠벌였다 치자. 십중팔구 그는 '남녀차별주의자'로 찍힐 것이고, 여직원들로부터 엄청난 '탄압'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영국 BBC 프로듀서이자 옥스퍼드대 유전학박사인 앤 무어 등이 지은 <브레인섹스>는 남녀의 재능이나 행동은 분명히 다르며, 다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책이다. 주장의 근거는 뇌과학의 실증적 연구성과이다.

 

최근 100년간 남녀의 차이에 관한 주도적 설명은 '성별 역할기대에 맞춰진 사회화 과정에서 차이가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설명의 이면에는 '일부러 차별을 만들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남녀의 차이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남녀의 상이한 호르몬 과정이 어떻게 서로 다른 뇌를 형성하게 하고, 행동의 차이를 낳게 하는지를 실증적 연구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태아가 6주가 됐을 때 성이 나눠지며, 남녀의 뇌도 이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여자 태아의 뇌가 애초의 기본형대로 성장하는 반면, 남자 태아의 뇌는 생식기에서 왕성하게 분비되는 남성 호르몬에 노출되면서 격렬한 화학반응을 겪는다. 그 결과 암수 포유류의 뇌는 신경전달물질의 양과 신경세포의 연결, 세포 및 세포핵의 크기 등이 다르다는 것이 확인됐다.

발생 단계부터 달라지는 남녀의 뇌는 성장기를 거치면서 차이가 더욱 커져 행동과 인지, 반응 등에서 극명한 차이를 내게 된다. 공간지각능력이나 추상적 관계를 파악하는 데 남자가 우수한 반면, 여자는 언어능력이나 감각에 대한 반응도가 앞서는 것도 뇌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저자들은 "지난 30~40여년 동안 여성들은 옆에 있는 남성만큼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고 교육 받으면서 자랐다"며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심각하면서도 불필요한 고통과 좌절과 실망을 겪어야만 했다"고 비판한다.(장인철기자)   

경향신문(09. 03. 28) 기억을 찾아 뇌속을 헤매다 

부스스한 머리에 흰색 가운을 입고 시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실험실에서 현미경에 코를 박고 있는 사내. 과학자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자연 이런 이미지로 정의되는 과학자들은 무척이나 건조해 보인다. 그러나 세계적인 생물학자 에릭 캔델(80)의 자서전인 이 책을 보면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반복하는 과학자들 삶의 이면엔 도전과 경쟁, 논쟁과 성취가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이자 카블리 뇌과학연구소장인 캔델은 가장 단순한 뇌를 가진 바다달팽이를 이용해 기억이 세포 안에 저장되는 과정을 연구한 논문으로 200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대공황이 시작되던 192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 캔델. 9살에 나치에 의해 굴욕적이고 공포스러운 경험을 한 뒤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는 과정의 서술로 시작되는 그의 삶에는 20세기에 진행된 뇌와 관련된 실험과 논쟁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공포스러운 유년기의 경험 때문에 인간의 기억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의대에 진학했으며, 특히 인간의 정신과 의식에 대한 선구적 심리학자인 프로이트에 깊은 감명을 받아 정신과를 선택했다. 프로이트가 주창한 의식과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총체적으로 규명해 보겠다는 포부에서다. 하지만 그는 의대 상급반 시절 만난 신경생리학자인 해리 그런드페스트로부터 “정신을 이해하려면 뇌의 세포를 하나씩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듣고 정신과 의사 대신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분자생물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다. 

그는 전도유망한 생화학자로서 크고 작은 성취들을 이룩해 나갔다. 새로운 발견을 했을 땐 동료와 함께 뛸듯이 기뻐했고, 새로운 연구대상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성취를 시기한 옆방의 연구자가 갑자기 말문을 끊어버리는 일을 겪기도 했다. 밤낮 없이 실험에만 몰두하는 그를 향해 부인이 “당신 이런 식으론 더이상 안돼! 당신하고 일만 생각하잖아! 나와 아이들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말이야!”라고 고함 치면서 부부관계에 심각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가 매달렸던 주제는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신경체계의 각 부문은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가’였다. 이를 위해 그는 매우 단순한 뇌 구조를 가진 바다달팽이를 실험 대상으로 삼는 모험을 감행한다. 선배 과학자들은 그의 선택을 만류했는데 당시엔 단순한 동물에 대한 연구는 인간의 행동과 무관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기억과 학습과정이 신경세포 안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관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후 바다달팽이는 그의 평생 친구가 되었다. 일곱살짜리 딸이 그의 마흔살 생일을 맞아 ‘바다달팽이’란 제목의 시를 지어 선물할 정도였다.

노벨상 수상으로 세계 최고 과학자의 반열에 오른 그는 도전정신을 강조한다. “매번 새로운 시도는 불안을 불러왔지만 기운을 북돋기도 했다. 새롭고 근본적인 것을 시도하느라 몇 년을 잃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다 하고 있는 판에서 막힌 실험을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김재중기자)  

    

서울경제(09. 03. 28) 사라지는 꿀벌, 우리 생존 위협?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 언뜻 이 말을 들으면 '그래서 뭐?'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사실 꿀이라는 맛난 식품을 제공하는 꿀벌이 감히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꿀벌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가 꿀을 앞으로도 계속 먹을 수 있는가 하는 소박한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과일과 작물들에게 화분매개(꽃가루 받이)를 해온 무보수 노동자들이 소멸한다는 사실 자체에 그 절박함이 있다.

음식과 환경의 연결고리를 탐구하는 저자는 꿀벌의 질병으로 알려진 '군집 붕괴 현상(Collony Collapse Disorder; CCD)'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CCD는 2006년 미국의 양봉가들이 처음 발견해, 2007년 원인 모를 꿀벌의 질병으로 미국에서 맹위를 떨쳤다. 뒤이어 유럽 등지에서도 같은 증상의 질병이 확인돼 '꿀벌실종(Bee lose)'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미국의 꿀벌 실종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은 지난해 CCD로 총 보유 꿀벌의 수가 240만군 수준으로 감소됐는데, 같은 해 한국의 군집수가 200만군 이상으로 집계된 것과 비교하면 토지면적이 우리보다 50배나 큰 미국에 닥친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다.

마치 공기나 물과 같이 언제나 자연적으로 공급될 것 같은 꿀벌에 의한 화분매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꿀벌 외에는 화분매개를 대신 해 줄 마땅한 대체 생물이 없는 상황에서 CCD는 양봉업만이 문제가 아닌 화분매개를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작물, 즉 농업 전반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게 됐으며, 현재도 그 피해를 키워가고 있다.

농업 전반에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가장 큰 피해국인 미국은 미농무성(USDA)을 필두로 질병의 원인체 규명에 돌입하였으며, 곤충학자ㆍ세균학자ㆍ화학자ㆍ물리학자 등 전문가를 동원해 원인체 발견과 해결책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연구 결과로 전자파, 환경오염물질, 살충제 등 농약, IAPV(Israelli acute paralysis virus; 이스라엘 급성 마비병 바이러스) 등 변형 바이러스 들이 유력한 원인체로 제시됐으나, 정확한 CCD의 원인체는 아직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꿀벌과 환경 전반에 걸친 풍부한 배경 지식과 뛰어난 필치로 양봉가들에 의해 CCD가 인식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재앙처럼 다가오는 새로운 질병에 원인도 모르고 대처 방법도 모르는 인간의 무력감을 무게 있게 다루고 있다. 또 많은 전문가들이 새로 출연한 질병을 제어하는 시발점이 되는 원인체 규명에 매진하는 과정과 연구결과를 정확한 근거를 들어 제시한다. 저자는 집중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결론을 보여주지 못하는 전문가 집단의 무능함을 양봉 현장과 건강한 자연환경의 목소리로 질타한다.

저자는 더 나아가 환경 저널리스트로서 거시 생태계의 흐름에 입각해 CCD가 꿀벌의 귀소 본능의 상실, 즉 방향 감각, 기억의 상실인 점을 주목한다. 또 살충제 등 폭 넓은 화학적 환경오염에 의한 스트레스, 거대 단일 작물재배에 의한 단순성 스트레스, 그리고 각종 꿀벌 병원체를 제어하기 위하여 끊임 없이 투여되는 약제들에 의한 스트레스 등을 그 원인으로 추론한다.

CCD의 연구에 큰 관심을 둔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에서 많을 것을 배웠음을 고백하고, 작가의 뛰어난 직관적 추론에 경의를 표한다. 이 저서가 꿀벌 뿐 아니라 건강한 자연환경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자연의 생태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윤병수 경기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09.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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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흥미로운 책, &lt;브레인 섹스&gt;
    from 자기치유 : I am NOT such a person. 2009-03-28 17:59 
    브레인 섹스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앤 무어 (북스넛, 2009년) 상세보기 여행을 다녀왔더니 한국에 흥미로운 책이 한권 소개되었다. 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로쟈'의 소개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뇌 자체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내용의 차이로 인해 다르다'라는 것. 개인적으로 상당히 신봉하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사회화의 결과일 뿐이고, 일부 신체적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상당부분 여전히 사회화로 인한 것'이라는 내용과..
 
 
2009-03-29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9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