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과학서'는 영국의 여성 유전학자이자 방송인 앤 무어의 <브레인 섹스>(북스넛, 2009)다. 제목의 '섹스'란 말 때문에 아무리 '브레인'을 앞세워도 서점직원에게 찾아달라고 하기가 좀 멋쩍은, 그런 책이다. 남녀간의 성차가 이미 뇌의 구조와 기능에 각인돼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니(남성 과학자라면 감히 주장하기 어렵겠다)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하다(성정체성이 그렇게 명확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과 비교해서 읽어봄 직하다). 한편으로 뇌과학 관련서는 하나의 트렌드라고 봐도 좋을 만큼 쏟아지고 있는데(전담 길잡이가 있었으면 싶다), 이주에는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에릭 캔델의 자서전 <기억을 찾아서>(랜덤하우스, 2009)도 챙겨놓을 만한 책이다. 알라딘에는 사회과학서로 분류돼 있는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에코리브르, 2009)는 내가 서평도서로 다룰 뻔한 책인데,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뭔가 적고 싶다(같이 참고할 책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과 <자음과 모음>(2008년 가을호)에 실린 슬라보예 지젝의 기고문 '벌들과 새로운 냉전'이다). 이 책들에 대한 리뷰기사를 하나씩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09. 03. 28) 남녀는 똑같다? 뇌 구조부터 다르다! 

"남자와 여자의 능력이 똑같다고? 우스운 소리 말라고 해. 남녀의 공통점은 인간이라는 것밖에 없어요. 엄연히 다르지."

회식에 함께한 여직원들 앞에서 한 남자 동료가 이런 얘기를 떠벌였다 치자. 십중팔구 그는 '남녀차별주의자'로 찍힐 것이고, 여직원들로부터 엄청난 '탄압'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영국 BBC 프로듀서이자 옥스퍼드대 유전학박사인 앤 무어 등이 지은 <브레인섹스>는 남녀의 재능이나 행동은 분명히 다르며, 다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책이다. 주장의 근거는 뇌과학의 실증적 연구성과이다.

 

최근 100년간 남녀의 차이에 관한 주도적 설명은 '성별 역할기대에 맞춰진 사회화 과정에서 차이가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설명의 이면에는 '일부러 차별을 만들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남녀의 차이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남녀의 상이한 호르몬 과정이 어떻게 서로 다른 뇌를 형성하게 하고, 행동의 차이를 낳게 하는지를 실증적 연구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태아가 6주가 됐을 때 성이 나눠지며, 남녀의 뇌도 이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여자 태아의 뇌가 애초의 기본형대로 성장하는 반면, 남자 태아의 뇌는 생식기에서 왕성하게 분비되는 남성 호르몬에 노출되면서 격렬한 화학반응을 겪는다. 그 결과 암수 포유류의 뇌는 신경전달물질의 양과 신경세포의 연결, 세포 및 세포핵의 크기 등이 다르다는 것이 확인됐다.

발생 단계부터 달라지는 남녀의 뇌는 성장기를 거치면서 차이가 더욱 커져 행동과 인지, 반응 등에서 극명한 차이를 내게 된다. 공간지각능력이나 추상적 관계를 파악하는 데 남자가 우수한 반면, 여자는 언어능력이나 감각에 대한 반응도가 앞서는 것도 뇌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저자들은 "지난 30~40여년 동안 여성들은 옆에 있는 남성만큼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고 교육 받으면서 자랐다"며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심각하면서도 불필요한 고통과 좌절과 실망을 겪어야만 했다"고 비판한다.(장인철기자)   

경향신문(09. 03. 28) 기억을 찾아 뇌속을 헤매다 

부스스한 머리에 흰색 가운을 입고 시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실험실에서 현미경에 코를 박고 있는 사내. 과학자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자연 이런 이미지로 정의되는 과학자들은 무척이나 건조해 보인다. 그러나 세계적인 생물학자 에릭 캔델(80)의 자서전인 이 책을 보면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반복하는 과학자들 삶의 이면엔 도전과 경쟁, 논쟁과 성취가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이자 카블리 뇌과학연구소장인 캔델은 가장 단순한 뇌를 가진 바다달팽이를 이용해 기억이 세포 안에 저장되는 과정을 연구한 논문으로 200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대공황이 시작되던 192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 캔델. 9살에 나치에 의해 굴욕적이고 공포스러운 경험을 한 뒤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는 과정의 서술로 시작되는 그의 삶에는 20세기에 진행된 뇌와 관련된 실험과 논쟁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공포스러운 유년기의 경험 때문에 인간의 기억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의대에 진학했으며, 특히 인간의 정신과 의식에 대한 선구적 심리학자인 프로이트에 깊은 감명을 받아 정신과를 선택했다. 프로이트가 주창한 의식과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총체적으로 규명해 보겠다는 포부에서다. 하지만 그는 의대 상급반 시절 만난 신경생리학자인 해리 그런드페스트로부터 “정신을 이해하려면 뇌의 세포를 하나씩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듣고 정신과 의사 대신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분자생물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다. 

그는 전도유망한 생화학자로서 크고 작은 성취들을 이룩해 나갔다. 새로운 발견을 했을 땐 동료와 함께 뛸듯이 기뻐했고, 새로운 연구대상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성취를 시기한 옆방의 연구자가 갑자기 말문을 끊어버리는 일을 겪기도 했다. 밤낮 없이 실험에만 몰두하는 그를 향해 부인이 “당신 이런 식으론 더이상 안돼! 당신하고 일만 생각하잖아! 나와 아이들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말이야!”라고 고함 치면서 부부관계에 심각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가 매달렸던 주제는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신경체계의 각 부문은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가’였다. 이를 위해 그는 매우 단순한 뇌 구조를 가진 바다달팽이를 실험 대상으로 삼는 모험을 감행한다. 선배 과학자들은 그의 선택을 만류했는데 당시엔 단순한 동물에 대한 연구는 인간의 행동과 무관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기억과 학습과정이 신경세포 안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관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후 바다달팽이는 그의 평생 친구가 되었다. 일곱살짜리 딸이 그의 마흔살 생일을 맞아 ‘바다달팽이’란 제목의 시를 지어 선물할 정도였다.

노벨상 수상으로 세계 최고 과학자의 반열에 오른 그는 도전정신을 강조한다. “매번 새로운 시도는 불안을 불러왔지만 기운을 북돋기도 했다. 새롭고 근본적인 것을 시도하느라 몇 년을 잃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다 하고 있는 판에서 막힌 실험을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김재중기자)  

    

서울경제(09. 03. 28) 사라지는 꿀벌, 우리 생존 위협?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 언뜻 이 말을 들으면 '그래서 뭐?'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사실 꿀이라는 맛난 식품을 제공하는 꿀벌이 감히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꿀벌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가 꿀을 앞으로도 계속 먹을 수 있는가 하는 소박한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과일과 작물들에게 화분매개(꽃가루 받이)를 해온 무보수 노동자들이 소멸한다는 사실 자체에 그 절박함이 있다.

음식과 환경의 연결고리를 탐구하는 저자는 꿀벌의 질병으로 알려진 '군집 붕괴 현상(Collony Collapse Disorder; CCD)'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CCD는 2006년 미국의 양봉가들이 처음 발견해, 2007년 원인 모를 꿀벌의 질병으로 미국에서 맹위를 떨쳤다. 뒤이어 유럽 등지에서도 같은 증상의 질병이 확인돼 '꿀벌실종(Bee lose)'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미국의 꿀벌 실종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은 지난해 CCD로 총 보유 꿀벌의 수가 240만군 수준으로 감소됐는데, 같은 해 한국의 군집수가 200만군 이상으로 집계된 것과 비교하면 토지면적이 우리보다 50배나 큰 미국에 닥친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다.

마치 공기나 물과 같이 언제나 자연적으로 공급될 것 같은 꿀벌에 의한 화분매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꿀벌 외에는 화분매개를 대신 해 줄 마땅한 대체 생물이 없는 상황에서 CCD는 양봉업만이 문제가 아닌 화분매개를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작물, 즉 농업 전반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게 됐으며, 현재도 그 피해를 키워가고 있다.

농업 전반에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가장 큰 피해국인 미국은 미농무성(USDA)을 필두로 질병의 원인체 규명에 돌입하였으며, 곤충학자ㆍ세균학자ㆍ화학자ㆍ물리학자 등 전문가를 동원해 원인체 발견과 해결책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연구 결과로 전자파, 환경오염물질, 살충제 등 농약, IAPV(Israelli acute paralysis virus; 이스라엘 급성 마비병 바이러스) 등 변형 바이러스 들이 유력한 원인체로 제시됐으나, 정확한 CCD의 원인체는 아직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꿀벌과 환경 전반에 걸친 풍부한 배경 지식과 뛰어난 필치로 양봉가들에 의해 CCD가 인식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재앙처럼 다가오는 새로운 질병에 원인도 모르고 대처 방법도 모르는 인간의 무력감을 무게 있게 다루고 있다. 또 많은 전문가들이 새로 출연한 질병을 제어하는 시발점이 되는 원인체 규명에 매진하는 과정과 연구결과를 정확한 근거를 들어 제시한다. 저자는 집중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결론을 보여주지 못하는 전문가 집단의 무능함을 양봉 현장과 건강한 자연환경의 목소리로 질타한다.

저자는 더 나아가 환경 저널리스트로서 거시 생태계의 흐름에 입각해 CCD가 꿀벌의 귀소 본능의 상실, 즉 방향 감각, 기억의 상실인 점을 주목한다. 또 살충제 등 폭 넓은 화학적 환경오염에 의한 스트레스, 거대 단일 작물재배에 의한 단순성 스트레스, 그리고 각종 꿀벌 병원체를 제어하기 위하여 끊임 없이 투여되는 약제들에 의한 스트레스 등을 그 원인으로 추론한다.

CCD의 연구에 큰 관심을 둔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에서 많을 것을 배웠음을 고백하고, 작가의 뛰어난 직관적 추론에 경의를 표한다. 이 저서가 꿀벌 뿐 아니라 건강한 자연환경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자연의 생태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윤병수 경기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09.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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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흥미로운 책, &lt;브레인 섹스&gt;
    from 자기치유 : I am NOT such a person. 2009-03-28 17:59 
    브레인 섹스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앤 무어 (북스넛, 2009년) 상세보기 여행을 다녀왔더니 한국에 흥미로운 책이 한권 소개되었다. 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로쟈'의 소개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뇌 자체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내용의 차이로 인해 다르다'라는 것. 개인적으로 상당히 신봉하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사회화의 결과일 뿐이고, 일부 신체적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상당부분 여전히 사회화로 인한 것'이라는 내용과..
 
 
2009-03-29 13: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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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9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