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회철학, 특히 하버마스 전공자이자 번역자로 유명한 장춘익 교수의 논문집이 '장춘익의 사회철학'으로 갈무리돼 나왔다. <비판과 체계>.<근대성과 계몽>, 두 권이다. 정년을 기념한 것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유고집이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저자는 지난해초 아까운 나이에 타계했다. 하버마스와 루만의 사회철학에 관해 국내에서 가장 정통한 학자라는 평을 전해들은 바 있어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하버마스와 루만의 대표작 번역을 맡을 만큼 능력과 책임감이 출중했다). 그나마 잘 정리된 유작집이 빠르게 나와서 저자의 학문을 대신하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림대 철학과에 재직했던 저자의 육성은 열린연단 강연(하버마스이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소개하는 강연이다)에서 들어볼 수 있다. 















장춘익 교수의 역작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과 루만의 대저 <사회의 사회> 번역이다. <의사소통행위이론>은 개역본을 준비하던 중이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실현되지 않았다. 이 묵직한 번역서들을 갖고는 있지만 해설을 읽는 것으로 독서를 대신해왔다. 이번 유고논문집을 길잡이 삼아서 읽어보고 싶다. 근대가 합리화의 과정이라는 독일 사회철학의 이해와 기대를 다시금 상기하게 되는 게 최근 한국의 상황이기도 해서다. 성인의 절반이 1년에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나라에서 '선진국'이 과연 가능한지 궁금한데, 내달이면 답변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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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크랩(crap)'이다. 일상어로 얼마나 흔하게 쓰이는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전적 정의로는 '헛소리'나 '쓰레기 같은 것'을 가리킨다. 번역본의 제목이 <싸구려의 힘>인 게 그럴 듯하다. 미국 역사학자 웬디 월러슨의 <싸구려의 힘>. 부제가 '현대 세계를 만든 값싼 것들의 문화사'다.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소비자문화, 물질문화, 시각문화 외 19세기 미국 자본주의에 대해 강의한다고 하는데, <전당포: 독립부터 대공황까지 미국의 전당업> 같은 저작도 갖고 있다(러시아의 전당업에 관한 책이 궁금하군). 


"현대인들의 일상에 싸구려 물건들이 넘쳐나게 된 경위와 원리, 그리고 싸구려의 본질을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연구해낸 책. 저자는 도서관, 박물관, 학회, 대학, 기업 자료실을 찾아다니며 수집한 엄청난 양의 자료를 바탕으로 싸구려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자세하게 그려내고 거기서 의미심장한 통찰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아무려나 책은 '값싼 것들'의 소비문화가 경제뿐 아니라 우리의 심리에 미친 영향까지도 살펴보고 있어서 흥미롭다. 더불어 미국식 자본주의의 긍정적/부정적 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니체의 구분에 따르면 자본주의 문화는 노예의 문화다). 
















값싼 것들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주목하여 자본주의 세계사를 살핀 책으로는 경제학자(개발사회학을 공부했으면 사회학자인가?) 라즈 파텔의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도 있다. <경제학의 배신><식량전쟁> 등으로 소개된 저자. 


"정치, 경제, 사회, 환경, 젠더 이슈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망라한 전문가들이 추천한 이 책은 담대한 역사서인 동시에 도발적인 사회과학서다. 자본주의는 18세기 산업혁명의 영국이 아니라 15세기 대서양의 섬에서 시작되었다는 관점에서 유럽과 신대륙의 역사를 다룬다.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이 일곱 가지를 저렴하게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거래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의 오랜 전략이었음을, 그 작동의 원리를 각 장에서 파헤친다."


값싼 것의 생산과 소비는 자연스레 그것을 소비하는 주체의 사고와 태도도 저렴하게 만든다. 아니 저렴한 것들에 적응하면서 자연스레 물들게 한다. 인간을 저임금 노동력으로 등치하는 사고방식이 대표적이다(120시간 노동을 얘기하는 자나 지지하는 자나 마찬가지다). 경제에서의 싸구려가 문화와 정치까지도 어떻게 싸구려판으로 만들어가는지(저질 정치인을 용인한다) 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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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대작 <신화학> 4부작 가운데 셋째권이 번역돼 나온 걸 뒤늦게 알고 구입했다. 1권 <날 것과 익힌 것>이 2005년에 처음 번역됐고, 2권 <꿀에서 재까지>가 2008년에 나왔을 때는 '설마 완간되는 건가?' 싶었는데, 이후에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서 '결국 절반만이군'이란 느낌을 갖던 터였다. 그런데 3권 <식사예절의 기원>이 지난 여름에 번역된 것(13년만이다!). 















'수집도서'로 구입은 했지만 당장 읽을 여유는 없고, 어쩌면 앞으로도 없을지 모르겠다(그래도 4권 <벌거벗은 인간>이 마저 번역된다면 당연히 구입할 예정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책은, 특히 신화학은 '사유의 악보' 같아서 악보 독해력이 필요한데(그리고 그걸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을 나는 갖고 있지 않다. 게다가 더 중요하게는 그런 여유나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읽어야 할 다른 책들이 많다는 것. 레비스트로의 책만 하더라도 <신화학>보다 먼저 읽어야 하는 책들이 있다. 박사학위논문인 <친족의 기본구조>(1949) 이후 그의 주저는 아래와 같다(*표시는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책).


<슬픈 열대>(1955)

<구조인류학>(1958)

<야생의 사고>(1962)

<신화학1: 날 것과 익힌 것>(1964)

<신화학2: 꿀에서 재까지>(1966)

<신화학3: 식사예절의 기원>(1968)

*<신화학4: 벌거벗은 인간>(1971)

*<구조인류학2>(1976)
















레비스트로스의 얇은 책은 몇권 더 번역되었는데, 대략 이 정도가 대표작이라고 가늠하고 있다. <신화학 4부작을 한 종으로 치면 <슬픈 열대>와 <야생의 사고>, 그리고 논문집인 <구조인류학>(저2권)과 <신화학>(저4권)까지 8권. 그 가운데 기본적인 저작이 <구조인류학>인데, 유감스럽게도 절반만 번역되었고 그마저도 절판된 지 오래다(나는 책을 갖고 있지만 현재로선 찾을 수 없다). <구조인류학>을 거치지 않고 <신화학>으로 넘어가는 건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하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신화학>을 미뤄놓는 이유다. 

















레비스트로스의 생애와 학문에 대해서는 자서전 <슬픈 열대>와 함께 인터뷰집 <레비스트로스의 말>, 절판됐지만 디디에 에리봉의 대담집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등을 참고할 수 있다. 아, 강연집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도 나와있군.

















오랜만에 레비스트로스에 대해 검색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에게 언어학을 가르쳐준 로만 야콥슨, 그리고 그 언어학을 전수해준 자크 라캉까지 떠올리게 된다(구조주의의 탄생 장면이다). 야콥슨과 레비스트로스, 레비스트로스와 라캉도 같이 묶어서 살펴볼 수 있는 지성사의 짝이다. 관련한 책, 특히 방대한 분량의 레비스트로 평전이 영어로 번역되었기에 바로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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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22-02-12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비스트로스-라깡 -구조주의, 이렇게 연결되는군요@@ 슬픈열대는 읽다가 다른 책에 밀려서 가끔 일요일에 보는 리스트에 속해있지요~ 치우지는 못하고 식탁 옆 책장에서 눈인사하는 사이^^*

로쟈 2022-02-12 19:31   좋아요 0 | URL
네, 그런 책들이 있지요.~
 
 전출처 : 로쟈 > ˝오늘 나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4년 전에 적은 페이퍼다. 이후 두어 차례 책이사를 해서 책상 사정은 조금 나아졌지만 독서가 불가능하다는 건 변함이 없다. 밀린 원고들도 제자리걸음. 기적은 서재에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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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22-02-1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노파를 오늘 읽었네요.

로쟈 2022-02-12 10:31   좋아요 0 | URL
네, 구하기 어려운 책.~
 

찾아보니 이디스 워튼에 관한 페이퍼를 재작년 여름에 적었다. <이선 프롬>과 <여름>이 다시 번역돼 나온 게 계기였는데, 지난가을에 <버너 자매>가 번역돼 나왔고, 이달에는 단편집 <석류의 씨>와 새 번역 <순수의 시대>가 추가되었다. 특히 <순수의 시대> 새 번역본이 반가운데, 그간에 강의에서 쓸 번역본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대표작이기도 하고).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온 <순수의 시대>는 대략 5종이다(펭귄판은 두 가지 표지). 































이번에 나온 문동판이 정본으로서의 기대에 부응하면 좋겠다. 
















<버너 자매>는 중단편집으로 <버너 자매><징구><로마열> 세 편으로 구성돼 있다. <징구>는 앞서 두 차례쯤 번역된 작품. <로마열>도 단편선집 <제인의 임무>에 수록돼 있다. 워튼 중단편 가운데서는 어떤 작품이 대표작이랄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아무래도 제한된 강의에서 모든 작품을 다룰 수는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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