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크랩(crap)'이다. 일상어로 얼마나 흔하게 쓰이는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전적 정의로는 '헛소리'나 '쓰레기 같은 것'을 가리킨다. 번역본의 제목이 <싸구려의 힘>인 게 그럴 듯하다. 미국 역사학자 웬디 월러슨의 <싸구려의 힘>. 부제가 '현대 세계를 만든 값싼 것들의 문화사'다.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소비자문화, 물질문화, 시각문화 외 19세기 미국 자본주의에 대해 강의한다고 하는데, <전당포: 독립부터 대공황까지 미국의 전당업> 같은 저작도 갖고 있다(러시아의 전당업에 관한 책이 궁금하군).
"현대인들의 일상에 싸구려 물건들이 넘쳐나게 된 경위와 원리, 그리고 싸구려의 본질을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연구해낸 책. 저자는 도서관, 박물관, 학회, 대학, 기업 자료실을 찾아다니며 수집한 엄청난 양의 자료를 바탕으로 싸구려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자세하게 그려내고 거기서 의미심장한 통찰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아무려나 책은 '값싼 것들'의 소비문화가 경제뿐 아니라 우리의 심리에 미친 영향까지도 살펴보고 있어서 흥미롭다. 더불어 미국식 자본주의의 긍정적/부정적 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니체의 구분에 따르면 자본주의 문화는 노예의 문화다).
값싼 것들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주목하여 자본주의 세계사를 살핀 책으로는 경제학자(개발사회학을 공부했으면 사회학자인가?) 라즈 파텔의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도 있다. <경제학의 배신><식량전쟁> 등으로 소개된 저자.
"정치, 경제, 사회, 환경, 젠더 이슈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망라한 전문가들이 추천한 이 책은 담대한 역사서인 동시에 도발적인 사회과학서다. 자본주의는 18세기 산업혁명의 영국이 아니라 15세기 대서양의 섬에서 시작되었다는 관점에서 유럽과 신대륙의 역사를 다룬다.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이 일곱 가지를 저렴하게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거래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의 오랜 전략이었음을, 그 작동의 원리를 각 장에서 파헤친다."
값싼 것의 생산과 소비는 자연스레 그것을 소비하는 주체의 사고와 태도도 저렴하게 만든다. 아니 저렴한 것들에 적응하면서 자연스레 물들게 한다. 인간을 저임금 노동력으로 등치하는 사고방식이 대표적이다(120시간 노동을 얘기하는 자나 지지하는 자나 마찬가지다). 경제에서의 싸구려가 문화와 정치까지도 어떻게 싸구려판으로 만들어가는지(저질 정치인을 용인한다) 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