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한국일보는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완역한 조형준씨와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 안 그래도 지난주 한 모임에서 국역본의 나머지 절반이 나올 때가 됐는데 좀 늦춰지는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었다. 그러던 차에 기대보다는 늦게, 하지만 예상보다는 빠르게 책이 완간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어 반갑다. 사실 한두 주 전에 나는 영역본을 주문해놓은 터여서 이 달안으로 책을 받게 될지 모른다. 해서 이젠 그간에 미루어둔 국역본의 구입도 더이상 미룰 수 없을 듯하다(책을 사는 건 어렵지 않다. 책을 꽂아둘 장소가 문제이다!).

참고로, 수잔 벅 모스의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문학동네, 2004), 그램 질로크의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효형출판, 2005), 그리고 할 포스터의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아트북스, 2005)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함께 읽어볼 만한 대표적인 참고문헌이다(초현실주의를 다루고 있는 포스터의 책에서 두 개의 장이 벤야민에 할애돼 있다. 벤야민에게서 초현실주의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보야야 할 대목들이다.)

한국일보(06. 07. 04)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완역 조형준씨

-나치를 피해 망명을 시도하다 자살한 비극의 유대인 지식인 발터 벤야민(1892~1940). 구미 지성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그의 필생의 역작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완역됐다. 새물결출판사 조형준(42) 주간이 지난해 1권에 이어 최근 2권을 번역, 3일 출판했다. 2,500여 페이지나 되는 이 책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서사시’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마르크스가 외부에서 X레이로 자본주의를 촬영했다면, 이 책은 내시경을 밀어넣어 자본주의 몸통 내부를 촬영한 것입니다.”

-1920년대 유럽은 제국주의, 나치즘, 전쟁 등 자본주의의 폭력적 모습을 목격한다. 마르크스주의, 프랑크프루트학파, 루카치 등이 자본주의의 성격 분석을 시도하지만, 벤야민은 이들과 다른 방식을 취했다. 워즈워드의 시 ‘무지개’의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란 구절처럼, 광기와 광포함이 극에 달한 ‘어른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자본의 유년기’로 눈길을 던진 것이다(*나는 다른 페이퍼에서 유년기적 마르크스주의'란 표현을 쓴 바 있다). 이때 벤야민이 택한 지역은 19세기의 파리.

-프랑스혁명과 파리코뮌으로 대변되는 혁명의 도시가 바로 파리였다. 벤야민은 도서관에서 13년 동안 아케이드(arcade), 패션, 권태, 박람회, 광고, 매춘, 도박, 회화, 신문, 조명, 철도, 사진, 증권, 광고 등 자본주의 탄생기의 파리 모습을 찾아낸다. 책의 절반이 이런 내용이니, 자본주의의 육아일기로 보아도 무방하다. “벤야민은 자본주의가 사회에 꿈과 환상을 심어주었다가 한 순간 그것을 쓰레기 혹은 물거품으로 만들고 다시 꿈과 환상을 부추기다가 또 다시 쓰레기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케이드만 해도 초기에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석조 건물만 보아온 파리 시민에게, 철과 유리로 만든 아케이드는 산업이 만든 새로운 발명품이자 가스등을 처음 선보인 새 도시, 새 세상이었다. 그러나 그런 아케이드는 불과 20, 30년 만에 갑자기 폐허가 되고 만다.



-조 주간은 “벤야민이 파악한 자본주의의 동력을 지금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화소 카메라 기능을 갖춘 첨단 휴대폰이 나오면서, 아직 충분히 쓸 수 있는 제품이 쓰레기로 변하는 것 등이 그 보기다. 그는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의 멸망을 점친 마르크스와 달리, 이 책은 자본주의의 내밀한 부분을 가장 깊숙한 곳에서 들여다 본 책이라고 평가한다.

-원서는 1980년 독일에서 나왔는데 절반은 독일어, 절반은 프랑스어로 돼 있었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독일어 프랑스어에도 능한 조 주간은 “분량은 방대했지만 번역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고 했다. 다만 주(註)가 하나도 없어 애를 먹었다..

-예를 들어 “블랑키가 정부 대표로 노동자 대표단을 이끌고 런던 만국박람회에 갔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조 주간은 이를 폭력혁명을 주창한 공산주의자 블랑키(1805~1881, 사진)가, 자본주의의 잔치인 만국박람회에, 그것도 (프랑스) 정부 대표로 갔다는 것으로 해석하고는 매우 난감했다. 하지만 박람회에 간 사람은 그의 형인 제롬 블랑키(1798~1854)였다. 경제학자로 정부 관료를 지낸 형은 동생과 성향이 크게 달랐는데, 원서에는 동생인지 형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초기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지만 딱딱하거나 어렵지는 않다. 조 주간은“책이 두껍다고 독자들이 너무 겁 먹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두꺼운 책을 좋아하는 나로선 겁먹을 일이 아니다. 내게 일차적으로 겁나는 책값이고, 그보다 더 두려운 건 들고다닐 무게이다. 혹 영역본까지 같이 들고다녀야 한다면!).

06. 07. 04. 

P.S. 작년에 나온 1권은 한겨레가 꼽은 '2005 올해의 책 50'에 선정되기도 했다(2권까지였다면 단연 '올해의 책'이었을 것이다). 그 이유를 들어본다.

한겨레(05. 12. 16) 현대 미학비평과 문화연구 같은 분야에서 최근 새롭게 조명받는 발터 베냐민(1892~1940)은 일찍이 자본이 만든 인공낙원인 “19세기의 수도” 파리에서 자본과 상품의 화려한 불빛을 뿜어내는 아케이드의 상징에 주목했다. 1927년부터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는 아케이드와 관련한 옛문헌, 인용문, 가십, 인물촌평, 여행 안내서, 박람회 카탈로그 따위를 모으고, 생시몽·보들레르·마르크스의 관련 자료들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방대한 자료에 자신의 생각들을 덧붙인 것이, 이름하여 <아케이드 프로젝트>(새물결 펴냄)다(*'벤야민' 대신에 '베냐민'이란 표기를 끝까지 고집하는 것이 한겨레의 '프라이드'이다. 아마도 '베냐민 지파'의 후손들인 모양이다).

-‘이 책은 나의 모든 투쟁, 나의 모든 사상의 무대’라고 그 스스로 말했다는 이 미완성 자료집은 그동안 여러 해석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국내 독자들한테는 부분 인용되거나 이름만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말 완역 출간의 의미는 크다. 이 책에선 베냐민이 근대 자본주의의 ‘모더니티’를 19세기에 이미 찾아나선 발견자의 상상력을 엿보여준다.

-아케이드, 유행품점, 패션, 권태, 오스만식 도시, 철골 건축, 박람회, 광고, 꿈, 매춘·도박, 파노라마, 조명 같은 이름말들은 호기심 많고도 우울한 ‘비판적 관찰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하부구조를 분석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과 다르게 “자본주의에 대한, 자본주의 안에서 하는 전혀 다른 발본적 사유”로서 근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 좋은 텍스트로 꼽히고 있다. 그가 “초현실주의의 어머니”로 부른 아케이드는 왜 베냐민을 그토록 흥분시키고 매혹시켰을까?(*누구더러 답하라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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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클로 2006-07-04 11:12   좋아요 0 | URL
기쁜 일입니다...

palefire 2006-07-04 12:53   좋아요 0 | URL
영역판은 그래도 페이퍼백이 나와서 다행입니다(아마 페이퍼백으로 주문하신 것 같아요). 하드커버 책가방에 들고다니면 볼만하죠. 거기다 노트북까지;;

로쟈 2006-07-04 12:58   좋아요 0 | URL
네, 페이퍼백이 25불 가량이더군요(중고는 12-3불까지도 떨어지던데, 벤야민 얼굴을 봐서 새 책으로 주문했습니다). 그럴리야 없을 테지만, 전4권과 영역본의 무게를 합하면 거의 군장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고 구보까지 해야 한다면?.. 다시 돌아가기 싫은데요.^^

드팀전 2006-07-05 17:34   좋아요 0 | URL
1,2권 합치면 거의 4천페이지군요....저같은 직딩이 읽으려면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도전의식같은게 생기긴하는데....그전에 수잔 벅 모스의< 발터벤야민과 아케이드프로젝트>를 읽어야할 듯....

로쟈 2006-07-05 19:30   좋아요 0 | URL
영역본이 1천쪽이 좀 넘는데, 국역본이 쪽수로는 거의 4배가 되는군요...
 

아침신문들을 읽다가 교수신문에서 독일의 저명한 작가 페터 한트케의 하이네상 수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란을 다룬 기사를 옮겨온다. 필자는 정광진 통신원이며 기사의 타이틀은 "親세르비아 작가는 비난받아야만 하나"이고 부제가 "獨, 페터 한트케의 하이네상 수상을 둘러싼 소동"이다. 그걸 '페터 한트케를 둘러싼 소동'으로 줄였다. 제목과 부제에서 '소동'의 내용을 얼추 짐작해볼 수 있다.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독일 작가로 인정되지만 한트케는 자국의 하이네상 수상자로는 '부적격'하다고 간주되는 모양이다.

-최근 독일에서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 페터 한트케의 하이네상 수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은 한트케가 수상을 거절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이 논쟁의 논점은 작가의 정치적 입장과 작품에 대한 평가를 분리할 수 있는가, 그리고 독립된 심사위원회가 결정한 것을 시당국이 거부할 수 있는가다. 하이네상은 하인리히 하이네의 고향인 뒤셀도르프시가 1972년부터 뛰어난 업적을 남긴 문화계 인사들에게 수여해온 것인데, 지난 5월 20일 한트케로 수상자가 발표되면서 문단과 언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한트케는 90년대 중반부터 유고연방 해체 와중에서 일어난 발칸반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親세르비아적 내용을 담은 글을 계속 발표해왔고, 지난 3월엔 헤이그에서 전재판을 받던 중 숨을 거둔 前 유고 대통령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연설까지 했는데 그런 작가에게 하이네상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기존 수상자들 상 반납하겠다고 나서
-작가 귄터 쿠네르트는 어떻게 독일의 역사를 경험하고서도 “독재자의 광대”를 칭송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한트케에게 상이 수여된다면 자신이 1985년 수상했던 하이네상을 반납하겠다고 나섰다. 파문이 커지자 하이네상과 뒤셀도르프시의 이미지 훼손을 우려한 시의회가 수상에 대한 승인을 거부하고 올해는 하이네상 수상자를 내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그러자 이에 항의해 심사의원이었던 뢰플러와 르페브르가 심사위원회 탈퇴의사를 밝혔다.

-그들은 “비어만, 옌첸스베르거, 쿠네르트 등 역대 하이네상 수상자들은 정관에 씌어진 대로, ‘사회적·정치적 진보’와 ‘민족간 이해’에 기여해서가 아니라 작품성을 인정받아 수상했다”고 반박했다(*옌첸스베르거는 아동용 도서들로 국내에 더 잘 알려져 있다. 볼프 비어만의 책들은 다 어디로 갔나?). 또 “그는 가장 뛰어난 작가이고, 세상을 의도적으로 달리 보려는 그의 삶의 방식, 창작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고 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옹호했다.

-독일작가협회도 “독립적인 심사위원회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혼란 중에 한트케는 결국  6월 2일 뒤셀도르프 시장에게 편지를 보내 “더 이상 정치인들이 나와 내 작품을 모욕하게 놔둘 수 없다”며 수상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한 매듭이 지어졌다.

-이번 일은 지난 3월엔 프랑스 국립극장 ‘코메디 프랑세즈’가 밀로셰비치 장례식 참석을 이유로 2007년에 예정됐던 그의 작품상연을 취소한다고 밝힌 것과 더불어 작가로서 한트케의 명성에 큰 오점으로 남게 됐다. 한트케는 왜 비난을 무릅쓰면서 고집스럽게 세르비아와 밀로셰비치의 변론자 역할을 떠맡고 있는 걸까. 

 

 

 

 

-한트케는 1942년 옛 유고연방(현재 슬로베니아쪽) 접경지인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캐른텐에서 태어났는데, 모계는 슬로베니아 출신이고 한트케 자신도 어린 시절엔 슬로베니아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했다. 슬로베니아는 몇몇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하지만, 한트케에게 더 중요한 건 슬로베니아의 일부였던 유고슬라비아다.

-여러 민족과 종교가 한 국가 깃발 아래 뭉친 유고연방에서 한트케는 자신이 찬미하는 독일작가 슈티프터가 바로 한 세기 전에 꿈꿨던 ‘全세계성’(Allerweltlichkeit)의 구현을 발견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염명인). 유고연방의 해체에 대한 아쉬움은 “내게 있어서 유럽은 유고와 함께 사멸했다”는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이런 신념이 유고연방의 주축이자 동구권의 해체 후에도 연방을 유지하려던 세르비아계를 우호적으로 보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한트케는 서유럽 언론들이 유고슬라비아의 유산을 둘러싼 싸움에서 독립하려는 국가들의 이기주의보다는, 무력을 통해서라도 통합을 유지하려는 세르비아만을 악마적으로 일방적으로 묘사하며 비판했다고 본다. 이것이 그의 도발적 행동의 직접적 원인이다. 한트케는 저널리스트적 획일성과 흑백논리를 배격하고, 언론과는 다른 언어와 표현방식을 선택하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게는 다름 아닌 세르비아와 밀로셰비치가 패배자이자 약자이며, 그래서 “세르비아를 위한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서구언론에 대한 도전은 사실 “창작을 하나의 도전”으로 보는 그의 세계관에서 보면 일관성이 있다. 그는 모든 존재현상들에 대해 이제까지의 모든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 존재의 직접성을 표현하는 것을 창작의 의도로 밝히고 있다. 문학의 정치화는 자명하게 규정된 것,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지배체제의 드라마투르기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며 이런 인식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문학의 과제라고 봤다. “선입견에 대한 도전”, 이것이 그의 도발적 저술작업, 영화제작참여 또는 심지어 정치적 활동 모두를 가장 적절히 설명해주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한트케는 “역사를 새로 쓰려고 한다고 나를 비난하는데, 언론인들은 역사를 써도 되느냐”고 반박한다. 한트케의 튀는 행보는 역사적 진실을 찾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그것의 원인은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향수와 일방적인 서구언론에 대한 반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는 12월에 하이네상을 수상하게 되면 시인의 언어와 저널리즘 언어의 차이에 대해서 연설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이네상을 둘러싼 논쟁에서 한트케의 친 세르비아적 입장 자체를 옹호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대신 보토 스트라우쓰는 브레히트, 칼 슈미트, 하이데거 등을 언급하며 위대한 작가는 실수할 수 있다며 한트케를 옹호했고, 심사위원이었던 뢰플러는 한트케가 독재자 편을 든 게 아니라 사건의 여러 측면을 고려하자고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시의회의 수상취소에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귄터 그라스는 최근 차이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트케의 세르비아, 밀로셰비치에 대한 견해에는 털끝만큼도 동의하지 않지만 문학적 기준을 가지고 심사한 것을 두고 정치적인 이유에서 번복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사실 심사위원 12명 중에 시의회 정치인 5명도 포함돼 있었음에도 시의회가 수상취소를 결정한 것은 언론보도 등을 통해 파문이 커지자 서둘러 차단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번 소동은 한트케가 스스로를 ‘바보’라고 부르면서도 그가 부딪혀 싸우려는 언론의 영향력을 보여 준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한트케의 대표작이 드라마 <관객모독>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06.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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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구내서점에서 본 두툼함 책 하나는 '학문 주체화의 새로운 모색'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우리 안의 보편성>(한울, 2006)이었다. 한동안 '학문의 주체성' 내지는 '우리 학문'이란 말이 학술계의 화두로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신간은 그간의 성과를 집약하고 있는 책인지, 아니면 주기적인 레퍼토리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걸 직접 따져볼 만한 형편은 아니었는데, 얼마간 궁금증을 풀어주는 리뷰가 있길래 옮겨온다. 문화일보 최영창 기자가 쓴 "탈식민적 인식서 나아가 현실에 대한 보편적 독해"란 제하의 리뷰가 그것이다. 참고로, '우리 안의'란 표현은 <우리 안의 파시즘>(삼인, 2000) 이후 최근에 출간된 <우리 안의 과거>(휴머니스트, 2006)에 이르기까지 출판계에 유행하고 있는 하나의 트랜드이다.

 

 

 

 

문화일보(06. 06. 30) 1990년대 중반 미국 서부 남가주대(USC)에 교환교수로 가 있던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세계체제론의 권위자인 지오반니 아기리의 강의를 듣다가 “독재정부가 아닌 민주정부 아래에서 투쟁하는 한국을 포함한 제3세계 신흥공업국의 노동운동의 과제와 방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아기리는 “그것은 나에게 물어야 할 것이 아니라 당신이나 한국의 운동가들이 스스로 대답해야 할 문제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신흥공업국 노동운동의 선봉에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향방이 세계 노동운동에 중요한 전범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국내 인문사회과학자 12명이 서구 학문으로부터의 종속에서 벗어나 우리 학문의 주체적 정립을 모색한 책에서 조희연 교수는 당시 경험을 예로 들며 일생일대의 ‘지적 수치심’을 느꼈던 때라고 밝혔다. 당혹감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 그는 강의가 끝난 뒤 벤치에 한 시간쯤 앉아 국내 학계와 지성계가 우리 현실을 어떻게 대면하고 있는지 수치스러운 마음으로 되돌아보았다고 한다.

-우리 근대학문의 서구 종속성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상지대·성공회대·한신대 3개 대학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민주사회정책연구원에서 기획한 책은 우리의 경험과 현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탈식민적 인식’의 순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 현실에 대한 ‘주체적이고 보편적인 독해’를 통한 실천적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여기서 ‘보편적 독해’란 정신대 문제나 박정희 신드롬, 광주항쟁 같이 우리 사회의 ‘특수성’으로 간주되는 현상들 속에서 세계사적 보편성을 읽어내려는 노력을 말한다.


 

 

 


-한국 학계 전반의 식민성을 점검한 서장에서 조희연 교수는 “지적·학문적 식민주의는 미국적 근대화를 추구했던 주류 우파 학자들뿐 아니라 이에 저항했던 좌파 학자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잉보편화’된 서구적 보편의 특수화와 함께 그동안 주변적인 것으로 인식되면서 ‘과잉특수화’된 한국적·비서구적 특수의 보편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다만 우리 안의 보편성 발견 노력은 ‘우리 안의 파시즘’을 인식하는 과정과 동시에 진행돼야 ‘국가주의’나 파시즘으로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다고 조 교수는 덧붙였다. 화교나 외국인 노동자, 정주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에서 볼 수 있는 무수한 ‘우리 안의 파시즘’적 잠재력을 성찰하고 극복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질 때 현재의 ‘한류’가 문화적 패권주의가 아니라 아시아 동반주의의 새로운 문화적 차원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서장에 이어 독일과 일본, 중국, 남아프리카 등 해외에서 이뤄진 학문 주체화 사례들을 다룬 논문과 내재적발전론·민족경제론, 분단시대론, 민중 등 광복 후 국내 학계에서 학문 주체화를 시도한 대표적 사례들을 살펴본 글, 이병천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의 ‘개발자본주의론’ 처럼 한국사회의 주요 측면들에 대해 최근 새롭게 개념화·이론화에 들어간 작업들을 해당 연구자가 직접 소개하는 논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서구의 근대학문과 우리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지만, 사실 우리 학문의 대외 종속성은 근대나 서구와의 관계로만 한정되지 않고 훨씬 더 뿌리가 올라가고 복잡한 문제다. 따라서 필진으로 참여한 12명의 노력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낯설게 비쳐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가진 의미는 인정받을 가치가 충분하다(*이를 계기로 '우리 학문의 (불)가능성에 대한 보다 진전된 논의가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06. 07. 03.

P.S. 러시아 사이트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들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한반도 지도 한 장을 옮겨놓는다. 동아시아사에 대한 내용 중 7세기 삼국시대의 한반도 모습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양편으로 황해와 동해가 러시아어로 표기돼 있다. 암튼, 이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우리 안의 보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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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퇴전문 2006-07-04 04:37   좋아요 0 | URL
당면한 현실과 문제들을 스스로의 머리로 고민하지 않는 한국적인 무언가를 식민과 냉전-분단 체제 탓으로 결론 짓는 것도 차츰 망설여집니다. 지적인 전통과 토양이란 것에 대해 알면 알아갈수록 답답한 심사도 함께 느네요. 가령 거대 제국이 공급해주는 담론들을 끽 소리 않고 받아들여서 오히려 더 교조적으로 울궈먹는 모습도 조선조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전통인가 싶고, 대전제는 결코 건드리지 않는 안전한 개설서를 주로 내놓는 모습도 당시 유생들이나 지금 교수들이나 뭐가 다를까 싶죠. 때론 한국이 뒷방 구석의 작은 냉장고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통 기한이 지난 수입 식품들을 오롯히 저장해두는.

공부가, 평생 남이 퍼질러 놓은 대변이나 분석하다 끝나는 것이 아닌가.. 그게 나 하나 잘 하고 열심히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곧 죽어도 능력 없다곤 인정 안 하죠;), 가끔씩 서늘해지는 거겠죠. 초면 불구하고 몇자 남깁니다.

로쟈 2006-07-04 07:39   좋아요 0 | URL
'뒷방 구석의 작은 냉장고'란 비유가 절묘하네요.^^ 이게 한 개인의 역량과 무관한 듯싶은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떼로 돌파할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됩니다. 누군가 좀 뚫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오늘자 조간신문들의 문학란은 대부분 중국계 프랑스 작가 샨사의 방한기사로 채워져 있다.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방한소식을 기사를 통해 처음 접하고 나는 두번 놀랐다. 나이가 나보다 많이 어리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그럼에도 외모는 나이가 더 들어보인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랐다. '놀랐다'고 적었지만 그냥 '의외였다'고 해야 맞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의외인 것은 이 '중국 여성'이 불어를 배운 지 4년만에 쓰기 시작한 소설들로 프랑스 문단을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 이게 사실은 가장 '놀라운' 일이다! 비록 당분간은 그녀의 소설을 읽을 일이 없을 듯하지만, 안면 정도는 터둔다는 의미에서 관련기사 몇 편을 옮겨둔다(일부 중복되는 내용은 조정했다).   

세계일보(06. 07. 03) "천안문 사태가 내 인생 전환점"

-감각적인 문체와 진중한 서사로 국내에도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한 중국계 프랑스 작가 샨사(34·사진)가 지난 1일 ‘현대문학’ 초청으로 방한했다. 1972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천안문사태를 겪은 후 17세에 파리로 건너가 불어를 배운 지 불과 4년 만에 불어 소설을 집필, <천안문> <바둑 두는 여자> <측천무후> 등을 잇달아 펴내면서 프랑스 고교생들이 선정하는 ‘공쿠르 데 리세앙’상 수상을 비롯해 뜨거운 호응을 얻어낸 작가. 입국 당일 기자와 만난 작가는 일본에서 다양한 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난 직후여서인지 다소 피로한 듯했지만 맑은 눈동자에 빛나는 투지를 담고 있었다.

 

 

 



―불어로 쓴 첫 소설이 <천안문>인데, 천안문사태는 당신에게 어떤 경험이었나?

당시 고교생이었기에 적극적으로 낄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시위대에게 물을 가져다 주고 여러 가지 물품을 공급하는 정도의 일은 했다. 나는 그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건너갔는데,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는 파리지앵들을 보면서 비극적인 사태로 인한 심리적 내상까지 지니고 있던 나는 난파선에서 살아남은 듯한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도 천안문사태를 매체를 통해 접했겠지만 고통이란 공유되기 힘든 것이었다.”

―왜 중국어가 아닌 불어로 소설을 썼는가.

“프랑스에 가기 전까지 따로 불어를 배운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틀리건 맞건 간에 ‘쓰겠다’는 용기를 냈던 게 주효했던 것 같다.”

―독자들이 당신 소설에 열광하는 이유는?

좋은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다른 인터뷰에서도 드러나지만 그녀의 자신감과 도도함은 하늘을 찌른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이란 자기 만족을 위한 에고이스트 소설이 아니라, 보편적인 주제를 통해 감동과 함께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공유하는 소설이다. 내 소설은 공간이 특별하고 오감을 건드리는 심포닉한 불어를 쓰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당신 소설에서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배경은?

내 소설은 꿈꾸게 하는 소설과 공포나 잔인함, 생의 막다른 골목을 드러내는 소설로 나뉜다. <측천무후>나 <버드나무의 네 번째 삶>이 전자이고, <바둑 두는 여자> <천안문> <음모자들>이 후자일 것이다. 이 두 부류의 작품들을 번갈아 쓰면서 내 안의 균형을 유지하는 편이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흔히 성공한 여자들을 ‘악마’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런 여자들이야말로 ‘불꽃 위를 나는 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불꽃을 건너 날아가는 새다.”

-그림도 병행하고 있는 샨사는 소설을 쓸 때는 하루에 15시간씩 매달리며 수도자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단문을 전략적으로 구사하는 그는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해 단칼에 문장을 요리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단어를 사람처럼 대한다는 그는 “단어마다 각기 다른 기질과 관능이 배어 있는데 주방장이 향신료를 적절히 활용해 좋은 요리를 만들어내듯 내가 애정을 가지는 그 단어들로 소설을 완성해낸다”고 말한다.

-프랑스에서 한국인들도 많이 접했다는 샨사는 “한국인은 다이내믹하고 창의적인 민족 같다”며 “한국영화는 셀 수도 없이 많이 봐서 제목조차 기억 못할 정도”라고 한국과의 친연성을 드러냈다. 한국에서는 낭송회(4일 오후 7시 교보문고 잠실점)와 사인회(5일 오후 3시 교보문고 광화문점)를 비롯해 각종 매체와의 바쁜 인터뷰 스케줄로 꽉 차 있다. 1주일 후에는 부모가 사는 베이징으로 날아가 영화 계약을 해야 한다. 이렇게 바쁜 생활 속에서 사랑은 언제 하나.(*소설은 언제 쓰나, 라고 질문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은 불가능합니다. 사랑은 우리 각자의 가장 훌륭한 부분, 서로 만나기로 되어 있는 두 존재의 완전한 융합입니다. 그러나 삶은 그 존재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랑은 짧은 순간들 속에서만 존재합니다.”(글·사진 조용호 기자)

동아일보(06. 07. 03) "‘베이징의 별’…중국계 프랑스인 작가 샨사 내한"

-소녀는 작가가 되리라는 걸 알았다. 여덟 살 때 시를 쓰기 시작해 10대 시절 이미 세 권의 시집을 냈고 ‘베이징의 별’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베이징대 진학을 앞둔 17세에 소녀는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맞는다. 도저히 공부할 상황이 아님을 알고는 프랑스행을 결심했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얀니(閻c)라는 원래의 이름 대신 샨사(山颯)라는 이름을 쓰기로 한다. 아들을 낳으면 이름에 ‘사(颯·바람소리를 뜻함)’를 쓰려고 했다는 아버지의 얘기를 일찍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계 프랑스인 소설가 샨사(34)가 1일 처음 내한했다. 국내에선 2002년 소설 <바둑 두는 여자>가 처음 소개된 뒤 대표작 <측천무후> 한 종만 8만 부가 팔린 인기작가다. <바둑 두는 여자>는 고등학생들이 가장 읽고 싶은 책으로 뽑혀 공쿠르 데 리세앙 상을 받았으며 <측천무후>는 프랑스 출판사 두 곳이 판권을 놓고 법정 분쟁까지 벌였다.

-놀라운 것은 그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는 사실. 그랬던 그가 파리 생활 7년 만인 1997년 프랑스어로 쓴 첫 소설 <천안문의 여자>를 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창작을 감행한 이유를 묻자 샨사는 “나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희열을 느낀다”고 답했다.

-샨사 소설의 문체는 아름답지만 단문으로 쓰여 속도감 있게 읽힌다. 그는 “(소설을 쓸 때) 사전 속 단어를 찾아보면서 ‘언어의 관능’을 느낀다”고 했다. 단어를 정교하게 직조하되 “단칼에 치듯” 문장을 쓴다고도 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여성이지만 전쟁, 음모 같은 남성적인 주제를 다룬다. 샨사는 “권력, 두뇌의 힘, 사상의 대립과 충돌을 지켜보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프랑스로 귀화한 그는 “서양인, 동양인 중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나”라는 물음에 “나는 중국이 벼려내고 서양의 불 속에 담금질된 칼”이라고 답했다.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만큼 질시도 따랐다. 공쿠르상 등 각종 문학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심사위원들에게 ‘샨사는 중국 스파이’라는 투서가 잇따랐을 정도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얘길 들려줬지만 이내 “거기서 소설 <음모자들>의 모티브를 얻었다”며 웃었다(<음모자들>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중국 스파이와 미국 CIA 요원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다).

-그는 아침마다 태극권으로 몸을 단련하고 서예를 하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창작에 매진할 때면 하루 15시간씩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그는 개인전을 수차례 연 화가이기도 하다). 일하느라 바빠 연애할 시간이 없다면서도 샨사는 “사랑은 운명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지만 <형사> <태극기 휘날리며> 등 한국 영화를 많이 봤으며 임권택 감독을 좋아한다고 했다. 수년 전 임 감독 등 한국 영화 제작진과 우연히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는데 ‘보드카 폭탄주’를 만드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웃었다.(김지영 기자)

한국일보(06. 07. 03) 中 태생 佛작가 샨사 방한 "동서고금 아우른 세계문학 추구"

-"단어는 하나하나가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저는 그 영혼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 존경과 사랑이 단어와 저를 매개합니다." 중국 태생의 프랑스 작가 샨사(34)는 앙가슴이 드러나는 드레스 차림이었다. 그리 크지않은 키에 둥근 몽골리언 골격, 서글서글한 눈매와 푸근한 웃음은 그의 문장이 지닌 섬세한 힘과 언뜻 조화되지 않는 듯했지만, 소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대목에 이르자 측천무후의 위의(威儀)처럼 도도하고 당당했다.

-베이징에서 나서 문학 신동이라 불리며 8살 때부터 시를 썼고, 18살에 프랑스 정부 장학금으로 파리 유학, 7년 만에 불어로 장편소설 <천안문의 여자>(원제 <천안문>)를 써낸 작가. 이후 <바둑 두는 여자> <측천무후'>등 그의 작품은 발표될 때마다 프랑스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미국과 일본에도 번역 출간됐다. 이번 한국 방문은 책 출간 홍보와 <측천무후> 등의 영화 제작 협의차 중국과 일본을 들르는 김에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저는 완벽주의자예요. 문장이 마음에 안 들면 10번이고 20번이고 고쳐 씁니다." 그 노력이 2차 언어로 직조한 그의 문학을 토종 프랑스문학에 꿀리지 않게 한(때로는 압도하게 한) 힘일 것이다.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유러피언의 산문은 복싱입니다. 그만큼 몸과 발과 팔동작이 복잡하다는 의미지요. 반면 저의 글은 검도예요. 머뭇거림 없이 단칼에 내려치는 것이지요." 그는 자신의 문학이 지닌 장점을 "독창적인 문장과 강렬한(강력한) 인물 설정, 그리고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현실을 벗어나게 하는 묘사의 힘"이라고 말했다.

-부모는 중국에 있고 매년 한두 차례 고향을 방문한다. 6년 전 중국 국적을 포기하고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지만 그의 소설은 다분히 중국적이다. 작품 소재로서의 역사가 그러하고, 문화적 맥락이 그러하다. 하지만 그는 "나의 문학은 세계 문학"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9월쯤 출간될 신작 <알렉산더와 알레스트리아>는 중국 역사와 무관한 작품이죠. 전 보편적인 문학을 추구합니다." 그는 근작의 내용을 잠깐 소개했다.

-"스키타이 일족 가운데 여전사 부족이 있었고, 그 부족 여왕과 알렉산더가 만났다는 기록이 그리스 문헌에 등장합니다. 물론 사료적 근거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그 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알렉산더를 선택했냐는 질문에, 사뭇 진지하게 "알렉산더가 나를 택한 것"이라고 말할 만큼 당당한 이 작가는 독자사인회와 인터뷰 등 일정을 마친 뒤 7일 출국한다.(최윤필기자)

06. 07.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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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7-03 19:28   좋아요 0 | URL
샨샤의 작품은 몇 개 읽어보았는데, 좀 실망했었습니다. 천안문을 소재적 차원에서만 다룬다는 느낌도 있었고, 오리엔탈리즘을 무기로 혹은 화장으로 공허함을 감추는 것도 같았고요.
하지만, '고통이란 공유되기 힘든 것이었다'라는 말은 가슴에 울리네요...
우리의 박완서나 임철우의 글들이 생각납니다. 망각에 저항하며 상처를 쥐어뜯는 사람들.
퍼갑니다 ;)

로쟈 2006-07-03 20:04   좋아요 0 | URL
<천안문>이 데뷔작이라면 가장 약한 소설일 수도 있을 거 같네요. 프랑스 출판사들이 난리였다는 걸 보면, 그래도 뭔가 '대중적인' 무기를 갖고 있지 않나 싶고. 저는 그녀의 '도도함'이 눈에 띄길래 옮겨왔습니다...

stella.K 2006-07-04 13:05   좋아요 0 | URL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나온 사진하고 지금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살도 많이 찌고. 전 천안문 읽어 봤는데 나름대로 괜찮던데, 그후 읽을 기회를 못 갖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꽤 기대가 되요. 15시간이라...전 좀 더 노력해야겠군요. ㅋㅋ. 가져갑니다.^^

로쟈 2006-07-04 13:06   좋아요 0 | URL
조만간 '광화문'이 나오는 건가요?^^

비자림 2006-07-04 13:19   좋아요 0 | URL
기인님 서재에서 얘기하다 왔어요. 님이 올리신 글이었군요.
앗, 님도 소설을 읽으시나요???? 저는 어려운 책만 읽으시는 줄 알았다는.. 호호

로쟈 2006-07-04 13:3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제 전공이 '문학'인데요(^^;). 샨사의 소설들은 아직 읽은 바 없지만...
 

교수신문에서 '학문비평' 기사 중 '엘리아데의 신화연구, 어떻게 볼 것인가'를 옮겨온다(필자는 최장순 기자이다). 종교학 강의를 들을 때 '멀치아 엘리아데(1907-1986)'란 이름으로 처음 각인된 이 걸출한 종교학자는 각인 효과 때문인지 여전히 나에겐 친숙하고 중요한 학자로 남아있다. 그가 유럽의 변방인 루마니아 출신의 지성인/작가라는 점도 친근감을 갖게 한다. 어쨌든 종교학에서 이 '시카고 마피아'의 거두에 대한 이런저런 시각들을 아래 인용기사에서 참조해볼 수 있다.

교수신문(06. 07. 02) 엘리아데, 어떻게 볼 것인가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는 이미 하나의 ‘현상(現象)’이다. 엘리아데는 이미 종교학 연구자라면 한번쯤 읽고 넘어가야할 고전이 돼버렸으며, 조셉 캠벨, 칼 융과 함께 종교학의 3대 스타로 군림하면서, 대중들에게 하나의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엘리아데를 찾는 이유는 뭘까.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일단 대중들의 신화에 대한 관심이 기반이 된 것”이라며 “엘리아데는 종교현상에 대한 보편이론을 구축함에 있어 풍부한 경험적 사례를 제시해 재미를 더한다”고 분석했다. 이론이 이론으로만 그치지 않고 생생한 사례를 통해 증명되고 있어 독자들이 찾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인기가 일방적 찬사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해 박규태 한양대 교수(일본언어·문화)는 <세계종교사상사 3>를 번역하고 나서, “반역사주의, 환원주의, 독단적이고 주관적인 신학, 은폐된 오리엔탈리즘, 비학문적 픽션, 애매모호한 직관주의, 실증성과 정밀성을 결여한 제너럴리스트, 또 하나의 종교로서의 엘리아데 종교학 등, 엘리아데 비판에 흔히 따라다니는 수식어”를 소개한 바 있다. 비판의 차원은 너무나 다양해서 어느 것부터 검토해야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비판적 수식어들이 하나의 논점, 즉 “엘리아데 종교학과 해석학은 非역사적”이라는 비판을 중심으로 정렬된다는 것(*그건 '현상학' 자체의 문제점 아닐까? 종교현상학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을 듯하다).

 

 

 

 

-엘리아데는 항상 태고적 ‘그 때(illum tempus)’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여기서 인간이 본받고 따라야 할 하나의 ‘原型(archetype)’을 발굴함으로써 원형으로부터 일탈해 삶의 의미를 상실한 근대인과 그 문명을 비판했다. 엘리아데의 눈에는, 근대인의 이러한 ‘일탈’은 곧 죄악으로의 붕괴(Verfall)였던 것. 이러한 ‘몰락’이 못마땅했던 그는 근대인을 종교의례와 신화를 통한 세계의 聖化에 동참시켜 ‘새로운 휴머니즘’을 구현하고자 했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이창익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이하 한종연) 연구원은 “‘모든 사물을 聖化시키려는 경향성’이 ‘성현의 변증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고 “사물을 성화시킨다는 것은 사물을 ‘원형’으로 환원하여 결국 사물로부터 ‘역사’를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한다(‘엘리아데와 차이의 해석학’). 엘리아데 비판이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그가 ‘역사’를 넘어서려는 바로 그 순간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엘리아데 종교학의 비역사성을 정치적으로 해석한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한국학)의 비판이 눈길을 끈다(‘엘리아데가 선택한 ‘부드러운 파시즘’’). 박 교수는 엘리아데의 극단적 관념주의가 “계급 개념 자체를 부정”했다고 지적한다. 이어 그는 “공산주의뿐 아니라 모든 진보적 사상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한몸처럼 움직이는 ‘유기적 사회’인 엘리아데의 이상을 위협하는 존재”였으며, 결국 엘리아데는 이러한 위협을 퇴치하기 위해 “독재자 살라자르(Salazar) 치하의 당대 포르투갈이나,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 같은 종교적 색채가 강한 ‘부드러운 파시즘’을 택했다”는 것.

-하지만, 지난 24일 열린 ‘한일 종교학 공동세미나’에서 츠루오카 요시오(鶴罔賀雄) 도쿄대 교수(종교학)는 “엘리아데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러한 지적은 ‘정치지상주의’적 단정에 불과”하며 “종교를 정치적 수준으로 ‘환원’해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엘리아데 종교학의 성격을 보다 종교학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창익 연구원은 “엘리아데는 당시 지나치게 실증주의적, 역사주의적 시각에 대한 반발로서, 자기 나름의 현상학적·해석학적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엘리아데의 학문적 가면 너머에 도사린 정치적 미소는 과연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한편, 엘리아데에 대한 신화학적 비판도 제기됐다.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중문학)는 “엘리아데는 끊임없이 동일한 패턴으로 신화를 분석해 신화 자체가 갖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정 교수는 “에누마 엘리쉬 신화에서는 당시 사회 권력관계의 변천 및 신구세력의 갈등을 읽어낼 수도 있는데, 엘리아데는 초월의 측면만을 보여주고 있어 현대문명의 고질적 병폐를 신화로써 치유할 수 있다는 ‘신화 만능주의’를 야기시킨다”고 비판했다.

-또한 김현자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중국신화)은 “뒤메질이나 레비스트로스의 경우 신화가 담겨있는 문화적 컨텍스트를 철저히 파악한 후, 역사와 문화 전체 속에서 신화를 해석하는 반면, 엘리아데는 그렇지 않다”며 엘리아데의 신화분석이 지니는 지나친 일반화를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곰’과 다른 나라의 ‘곰’이 지니는 문화적 가치는 상이한데, 엘리아데의 형태론에서는 동일하게 의미화된다는 지적이다. 또한, “엘리아데의 경우 이미 연구된 신화들을 통해 일반적 보편성을 추출하기 때문에 문헌학적 엄밀성이 결여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비판도 적지 않다. 엘리아데 종교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해 김윤성 한신대 교수(종교문화학)는 “엘리아데의 주요개념이나 방법들에 대한 오독으로부터 일방적인 비판이 이뤄지기도 했다”고 전했으며, 박규태 교수는 “비역사성과 관련한 여러 비판들의 일면성은 보다 심화된 엘리아데 연구를 통해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아직 학계에서도 엘리아데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일까.

 

 

 

 

-엘리아데와 찰스 롱에게서 사사한 아라키 미치오(荒木美智雄)는 1980년대 엘리아데 연구의 단편적 경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을 가한다(‘새로운 휴머니즘을 요청하며’): “일본에서는 엘리아데의 학설의 여러 단편, 예를 들면 '성과 속' '샤머니즘' ‘원형(archetype)’ 등의 개념이 그의 종교학 전체의 문맥으로부터 단절되어 논의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 (중략) 엘리아데 학문의 근본문제가 전체적으로 고찰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스무 해를 넘긴 아라키 미치오의 이러한 지적은 현재 우리나라 종교학계에도 유효하다.

-신광철 한신대 교수(종교학)에 따르면, 엘리아데의 저서 중 24권이 번역됐다. 엘리아데의 저서는 모두 38권. 저서의 63%가 번역된 상황이다. 하지만, 번역의 엄밀성에 대한 비평이 거의 부재한 상태인데다가, 엘리아데와 관련해서는 연구논문(33편), 석사논문(13편), 단행본(2권) 등 그 실적이 부진하다. 게다가 학문의 실증성과 과학성이 강조됨에 따라, 엘리아데는 학계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다.

-조철수 서강대 강사(종교학)는 “엘리아데의 이야기는 아무리 읽어봐도 맞는 일반적인 이야기”라며 “이를 후대 연구자들이 더 이상 재생산해서는 안된다”고 전한다. ‘엘리아데’는 교양서 정도로 읽어야 한다는 것. 게다가 조철수 강사는 “엘리아데 종교학의 한국적 적용이 얼마나 타당한지 모르겠다”며 “그건 시작부터 틀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시작부터 틀린 것’에 왜 연구자들이 매달리고 있는 것일까. 엘리아데는 ‘종교형태론’의 서문에서 “코끼리를 현미경을 통해서만 연구하는 자연과학자가 과연 그 동물을 충분히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푸앵카레의 말을 인용하면서 “종교현상은 그 자체의 고유한 차원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엘리아데를 비판하기에 앞서, 그를 “그 자체의 고유한 차원에서 파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06. 07.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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