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한국일보는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완역한 조형준씨와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 안 그래도 지난주 한 모임에서 국역본의 나머지 절반이 나올 때가 됐는데 좀 늦춰지는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었다. 그러던 차에 기대보다는 늦게, 하지만 예상보다는 빠르게 책이 완간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어 반갑다. 사실 한두 주 전에 나는 영역본을 주문해놓은 터여서 이 달안으로 책을 받게 될지 모른다. 해서 이젠 그간에 미루어둔 국역본의 구입도 더이상 미룰 수 없을 듯하다(책을 사는 건 어렵지 않다. 책을 꽂아둘 장소가 문제이다!).

참고로, 수잔 벅 모스의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문학동네, 2004), 그램 질로크의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효형출판, 2005), 그리고 할 포스터의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아트북스, 2005)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함께 읽어볼 만한 대표적인 참고문헌이다(초현실주의를 다루고 있는 포스터의 책에서 두 개의 장이 벤야민에 할애돼 있다. 벤야민에게서 초현실주의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보야야 할 대목들이다.)

한국일보(06. 07. 04)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완역 조형준씨

-나치를 피해 망명을 시도하다 자살한 비극의 유대인 지식인 발터 벤야민(1892~1940). 구미 지성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그의 필생의 역작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완역됐다. 새물결출판사 조형준(42) 주간이 지난해 1권에 이어 최근 2권을 번역, 3일 출판했다. 2,500여 페이지나 되는 이 책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서사시’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마르크스가 외부에서 X레이로 자본주의를 촬영했다면, 이 책은 내시경을 밀어넣어 자본주의 몸통 내부를 촬영한 것입니다.”

-1920년대 유럽은 제국주의, 나치즘, 전쟁 등 자본주의의 폭력적 모습을 목격한다. 마르크스주의, 프랑크프루트학파, 루카치 등이 자본주의의 성격 분석을 시도하지만, 벤야민은 이들과 다른 방식을 취했다. 워즈워드의 시 ‘무지개’의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란 구절처럼, 광기와 광포함이 극에 달한 ‘어른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자본의 유년기’로 눈길을 던진 것이다(*나는 다른 페이퍼에서 유년기적 마르크스주의'란 표현을 쓴 바 있다). 이때 벤야민이 택한 지역은 19세기의 파리.

-프랑스혁명과 파리코뮌으로 대변되는 혁명의 도시가 바로 파리였다. 벤야민은 도서관에서 13년 동안 아케이드(arcade), 패션, 권태, 박람회, 광고, 매춘, 도박, 회화, 신문, 조명, 철도, 사진, 증권, 광고 등 자본주의 탄생기의 파리 모습을 찾아낸다. 책의 절반이 이런 내용이니, 자본주의의 육아일기로 보아도 무방하다. “벤야민은 자본주의가 사회에 꿈과 환상을 심어주었다가 한 순간 그것을 쓰레기 혹은 물거품으로 만들고 다시 꿈과 환상을 부추기다가 또 다시 쓰레기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케이드만 해도 초기에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석조 건물만 보아온 파리 시민에게, 철과 유리로 만든 아케이드는 산업이 만든 새로운 발명품이자 가스등을 처음 선보인 새 도시, 새 세상이었다. 그러나 그런 아케이드는 불과 20, 30년 만에 갑자기 폐허가 되고 만다.



-조 주간은 “벤야민이 파악한 자본주의의 동력을 지금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화소 카메라 기능을 갖춘 첨단 휴대폰이 나오면서, 아직 충분히 쓸 수 있는 제품이 쓰레기로 변하는 것 등이 그 보기다. 그는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의 멸망을 점친 마르크스와 달리, 이 책은 자본주의의 내밀한 부분을 가장 깊숙한 곳에서 들여다 본 책이라고 평가한다.

-원서는 1980년 독일에서 나왔는데 절반은 독일어, 절반은 프랑스어로 돼 있었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독일어 프랑스어에도 능한 조 주간은 “분량은 방대했지만 번역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고 했다. 다만 주(註)가 하나도 없어 애를 먹었다..

-예를 들어 “블랑키가 정부 대표로 노동자 대표단을 이끌고 런던 만국박람회에 갔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조 주간은 이를 폭력혁명을 주창한 공산주의자 블랑키(1805~1881, 사진)가, 자본주의의 잔치인 만국박람회에, 그것도 (프랑스) 정부 대표로 갔다는 것으로 해석하고는 매우 난감했다. 하지만 박람회에 간 사람은 그의 형인 제롬 블랑키(1798~1854)였다. 경제학자로 정부 관료를 지낸 형은 동생과 성향이 크게 달랐는데, 원서에는 동생인지 형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초기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지만 딱딱하거나 어렵지는 않다. 조 주간은“책이 두껍다고 독자들이 너무 겁 먹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두꺼운 책을 좋아하는 나로선 겁먹을 일이 아니다. 내게 일차적으로 겁나는 책값이고, 그보다 더 두려운 건 들고다닐 무게이다. 혹 영역본까지 같이 들고다녀야 한다면!).

06. 07. 04. 

P.S. 작년에 나온 1권은 한겨레가 꼽은 '2005 올해의 책 50'에 선정되기도 했다(2권까지였다면 단연 '올해의 책'이었을 것이다). 그 이유를 들어본다.

한겨레(05. 12. 16) 현대 미학비평과 문화연구 같은 분야에서 최근 새롭게 조명받는 발터 베냐민(1892~1940)은 일찍이 자본이 만든 인공낙원인 “19세기의 수도” 파리에서 자본과 상품의 화려한 불빛을 뿜어내는 아케이드의 상징에 주목했다. 1927년부터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는 아케이드와 관련한 옛문헌, 인용문, 가십, 인물촌평, 여행 안내서, 박람회 카탈로그 따위를 모으고, 생시몽·보들레르·마르크스의 관련 자료들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방대한 자료에 자신의 생각들을 덧붙인 것이, 이름하여 <아케이드 프로젝트>(새물결 펴냄)다(*'벤야민' 대신에 '베냐민'이란 표기를 끝까지 고집하는 것이 한겨레의 '프라이드'이다. 아마도 '베냐민 지파'의 후손들인 모양이다).

-‘이 책은 나의 모든 투쟁, 나의 모든 사상의 무대’라고 그 스스로 말했다는 이 미완성 자료집은 그동안 여러 해석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국내 독자들한테는 부분 인용되거나 이름만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말 완역 출간의 의미는 크다. 이 책에선 베냐민이 근대 자본주의의 ‘모더니티’를 19세기에 이미 찾아나선 발견자의 상상력을 엿보여준다.

-아케이드, 유행품점, 패션, 권태, 오스만식 도시, 철골 건축, 박람회, 광고, 꿈, 매춘·도박, 파노라마, 조명 같은 이름말들은 호기심 많고도 우울한 ‘비판적 관찰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하부구조를 분석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과 다르게 “자본주의에 대한, 자본주의 안에서 하는 전혀 다른 발본적 사유”로서 근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 좋은 텍스트로 꼽히고 있다. 그가 “초현실주의의 어머니”로 부른 아케이드는 왜 베냐민을 그토록 흥분시키고 매혹시켰을까?(*누구더러 답하라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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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클로 2006-07-04 11:12   좋아요 0 | URL
기쁜 일입니다...

palefire 2006-07-04 12:53   좋아요 0 | URL
영역판은 그래도 페이퍼백이 나와서 다행입니다(아마 페이퍼백으로 주문하신 것 같아요). 하드커버 책가방에 들고다니면 볼만하죠. 거기다 노트북까지;;

로쟈 2006-07-04 12:58   좋아요 0 | URL
네, 페이퍼백이 25불 가량이더군요(중고는 12-3불까지도 떨어지던데, 벤야민 얼굴을 봐서 새 책으로 주문했습니다). 그럴리야 없을 테지만, 전4권과 영역본의 무게를 합하면 거의 군장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고 구보까지 해야 한다면?.. 다시 돌아가기 싫은데요.^^

드팀전 2006-07-05 17:34   좋아요 0 | URL
1,2권 합치면 거의 4천페이지군요....저같은 직딩이 읽으려면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도전의식같은게 생기긴하는데....그전에 수잔 벅 모스의< 발터벤야민과 아케이드프로젝트>를 읽어야할 듯....

로쟈 2006-07-05 19:30   좋아요 0 | URL
영역본이 1천쪽이 좀 넘는데, 국역본이 쪽수로는 거의 4배가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