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책세상판 전집을 바탕으로 카뮈의 <이방인>과 <페스트>에 대해서 강의를 했다. 이런 종류의 고전이야 여러 번역본이 나와도 언제나 환영인데(물론 <데미안>이나 <동물농장> 같은 작품의 새 번역본은 사양하고픈 심정이지만), 마침 <이방인>과 <페스트>의 새 번역본이 출간됐다.

 

 

먼저 <이방인>(홍익출판사, 2014)의 경우엔 유기환 교수의 번역으로 새로 나왔다. 살림지식총서의 <알베르 카뮈>(살림, 2004) 저자이고, 오래 전에 <반항인>(청하, 1993)을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이휘영 교수의 '원조' 번역본, 김화영 교수의 '대표' 번역본과 나란히 놓을 만하다.

 

 

<이방인>에 대해선 한 불문학 전공자가 최수철 작가가 옮긴 <이방인>(시공사, 2012)을 추천한 적이 있는데, 대략 3종 정도를 대조해서 읽으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을 듯싶다. 열린책들판의 <이방인>과 문학동네판 <이인> 등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페스트>(열린책들, 2014)도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출간되어 이휘영 교수나 김화영 교수 번역본에 겹쳐서 읽을 수 있게 됐다. 생각만큼 번역본이 많지 않은 터라 반갑게 느껴진다. 몇몇 대목은 번역을 비교해보고픈 마음도 있어서 바로 주문할 참이다.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다시 읽을 수 있다.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은 여기에도 해당될 수 있으리라...

 

1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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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중앙일보에 실은 '삶의 향기' 칼럼을 옮겨놓는다. '중년의 독서'가 갖는 의의에 대해 적으려고 했는데, 서언 격인 '중년의 의미'에 대한 글이 되어 버렸다. 여하튼 핵심은 중년이 독서의 최적기라는 것이다. 입시에서 해방된 예비대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이 이번 겨울에 '독서 삼매경'을 경험해보길 바라마지 않는다. 인생에서 이 정도 절호의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중앙일보(14. 11. 25) 중년의 의미

 

가을도 마지막 한 주를 남겨놓고 있다. 겨울 문턱이라고는 하지만 계절의 실감이 예전만큼 뚜렷한 건 아니다. 한파만 닥치지 않는다면 난방이 된 실내에서 다른 계절과 큰 차이를 못 느끼며 생활하는 게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다. 계절이 바뀌더라도 실내온도의 편차는 크게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만큼 둔감해지는 건 자연스럽다. 초등학교 때 교실 난로를 지피기 위해 아침마다 당번 학생이 연탄을 나르던 일이 새삼 낯설게 기억될 정도다. 보온도시락을 갖고 다니는 아이가 많아질 무렵이었지만 여전히 양은도시락을 난로에 얹어놓았다가 점심시간에 따끈하게 먹는 아이들도 많았다. 요즘 같으면 모두가 추억 속에만 있는 ‘체험’ 대상이다.

옛날얘기를 잠시 꺼낸 건 아무리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더라도 저물어가는 가을이 중년이란 나이에 대해 새삼 상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에 대한 감각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과거엔 오십을 일컬어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육십을 넘긴 ‘청년’들도 드물지 않다. 통계상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간주하므로 그 이전까지는 넓게 보아 중년이다. 대략 마흔에서 예순까지의 연령대다. 조금 실감나게는 한창 중·고등학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중년에 속한다.

중년의 용도는 무엇일까.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인간의 중년은 이례적인 시기다. 대개 생물종들의 생애주기는 성장기와 생식기(번식기), 그리고 짧은 생식후기로 이루어진다. 자신과 같은 DNA를 가급적 많이 퍼뜨리는 게 모든 생물종의 자연사적 사명이기에, 생식기 이후의 시간은 쓸모없는 시간으로 간주된다. 극단적으로는 교미 뒤에 바로 암사마귀의 먹잇감이 되는 수사마귀를 떠올려볼 수 있겠다. 암사마귀보다 사냥도 못하는 수사마귀가 새끼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영양분이 되는 게 전부인지도 모른다.

생식 이후의 시기로서 긴 중년을 갖는 건 인간만의 특징으로 보인다. 이유가 없지는 않다. 핵심은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이 긴 성장기를 갖는다는 점에 있다. 탄생 이후 생식기에 진입하기까지의 기간을 성장기라고 한다면 인간의 성장기는 유례없이 길다. 더구나 생물학적 성숙이 이루어진 뒤에도 자녀를 갖기 위해서는 사회적 지위와 부양능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추가시간이 성장기에 포함된다. 생식기 이후의 중년이 갖는 생물학적 용도는 이렇게 긴 성장기를 갖는 자녀가 생식기에 진입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주는 데 있다. 자녀의 사교육비와 학자금 때문에 등골이 빠진다는 한국 학부모들의 모습이야말로 중년의 의미를 정확하게 구현하고 있는 셈이라고 할까. 그렇게 충실하게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나면 우리에겐 여생으로 노년이 남는다. 의학의 발달로 노년이 연장되긴 했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는 나이다. 손주들의 뒷바라지를 담당하는 걸로 노년의 용도를 새롭게 발견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이 모든 건 물론 모든 생명체를 ‘DNA 운반체’로 규정하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사적 사명을 떠안은 생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신적 삶을 향유하는 예외적인 동물이기도 하다. 이 예외성은 자연적 본성이나 DNA의 명령에 거스르는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입시를 앞둔 자녀들을 보살피는 데만 온힘을 쏟느라 머리가 세고 등골이 빠지는 대신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에 관심을 두는 것이 일례가 될 수 있다. 자연사적 사명 외에 다른 의미를 유한한 삶 속에서 발견하고자 애쓰는 것도 ‘반란’이라면 반란이다. 생물학적 명령에 반기를 들고서 인간의 유한한 삶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이 반란의 요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거창할 건 없다. 정신적 삶은 독서하는 삶이다. 어떤 부작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중년의 뇌는 가장 똑똑한 뇌라고 뇌 과학자들은 말한다. 기억력만 다소 떨어질 뿐 판단력이나 이해력에 있어서 성장기를 능가한다. 독서의 최적기가 있다면 바로 중년인 것이다. 중년이라고 해도 평균수명을 고려해보면 이제 반 고비를 좀 지났다. 지나온 과거가 한 세대이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도 한 세대다. 중년의 의미를 다시금 반추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만하다.

 

1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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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물론 쇼펜하우어의 주저 <의자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을유문화사, 2009)를 가리킨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겨울에 완독해볼 철학서로 염두에 두고 지난주부터 행방을 찾고 있다(책들이 여러 곳에 보관돼 있는 탓에 발품과 추리력이 모두 동원되어야 한다).

 

 

갑자기 염세주의에 끌려서는 아니고, 최근에 가이드북이 될 만한 책이 여러 권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실상 을유문화사판 새 번역본이 나오기 전까지는 도전하기도 만만찮았던 책이다. '데.칸.쇼'라고 하여 데카르트, 칸트와 함께 (일본과 한국에서) 서양철학의 대명사였던 철학자가 쇼펜하우어이지만, 이 방대한 주저를 무턱대고 손에 드는 건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가이드북'이란 말로 염두에 둔 건 최근에 나온 로버트 윅스의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입문>(서광사, 2014), 이동용의 <쇼펜하우어, 돌이 별이 되는 철학>(동녘, 2014), 그리고 김진의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읽기>(세창출판사, 2013) 등이다. 경험상 이 정도 장비면 아무리 험한 봉우리라도 도전해볼 만하다.

 

 

그리고 원저는 독어로 쓰인 까닭에 직접 읽을 수가 없어서 영역본을 이번에 대신 구입했다(두툼한 책 두 권이다). 오늘 배송된다는 메일을 받고서 생각이 나서 적는 페이퍼이다.

 

 

한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이외에 더 소개된 쇼펜하우어의 책으로는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을유문화사, 2013),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아카넷, 2012),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나남, 2010) 등이 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독서가 순탄하게 진행되면 마저 구비해놓을 참이다...

 

1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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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한 명의 철학자와 두 명의 동서양 작가를 골랐다. 먼저 <호모 사케르>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신작이 나왔다. <벌거벗음>(인간사랑, 2014). <사물의 표시>(난장, 2014), <도래하는 공동체>(꾸리에, 2014)까지 포함하면 올해 나온 세번째 책이다.

 

 

10편의 에세이로 구성돼 있는데, 제목 그대로 '벌거벗음'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신학적 성찰을 읽을 수 있다. 아래는 바네사 비코로프트의 전시작품(<벌거벗음>, 109쪽).

 

 

개인적으로는 카프카의 <소송>과 <성>을 다룬 에세이들에 우선적으로 관심이 간다. 내년초에 카프카의 작품들을 강의에서 다룰 예정이어서 더 눈여겨보게 된다.

 

 

두번째 저자는 로맹 가리. 주요 작품들이 계속 번역되고 있어서(올해만 세 권이 더 나왔다) 그의 신간 출간이 뉴스는 아니지만 이번에 나온 <인간의 문제>(마음산책, 2014)는 국내에 소개된 첫 산문집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1957년부터 권총자살한 1980년까지 쓴 글들을 모은 것인데, 인터뷰도 몇 편 포함돼 있다. 로맹 가리 독자들에겐 좋은 연말 선물이 될 듯하다.

로맹 가리 탄생 100주년을 맞는 올해 마음산책의 여덟 번째 로맹 가리 책이자, 국내에 소개되는 그의 첫 산문집 <인간의 문제>가 출간되었다. 1956년 12월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수상한 뒤부터 세상을 뜬 1980년까지 그가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33편 글을 엮은 최초의 책이다. 당대, 역사, 그리고 일반적인 인간 문제 전반에 관해, 에세이, 특별 대담, 각종 신문이나 잡지, 여러 책에 수록한 글들이 시간순으로 배열되어 그의 도저한 작가적 여정은 물론 개인사까지도 아우르며 소설과 영화만으로 도달할 수 없었던 로맹 가리라는 대지의 새로운 발견을 선물한다.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의 가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인간’ 로맹 가리의 모습을, 그가 일궈온 문학 세계를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로맹 가리는 1914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인도 작가 쿠쉬완트 싱.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델리>(아시아, 2014)가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1993년에 처음 소개됐던 작품. 원작이 1990년작이므로 바로 번역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에겐 생소한 편이지만 쿠쉬완트 싱은 인도에서 가장 저명한 작가의 한 명. 가디언지는 이렇게 소개했다.

 

99세의 나이로 사망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쿠쉬완트 싱은, 체제 비평과 위선에 대한 도전자로서 인도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인도 최고의 편집자이기도 했던 싱은 많은 젊은 작가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는 언제나 풍부하고 열린 정신과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추구했고, 무엇보다도 관대했다.

국내에는 <델리>와 함께 절판된 <몬순>(혜문서관, 1992)밖에 소개된 적이 없어서 전모를 가늠하긴 어렵다. 몇 작품 더 번역되면 좋겠다. 참고할 만한 소개는 이렇다.

쿠쉬완트 싱이 일흔다섯 나이에 발표한 이 작품은 저자가 25년여의 시간을 들여 완성했다. 1950~60년대의 왕성한 활동 이후, 일흔의 노구로 다시금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 시발점과 같은 작품이다. 완성도는 물론 소재와 주제의 강렬함 때문에 출간 즉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소설이 출간되자 인도에서 호평과 악평, 극과 극의 의견이 충돌했다. 호평은 인간의 본성을 여실히 그려냈을 뿐 아니라 델리의 역사를 다채로운 기법으로 소설적 구성 속에 담아냈다는 것이었고, 악평은 쿠쉬완트 싱을 <악마의 시>로 유명한 살만 루시디와 동일시하여 <델리>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이슬람교를 음해하려는 선전 캠페인이며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순전히 에로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한편 <델리>는 소위 ‘잘 나가는’ 인도 소설의 대표 주자이다. 인도를 대표하는 7대 소설을 뽑자면, 인도의 국민 작가 쿠쉬완트 싱의 <파키스탄 행 열차>와 <델리>, 아라빈드 아디가의 <화이트 타이거>, 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 비카스 스와루프의 <슬럼독 밀리어네어>,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을 들 수 있다. 이 작품들은 하나같이 문제작이자 부커 상 같은 큰 상을 수상한 걸작이기도 하다.

 

 

거명된 일곱 작품 가운데 쿠쉬완트 싱의 <파키스탄행 열차>만 아직 번역되지 않은 셈이니 조만간 구색이 맞춰지길 기대한다. <화이트 타이거>와 <적절한 균형>도 조만간 구해놓아야겠다...

 

14.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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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가 한국에도 상륙한다면 모를까 백신을 맞힐 아이도 없기에 후나세 슌스케의 <백신의 덫>(북뱅, 2014)은 나와 무관할 책일 줄 알았다. 두 가지가 놀라운데, 일단 저자의 책이 국내에 상당히 많이 나와 있다는 점(나는 초면이다), 그리고 백신이 생각보다 문제가 많으며 심지어 음모론과도 연계된다는 점.

 

 

저자는 소비자문제 및 환경문제 평론가라고 소개되는데, 국내에 출간된 책만 해도 열댓 종에 이르고 그 가운데 작년과 올해에 나온 책이 일곱 권이다. 이 정도면 건강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저자가 아닐까 싶다. 최근작 <굶으면 낫는다>(문예춘추사, 2014)의 메시지는 신선(?)하지만, <백신의 덫>의 주장은 섬뜩하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백신의 어두운 이면을 들춘다. 병의 예방을 위해 맞는 예방접종의 각종 부작용 및 위험성을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소멸해 사라진 병이나 가볍게 앓고 지나갈 수 있는 병에 대해서도 무분별하게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꼬집으며 백신 신화가 탄생하게 된 경위와 실체를 파헤친다. 과도한 의료행위로 보이는 백신 접종이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의 의무처럼 일반화된 이유는 뭘까?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거대 제약회사다. 후나세 슌스케는 국민들의 건강을 챙기고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거대한 세력에 맞서 백신의 유해함을 제대로 알고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강제적인 의료 시스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신 접종으로 막대한 이득을 얻는 세력, 곧 거대 제약회사의 배후로 저자가 지목하는 '어둠의 세력'이 로스차일드와 록펠러 양대 가문이다. 잉글랜드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장악한 로스차일드 일가는 거의 모든 산업분야의 주요 기업도 소유하고 있는데, 제약쪽에선 화이자와 클락소 스미스클라인이 로스차일드계 기업이다(믿거나 말거나 세계의 부 가운데 7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고).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는데(이런 책이야말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 리뷰가 필요하다), 저자가 제기하는 충격적인 사실 가운데 하나는 백신을 통해 인구를 억제하려고 한다는 음모다. '인구 삭감을 위한 생물학 무기'로 백신이 사용되고 있다는 폭로다. 1990년대에 빌 게이츠와 데이비드 록펠러 등이 개발도상국의 예방접종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WHO를 통해서 신형 파상풍 백신을 지카라과, 멕시코, 필리핀 등에 공급했는데, 이 백신에서 hCG라는 호르몬 성분이 검출되었다. 파상풍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임신 저해 물질'이다. 결국 각국에서 이 백신에 대해서는 접종 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저자에 따르면 인구 삭감 계획은 '음모론'이 아니라 실제다. 1978년 빌더버그 회의에서 헨리 키신저는 "세계인구를 절반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빌 게이츠도 2010년 한 강연에서 "현재 세계인구는 68억이며 90억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백신이나 의료, 생식 건강서비스(중절 등)를 잘 운용하면, 아마도 10-15%는 줄일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록펠러가의 니콜라스 록펠러는 "세게 인구는 적어도 절반으로 죽여야 합니다."라고 말했다는데, 이 발언을 공개한 영화제작자는 2007년에 의문사를 당했다고. 게다가 CIA 극비작전 가운데는 아프리카 흑인들 사이에 내전을 부추켜서 서로 죽이게끔 한다는 것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백신 접종을 '의료 마피아'가 추진하는 '인구 삭감 계획'이라고 보는 저자의 관점은 상당히 충격적이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록펠러 가문의 사람들은 합성의약품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고). 음모론과 관련해서는 일본의 반핵평화운동가 히로세 다키시의 책들도 떠올리게 한다(세계를 움직이는 '어둠의 세력'에 대해서는 일본 저자들이 일가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그래서 덩달아 로스차일드가에 대한 책도 오전에 몇 권 주문했다. 니얼 퍼거슨의 <로스차일드>(21세기북스, 2013)와 프레드릭 모턴의 <250년 금용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주영사, 2008) 등이다.

 

 

더불어, 이제 더 맞거나 맞힐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백신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따지면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이 주의를 요한다!). 로버트 시어스의 <우리집 백신 백과>(양철북, 2014)나 팀 오시의 <백신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어문각, 2006) 등이 가정 상비약처럼 집안에 챙겨놓을 만한 책. 아니 '상비약'이란 비유가 안 맞을지도 모르겠다. 후나세 슌스케의 <약, 먹으면 안된다>(중앙생활사, 2013)를 떠올려 본다면(의사나 약사들이 가장 싫어할 만한 저자일 듯). "약, 절대로 먹으면 안돼!"란 말을 대놓고 한다면, 혹 이런 대꾸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너, 약 먹었냐?"

 

14.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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