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독서동아리 활동(http://bookclub.kpipa.or.kr/)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나온 <2015 서평집>(2015)에 실은 서문을 옮겨놓는다. 책은 지난 연말에 나왔는데 비매품이라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다. 서문의 제목은 '눈뜬 자들의 책무'라고 붙였다.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리며 쓴 글이다.

 

 

눈뜬 자들의 책무

 

포르투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어느 날 갑자기 한 운전자가 시력을 잃게 되고, 그 ‘백색 실명’이 온 도시에 퍼져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현대의 우화로도 읽히는 이 소설에서 안과의사의 아내만이 유일하게 시력을 잃지 않고 눈먼 사람들의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발병 초기에 눈이 먼 사람들이 일단 수용소에 감금되지만 나중에는 수용소 안팎의 구분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실명은 도시 전체로 퍼져나가고 갇혀 있던 사람들도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안과의사의 아내는 일행과 함께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의 집을 찾아가는데, 그 집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작가의 가족이었는데, 작가는 안과의사의 아내에게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들려달라고 합니다. 작가는 글을 쓰는 게 소명이자 의무이니까요.

 

 

눈이 먼 상태에서 작가는 종이를 여러 장 겹쳐놓고 볼펜을 꾹꾹 눌러서 씁니다. 그래야 손을 더듬어서 어디까지 썼는지 확인해가면서 계속 써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작가에게 안과의사의 아내가 자기는 글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하니까 작가는 매우 흥분합니다. 자신이 쓴 글을 누군가는 읽어줄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의사의 아내는 작가의 어깨에 팔을 얹습니다. 작가와 독자의 연대를 보여주는 장면인데, 의사의 아내에게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잃지 말라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의사의 아내는 집으로 돌아와 서재에서 책을 한 권 꺼내와 일행에게 읽어줍니다. 사람들은 기뻐합니다. 그래도 아직 볼 수 있는 두 눈을 가진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책을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인류와 연결시켜주는 끈이 아직 끊어진 건 아니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우리를 인류와 연결시켜주는 끈, 그것이 책이 갖는 궁극의 의미라고 할 것입니다. 책과 함께 함으로써 우리는 동시대의 사람들과 연결될뿐더러 과거의 사람들과도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런 연결을 통해서 인류가 되고 인간이 됩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서 작가는 눈뜬 사람, 두 눈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바로 독서라고 말하는 듯싶습니다. 독서동아리 회원들의 서평을 읽으면서 제가 떠올린 것이 바로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은 소감이었습니다. 분량의 제한 때문에 선별해서 책으로 묶게 되었지만, 이 결과물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눈뜬 자로서의 소임을 함께한다는 데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직 혼자서 그런 역할을 감당해야 했던 안과의사의 아내보다 사정이 나쁘진 않습니다. 함께 모여서 책을 읽고 토론하고 또 그 소감을 나눌 수 있는 ‘동아리’가 있으니까요. 바라건대, 이러한 활동이 계속 이어지고 널리 확산되어 한국사회 전체가 비로소 ‘눈뜬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귀중한 첫 결과물을 엮을 수 있어서 반갑고 부듯합니다.

 

16. 0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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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새로운 책이 번역돼 나왔다. <세컨드 핸드 타임>(이야기가있는집, 2016). 두세 권은 더 소개될 걸로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원저는 2013년작이므로 말 그대로 최근작이다. 먼저 나온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문학동네, 2015)와 <체르노빌의 목소리>(새잎, 2011)은 각각 1985년과 1997년에 나온 책이다.

 

 

제목은 러시아어를 영어 표현으로 옮긴 게 아니라 원래 그렇게 붙여졌다('타임'만 빼고). 우리식으로 하면 '세컨드 핸드 시간'이 원제다. 부제는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사회주의적 인간' 혹은 '소비에트적 인간'이란 뜻으로 알렉산드르 지노비예프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소련의 붕괴에 주목하여 살아남은 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는 이 책은 알렉시예비치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다. 독일에서 출간된 지 일주일 만에 9,000부가 판매되었으며, 프랑스, 미국 등 35개국에서 출간되며 변화된 시대를 살아간 인간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2013년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주요 문학상 중 하나인 독일출판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13년 프랑스 에세이 부문 메디치상을 수상, 문학잡지 '리르Lire'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아직 영어로는 번역되지 않은 책이기도 한데, 알렉시예비치는 영미보다는 독일 쪽에서 압도적인 지지와 반응을 얻어낸 작가다. 특별히 이 책은 메디치상도 수상한 만큼 프랑스에서도 반향을 불러일으킨 듯싶다.

 

아무려나 알렉시예비치의 모든 책을 환영하는 만큼 갑작스런 출간은 새해 선물처럼 여겨진다(나는 러시아어본도 갖고 있다). 더불어 이 책은 '러시아현대문학 시리즈'의 1권이기도 하다. 근간 예정 목록을 보니 디나 루비나, 예브게니 그리시코베츠, 안드레이 볼로스, 루벤 갈레고 등 모두가 생소한 작가들이다(2004년 이후로 러시아 작가들의 현황이 내겐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다). 대단히 모험적일 수 있는 기획이지만 나로선 대환영이다. 무탈하게 시리즈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일단은 알렉시예비치와 함께할 시간이다...

 

16.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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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에 나온 책인데, 뒤늦게야 알게 된 작품이 있다. '백탑파'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김탁환의 <목격자들>(민음사, 2015)이다. '조운선 침몰 사건'이 부제. 부제에서 어림해볼 수 있지만 세월호 사건이 집필의 계기가 된 소설이다. 그렇다는 것은 세월호 고의침몰 의혹과 관련한 기사를 엊그제 검색해보던 중 작가의 인터뷰와 강연 기사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먼저 지난해 3월말 대전에서의 북콘서트를 취재한 대전일보의 기사(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164076).

 

소설가 김탁환에게도 세월호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안겼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들을 향한 분노와 증오. 돌아오지 못할 자들을 향한 고통스런 절규가 그의 머릿속을 온종일 헤집고 다녔다. "매일 밤 바다에 빠지는 것 같았어요. 잘 수도 없고, 먹을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살도 10kg이 빠졌네요."

지난 26일 오후 계룡문고에서 열린 '목격자들' 출판기념 북 콘서트에 앞서 만난 김탁환의 목소리는 이렇게 담담했지만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한 작품이 끝나면 금세 털어내고 일상으로 복귀하던 그지만, 이번만큼은 쉽지 않은 듯 했다.

"아직 작품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통상 작품을 출간하고 나면 보름간 제주도에 머물며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재충전을 했는데, 이번에는 참 안되네요. 그래서 선택한것이 지방 투어 북콘서트예요. 혼자 슬픔을 감당하는 것보다 독자들을 만나 실컷 떠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슬픔보다 위로를 받게 되지 않을까 해서요. 4월까지는 이렇게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김탁환은 지난달 초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역사추리 소설 '백탑파(白塔派)'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목격자들'을 내놨다. '열하광인' 이후 8년만이다. "지난해부터 연애소설을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4월에 갑가지 세월호가 침몰한겁니다. 남녀 주인공이 말랑말랑한 사랑을 해야 하는데, 한 문장도 쓸 수 없었어요. 선택은 단 두가지, 쓰거나. 안 쓰거나. 한달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러 버린 그 시간에 산울림 밴드의 김창완씨는 '노란 리본'이라는 곡을 만들고,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더군요. 본인이 가장 잘 하는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었던 거지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가만히 있을게 아니라 내가 제일 잘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위로하자고. 그렇게 탄생한것이 '조운선 침몰사건'이라는 부제를 단 '목격자'입니다. "

그는 이 작품을 쓰기 전 스스로에게 무엇을 쓸것인지 수십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압축된 것이 생명의문제, 인간 존엄의 문제, 고통에서 비극으로 나아가는 문제로 정리했고 그것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 냈다.

'조운선 침몰사건'은 조선시대 조세를 실은 조운선이 침몰해 배와 세곡이 가라앉고 배에 탄 백성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김탁환은 이 사건을 단순사고로 보지 않고 합리적 추리를 통해 주인공들에게 과학 수사를 지시한다. '백탑파'에서 활약했던 명탐정 의금부 도사 '이명방'과 '김진'을 불러내 사건의 배후를 밝히고, 범인들을 색출한 뒤 해결책을 제시한다.

"작품 속에 제시한 해결책은 이랬어요. 조운선 사고 때 함께 희생된 기생과 뱃사람, 어부등을 기리는 비문을 세우고, 정조 임금은 유가족에게 위로의 글을 내리며 생계의 어려움을 보살피겠다고 약속을 한 거죠. 그리고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기억의 마을'을 지었지요. 소설속에서는 이렇게 해결했는데, 현실에선 어떻게 해결할지 정말 궁금합니다."

인터뷰 내내 담담함을 유지하던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주항쟁 희생자의 유가족을 만났는데, 유가족들이 그랬답니다. 세월이 약이 아니라고. 잊혀지는것이 아니니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요.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라고도 하지만, 어떤 사건은 세월로 해결되지 않은 사건도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그런 경우겠지요. 덮으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입니다. 세월호 1주년을 앞두고 소설가와 시인, 만화가들이 1년동안 어떻게 견디고 살아왔는지 결과물을 내놓을 겁니다. 올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가 해결될때까지 우리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 사회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니까요. "

그 역시 '작가의 말'을 통해 "이 많은 범죄, 이 지독한 악취, 이 뿌연 풍광을 외면하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리겠습니다"라고 다짐한다. 독자에게도 구경꾼으로 남지 말고 '역사의 목격자'로 남자고, 그리고 잊지 말자고 말한다.(대전일보)

간단히 말하면 <목격자들>은 "조선시대 조세를 실은 세운선이 침몰해 배와 세곡이 가라앉고 배에 탄 백성들이 희생된 사건"을 다룬 소설인데, 중요한 것은 이런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강연에서 이 작품의 창작과정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25/2015042500429.html).  

 

2014년에 제가 가진 문제 의식은, 이번 주가 공교롭게도 일주기인데, 세월호 사건이었습니다. 세 가지 문제 의식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생명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생명이 가장 존귀하다고들 생각하는데 국가에 의해, 이데올로기에 의해 생명이 없어지는 경우입니다. 전쟁이나 돌림병 같은 것에 의해서 말입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두 번째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입니다. 죽은 사람의 존엄성은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까. 우리는 생중계로 배가 침몰하는 모습을 함께 봤습니다. 그러니 살아있는 사람도 내상을 입은 겁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사람들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것이냐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인간이라는 게 계속해서 너무 고통스러우면 안 보게 됩니다. 슬픔이든 그리움이든 고통스러워서 안 보게 되니까 외면을 합니다. 그걸 극복하고 어떤 다른 인간으로 자기를 바꾸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세월호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이야기를 고민하게 된 겁니다.

제가 찾아보니까 1780년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봄에 다섯 군데에서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조운선이라는, 세금으로 내던 쌀을 나르던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동법이라고 해서 세금을 쌀로 냈습니다. 쌀을 소 달구지로 옮기면 너무 힘드니까 배로 옮겼습니다. 한 척당 쌀이 천 석씩 들어갔습니다. 한 척이 가라앉으면 쌀 천 석이 사라지고, 열 척이 가라앉으면 만 석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국가 재정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 해에 보니까 봄에 다섯 군데에서 배가 빠진 겁니다. 정조 초기인데 정조가 이를 조사하라고 합니다. 그런 기록이 나옵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사하는지를 찾아보는데 잘 안 나옵니다. 그리고 11년 뒤, 1791년에도 법성창이라는 곳에서 또 배가 빠졌습니다. 왜 빠졌나 조사했는데 이게 재미있습니다. 하나는 과적 때문이었습니다. 천 석을 실어야 하는데 1500석씩 막 실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죽었어야 하는데 선원들이 아무도 안 죽었습니다. 다 살아 나왔습니다. (지금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조운선 침몰 사례를 다 모아봤습니다. 사실 이제 조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바로 장편소설을 쓸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 십 년 지나면 세월호 관련 장편소설이 나올 것 같습니다. 보통 이럴 때 장편 작가들은 뒤로 빠져야 합니다. 질문거리를 찾으면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제가 뒤로 쭉 빠져봤는데 1780년대로 갔습니다. 조운선 침몰 과정을 쓰자고 했는데 그 중 밀양에 있는 후조창을 출발해서 영암 앞바다에서 빠진 그 사건을 다루려고 한 겁니다. 그래서 1780년 4월 5일 영암 앞바다 조운선 침몰을 ‘그날의 하루’로 잡고, 그게 어떻게 빠졌는지 조사하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게 작년 5월입니다. 12월까지 썼습니다.

 

 

주로 두 군데 답사를 갔습니다. (지도를 가리키며) 이쪽이 밀양이고 여기가 후조창입니다. 밀양이 큰 고을이니까 경상도에서 쌀을 다 거두면 창고에 먼저 모읍니다. 후조창이라는 이 곳에 쌀을 모으면 몇 만 석이 모입니다. 여기에서 마산 앞바다로 내려옵니다. 이게 올라가다 보면 강화도이고, 더 올라가면 광흥창입니다. 광흥창은 쌀을 다 풀어놓는 곳입니다. 그런데 배가 진도를 지나 올라가다가 침몰했습니다.

 

배를 실을 때에 여러 부조리가 일어납니다. 가장 유명한 부정부패가 ‘화수’입니다. 500석만 쌀을 싣고 500석은 물을 넣습니다. 그렇게 해서 1000석이 되게 만들어서 싣습니다. 그게 ‘속대전’이라고 해서 법령에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화수’를 저지르면 무조건 사형이라고 적어 놨습니다.

‘고패’라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1000석을 실어야 하는데 500석만 싣고 일단 출발을 합니다. 광흥창에 이르면 500석이 부족하게 되니까 혼이 나잖아요. 그러니 중간쯤 가다가 일부러 배를 침몰시킵니다. 고의로 빠뜨리는 거죠. 그렇게 사고가 나서 못 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가 너무 많다 보니, 이런 죄를 저지르면 사형이라고 법령까지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런 부분 답사를 하고, 구체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조선비즈)

요컨대 이유는 다르더라도 선박의 고의침몰이라는 것은 우리부터도 오랜 내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 비추어 보면, 세월호 '고의침몰'도, 결과적으로는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지만, 애초에 '기획자들'은 타성적으로 단순하게 생각했을지 모른다(한두번 해온 '장사'가 아니기에). 간첩(단) 조작 사건처럼 국정원이 예사로 하는 일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손발이 잘 안 맞았고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던 것뿐이다. 그러고는 조직적인 증거 조작과 은폐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형국인지도.

 

조선시대 조운선 침몰 사건은 정조대왕이 조사를 명했다지만(그 결과는 미지수라 하더라도. 당시의 관도 내통했던 것일까?), 우리는 그런 리더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에게 가능한 일은 작가의 말대로 "이 많은 범죄, 이 지독한 악취, 이 뿌연 풍광을 외면하지 않고" '역사의 목격자'로 남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획자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올리는 것이다(조선시대에는 그런 죄를 저지르면 무조건 사형이었다. 우리는?)...

 

16.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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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레시아 총서'의 첫 권으로 마리본 세종이 엮은 <마네의 회화>(그린비, 2016)가 출간되었다. 그러나 편자보다도 눈길을 끄는 건 공저자인 푸코다. 사실 푸코를 위한, 푸코의 마네론을 위한 책이어서 그렇다.

 

"미셸 푸코는 생전에 에두아르 마네의 회화를 다룬 저서를 계획했지만 결국 그 책은 출간되지 못했다. 하지만 푸코가 1970년에 초 튀니지에서 행한 마네에 관한 강연 녹취록이 사후에 발견되었고, 푸코의 강연록과 그에 대한 여러 연구자의 글을 수록해 마침내 2004년 <마네의 회화>라는 책이 프랑스에서 발간된다. 마네의 회화 13점을 골라 섬세하게 분석한 푸코의 마네론은 푸코가 어떻게 사유했는지, 그림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생생하고도 흥미진진하게 보여 줄 것이다. 더불어 수록된 여러 철학자의 글을 통해 우리는 푸코의 마네론이 미학사에서 어떤 위상을 점하고 있으며 푸코 사유와 회화의 관계는 무엇이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푸코의 마네론에 대한 해설이 처음 소개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철학자들의 미술론을 다룬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문학과지성사, 2014)도 푸코의 마네론의 한 장을 할애한다. 박정자의 <마네 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조각>(기파랑, 2009)은 푸코의 마네론과 함께 바타이유, 그린버그 등의 마네론도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인상파를 다룬 책은 많지만 마네만 따로 조명한 책은 드문 편이다. <마네의 회화>가 마네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이해를 이끄는 계기가 될 듯싶다...

 

16. 01. 17.

 

 

P.S. 푸코의 마네론 영어판은 2010년에 나왔는데 찾아보니 품절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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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조지 패커의 <미국, 파티는 끝났다>(글항아리, 2015)를 고른다. 지난달에 나왔지만 주문한 원서가 아직 배송되지 않아서 나로선 독서를 미뤄두고 있는 책이다. 물론 600쪽이 넘는 분량도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럼에도 '걸작 논픽션' 시리즈에 값하는 걸작으로 보인다(상대적으로 이런 논픽션이 우리에겐 왜 없는지 아쉽다).

 

 

저자는 미국의 저널리스트로 국내엔 조지 오웰의 평론집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이론과실천, 2013)의 편자로 처음 소개되었다. 그러니 <미국, 파티는 끝났다>가 실상은 첫 책이다. '고삐 풀린 불평등으로 쇠락해가는 미국의 이면사'가 부제. 논픽션이지만 여느 논픽션과 다른 점은 다큐멘터리 소설 같은 형식 때문이다. 실제 인물들과의 인터뷰와 여행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논픽션이지만, 마치 흥미로운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1978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의 다양한 시민들은 그야말로 '몰락했다.' 저자는 미국 땅에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역정을 소설처럼 재구성해 드러냄으로써 이 부정할 수 없는 몰락의 과정을 보여준다. 보수적인 남부 시골에서 담배 농사를 포기하고 바이오디젤이라는 신경제의 전도사가 되는 딘 프라이스, 마약과 마피아가 활개치는 중서부 오하이오의 퇴락한 철강도시의 공장노동자에서 조직운동가로 변모해 생존을 도모하는 태미 토머스, 월가의 억대 연봉을 마다하고 워싱턴 정계의 막후 공작에 매진하다 좌절하는 제프 코너턴,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일으켜 거액을 모았으나 거품 붕괴로 파국을 맞은 피터 틸 등등. 이들의 삶을 섬세하게 드러내면서 저자는 지난 30년간의 미국 역사를 극단적인 빈부 격차와 금융업계의 규범 없는 이익 추구 그리고 정치권을 쥐락펴락하는 월가의 돈 앞에 저항운동조차 부서지기 일쑤인 사회가 '뉴아메리카의 이면'이라고 진단한다."

 

"슬픔과, 분노와, 측은지심이 윙윙거린다. 저자는 존 스타인벡 소설에 맞먹는 논픽션 걸작을 선물했다."고 뉴욕타임스는 평했는데, 저자의 고백으론 더스패서스의 삼부작 <미국>(1938)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펭귄판으로 1184쪽의 대작이다). 국내엔 <맨해튼 트랜스퍼>(문학동네, 2012)만 소개돼 있어서 아쉬운데, <미국>도 번역되면 좋겠다.

 

 

미국의 실패와 몰락을 다룬 책은 드물지 않다. 심지어 톰 하트만의 <2016 미국 몰락>(21세기북스, 2014)은 올해를 몰락의 해로 특정하기도 했다. 물론 그의 관심은 여러 몰락의 징후들이 말해주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놓여 있지만, 실상에 대한 직시가 선결조건이다. 과연 우리, 헬조선국은 사정이 다른지 묻게 된다. '천조국'도 파티가 끝났다면 더 말할 것도 없긴 하지만...

 

16. 0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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