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예고돼 있던 것이지만 '가장 쉬운 들뢰즈 입문서'(http://blog.aladin.co.kr/mramor/423844)의 저자 클레어 콜브룩의 새로운 책이 출간됐다. <들뢰즈 이해하기>(그린비, 2007). 원저는 전작인 <질 들뢰즈>(2001)에 연이어 지난 2002년에 나온 것이다. 반면에 두 입문서의 국역본은 3년 터울을 갖게 됐다. 전작을 유익하게 읽었던지라 나는 이 후속작 또한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문했다(본인 선물은 아주 잘 챙기는군). 이주에 새로 나온 이병훈의 <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한길사, 2007)과 함께(책은 비록 성탄 다음날에나 받게 될 예졍이지만). 책을 먼저 주문하고 관련기사를 찾아서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7. 12. 21) 들뢰즈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

지난해 천규석의 책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실천문학사)를 둘러싸고 ‘노마디즘 논쟁’이 뜨겁게 벌어졌었다. 철학자 이정우의 이 책에 대한 서평에서 촉발된 논쟁은 홍윤기, 김진석, 이진경 등의 철학자와 작가 김영현 등이 개입하며 확산됐지만 들뢰즈에 대한 ‘이해 차이’만 거칠게 확인하는 수준에서 끝났다. 그만큼 들뢰즈 이해가 난해하다는 것뿐 아니라 들뢰즈의 사상이 우리에게 ‘몸으로’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들뢰즈(1925~1995)의 저서 ‘차이와 반복’‘천의 고원’‘앙티 오이디푸스’등은 새로운 사유를 모색하는 지식층으로부터 가장 주목 받은 책들이었다. 특히 ‘노마디즘’같은 용어는 광고카피에 등장할 만큼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는 ‘노마디즘 = 들뢰즈주의’라는 심각한 들뢰즈 오독이 퍼져있음을 보여준 사례 중 하나다.



책의 저자는 영미권에 들뢰즈 철학을 쉽게 소개해온 영국의 영문학자다. 그는 들뢰즈의 철학을 ‘차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정리한다. 플라톤 이후 서양철학은 기본적으로 ‘차이’라는 것을 부차적이며 불순한 것으로 보는 ‘동일성의 철학’이었다. 헤겔에 이르러서야 ‘차이’의 우선성이 주장되며 이전의 동일성의 철학과 단절이 시작된다. 그는 존재는 그것의 타자, 즉 그것의 부정을 통해 정의되며, 따라서 ‘차이’ 없이는 존재나 동일성이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이후 구조주의는 헤겔의 변증법적인 ‘차이’를 더 심화시켜, 사고나 개념화 이전에 차이를 조직하는 표식들의 체계, 즉 언어 같은 ‘차이’의 구조가 먼저 있다고 주장했다.

들뢰즈는 더 근본적인 단절을 말한다. 들뢰즈는, 차이는 외적인 절대자는 물론 구조에 정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동하고 창조하는 것이며 오히려 주체나 구조는 선행하는 차이가 환원됨으로써 생겨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차이’는 엄밀히 말해 ‘차이생성’이며, 차이는 바로 차이생성이 산출해낸 효과와 다름없다고 강조한다.

옮긴이는 후기에서, ‘노마디즘 논쟁’에서 드러난 우리사회의 들뢰즈 이해는 차이, 생성, 탈주, 노마드 등을 하나의 ‘결론’ 내지 ‘강령’처럼 생각하면서 동일성의 ‘반립’으로 놓아버리거나, 아니면 마치 초월적 항(項)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차이, 생성, 탈주, 노마드 등이 성립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즉 차이는 차이이되 헤겔식의 부정적 차이나 구조주의의 개념적 차이로 봉인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엄주엽기자)

2007. 12. 22.

Жиль Делез, Феликс Гваттари Анти-Эдип. Капитализм и шизофрения L'anti-edipe: Capitalizme et schizophrenie

P.S.콜브룩을 읽는 김에 겸사겸사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에도 다시 손을 대봐야겠다. 다행히 올해는 러시아어본도 출간됐기에 예전에 읽을 때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아질 것이다. 생업도 포기한다면 <차이와 반복>까지 건드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요며칠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저자는 사실 들뢰즈가 아니라 울리히 벡이다. 특히, <위험사회>(새물결, 2006 재판)가 아니라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새물결, 2000)와 <지구화의 길>(거름, 2000)에 눈길이 간다. 세기의 문턱에서는 챙겨두지 않다가 뒤늦게 발동이 걸린 셈이다(<적이 사라진 민주주의>는 그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구화의 길>은 품절됐고). 지그문트 바우만의 <지구화, 야누스의 두 얼굴>(한길사, 2003)과 함께 새해에 '가장 먼저 읽어볼 책' 후보들이다. 하지만 이 책들은 모두 주문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위험가계'가 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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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2-22 17:31   좋아요 0 | URL
앙띠-오이디푸스 한국어 번역본은 한자어가 꽤나 많이 등장하더군요 : (
이번 겨우내 읽어내야할 책들 중 하나인데, 마음 단단히 다잡아야겠어요- : )

로쟈 2007-12-22 17:44   좋아요 0 | URL
짐작엔 역어를 잡을 때 일역본을 많이 참조해서 그럴 겁니다. 푸코의 <말과 사물>도 그렇구요...

2007-12-22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2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7-12-23 03:41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유머가 이 밤 저에게 웃음을 주네요.^^ "생업도 포기한다면", "위험가계" 등의 구절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만 또 혼자서 웃어버렸습니다(옆에 다른 사람이 없기에 다행입니다).

로쟈 2007-12-23 11:01   좋아요 0 | URL
썰렁한 유머에 그렇게 약하시다니!^^;
 

올해의 마지막 '경이'는 찰리 채플린의 자서전이다. <채플린 - 나의 자서전>(김영사, 2007)가 문제의 책인데, 국내 최초의 완역판이어서 분량이 1,000쪽이 넘는다(이 책에 견줄 만한 건 작년에 나온 패트릭 맥길리건의 <히치콕>(을유문화사)이나 세르주 투비아나 등의 <트뤼포>(을유문화사) 정도이다. 물론 이 두 권은 자서전이 아니지만). 물론 그 부피에 걸맞은 삶의 곡절들이 갈피마다 숨어 있을 터이다. 관련기사를 옮겨놓고 몇 가지 코멘트를 덧붙인다.

 

한국일보(07. 12. 22) '희극광대' 찰리의 위대한 비극

콧수염, 헐렁한 바지, 커다란 구두, 지팡이, 중산모를 쓴 우스꽝스러운 거지신사의 모습으로 대공황기의 실의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찰리 채플린(1889~1977). 채플린이 자서전을 쓰고 있던 1960년대초 한 여류소설가는 “당신이 솔직하게 털어놓을 용기를 가졌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4번의 결혼과 수많은 스캔들로 점철된 채플린의 여성편력을 의식한 궁금증이었던 것. 그러나 채플린은 자서전에서 “나는 프로이트의 주장과 달리 섹스가 인간의 복잡한 심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추위, 배고픔, 그리고 가난에 대한 부끄러움 등이 한 사람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는다.

<키드> <모던타임스> <황금광시대> 등 무성영화사를 수놓을 만한 탁월한 작품을 통해 백만장자가 됐지만 채플린의 예술적 자양분은 유년시절의 치욕적인 가난과 혹독한 불행이었다. 연극배우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채플린의 생후 1년 만에 갈라섰고, 술독에 빠져살던 아버지는 서른 일곱이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유능한 가수였던 어머니도 후두염 때문에 무대생활을 접어야 했고 정신병에 걸려 병원에서 여생을 보내야 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나오는 소년들처럼 런던의 빈민구호소를 들락날락하던 채플린은 5세 때부터 무대에 서야 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잡화점 심부름꾼, 진료소 청소부, 인쇄소 직공 등을 전전해야 했다. 성공한 인물들 이면에는 가난과 불행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은 종종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채플린의 위대함은 그것을 유머로 승화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채플린- 나의 자서전>이 처음으로 완역됐다. 번역본의 분량이 1,0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만큼 작품세계 이외에는 잘 알 수 없었던 채플린의 사랑, 성공과 실패 등 사생활과 공생애의 전반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그의 말이 대변하듯 비극을 유머로 극복하고 그것을 예술로 환치시킨 채플린의 낙천적 세계관을 확인하고 거기서 생에 대한 힌트를 얻어낼 수 있다면 책 두께만큼의 충분한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의 미덕이라면 휴머니즘으로 귀착되는 자유주의적 철학을 육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2차대전 중 독일과 싸우고 있던 소련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자는 연설 때문에 공산주의자로 오인 받아 보수주의자들로부터 박해를 받고 미국에서 쫓겨나지만, 실상 정치적 이념은 강력한 반(反) 파시즘이었다.

나치 같은 파시즘에 대한 저항은 물론이고 파시즘의 질료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심지어 애국주의에 대해서조차 비판적이다. 그는 애국주의에 대해 “햄버거나 코카콜라 같은 지엽적인 습관에 길들여지고 학습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맹목적으로 고국을 사랑하고 충성하라고 한다면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런 요구는 나치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유성영화시대에 들어서도 그가 히틀러를 풍자하는 <위대한 독재자>(1940) 같은 명작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철학이 뒷받침 됐기 때문일 것이다. 풍부한 사진자료와 처칠, 사르트르, 흐르시초프(*흐루시초프), 카잘스, 아인슈타인 등 그가 만났던 20세기의 명사들에 대한 품평을 엿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1964년작.(이왕구기자)

07. 12. 22.

P.S. 한편으로 어제 잠시 들춰본 벤야민의 책에도 채플린 얘기가 나온다. 이번에 나온 선집 중 한 권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길, 2007)에 수록돼 있는데, '채플린'이란 짧은 글 외에도 '러시아 영화예술의 상황에 대하여'에 '러시아 채플린'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눈길이 갔다. 러시아에 좋은 외국영화들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빚어지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벤야민은 이렇게 덧붙인다.

"러시아의 개별 예술가들에게는 여기서 비롯되는 관중들의 무지가 편리한 측면이 있다. 일진스키는 채플린을 매우 부정확하게 모방하여 작업하면서 오로지 채플린이 러시아에 알려져 있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희극배우로 통하고 있다."(228쪽)

'일진스키'는 역주에 Igor Vladimirovich Iljinsky(1901-87)로 소개되고 있는데, '일진스키'가 아니라 '일린스키'로 읽어야 한다(표기의 'j'는 'y'와 호환되는 반모움이다). 즉 벤야민이 언급하고 있는 희극배우의 이름은 '이고르(이고리) 일린스키'이고 1927년에 젊은 배우였던 일린스키는 이후에 국민배우로 성장한다(내게도 굉장히 낯이 익은 배우이다). 그가 '러시아의 채플린'이었다는 것. 

마야코프스키의 <빈대>(1928)와 메이에르홀드가 연출한 고골의 <검찰관>(1926)에 출연하기도 했던 일린스키의 영화데뷔작은 유명한 소비에트 SF영화 <알리에타>(1924)였다. 내가 인상적으로 보았던 일린스키는 엘다르 랴자노프의 데뷔작인 뮤지컬 코미디영화 <카니발의 밤>(1956)에서의 일린스키다(해빙기를 대표하는 영화의 하나다). 해빙기 청춘남녀의 사랑과 관료주의에 대한 풍자를 다룬 이 영화에서 일린스키는 고루하면서도 코믹한 관료로 등장한다(http://www.youtube.com/watch?v=Rss5fhpEo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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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장정일의 책속 이슈'를 옮겨놓는다. 이달초 작가가 러시아 여행을 다녀온 것은 이미 알고 있던 바인데 그 '객담'이면서 동시에 러시아의 두 작가에 대한 '예찬'이기도 해서 '러시아 이야기'로 분류해놓는다. 더불어 몇 가지 코멘트도 덧붙인다. 

한겨레(07. 12. 23) 러 혁명이 숨통 막은 ‘문학 우상’

나는 한번도 외국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예를 들어 무슨 세미나가 있어서 일본에 아흐레를 묵어야 한다면, 아홉 권의 일본 소설을 가지고 가서 하루에 한 권씩 읽고 돌아오곤 했으니 그건 여행이 아니다. 엉뚱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서 장소는 뜨거운 물을 가득 받은 욕조다. 이때 손바닥에 배어드는 습기와 얼굴에 흐르는 땀을 걷어내기 위해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여매는 것은 필수.

한 십여년 전, 중국에 갔을 때도 그랬다. 만리장성 코 앞에서, 나홀로 호텔방에 남았다. “흥, 그 까짓 만리장성!” 그러면서 그날치의 중국 소설을 읽었다. 머리에 흰 수건을 동여맨 채 뜨거운 욕조의 물이 식을 때까지 책을 읽는 여행자. 아무리 현지에서 읽는 그 나라의 소설이 각별한 독서 아우라를 선사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지난 11월30일에서 12월6일까지 6박7일 동안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주관하는 한-러 문학교류 행사에 참가했다. 이번에도 여섯 권의 러시아 소설을 챙겨가고자 책을 골랐다. 하지만 출발 하루 전날 그것들을 털어냈다. 하루에 한 권씩, 가져간 책을 모두 독파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이번 여행에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젊었을 때는 그 조바심이 책읽기에 필요한 적당한 동력이 되어 주었으나, 이제는 그 조바심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늙은 것이다.

그래서 골라든 책이 마르크 슬로님의 〈소련현대문학사〉(열린책들, 1989). 시대순으로 대표적인 작가와 문학사조를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작은 러시아 작가사전과 같은 구실을 하고 있어, 오랫동안 러시아 작가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참조하곤 했으나 완독을 하진 못했다. 참고로 러시아에서 돌아온 직후, 자주 들르는 단골 헌책방에서 D. S. 미르스키의 〈러시아문학사〉(문원출판, 2001)를 구했다. 앞의 책이 1917년 혁명 전의 과도기부터 소련공산당 치하의 사미즈다트(지하출판)까지를 다루었다면, 뒤의 책은 11세기 초 고대 러시아 문학의 발생에서부터 혁명 직후인 1920년대까지를 다루고 있다.

모스크바에서의 첫날, 러시아 작가들과 서로 소개하는 자리에서 ‘마야코프스키와 불가코프의 나라에 온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악마와 마르가리따〉(삼성출판사, 1983)라는 제명으로 처음 선보였으나 훗날 〈거장과 마르가리따〉(한길사, 1991)로 게재된 불가코프의 작품을 읽고 그의 ‘광팬’이 되기 훨씬 전에, 나의 러시아 문학 우상은 단연 마야코프스키였다. 20대 초반 문청 시절, 앤 차터스와 새뮤얼 차터스 부부가 함께 쓴 〈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까치, 1981)을 읽은 순간부터, 러시아는 내 청춘의 고향이 되어버렸다.

해가 보이지 않는 러시아의 아침은 희뿌연 새벽과 구분이 되지 않았고, 오후 네 시에는 아예 해가 졌다. 무슨 말을 더 하랴? 나는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호텔 욕조 속에서 문학기행을 했다. 레닌은 미학적 전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공산당 관료들에겐 상상력이 마비되고 없었다. 절판된 마야코프스키 희곡집은 재간되어야 하고, 미간인 불가코프의 작품은 속간되어야 한다.(장정일 소설가)

07. 12. 22.

Д. Святополк-Мирский История русской литературы

P.S. 러시아문학사에 대한 자료가 부족했던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 '교과서' 역할을 했던 것이 미르스키의 <러시아문학사1, 2>(홍성사, 1985; 화다, 1988)와 슬로님의 <소련의 작가와 사회>(열린책들, 1986)였다. 모두 영어본을 옮긴 것인데, 망명문학사가인 드미트리 미르스키의 책은 최근에 러시아어본도 출간되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러시아문학사>(2006)라고 나온 책이 그것인데 876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학사라고 소개돼 있다.  

Михаил Булгаков Михаил Булгаков. Пьесы

한편, 작가가 "절판된 마야코프스키 희곡집"이라고 적은 것은 3권짜리 선집의 하나였던 <미스쩨리야 부프>(열린책들, 1993)를 가리킨다. 표제작 외에 <빈대>와 <목욕탕> 같은 1920년대말의 풍자극들이 실려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마야코프스키가 불가코프를 노골적으로 싫어했다는 점. '마야코프스키와 불가코프의 나라'라고 돼 있지만 정작 두 사람은 적대적 관계였다(러시아에서는 두 사람의 이 적대관계에 초점을 맞춘 책도 나와 있다). "미간인 불가코프의 작품은 속간되어야 한다"고 작가는 주문했는데, 주요작들로 치면 현재 1/3 정도는 번역/소개돼 있다(<투르빈가의 나날> 같은 대표작이 빠져 있다. 이미지는 불가코프 희곡집인데, 1991년판으로 800쪽 분량이다. 내가 갖고 있는 1987년판은 656쪽 분량이다. 3년전에 3,000원을 주고 구했던 책이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새 번역본도 내년초에는 나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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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12-22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퍼렇고 허연 곳으로 여행을 떠나도 좋으련만..욕조속의 책읽기, 그것도 낯선 도시와 관련된 책을 읽기.. 손이 젖어 책장만 안젖는다면 (다소 성가신 일 일것 같지만)독서광들의 어쩔 수 없는 유희.. 어디 가까운 일본 온천에라도 다녀오고픈데 말이죠..내게 있는 마야코프스키는 누래지고 있네요

로쟈 2007-12-22 20:48   좋아요 0 | URL
일본 정도야 얼마든지 다녀오실 수 있을 텐데요...
 

그림에 문외한이더라도 한번 보면 고흐만큼이나 쉬이 잊을 수 없는 화가에 모딜리아니(모디)가 있다. '목이 긴 여인'들이 너무도 개성적이기 때문인데, 그 그림들의 전시회가 열린다고 한다. 연인 잔 에뷔테른의 그림들과 함께.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7. 12. 21) 모딜리아니와 연인 잔의 애틋한 사랑

풍성한 갈색 머리채, 갸우뚱한 고개, 오른손으로 앞가슴을 가린 채 내면을 응시하는 듯한 목이 긴 여인. 모딜리아니가 죽기 한 해 전(1919년)에 그린 ‘어깨를 드러낸 잔 에뷔테른’이다. 태어난 해는 각각 1884년, 1898년으로 14년 차이가 나지만 1919년 같은 해에 죽은 아마데오 모딜리아니(모디)와 잔 에뷔테른. “마치 항상 알고 지낸 것 같았던” 이들은 1917년 봄 몽파르나스의 화가들 모임에서 눈이 맞은 이래 3년 동안 지독한 사랑과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가난한 커플은 후원가가 내준 빌딩 꼭대기의 작업실에서 알콩달콩 지내다 모디의 결핵이 악화돼 니스로 요양을 갔다. 여기서 잔은 훗날 아버지 평전을 쓴 딸을 낳았고 모디는 대표적인 초상화 작품을 가장 많이 그렸다. 행복은 잠시. 생활고는 모디의 성격을 괴팍하게 만들어 파리로 돌아왔을 때 모디의 병세는 악화돼 있었다. 1920년 1월 모디가 병원에서 죽은 이틀 뒤 에뷔테른 역시 친정집 아파트 5층에서 투신 자살했다. 8개월 된 둘째 아이를 임신한 채.

‘미술사상 가장 잘 생긴 화가’라는 모딜리아니의 주변에는 모델이 되어주겠다는 여자가 끊이지 않았다. 안나 아크마토바(*아흐마토바), 베아트리스 헤이스팅스, 루니아 체호프스카야 등등. 하지만 이들은 모디가 잘 나갈 때의 얘기. 미술계의 주류와 타협하지 않고 점점 외톨이가 되어 술과 마약에 빠져든 그에게 나타나 천국에서도 모델이 되어주겠다며 반려가 되어 ‘생명의 예술’을 창조시킨 여성은 에뷔테른이다.

이러한 모디와 에뷔테른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복원한 전시회가 열린다. 27일부터 내년 3월16일까지 고양시 아람미술관(031-960-0180)에서 열리는 ‘천재, 열정을 그리다’ 전이 그것. 모디가 주로 초상화를 많이 그린 탓에 모디 관련 전시회의 모티브는 ‘모디와 그의 모델’이 주류였다. 하지만 모디와 마지막 3년을 지낸 에뷔테른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베일에 싸인 채 전설로만 떠돌았다. 애초 가족들의 반대에 부닥쳤던 이들의 사랑은 사후에도 마찬가지여서 따로 묻힌 지 10년 뒤에야 합장이 가능했다. 또 가족들은 잔의 작품이 모디에게 가려져 왜곡될 것을 우려해 공개를 반대해 왔다. 에뷔테른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은 2000년 ‘모딜리아니와 그의 친구들’이란 전시회에서부터다. 비로소 미술사적으로 대접을 받게 됐다.

한국 전시에서는 잔의 유화, 과슈, 아크릴, 드로잉 등 65점, 모딜리아니의 유화 및 드로잉 45점과 공동드로잉 1점,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엽서, 사진, 머리카락 등 150점이 처음으로 선보인다. 모디의 애정이 담뿍 담긴 그림 ‘에뷔테른’에서 막연하게 상상되던 두 사람의 사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모디가 특별한 만큼 그가 사랑한 여인 역시 특별한 존재였음을 드러낸다.(임종업 선임기자)

07. 12. 21.

P.S. 덧붙일 사항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앤디 가르시아 주연의 영화 <모딜리아니>(2004)도 소개되면 좋겠다는 것(영화의 한 장면은 http://www.youtube.com/watch?v=XekpJXGKeTc 참조).

그리고 또 한가지는 모디가 그린 아흐마토바. 1911년에 페테르부르크에서 그린 스케치들이 남아있다. 아흐마토바(1889-1966)는 20세기 러시아시의 디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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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12-21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칸딘스키와 반 고흐 그리고 모딜리아니...까지. 방학특수인가요^^
멀리까지 가서라도 봐야겠군요..
고양시가 꽤 좋은 레퍼토리들을 마련하는것 같아요..

맨 아래 사진 아흐마토바의 표정..참 좋네요.

로쟈 2007-12-22 01:38   좋아요 0 | URL
아흐마토바에 관한 책을 요새 새로 구했는데 겸사겸사 읽어보고 싶네요...

2007-12-21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12-22 01:39   좋아요 0 | URL
네, 너무 잠깐이었습니다. 나중에 길게 말씀을 나누도록 하지요.^^

李潤映 2007-12-2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와 여인이 항상 일치되는 주제인지는 몰라도 같이 놓고 보면 항상 흥미있는 것이 될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언제나 사람의 삶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게 에로스적인 것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더 그런 듯 하구요.

로쟈 2007-12-22 01:40   좋아요 0 | URL
모든 범인의 뒤에는 여인이 있다는 속설이 예술가들에게도 대부분 맞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주 한겨레21에 기고한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162000/2007/12/021162000200712200690024.html). 겸사겸사 어제의 대선을 겨냥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87년 민주항쟁(혹은 87년 체제) 20주년을 마무리하면서 개인적인 감회를 적은 것이기도 하다(기사는 주로 무페의 민주주의론에 할애돼 있지만). 서두와 말미에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잠시 인용했는데, 알다시피 80년대 대학가에서(혹은 술자리에서) 자주 불리던 노래이다. 최근에 알게 된 건 이 노래를 당시 김광석씨가 불렀다는 것(짐작엔 노찾사 시절의 김광석이니 '새파란' 가수 김광석이기도 하다). 동영상(http://www.youtube.com/watch?v=YlEUdII-EGk)과 같이 음미해볼 만하다. 그리고 묻어둘 만하다.

 

한겨레21(07. 12. 20) 더 많은 목마름이 필요하다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숨죽여 흐느끼며” 남몰래 적던 이름이 있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그의 만세를 부르던 때가 있었다. 그랬던가 싶은 기억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적은 이름이 ‘민주주의’였고 우리가 부르던 만세가 “민주주의여 만세”였다. 그리고 20년, 어느새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따금 묻는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안녕한가를.

그러자니 먼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물어야겠다. 혹은 한 정치철학자를 따라서 ‘민주주의 혁명’이 무엇인가를. 클로드 르포르에 따르면 민주주의 혁명이란 권력의 자리를 ‘텅 빈 장소’로 만든 사회적 제도의 새로운 기원이다. 이 민주주의 혁명 이후에 우리는 5년에 한 번씩 그 텅 빈 자리에 앉혀놓을 권력의 대행자를 뽑아왔다. 간혹 못해먹겠다고 푸념도 늘어놓는 자리이지만 한꺼번에 열두 명이나 나서서 좀 앉게 해달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역설의 자리는 어떻게 마련되고 또 유지되는 것인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의 공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으로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논쟁의 물꼬를 튼 바 있던 샹탈 무페의 이어지는 두 저작 <정치적인 것의 귀환>(후마니타스 펴냄)과 <민주주의의 역설>(인간사랑 펴냄)은 ‘정치적인 것’의 의미와 ‘민주주의의 역설’에 새삼 주목하도록 해준다. 먼저, 그가 말하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은 사회의 특정 분야를 지칭하는 ‘정치’(politics)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 자체이기 때문이다.

“슈미트와 함께 생각하고 슈미트에 반대하여 생각하고 슈미트의 비판에 맞서 그의 통찰을 자유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말할 정도로 무페가 적극적으로 참조하고 있는 이는 독일의 정치철학자 카를 슈미트이다. 그런 슈미트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이란 적과 친구를 가르는 것이다. 즉,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가를 판별하고 구분하는 것이다. 한데 이것이 어째서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이 되는가? 어떤 수준이든 간에 자기 정체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나’와 대립되는 ‘타자’가 먼저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집단적 정체성이 형성되려면 ‘우리’와 ‘그들’의 구분은 불가피하다. 즉, ‘그들’이라는 외부는 ‘우리’를 구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가 된다(그래서 ‘구성적 외부’라고 부른다). 이때 ‘그들-우리’ 관계는 정치에서 자연스레 ‘적-친구’ 관계로 전화된다. 이 적-친구 관계의 갈등과 적대는 항구적인 것이기에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사회적 객관성은 이러한 관계와 조건의 산물이기에 궁극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회적 행위자는 자신의 의견과 주장이 갖는 특수성과 한계를 인정할 때 더 ‘민주적’이 될 수 있다. 민주적 사회는 사회적 관계의 완벽한 조화가 실현된 사회가 아니다. 국민 전체의 ‘승리’나 ‘행복’은 가능하지 않으며, 그것을 말하는 것은 반민주적인 기만이다. 민주적이라는 것은 어떠한 사회적 행위자도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승인을 가리킬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권력과 적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서 권력 관계의 실재를 인정하며 그것을 변형해나가려 노력하는 것이 라클라우와 무페가 말하는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 프로젝트이다(다만 덧붙이자면, 우리의 ‘적’에는 ‘적대적인 적’과 ‘우호적인 적’이 있어서 ‘그들-우리’의 관계는 적대적 관계만이 아니라 경합적 관계도 형성하며 이를 통해 ‘경합적 다원주의’로서 민주주의가 작동하게 된다). 대선은 그런 민주주의의 경연장이다. 샹탈 무페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진정한 위협은 적대감이 아니라 합리성과 중립성을 가장한 합의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타는 목마름’이고 ‘치 떨리는 노여움’이다.

07. 12. 20.

P.S.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목마름'과 '노여움'의 대상은 어제 패배을 안은 '진보'진영쪽이다. 자칭 87년 민주화의 주역들이자 그 시대정신을 계승한 이들이지만 진정한 계승은 언제나 '배반'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점에는 눈을 감은 채 (최소한) 지난 5년을 보낸 듯하다('배반'하기 위해 '계승'한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인지). 절망의 골도 열망만큼이나 깊어진 만큼, 적대의 전선 또한 다시 짜여져야겠다. '민주 vs 반민주'의 구도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문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전선은 복수적이다). 그것은 그 자체가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의 요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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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12-21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분한 어조 속에 숨겨진 열정의 언어를 읽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감사한 글이었습니다. 정의(定義/正義)에 관한 하나의 '지침'으로, 마음 속에 담아갑니다.^^

로쟈 2007-12-21 09:34   좋아요 0 | URL
그냥 '감회' 정도입니다. '지침'까지야.^^;

李潤映 2007-12-2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이르기까지의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는 역정을 생각하니 또 감회가 새롭군요. 아마도 이러한 역정속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이 타는 목마름이고 치 떨리는 노여움이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이면에 인간의 내면을 그리고 인간이 이룩한 사회와 국가의 이면을 우리에게 이렇게 보여준 치밀함과 주도 면밀함을 생각을 한다면, 인류의 민주주의에 대한 긴 여정이 보여주는 이중주에 또한 신비로움까지도 느껴진다는 생각입니다.적과 친구의 이중성에 대한 존재적 성찰은 민주주의의 근간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사람들이 그리고 사회가 겪어야 하는 과정은 타는 목마름과 치떨리는 노여움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일 거란 생각도 드는군요.

로쟈 2007-12-22 01:43   좋아요 0 | URL
김지하의 시는 사실 엘뤼아르의 시 '자유'를 다시 쓴 것인데, 저는 두 시 간의 상호텍스트성과 함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갈등/긴장 관계를 묶어서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이 글을 쓰면서 가졌더랬습니다. 실상 기사에서는 그런 뜻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지만. 민주주의의 역설과 역정에 대한 생각도 나중에 같이 적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