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보'는 고은 시인의 연작시집 제목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자화상 시리즈의 이름이기도 하다. "희망과 괴로움, 꿈과 두려움 사이에 있는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담은"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가 출간됨으로써다. 첫 세 권이 나왔는데, 목표하는 '만인의 자화상'을 어디까지 담아내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신민영·김담·한윤형 (왼쪽부터)

경향신문(09. 04. 04) 메마른 시대 적시는 촉촉한 삶  

극심한 경쟁의 시대다. 경쟁에서 뒤쳐지면 바로 낭떠러지다. 나이 든 ‘꼰대’들은 자녀가 경쟁에서 뒤쳐질까 노심초사하며 ‘승자’가 되기를 강요하면서도 “요즘 것들은 당최 낭만이 없어”라거나 “젊은 애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이나 하고 사나”라고 한탄한다. 모순이다. 고등학생 아들·딸이 소설책을 들고 있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을라치면 “그 시간에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야지”라고 닥달을 하면서 생각은 무슨 생각이람.

그러나 낭떠러지에서도 풀과 나무는 자라는 법이다. 숨막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놓은 꼰대들이 보기엔 한낫 잡초처럼 보이는 ‘어린 것’들이 좌충우돌 꾸며온 대안적인 삶을 자서전으로 펴냈다. 물론 그들의 삶은 아직 미완이다. 하지만 자그마한 불씨에도 홀라당 타버릴 정도로 건조한 시대를 살면서도 나름의 ‘습기’를 간직해온 그들의 삶은 우리 사회의 또다른 자화상이다. 



신민영(31)은 자신이 그리는 사회를 <신호등 건너기 게임>으로 명명했다. 규칙은 간단하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 일등으로 빨리 건너는 게 아니라 길 건너는 사람 가운데 가장 늦은 사람과 나란히 건너거나 조금 빨리 건너기만 하면 보상(안전한 횡단)이 주어지는 게임이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 입학, 레게 머리의 국회의원 비서관, 사법시험 합격, 미용실 원장 등 범상치 않은 이력을 지닌 신민영. 그는 “어떻게 보면 나는 공교육의 승자이자 이상형이지만 공교육이란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스무 살이나 먹었는데,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모르겠더라”라며 방황담을 털어놓는다.

 

386세대에 속하는 여류 소설가 김담(43)은 자신의 삶을 <그늘 속을 걷다>로 요약했다. 그는 한국전쟁 때 상당기간 인민군에 점령됐다가 다시 대한민국 영토가 된 ‘수복지구’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경기 성남으로 이주, 활화산이 폭발하는 듯 숨가빴던 19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녔다. 가난했지만 풍요로운 강원도 산골에의 삶에 젖어 있던 그에게 도시 빈민으로서의 삶, 화염병과 구호가 난무하던 대학생으로서의 삶은 언제나 모래를 씹는 듯 부자연스러웠다. 그는 마침내 94년 낙향, 숲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가 쓴 소설 원고는 책상 한쪽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지만 언제가 됐든 <태백산맥>에 버금가는, 한국전쟁 전후를 다루는 대하소설을 쓰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복학생 한윤형(27)은 인터넷에서 거침없는 내용의 게시물(욕설이나 악플 포함)을 올리는 데 열을 올리는 ‘키보드 워리어’로 자신을 칭했지만 실은 아흐리만, 멜코르, 세리핌 등의 ID로 인터넷 정치 게시판을 종횡무진 해온 ‘논객’이다. 주요 공격대상은 조선일보였다. 고교생 시절 서울대와 조선일보가 공동주최한 논술대회에서 1등을 한 그를 찾아온 조선일보 기자에게 인터뷰 거부를 선언하는 그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투쟁기’를 <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로 기록했다. 그는 “스물일곱이 된 지금까지도 질풍노도다. 십여년간 인터넷 세상에서 신나게 놀았는데 갑자기 눈을 뜨고 여기저기 돌아보니 내 몸 하나 누일 곳이 없다”고 고백한다. 솔직하다. “원래 죽어야 하는 이유는 심오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면서 낙관을 피력한 그가 이십여년쯤 지난 뒤 자서전을 낸다면 어떤 제목이 될지 궁금하다.(김재중기자)  

09. 04.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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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이야기는 곧 나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7-12 14:04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텍스트) 2차분이 출간됐다. 이 시리즈의 필자로 일찌감치 낙점된 터여서 나도 비슷한 형식(분량)의 자서전을 조만간 쓰게 될지 모른다. 사실 시집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과거에 자전적인 단장을 책으로 여러 차례 묶은 적이 있지만(이 서재에도 그 흔적이 일부 옮겨져 있다) 정색하고 '자서전'을 쓰는 건 내키지 않을 뿐더러 흥미로운 일도 아니어서(나는 '흥미로운 삶'을 살지 않았다, 혹은 살고 있지 않다!) 주로 내가
  2.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8-13 08:52 
    도서출판 텍스트에서 펴내는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시리즈의 6차분이 출간됐다. 우리 시대 각 방면의 '20-30대가 쓴 자서전'이다. 오랜만에 이 시리즈에 주목한 기사가 뜨기에 옮겨놓는다.서울신문(11. 08. 13) 치열하게 살았는데 화려하진 않네요, 괜찮죠?요즘 출판계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88만원 세대’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 등으로 불리는 20~30대 젊은이들이다. 한때는 ‘신세대’ ‘N세대’ ‘X세대’ 등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장기하와 얼굴들'에 대해서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지난달 언젠가 이름을 듣고서 음악을 찾아 들었는데, 멜로디는 처음 듣는 게 아니었지만 적어도 '가사'는 처음 들었고 흥미로웠다. 내가 제일 처음 떠올린 건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들이었고(그의 영화 속에 나오는 노래들), 그 다음은 김지하였다(얼마전 그의 <오적>이 <자음과 모음>(2009년 봄호)에 재수록되었다). 그래서 '카우리스마키와 장기하' 혹은 '김지하와 장기하'란 페이퍼를 올려둘 수도 있었지만, 그럴 만한 시간이 없던 차에(대신에 어제 한 원고를 쓰면서 그의 가사를 일부 인용했다) 지난주 시사IN에서 장기하를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생각난 김에 관련기사들을 모아놓기로 한다.   

국제신문(09. 04. 04) [박무성의 한 뼘 더 보기] 루저(Loser)들을 위한 변명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이제는 아무렇지 않어/바퀴벌레 한마리쯤 쓱 지나가도/무거운 내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축축한 이불을 갠다…" 푸석푸석 새집 지은 머리에 잠이 덜 깬 듯 나른한 목소리, 비루한 인생의 찌질하기 짝이 없는 푸념 같은 노랫말.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 가사 일부다. 500장 팔리면 대만족이라던 음반이 한 달 만에 2만 장 넘게 팔렸다. 20대의 열광은 물론 30, 40대 팬클럽 가입도 빠르게 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지난달 12일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상'까지 받았다. 가히 '장기하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싸구려 커피'를 놓고 루저(loser·패자)문화 담론이 한창이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공포와 불안의 징후를 읽는 사람도 있고, 복고와 퇴행도 모자라 '막장'으로 치닫는 요즘 문화 풍토에서 장기하류의 등장은 당연한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진단과 정의가 어떠하든 루저 정서가 문화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문학 분야에선 '백수소설'이라는 장르까지 탄생했다. 제2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인 한재호의 '부코스키가 간다'(창비)가 단행본으로 나왔다. 청년백수 100만 명 시대의 우울한 풍경 속에 지극히 현실적인 세태소설로 간주된다. 소설 속 주인공은 대학 졸업 3년차의 백수. 여느 구직자처럼 인터넷뉴스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취업 사이트를 뒤지고, 간혹 원서를 내고 면접도 보는 일상을 반복하던 주인공이 어느 날 비만 오면 가게 문을 닫고 어디론가 외출하는 '부코스키'라는 남자의 기이한 행적을 미행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은 결코 치열하지 않다. 작가 역시 딱히 클라이맥스라고 할 만한 부분을 구성하지도 않았고 소설의 흐름이 빠르지도 않다. 해설을 쓴 평론가 조연정은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성장통소설'이라고 칭한다. '만성적 상실감과 박탈감 속에서 세계와 화해하지 못하고 주변만을 맴돌 수밖에 없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이전과 같은 모범적인 성장의 서사(narrative)는 더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진단이다

사실 루저문화의 뿌리는 깊다. 1980년대 최고의 인기만화였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은 프로야구판에서 낙오한 선수들의 초현실적 부활을 그렸다. 이 만화가 TV 드라마 '2009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리메이크된다는 것도 요즘 문화적 시류와 무관하지 않다. 박중훈 안성기가 열연했던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 스타'나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도 루저문화의 낭만적인 변주다. 루저문화를 이해하는 분석적 토대는 2007년 발행된 우석훈·박권일의 '88만 원 세대'가 제공했다.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이라는 부제가 말하듯 세대 간 갈등과 착취 문제를 사회·경제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현대의 고전으로 꼽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사회구도로'승자와 패자'의 이분법적 개념을 제시한 사람은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다. 그는 기존의 '보수와 진보'의 개념으로는 세계화 시대를 읽어낼 수 없다고 했다. 본디 이분법은 극단적 단순화와 양자대결구도라는 불가피한 한계를 안고 있지만 '승자와 패자'만큼 세상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개념도 없다. 이렇게 볼 때 루저문화는 '20 대 80의 법칙'에서 80%를 차지하는 패자들의 향유물이 되는 셈이다.

루저문화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존재한다. 비주류나 아웃사이더, 낙오자가 존재하는 한. 한국 사회에 루저문화가 있다 없다, 서구의 것과 같다 다르다, 장기하가 서울대 출신이어서 '루저'가 될 수 있다 없다 식의 논란은 중요하지도 않거니와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 문화는 삶의 표현양식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건 정체성과 건강성이다. 루저문화는 기성문화가 갖는 엘리트주의와 권위에 도전함으로써 문화적 다양성을 담보한다. 그리고 그 다양성이 변화를 모색하고 추동한다. 머리 속에서 당면한 문제를 거세하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적 토대가 어딘지 냉정하게 인식해야 루저문화에서 연상되는 사회적 일탈이나 허무의 그림자를 지울 수 있다.(문화부장)   

사IN(09. 03. 27) “싸구려 커피 마셔도 별일 없이 산다”

‘500장만 팔리면 많이 팔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음반이 발매한 지 한 달 만에 2만 장 넘게 팔려버렸다.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을 앞두고 벌어진 온라인 투표에서는 인기 절정의 아이돌 태양(그룹 ‘빅뱅’의 멤버)을 제쳤다. 서태지·심수봉과 같은 무대에도 섰다.

‘인디계의 서태지’라 불리는 장기하(27).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리더인 그가 거둔 “기이한 성공” “기이한 팬덤”(음악 평론가 차우진)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애초에 출발은 여느 인디밴드와 같았다. ‘알바’ 뛰어 먹고사는 틈틈이 홍대앞 클럽에 서고, 데모 테이프 만들고, 녹음하고. 그러다 소문 좀 나고. 지난해 9월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한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급기야 ‘장교주’라는 별칭까지 얻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20대 누리꾼들의 엽기 또는 키치 취향이 발굴한 ‘4차원 스타’에 지나지 않았다. 진지한 노래 가사와 따로 노는 ‘촉수춤’ ‘문방구 선글라스’를 낀 채 막춤에 가까운 동작을 선보이면서도 결코 웃는 법이 없는 코러스 걸(미미 시스터즈) 등 무대에서 보인 우습고도 독특한 퍼포먼스가 그의 인기 급상승 비결이었다.

‘장기하 전도사’ 자처하는 중년 남성

그런데 해가 바뀌면서 장기하에 대한 관심은 모든 세대로 확장되는 추세다. ‘장기하 현상’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특히 흥미로운 것이 30~40대의 합류다. 장기하 음반을 낸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29)는 “YES24 등에서 판매된 음반 통계를 보면 20대가 가장 많이 구입했으나 팬클럽 가입률로 따지면 30대가 꾸준히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최근 방송국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한눈에 봐도 ‘사회부 기자스러워’ 보이는 보도국 ‘아저씨’들이 방송사 복도에 나타난 장기하를 둘러싸고 “저, 장기하씨 팬이에요”를 연발하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 지난 3월11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열린 장기하와 얼굴들 팬미팅에 참석한 45세 남성은 그날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내 인생에서 (참가한 팬 사인회는) 장사익씨 팬 사인회에 이어 두 번째다. 장사익씨 CD는 100여 장을 사서 지인에게 선물했는데 장기하씨 음반은 200장을 넘기겠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늙은 사람까지 ‘장기하 전도사’로 만드는 내공”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일단 30~40대도 ‘알아먹을 만한’ 복고적 음악풍의 영향이 크다. 1970~1980년대를 풍미한 신중현·산울림·송골매 등의 영향을 받았음을 장기하는 굳이 감추려 들지 않는다. 대학원생 강혜원씨(26) 말마따나 386세대가 ‘트렌디한 척’하느라 장기하를 소비할 수도 있다. 요즘 386 ‘먹물’들의 술자리에서 장기하는 <워낭소리>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안줏거리가 됐다. 

그러나 이들이 장기하에 끌린 데는 무엇보다 노랫말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 중론이다. 자유기고가 유선주씨는 “‘싸구려 커피’의 가사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 기억에 선명하다”라고 말했다. 누추한 자취방에 누워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라고 노래하는 비루한 청춘의 독백이 가슴에 와 박혔다는 것이다. 실제로 장기하는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20대 루저(loser·패배자)들의 정서를 정제된 우리말로 표현해낼 줄 아는 뮤지션’이라는 평을 듣는다(지난해 11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장기하는 “노래 가사를 만든 배경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다”라면서도 일각의 ‘과잉 해석’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는 드문 능력이다. ‘청춘의 종언’이라는 주제로 열린 계간 <문학동네> 2008년 겨울호 좌담에서 김홍중씨(대구대 사회학과 전임강사)는 20대를 ‘언어를 상실한 세대’로 규정했다. 블로그나 사적 담화를 통해 ‘토킹’ 방식으로 말할 줄은 알아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스피킹’은 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20대라는 얘기다. 이 자리에 참석한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씨는, 유럽 20대와 달리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한국·일본 20대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20대가 이너서클에서만 소통되는 ‘옹알이’와 ‘푸념’으로 일관하는 동안 이들에 대한 몰이해는 더 깊어갔다. 자유기고가 김현진씨 말마따나 모두에게 욕을 얻어먹는 세대가 이들 20대다. 이 와중에 20대는 문화 영역에서도 잊혀갔다. 김홍중 교수는 “과거에는 20대의 감수성이 문화를 이끌어간다는 전위의 느낌이 강했던 반면 요즘은 그런 게 약해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소비층으로 매력도 사라졌다. 소수 마니아만이 열광하던 <메리대구 공방전>(2007) <얼렁뚱땅 흥신소>(2007) 이후, 더 직접적으로는 청춘 배우 송혜교·현빈을 내세운 <그들이 사는 세상>(2008)의 참담한 실패 이후 20대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는 더 이상 전파를 타지 않는다. 20대가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드라마를 만들 유인이 떨어져 그렇다는 분석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화평론가 이영미씨 지적대로, 작심하고 기획하면 인터넷에 빠져 있는 10대라도 얼마든지 다시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꽃보다 남자>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장기하라는 존재는 그래서 더 돋보인다. 연극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를 쓰고 연출한 김재엽씨(36 ·세종대 교수)는 “문화라는 건 결국 솔직함이다.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다른 이들도 공감하는 순간, 그게 세대 의식이 된다”라고 말했다. 물론 문단이나 영화·인디 음악계에 자기 목소리를 내온 20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오른쪽 상자 기사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06 참조). 그렇지만 장기하는 이를 대중적으로, 다른 세대와 소통케 하는 데 그 누구보다 성공했다.

소통 방식뿐 아니라 콘텐츠 또한 주목할 만하다. 김현진씨는 <문학동네> 좌담에서 지금 20대를 관통하는 코드는 딱 하나 ‘겁에 질려 있다’는 점이라고 지목했다. 대한민국의 1%를 뺀 나머지 99% 20대’는 가방 끈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좌파·우파에 상관없이 ‘이러다 영원히 낙오하는 것은 아닐까’ 겁에 질려 있다. 그런가 하면 상위 1%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는 그들대로 ‘나보다 잘난 놈이 있겠지’ 하는 두려움에 떤다.

조한혜정 교수(연세대·사회학)는 “겁에 질려 있으면 문화적 상상력을 꽃 피울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겁에 질린 문화는 양극단으로 치닫는다. 어머니 자궁으로 퇴행하거나,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거나. <엄마를 부탁해>(신경숙)로 상징되는 최근의 ‘어머니 열풍’이 전자를 대표한다면 ‘막장 드라마’는 후자 경향을 대표한다. <꽃보다 남자> <아내의 유혹>은 리얼리티를 완벽하게 제거한 채 욕망의 판타지를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장기하는 달랐다. 현실을 얘기하되 겁먹지 않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냉난방 잘되는 사무실에서만 일하려 한다”라고 대통령이 질책하든 말든 그는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방바닥에 누워 ‘고여 있는 물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는 무기력한 상태임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싸구려 커피’). 그래도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단다. ‘니가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겠지만, ‘사실이 아니길 엄청 바랄 거’겠지만(‘별일 없이 산다’). 관조와 풍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도발적으로 읽히는 정치적 알레고리도 구사한다. 만화 평론가 김낙호씨가 ‘우리 시대의 송가’로 꼽은 ‘아무것도 없잖어’ 같은 곡이 그렇다. ‘선지자가 나타나서 지팡이를 들어//풀이 가득 덮인 기름진 땅이 나온다길래/죽을똥 살똥 왔는데/여긴 아무것도 없잖어//푸석한 모래밖에는 없잖어 (중략) 이건 뭐 완전히 속았잖어/되돌아갈 수도 없잖어.’

한쪽에서는 장기하의 담담함이 ‘관념적 루저’라는 그의 실체에서 비롯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루저의 정서를 노래하지만 장기하가 가난한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변되는 진짜 루저는 아니라는 것이다. <88만원 세대> 공저자인 박권일씨는 그런 의미에서 “서울대생이라는 게 장기하를 어정쩡한 존재로 만들었다”라고 말한다. 차라리 2류 대학에 다니는 스테레오 타입 대학생이 ‘싸구려 커피’를 불렀다면 더 강력한 대표성을 획득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블로거 ‘캐즘’은 “루저의 감수성을 소비할 수는 있지만 실제 루저가 되기는 싫다”는 욕망 내지 탈락에 대한 공포를 장기하 현상에서 읽어낸다.

주류 판갈이는 쉽지 않을 듯
장기하가 결코 주류가 될 수는 없으리라는 전망이, 장기하 현상이 갖는 파괴력에 대한 가치판단을 망설이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주류 문화가 장기하를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공중파에 진출한 인디밴드가 생방송 중 화면에 침을 뱉는 따위 ‘사고’를 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야성을 잃고 주류 질서에 동화하면 동화하는 대로 생명력이 끝나는 것이 장기하가 처한 딜레마이다. “주류에 올라서지 못하는 한 ‘판’을 바꿀 힘이 생기지는 않는다. 서태지는 의식적으로 주류를 선택해 판갈이를 한 경우지만, 장기하는 다르다. 정치사회적 격변으로 한국 사회에 큰 동요가 생긴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장기하의 힘이 오래가기는 어렵지 않겠나.” 이영미씨는 말한다.

그럼에도 장기하에 쏠린 관심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흐름을 읽게 한다. 박권일씨 지적대로 ‘문화 권력을 지닌 386’이 장기하 현상을 증폭시켰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진짜 생활에 찌들어 사는 애들은 소녀시대 ‘Gee’를 듣지 장기하를 듣지는 않는다”라고 대학원생 강혜원씨는 말했다. 그러나 장기하가 노래하는 루저의 감성을 특정 세대·계층만이 누린다고 보기도 어렵다. 30대인 유선주씨는 “장기하 노래를 듣다 보면 ‘딱 내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괴리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한때 루저 정서는 20대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청년 실업이 만성화하면서 20대는 반항·도발·상상력·순수·열정 따위 과거 청춘의 특권을 반납하는 대신 무기력함·희망 없음·만성 불안 따위 루저의 정서를 내면화했다. 문제는 이것이 더 이상 20대만의 정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달의 바다>를 쓴 소설가 정한아씨(27)는 ‘희망이 사라진 현재 루저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라며, ‘20대=루저 내지 백수’라는 등식을 들이대는 것이야말로 폭력이라고 말했다.

전세대·전계층으로 확산된 박탈감

청년실업을 넘어 바야흐로 전방위적인 대량실업·만성 실업의 시대가 열린 판이다. 문학평론가 정준영씨는 격월간지 <플랫폼> 1~2월호에 실린 글에서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고 진단했다. 그나마 10년 전 외환 위기 때는 ‘이 고비만 넘기면 나아질 날이 오겠지’라는 낙관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 위기가 촉발한 충격과 공포는 이 알량한 자위의 행위조차 한순간 헛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정씨의 말마따나, 반토막이 나버린 펀드 잔고는 우리가 믿었던 밧줄이 그저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작가는 장기하를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히어로’라고 부른다. 현실을 직시하되 겁먹지 않고 담담한 그의 노래가, 아무런 희망도 안전망도 없이 ‘완벽히 무장해제된 채’ 위기에 내던져진 우리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문득, 위로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장기하가 20대를 대변하는 ‘세대적 아이콘’인 동시에 위기의 2009년을 되비추는 ‘시대적 아이콘’인 이유가 여기 있다.   

시사IN(09. 03. 30) “엄혹한 세상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 패배자가 아닐까”  

‘장기하 현상’은 문화비평가와 생산자 모두에게 흥미롭다. 음악 평론가 김작가, 자유 기고가 유선주, 20대 소설가 김사과가 좌담을 했다(오른쪽). 20~30대를 아우르는 문화꾼이 모여 장기하가 촉발한 우리 세대의 화두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사회:20대 문제를 사회·경제적으로 다룬 ‘88만원 세대’ 담론이 등장한 지 2년 가까이 되었다. 지금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20대 문화를 설명하는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먼저 각 영역에서 20대와 관련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야기해보자.

유선주(선주):지난해부터 20대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사라졌다. 광고가 중요한 TV 현실로 보면 지금 20대, 즉 88만원 세대의 구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20대를 다룬 작품 중에도 핵심을 짚은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김작가(작가):음악에서도 10대 후반~20대가 로열 소비층을 형성하던 흐름이 사라진 건 세계적 추세다. 1980년대 LA 메탈이나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처럼 동세대를 관통하는 음악도 없다. 장르의 진정성을 담은 음악은 영국·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인디 쪽에 머물고 있다. 예전에는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에 누가 나왔다 하면 다음 날 그 일이 화제로 떠올랐다. 지금은 웹진도 많고 개인적으로 음악을 다운받을 수 있다. 자기가 음악을 선별할 수 있다. 음악과 소비자 사이의 중간 단계가 사라져 그런 대세가 기운 게 아닐까 싶다.

김사과(사과):소설을 쓰는 20대치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 음악이나 영화는 자기가 말하고 싶어서 만드는 게 많은 반면, 글은 백일장 등에서 자기를 평가하는 ‘선생님’에게 맞추는 경향이 짙다. 소설 써오라고 과제를 내면 100개 중 99개가 할머니를 소재로 삶거나 치매를 다루는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삶은 평범한 20대처럼 산다. 삶과 문학이 떨어져 있다.

사회:사과씨의 작품을 읽는 주 연령층은 누구인가?

사과
:친구들한테 읽히는 것이 좋은데, 막상 가장 큰 독자층은 문학잡지 편집위원이다.(웃음) 아이러니다. 그분들이 좋다고 하면 속으로 좋긴 하지만, 사실 ‘뭐가 좋을까’ 하는 느낌이다.

선주:‘내 딸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궁금증 때문 아닐까?(웃음)

유머, 노랫말 그리고 음악의 삼위일체

사회:장기하 이야기를 해보자. 장기하 신드롬을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어떤 까닭에서일까?

선주:장기하는 신기하다. 음악적으로 1970, 1980년대 음악과 맞닿은 느낌이다. 송골매+김창완 창법이다. 386이 친근함을 느낀다면 자기가 옛날에 들었던 것과 비슷하고, 또 재미있어서다. 1집 앨범 <별일 없이 산다>를 들어보면 출구가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이런 정서가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게 아닐까.

사과
:장기하 현상에 낭만적인 루저 정서가 있는 건 맞다. 그런데 장기하는 백수 생활을 해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비난받는 면도 있다. 경험주의에 매몰된 비난이라는 생각이다. 요즘 신인 가수들 음반을 들어보니 굉장히 좋더라. 몽구스 같은 가수의 노래를 들어보면 루저 정서를 넘어서 아예 현실을 망각하고 우주로 갔다는 생각이 든다. 해탈한 느낌이랄까. 20대 정서가 그런 인디 정서인 것 같다. 장기하가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작가:실제 인디 뮤지션을 만나보면 가난한 사람의 어두움이나 우울함 같은 게 없다. 삶의 태도가 일반 회사원보다 더 긍정적이고 유쾌하다. 현실적 문제를 머릿속에서 거세해버렸기 때문이다. 기존 대중음악이 사랑 타령만 하면서 현실에서 도피했다면, 인디 음악은 자기 내면으로 도피했다고 할까. 그런데 장기하에게는 ‘서사’의 힘이 있다. 2000년 이후 이야기가 있는 음악이 실종되었는데, 장기하노래에는 상징과 은유를 포함한 기승전결이 있다. 그런 현실적 서사의 구체성 덕에 그의 노래가 힘을 얻는다. 그래서 <별일 없이 산다>도 5만 장까지는 팔릴 것 같다.  

선주:그런데 20대가 장기하 음반을 얼마나 살지 궁금하다. 

작가:장기하를 4 대 4 대 2로 나누면 유머와 가사가 각각 4, 그리고 나머지 2가 음악의 힘이다. 8(유머+가사)만으로 장기하 신드롬이 형성되진 않았을 것이다. 음악이 후졌다면 그저 엽기 가수로 끝나고 말지, 이렇게까지 회자되지 못했을 것이다.

선주:‘싸구려 커피’라는 노래 제목이 너무 무시무시했다. 스타벅스처럼 비싼 커피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싸구려 커피가 있는 줄은 몰랐다. 상상력이 충격적이다. 싸구려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는, 구매력이 떨어져 희망을 상실한 젊은이가 떠올라서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사회
:장기하는 과연 1990년대 서태지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

작가:스타덤을 받아들이는 데 차이가 있다. 서태지는 스스로 영웅이 되고자 해서 신비주의로 갔다. 장기하는 주체로서 자기를 놓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방송에 출연하지만, 라이브클럽 공연도 계속하고, 자기 토대가 어디인지 늘 생각한다. 시대의 아이콘이 되려면 버려야 할 것이 있는데, 장기하는 자기 식대로 가고 있다. 서태지가 X세대 히어로라면 장기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히어로다.

선주
:장기하는 민감한 문제도 담담하게 칠 줄 아는 세련됨이 있다. 이야기하는 방식이 노골적이지 않다. 이를테면 ‘싸구려 커피’에 대한 답이 ‘별일 없이 산다’가 아닐까? 영리하고 세련돼서 중요한 가수가 될 것 같다. 

20대가 무기력한 까닭

사회:20대를 이해하는 데 장기하가 도움이 될까?

선주:오히려 20대보다 나와 연관되더라. 어느 세대에 갖다대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있다. 꼭 가난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루저 정서에 한 번쯤 기대보고 살았던,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노래가 이제야 나왔다.

사과
:어쩌면 지금 평범한 사람들이 루저 정서를 갖고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 모든 사람이 지금 패배하고 있거나 뭔가 뺏기고 있다는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작가:그런데 정작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음악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빅뱅이나 소녀시대의 노래를 듣는다. 어차피 자기 인생이 시궁창인데 음악까지도 그런 걸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난 지금 20대가 과거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20대가 무한경쟁에 내몰린다고 하지만 1990년대 대학생이 취업 걱정 없이 살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때도 분명 루저 정서가 존재했고, 누군가 루저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강요됐다. 어쩌면 20대라면 누구나 겪는 성장통일 수도 있다. 왜 지금 20대를 유독 대상화하려는지 모르겠다.

사회:20대가 사회에서 동네북이 되어 있다.

선주:난 1990년대 중반에 20대를 보냈는데, 그것이 너무 좋았다. 우리는 선대에 대한 부채감이 없고, 부모가 돈을 벌어놓았기 때문에 나만 죽지 않고 밥 먹으면 된다는 생각이 있다. 음악이든 영화든, 당시에는 우리 세대가 소비의 중심에 섰는데 지금 20대는 소비자로서 매력이 없다. 다른 세대가 지금 20대를 무기력하다고 보는 건 그런 부분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사과:(20대 시절이 좋았다는 말이) 놀랍다. 우리는 2000년대가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한 시대는 1968년 프랑스 파리다. 1990년대에 어린 시절을 풍족하게 산 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아마 지금 20대가 욕먹는 이유 중 하나는 20대의 목소리가 작아서일 것이다. 20대를 욕하는 다른 세대의 목소리가 워낙 크다 보니 20대는 거기에 반박할 의지가 없다. 또 지금 뭔가 사회가 나빠지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데 그 원인을 찾지 못하다 보니 20대를 희생양으로 삼은 건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20대 말고 또 다른 희생양을 찾지 않을까. 이를테면 외국인 노동자들 말이다. 

작가:1990년대에 비해 지금 20대는 소비해야할 대상이 너무나 많다. 통신비나 학비가 얼마나 올랐나. 그걸 벌기 위해 알바를 뛰어야 하고,  정보와 문화를 소비할 시간은 없다. 그러다 보니 문화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토대가 사라진다.

사과:난 요즘 불치병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보면 집중이 안 된다. 주인공이 병원 치료 비용 따위를 어떻게 대나 하는 생각 때문에. 간혹 그냥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20대 문화꾼이 나와야


사회:아마도 루저 정서를 즐긴 첫 세대라면 외환 위기 때 20대를 보낸 이들 아닐까. 그때는 국민 공통의 환란을 겪어서인지 지금보다 부담감이 덜했던 것 같다. 개별 생존 게임으로 치닫는 지금은 루저 정서를 즐기는 게 어렵지 않을까?  

사과:IMF 환란 때보다 지금이 심각하다는데, 그때는 금모으기도 열심히 벌였고, 위기가 명확하게 이미지로 나타났다. 지금은 애매하다. 위기인지도 잘 모르겠고…. 이런 모호한 상황이 이 시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선주
:우리 때는 알바를 해서 돈을 벌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글 쓰는 노동자들의 원고료만 해도 10년 전과 비슷하지 않나. 그러니 뭔가 제대로 된 구매 행위를 할 수 없고,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살기 어려워진다.

사회:결국 20대가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 아래 다른 세대도 루저 정서를 공유하게 된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망을 부탁한다.

작가:20대가 활발히 활동하는 영역은 음악밖에 없는 것 같다. 분위기가 굉장히 좋다. 아이돌 음악도 좋아졌고 괜찮은 프로덕션도 늘어나고, 인디도 이렇게 분위기가 좋았던 게 10년 만에 처음이다. 불황 속에서 모두 어렵다 보니 오히려  독기가 서려 음악적으로 굉장히 진지하다. 영국 록 그룹 오아시스가 “맨체스터 노동자 자녀 중 고교 중퇴자가 인간답게 살 방법은 록스타가 되는 길밖에 없다”라고 했는데, 곰곰이 되새겨보면 맞는 말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음악 말고는 나아갈 방향이 없기 때문에 상황이 호전되는 면이 있다.   



사과
:(20대 문학은) 팔리지 않는다. 요즘에는 1990년대 식으로 이혼이나 불륜을 다룬 작품은 답답해서 거의 읽지 않는다. 지금 한국에서 20대 작가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반면 일본의 경우 내 나이 또래 작가들이 자기 문제를 다룬 작품을 써서 몇 백만 부씩 판다. 가장 부러운 건 한국에서라면 아무도 사주지 않을 황당무계한 작품이 팔리는 것이다. 우리도 젊은 작가가 이상하고 독특한 작품을 쓰는 걸 막지 않으면 뭔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친구끼리 모여서 20대 작가의 글을 싣는 잡지를 하나 내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다.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앞으로는 우리도 일본처럼 20대 작가가 계급적 문제를 다루는 시대가 올 것 같다. 에세이든, 르포든.

선주:그런 작가가 나오면 좋겠다. 계급이든 조직이든 힘의 관계나 욕망에 대해 파헤치는 게 중요하다. 요즘 칙릿 소설에는 브랜드 이름이 한 페이지에만도 열 가지 이상씩 나오는데, 실제 독자의 삶과는 다르다. 작품에서 보는 브랜드와 실제 내가 입고 먹고 쓰는 게 다르다. 내가 쓰는 게 우아하지 못하다는 인식도 있다. 이런 간극을 좁히고, 계급 욕망을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 나왔으면 싶다. 이를테면 쇼핑을 무척 하고 싶은데 실제로 하지 못하는 젊은이의 욕망을 다룬 이야기 같은.

09. 04. 05.  

P.S. 장기하와 관련한 가장 유익한 인터뷰는 지난 2월에 방영된 '시사매거진2580'이다(http://www.youtube.com/watch?v=6zXGmFatgaM). 패자(루저)의 정서를 표현했다는 의견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장기하는 이렇게 답한다. "아무래도 승자의 느낌은 아니죠, 노래가. 그런데 그렇다고 패자도 아닌 것 같아요.뭐랄까, 그것보다는 승패가 결정되지 않은 사람의 불안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한 힘 없는 그런..." 요컨대, 그의 노래가 '승패가 결정되지 않은 사람의 불안과 허무'를 표현/대변하고 있다는 것. 그는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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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까까의 생각
    from krucef's me2DAY 2009-04-06 12:41 
    " 승패가 결정되지 않은 사람의 불안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한 힘 없는 그런 " 아하.
 
 
마늘빵 2009-04-05 13:05   좋아요 0 | URL
로쟈님 연결해주신 시사매거진에도 미미시스터즈의 정체는 안밝혀지는군요. 크크. ^^

로쟈 2009-04-06 23:45   좋아요 0 | URL
그게 밑천인데요...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간단히 꼽아놓도록 한다. 어느새 4월이고, 여전히 '잔인한 달'이긴 하나 작년 이맘때를 생각하면 최악은 아니다. <실낙원>에 나오는 타락천사 벨리알의 말을 빌면, 비록 지옥에 나가떨어진 처지라 하더라도 "우리의 현재 운수는 만일 우리 스스로가 더 화를 자초하지만 않는다면, 행복이 보기엔 불행이지만, 최악의 불행은 아니니."(무엇이 최악일까?) 아파트 단지 내 목련들이 앞다퉈 흐드러진 자태를 자랑하다가 하나둘 지고 있다. 꽃핀 날들이 길지 않다, 길지 않을 것이다...  

1. 문학 

지난달부터인가 한국간행물위원회 웹진에서는 이달의 읽을 만한 책 추천자를 따로 밝히고 있지 않다. 분야별 추천자가 정해져 있긴 하지만 나도 따로 적지 않겠다. 문학 분야에 선정된 책은 이승우의 <오래된 일기>(창비, 2009)이다. 추천의 변은 작가의 희소성에 대해서 먼저 언급한다. "한국문학에서 이승우의 위치는 매우 귀하다. 그의 작품 세계의 한 축엔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이 있고 또 다른 축엔 인간이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존재론적인 질문이 있다. 그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관념적인 주제를 지적인 문체로 일관되게 작품 속에 승화시켜 왔다. 그의 데뷔작인 “에리직톤의 초상”이 한국 문학에 강렬하게 풍긴 인상을 아직도 어제 겪은 일처럼 간직하고 있는 독자들도 꽤 많을 것이다." <오래된 일기>는 그런 작가의 중단편 8편을 싣고 있다. 대표작 <생의 이면>(문이당)과 소설작법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마음산책, 2006)도 이 참에 같이 손에 들어도 좋겠다. 목련나무 그늘 아래서.  

2. 역사 

역사 분야의 책은 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수전 캠벨 바톨레티의 <히틀러의 아이들>(지식의풍경, 2008)이다. "1932년 10월 히틀러가 청소년단(유겐트) 단원들에게 “젊은이가 위대한 이상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나라의 국민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라고 물었을 때만 해도 그 말의 의미를 아무도 몰랐다. <히틀러의 아이들>은 그 후 독일의 청소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추적하는 책"이라고 소개된다. 사진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묵직한 물음을 던지는 책이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이왕에 히틀러를 손에 들었다면 리처드 오버리의 <독재자들>(교양인, 2008)과 라파엘 젤리히만의,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생각의나무, 2008)도 같이 고려해볼 만한 책들이다(책들은 다 구해놓았지만 나는 아직 읽을 짬을 못내고 있다).    

3. 철학 

철학 분야의 책은 신정근의 <공자씨이 유쾌한 논어>(사계절, 2009)이다. <논어>라면 이미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은 번역서와 주해서들이 나와 있는 상태이지만, "이번에 출간된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는 여러 가지 점에서 그 수많은 책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먼저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해설에 이어 발랄하고 경쾌한 일상어로 원문을 번역, 해석했다." 게다가 저자가 이전에 낸 공자/논어 관련서를 집대성하고 있다고. <논어>에 대해서는 예전에 리쩌허우의 <논어 금독>(북로드, 2006) 등을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아둔 적이 있는데, 그간에도 여러 권이 더 나왔다. 도올의 <논어 한글 역주>(통나무, 2009) 전3권도 도서관에서 대출해봄 직한 책이다.  

 

4. 정치 

정치분야의 책으로 추천된 것은 미국의 국제전략연구소(CSIS)에서 펴낸 정책보고서 <스마트파워>(삼인, 2009).  "이 책은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있는 이유를 분석하고 미국의 새로운 외교 전략으로 ‘스마트 파워’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즉 미국이 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부시처럼 군사력 등 하드 파워를 일방적으로 휘두르지 말고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문화, 가치 등 소프트 파워로 세계를 설득해야 하는데 이 같은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통합하고 조율하여 미국의 이익과 세계의 이익을 일치하도록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스마트 파워라는 것이다." 요컨대, '스마트파워 = 하드파워 + 소프트파워'다. 강온 양면책이라고 할까. 조지프 나이의 <소프트 파워>(세종연구원, 2004)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미국의 마지막 기회>(삼인, 2009)도 같은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책이다. 필요할 때 읽어봄 직하다.   

5. 경제/경영  

경제/경영 분야의 책은 역시나 생소한데, 바한 잔지지언의 <버핏톨로지의 비밀>(비즈니스맵, 2009)이다. 워렌 버핏이 누구인지는 알지만 투자할 돈이 없는 처지라 나에겐 이 '오마하의 현인'의 값비싼 충고가 별 의미가 없다. 그러니 순수하게 '전기'로 읽을 수밖에 없는데, 이 책은 "버핏의 좋은 점뿐 아니라 문제가 될 수 있는 점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한다. 물론 그럼에도 "이 책 역시 거의 대부분이 그의 성공 비결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그의 성공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즐거움을 준다. 워싱턴포스트 사 주식을 사들여 20여년 만에 11,609%의 수익을 올린 그의 천재성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졌기에 큰돈을 벌게 해줄 투자대상을 족집게처럼 집어낼 수 있는지 경탄을 하게 된다." 글쎄, 그 '경탄'도 내 몫은 아닌 듯싶다. 버핏의 투자전략에 관한 책으로는 티머시 빅의 <워렌 버핏의 가치투자 전략>(비즈니스북스, 2005)이 많이 읽히는 듯하다. 이민주의 <워렌 버핏>(살림, 2009)은 가장 간략한 소개이다. 

 

6. 사회 

사회분야의 책은 요하임 바우어의 <학교를 칭찬하라>(궁리, 2009)이다. 책은 생소하지만, 저자의 이름은 낯설지 않아서 찾아보니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에코리브르, 2007) 등 이미 몇 권이 소개된 저자다. 책은 독일의 스테디셀러라고 하는데,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교육당사자들이 힘을 모아야 함을 강조한다. 특히 뇌 연구에 주력해 온 신경생물학자요 정신신경과 의사인 저자는 인간의 학습이 “거울뉴런"이라는 공명현상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독창적 가설과 함께 학생-교사-학부모의 공조적 관계 형성이 학교교육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임을 역설한다." 인상적인 건 분량이 185쪽밖에 되지 않는 것. 원저가 150쪽 안팎이지 않을까 싶다. 두어 시간이면 읽을 수 있을 책이다.   

7. 과학 

과햑분야의 책은 <세계의 과학자 12인, 과학과 세상을 말하다>(지호, 2009). 무슨 책인가는 이미 제목이 다 말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진화하는 진화론’의 저자 스티브 존스, 인간의 뇌와 의식을 연구하는 수전 그린필드, 자신의 팔에 실리콘 칩 송수신기를 이식한 인공두뇌학자 케빈 워릭, 인류를 궁지로 몰지도 모르는 바이러스를 사랑하는 도로시 크로포드, 암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마이크 스크래튼, 현대 과학의 위기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수학자 노먼 레빗 등 12명의 과학자들과 직접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다." 내가 아는 이름이 스티브 존스와 케빈 워릭밖에 없군...  

8. 예술 

예술분야의 책은 국립민속박물관이 펴낸 <엽서 속의 기생 읽기>(민속원, 2009)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이번에 내놓은 <엽서 속의 기생읽기>는 그런 맥락에서 하나의 주제, ‘기생’이라는 대상으로 묶을 수 있는 그림엽서들을 모아 제작한 중요하고도 재미있는 책이다. 총 265점의 자료를 수록해 놓은 이 책은 각 그림엽서의 제목과 그림의 설명, 추측이 가능한 경우 연도 등이 밝혀져 있다. 그리고 단락별로는 필요한 역사적 지식과 문화, 예술적 배경의 장을 함께 싣고 있어 다각도로 당대를 이해할 수 있게 배려했다." 기생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책은 기와무라 미나토의 <말하는 꽃 기생>(소담출판사, 2002). 사진집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아카이브북스, 2005)도 요긴한 자료가 될 수 있겠다.  

 

9. 교양 

교양분야의 책은 잉겔로레 에버펠트의 <유혹의 역사>(미래의창, 2009).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책인데, "남자와 여자에 관한 적나라한 보고서다. 아마도 저자가 남자였다면 상당히 논란이 됐을 만큼 여자의 ‘예쁘게 보이고 싶어 하는 본능’을 확 까발리고 있다. 독일의 성의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여자들의 세계를 ‘예쁘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경쟁의 세계로 파악한다. 그 경쟁은 너무나도 치열하다. 진짜건 가짜건 예쁘기만 하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본능이 그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히틀러의 아이들>과 함께 좀 읽어둔 책이어서 반갑다. '유혹'을 주제로 한 책들을 좀 찾아봤지만, 결과는 좀 실망스럽다. 이명옥의 그림책 <팜므 파탈>(다빈치, 2003; 시공아트, 2008) 정도가 눈길을 끌 뿐. 키에르케고르의 <유혹자의 일기>(한길사, 2001)로나 손길이 가는 것이 나의 한계다(오래전에 러시아어본까지 구해놓고 아직 안 읽고 있다).   

10. 시차적 관점 

아동분야 대신에 주관적인 관심사에 따라 정하는 마지막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은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이다. 그의 단독저작으론 오랜만이어서 독서욕을 자극한다. 페이퍼백 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기에 같이 읽어도 좋겠고,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을 새롭게 다시 손에 들어도 좋겠다. 지젝과 가라타니의 조우 장면을 보다 잘 관람하기 위해서. 물론 분량상으론 두어 달은 읽어야겠지만...

09. 04. 04.  

P.S. 이달의 고전은 지난 만우절에 탄생 200주년을 맞은 니콜라이 고골(1809-1852) 읽기이다. 작품집을 일단 골랐는데, <오월의 밤>(생각의나무, 2007)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어서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민음사, 2002), 그리고 희곡 <검찰관>(민음사, 2005)이 필독서. 여유가 있다면, <친구들과의 서신 교환선>(나남출판, 2007)까지도 서가에 꽂아두면 금상첨화. 흠, 고골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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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4-05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엇의 '황무지'에 대한 언급 없이 새로운 4월을 맞이하긴 참 힘들군요^^ 작년 4월 로쟈님이 어떤 상태였나 옆 캘린더를 거꾸로 돌려 가보니, 서재 상으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계시네요^^ 서재에 드러난 상징적인 로쟈님과 제가 알 수 없는 실재하는 로쟈님과의 간극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지젝은 러시아 혁명의 의미를 다시 묻는 데 굉장히 열심이군요. 그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 그토록 두꺼운 책이 필요하다면 그 혁명이 다시 희망으로 작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참 난감하게 느껴지네요^^ 유토피아에 대한 과도한 갈망 없이 건강하게 유지되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도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까요?

로쟈 2009-04-05 09:34   좋아요 0 | URL
서재는 제 '외관'이자 피난처지요(물론 좀 허술하긴 해도).^^; <시차적 관점>은 사실 러시아혁명 얘기만 다루는 건 아니고, '시차'라는 개념을 통해서 자신의 헤겔-라캉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을 재정식화하려는 시도 같아요. 그래서 부피가 늘어난 것이고, 일종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입니다. 현재까지는 '지젝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푸른바다 2009-04-05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말을 생각해보면 '변증법'은 상징계를 지칭하고 '유물론'은 실재계를 지칭하는 듯 싶기도 하군요. 실재계와 상징계의 관계도 변증법적이라고 해야겠지만... 유물변증법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으로의 이행은 중심축이 상징계에서 실재계로 이동하는 것을 상징하는 듯 싶기도 하군요^^ 저도 아주 오래전에 맑스의 '철학'은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보다 큰 새로운 사조의 획기적인 전기로 위치지워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정교하게 생각을 발전시키지는 않았지만.. 실재계로의 방점의 이동은 화이트헤드가 지적하는 '완벽한 사전의 오류'와도 관련이 있을 듯 싶습니다. 영원히 닿을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작용을 하는 실재를 가정하는 것이 상징계의 한계를 인정함과 동시에 끊임없는 생성에의 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목적인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는 더 고민을 해봐야 겠지만...

로쟈 2009-04-07 00:21   좋아요 0 | URL
지젝과 화이트헤드라... 지젝도 흥미로워할 거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4-06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검찰관>을 연극무대에 올리나요?

로쟈 2009-04-07 00:20   좋아요 0 | URL
상시 공연 레퍼토리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4-07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음양 2009-04-16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바다 / 정감록이 유토피아에 대한 민중의 갈망을 드러내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감록을 보면 난을 피해 숨어 있기 좋은 곳, 즉 십승지설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실제로 그지역으로 특히 북쪽지방 사람들이 많이 이주했지요. 경상도 풍기가 대표적인 곳입니다. 풍기가 인삼으로 유명해진 이유에는 황해도 사람들이 대거 이주해 인삼 재배를 시작하면서 부터이지요.
 

이번주에 나온 책들은 다행히 많지 않다. 출간 종수야 비슷하겠지만 눈에 띄는 책은 지난주에 비교해서 많이 줄었다. 개인적으론 네댓 권 정도를 꼽아놓고 있는 정도다. 그 중 한 권이 한국서양사학회에서 펴낸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푸른역사, 2009)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관심을 갖게 된 주제이고 이미 몇 차례 관련 페이퍼를 올려둔 바 있다. 이번에 나온 책은 국내 학자들의 시각과 연구성과도 일별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듯싶다.     

서울신문(09. 04. 03) [내 책을 말한다] 유럽편향 세계사 벗어납시다

서양에서 유럽중심주의는 그 기원을 르네상스에 두고 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크게 번성한 근대 유럽사회의 고유한 현상이다. 유럽중심주의는 유럽과 세계의 역사를 근대뿐만 아니라 고대와 중세 등 전 시대를 유럽 입장에서 재구성했다. 따라서 유럽과 세계의 역사에 대한 ‘유럽중심주의적’ 재구성이 실제 세계사와 일치되는지를 우리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한국서양사학회 글, 푸른역사 펴냄)는 유럽중심주의 세계사의 편향을 극복하고 우리 입장에서 대안적 세계사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다. 한국 서양사학계는 그동안 유럽중심주의적 세계사가 지닌 어두운 측면에 대해 진지한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 최근 일부 한국 서양사학자들이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자기반성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고 시도해 왔으나, 개인적인 차원이나 서양사의 일부 영역에서만 진행됐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한국서양사학회는 2006년 ‘우리에게 서양이란 무엇인가-유럽중심주의 서양사를 넘어’라는 학술대회를 개최해 광복 이후 처음으로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체계적으로 영역별·시대별로 재검토했다. 이 학술대회의 공동성과를 지난 3년 동안 보완하고 발전시켜 내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예를 들어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항로 발견은 근대 자본주의의 출발점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세계체제론자인 안드레 군더 프랑크와 재닛 아부-루고드 등은 1492년 이전에 이미 오늘날 같은 근대 세계체제가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유럽은 새롭게 근대 세계의 판을 짠 것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판에 끼어든 것에 불과한 것이다.  

‘십자군 전쟁(11~13세기)’은 중세 유럽이 당시 이슬람 세계보다 우월했다는 인상을 심어왔다. 그러나 이슬람 문명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문명의 하나였고, 중세 유럽은 당시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즉 ‘십자군 전쟁’은 유럽과 이슬람 세계 사이의 ‘대등한 전쟁’이 아니라 당시 지중해 세계의 중심이었던 이슬람 세계에 대한 변방 유럽의 ‘기습공격’에 불과한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이론적으로 비판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각 역사시대를 구체적으로 세계 각국의 입장에서 재검토하는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시도라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를 갖는다.  

이 책의 총론격인 1부는 유럽중심주의를 한국서양사학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2부·3부·4부는 유럽중심주의 세계사의 주요 쟁점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서울대 최갑수 교수와 순천대 강성호 교수가 각각 들어가는 글과 서문을 썼고, 성균관대 김택현 교수, 부산대 유재건 교수, 그리고 아주대 김봉철 교수 등 한국서양사학계의 대표적 중견 학자들이 필자로 참여해 학문적 가치를 높였다.  

유럽중심주의적 세계사 인식은 19세기 이후로 현재까지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장기간의 체계적인 공동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단순히 선언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료작업에 근거한 역사서술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강성호 순천대 교수) 

09. 04.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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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럽중심주의와 세계사의 해체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5-12 18:41 
    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출판면 기사를 옮겨놓는다.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비판/해체하고자 하는 두 권의 책을 묶어서 다루었다. 그냥 이런 책들이 나왔다는 소개 정도다. 지난주에 여러 편의 원고를 쓰는 바람에 미처 퇴고를 못했더니 역시나 탈자에다가 구겨진 문장이 눈에 띈다. 못 사는 집은 어디 가도 티가 난다고 하던가.      한겨레21(09. 05. 16) 동서양 이분법, 상상의 역사학
 
 
노이에자이트 2009-04-06 22:51   좋아요 0 | URL
비교사학 분야의 연구는 늘 관심을 끕니다.이런 연구서를 펴낼 수 있는 것도 우리나라 학문이 많이 발전한 증거겠지요.동아일보엔 더 자세한 서평이 나오던데요.

로쟈 2009-04-06 23:47   좋아요 0 | URL
저자가 직접 쓴 소개라서 옮겨놓았어요. '체계적인 공동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 진척될 수 있을지 두고봐야죠...
 
지젝과 데리다 사이
"러시아 혁명을 복권하라"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 리뷰기사를 옮겨놓은 김에 서문(번역본에서는 'introduction'을 음악용어인 '서주'로 옮겼다. 중간에 나오는 '간주'들과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번역에서 의견이 다른 부분들을 지적해두고 싶다(이런 '품앗이' 교정이 방대한 분량의 이론서를 깔끔하게 우리말로 옮긴 역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나대로의 방식이다). 한 가지 핵심적인 사안과 몇 가지 사소한 부분이다.    

 

"관찰하는 위치에 따라 새로운 시선이 제시되고, 이 때문에 초래되는 대상의 명백한 전치"(39쪽)를 가리키는 '시차(parallax)'를 지젝은 "두 층위에 어떠한 공통 언어나 공유된 기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고차원적인 종합을 향해 변증법적으로 매개/지양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율배반"(14쪽)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차적 간극이 "변증법에 되돌릴 수 없는 장애물을 배치하는 것(posing an irreducible obstacle to dialectics)"이 아니라, 다시 말해서 "어떤 제거할 수 없는 장애물을 변증법 앞에 갖다놓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의 전복적인 핵심을 간파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 이 책에서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곧 지젝의 내기다. 그는 "이러한 시차적 간극을 적절히 이론화하는 것이 변증법적 유물론의 철학을 재건하기 위해 필수적인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 변증법적 유물론은 퇴각 국면에 놓여 있다. 이건 굳이 지젝의 정세판단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바이다. 하지만 이런 국면에서 오히려 레닌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지젝은 말한다. 레닌의 전략적 통찰은 이런 것이었다.  

"군대가 퇴각할 때는 군대가 진격할 때보다 백 배 많은 규칙들이 요구된다. .. 멘셰비키 당원이 '이제 퇴각하는군요; 나는 항상 퇴각을 지지해왔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동의합니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함께 퇴각하십시다'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이에 대한 회답으로 '멘셰비즘의 공식적 위상을 위하여 우리의 혁명 법정은 반드시 사형을 선고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의 법정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요'라고 답한다."(14-15쪽)  

지젝이 영어판 <레닌 전집> 제33권(1966)에서 인용하고 있는 대목인데, 엊그제인가 러시아어 원문이 뭔가 싶어서 러시아어판 <시차적 관점>(2008)을 들춰봤다가 흥미롭게도 이 대목은 누락돼 있는 걸 발견했다. 국역본을 기준으로 하자면 "많은 현대과학들이 자발적으로 유물론적 변증법을 실천하지만, 그들은 철학적으로 기계적 유물론과 관념적 반계몽주의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란 문장 다음에 바로 16쪽으로 넘어가 "철학적으로 말하여..."로 시작되는 문단이 이어진다.    

Славой Жижек Устройство разрыва. Параллаксное видение The Parallax View

실수라기보다는 고의적인 누락으로 보이는데, "10월 혁명 이후 처음 몇 년의 열광적이고 창조적인 불안에 매료되기는 쉽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의 강요된 집단화의 공포 속에서 이러한 혁명적 열기를 새로운 긍정적 사회질서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인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같은 주장이 러시아 번역자에겐 불편했던 것일까?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혁명적 열기를 새로운 긍정적 사회질서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여전히 인식하기 어려운 게 러시아의 현실이란 걸 암시해주는 듯싶어서 유감스럽다.   

아무튼 그래서 러시아어본의 참조 없이 레닌의 통찰을 영역문으로만 따라가보면, 먼저 그는 군대가 퇴각시에는 진격시보다 백배 이상의 'discipline'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역자는 '규칙들'이라고 옮겼지만 '규율'이 더 어울릴 것이다. 나라면 '백배 이상의 엄격한 규율'이라고 옮기고 싶다. 그리고 볼셰비키의 퇴각에 동의하며 맞장구치는 멘셰비키에 대한 레닌의 응답은 이렇다. "For public manifestation of Menshevism our revolutionary courts must pass the death sentence, otherwise they are not our courts, but God knows what."(4쪽)  

국역본은 "For public manifestation of Menshevism"을 "멘셰비즘의 공식적 위상을 위하여"라고 옮겼는데, "멘셰비즘의 공표에 대해서"란 뜻 아닌가? 핵심은 분열적인/분파적인 주장의 공개적인 표명에 대하여 혁명 법정은 가차없이 사형 선고를 내려야만 한다는 것이겠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즉 엄격하게 단도리를 하지 않는다면, 이건 뭐 혁명 법정도 아니라는 것. 그게 뭔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혁명 법정'은 아니라는 것("그러나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요"란 번역도 따라서 부정확하다).   

이어서 현재의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에 대한 지젝의 진단.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사회정치적 참패 때문만이 아니다; 이론 고유의 차원에서 볼 때 이러한 위기는 또한 변증법적 유물론이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토대라는 역할로 퇴조했다는 (심지어는 실질적으로 소멸했다는) 점을 통해서도 설명될 수 있다(설명되어야 한다)."(15쪽)    

여기서 "변증법적 유물론이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토대라는 역할로 퇴조"는 "the decline of dialectical materialism as the philosophical underpinning of Marxism"을 옮긴 것인데, 나로선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토대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퇴조"란 뜻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한물간 것으로 취급되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재건해보겠다는 것이 국역본 표지의 문구대로 '현대 철학이 처한 교착 상태를 돌파하려는 지젝의 도전'이다.   

그러한 도전에 나서면서 지젝이 먼저 구분하고 있는 것은 '유물변증법(materialist dialectic)'과 '변증법적 유물론(dialectical materialism)'이다. 유물변증법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으로의 이행은 '규정적 반성'에서 '반성적 규정'으로의 이행(전환)이며 이것이 핵심이다. 반성(reflection)이란 말에는 '반영'이란 뜻도 포함돼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유물변증법과 변증법적 유물론은 마치 거울상처럼 좌우가 서로 바뀐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의 단어 혹은 단어들의 위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이 변증법적 전환은 "(억압적) 체계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격렬한 춤사위에서 (독일 관념론자들이) 자유의 체계(라고 부른 것으)로의 전환"이다. 간단히 말하면, "체계로부터의 해방에서 자유의 체계로의 전환(from the liberation from the System to the System of Liberty)"이다. 덧붙여, '부정변증법'이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전환이라고 지젝은 말한다(리뷰기사 참조).   

이러한 전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지젝의 경우 헤겔-라캉주의와의 결합적 사유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철학적으로 말하여, 스탈린주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우둔함의 화신이라는 말은 요점을 벗어났다고 할 수 없으며 사실 그 자체가 요점이다."(16쪽) 원문은 "That, philosophically speaking, Stalinist 'dialectical materialism' is imbecility incarnate, is not so much beyond the point as, rather, the point itself." 여기서 '우둔함의 화신'이라고 한 것은 '스탈린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의 결합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스탈린주의와 결합시킨 것이야말로 멍청한 일이며 이론적 과오이고 요점을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들 하지만, 지젝이 보기에는 바로 그러한 결합이 요점이고 문제의 핵심이다.   

"그 이유는 내가 주장하는 바가 정확히 나의 헤겔-라캉적 입장의 정체성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철학을 헤겔적 무한판단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즉 이를 골상학의 공식인 '정신은 뼈다'와 같이 가장 높은 것들과 가장 낮은 것들의 사변적 동일성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문은 "since my point is precisely to conceive the identity of my Hegelian-Lacanian position and the philosophy of dialectical materialism as a Hegelian infinite judgment, that is, as the speculative idnentity of the highest and the lowest, like the formular of phrenology 'the spirit is a bon.'" 

역자는 여기서 두 번 나오는 'identity'를 '정체성'과 '동일성'으로 구별해서 옮겼는데, 내가 이해하기엔 둘다 '동일성'이란 뜻이다. 해서 "the identity of my Hegelian-Lacanian position and the philosophy of dialectical materialism"을 "나의 헤겔-라캉적 입장의 정체성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철학"이라고 옮겼지만 나는 "나의 헤겔-라캉주의적 입장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동일성"이라고 교정하고 싶다(identity of A and B 구문). 요컨대, 지젝은 '헤겔-라캉주의 =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등식을 '정신 = 뼈'라는 헤겔식 무한판단의 일종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지나가는 김에 지적하자면, '완고한 네번째 교사(steely Fourth Teacher)'는 '스탈린'을 암시하므로 '완고한'보다는 '강철 같은'이 더 낫겠다. '스탈린'이란 이름 자체가 '강철(스탈)'에서 파생된 가명이기도 하고.  

이제, 나머지는 사소하다. 23쪽에서 가라타니 고진의 한자 이름이 잘못 병기된 것, 24쪽에서 '내재적 견해들(inherited opinions)'이 '전승한 견해들'의 오역이라는 것 등. 25쪽 이하에서 '들뢰즈의 보편적 단일성이라는 개념(Deleuze's notion of universal singularity)'에서 'singularity'는 보통 '단독성' '특이성' '독특성' '개별성' 등으로 옮겨지는 개념인데, '단일성'은 처음 보는 듯하다. 오해의 소지가 있다. 26쪽에서 "여기서 나의 목적은 그 안에 있는 세 개의 주요 양식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러한 다수성에 최소한의 개념적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들은 철학적, 과학적 그리고 정치적 질서이다."에서 '철학, 과학, 정치'는 '질서(order)가 아니라 지젝이 다루고자 하는 세 개의 주요 '양식(mode)'이다.   

그리고 28쪽 이하에서 'democracy-to-come'이라는 데리다적 개념은 '미래 중심 민주주의'라고 옮겨졌는데, 기존의 번역어 '도래할 민주주의'와의 관계도 각주에서 언급이 되면 좋았겠다. 29쪽에서 언급된 나보코프의 소설 <왕, 왕비, 악당>은 체스용어에서 따온 것이라 <킹, 퀸, 잭>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국역본의 제목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서론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데리다에 대한 지젝의 언급이었다. "나는 자크 데리다의 저작과 씨름하며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으므로, 아마도 지금이 이러한 '극소 차이'와 그가 차연이라고 부른 것의 근접성을 지적함으로써 그를 기억하고 기려야 하는 적절한 순간일 것이다."(28쪽)이라고 말하는 대목. 비록 라캉주의적 입장에서 데리다의 해체론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을 제기해왔지만 이 대목에서 지젝은 나름대로의 경의를 표하고 있다. 오래전에 '지젝과 데리다 사이'라고 제목을 단 페이퍼가 생각이 나서 먼댓글로 붙여놓는다... 

09. 0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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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 멋대로 하지 마라"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11 11:05 
    어제 읽은 칼럼 한 편과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의 한 문단을 나란히 읽어보려고 한다. 밤늦게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어제 올려놓으려고 했던 페이퍼로서 지난주에 올린 '헤겔-라캉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보충의 의미도 갖는다. 쟁점은 '문화적 저항의 의의와 한계'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먼저 결과적으로 소비문화에 투항해버린 '신세대' 문화를 비판하면서 오늘의 청년세대에게 새로운 대안문화
  2. 시차적 관점과 사변적 동일성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8-04 01:39 
    며칠전부터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를 다시 손에 들고 주로 후반부를 읽었다. 필요 때문이기도 하고 관심 때문이기도 한데, 사실 두께가 두께인 만큼 단숨에 일독하긴 어려운 책이어서 이렇듯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읽어두는 것. 단, 원서와 같이 읽기 때문에 진도가 빨리 나가진 않는다. 그럼에도 지젝의 독자라면 '지젝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한 이 책을 여러 번 숙독해봄 직하다(일독도 어렵다면서?!). 그러기 위해선 약간의 교
 
 
릴케 현상 2009-04-06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댓글들을 안 다네요. 1등 놀이를 하게 만드는^^

로쟈 2009-04-06 23:48   좋아요 0 | URL
아직 아무도 안 읽으신 책인듯해요.^^;

노이에자이트 2009-04-0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독했습니다.번역바로 잡기는 한번 더 읽어봐야겠군요.

로쟈 2009-04-06 23:48   좋아요 1 | URL
지젝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정독해볼 만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