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교수신문의 특집은 '중국 ‘喪家狗(집 잃은 개) ’논쟁과 새로운 고전 읽기의 문화적 아이콘 ‘리링(李零)’'이었다. 리링 교수의 <논어, 세번 찢다>(글항아리, 2011) 출간을 계기로,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그의 <집 잃은 개>가 중국에서 불러일으킨 논쟁을 소개하고 국내에서 논어가 어떻게 번역돼왔나, 공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살펴보았다. 이 중 '집 잃은 개' 논쟁에 대한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교수신문(11. 08. 16) 대륙신유가들은 왜 그에게 발끈했을까

2000년대 중반 무렵에 이르러 중국에서는 이른바‘논어열기(論語熱)’라고 부르는 거센 바람이 불었다. 거국적으로 불어 닥친‘논어열기’의 진원지는 바로『논어』에 관한 두 권의 책이다. 하나는 베이징사범대학의 위단(于丹)이 쓴『論語心得』이고, 다른 하나는 베이징대의 리링(李零·사진)이 쓴『집 잃은 개 : 논어를 읽다』(원제: 『: 我讀論語』)이다. 위단의 책은 집집마다 한 권씩 비치해 뒀다고 말할 만큼 일반인들에게 널리 읽혔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논어』의 몇몇 구절을 뽑아다가 마음대로 해석해 개인의 명성과 부를 축적하는 데 이용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마디로『논어』연구자도 아닌 젊은 여성이‘성인의 말씀’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이유에서 소위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나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는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로부터 비판 아닌 비난을 받았다. 리링의 경우 역시 엄청나게 많은 부수의 책이 팔리기는 했지만, 위단의 경우와는 달리 주된 독자는 학생이나 식자층이었고, 인터넷과 학술회의석상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집 잃은 개 : 논어를 읽다』(이하『집 잃은 개』)를 비롯한 리링의『논어』관련 저서들은 바로‘대륙신유가’들의 이런 노력과 배치된다. 아니, 바로 그들의 그러한 노력을 비판하고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그는 공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를 거부하고, 『논어』를 유토피아로 인도할 신성한 경전으로 취급하는 것에 반대한다.

리링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공자는 성인이 아니고『논어』는 성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공자는 그저 불운한 지식인일 뿐이고, 『논어』는 제자서와 같은 유가의 전기에 불과하다. 그가 책의 제목으로 정한‘집 잃은 개(喪家狗)’는 바로 그러한 공자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리링은 공자는 성인이 아닐 뿐만 아니라 공자는 결코 자신이 성인으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공자는 스스로“결코 그들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공자는“세상에 살아 있을 때는 천자가 아니었고, 공작의 제후도 아니었고, 후작의 제후도 아니었으며 성인도 아니었다.”

‘말세의 책’, ‘학계의 만담꾼’비난 이어져
그는 공자가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즉 살아 있는 공자 혹은 진짜 공자가 있는가 하면, 죽은 공자 혹은 가짜 공자가 있다는 것이다. 리링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자는 죽은 공자 혹은 가짜 공자라고 말한다. 즉 공자 사후 추종자들과 역대의 제왕들에 의해 그럴 듯하게 포장된 숭배의 대상이나 얼굴마담으로서의 공자, 예를 들어‘大成至聖文宣先師孔子’와 같이 화려한 옷을 입고 거창한 명함을 내미는 공자는 원래의 공자가 아니라 위조된 공자, 가짜 공자라는 것이다. 중국의 위대한 교육자, 최초의 훈장이 바로 살아 있는 공자의 모습이고 그것이 진짜의 모습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이념적인 틀에 꿰어 맞추는 방식도 부정하고 대중들의 입맛에 맞게 논어를 그저 말랑말랑하고 보기 좋게 버무려 내는 것이 아니라 고고학, 문자학, 문헌학적 증거를 동원해『논어』에서 원래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공자와 그 제자들의 면모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 예를 들면 공자 사상에서 핵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仁에 대해 그는“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즉 사람을 도구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 대접하는 것이 바로 仁의 본뜻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먼저 자기를 사람으로 대하고, 그 다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바로 공자가 말한 仁이며,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仁에 대한 해석은 상당히 신선한 느낌을 준다.

『논어』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의 예를 하나 더 보자.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원한을 끼친 자에게 은덕으로써 갚으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以直報怨’이라고 대답했다. 이 구절을 주희는 원한에 대해서는 곧음, 즉 공평무사함으로써 갚는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리링은‘直’을‘똑같은 것’을 뜻한다고 보아 이 구절을 원한에는 원한으로써 갚는다고 풀이했다. 仁의 해석에 비해 상당히 낯설게 느껴지지만, 공자가 이 구절을 말하기에 앞서 원한에 대해 은덕으로 갚는다면 은덕에 대해서는 무엇으로 보답할 것이냐고 물었던 점을 감안하면 원한 맺힌 사람에게 공평무사한 마음으로 대한다는 해석보다는 리링의 해석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리링의『집 잃은 개』에 대한 비판은 주로 문화보수주의자 혹은 대륙신유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들은 대부분『집 잃은 개』는 신성모독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어떤 이는 지극히 감정적으로 리링의 책을‘말세의 책’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는‘쓰레기’라고까지 비난하기도 했다.

다분히 감정적인 이런 비난 외에 대륙신유가의 맏형 격인 천밍(陳明)은 비교적 논리적인 형식의 글을 발표해 리링을 그저 훈고에만 매달리는 고사변학파와 같다고 하면서 그를‘학계의 만담꾼’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리링에 대한 비판은 대개 공자를‘喪家狗’, 즉‘집 잃은 개’에 비유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가 밝힌 모습이 공자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라거나『논어』에 대한 그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비판은 매우 드물다. 리링은‘집 잃은 개’라는 표현은 공자를 모욕하는 말이 아니며, 그 자신도 그럴 의사가 없고 또 그런 뜻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리링은“가슴 속에 어떤 이상을 품고 있든 현실 세계에서 정신적 가정을 찾지 못한 사람은 모두 집 잃은 개다”라고 말한다. 사실 이 정의는 상당히 멋있어 보인다. 하지만, 공자를 인류가 발생한 이래 가장 위대한 성인이라고 받들고, 『논어』를 반 권만 가지고도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절대적 진리를 담고 있는 구세의 경전으로 간주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무엄한 도전으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식상한 도덕적 교훈과 살아 있는 목소리
이 책을 통해 리링이 의도한 것은 2천여 년 동안 그에게 겹겹이 입혀놓은 정치적, 도덕적, 종교적 옷을 벗겨 버리고, 온갖 화려한 색깔로 치장해놓은 분칠을 닦아내 공자의 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논어』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줌으로써 허구가 아닌 실질적인 토대를 기반으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자는 데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의도가 옳은지 아닌지, 그리고 그의 작업을 통해 공자와『논어』의 진면목이 드러났는지 아닌지를 먼저 따져보는 것이 일의 순서일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리링의 책을 통해 공자가 보다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고, 『논어』에서 식상한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리링의『집 잃은 개』로 인해 촉발된 논쟁은 공자나『논어』를 비판하는 측과 공자나『논어』를 옹호하는 측의 논쟁이 아니라 공자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를 신봉하려는 태도와 공자의 원래의 모습과 그의 생각을 존중하려는 태도 사이의 대립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리링의 방대한 저술『집 잃은 개』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공자는 중국을 구제할 수 없고, 세계를 구제할 수도 없다. 애초부터 구세주 따위는 없었고, 또 신선이나 黃帝에 의지하지도 않았었다. 인류의 행복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우리들 자신에게 의지해야 한다."(김갑수 호서대 연구교수·중국철학) 

11. 08. 21.  

P.S. 개인적으론 리링의 <논어, 세번 찢다>를 읽으며 비로소 <논어>가 어떤 책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동양을 만든 13권의 책>(글항아리, 2011)과 이중텐의 <백가쟁명>(에버리치홀딩스, 2011)으로부터도 많은 계발을 얻었다. 책상맡에는 진순신의 <논어 교양강의>(돌베개, 2010)와 함께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논어>(이산, 2001)도 놓여 있다. 번역중이라는 <집 잃은 개>의 출간을 고대해본다...


댓글(2) 먼댓글(1)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논어 번역 어떻게 전개됐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8-21 15:21 
    리링의 <집 잃은 개>를 둘러싼 논쟁 소개기사에 이어서 국내 논어 번역사를 일별해준 기사도 옮겨놓는다.논어 읽기에 참고할 만하다. 교수신문(11. 08. 16) 국내 논어 번역 어떻게 전개됐나근대적 의미에서 우리나라 논어 번역의 시작은 1908년 최남선이 창간한 잡지 <소년>의 제9호 (1909년 8월)부 터 제12호(1909년 11월)까지 실린 「소년논어」에서 찾을 수 있다. <소년>이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되면서 「소
 
 
2011-08-22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2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셀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 가운데 <안전, 영토, 인구>(난장, 2011)가 출간됐다. 언젠가 '푸코 르네상스'란 기사도 뜨고 강의록도 여럿 나오는 걸로 예고돼 있었지만 계속 미뤄지는 모양이다. 그나마 <안전, 영토, 인구>만이 여름을 넘기지 않았다. 겸사겸사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셩명정치의 탄생> 같은 강의록도 조만간 나오길 기대한다... 


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안전, 영토, 인구-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7~78년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 / 난장 / 2011년 8월
31,000원 → 27,9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08월 19일에 저장

Security, Territory, Population: Lectures at the Coll?e de France 1977--1978 (Paperback)
Foucault, Michel / Picador USA / 2009년 2월
43,800원 → 35,910원(18%할인) / 마일리지 1,8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1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1년 08월 19일에 저장

주체의 해석학- 1981-1982,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
미셸 푸코 지음, 심세광 옮김 / 동문선 / 2007년 3월
29,000원 → 26,1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08월 19일에 저장

비정상인들
미셸 푸코 지음, 박정자 옮김 / 동문선 / 2001년 4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11년 08월 19일에 저장
절판


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08-19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0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문학과 철학을 같이 다룬 책은 즐겨 읽는 아이템인데,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 양운덕의 <문학과 철학의 향연>(문학과지성사, 2011)이다. 이 분야의 원조라고 할 만한 책은 아마도 박이문의 <문학 속의 철학>(일조각, 1975)일텐데, 이 역시 얼마전에 개정판이 나왔다. 겸사겸사 '문학과 철학'을 주제로 한 책을 몇 권 모아놓는다. 흠,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도 포함될 수 있겠는데... 

0415900573  

자크 데리다가 제임스 조이스 학회에 초대된 적이 있다. 제임스 권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개 철학자가 뭘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율리시즈>에서 유독 작가가 'Yes, Yes'를 두 번씩 쓰는 특징을 발견하고, 이 소설에서 'yes, yes'라고 쓰인 구문을 찾기 시작했다. 총 200여 회 나온다고 하는데, 그는 이 사례를 통해 기표와 기의 간에 인과관계는 없으며, 의미는 오직 차이에 의해서만 정해진다고 설명했다. 데리다의 개념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소설과 영화에 철학적 개념이 대입 가능하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철학자 양운덕은 90-2000년대 국내 유행한 정신분석학과 철학의 개념을 문학 작품을 통해 설명한다. 신간 <문학과 철학의 향연>은 이 작업을 정리한 책이다. 하이데거, 푸코, 세르, 베르낭, 지라르, 구스 등 여러 철학자들의 개념을 포의 <도난당한 편지>, 카프카의 <법 앞에서>, 횔더린의 시, 플라톤의 <향연>, 보르헤스의 <자이르>, 라퐁텐 우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통해 다시 읽는다.

이를테면 라캉의 포 읽기는 <도난당한 편지>를 프로이트의 반복강박의 틀로 재해석하면서 각 장면에서 기표들의 상징질서에 사로잡힌 주체들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잃어버린 편지는 라캉의 해석이나 정신분석을 통해서 제자리를 찾고 그 숨겨진 의미를 온전하게 드러냅니다. 지연된 편지, 지연된 의미는 바로 기표가 걸어가는 길이죠. 주체들은 그것이 우회한다고 생각하지만, 기표는 그렇게 다른 기표들을 가리키면서만 자기 자리를 마련하죠.' (76페이지, 1장 주체들을 길들이는 기표, 뒤팽도 벗어나지 못한 기표의 질서 중에서)

데리다의 카프카 읽기 역시 마찬가지. 저자는 해체의 틀로 <법 앞에서>를 독해하면서 텍스트의 접근 불가능성, 접근할 수 없는 것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소개한다. 4장에서는 푸코의 '윤리적 주체의 자기 형성' 틀로 플라톤의 <향연>을 읽는다. 고전학자 베르낭, 비평가 르네 지라르와 구스의 경우를 참조해 오이디푸스를 읽는 7장 역시 흥미롭다.

정신분석학과 철학을 문학과 겹쳐 읽는 것은 저자의 자의적 방식이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은 거의 모두 근현대 지식인들이 실제 자신의 사유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문학작품을 예로 든 산문과 논문의 내용을 대중 언어로 쉽게 설명한 것이다. 지식인의 책무는 고도의 지적인 활동과 함께 그 지적인 결과물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있을 터다. 철학자 양운덕의 미덕은 그것이다. 지식인 사회의 한 풍경을 대중의 언어로 소개하는 것. 이 책이 소개되야 하는 이유다.(주간한국)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문학과 철학의 향연
양운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7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08월 15일에 저장

문학 속의 철학- 개정판
박이문 지음 / 일조각 / 2011년 7월
12,000원 → 12,000원(0%할인) / 마일리지 120원(1%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08월 15일에 저장

소설 속의 철학- 문화마당 5
김영민, 이왕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3월
7,000원 → 6,300원(10%할인) / 마일리지 350원(5% 적립)
2011년 08월 15일에 저장
품절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08월 15일에 저장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휴일이라 아직 배송을 받지는 못했는데 <뇌를 훔친 소설가>(예담, 2011)와 같이 주문한 책은 <이문구의 문인기행>(에르디아, 2011)이다. 21명의 문인에 대한 인물평을 담고 있는 책. 과거엔 드물지 않은 컨셉의 책이지만 요즘은 희귀해진 듯하다. 게다가 이문구 선생의 책이니 주저할 이유도 없었다. 노래로 치면 '70-80'쯤 될까. 그게 내 취향인 거 같기도 하다...

경향신문(11. 08. 15) 소설가 이문구의 붓끝으로 다시 바라본 당대 문인들

소설가 이문구(1941~2003·사진)는 1970~1980년대 문단이 순수와 참여로 갈라져 있던 시절, 파벌과 경향이 아니라 인간관계로 진영을 넘나든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스승 김동리가 창간한 ‘월간문학’ 편집장으로 일했고, 나중에는 참여 작가들이 출자한 실천문학사 사장을 지냈다. 타계 직전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으로 문단을 대표하는 자리에 올랐던 그의 장례식은 문인협회, 작가회의 등 3개 단체가 공동으로 치렀다. 



그런 그가 동료작가들에 대해 쓴 글을 모은 책 <이문구의 문인기행>(에르디아)이 출간됐다. 인물평, 단행본의 발문, 문예지에 연재한 작가탐방, 실명소설·추도사 등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김동리·서정주·고은·신경림·한승원·이호철·황석영·박상륭·김주영·윤흥길 등 중앙문단의 유명 문인뿐 아니라 염재만·박용래·임강빈·강순식 등 지역문인까지 21명의 인물평이 실려있다. 고인의 조카뻘인 시인 이흔복씨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원고를 한데 모아서 엮은 것이다.

“명천(이문구의 호)은 일찍부터 문단에서 행장기의 독보로 꼽혀왔다. 그래서 ‘명천 붓끝에 한 번 놀림을 당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문인이 아니다’라는 농이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을 섭렵했다”는 문학평론가 이경철씨의 말처럼 이문구의 걸쭉한 입담과 풍자로 펄펄 살아있는 문체에 걸려든 동료 문인들은 진솔하고 의외인 면모를 드러낸다.  

김동리는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이다. 그의 주변에는 문객과 식객이 들끓었는데, 식객들은 술과 밥만 축낸 것이 아니라 선생의 용돈과 원고료까지 나눠갔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젊은 시절 끼니를 거를 만큼 가난했던 김동리는 매일 계란 프라이를 먹었고, 댁으로 찾아온 제자들에게도 계란 프라이부터 두 개 이상 먹인 다음 술잔을 건넸다. 김지하가 담시 ‘오적’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자 당시 문협 이사장이던 김동리가 일요일에 사무실로 나와 후배들과 대책을 논의하던 모습도 담겨있다. 



신경림의 ‘터프’한 면모도 볼 수 있다. 6공(노태우 정부) 시절의 어느 날, 민요연구회 후배들과 산에 갔다가 술을 한잔 걸친 시인은 젊은 후배들이 그냥 안내려오고 바위에서 뛰어내리자 자신도 노인 취급을 받기 싫어 뛰어내리다가 갈비뼈 두 대가 부서진다. 후배 이문구가 “업혀 내려오셨냐”고 걱정스레 묻자, “뭔 소리여. 내 발로 걸어 내려왔어. 아픈 줄도 몰랐어. 취했는데 뭘 알아”라고 대꾸한다. ‘체수에 비하여 화통하기가 무릉도인’이었다고 저자는 적고 있다.

고은의 삶은 ‘5세 신동의 50년’에 요약돼 있다. 서당에 다니면서 신동 소리를 듣던 어린 시절부터 군산북중에 다닐 때 신작로에서 <한하운시초>를 주워 읽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 일, 한국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출가했다가 환속해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과정 등이 상세히 소개된다. 특히 ‘가짜 고은’ 사건이 흥미롭다. 시인으로 유명해지자 전국에서 고은이 나타나 백일장 심사위원장을 맡고, 부인과 애인을 동시에 거느리며, 문청들에게 금품을 갈취하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평생지기로 소주잔을 기울였던 박상륭과의 우정, ‘믿어도 좋은 사내’라고 부른 황석영과의 인연, 안동엽연초생산조합 김주사였던 김주영의 등단시절 등 고인의 입에서 듣는 생존작가들의 뒷이야기가 흥미롭다.(한윤정 기자)  

11. 08. 15.  

 

P.S. 책은 이문구 전집의 하나로 출간된 <이문구의 문학동네 사람들>(랜덤하우스코리아, 2004)를 다시 펴내면서 3-4편의 글을 더 얹은 걸로 보인다. 이를테면 '증보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08-15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그야말로 재산이 되겠네요ㅋㅋ 언제 사진인지 모르겠지만 이문구 선생이 쓰고 계신 게 예전에 '워드'라고 불리던 전동타자기 아닌가요?^^

로쟈 2011-08-15 22:58   좋아요 0 | URL
저도 전동타자기가 있었는데, 제건 다른 모델이었습니다. 그나저나 문인들의 뒷담화도 꽤 재미가 있어요. 올드한 취향일까요?^^;

stella.K 2011-08-16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문인기행은 예전에 <문학동네 사람들>을 다시 낸 것인가 봅니다.
이럴 경우 그 사실도 밝히는 게 좋을 것도 같은데 왜 안 밝혔는지 모르겠네요.
물론 그책은 절판되긴 했지만, 모르는 사람은 첨 나온 줄 알겠어요.

로쟈 2011-08-16 23:47   좋아요 0 | URL
네, 확인해보니 다시 펴낸 것이고 세 편쯤 추가됐네요...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도서출판 텍스트에서 펴내는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시리즈의 6차분이 출간됐다. 우리 시대 각 방면의 '20-30대가 쓴 자서전'이다. 오랜만에 이 시리즈에 주목한 기사가 뜨기에 옮겨놓는다. 

서울신문(11. 08. 13) 치열하게 살았는데 화려하진 않네요, 괜찮죠?

요즘 출판계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88만원 세대’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 등으로 불리는 20~30대 젊은이들이다. 한때는 ‘신세대’ ‘N세대’ ‘X세대’ 등 찬란한 수식어가 붙었는데 지금 젊은이들은 규정하는 단어조차도 칙칙하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가장 힘이 되는 글은 무엇일까. 위인의 삶은 너무 무겁고, 유명인이 내는 수필 속의 삶은 너무 가볍다.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텍스트 펴냄) 시리즈는 이 시대, 다양한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20~30대가 직접 쓴 자서전이다. 일기라고 하기에는 저자들이 그동안 살아온 삶이 저마다 치열하고, 성공담이라고 하기에는 이들의 삶이 화려하지만은 않다. 2009년 시작된 시리즈의 6차분 3권의 책이 동시에 나왔다



아나키스트인 조약골의 ‘운동권, 셀레브리티’, 김자현 KBS PD의 ‘마트료시카, 모래섬에 왈츠를!’, 출판인 김류미의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다. 지금까지 19권이 발행됐는데, 출판사 측은 “1만 1명까지 책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조약골은 오늘도 투쟁하며 생활 속의 혁명을 실천하는 운동가다. 주거침입죄, 건조물침입죄, 업무방해죄, 공무집행방해죄, 일반도로교통방해죄, 집시법위반죄, 심지어 폭행죄까지, 세상은 그에게 존재 자체가 불법이라고 단죄한다. 남자지만 대안 생리대 강의 등을 하는 ‘피자매연대’ 활동도 한다. 채식을 하고 자전거를 타며 천성산, 이라크, 새만금, 대추리, 용산참사 현장, 두리반 등에서 비폭력 평화활동가로 운동해 왔다.

각 책의 마지막 장은 릴레이 인터뷰로 채워졌는데, 다음 편 시리즈의 저자가 인터뷰어가 된다. 조약골은 ‘NGO에서 일하는 친구가 우리도 인권착취를 많이 당한다고 하더라.’는 질문에 “아직은 현실이 더 야만적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야만적인 상황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라고 답한다.

김자현(32) PD는 노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였다. 학창 시절 대부분을 얌전하고 조용한 모범생으로 지냈으며, 고등학교 때 영화 ‘닥터 지바고’를 우연히 보고 노문학을 전공하기로 한다. 그가 쓴 ‘마트료시카’는 러시아 교환학생 시절 이야기와 PD로 일하며 ‘시청자칼럼 우리 사는 세상’ ‘러브 인 아시아’ ‘박중훈 쇼’ 등을 제작한 경험담이 담겨 있다.

김 PD는 대학 시절 국문과의 노교수가 “볼품없는, 실없는 소리나 지껄이는 인문학은 차남들이나 선택하는 학문이다. 그 어느 집안에서도 집안의 기둥이 될 장남에게는 인문학을 공부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 모인 여러분과 나는 쓸데없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차남’들이다.”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 대학 4년 동안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꼈던 저자는 인문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PD가 됐다. PD가 되어서는 일을 그만두라는 남편과 다투고, 카메라 앞에서 솔직하지 않은 출연자들의 모습에 힘들어한다. 김 PD는 “지금 하는 ‘PD’라는 일 자체는 커다란 틀에서 하나의 인문학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서울 강남에서 태어나 20여년을 내리 강남에서 산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의 저자 김류미(27)씨는 ‘88만원 세대’의 전형이라 할 만한 삶을 살았다. 김씨는 공장 부지의 가건물, 공무원들이 가건물이라며 종종 부수던 집 등에서 살았다. 강남의 아웃사이더로 살았던 저자는 여러 사교육을 받아 ‘다양한 녹색으로 붓질을 해서 하얀 도화지 위에 점박이로 나무를 만들어 내는 경이로운 스킬’을 보여주는 옆자리 친구를 보며 ‘문화자본’을 체감한다.

‘강남거지’가 별명이었던 김씨는 대학 졸업 후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전단 돌리기, 동대문 옷가게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한다. 가장 갖지 못했던 문화자본의 궁극을 ‘글을 쓰는 지적인 노동을 직장생활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 저자는 현재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를 쓴 젊은이들의 삶이 조금은 특별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들은 솔직하게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모여 에너지를 발산하는 하나의 거대한 초록 이야기 숲을 만들어 낸다.(윤창수기자) 

11. 08. 13. 

P.S. '노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로 소개된 김자현 PD는 대학 후배이다. 사실은 이 자서전 집필을 권유한 인연이 있다. 추천사도 덕분에 맡게 됐는데, 이렇게 적었다. 

언제였던가. 1997년 입시 업무를 보조하는 학과 조교였던 내게 유난히 눈에 띄는 학생이 있었다. 자기소개서에 타르콥스키의 영화를 본 이야기를 적은 여학생. 이듬해 우리는 학과 선후배가 되었고, 종로에서 한 번 영화를 같이 보기도 했다. 한 학기는 강사와 학생으로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암전. 10여 년 만에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송아지 눈을 한 여학생은 활달한 PD가 되어 있었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모스크바에서 여의도까지, 여기 한 젊음이 걸어온 길이 있다. 여전히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어서 기쁘다!

댓글(2) 먼댓글(1)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from 빵가게 재습격의 책꽂이 2011-08-15 15:28 
    오늘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집어들고 온 책은(물론 돈을 지불하고),우리시대 만인보,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다.어떤 경로(?)로저자의 책이 나온다는 것을알고는 있었는데, '우리시대 만인보'일 줄은 몰랐다. 동시에 '은근 리얼' 비슷한 경험을 했을 줄도 몰랐다. 책을 들고 잠시 읽어보다가 내 어린시절과겹치는 경험이 나올 때는 조금 놀랐다. 가다머는한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 항상 보편성을 획득한다는 확신으로 일관했는데,책장을 넘기며 그가 옳
 
 
빵가게재습격 2011-08-13 18:24   좋아요 0 | URL
처음엔 로쟈님 책이 나온 줄 알았어요.^^; 로쟈님의 만인보는...언제 구경할 수 있을까요?(난감한 질문 죄송!^^;)

로쟈 2011-08-14 11:19   좋아요 0 | URL
잠정 보류되다가 나이가 오버된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