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면 겨울의 문턱이지만 따뜻한 날씨 때문에 지난 며칠간은 '11월'답지 않았다.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며칠 늦게 올려놓는 핑계로 대본다. 음, 그래도 계절은 만추여서 베란다 창밖으로 보이는 공원의 단풍은 절정이 지난 모습이다. 여전히 붉게 달아오른 모습이 남아 있긴 하지만. 겨울의 문턱에서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목록만이라도 챙겨보도록 한다(이 일도 벌써 5년째 하고 있군!).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문학서는 김경욱의 '열한 번째 단행본'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창비, 2011)이다. "현재 한국 문단에서 최고의 소설가라는 평가가 과장이 아님을 소설 그 자체로서 증명해 보이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나는 <위험한 독서>(문학동네, 2008)도 챙겨읽지 않았었는데, 이 참에 '업뎃'을 좀 해놓아야겠다(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달에 구입한 <소설가로 산다는 것>(문학사상사, 2011)도 이달에 같이 읽으면 좋겠다. 우리시대 대표적 작가들이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한 소회를 적어놓은 책이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고른 역사서는 주디스 브라운의 <수녀원 스캔들>(푸른역사, 2011). "17세기 초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작은 도시, 그 곳에 위치한 소규모의 신설 수녀원 그리고 그 속에 은둔해 살아가던 어느 수녀의 이야기"로 "저자 주디스 브라운은 베네데타 수녀의 환영 주장과 동성애에 대해 조사한 심문기록을 바탕으로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이라는 영화 같고 소설 같은 흥미로운 역사서를 썼다. 이 책은 파편적으로 남아 있는 과거의 기록이 역사의 내러티브로 변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미시사적 작품"이라는 평이다. 17세기초 수녀원에서 벌어진 이야기라고 하지만, 수녀원이란 말 때문에 자연스레 '중세의 가을'을 떠올리게 되는데, 개인적으론 지난달에 영역본도 구한 터라 하위징아(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문학과지성사)도 다시 손에 들고 싶다. 이택광 교수의 그림책 읽기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아트북스, 2008)도 같이 참고해가면서...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철학서는 니컬러스 펀의 <철학>(세종서적, 2011)이다. 부제가 책의 내용에는 더 근접한데 '가장 오래된 질문들에 대한 가장 최근의 대답들'을 다룬다. 저"자는 이 해묵은 질문들, 이제 더 이상 물어봐야 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은 질문들을 다시 현대 최고의 철학자들에게 직접 인터뷰를 통해서 물어 본다."는 컨셉. 현재 영어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고의 철학자들'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저자는 <니콜라스의 유쾌한 철학카페>(해냄, 2005)의 저자. 영어권 철학의 현재에 대해서는 최근에 나온 정해창 교수의 <현대 영미철학의 문제들>(청계, 2011)을 참고해봐도 좋겠다. 물론 인터뷰를 담은 책은 아니다.    

조금 대중적인 철학서로는 최근 프랑스 저자들의 책이 나란히 나왔는데, 프레데릭 르누아르의 <젊은 날, 아픔을 철학하다>(창해, 2011)와 카트린 메리앙의 <철학자에게 사랑을 묻다>(한얼미디어, 2011). 앤드루 커노한의 <종교의 바깥에서 의미를 찾다>(필로소픽, 2011)까지 '소프트'한 철학서들을 몇 권 챙겨봐도 좋겠다. 무거운 책들은 따로 읽을 시간이 다가오니까. 춥고 긴 겨울 말이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고른 책은 김성기의 <사회적 기업의 이슈와 쟁점>(아르케, 2011)이다. "자본주의의 주역은 기업이며 만약 자본주의가 진화한다면 그 변화의 중심도 기업일 것이다. 사회적 기업은 이윤을 넘어 ‘빈곤과 실업, 사회적 배제, 지역 공동체의 해체, 돌봄, 교육, 문화’ 등의 사회적 가치들을 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이다. 이 책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대학가의 기본서일 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의 시사 교양 도서로도 적절하다."는 것이 추천의 이유다. '사회적 기업'은 예전에도 한번 다뤄진 적이 있는데, 올해 나온 책으론 무하마드 유누스의 <사회적 기업 만들기>(물푸레, 2011), 정인철의 <빅 소사이어티>(이학사, 2011)이 더 눈에 띈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추천한 책은 배리 아이켄그린의 <달러 제국의 몰락>(북하이브, 2011)이다. "급속히 약화된 미국의 경제적 지위와 달러의 운명을 다룬 책"으로 "저자는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력 없이는 세계를 지배하는 통화가 될 수 없고, 그런 점에서 달러는 경제력에 비해 ‘과도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달러화의 운명과 몰락을 다룬 책은 많이 나와 있지만 엘렌 호지슨 브라운의 <달러>(이른아침, 2009)가 기본서인 듯하다. 달러제국의 몰락을 부추기는 월스트리의 탐욕에 대한 고발서로 <모든 악마가 여기에 있다>(자음과모음, 2011)도 덧붙여 읽어봄직하다.  

6. 과학 

김웅서 한국해양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이 고른 과학책은 이정임의 <인류사를 바꾼 100대 과학사건>(학민사, 2011)이다. "과학책 중에는 한 주제를 깊이 파고들어 쓴 책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단편적인 과학 지식을 나열한 책도 있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한 주제에 대한 깊은 지식을 얻을 수는 없지만, 읽고 나면 과학 만물박사가 된 포만감을 느낀다." 는 평이다. 그런 의미에선 과학서라기보다는 교양서로 분류됨직하다. 교양서 범주에 속하는 과학서로는 러셀의  <과학의 미래>(열린책들, 2011)과 제이콥 브로노우스키의 <과학과 인간의 미래>(김영사, 2011)이 최근 나란히 나왔다. '100대 사건'을 음미해보면서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예술서는 심정민의 <춤을 빛낸 아름다운 남성 무용가들>(북쇼컴퍼니, 2011)이다. "여성이 중심이 되고 남성이 주변부를 맴도는 무용의 영역에서도 뛰어난 실력과 자기만의 표현력으로 무용의 역사를 빛낸 남성 무용수들이 있었다. 우리는 <목신의 오후>에서 160cm의 작은 키에 몸에 비해 지나치게 굵은 다리를 지닌 바슬라프 니진스키와, 예술적 표현의 진정한 자유를 찾아 옛 소련에서 서방으로 목숨을 건 탈출을 한 미하일 바리쉬니코프를 기억한다."고 소개하는데, 거명된 무용수들이 모두 러시아 발레리노여서 마음에 와 닿는다(책의 표지 또한 니진스키다). 하지만 러시아 발레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서도 눈에 띄지 않는 건 유감이다(오래전에 나온 가벼운 책들이 두어 권 있을 뿐이다).  

   

예술쪽에는 두 권의 사진집을 덧붙이고 싶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위대한 여정>(에디터, 2011)은 야생동물의 장대한 여정을 담은 책이고, <퓰리처상 사진>(현암사, 2011)은 제목 그대로 퓰리처상 사진부문 수장작들을 모은 '70여년간의 연대기'이다. 자연과 역사가 사진 속에서 어떻게 포착됐는지 '관람'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한국학의 즐거움>(휴머니스트, 2011)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각 분야의 전문가 22명에게 던지고 그 대답을 모아놓은 <한국학의 즐거움>은 막상 즐거움의 성찬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스물두 가지 몽타주’라고 할 만큼 시선도 다양하고 초점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한국학의 즐거움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고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윤곽을 제시한다."고 추천의 이유를 밝혔다. 주영하 교수의 '한국의 음식' 편은 흥미로운 글 가운데 하나인데 '음식인문학' 쪽 책들도 교양서로 손에 들어봄직하다. 무엇을 먹는지가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처럼 한국음식은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말해준다는 게 전제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고른 실용서는 최수연의 <소 - 땅과 사람을 이어주던 생명>(그물코, 2011)다. 저자는 "자연을 사랑하는 글을 쓰고, 그 사랑을 사진에 담는 일로 밥을 먹는 사람"이라고. <논 - 밥 한 그릇의 시원>(마고북스, 2008)이 전작이고,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이가서, 2009)에도 사진을 실었다. "책은 사람과 소의 관계망을 키워드로 삼았다. 달구지, 쇠죽, 우시장, 뿔, 부리망, 외양간…. 사진을 위주로 하다 보니 판형을 키웠다. 그렇다고 글을 소홀하게 여기지 않았다. 양이 적다고 가벼운 것은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사진을 설명한 캡션에 그렇게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설명력이 놀랍다."는 평이다.   

10. 러시아의 역사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러시아의 역사'다. 랴자노프스키(랴자놉스키)의 <러시아의 역사> 개정판(제8판)이 번역돼 나온 기념이다. 고대로부터 포스트소비에트 시기까지를 포괄하고 있는 러시아사로서는 아주 드문 경우인데 표지도 맘에 든다. 더불어 올해는 소련 해체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때맞춰 나온 책이 토니 클리프의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첵갈피, 2011). 오래전에 나온 <소련 국가자본주의>(책갈피, 1993)의 개정판으로 보인다(실제로 개정판인지는 책을 받아봐야 알겠다). 아무려나 러시아사를 한번 더 통독해보는 게 나의 '겨울 준비'다... 

11. 11. 05.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다. 독일의 평론가 라니츠키는 평하기를 "나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괴테의 <친화력>보다 더 나은 독일어 장편소설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을유세계문학전집의 첫권으로 나왔을 때부터 벼르고는 있었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완독할 기회를 갖게 됐다. '마의 산' 등정과 함께 2011년은 작별을 고하게 되겠군. 한해 한해가 그렇듯이 책과 함께 저물어가는 것이 독서가의 운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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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mun 2011-11-05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하지만 저번에 중동 이슬람? 관련해서 역사와 그 시점으로 본 세계사 그런 류의 도서 목록 올려주셨던 것 같은데 찾을수가 없네요. 혹시 검색어라도 좀 알려주실 수 있을신가요?

로쟈 2011-11-05 16:26   좋아요 0 | URL
http://blog.aladin.co.kr/trackback/mramor/5018471 말씀인 듯한데요. '이슬람'을 태그로 검색하셔도 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1-05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차를 보니 토니 클리프 책은 예전 <소련국가자본주의>와 동일하군요.부록은 신판에서 두 개 더 추가했네요.

로쟈 2011-11-05 16:27   좋아요 0 | URL
<소련국가자본주의>도 갖고 있긴 한데, 혹시 몰라서 새책도 주문했습니다.^^

2011-11-06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6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9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6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7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11-0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의 산. 독일스러움 그 자체라고 누군가 말했었는데, 그 길이와 중압감 때문에 기피해왔던 책이네요. 저도 올 해는 [마의 산]과 함께 저물어가볼까요? ㅎㅎ
추천 페이퍼 좋네요. 잘 보고 갑니다, 로쟈님 :)

로쟈 2011-11-09 07:45   좋아요 0 | URL
네 악명(?)도 높은 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