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됐던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우물이있는집, 2012)이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길래 한마디 적으려다가 이번주 시사IN을 읽고 방향을 틀었다. '세계의 베스트셀러' 특집이 눈에 들어서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 중국, 일본, 5개국의 지난해 베스트셀러를 해외편집위원들이 전해주는 기사다. 미국과 프랑스, 일본의 베스트셀러는 이미 국내에도 소개돼 있길리 페이퍼로 적어둔다.

 

 

먼저 미국의 베스트셀러는 마이클 루이스의 <부메랑>(비즈니스북스, 2012)이다. 미국 금융위기를 파헤친 <빅숏>(비즈니스맵, 2010)의 속편으로 유럽 금융위기를 다룬 책이라고. 아이슬랜드, 그리스, 아일랜드, 독일에 각각 1부씩 할애하고 마지막 5부에서는 이들 나라의 금융위기를 미국과 비교한다. 권웅 편집위원은 이렇게 적었다.

루이스는 200년 이후 시작된 금융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대형 투자사들에 의한 부실 대부금이 세계 도처의 정부와 중앙은행에 흘러들어간 이상 해당국들이 언젠가 무너질 가능성은 상존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부메랑>은 금융위기에 처한 나라들에 대한 '현장 보고서' 차원을 넘어 독자에게 '결국 이런 상황에선 일이 터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확신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반면교사가 된다.

 

 

프랑스의 베스트셀러는 팽송 부부의 <부자들의 대통령>(프리뷰, 2012)이다. 최근에 번역본이 나온 책인데, "사르코지 집권 5년을 조명한 사회학 보고서"로서 프랑스에선 1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고 한다. 저자들이 바로 낸 후속작이 <5년 임기, 50억>이란 책. 사르코지 집권 5년 동안 이루어진 부자 감세를 다룬 책이라는데, 감세로 인해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돈이 약 50억 유로(약 7조3500억원)에 이른단다. "부자 대통령과 동거하는 가난한 국민에게 경종을 울린 책"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참고로, 작년 1월초에 소개된 프랑스의 베스트셀러는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돌베개, 2011)였다.

 

 

 

독일의 베스트셀러로 꼽힌 책은 마르틴 베를레의 <나는 정신병동에서 일하고 있다>이다(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경영 합리화'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를 협박, 착취하고 해직시키는 경영주의 회사를 저자는 '정신병동'이라고 부른다. '유럽의 모범생'이라는 독일 기업에서도 온갖 부조리가 판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고. 독일의 저명한 '비즈니스 코치'라는 저자의 책은 국내에도 몇권 소개돼 있다.

 

 

 

중국의 지난해 베스트셀러는 장웨이웨이의 <중국의 물결: 문명형 국가의 흥기>다(아직 소개되지 않았다). 중국의 정치적 후진성에 대한 서방의 비난을 정면에서 반박하고 있는 책이라고. 제목에서부터 그런 인상을 받을 수 있는데, 저자는 중국이 질적인 면에서 여타 국가와 다르며 문명형 국가인 중국의 흥기는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단다. 중화주의적 색채가 농후한데,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충족시켜준 덕분인지 지난해 베스트셀러 톱10에 올랐다 한다.

 

 

 

일본의 베스트셀러는 이와사키 나쓰미의 <만약 고교야구의 여자 매니저가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읽는다면>이 꼽혔다. 국내엔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동아일보, 2011)이라고 소개된 책이다. "고교 2학년생인 여자 주인공이 야구부 매니저를 맡게 된 후 팀을 전국 고교대회가 열리는 고시엔에 출전시키기 위해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읽고 팀을 하나씩 개혁해간다는 내용"이라고. 아주 '일본스러운' 만화이다. 덕분에 지난헤 일본에선 피터 드러커 붐이 일었다고.  

 

 

 

그러고 보니 러시아에서는 지난해 어떤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는지 궁금하다. 국내에선 그런 소식도 편하게 알려주는 지면이 없어서 아쉽다...

 

12.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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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읽을 만한 책'에 올려놓기도 해서 헤겔을 읽어보려고 하는데 주문한 프레더릭 바이저의 <헤겔>(도서출판b, 2012)은 오늘에야 출고가 된다고 하기에 대신 펼친 건 피터 싱어의 <헤겔>(시공사, 2000)이다. 12년전에 나왔고 지금은 절판된 책. 당시 철학자/사상가들 입문서로 '시공 로고스 총서'가 30권 가량 출간된 바 있는데, 그중 하나다. 원저는 1983년에 나왔다. 무려 30년 전 책이다(싱어는 현재 프린스턴대학의 생명윤리학 석좌교수로 있다).

 

 

그렇다고 그렇게 '올드한' 책만은 아니다. 바로 지난해에 옥스포드대학출판부에서 나오는 '아주 짧은 입문서' 시리즈의 하나로 재출간됐기 때문이다(연도를 잘못 봤다. 작년이 아니라 2001년에 출간됐다). 싱어는 이 시리즈의 <마르크스>도 쓰고 있는데, 시리즈판으론 2000년에, 그리고 원래는 1980년에 출간된 책이다. 국내에서도 새 번역본으로 단장하고 출간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미 '아주 짧은 입문서' 시리즈의 책들이 한겨레출판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계속 나오고 있으니까 그런 분위기를 탈 수도 있겠고.  

 

오래전 기억이지만 지젝을 읽기 전에 읽은 헤겔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난해하기만 한 철학자여서 싱어의 <헤겔>도 별반 인상적이지 않았다. 어제 배송받은 영어본을 보니 짧은 분량 대비로는 가장 훌륭한 소개서라는 추천사가 붙어 있다. 영어권에서 30년의 세월을 버텨낸 비결이 있을 터이다.

 

머리말의 시작은 이렇다. "19세기나 20세기의 어떠한 철학자도 헤겔만큼 세계에 엉청나게 영향을 준 철학자는 없다. 이렇게 결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예외는 아마 칼 마르크스일 것이다 - 마르크스 자신은 헤겔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니까 마르크스를 포함해서 19세기 이후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철학자가 헤겔이다. 하지만 그런 '영향'만을 고려하여 헤겔을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헤겔의 영향만큼은 헤겔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헤겔 철학이 그 자체로 연구될 만한 가치가 있다.(11쪽)

헤겔 전공자의 번역이긴 하지만 다소 투박한데(헤겔적 번역?) 이 대목의 원문을 보니 이렇게 돼 있다. "Hegel's impact alone makes it important to understand him; but Hegel's philosophy is in any case worth studying for its own sake." 다시 옮긴다면 "헤겔의 영향만으로도 그를 이해하는 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런 영향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헤겔 철학은 그 자체로 충분히 공부할 만한 가치가 있다." 

 

머리말에서 싱어는 짧은 분량 때문에 불가불 헤겔의 저작에서 다루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한 양해를 구한 다음에 자신의 헤겔 이해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열거한다. 옥스포드대학 시절의 헤겔 강의를 담당했던 교수들과 헤겔 연구서의 저자들이다. 특별히 네 명의 저자가 쓴 네 권의 저작을 꼽고 있는데, 하나만 빼고 나머지 세 권은 국내에 소개돼 있다. 

 

 

맨먼저, 리처드 노먼의 <헤겔의 현상학>(1976). 이 책은 '리차드 노만'이란 저자명으로 <헤겔의 정신현상학 입문>(한마당, 1984)이라고 번역됐었다. 그리고 이반 졸의 <헤겔 형이상학 입문>(1969). 이 책은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다. 지금은 영어권에서도 희귀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헤겔>이란 제목을 단 두 권의 책인데, 월터 카우프만의 <헤겔>(1965)과 찰스 테일러의 <헤겔>(1975)이다. 카우프만의 책은 <헤겔>(한길사, 1985)로 나왔었다. 테일러의 두툼한 <헤겔>은 번역되지 않았지만, 대용인 <헤겔과 현대사회>(1979)가 <헤겔철학과 현대의 위기>(서광사, 1988)로 번역돼 있다. 이 세권은 모두 갖고 있고 나대로 들춰보았으니 헤겔에 대해서도 할 만큼은 했다는 생각이 든다.

 

 

 

'헤겔의 시대와 생애'를 첫 장으로 하는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듯싶지만, 참고문헌에는 아무래도 약간 보충된 게 있다. 대표적인 게 헤겔의 전기에 관해선 테리 핀카드의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이제이북스, 2006)을 참고하라는 것. 헤겔의 정치철학과 관련한 참고문헌 가운데 국내에 소개된 책은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중원문화, 2011),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2>(민음사, 1989) 등이다. '헤겔을 읽을 시간'이라고 입을 열었기에 몇마디 더 얹었다...

 

12. 02. 01.

 

 

 

P.S. 저녁나절에 예정보다 하루 일찍 프레더릭 바이저의 <헤겔>(도서출판b, 2012)이 배송됐다. 책은 2010년판을 옮긴 것인데 원서에는 2005년 초판에 들어있던 '좀 더 읽을 거리' 대신에 '헤겔 용어 해설'이 실렸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번역본에는 둘다 옮겨졌다. 바이저는 옥스포드에서 찰스 테일러와 이사야 벌린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테일러의 제자답게 가장 훌륭한 헤겔 입문서로 테일러의 <헤겔>(1975)를 꼽고 있다(번역되기엔 너무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바이저 역시 이반 졸의 <헤겔 형이상학 입문>(1969)를 "매우 명확하지만 짧은 입문을 제공"한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싱어와 달리 카우프만의 <헤겔>(1966)에 대해선 "질이 매우 고르지 못하며 낡았다"고 평가절하한다. 현재 시라큐스대학의 철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바이저의 책으론 <낭만주의의 명령>(그린비, 2011) 외 <이성의 운명>과 <독일 관념론> 등이 더 있다. 영어권에서는 독일 관념론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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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지각원고를 보내고 잠시 남는 시간을 이용해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벌써 달력 한장을 넘기게 돼, 이제 2월이다. 윤년이라 올해는 29일까지 있다. 방학이 하루 더 늘어난 셈인가? 어차피 무급 방학이니 그게 그거이긴 하지만, 괜히 시간을 더 번 듯해서 기분이 나쁘진 않다. 하루 더 책을 읽을 수 있겠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책은 신경숙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문학동네, 2011)이다. 나로선 이미 지난달에 꼽아놓았으니 덧붙일 말은 없다(<모르는 여인들>을 모르는 독자도 없을 것이고). 독서기간이 한달 연장된 걸로 치면 되겠다(그런 책이 이달에 몇 권 있다). 내친 김에 한국문학쪽으로만 고르면, 젊은 작가들의 신작 소설집 두 권을 읽어봐도 좋겠다. 황정은의 <파씨의 입문>(창비, 2012)와 한유주의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문학과지성사, 2011)가 그 두 권이다. 두 작가 모두 신경숙 문학과는 색깔이 많이 다르지만 든든한 중견작가로 발전해나가길 기대한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고른 역사서는 심재우의 <네 죄를 고하여라>(산처럼, 2011)이다. 이 역시 지난달에 꼽았던 책이다. '법률과 형벌로 읽는 조선'이 부제다. "정말이지 법률이나 형벌 용어는 가장 어려운 한자말로 되어 있어,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면 도저히 자신 있게 대중적으로 풀어쓰지 못하는 분야이다. 이 책을 계기로 역사대중서와 TV사극에 있어 한 단계 진전된 형벌 장면이 생생하면서도 정확하게 묘사되기를 희망한다"고 김교수는 적었다. 사실 '포도청'이란 말은 너무도 친숙하지만, 조선의 형벌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바는 많지 않다. <네 죄를 고하여라>를 계기도 좀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책들이 출간되면 좋겠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이 분야의 책을 찾다가 발견한 게 허남오의 <너희가 포도청을 어찌 아느냐>(가람기획, 2001) 정도였다. 어린이용으로 <조선시대 포도청에 가다>(가나출판사, 2008)도 나와 있군...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철학책은 슈테판 클라인의 <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웅진지식하우스, 2011)이다. 저자가 철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생물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특이한 경력을 갖고는 있지만 철학서로 분류되진 않는 책인데, 넓은 의미의 인문교양서로 읽을 수 있겠다. 이제 보니 <시간의 놀라운 발견>(웅진지식하우스, 2007), <행복의 공식>(웅진지식하우스, 2006) 등 댓권의 책이 소개돼 있는 베스트셀러 저자다.

 

 

 

이타주의에 대해서는 원제가 '미덕의 기원'인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사이언스북스, 2001), 마이클 토마셀로의 <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이음, 2011), 최정규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뿌리와이파리, 2009) 등이 단골로 거론되는 책이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데이비드 건틀릿의 <커넥팅>(삼천리, 2011)이다. 소셜네트워크혁명을 다룬 책인데, "저자는 웹2.0이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고유의 철학이자 방법론이라고 한다. 존 러스킨과 유튜브, 윌리엄 모리스와 위키피디아, 이반 일리치의 상생ㆍ공존과 소셜네트워크를 연결시킨 저자의 발상은 파격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고 소개된다. 지난 세기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 <디지털이다>(커뮤니케이션북스, 1999)가 디지털시대의 철학을 제시한 걸로 화제가 됐던 게 생각난다. 어느새 '올드'한 얘기인가. 디지털혁명의 진화가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갈지 궁금하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이노베이터 DNA>(세종서적, 2012)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필두로 어떻게 세계적인 혁신들이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조사하고 분석한 이 분야 최고 학자들의 책"이다. 책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을 많은 아랍 국가들처럼 혁신을 이루기 어려운 나라로 지목하고 있다는걸로 보아 저자들이 알 건 다 아는 듯싶다. 공저자 중의 한 명인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혁신에 대한 다른 책들의 저자로서 잘 알려져 있다고 해서 찾아보니, 꽤 여러 권의 책이 뜬다. 혁신할 기업만 갖고 있다면 읽어볼 만하겠다.

 

 

6. 과학

 

김응서 위원이 추천한 책은 수학책이다. 안소정의 <배낭에서 꺼낸 수학>(휴머니스트, 2011). '배낭'이란 말이 비유가 아니어서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자 고대 수학사의 무대가 되었던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인도로 수학을 만나러 가는 여행기"라 한다. 지난 12월에도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수학책을 꼽은 적이 있는데, 다시 검색해보니 '축구공 위의 수학자'로 잘 알려진 강석진 교수의 <수학의 유혹>(문학동네) 시리즈도 눈길을 끈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예술서는 박철호의 <베를린, 천 개의 연극>(반비, 2011)이다. "저자의 손을 잡고 베를린 곳곳의 극장을 함께 따라다니며, 인생의 희비극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책". 오랜만에 연극 개론서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 무엇인지 찾아봤다. 밀리 배린저의 <연극 이해의 길>(평민사, 2010)이다. 흠, 연극 본 지도 오래됐군...

 

 

 

8. 교양

 

내가고른 교양서는 최재천 교수의 <다윈 지능>(사이언스북스, 2012)이다. 다윈의 생각에 대한 최적의 안내자가 진화론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다윈 지능>은 진화론에 대한 우리의 이해 수준을 재볼 수 있는 유용한 척도이다. 진화란 무엇인가? “세대 간에 일어나는 생물체의 형태와 행동이 변화”이다. 그리고 다윈의 자연선택론은 이 모든 변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지난 150여 년간 많은 비난과 오해에 휩싸였지만 이제는 생명의 의미와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훌륭한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다윈의 생각에 대한 최적의 안내자를 따라가다 보면 그처럼 간결한 이론이 얼마나 많은 현상과 행동을 우아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지 경탄하게 된다.

찰스 다윈 서간집 <기원>과 <진화>도 이 참에 같이 읽으면 좋겠다(최재천 교수가 지휘하는 다윈 저작의 새 번역판들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나는 구입하는 것까지가 이달의 목표다.

 

 

 

9. 실용

 

손수호 위원이 추천한 실용서는 차동엽의 <잊혀진 질문>(명진출판, 2012)이다. 특이한 기원을 갖고 있는 책인데, 삼성의 故 이병철 회장이 던진 질문들에 대한 신부님의 답변이 24년만에 한권의 책으로 묶였다고. '질문'이라고 하니까 떠오르는 책은 존 판던의 <이것은 질문입니까?>(랜덤하우스, 2011)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입학면접시험 문제들에 대해 저자가 답한 책. 거기에 보태자면 교양과학서에 들어갈 책이겠지만, 37명의 과학자가 각자가 생각하는 마음과 생명, 그리고 우주에 대해 털어놓는 책 <과학자처럼 사고하기>(이루, 2012)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고등학생 정도라면 충분히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을 듯싶다.   

 

 

 

10. 헤겔

 

내가 따로 고른 주제는 '헤겔'이다. 프레더릭 바이저의 <헤겔>(도서출판b, 2012) 덕분에 기획한 것인데, 수전 벅모스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문학동네, 2012)와 라나지트 구하의 <역사 없는 사람들>(삼천리, 2011)까지 뻗어나가면 좋겠다.

 

 

헤겔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서로는 한스 프리드리히 풀다의 <헤겔>(용의숲, 2010)이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이다. 피터 싱어의 <헤겔>(시공사, 2000)이 간결한 입문서이고, 테리 핀카드의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이제이북스, 2006)이 규모 있는 평전이지만 두 권 모두 절판된 상태다. 다시 춮간되면 좋겠다.  

 

12. 01. 30.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시경>이다. 여러 번역본 가운데 김학주 선생의 <새로 옮긴 시경>(명문당, 2010)과 이기동 교수의 <시경강설>(성균관대출판부, 2004)을 기본서로 골랐다. <시경>에 대한 깊이 있는 책은 의외로 찾기 어려운데, 마르셀 그라네의 <중국의 고대 축제와 가요>(살림, 2005) 정도가 그나마 연구사적 의의를 갖는 책이다. 이 책이 포함된 '살림 클래식'에는 그라네의 또다른 책 <중국의 고대 춤과 전설>도 근간예정으로 돼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소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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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배송받은 원서 가운데 하나는 C. B. 맥퍼슨의 <소유적 개인주의의 정치이론>(옥스포드대출판부, 2011)이다. 원래는 1962년에 출간된 책인데, 반세기가 지나서도 다시 출간된 걸 보면 고전으로서의 의의를 인정받는 듯싶다. 페이퍼백치곤 좀 비싼 게 흠이지만... 

 

 

맥퍼슨의 책은 두 종의 번역본이 나왔었지만 현재 모두 절판된 상태다. 먼저 나온 것은 황경식, 강유원 공역의 <홉스와 로크의 사회철학>(박영사, 1990)이다(존 롤스를 전공한 황경식 교수는 서울대 이전에 동국대에 재직한 적이 있고, 강유원 씨는 대학원생이었다. 역자 서문을 보면, 이 책은 대학원 강독이 계기가 돼 번역됐다). 원제인 '소유적 개인주의의 정치이론'은 부제로 붙어 있다. 원서의 부제가 '홉스에서 로크까지'인 걸 고려하면 바뀐 제목이 이상한 건 아니다. 하지만 17세기 영국의 정치이론을 다루면서 책은 로크와 홉스의 정치이론 외에 '수평파'와 '해링턴'에게도 한 장씩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이듬해 <소유적 개인주의의 정치이론>(인간사랑, 1991)이라는 원래 제목으로도 나왔다. 당시엔 저작권 같은 게 없을 때여서 두 종의 책이 같이 서점에 깔릴 수 있었다.

 

나는 <홉스와 로크의 사회철학>을 갖고 있지만, 따로 보관중인 책이어서 엊그제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원서를 이번에 구한 김에 읽어보려는 생각에서다. 사실은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책이지만 원서와 함께 읽어보려고 미뤄둔 참이었는데, 마침 작년에 원서가 재출간된 걸 얼마전에 알았다.

 

단행본으론 60년대초에 나왔지만, 맥퍼슨이 자신의 주장을 개진한 건 50년대 초부터이다. 그 주장의 핵심은 17세기부터 19세기 영국 정치사상의 저변에 흐르는, 즉 여러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홉스부터 로크까지를 관통하는 통일적인 아이디어가 '소유적 개인주의'라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이론의 뿌리라고 말한다. 만약 현대의 자유민주주의에 어떤 난점이 있다면, 그 기원은 '소유적 개인주의'에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동시에 그러한 사상이 복잡해진 20세기(즉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 즉 자유주의적 전통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계승하기 위해서는 '소유적 개인주의'라는 가정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교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개인적으론 이 책을 홉스와 로크를 읽기 위한 가이드북으로 선택했다. 정치의 해를 맞아 몇권의 정치철학 고전을 읽어볼 계획을 하고 있는데,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나남출판, 2008)도 그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존 로크의 <통치론>(까치글방, 1996) 등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저명한 러시아사가인 리처드 파이프스의 <소유와 자유>(나남출판, 2008)도 그런 맥락에서 읽어보려는 책이다(너무 오랫동안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다). 덧붙여 국내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 어떤 전제하에 그런 얘기를 하는지 살펴보는 데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설사 한국식 자유민주주의란 따로 있는 거라 할지라도 '본토'의 사상을 무시할 수는 없을 터이다).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자유주의는 진보적일 수 있는가>(폴리테이아, 2011)를 깊이 읽을 때도 필요하겠다 싶었다. 여하튼 이런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책이기에, 재출간되면 좋겠다...

 

12. 0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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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절판됐기에 지난주에 중고로 구입한 책의 하나는 이한우의 <우리의 학맥과 학풍>(문예출판사, 1995)이다. 구입하고 보니 아주 새책이었는데, 저자가 한 선배기자에게 준 증정본이었다. 책을 열어본 흔적도 없는 걸로 보아 곱게 책장에 모셔두었다가 내놓은 듯싶다. 오래전 대학원시절에 서점에서 좀 읽어보다가 책값이 비싸 구입은 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 정가 8,000원이면 지금 체감으로 20,000원은 되지 않을까. 대학원생의 호주머니가 그리 넉넉지 않았던 시절이다.

 

 

머리말에 따르면 책은 92년 말부터 94년 7월까지 문화일보에 연재한 '한국의 학맥-학풍-학파' 시리즈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저자는 94년 12월부터 조선일보에 몸담고 있다). 1961년생이니가 30대 초반 기자의 패기와 호기의 산물이었다. 학부에선 영문학을, 대학원에선 철학을 전공하여 박사과정까지 마친 특이한 이력 때문에 저자는 본격 학술기사를 쓸 수 있었다(저자가 옮긴 책으로 리차드 팔머의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조지아 윈키의 <가다머> 등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이제 어느덧 20년 전 얘기니 '우리의 학맥과 학풍'이 그간에 얼마나 달라졌는지, 좀 나아졌는지 다시 점검해보는 책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에 일요일 아침에 이 책 얘기를 꺼낸다.

 

한데 쉽지는 않을 듯싶다. 20년 전보다 분야도 많아지고 규모도 훨씬 커진 학계를 한 사람이 총체적으로 다룬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학계 내부에서 이런 반성적 점검이 이루어지길 기대할 수도 없다. 보통 자화자찬으로 끝날 테니까. 저자가 20년 전에 취재를 하기 위해 학자들을 만나면서 느낀 소감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 학계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당시 상황이지만 저자의 진단으론 이런 이유들이 끼어든다.

여기에는 각종 문제들이 뒤얽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우리나라에는 힘들여 학문적 업적을 남겨도 누구 하나 제대로 평가해 주는 매체가 없다는 것이다.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학회지에서도 그런 기능을 전혀 못하고 있다. 동시에 학문적 열정은 고사하고 별다른 연구성과가 없어도 우리 학계는 대충 지낼 수 있게 돼 있다. 뛰어난 학자든 사이비 학자든 회갑이나 정년퇴직 때 '기념논문집' 하나씩 받기는 매한가지다. 옥석을 가리는 일이 시급한 것이다.

당시엔 시급하다고는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듯싶다. 제도로서의 학계는 사회와 무관하게 돌아가고 그에 대한 문제제기도 별반 없어 보이니까. 교수신문 정도가 통로 역할을 해주는데, 그걸 구독하는 일반독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현실에 대해 새삼스런 유감을 표할 일은 아니고, 나의 관심은 '부록' 정도에 머문다. 예전에 서점에서 읽을 때도 통독한 건 부록이었다. 번역과 표절에 대한 고발을 담고 있는데, 지금 다시 읽어도 아주 신랄하다.

 

저자는 "이 글은 한국 학계의 실상을 실례로 들어 고발한 내용으로, 지은이가 <신동아> 1993년 12월호, 1994년 2월호에 각각 발표했던 글들을 전재한 것임."이라고 설명해놓았다. 거의 '나꼼수' 수준의 폭로여서(실명 대신에 이니셜로 거명하고는 있지만 거론된 책들을 검색하면 저자나 번역자를 알 수 있는 수준이다) 당시에도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싶다. 번역에 관한 글 제목은 '번역, 제발 제대로 합시다!'이고 표절에 관한 글은 '베끼기에서 시각 도용까지, 한국 학계의 표절 백태(百態)'이다. 기성의 교수들에겐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테지만 지금 대학원생이나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부생이라면 일독해보면 좋겠다. '우리의 학풍과 학맥'에 대해서.

 

어제 읽다가 웃음을 터뜨린 에피소드 하나. 학계에 표절에 관대한 전통이 생긴 건 50-60년대 표절이 마구잡이로 이루어지면서부터라는데, 서울대 사대 교수로 재직했던 K교수는 평소의 이런 말을 자기 말처럼 자주 들먹였다고 한다. "철학자는 지금까지 세계를 해석만 해왔다. 철학자의 본령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의 말이다. 하지만 한동안 우리 지식인 사회에서는 그 구절을 인용할 때 출처를 K교수로 밝혔다고. "다소 과장된 얘기지만 50-60년대 우리 학계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쓴웃음을 짓게 하지만, 그렇다고 웃음을 터뜨릴 만한 대목은 아니다. 나를 웃게 만든 건, 오타이다. 마르크스 인용 구절이 실제 책에는 이렇게 돼 있다. "철학자는 지금까지 세계를 해석만 해왔다. 철학자의 본령은 세계를 번역하는 것이다." '변혁'이 '번역'으로 바뀌어 있는 것. K교수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면, 표절이 아니라 패러디, 나름 독창적인 문제의식을 담은 패러디다. 하지만 짐작엔 오타로 보인다. 오타라도 매우 교훈적이고 계발적이어서, 의도된 오타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렇다, "철학자의 본령은 세계를 번역하는 것이다!"

 

그렇게 달라진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우리 학계는 '본령'에서 좀 벗어나 있다. 세계를 번역하는 일에도, 서양고전이나 문제적인 저작을 번역하는 일에도 굼뜨기 때문이다. '2013년 체제'가 되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을까. 좀 나아질 수 있을까. 절반의 의심을 섞어서 기대해본다...

 

12. 01. 29.

 

 

 

P.S. <우리 학맥과 학풍>을 떠올린 건 지난 연말쯤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의 회고록 <역경의 행운>(다므기, 2011)을 읽었기 때문이다(저자는 한국 사회사가 주전공 분야다). 완독한 건 아니고 몇 대목을 읽었는데(특히 5부 '상식을 초월한 학계의 부조리: 내가 겪은 역경과 고난'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기억에 남는 인물'을 꼽은 2부에서 '<우리의 학맥과 학풍>의 저자 이한우 논설위원'도 거명하고 있다. 책의 요지를 간추리고 있는데, 먼저 책소개.

이한우 논설위원은 그의 저서 <우리의 학맥과 학풍>(문예출판사, 1995)에서 자신의 학문 이력을 먼저 소개한 후 동양철학, 서양철학, 역사학, 사회학, 정치학, 법학 등 6개 학문 분야가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연구됐으며 그 성과와 반성할 점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는 학계에 몸담고 있지 않으므로 공평하고 객관적인 관찰을 할 수 있었다. 그는 학계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고 할 수 있겠다.(53쪽)

저자는 말미에서 이 책 이후에 학계의 실상과 성과를 점검하고 비판한 책이 더 나오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지적도 보탠다. 동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는 동서양의 책들을 많이 읽었으며 박학할 뿐 아니라 학계에 몸담은 사람은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도저히 할 수 없는 객관적이고도 정확한 학문적 평론을 하였는데, 가까운 장래에 이러한 평론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어 안타깝다. 그가 말했듯이, 그가 1990년대 초까지 우리 학계의 연구 성과를 비판한 이후 2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학계의 연구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의 비판은 여전히 타당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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