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의 <죄와 벌>이 무대에 오른다. 일단 극단 명품극단의 <더 게임-죄와 벌>이 오늘부터 3월 11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명품극단의 전작 <죄와 벌> 라스콜리니코프와 소냐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죄와 벌>은 라스콜리니코프와 포르피리를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연출가인 김원석은 거미줄에 걸린 벌레와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의 절규를 통해 우리를 옭죄고 있는 법, 도덕, 규칙과 제도라는 억압과 구속을 이야기한다. 대학로에서 뼈가 굵은 남명렬이 뽀르피리 역을, 오경태가 라스꼴리니꼬프 역을 맡았다. 여배우 김호정은 쏘냐로 출연한다.(스포츠경향)

 

그리고 극단 피악도 이달 27일부터 4월 1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죄와 벌>을 선보인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지난 2010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연기와 춤이 어우러진 씨어터 댄스 스타일의 공연이라고. 

라스꼴리니꼬프 역에는 지적이면서도 강한 연기에너지가 돋보이는 배우 김태훈(현 세종대학교 문화예술콘텐츠대학원장)이 맡았다. 최홍일, 정수영, 문경희 등이 라스꼴리니꼬프의 독백 사이사이 등장하는 주요 배역으로 출연한다. 현대무용 안무가로 잘 알려진 댄스씨어터 까두의 박호빈이 안무를 맡아 새로운 형태의 무대 스타일을 제시한다. 프랑스에서 공연학 박사를 취득하고 유럽에서 공연예술가들과 협력하여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업을 추구했던 나진환의 연출이 기대되는 작품이다.(스포츠경향)

 

명품극단의 <더 게임-죄와 벌>과 관련해서는 지난달에 팸플릿 소개글을 부탁받고 쓴 바 있다. 초고를 옮겨놓는다. 

 

가장 러시아적이면서도 가장 유럽적인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1866)은 이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80)에 이르는 위대한 작가적 여정의 첫 번째 이정표이다. 작가는 문제작 <지하로부터의 수기>(1864)를 통해서 당시 러시아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공리적 사회주의 이념을 공박하고 진정 '살아있는 삶'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죄와 벌>은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동시에 이 작품은 문제적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사상과 선택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사상은 그의 범죄이론에 집약돼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범인(凡人)과 비범인(非凡人)으로 나뉠 수 있고, 비범인은 범인의 한계를 넘어 초법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역사상의 비범인들, 곧 모든 입법자나 건설자들이 바로 그런 권리를 행사해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인간 ‘분류학’에 한정되지 않는다. 가난 때문에 휴학중인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자기 자신이 비범인인가 아닌가였다. 러시아어로 '죄'의 어원적인 뜻은 '한 발작 넘어섬'인데, 그는 자기가 비범인들처럼 모든 장애를 딛고 한 발작 넘어설 수 있는가를 시험해보고자 한다. 전당포 노파 알료나에 대한 살인은 그러한 시험의 의미를 지닌다. 과연 그는 자부심대로 자신이 비범인이란 걸 확인할 수 있었을까.


라스콜리니코프란 이름에서 '라스콜'은 러시아어로 분리/분열을 뜻한다. 살인을 계획하던 단계에서부터 라스콜리니코프는 가족과 친구에게서 자신을 고립시킨다. 이것이 그가 겪는 분리와 소외의 체험이다. 또한 알료나의 이복자매 리자베타에 대한 예기치 않은 추가살인은 라스콜리니코프의 계획과 실행 사이에 괴리를 가져오며 그의 내면에 분열을 초래한다. 예심판사 포르피리의 심문 장면이 보여주는 긴장감은 이러한 내적 분열이 외부로 표출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과연 무엇이 잘못됐다고 느끼며 어떤 고뇌에 빠지는 것일까. 그가  전당포 노파를 죽인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죽였다고 토로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일까.   


고전은 언제나 다시 읽히며 재해석되는 가운데 생명을 유지한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지식인 청년의 고뇌를 담은 <죄와 벌>이 명품극단의 을 통해서 한 번 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사유를 자극한다. 이 공연을 통해서 우리는 라스콜리니코프와 함께 또 다른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12. 03. 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주의 책을 고심 끝에 골라놓는다. 주중에 다룬 마이클 샌델과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들을 빼놓으니 '잔여병력'이 많지 않은 탓이다. 게다가 '이달의 읽을 만한 책'들까지 차출한 상태라서 더더욱. 이번주에는 건너뛸까도 생각했지만 이리저리 둘러보니 그래도 다섯 권은 꼽을 수 있다. 타이틀로 고른 책은 피터 노왁의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문학동네, 2012). "총, 균, 쇠가 인류 문명의 운명을 바꿨다면 현대 문명을 주도하는 것은 전쟁, 포르노, 패스트푸드다.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은 간단하다. 음탕하고, 사람을 살상하고, 건강을 해치는 '나쁜 것들'이 현대 문명을 발전시켜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정말로? 라고 궁금하다면 읽어볼 만하겠다. 거기에 비하면 필립 카곰의 <나체의 역사>(학고재, 2012)는 차라리 점잖은 편. "다양한 문화에서 일어나는 종교적, 정치적, 대중적인 나체 활동을 상세하게 분석해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약 2000년간 나체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프랜시스 콜린스의 <생명의 언어>(해나무, 2012), 로이 앳킨스/레슬리 앳킨스의 <문자를 향한 열정>(민음사, 2012), 아드리엔느 메이어의 <화석 오디세이>(사람과사람, 2012) 등은 개인적인 관심사와 맞아떨어져 모두 반가운 책들이다. 모아놓고 보니 또 빈곤하지만은 않군...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전쟁과 포르노, 패스트푸드가 빚어낸 현대 과학기술의 역사
피터 노왁 지음, 이은진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0원(1%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2년 03월 03일에 저장

나체의 역사
필립 카곰 지음, 정주연 옮김 / 학고재 / 2012년 2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2년 03월 03일에 저장

생명의 언어- 당신의 DNA는 안녕하십니까?
프랜시스 콜린스 지음, 이정호 옮김 / 해나무 / 2012년 2월
20,000원 → 19,000원(5%할인) / 마일리지 600원(3% 적립)
2012년 03월 03일에 저장
절판
문자를 향한 열정- 세계 최초로 로제타석을 해독한 샹폴리옹 이야기
레슬리 앳킨스 & 로이 앳킨스 지음, 배철현 옮김 / 민음사 / 2012년 2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12년 03월 03일에 저장
절판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이 안 읽히거나 글이 안 써질 때 곧잘 빅토르 최의 노래를 듣는다. 주당들이 단골 선술집에 들르는 기분이랄까. 기억엔 그의 노래를 1993년쯤 친구의 방에서 러시아산 CD로 처음 들은 것 같으니 20년 전이다. 그리고 지난 2004년에 러시아에 있던 때에도 자주 들었다. 그땐 내가 산 CD로. 노래는 그런 시간과 정서를 보존한다. 그러고 보니 음악에 대한 나의 취향은 심히 복고적이다. 새로운 것보다는 오래된 노래들이 좋고 편하다.

 

 

 

빅토르 최의 노래를 들으며 신간들을 둘러보다가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에 눈길이 멈춘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한번도 실물은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이유가 없지 않다. 80년대에 나온 번역본도 있지만 다시 번역본이 나온 게 2004년이기 때문이다. <와인즈버그, 오하이오>(글빛, 2004), <와인즈버그, 오하이오>(해토, 2004)라고 그해 말에 거의 동시에 출간됐다. 그리고 이번에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부북스, 2012)라고 한번 더 출간된 것. 그렇게 자주 나오는 건 저자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1876년생, 1941년 몰.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 대표작이 단편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1919)다. 찾아보니 이런 인상의 작가.

 

 

미국 문학사에서의 평가는 단출하다. "앤더슨의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는 이른바 건조체(hard-boiled style)의 대가인 헤밍웨이는 물론 포크너, 샐린저 등의 작가에게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 그러니까 헤밍웨이의 걸작 단편들의 선조 중 한 사람으로 읽어볼 만하다는 얘기다. 국내에 몇 차례 이 단편집이 소개된 형국이지만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지는 못했다. 물론 이상한 일은 아니다. 2005년 1월로 넘어가서야  단신 소개기사들이 몇 개 쓰였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랜덤하우스가 선정한 20세기 영문소설 100권 중 24위를 차지한 책이다. 1915년과 1916년 쓰여졌던 단편 모음집으로 이번에 해토와 글빛 출판사에서 각각 재출간됐다. 번역에 있어 똑같은 문장은 거의 없으나 저자의 뜻은 일맥상통한다."(매경이코노미)

 

"마크 트웨인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로 이어지는 미국 문학사에서중요한 역할을 했던 셔우드 앤더슨의 단편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해토)가 번역, 출간됐다. 1915∼1916년 광고일을 하면서 썼던 단편들을 모은 것으로 가상의 작은 시골마을 와인즈버그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문화일보)

 

"죽은 나무토막, 뒤틀린 괴짜들, 고상하고 가련한 인간 패배자들이 난무하는 고향 마을 풍경을 우화적으로 묘사한 단편소설집."(한겨레)

 

 

 

그렇게 별로 주목받지 못한 게 또한 마음에 든다. 그래서 조만간 영어본과 같이 읽어보겠다는 계획을 세운다(책이 안 읽히는 시간엔 책 읽을 계획을 짠다!). 영어본을 찾아 표지 이미지들을 감상한다. 책은 옥스포드판을 구할 예정이다. 가장 저렴하면서 표지도 맘에 들기에. 그래, 조만간 빅토르 최의 노래를 들으며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읽어보기로 한다. 이런 표정을 짓고 싶은 날에...

 

 

 

12. 03. 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녁으로 아이가 먹자고 한 동네표 피자를 먹으며 이번주 교수신문을 읽다가 몇권의 책이 눈에 띄어 주문했다. 그중 하나는 김봉률 교수의 <어두운 그리스>(경성대출판부, 2011). '사유와 젠더, 민주정의 기원'이 부제다. 저자는 영문학자로 소설발생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다가 고대 그리스에 가 닿게 됐다고. 하지만 관점은 '부정적 발견' 쪽이다.

 

 

저자의 책소개 기사에 따르면 그리스에 대한 관심은 당초 브루노 스넬의 <정신의 발견: 서구적 사유의 그리스적 기원>(까치, 2002)에 의해 촉발됐다. 고대 그리스는 정신을 발명하긴 했지만(밝은 그리스) 그것은 '자아의 폭발'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어두운 그리스). 저자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사유의 기원이 낳은 어두운 산물이라 할 수 있는 과도한 자아, 결핍에서 비롯된 욕망의 주체, 지나친 자기성찰 바로 이것들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의 숭상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정신병리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대 그리스 철학 역시 가부장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전쟁을 만들어내는 지배력 숭상의 사유를 만들어내는 데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리스적 사유가 고대에 한정된 '유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구체적으론 프랑스혁명과 제국주의를 통해서 부활한 그리스, 특히 아테네적 사유는 나치즘과 네온콘 사상으로 이어졌다. "이 '밝은 그리스'가 근대 파시즘의 고향인 것이다. 따라서 '어두운 그리스'는 마틴 버날의 '블랙 아테나'와 만나는 지점이 없다."

 

 

 

저자가 주장하는 '어두운 그리스'의 세가지 핵심을 부제에 따라 정리하면, 먼저 '아레테(탁월성)'에 대한 숭상이다. 이 문화는 "뛰어난 자에게 타자를 지배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로 요약되며, 전쟁은 그 자유의 절정이다. 남성적 자유의 실현 장으로서 전쟁은 가부장제 또한 노골적으로 정당화한다. 저자는 '젠더의 기원'을 통해 "가부장제의 제도화는 평화롭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전쟁과 함께 간다는 관점"을 제시하며 <신통기>를 사례로 든다. 더불어 "문화의 시대인 페리클레스 시대는 남근이 지배적 키워드로 남근을 발기한 헤르메스 신상이 집집마다 대문을 지키고 있었다. 이것 역시 남근지배와 민주정, 침략주의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민주정'의 기원도 사정은 마찬가지. "어떤 훌륭한 제도라도 그것이 전쟁으로 수렴되면 비판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그리고 당연히 궁극적으로 '밝은 그리스는 없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박노자 버전으로 말하면 '당신을 위한 그리스는 없다'? 저자에 따르면 전쟁기계로서 국가'를 발명해낸 것도 '어두운 그리스'라 봄직하다). 너무 비관적인가? "하지만 이런 부정과 회의는 고대 그리스 이후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살아온 사회와 다른 사회가 있을 수도 있다는 대안적 사회에 대한 고민과 상상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저자는 적는다. 

 

 

 

이번 학기에 맡게 된 강의에서 그리스의 대표적인 고전들을 다시 읽어볼 예정이라 좋은 참고가 될 듯싶다. 개인적으론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읽다가 소크라테스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관련서들을 모으고 있다. 그래서 <어두운 그리스>와 함께 <소크라테스의 재판>(작가정신, 2005)과 <소크라테스의 비밀>(간디서원, 2006)도 같이 주문했다. 이미 진즉부터 '어두운 그리스'를 주장해온 박홍규 교수의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필맥, 2005)도 두 번 읽어봐야겠다...

 

12. 03. 01.

 

 

P.S. 정치철학에서 시카고학파의 좌장이자 네오콘의 대부격으로 불리는 레오 스트라우스의 책도 몇권 꺼내놓을 참이다. 그가 편집한 <서양정치철학사1>(인간사랑, 2010), <자연권과 역사>(인간사랑, 2001),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아카넷, 2002) 등이다.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는 벌써 품절이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장 정리는 전혀 진도를 못 빼고 있는데, 어느덧 3월이 코앞이다. 당장 개강이라 머리도 마음도 분주하고 복잡한 상황인데, 일단 하나라도 해치우자는 심정으로 '3월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오늘 할일을 내일로 미루는 게 아니라 내일 할일을 오늘 당겨서 하는 것이니 스스로 치하할 만하다. 겨우내 별로 잘한 일도 없는 것 같으니 봄맞이라도 잘해봐야겠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책은 박완서 선생의 마지막 소설집 <기나긴 하루>(문학동네, 2012)다. 지난달에 1주기를 맞아 출간된 책인데, 최근엔 세계사에서 박완서 소설전집이 22권짜리로 갈무리됐다. 애독자들에게 장서용 컬렉션이 될 만하다. 더불어 생전의 서울대 강의록 <박완서>(서울대출판문화원, 2011)과 여성동아 문우회가 지은 <나의 박완서, 우리의 박완서>(문학동네, 2011)도 작년 봄에 나온 책들이지만 이 봄에 같이 읽어도 좋겠다.

 

 

3월에는 '춘심'에 이끌려 시집들을 손에 들어도 좋겠다. 마침 두 중견 서정시인의 신작도 출간됐다. 장석남의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 2012)와 문태준의 <먼곳>(창비, 2012). 문인수 시인의 <적막소리>(창비, 2012)까지 한권 더 얹어도 좋겠다.  

 

 

혹은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부 마쓰모토 세이초 컬렉션은 어떨까. 장르소설의 독자들에겐 새로운 소식이 아니지만 작은 출판사 두 곳이 의기투합하여 펴낸 '세이초 선집의 첫 두 권 <짐승의 길>(북스피어, 2012)과 (모비딕, 2012)이 출간돼 있다. 장르소설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독자라도 40년 동안 700권의 작품을 쓴 이 미스터리한 일본 '국민작가'에게 눈길을 두어봄직하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고른 역사서는 알베르토 안젤라의 <고대 로미인의 24시간>(까치, 2012).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이후, 일반 독자들의 로마시대사에 대한 식견은 대단히 높아졌다. 이 책 <고대 로마인의 24시간>은 그 내용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2천년 전 고대 로마의 하루 일상을 상정하여 당시 로마인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준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좋은 로마사 대중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는 평이다.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제롬 카르코피노의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우물이있는집, 2003)도 절판된 책이지만 적어둔다. 다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짝을 맞추자면 이디스 해밀턴의 <고대 로마인의 생각과 힘>(까치, 2009)도 보태야겠다. '생활'과 '생각'이란 짝이다.

 

 

개인적으로 박정희 시대의 역사도 3월에 읽어보면 좋겠다 싶다. 계기는 김재홍의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책보세, 2012)였다. 10.26 사건에 관한 공판기록들을 처음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다(영화 <그때 그 사람들>도 다시 봤다). 덕분에 관련서도 몇권 더 구했는데, 이미 갖고 있는 책으론 <박정희의 맨얼굴>(시사IN북, 2011)과 <박정희 정권의 역사>(필맥, 2011)이 작년에 나온 것들이다. 책은 관심이 뻗칠 때 읽어야 하는 것이니 찾아서 모아놓아야겠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책은 허태균의 <가끔은 제정신>(쌤앤파커스, 2012)이다. 교양심리학 책이지만 심리학 카테고리가 따로 없기에 철학분야의 책으로 뽑혔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독자들이 책을 통해 ‘혹시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 봄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주장에 열린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보다 성숙한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주입식 착각에 대한 책으론 엘든 테일러의 <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알에이치코리아, 2012), 그리고 남녀간의 본질적 착각을 다룬 앨런 피즈의 <밝히는 남자 바라는 여자>(김영사, 2012)도 소프트한 심리학책으로 읽어볼 만하겠다.

 

 

좀 하드한 책으로 미셸 푸코는 어떨까. 다시 나온 디디에 에리봉의 평전 <미셸 푸코, 1926-1984>(그린비, 2012)는 두께에 비해선 부드러운 책이고, 프랑수아 퀴세의 <루이비통이 된 푸코?>(난장, 2012)도 푸코의 책을 몇권 읽어본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푸코의 강의록 <안전, 영토, 인구>(난장, 2011)은 도전해 볼만한 책. 요즘 유행하는 '통치성'이나 '생명정치'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갖는 독자라면 더더욱.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도넬라 메도즈 등이 쓴 <성장의 한계>(갈라파고스, 2012)다. 1972년에 나왔던 <성장의 한계>의 30주년 기념 개정판.1992년에 낸 두번째 책 <성장의 한계, 그 이후>에 이은 세번째 경고라 한다. 환경 파괴에 맞선 대안 지속가능한 미래를 모색해보는 책으로 <기후정의>(이매진, 2012)와 <데이비드 스즈키의 마지막 강의>(서해문집, 2012)까지 같이 묶어볼 수 있겠다.

 

 

 

 전지구적 사고 못지 않게, 당면한 우리의 현실과 관련하여 읽어볼 만한 책들도 꼽아본다. 요즘 뉴스타파의 칼럼으로도 친숙한 CBS 변상욱 기자의 <굿바이 MB>(한언출판사, 2012)는 일단 제목만으로도 뭔가 '타파'하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한다. KBS 박에스더 기자의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쌤앤파커스, 2012)는 한국사회에 대한 냉정하면서도 날카로운 성찰이다. 거기에 <또, 라이 가카>(책보세, 2012)도 보탠다. 'MB의 거짓말 100과 사전'이란 부제가 모든 걸 말해준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김훈민/박정호의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한빛비즈, 2012)다. 소개에 따르면 "저자들은 인문학 서재에 있는 신화나 설화, 역사, 문학, 예술, 철학 서적에 모두 경제학이 담겨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단군신화에서 경제문제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경제학의 주요 논제인 시간적 비일치성을, 세계적인 명화에서 과시적 소비를,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법경제학을 찾는다." 나도 책은 진즉에 구해놓고 아직 손에 들진 못했는데, 몇 개 장은 이달에 읽어봐야겠다. 경제쪽으론 단골 저자들의 신간도 눈길을 끈다. 이정전 교수의 <시장은 정의로운가>(김영사, 2012)와 선대인 '세금혁명당' 대표의 <문제는 경제다>(웅진지식하우스, 2012). "이대로 가다간 다 같이 망한다"는 문구가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면 필히 읽어볼 만하다.

 

 

 

6. 과학

 

김웅서 위원의 추천도서는 <예술 속의 과학>(북스힐, 2012)이다. 김 위원에 따르면, "요즘 창조적인 지식인을 육성하기 위해 과학과 예술을 접목한 융합인재교육(STEAM)이 주목받고 있다. 스팀(STEAM)은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예술(Art), 수학(Mathematics)의 영문 첫 알파벳을 따서 만든 용어이다. 예전에는 이공계 학생들이 이과 과목만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인문·예술적 소양이 부족한 전문인으로 양성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창의적인 융합 인재를 필요로 하는 경향이 뚜렷해져, 예술과의 융합, 인문사회과학과의 융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교양과학도서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예술 속의 과학>은 그런 추세에 부응하는 책. 더 찾아보면  박우찬의 <미술, 과학을 탐하다>(소울, 2011)나 홍성욱 외, <예술, 과학과 만나다>(이학사, 2007) 같은 책들이 더러 있었다. '융합 인재'를 필요로 하는 시대라고 하니 고등학생들도 한번 읽어봄직하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책은 하워즈 휴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나무이야기, 2012)다. 할리우드의 전설이 된 거장의 작품세계를 다룬 책. 500쪽이 넘어가는 분량도 무게감을 안겨준다. 영화감독론으로는 인터뷰집 <대니 보일>(마음산책, 2012), 스페인문학 전공자가 쓴 전기순의 <알모도바르 영화>(커뮤니케이션북스, 2012)도 눈길을 끈다. '악동'이었던 알모도바르도 어느새 '노장'이 됐군...

 

 

문득 오래전에 본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는 비디오로 봤고, <욕망의 낮과 밤>과 <하이힐>은 극장에서 봤다. 알모도바르의 인터뷰집도 구했던 기억이 난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잭 머니건의 <고전의 유혹>(을유문화사, 2012)이다. 이렇게 평했다. 

어려운 고전에 대한 길잡이를 자처하는 책은 많지만 잭 머니건의 <고전의 유혹>만큼 유혹적인 책은 드물다. 원제는 <해변의 베어울프>. 중세 및 르네상스문학을 전공했다는 저자가 해변에 접이의자를 펴놓고 중세 영문학 고전인 <베어울프>를 읽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좀더 친숙한 버전으로 바꾸면 ‘해변의 신곡’이나 ‘해변의 파우스트’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그건 여행가방에 샌들과 자외선 차단제와 함께 단테의 <신곡>과 괴테의 <파우스트>를 챙겨 넣는다는 뜻이다. 그게 가능할까? 저자의 부추김에 따르면 얼마든지! 그는 “위대한 책들에 담긴 유머와 드라마, 모험, 섹스, 신랄함, 우아함, 비극, 아름다움”에 우리가 마음을 열도록 이 ‘휴대용 도감’ 속에 온갖 비결과 팁을 내장해놓았다.(...) ‘고전 기피증’이나 ‘고전 부담증’에 시달리는 독자라면 기꺼이 손을 내밀어볼 만한 유혹이다. 

 

 

 

9. 실용

 

손수호 위원의 추천서는 오경아의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샘터, 2012). 가든 디자이너의 책인데, 저자는 "방송작가로 일하다 나이 서른아홉에 두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거쳐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6년간 정원 공부를 했다고 한다." 영국식 정원 이야기이기도 한 듯. '영국식 정원'이라고 하니 피터 그리너웨이의 퍼즐풀이 같은 영화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도 생각난다.

 

 

원제는 <제도사의 계약>.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개봉시 잘려먹은)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아직 못 본 영화는 <차례로 익사시키기>. 모두 출시돼 있으니 조만간 <차례로 익사시키기>도 구해보고 싶다.

 

 

 

10. 저항자들의 책

 

내 맘대로 고른 주제는 '저항'이다. 앤드루 샤오와 오드리아 림 엮은 <저항자들의 책>(쌤앤파커스, 2012)가 계기다. 이 앤솔로지에는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느냐?"고 외친 만적의 '노비들에게 고함'(1198년)과 광주 시민군의 ‘모두가 함께 부른 노래’(1980년)도 포함돼 있다. 추천사를 의뢰받고 나는 이렇게 적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지배층 인(人)과 피지배층 민(民)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인’이 사람이었다면 ‘민’은 사람도 아니었다. 우리 시대의 ‘철거인’과 ‘철거민’도 그렇게 나뉘지 않는가. 이 책은 세계사 속에서 그렇게 억눌린 ‘민’들의 목소리와 그들과 함께하려던 지식인, 그런 세상을 바꾸려던 혁명가들의 주장을 모았다. 애초에 글과 책은 지배층의 독점물이었다. 글을 모르는 ‘민’은 ‘인문(人文)’의 세상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저항자들의 책>은 그와는 다른 ‘민문(民文)’의 역사를 우리에게 펼쳐준다. 패배한 자들의 역사, 스러진 자들의 역사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기억과 함께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개인적으론 <저항자들의 책>이 계기가 돼 에릭 홉스봄의 <반란의 원초적 형태>(온누리, 2011)와 <밴디트>(민음사, 2004)까지도 구했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월스트리트 시위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점령하라> 두 권과 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비판을 담은 <대학에 저항하라>(시드페이퍼, 2012)도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제 봄이고 4월 선거도 얼마남지 않았군...

 

12. 02. 29. - 03. 01.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아리스토파네스다. 특히 그의 작품들 중에서 <리시스트라테>.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을 밥 먹듯이 하며 패권을 겨루던 시절 주인공 리시스트라테는 그리스의 모든 여성이 단합하는 '성적 스트라이크'를 통해서 남자들을 굴복시키고 국가 사이의 화해와 평화를 달성하고자 한다. 번역은 <리시스트라테>(동인, 2004)가 있으며 <그리스 희극: 아리스토파네스 편>(현암사, 2006), 천병희 선생 번역으론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2>(도서출판숲, 2010)에 수록돼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