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의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올해도 격주로 서평은 게재한다. 첫 책으로 다룬 건 연말에 나온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도서출판b, 2012)다. 고진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저작인 만큼 앞으로도 여러 번 곱씹어보게 될 듯하다. 마무리가 아니라 이제 시작인 셈. 고진의 책을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세계공화국으로>(도서출판b, 2007)를 먼저 읽거나, 같이 읽으면 좋겠다. 절판된 <트랜스크리틱>은 더 깊이 있는 독서를 위해서 참고해야 할 책이다(다시 번역돼 나올 예정이다).

 

 

 

주간경향(13. 01. 08) '마르크스의 헤겔비판'을 다시 한다

 

일본의 대표적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문제작 <세계사의 구조>가 번역돼 나왔다. “교환양식을 통해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새롭게 봄으로써 현재의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는 전망을 열려는 시도”라고 저자는 서문에서 적었다. 그런 시도 자체는 낯설지 않다. 교환양식이란 관점은 전작인 <트랜스크리틱>에서부터 제시한 바 있다. 무엇이 달라졌고, 얼마나 더 전진한 것일까.

 

궁금증에 답하기라도 하듯 고진은 <트랜스크리틱>과 <세계사의 구조>의 차이부터 설명한다. 애초에 그는 “마르크스를 칸트로부터 읽고, 칸트를 마르크스로부터 읽는” 작업을 ‘트랜스크리틱’이라 명명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텍스트’로 읽는 독특한 방법을 제시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문학비평가를 자임했다. 하지만 2001년에 일어난 9·11은 자본과 국가에 대해 더 근본적으로 고찰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텍스트 독해’라는 방법론을 넘어서 독자적인 ‘이론적 체계’를 만들도록 부추긴 것이다. 즉 <트랜스크리틱>이 비평가의 저작이라면 <세계사의 구조>는 이론가 혹은 사상가의 작품이다.

고진은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을 그 연장선상에서 완성하고자 한다. “나의 과제는 어떤 의미에서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을 다시 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을 반복한다는 것은 동시에 마르크스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과 네이션, 국가를 상호연관적으로 파악한 헤겔을 비판하면서 마르크스는 자본제 경제를 하부구조로, 그리고 네이션이나 국가는 거기에 얹힌 상부구조로 간주했다.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하부구조를 철폐하면 국가나 네이션은 자동적으로 소멸된다는 관념은 거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마르크스주의적 운동은 국가와 네이션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고 해서 고진은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을 끌어오지 않는다. 그의 독창적인 착상은 네이션과 국가가 자본과는 다른 경제적 하부구조에서 기인한다는 점에 있다. 바로 교환양식이다. 마르크스는 생산양식의 관점에서 세계사의 구조를 설명했지만, 이제 고진은 교환양식을 통해 그것을 해명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설명을 보완하고자 한다. 교환양식을 그는 A(호수), B(약탈과 재분배), C(상품교환), 그리고 D(X), 네 가지로 구분한다. 발생사적으로 보자면 A는 부족사회의 지배적인 교환양식이고, B는 국가사회의 지배적 교환양식이다. 그리고 C는 자본제 사회의 지배적 교환양식이며, 고진이 아직은 X라고 부르는 교환양식 D는 증여와 답례로 이루어진 교환양식 A의 고차원적 회복으로서 앞으로 도래할 세계공화국의 하부구조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해명한 것은 주로 교환양식 C의 세계였다. 때문에 다른 교환양식이 형성하는 네이션과 국가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해명할 수 없었다. 반면에 고진은 교환양식이란 이론틀을 통해서 사회구성체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새롭게 해명한다. 더불어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설 수 있는 전망을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확보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세계 시스템을 일거에 지양하는 ‘세계 동시혁명’을 통해서 가능하다. 마르크스의 이 신화적 비전은 전 세계적 차원의 폭력적 봉기라는 이미지로 각인돼 지금은 기각됐지만 고진은 그것을 다시금 복원한다. 다만 방법이 다를 뿐이다. 가령 일국에서 군사적 주권을 유엔에 ‘증여’하는 것이 일국혁명이다. 그러한 행위가 많은 국가로 확산된다면 그것이 바로 세계 동시혁명이다. 비현실적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그런 혁명을 지향하는 운동을 전개하지 않으면 남은 가능성은 세계 전쟁이라고 고진은 말한다. 낙담할 필요는 없다. 국제연맹이나 국제연합도 세계대전의 산물이었으니까. 곧 세계공화국의 실현이 쉽지는 않더라도 그 가능성을 제거할 수는 없다.

 

13. 01. 02.

 

 

P.S. <세계사의 구조>를 펴낸 이후 고진의 필력이 더 탄력을 받은 듯싶다. <'세계사의 구조'를 읽다>, <정치와 사상>, <철학의 기원> 등을 연거푸 펴내고 있다. 올해도 두어 권이 국내에 번역될 예정인 것으로 안다. 그는 아직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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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첫 리스트도 만들어놓는다. 첫날부터 눈이 내린 데다가 방안도 한랭하여 떠올린 노래가 영화 <연어알>의 주제가 K. D. 랭의 '맨발로'인데(http://www.youtube.com/watch?v=I4FkncWeIRs), 이 영화, 혹은 이 노래가 항상 연상시켜주는 소설이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이다. 중학교 때 읽은 제목으로는 <야성의 절규>였던 걸로 기억된다. 알래스카의 늑대개 얘기였던가. 1903년작이라고 하니까 벌써 110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다. '잭 런던 걸작선' 외에도 국내에는 여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이 한기, 이 바닥, 이 야성에서 다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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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화이트 팽
잭 런던 지음, 오숙은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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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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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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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야성이 부르는 소리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 궁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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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에 해맞이 여행이란 걸 다녀왔다. 날수로는 1박 2일이어서 기분이라도 좀 내는 줄 알았지만 오며가며 관광버스 안에서 열댓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고역이었다. 날이 흐려 정작 해돋이는 보지 못하고 생선구이를 먹고 온천욕을 하는 것 정도로 한해를 시작. 그나마 눈이 더 내리기 전에, 차가 더 막히기 전에 귀환한 것이 다행이다 싶은 여행이었다. 하긴 여행의 목적은 일상에 다른 리듬을, 혹은 간섭을 가져오는 것이니 목적에 어긋난 여행은 아니었다. 다만 버스에서 일박하는 건 좀 힘들더라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2013년의 첫 페이퍼를 쓴다. 관심도서가 여럿 출간됐는데(내겐 이런 페이퍼가 새해맞이다!), 문학쪽은 나중에 따로 다루기로 하면, 먼저 하이데거의 <니체2>(길, 2012)가 마저 출간돼 드디어 완역됐다. <니체1>(길, 2010) 이후 2년만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권짜리 영역본을 갖고 있는데, 아무래도 분량이 방대하다 보니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던 차였다. 올해의 독서목표 중 하나는 이 <니체>를 읽는 것이다. 혹 바로 읽기가 부담스런 분이라면 고명섭의 <니체 극장>(김영사, 2012)로 워밍업을 하고서 손에 들어도 좋겠다. 그 정도면 '하이데거의 니체'를 관람할 준비로는 충분해보인다. 

 

 

또 '발터 벤야민 선집' 가운데 문학론 두 권이 같이 나왔다. 그의 비평 가운데 일부는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민음사, 1992)에 수록돼 있었다. 이번에 나온 <서사, 기억, 비평의 자리>(길, 2012)에는 프리드리히 횔덜린, 요한 페터 헤벨, 고트프리트 켈러, 카를 크라우스, 마르셀 프루스트, 폴 발레리, 니콜라이 레스코프 등에 대한 비평이 수록돼 있다. 같이 나온 <괴테의 친화력>(길, 2012)은 벤야민의 가장 대표적 평문으로 <괴테의 친화력>(새물결, 2011)이라고 작년에 한번 번역됐었다. <독일 비애극의 원천>처럼 두 가지 번역본이 경합을 벌이게 됐다. 

 

 

아무튼 괴테의 <친화력>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써야 할 글도 있어서 벤야민의 평문이 이렇듯 번역된 게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자연스레 <괴테의 친화력>과 씨름해보는 것도 올해의 일정에 포함됐다.

 

 

벤야민 얘기가 나온 김에 국내외 벤야민론 몇 권도 독서목록에 올려놓는다. 구입만 하고 독서를 미뤄놓았는데 테리 이글턴의 <발터 벤야민 또는 혁명적 비평을 향하여>(이앤비플러스, 2012), 강수미의 <아이스테시스>(글항아리, 2011), 그리고 홍준기 편, <발터 벤야민: 모더니티와 도시>(라움, 2010) 등이 근년에 나온 책들이다.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을 하나둘 챙기다 보니 올해도 일정이 빡빡해 보인다. 어쩌겠는가. 책이 거기에 있는 것을. 이 또한 중독이 아니면 운명인 것을...

 

13. 0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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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오전엔 한국근대문학사 관련서나 비평집 쪽으로 더 구입할 책들의 목록을 뽑아봤는데, 리스트는 방향을 틀어서 로마사 관련서로 잡았다. 계기는 지난주에 나온 로버트 냅의 <99%의 로마인은 어떻게 살았을까>(이론과실천, 2012)다. 어제 배송받아서 프롤로그만 읽은 참인데, 제목 그대로 '로마의 보통 사람들 이야기'다. 원저는 <보이지 않는 로마인(Invisible Romans)>(2011). 원서도 구할까 했지만, 보급판이 내년 봄에 나올 예정이서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로마사 관련서는 꽤 소장하고 있지만 체계적으로 꽂아두질 않아서(꽂아둘 공간이 없기도 하다) 독서의 순서를 잡기 어려운데 리스트라도 만들어두면 좀 낫겠다. 분량상 올해 나온 책으로만 한정한다. 알베르토 안젤라의 <고대 로마인의 24시간>(까치글방, 2012)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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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의 로마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로버트 냅 지음, 김민수 옮김 / 이론과실천 / 2012년 12월
29,000원 → 27,550원(5%할인) / 마일리지 1,38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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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대 로마인의 24시간
알베르토 안젤라 지음, 주효숙 옮김 / 까치 / 2012년 1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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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위기- 235~337년, 로마 정부의 대응
램지 맥멀렌 지음, 김창성 옮김 / 한길사 / 2012년 5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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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지음, 이종인 편역 / 책과함께 / 2012년 4월
48,000원 → 43,200원(10%할인) / 마일리지 2,400원(5% 적립)
2012년 12월 3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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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나온 가장 자극적인 독서거리는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도서출판b, 2012)인데, '자극적'이란 말은 지적 만족과 함께 더 많은 호기심을 갖게 한다는 뜻이다.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과 <세계공화국으로>(도서출판b, 2007)를 읽은 독자라면 교환양식에 대한 설명은 친숙하다(현재 절판된 <트랜스크리틱>은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9권으로 다시 나올 예정이다). <세계사의 구조>에서 인상적인 것은 지배적 교환양식의 이행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사회구성체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발본적으로 바꿔버리는 지배적 교환양식의 이행이다. 첫째로 교환양식A가 지배적인 사회구성체로의 이행, 둘째로 교환양식B가 지배적인 구성체로의 이행, 셋째로 교환양식C가 지배적인 사회구성체로의 이행이다. 바꿔 말해, 각각 씨족사회의 형성, 국가사회의 형성, 산업자본주의사회로의 이행이다.(71쪽)  

여기서 교환양식A는 호수제(증여와 답례), 교환양식B는 약탈과 재분배, 교환양식C는 화폐를 매개로 한 상품교환을 가리킨다. 이들 각각이 지배적 교환양식이 되는 이행과정이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그런데 고진의 지적대로 뒤의 두 가지 이행에 대해선 많이 논의돼 왔지만 씨족사회로의 이행에 주목한 논의는 별로 없었다. 고진의 핵심 아이디어는 "국가사회나 자본제사회로의 이행에 비약이 있었다면, 씨족사회의 출현에도 비약적 이행이 있었다"는 것이고, <세계사의 구조>는 바로 그 비약적 이행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흔히 씨족사회를 최초의 원시사회로 간주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그 이전에 '유동적 밴드사회'가 있었다(고 우리는 추측할 수밖에 없다). 씨족사회는 바로 그 유동적 밴드사회를 배경으로 등장하며 그것과의 차이를 통해서 이해된다. 이 차이가 신석기혁명이 가져온 변화보다도 더 크다는 게 고진의 독창적인 견해다.

한편 씨족사회는 그것과는 대조적이다. 그것은 리니지(혈통)에 근거한 복잡하게 구성되고 성층화된 사회이다. 씨족사회가 국가사회와 다르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들의 차이, 즉 그것을 가져온 신석기혁명의 의의를 강조한다면, 유동적 밴드사회와 씨족사회의 차이, 또는 그것을 가져온 변화의 의의를 강조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 후자의 변화 쪽이 획기적이기 때문이다.(73쪽)

곧 고진이 보기에 획기적인 것은 씨족사회의 형성이다. 그러한 판단에서 그는 기존의 한 가지 통념에 대해 의심한다. "그것은 고든 차일드가 주장한 농경과 목축에 근거하는 신석기혁명이라는 개념으로 대표되는 것이다. 즉 농업/목축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정주하고, 생산력의 확대와 더불어 도시가 발전하고, 계급적인 분해가 생기고, 국가가 생겨났다는 견해"이다.

 

 

 

고든 차일드는 '신석기 혁명'이란 말을 만들어낸 영국의 저명한 인류학자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정주생활이 시작됐다는 게 인류학의 통설인데, 고진이 보기엔 그에 의심스럽다. 정주는 농경 이전부터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재배나 사육은 오히려 정주의 결과,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농업에 앞선 정주야말로 획기적인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물론 그만의 견해는 아니다. 고진이 참조하고 있는 건 인류학자 알랭 테스타이다.  

인류학자 알랭 테스타는 유동수렵채집민과 정주수렵채집민을 구별했다. 그는 전자에서는 수렵채집물이 평등하게 분배되지만, 후자에서는 불평등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 원인은 정주와 함께 생산물의 '비축'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여기서 '인간불평등의 기원'을 발견했다.(74쪽)

놀라운 건 알랭 테스타의 책이 이미 번역돼 있다는 점(저자가 알랭 떼스타로 표기됐다). <불평등의 기원>(학연문화사, 2006)이 그것이다(다행히 아직 절판되지 않았기에 바로 주문을 넣었다). 고진은 '불평등의 기원'에 관한 테스타의 견해에 동의한다. 하지만 요점은 다른 곳에 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비축에서 생겨나는 불평등이 계급사회나 국가로 귀결되지 않았다는 쪽이다. 그것은 불평등을 억제하고 국가의 발생을 억제하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씨족사회이다." 고진은 이로부터 그만의 통찰을 끄집어낸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출현은 인류사에서 획기적인 것으로 중요시된다. 하지만 오히려 정주=비축과 함께 국가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억제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쪽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원리가 호수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씨족사회는 '미개사회'가 아니라 고도의 사회시스템이라고 말해야 한다.(74족)

국가의 출현을 억제하는 원리로서의 호수성. 그것은 한편으로 국가를 넘어서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시사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려는 고진의 이론적 시도는 바로 이에 대한 주목에서 시작된다고 보아도 좋겠다. 이 대목을 <세계사의 구조>에서 내가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12. 12. 29.

 

 

 

P.S. 고진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인상적인 것은 그가 참고하고 있는 책 대다수가 번역본이라는 점이다(우리에게 '고진' 같은 비평가가 나오지 않는 이유도 나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떠먹을 '수프'가 없는 것이다). 인류학 쪽 저작들도 마찬가지인데, 씨족사회와 정주혁명을 다룬 장에서는 특히 마샬 살린스의 <석기시대 경제학>, 말리노프스키의 <서태평양의 원양항해자>, 레비스트로스의 <친족의 기본구조> 등이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게 유감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하는 수 없이 <석기시대 경제학>은 원서를 주문했다. 말리노프스키와 레비스트로스의 책은 분량이 방대해 아직 엄두를 못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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