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주의 정신분석 저널 엄브라(Umbra)가 또 한 권 번역돼 나왔다. <검은 신>(인간사랑, 2013)으로 연간지인 이 잡지의 2005년호를 옮긴 책이다. 앞서 2003년호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인간사랑, 2008)와 2004년호 <전쟁은 없다>(인간사랑, 2011)가 번역됐기에 이번이 세번째 책이다(조금 속도를 내면 번역본도 연간지가 될 듯하다). 4호가 나온다면 2006년호 <불치(Incurable)>가 번역될 차례다. 한국어본의 특징은 1인 번역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인 번역 잡지라고 할까.
Umbr(a)란 잡지는 조운 콥젝의 편집으로 1996년에 창간호를 냈고 2012년호로 '테크놀로지', 2013년호로 '대상, 외부, 타자'가 근간 예정이다. 마저 나오면 18호까지 나오는 셈이 된다. 엄브라 홈피(http://www.umbrajournal.org/)에서는 기간호에 대해서 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번역본 가운데는 <전쟁은 없다>만 유료 서비스다. 각호의 표지는 아래와 같다.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
<전쟁은 없다>
<검은 신>
<검은 신>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옮긴이와 편집자(앤드류 스콤라)의 글을 참조할 수 있는데, 이렇게 소개된다.
프로이트는 어떤 행위가 종교적이려면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절대적인 종교적 행위나 믿음이란 없다.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어떤 것이 있다면 정신분석에서는 대문자 타자이며 그것의 욕망이다. 라깡은 이를 “검은 신”이라고 부른다. 이번 호의 제목은 라깡에서 빌려 온 것이다.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선언에서처럼 대타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모든 것의 기원은 결여이다. 인간은 신의 기원과 욕망을 알고 따르려 하지만 신이 인간에게 내리신 계명들의 언어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신분석은 실증주의적 과학과는 달리, 종교적 문제, 즉 기원과, 신, 창조의 문제를 사유한다. 특히 근대 주체구성의 과정에 개입해있는 일신교에 천착한다. 종교를 비판하는 일이 아무리 정당할지라도 실증주의처럼 종교를 허상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제대로 된 비판이 될 수 없다. 창조, 주체의 기원, 믿음, 소외, 희생과 봉사, 예외, 신성성, 사랑 등 종교가 전유하고 있는 것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개념이며 철학적 사유에서 피해갈 수 없다. 기왕의 종교비판이나 분석이 혐오와 경외 양극단의 대립을 상정했다면 정신분석은 신이 부재한 자리를 사유한다.
편집자 외 7명의 필자 가운데 국내에도 소개된 저자는 로렌죠 키에자 정도다. 로렌초 키에자란 이름으로 <주체성과 타자성>(난장, 2012)이 번역된 바 있다.
기독교 신에 대한 라캉주의적 접근과 관련해서는 지젝의 <죽은 신을 위하여>(길, 2007)도 참고할 수 있다. 번역되지 않은 책으로는 지젝이 공저한 <고통받는 신>(2012)도 있다. 앞으로 관련서들이 더 소개될 것으로 안다...
13. 0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