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나온 책들 가운데 말리노프스키의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전남대출판부, 2013)이 가장 놀라운 책이라고 어제 적었는데, 그 다음으로 꼽을 만한 책은 한나 아렌트의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텍스트, 2013)다.
아렌트가 야스퍼스의 지도 하에 쓴 박사학위논문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을 영어판 단행본으로 펴낸 게 원저다. 아렌트의 책이 대부분 번역되었기에(유고들도 번역되고 있다) 이 초기 저작이 소개된 게 크게 놀랍진 않지만, 여하튼 '여기까지 왔구나'란 생각은 갖게 한다. 난이도의 문제를 제쳐놓는다면 아렌트의 거의 모든 책을 한국어로 읽을 수 있게 되는 셈.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문학과지성사, 1983) 이후로 치면 30년만이다.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렌트 입문서로도, 그리고 어쩌면 아우구스티누스 입문서로 읽을 수 있을 듯싶은데, 안 그래도 작년에 피터 브라운의 평전 <아우구스티누스>(새물결, 2012)가 출간돼 아우그스티누스 읽기도 좀 평탄해진 터이다. 에티엔느 질송의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이해>(성균관대출판부, 2010)와 이석우의 <아우구스티누스>(민음사, 1995/2005)까지 길잡이로 삼는다면 최소한 중급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엄두는 못 내고 있지만 목표치는 그 정도이다.
지난주에 같이 나온 책은 아렌트 전공자인 홍원표 교수의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인간사랑, 2013)인데, 입문서인 <아렌트>(한길사, 2011)에 이어서 읽는 게 좋겠다(아렌트의 입장을 고려하면 '反정치철학'이 더 어울리는 제목이다).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모음집 <한나 아렌트와 세계사랑>(인간사랑, 2009)는 아렌트 수용의 시각과 수준을 일별하게 해준다.
돌이켜보니 본격적으로 아렌트를 읽게 된 건 역시나 아렌트 전공자인 김선욱 교수의 <정치와 진리>(책세상, 2001)을 읽으면서부터다(김비환, 서유경 교수 등도 아렌트 전공자다). '본격적'이라고 해서 머리띠를 둘러매고 읽었다는 게 아니라 모든 관련서를 사들이고 종종 원서도 같이 읽어보고 했다는 뜻이다. <인간의 조건> 같은 책은 러시아어판으로도 갖고 있으니까 나름대로 애독자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관심사 중의 하나는 하이데거와 아렌트의 관계,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 철학적 대응관계인데, 이에 관한 책들도 여럿 모은 적이 있어서 여건이 된다면 한번 검토해보고 싶다.
아렌트의 전기로는 영 브륄의 <한나 아렌트 전기>(인간사랑, 2007)이 결정본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고, 거기에 버금갈 만한 하이데거의 전기도 다시 찾아봐야겠다. 내가 가진 걸로는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전기(영역본)가 가장 최근판이었다. 자프란스키는 니체와 하이데거, 그리고 쇼펜하우어에 대한 전기를 갖고 있는데, 그중 니체만이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13. 0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