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후보군이 많아서 몇가지 기준을 적용했는데, 세 권 이상의 저역서가 있고 뭔가 시의성이 있으면서 독자의 흥미를 끄는(이건 주관적이다) 저자. 가시권에 들어온 세 명이 뭔가 연결고리를 가지면서 대략 그런 기준을 충족시키다. 정치적 스펙트럼상 진보 좌파로 분류될 앤디 메리필드,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 그리고 이와사부로 코소(사부 코소)가 그들이다.

 

 

<마술적 마르크스주의>(책읽는수요일, 2013)라는 흥미로운 제목을 책을 낸 앤디 메리필드는 마르크스주의 도시 이론가로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이후, 2005)로 처음 소개됐었다. 벤야민에 관한 장을 흥미롭게 읽은 책이었는데(번역은 아쉬웠지만) 그 사이에 <당나귀의 지혜>(멜론, 2009)도 출간됐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는 따라서 세번째로 소개되는 책이다.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인 존 버거와 마셜 버먼이 추천사를 쓰고 있다는 점도 저자를 폼나게 하는데, 가령 우리의 버거 선생은 이렇게 썼다(앤디는 존 버거 연구서도 갖고 있다).

앤디 메리필드는 독창적이고 박식하며, 정치적으로 살아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엄격한 말뜻 그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메리필드의 책이라면 원서도 구입할 용의가 있다.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원제는 <변증법적 도시이론>)는 구해서 읽은 기억이 난다(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던가). 당나귀의 지혜라...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데, <마술적 마르크스주의> 서문에서 메리필드는 이렇게 적는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와 불화를 일으키려고 한다. 마르크스주의를 전복하고, 새롭게 하고, 내부로부터 흔들려고 한다. 이 책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적이고 근엄한 마르크스주의와 우호적으로 대립시켜, 그럼으로써 부르주아 사회의 범죄를 고발한다.   

참고로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는 작년에 가장 뛰어난 좌파 저작에 주어지는 '빵과 장미 상' 최종 후보였다고 한다.

 

 

 

두번째 저자는 이탈리아의 좌파 이론가 프랑코 베르르디 '비포'다. 주로 '비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고 한다. 국내엔 지난해에 <노동하는 영혼>(갈무리, 2012)와 <봉기>(갈무리, 2012)가 연이어 번역됐고, 이번에 나온 <미래 이후>(난장, 2013)는 세번째로 소개되는 책이다(원서는 <노동하는 영혼>, <미래 이후>, <봉기> 순으로 출간됐다. 별 차이는 없지만). 역자 역시 이 세 권을 같이 읽기를 권하고 있다.  

 

 

그런데, 왜 '미래 이후'인가? 그것은 저자가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선언'이 나온 지 100주년이 되는 2009년에 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선언은 1909년 2월 5일에 발표됐다. 그 이후 100년의 시간을 더듬어보면서 비포는 이런 문제의식을 갖는다.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미래주의적 상상력이 소멸하고 미래가 없다는 감수성이 출현한 데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처럼 불안정성의 시대에 만연해 있는 우울한 상상력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었고, 이런 우울이 어떻게 전개되어갈지 생각해보면서 불안정성이 전 세계의 새로운 세대 사이에 퍼뜨려 놓은 이 질병(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보고 싶었다.

<미래 이후>는 그런 탐색의 여정으로 읽을 수 있겠다.

 

 

 

그리고 사부. 영어 이름은 '사부 코소'이고 일어 이름은 '이와사부로 코소'이다. 아마도 '이와사부로'란 이름이 너무 길어서 '사부'로 줄인 것 같다. '뉴욕, 거리, 지구에 관한 42편의 에세이' <죽음의 도시, 생명의 도시>(갈무리, 2013)가 번역됨으로써 <뉴욕열전>(갈무리, 2010)과 <유체도시를 구축하라!>(갈무리, 2012)에 이어지는 3부작이 완결됐다. 그의 작업이 갖는 의의는 이렇게 간추려진다.

이와사부로 코소는 뉴욕 월가의 점거하라 운동, 후쿠시마 이후 일본의 탈핵운동 등 굵직굵직한 세계적 사건들에 직접 참여하면서 활발한 이론 활동을 해 왔으며, 현대 일본에서 가장 급진적인 국제적 사상가로 부상하고 있다. 코소는 지금까지 세 차례 한국에 초청되어 위크샵과 포럼 등을 가졌으며 국내의 사회운동, 도시사회학계와 공공예술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번 책에서도 도시, 세계화, 거리,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제시하고 있다.
제목인 <죽음의 도시, 생명의 거리>는 “죽어가는 메트로폴리스, 살아오는 거리”라는 저자의 핵심 주장을 압축한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19세기의 파리, 20세기의 뉴욕 같은 고전적 의미의 메트로폴리스가 해체되고 있다고 말한다. 도시의 고정된 장소성은 관계로서의 도시, 운동으로서의 도시로 대체되었다. 본래 도시에서 도시로, 과거에서 미래로 끊임없이 운동하는 존재인 민중은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 전혀 다른 형태의 삶정치적 도시를 창조해 내고 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3부작을 쓴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저자는 1980년대 초부터 뉴욕에서 거주하고 있다. 사실 저자보다는 역자로 먼저 이름을 익히게 됐는데, 그때 이름이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과 <은유로서의 건축> 등을 영어로 옮긴 '사부 코소'였다.

 

 

이 사부 코소가 '이와사부로 코소'란 걸 안 건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아마 <유체도시를 구축하라!>를 구입하면서부터인 듯하다. 외모만으로는 가라타니 고진의 명석한 영어 번역자를 연상하기가 좀 어려웠다! 

 

 

암튼 번역자로서뿐만 아니라 저자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부 코소의 신작도 21세기의 도시를 새로운 시각에서 사유할 수 있는 무기가 돼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앤디와 비포, 코소, 모두 동일한 문제를 사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때문에 셋을 같이 묶어놓은 것이긴 하지만...

 

13. 0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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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스의 여왕'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칭송되는 영국의 여성작가, 라면 누굴 떠올릴 수 있을까? 작가소개는 그렇게 돼 있지만 어지간한 독자라면 '대프니 듀 모리에(1907-1989)'란 이름을 대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나 한국에 번역된 상황을 보건대 그렇다. 하지만 히치콕의 영화 <새>의 원작자, 라고 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히치콕의 <레베카>도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이 원작이라고 한다.

 

 

바로 그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현대문학, 2013)가 번역돼 나왔다. 알고 보니 처음은 아니다. 두 권짜리로 나온 <레베카>(생각의나무, 2010)가 있었지만 출판사가 부도가 나면서 절판됐고 이번에 현대문학사판으로 다시 나온 것. 역자가 같다. 다른 역자의 번역으론 <레베카>(동서문화출판, 2003)도 있다.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현재 알라딘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이 두 종의 <레베카>뿐이다.

 

 

 

히치콕도 영화화에 욕심을 낸 미스터리의 고전, <레베카>는 어떤 소설인가. 평판만을 보자면 '클래식'에 가깝다.

1938년에 출판된 <레베카>는 그녀의 다섯 번째 소설이자 대표작으로 발간 후 영국에서만 28쇄를 거듭할 만큼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그해 미국 도서판매상협회가 선정하는 전미 도서상을 수상했다. 공포 소설에 심리적 기법과 로맨스 요소를 가미한 <레베카>는 영국 고딕 문학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 아니라 섬세한 내면 묘사와 치밀한 사건 전개, 그 누구도 예상 못한 반전이 돋보이는 미스터리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초판 발행 후 70년 이상이 흐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는 책으로 유명하다.

그렇더라도 내 경우에 관심은 히치콕과의 관계에 두어진다. <새>와 <레베카> 모두 영화화됐지만 차이점이 없지 않다. 전자는 단편이고 후자는 장편이기 때문이다. 즉 <새>의 경우는 기본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정확히 그런지 확인해보려고 절판된 <새>(생각의나무, 2008) 중고판을 주문했다(영화 <새>는 다 품절되고 현재 알라딘에서는 공포영화 컬렉션 판으로만 구입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다. 히치콕이 좋아했던 금발의 미녀. 히치콕이 듀 모리에를 직접 만난 적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영화 애호가라면 알겠지만 사샤(사차) 제바시 감독의 <히치콕>(2012)이 개봉 예정이다. 가장 방대한 분량의 히치콕 전기 결정판은 패트릭 맥길리건의 <히치콕>(을유문화사, 2006)이고 가장 최근에 나온 관련서는 <히치콕과 사이코>(북폴리오, 2012)다. 히치콕 관련서는 다 모으고 있는 터라 구해놓았지만 아직 손에 들진 못했다. 내년까지는 읽어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13. 0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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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전의 일정 삼아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종잡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갈래의 책들이 출간돼 한참 궁리해보다가 이번 주에는 역사 관련서들을 고르기로 했다. 미야지마 히로시의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창비, 2013)를 제외하고도 묵직한 책들이 몇 권 더 나왔기 때문이다.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책들이 유력한 후보였지만, 과학 쪽은 지난 주에 고른 적이 있기 때문에 다른 기회를 보기로 했다.

 

 

먼저 타이틀로 고른 책은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의 <만주족의 역사>(돌베개, 2013)와 테오도르 몸젠의 <몸젠의 로마사1>(푸른역사, 2013)다.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는 국내에 <글로벌 히스토리란 무엇인가>(휴머니스트, 2010)로 처음 소개된 바 있는데, 알고 보니 저명한 중국사학자 조너선 스펜스의 제자다. 책은 '아시아의 민족(The Peoples of Aisa)' 총서의 하나로 나온 것이어서 <청제국의 역사>가 아닌 <만주족의 역사>가 됐다. 원제는 그냥 <만주족>이다. 마크 엘리엇의 <만주족의 청제국>(푸른역사, 2009) 같은 책이 같이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한다. 몸젠의 <로마사>는 독일을 대표하는 고전문학자이자 역사학자의 대표작으로 돼 있는데, 흥미롭게도 그는 이 책으로 몸젠은 1902년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다. "역사 연구서가 문학상을 받았다는 점은 <로마사>가 가진 의미, 즉 <로마사>가 역사 연구서를 넘어서는 인문학적 교양의 결실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몇 권짜리로 완간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일단 첫권이 나왔고, 곧 서구 로마사의 고전 하나를 한국어로도 읽을 수 있겠다. 겸하여 영국이 자랑하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누가 설명해주면 좋겠다.

 

 

세번째 책은 몸젠만큼 유명한 역사학자 하위징아의 <역사의 매력>(길, 2013)이다. <문화사의 과제>(아모르문디, 2006)과 같이 묶을 수 있을 듯한데, 1부에서는 역사의 이론과 방법에 대해, 그리고 2부에서는 문화와 문화사의 과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문화사가로서 하위징하의 이념과 방법에 대해 일러줄 듯하다. 네번째 책은 미술사학자 이은기 교수의 <욕망하는 중세>(사회평론, 2013). '미술을 통해 본 중세 말 종교와 사회의 변화'가 부제다. 국내서라는 점이 특이한데, 저자는 <르네상스 미술과 후원자>(시공사, 2002), <서양미술사>(공저, 미진사, 2006) 등의 저작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번째 책은 라나지뜨 구하와 함께 대표적인 서발턴 연구자로 알려진 빠르타 짯떼르지의 <민족주의 사상과 식민지 세계>(그린비, 2013)다. 인도 민족주의의 세 국면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담고 있다. 민족주의와 식민지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주제이기에 뭔가 배울 만한 대목이 있을 듯싶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만주족의 역사- 변방의 민족에서 청 제국의 건설자가 되다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 지음, 양휘웅 옮김 / 돌베개 / 2013년 3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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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젠의 로마사 1-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
테오도르 몸젠 지음, 김남우.김동훈.성중모 옮김 / 푸른역사 / 2013년 3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3년 03월 30일에 저장

역사의 매력- 새로운 문화와 역사를 위해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광주 옮김 / 길(도서출판) / 2013년 2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13년 03월 30일에 저장
품절
욕망하는 중세- 미술을 통해 본 중세 말 종교와 사회의 변화
이은기 지음 / 사회평론 / 2013년 3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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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오래된 새책' 카테고리도 충전을 한다. 눈에 띄는 책 두 권 때문인데, 먼저 미국 철학자 알렉산더 네하마스의 <니체: 문학으로서 삶>(연암서가, 2013)이 다시 나왔다. 애초에 <니체, 문학으로서의 삶>(책세상, 1994)이라고 출간됐던 책으로 영어권의 대표적인 니체 연구서 가운데 하나다.  

 

 

믿기진 않지만 따져보니 거의 20년 전에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원서까지 구입했었다. 영원회귀에 대한 해석이 독창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네하마스는 니체 말고도 고대 철학의 권위자인데, <삶의 기술: 플라톤에서 푸코까지 소크라테스적 성찰>, <오로지 행복의 약속>, <진정성의 미덕> 같은 책들이 대표적인 저작이다. <삶의 기술>은 갖고 있는 책이고, 나머지 책들은 이번에 구입하려고 한다.

 

 

 

네하마스의 <니체>만큼 반가운 책은 밀란 쿤데라 전집판으로 다시 나온 <배신당한 유언들>(민음사, 2013). 오래 전에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청년사, 1994)으로 번역됐었다. 아, 이 또한 20년 전에 읽은 책이라니! 제목은 <배반의 약속>이라고 예고됐었는데, <배신당한 유언들>로 최종 낙착된 모양이다. 나는 주로 <배반당한 유언>이라고 부르던 책이다. 누가 배신/배반한 것인가? 원고를 모두 불태워달라는 친구 카프카의 부탁을 배신/배반한 막스 브로트가 대표적이다. 기억엔 쿤데라가 브로트를 맹비판했던가.

 

 

 

쿤데라의 소설도 소설이지만 그의 일급의 에세이들도 나는 즐겨 읽는 편인데, 전집에 들어가 있는 건 네 권이다. 순서대로 하면 <소설의 기술>, <배신당한 유언들>, <커튼>, <만남> 순이다. 생각난 김에 따로 모아놓아야겠다. 영어본들도 다 구했었는데, 어디에들 가 있는지 확인도 해야겠고. <배신당한 유언들>이 당일배송이 안 돼 아쉬운데, 책은 내주에나 손에 들 듯싶다...

 

13. 0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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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개봉 화제작은 조 라이트 감독의 <안나 카레니나>(2012)다. 감독보다도 타이틀롤을 맡은 키라 나이틀리와 남편 카레닌 역의 주드 로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주 씨네21도 마찬가지인데, 사실 키라 나이틀리가 의외의 캐스팅인 건 사실이다.

 

제인 오스틴이라면 몰라도, 톨스토이라니. 영국의 로맨틱코미디 명가 워킹타이틀이 러시아의 걸작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것도 의문이었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키라 나이틀리가 안나를 연기한다는 것이었다. 푹 꺼진 눈매에, 남자아이같이 호탕하게 웃던, <오만과 편견>과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깡마른 그 배우가 안나 카레니나를 맡았다고? 다음은 모두의 우려와 달리, 자신만의 안나를 성공적으로 연기해낸 키라 나이틀리의 이야기다.(씨네21)

키라 나이틀리의 연기에 대해서는 호평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그렇더라도 원작의 안나와 동일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러 버전의 <안나 카레니나>를 봐 왔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배우는 역시나 그레타 가르보다. 클레런스 브라운 감독의 흑백영화 <안나 카레니나>(1935)에 나온 안나(참고로 이 영화에서 브론스키는 이미지로만 보자면 최악의 캐스팅이었다) 물론 조건이 있다. 러시아식 털모자를 쓴 안나. 모자를 벗은 안나는 또 다른 이미지이기에. 이미지만으로 보자면 줄리앙 뒤비비에 감독의 <안나 카레니나>(1948)의 주연 비비안 리보다도 더 빼어나다.

 

 

그레타 가르보의 눈빛과 카리스마에 견주면 알렉산드르 자르히 감독의 러시아판 <안나 카레니나>(1967)의 안나 역 타치야나 사모일로바도 빛이 바랜다.

 

 

톨스토이의 원작에서 안나는 서른 살의 유부녀이지만 스무살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으로 돼 있다. 그레타 가르보가 안나 역을 연기했을 때 그녀의 나이가 서른이었다. 사모일로바는 34살. 영화에서는 30대 중반, 심지어는 40대로도 보인다(무도회에서 브론스키와 춤추는 장면에서는 연인이 아닌 모자가 춤추는 것 같다!).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고 해도 여성적 매력이란 점에서 감점을 당할 수밖에 없다.

 

요즘 관객들에겐 그래도 가장 친숙한 소피 마르소는 어떤가. <안나 카레니나>(1997)는 소피 마르소가 31살에 찍은 영화다.

 

 

예쁜 얼굴이지만 '고뇌'를 표현하기에 좀 부족한 마스크다. 키라 나이틀리가 안나 역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털모자를 쓰면 좀 나아진다. 역시 러시아 영화에서는 모자를 쓰는 게 낫다...

 

 

결론적으로 <안나 카레니나>는 여전히 적임자를 미래형으로 남겨놓고 있다...

 

13. 03. 27.

 

P.S. 브론스키 역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는 누구일까? 저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지만, 나더러 캐스팅하라면 러시아판 <안나 카레니나>(1967)에 나오는 바실리 라노보이를 꼽겠다. '러시아 영화사상 가장 잘 생긴 장교'라고도 일컬어진다. <전쟁과 평화>(1965)에서는 나타샤를 유혹하는 유부남 아나톨로 출연한 경력도 있다. 60년대니까 좀 옛날이긴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이런 배우를 '잘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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