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4일차의 날이 밝았다. <설국>의 무대 에치고 유자와로 떠나는 날이라(설국기행의 날) 아침 일찍 일정이 시작된다. 시미즈 터널을 지나 ‘눈의 고장‘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해보는 것이 핵심 가운데 하나.

어제 오후엔 가마쿠라를 찾아 점심식사를 하고 일본의 고찰 가운데 엔가쿠지를 방문했다. 국보 문화재를 보유한 절이지만 문학기행의 관심은 두 작품의 배경/소재라는 것. 나쓰메 소세키의 <문>(소세키 자신이 수행한 절이기도 하다)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천 마리 학>(<천우학>)이다.

그리고 소세키의 <마음>에서 ‘나‘가 ‘선생님‘과 만나는 가마쿠라 해변을 찾았다. 유명 휴양지답게 긴 해안선을 따라 시원한 바다 풍경이 펼쳐졌다. 소세키도 가족과 함께 찾았다는 곳이다. 문학강의는 주로 소세키의 근대세계문학과 일본근대문학의 관계, 그리고 <마음>의 주제에 대해서 다뤘다.

출발한 버스가 도쿄 도심을 지나고 있다. 아직은 이른 아침인 듯 출근하는 직장인이 많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에치고 유자와는 어제 눈이 왔고 오늘은 가끔 눈이 내릴 수 있다는 예보다. 버스로 이동하다가 신칸센으로 환승하여 에치고 유자와역에서 내릴 예정이다. 일본문학기행의 팔부능선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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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기행 3일차는 하야시 후미코 기념관 방문이 첫 일정이었다. 신쥬쿠 구립기념관으로 1941년에 지어진 일본식 기와집 두 채로 이루어져 있고 후미코가 51년 사망시까지 살았던 집이다. 집이 두 채인 것은 당시 건축법상 건평의 제약 때문이었다는데, 한 채는 사실혼 관계였던 남편 명의의 집이었다고 한다. 사진상으론 작아 보였는데 실제로는 각 채마다 방이 여럿인데다가 잘 가꾸어진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기념관 관리인으로부터 집의 내력과 각 방의 쓰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쇼와기 베스트셀러 여성작가의 기념관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비록 오전의 관람객은 우리 일행밖에 없었지만.

하야시 후미코에 대해서는 버스로 이동중에 대표작 <방랑기>를 중심으로(국내에는 두 종의 번역본이 나와있다. 창비세계문학전집판과 일본 근현대 여성문학 선집판이다) 특징과 문학사적 의의를 강의했다. ‘서민문학‘ 대표작가로서 갖는 희소성을 강조했다. 쇼와기에 6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는 <방랑기>는 행상 부모와 함께 여인숙을 전전하며 성장해서는 카페 여급을 포함한 여러 직업을 전전한 작가의 가난 체험기이자 독서기다. 후미코의 독서 편력은 다양한 가운데 체호프와 톨스토이, 그리고 고리키 등이 포함돼 있어서 1920년대 일본 독서문화의 일단까지도 엿보게 한다.

문학기행 준비강의 때는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영화 <부운>(1955)의 원작 <뜬구름>을 읽었는데 사실 40년대에 쓰인 작품들은 이 집이 산실이었겠다(태평양 전쟁기에 잠시 피난하긴 했지만).

기념관을 나와서는 오후 일정을 위하여 가마쿠라로 향했다. 지난 2018년 때는 시간상의 문제로 가마쿠라까지 가지 못하고 요코하마에서 대체 일정을 진행한 기억이 있다. 일본문학기행에서 가마쿠라는 초행인 셈. 나쓰메 소세키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배경이라는 이유로 넣은 일정인데, 가마쿠라 방문기는 따로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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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아침. 조식을 먹고 휴식하는 중이다. 새벽에 일어났다가 뉴스특보가 나와서 잠이 깨는 바람에 ‘얼리 버드‘ 모드가 됐다. 일정이 변경돼 오늘은 오전에 하야시 후미코 기념관을 찾고, 곧바로 가마쿠라로 향할 예정이다. 하야시 후미코(<방랑기>)와 나쓰메 소세키(<마음>), 가와바타 야스나리(<천 마리 학>) 등을 오늘 다룰 예정.

강의준비를 하고 잠시 들춰본 책은 강상중의 <도쿄 산책자>. 문학기행의 일환이지만 도쿄의 대학가와 중심가를 좀 걷다보니 ‘산책자‘ 기분도 들었고. 책은 도쿄의 다양한 장소들에 대한 짤막한 인문 스케치이고 사진집이다. 깊이는 부족하지만 도쿄의 이모저모를 일별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어제 둘러본 롯폰기와 도쿄대 등에 관한 장들을 읽었다. 예전에 읽은 저자의 나쓰메 소세키론도 떠올리면서(소세키 입문서로 읽을 수 있는데 저자가 주로 다루는 작품은 전기 3부작과 <마음>이다).

강상중의 대표작이 <고민하는 힘>인가? 저자가 소세키에게 진 빚을 고려하면 그 힘은 ‘소세키와 함께 고민하는 힘‘이라고 해도 좋겠다. 어제 롯본기힐스 52층에서 본 전망과 일루미네이션 야경 사진, 그리고 루이스 부르주아전 사진을 기록삼아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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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기행 2일차 오전일정은 도쿄대와 와세다대 방문이었다. 일본의 국립과 사립을 대표하는 두 대학을 잇따라 찾는 것도 드문 일이겠다. 도쿄대에서는 1969년 전공투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야스다 강당 건물과 소세키 소설의 배경장소 산시로 연못(소설 <산시로> 때문에 그렇게 불리게 된 연못)을 둘러보았고 와세다대에서는 하루키도서관(공식 이름은 국제문학관)을 찾았다. 하루키도서관 바로 옆 연극박물관(풀네임은 츠보우치 쇼요 기념 연극박물관) 도 같이 둘러보았다.

산시로 연못은 2018년에도 찾았었는데 그때는 한파로 연못이 얼어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고 그리 춥지 않아서 호수 둘레를 거닐며 다 둘러볼 수 있었다. 아침시간에 도쿄대 교정을 걷고 연못 산책까지 곁들여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연못을 둘러보는 중에 소세키의 소설 <산시로>의 주제와 문제성에 대한 짧은 강의를 진행했다.

소위 전기 3부작의 출발점이 되는 <산시로>는 <그 후>의 무거움과 <문>의 소심성에 견주어 풋풋한 작품이다. 무거운 주제와 소심한 인물은 <산시로>에도 해당되지만, 소설에서 산시로는 아직 젊은 주인공이다. 비록 어수룩하다 할지라도 그의 미래는 열려있다. <그 후>의 다이스케와 <문>의 소스케에게서 그 미래가 닫혀가는 느낌을 주는 것과 대조가 된다. 나는 <산시로>가 소세키의 소설로서뿐 아니라 일본 근대소설로서 표준이 될 만하다고 생각한다(‘일본근대소설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산시로>로 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도쿄대 방문을 마치고 곧바로 와세다대학으로 향했다. 방학이었지만 도쿄대보다는 학생들이 더 눈에 띄었다. 하루키도서관은 동문쪽에 있었는데, 정문에서도 10분 거리였다. 와세다대 출신의 명사들이 많지만(이광수와 최남선도 수학했으니 한국문학과도 인연이 깊다) 대중적 인지도에서라면 단연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유명한 동문이겠다. 건축가 친구 구마 겐코의 설계로 2021년 개관한 하루키도서관은 모교에 남긴 하루키의 시그니처다. 개관 초기에는 하루키의 독자들로 만원사례였다고 하는데 오늘 찾았을 때는 공간에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이용자들보다 우리와 같은 관람객이 더 많아보일 정도(우리 일행 외에 중국인 여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하루키의 것을 모방했다는 서재와 그가 기증했다는 음반을 배경으로 하루키표 블렌딩의 커피를 마셨다. 관광객이 많이 찾으면 집중에도 방해가 될 것 같긴 한데. 하루키도서관은 잘 지어지고 잘 꾸며진 도서관이었다(도서관을 배경으로 혹은 모티브로 한 그의 소설들을 읽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이겠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진보초의 고서점가로 가기 전에 일행은 와세다대 식당에서 학식으로(학식이라지만 일반인 요금으로) 점심을 먹었다. 학식만큼은 한국의 대학식당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지난해 11월에 김윤식 교수 전시회 단체관람차 서울대 규장각을 찾았다가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었다). 입맛의 차이일까.

오후 일정으로 2018년에 이어 두번째로 찾은 진보초는 고서점들이 밀집된 곳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대부분 일어책들이라 나로선 실제적인 관심을 갖기 어렵다. 말 그대로 구경만 하는 차원. 대신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의 문인들이 즐겨 찾았다는 카페 밀롱가 누에바를 찾아 블렌딩 커피를 마셨다. 탱고 카페답게 시종일관 탱고음악이 흘러나왔다. 밀롱가 누에바 방문은 어제 찾은 근대문학관에 이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흔적 잦기의 하나.

2일차 마지막 일정으로는 롯폰기 힐스(도쿄에서 높이가 6번째라는 고층빌딩)에 위치한 모리미술관을 찾았다(빌딩의 53층에 자리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미술관이라고). 루이스 부르주아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데 루이스 부르주아 개인전으로는 거의 최대규모이지 않을까 싶다. 대형 거미 조각 말고는 생소한 작가의 많은 작품을 짧은 시간 동안 훑어볼 수 있었다. 여성의 출산과 수유를 모티브로 한 연작들이 인상에 남는다.

도쿄에서 가장 핫하다는 롯폰기에서 일본식 라멘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밤거리의 일루미네이션까지 구경하는 것으로 2일차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일정을 되짚어보니 하루를 충실히 보냈다는 느낌이 든다. 하긴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고 해도 일본을 안방 드나들 듯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정이 빡빡할 밖에. 내일은 좀 여유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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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기행 2일차(한국과는 시차가 없어서 마치 국내여행 같다). 어제 인천공항을 떠나 일본 나리타공항에 닿은 건 11시50분쯤. 2시간반이 통상 소요시간인데 수하물 탑재가 지체돼 조금 지연도착했다. 그래도 기내식으로 나온 아침식사를 하고 영화 한편을 다 보지 못할 만큼의 짧은 시간(15시간씩 걸리던 유럽행에 비할 바가 아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수하물을 찾은 뒤 일행은 버스에 탑승하여 곧바로 도쿄 일본근대문학관으로 향했다. 어제 적은 대로 재도전. 도착하고 나서야 이 문학관의 성격과 특징을 이해하게 되었다(홈페이지에 안내되어 있음에도 흘려본 것). 핵심은 자료실과 열람실인데 ˝150명 이상의 현대 일본작가와 관련된 자료 수십만점을 보유하고 있고˝ 이용자가 이를 열람할 수 있는 곳이다(열람실 이용료를 받는다). 일어를 읽지 못한다면 이용에 한계가 있다. 때문에 우리로선 전시회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는데, 어제 적은 대로 미시아 유기오 탄생 100주년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고 근대문학관 방문은 이 전시 관람으로 대체했다.

미시마 유키오 전이 아니라면 아마도 가와바타 야스나리 전이 됐을 성싶은데, 야스나리 자료가 많이 기증돼 있어서다(그밖에 나쓰메 소세키, 다니자키 준이치로,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 등이 일어로도 내가 읽을 수 있는 이름들이었다). 1960년대 접어들면서 준비기구가 발족돼 1964년에 도서관으로 문을 연 근대문학관이 현재 위치(고마바 공원 내)에 자리하게 된 게 1967년이다. 이듬해 야스나리가 일본작가 최초로(아시아 작가로는 타고르에 이어서 두번째)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니 타이밍이 절묘하기도 했다.

미시마 유기오전은 일어 자료들이어서(영어 병기가 안돼 있고 안내 팜플릿도도 그렇다(게다가 전시 자료집이 따로 없었다. 우리도 그런가?) 관람에 한계가 있었지만 사진자료들도 많아서 무익하진 않았다. 관람객이 적지 않은 편이었는데 마침 강당에서는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강연행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일본 극우의 간판작가로 소개돼 우리에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나는 극우를 ‘연기‘한 걸로 보지만) 매우 강렬하고 도발적인 그의 작품세계는 여전히 문학독자들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나는2월에 그의 작품 세편을 강의에서 읽는다). 미시마에 대한 생각도 업데이트해야겠다(한편으로 아직 번역뎌지 않은 그의 작품이 너무 많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근대문학관이 자리한 고마바공원(한자 독음으로는 구장공원. 마굿간이 있었던 곳인가?)은 도심속 작은 공원인데 문학관 맞은편에 일본 전통가옥과 서양식 저택(마에다 저택)이 있어서 흥미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수령이 오래 된 높은 키의 나무들과 새로 개조된 공중화장실(영화 <퍼펙트 데이즈> 덕분에 도쿄의 공중화장실들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도 멋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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