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학기행 2일차 오전일정은 도쿄대와 와세다대 방문이었다. 일본의 국립과 사립을 대표하는 두 대학을 잇따라 찾는 것도 드문 일이겠다. 도쿄대에서는 1969년 전공투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야스다 강당 건물과 소세키 소설의 배경장소 산시로 연못(소설 <산시로> 때문에 그렇게 불리게 된 연못)을 둘러보았고 와세다대에서는 하루키도서관(공식 이름은 국제문학관)을 찾았다. 하루키도서관 바로 옆 연극박물관(풀네임은 츠보우치 쇼요 기념 연극박물관) 도 같이 둘러보았다.

산시로 연못은 2018년에도 찾았었는데 그때는 한파로 연못이 얼어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고 그리 춥지 않아서 호수 둘레를 거닐며 다 둘러볼 수 있었다. 아침시간에 도쿄대 교정을 걷고 연못 산책까지 곁들여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연못을 둘러보는 중에 소세키의 소설 <산시로>의 주제와 문제성에 대한 짧은 강의를 진행했다.

소위 전기 3부작의 출발점이 되는 <산시로>는 <그 후>의 무거움과 <문>의 소심성에 견주어 풋풋한 작품이다. 무거운 주제와 소심한 인물은 <산시로>에도 해당되지만, 소설에서 산시로는 아직 젊은 주인공이다. 비록 어수룩하다 할지라도 그의 미래는 열려있다. <그 후>의 다이스케와 <문>의 소스케에게서 그 미래가 닫혀가는 느낌을 주는 것과 대조가 된다. 나는 <산시로>가 소세키의 소설로서뿐 아니라 일본 근대소설로서 표준이 될 만하다고 생각한다(‘일본근대소설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산시로>로 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도쿄대 방문을 마치고 곧바로 와세다대학으로 향했다. 방학이었지만 도쿄대보다는 학생들이 더 눈에 띄었다. 하루키도서관은 동문쪽에 있었는데, 정문에서도 10분 거리였다. 와세다대 출신의 명사들이 많지만(이광수와 최남선도 수학했으니 한국문학과도 인연이 깊다) 대중적 인지도에서라면 단연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유명한 동문이겠다. 건축가 친구 구마 겐코의 설계로 2021년 개관한 하루키도서관은 모교에 남긴 하루키의 시그니처다. 개관 초기에는 하루키의 독자들로 만원사례였다고 하는데 오늘 찾았을 때는 공간에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이용자들보다 우리와 같은 관람객이 더 많아보일 정도(우리 일행 외에 중국인 여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하루키의 것을 모방했다는 서재와 그가 기증했다는 음반을 배경으로 하루키표 블렌딩의 커피를 마셨다. 관광객이 많이 찾으면 집중에도 방해가 될 것 같긴 한데. 하루키도서관은 잘 지어지고 잘 꾸며진 도서관이었다(도서관을 배경으로 혹은 모티브로 한 그의 소설들을 읽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이겠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진보초의 고서점가로 가기 전에 일행은 와세다대 식당에서 학식으로(학식이라지만 일반인 요금으로) 점심을 먹었다. 학식만큼은 한국의 대학식당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지난해 11월에 김윤식 교수 전시회 단체관람차 서울대 규장각을 찾았다가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었다). 입맛의 차이일까.

오후 일정으로 2018년에 이어 두번째로 찾은 진보초는 고서점들이 밀집된 곳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대부분 일어책들이라 나로선 실제적인 관심을 갖기 어렵다. 말 그대로 구경만 하는 차원. 대신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의 문인들이 즐겨 찾았다는 카페 밀롱가 누에바를 찾아 블렌딩 커피를 마셨다. 탱고 카페답게 시종일관 탱고음악이 흘러나왔다. 밀롱가 누에바 방문은 어제 찾은 근대문학관에 이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흔적 잦기의 하나.

2일차 마지막 일정으로는 롯폰기 힐스(도쿄에서 높이가 6번째라는 고층빌딩)에 위치한 모리미술관을 찾았다(빌딩의 53층에 자리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미술관이라고). 루이스 부르주아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데 루이스 부르주아 개인전으로는 거의 최대규모이지 않을까 싶다. 대형 거미 조각 말고는 생소한 작가의 많은 작품을 짧은 시간 동안 훑어볼 수 있었다. 여성의 출산과 수유를 모티브로 한 연작들이 인상에 남는다.

도쿄에서 가장 핫하다는 롯폰기에서 일본식 라멘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밤거리의 일루미네이션까지 구경하는 것으로 2일차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일정을 되짚어보니 하루를 충실히 보냈다는 느낌이 든다. 하긴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고 해도 일본을 안방 드나들 듯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정이 빡빡할 밖에. 내일은 좀 여유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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