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 교수가 어젯밤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1908-2006). 아마도 내일 아침 신문마다 이 저명한 경제학자의 타계 소식을 전할 듯한데, 강의 계획안을 만드는 일을 하다가 잠시 짬을 내어 고인의 부고기사와 사소한 추억 거리를 떠올려본다. 기사는 한겨레와 세계일보의 것이다.

한겨레(06. 04. 30) 부의 분배와 같은 논란적인 주제를 연구해 온 세계적인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29일 밤(현지시각)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마운트 오번 병원에서 숨졌다고 <아에프페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향년 97세.

-1908년 10월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난 갤브레이스는 1934년 이후 하버드대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경제학뿐 아니라 경영학·역사학·사회학도 폭넓게 연구했다. <뉴욕타임스>는 “갤브레이스는 복잡하고 재미없는 주제를 학식있는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능력을 보임으로써 존경과 질투를 한몸에 받았으며, 때론 장광설로 경멸을 받기도 했다”고 고인을 평가했다. 33권의 저서를 남긴 갤브레이스는 58년 펴낸 <풍요로운 사회>에서 “미국의 경제는 개인의 부를 낳았지만 학교나 고속도로와 같은 공공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성장 위주의 미국 경제정책을 통렬히 비판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 온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년 동안 미국 정치 무대에서 거물로 통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에서 빌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민주당 대통령의 자문역으로 일하거나 연설문 작성에 관여하는 등 미국 민주당의 방향과 민주당 지도자들의 사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시절인 61∼63년에는 인도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베트남전 탓에 린든 존슨 대통령과 결국 결별하기는 했지만, 존슨 대통령이 ‘위대한 사회’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크게 기여했다. 정부에서 일한 경험 등을 토대로 <트라이엄프>(1968년) 등 소설 세 편을 쓰기도 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그를 “경제학자보다 경제학 외부에 더 영향을 끼친 경제학자”라고 표현한 대로, 그의 업적이 과대포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기현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그의 제도경제학이 사회적인 비판에 자주 이용됐지만 실제 그의 이론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경제학자는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별로 없다”며 “다만 그가 사회적 발언을 많이 했다는 점에서 경제학자로서 높이 살 만하다”고 평가했다.

-홍 교수는 “그의 비판이론의 핵심은 ‘집단간 갈등이 직접적 의사소통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예컨대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독점도 시민단체·전문가 집단의 비판, 곧 ‘정치적 대항력’을 통해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갤브레이스는 사회에 비판적이었지만, 이런 정치적 대항력을 들어 사회에 대해 비관적이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세계일보(06. 04. 30)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지난 29일 향년 97세로 사망했다. UPI통신 등 미 언론에 따르면 갤브레이스 교수 가족은 이날 그가 최근 2주 동안 입원해 있던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소재의 한 병원에서 고령으로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출신 갤브레이스 교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빌 클린턴 행정부까지 오랜 기간 민주당 정권의 경제 자문역으로 활동했으며,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는 인도 주재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는 또 1946년과 2000년 각각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메달을 수상했고, 미국 경제학회장을 역임했다.

 

-갤브레이스 교수는 온타리오 농대와 토론토대를 다녔으며,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1934년 하버드대에서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는 <풍요로운 사회>, <불확실성의 시대>, <대공황> 등의 저서를 통해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이름을 알렸으며, 특히 1958년 발간된 <풍요로운 사회>는 미국의 모던라이브러리 출판사가 구성한 도서 평가위원회에서 ‘금세기 영어로 된 논픽션 분야 100대 서적’ 가운데 46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2차대전 이후 각종 사회 문제 해결에 대한 정부 개입을 지지했다. 저서 <풍요로운 사회>에서도 그는 “미국 경제가 개인적 부를 창출하고 있지만 학교와 고속도로 등 공공 수요에는 적절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 개입을 촉구했다.

-1975년 하버드대 교수에서 은퇴한 그는 자신의 저서와 같은 제목의 영국 TV 시리즈 ‘불확실성의 시대’를 진행해 더욱 명성을 얻었다. 신랄하고 통렬한 풍자로 미국 사회를 비판해온 신장 2m의 거구 갤브레이스 교수는 집필을 위해 버몬트주 산악지역에 있는 별장에서 수개월 동안 칩거하는 등 억척스러운 ‘일벌레’로 알려져 있다.

-1998년에는 소련 경제학자 스타니슬라프 멘슈코프와 <자본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공존:고통스런 과거에서 더 나은 가능성으로>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공존>(영남대출판부, 1990) 등으로 번역돼 있다).  

내가 대학에 들어왔을 때 가장 유명했던 현역 경제학자가 갤브레이스였고, 가장 유명한 책은 <불확실성의 시대>였다. 그래서 아마 소장하게 된 것이 범우사판 <불확실성의 시대>였을 것이다. 세로읽기여서 다 읽어볼 엄두를 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내가 산 최초의 경제학 관련서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1977년의 BBC TV강좌를 토대로 한 만큼 대중적이었던 이 경제사 책은 칼 세이건(1934-1996)의 <코스모스>를 떠올리게 한다(학원사판 <코스모스>를 나는 고등학교 때 사서 읽었다. 내가 산 최초의 천문학 책). 두 사람 다 소위 '최고의 경제학자나'나 '최고의 천문학자'로 남지는 않겠지만, 가장 친근하고 대중적이었던 경제학자와 천문학자로 기억될 듯하다.  

 

 

 

 

<불확실성의 시대> 이후로도 나는 갤브레이스의 책들을 여러 권 더 샀다. 비교적 두껍지 않은 책들이었지만, <만족의 문화>(동아일보사, 1993) 정도를 빼면 완독한 책은 거의 없다(폴 크루그먼의 책들도 그런 식이다). 그래도 나는 갤브레이스가 '기본'이라고 생각해왔다(이른바 '각인' 행동이란 것. 정신의 '성장기'에 영향을 준 저자나 책들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더불어 '비판적 거리'를 갖지 못한다).

이번에 부음을 듣고 갤브레이스의 책들을 검색해보다가 다소 놀라고 실망했는데, 그토록 많이 번역되었건만 제대로 남아있는 책이 한두 권밖에 없었다! 미국 현지사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국내에서는 '잊혀질 경제학자'에 속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우리는 '불확실성'이 제거된 시대에 살고 있는가? 하긴 우리 사회는 '위험사회'요, 우리 시대는 '확실한' 테러리즘의 시대, 제국주의의 시대이다!).

비록 그의 업적이 '과대 포장'된 점이 없지 않다고 하나 젊은 날의 '영웅들'을 하나둘 잃어간다는 건 쓸쓸한 일이다. 우리는 아마도, 앞으로 궁극적으로는 '풍요로운 사회'의 '만족의 문화'를 지향하게 될 터인데(그게 대한민국의 꿈인가?), 갤브레이스의 충고쯤은 기억해둠 직하지 않을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06. 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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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oli 2006-04-30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확성실의 시대를 재밌게 읽었는데, 참 안타깝네요.
거인의 죽음을 직접 목도하는 데 은근한 기쁨도 있긴 하지만요.^^

로쟈 2006-04-3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근한 기쁨'의 이면은 이제 '우리'도 나이를 좀 먹었다는 '슬픔'이죠...

maritime 2006-09-05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다큐를 보니 빈국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정책를 꼬집는 고령의 갤브레이스가 나오더군요. 지식인이 걸어가야할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06-09-05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정도 '양심'도 드문 시대인 거 같습니다...
 

 

 

 

 

시, 소설, 비평, 게다가 러시아문학 연구자로서 '토탈 플레이'를 펼쳐보이고 있는 이장욱의 신작 시집이 나왔다. <정오의 희망곡>(문학과지성사, 2006). 사실 나온 지는 좀 됐다. 한데, 아직 책을 받아보지 못한지라(저자 사인본을 보내줄 거라는 얘기를 간접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다) 몇 마디 거드는 걸 자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언론에서도 비교적 비중있는 리뷰들을 싣고 있어서 일단은 한 곳에 모아놓는다(참고로, 인용하는 일간지들의 게재일자는 인터넷상에서 옮겨왔을 경우 실제 게재일과는 하루 정도 차이가 난다). 개인적으로 부탁을 받은 바 없지만 그래도 좀 띄워주는 게 의리가 아닌가란 생각에서. 그리고, 혹 잠재적인 독자가 <정오의 희망곡>을 읽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리란 생각에서. 인용문에서의 강조는 나의 것이다.  

중앙일보(06. 04. 21) 2월 14일 정오 서울 프레스센터. 창비 40주년을 앞두고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거기, 백낙청 선생 옆 자리, 공부 잘하게 생긴 청년 하나 앉아있었다. 농 섞어 질문을 던졌다. "거기 앉아있는 거 불편하지 않아요?" 대답은, 제법 다부졌다. "제가 여기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오늘 창비의 모습입니다."

-그의 이름은 이장욱. 1968년생이고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87학번이다. 94년 시인이 됐고, 여태 평론집 두 권과 시집 한 권, 장편소설 한 권을 발표했다. 처음 썼다는 소설은 지난해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았다. 그러니까, 많지도 않은 나이에 시도 짓고 평론도 하고 소설도 쓴다는 얘기다.

 

 

 

 

-그가 두 번째 시집 <정오의 희망곡>(문학과지성사)을 발표했다. 시는 각오했던 대로 난해하다. 온전히 해석한다는 게 사실 무리다. 그는 평론가 권혁웅이 명명했던 이른바 '미래파'의 핵심 당원. 다시 말해 그의 시는 소통 기능이 미미하다는 말이다. 인칭과 시제를 초월하고 상상력의 극단을 추구하는 갖가지 실험 자체가 그의 시 세계란 뜻이다.(*사실 김소월의 어떤 시들도 상당히 난해하므로 '난해성' 자체가 시의 결함은 아니다. 중요한 건, 어떤 난해함인가 하는 것.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주는.) 

-굳이 참견한다면, 그에게선 지식인 냄새가 난다. 요즘 젊은 시인들에게서 종종 보이는, 난무하는 욕설과 흥건한 성적 암시 따위가 그에겐 없다. 이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겠다. 이상의 '오감도'가 연상되는 '나의 우울한 모던 보이'에서 현대를 사는 도시인의 우울과, '너에게 나는 소문이다./나는 사라지지 않지./나는 종로 상공을 떠가는/비닐봉지처럼 유연해.'('근하신년' 부분) 같은 대목에서 기존 질서를 거역하는 부정(否定)의 시학이 읽힌다고. 그러면 시인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래, 맘대로 해. 나는 너를 피해 먼 곳을 돌아갈 테다. 우리 만나지 말자.'('비열한 거리' 부분)

-이장욱을 이해할 수 있는 몇 가지 자투리를 제공한다. 그는 진짜로 공부를 잘한다. 아니 열심히 한다. 그는 집 근처 독서실에서 입시생과 나란히 앉아 시를 짓고 소설을 쓴다(이런 시인, 처음 봤다). 그리고 그는 비밀결사 '빨간 바지'의 조직원이다. 권혁웅.김행숙.장석원.여태천.하재연 등 고려대 출신 또래 시인들의 시 합평회 모임이다.

-권혁웅에 따르면 시 두어 편을 두고 몇 시간씩 토론하는 지루하고 밋밋한 모임이다. 여태 외부에 알려진 적 없어 비밀결사란다. 이장욱은 98년부터 암약했다.(*이들이 '빨간 바지' 마피아들이다. 우리 시단의 전복을 꿈꾸고 있는?) 두 달 전 그는 창비의 신임 편집위원 자격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건 필경 뉴스였고 일종의 난센스였다. 그럴 수밖에. 그는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최전방 어딘가에 서있기 때문이다.(손민호 기자)

 

한국일보(06. 04. 22) 이장욱씨의 시집 ‘정오의 희망곡’(문학과지성사) 속의 시적 주체들은 엉뚱하다. 너무 엉뚱해서 종잡을 수가 없다. 이는 시인의 시적 자아의 엉뚱함이라 해도 무방할 듯 싶다. 그의 시들은 ‘나, 당신, 우리, 그, 그들’ 등의 대명사로 지칭되는 수많은 인물들로 북적거린다. 종잡을 수 없다 함은, 등장인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한 편의 시 속에서도 하나의 캐릭터로 고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호적이다./ 분별이 없었다./ 누구나 종말을 향해 나아갔다./ 당신은 사랑을 잃고/ 나는 줄넘기를 했다./내 영혼의 최저 고도에서/ 넘실거리는 음악,/ 음악은 정오의 희망곡/ 우리는 언제나/ 정기적으로 흘러갔다./누군가 지상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냉소적인 자들은 세상을 움직였다./(…)/ 나는 사랑을 잃고/ 당신은 줄넘기를 하고/ 음악은 정오의 희망곡,/ 냉소적인 자들을 위해 우리는/ 최후까지/ 정오의 허공을 날아다녔다.”(표제작)

-‘당신’과 ‘나’의 감쪽 같은 탈바꿈, 혹은 시적 화자의 자리바꿈이 해명되는 유일한 단서라면 ‘우리는 우호적’이라는 아주 느슨한 연대감일 것이다. 그들은 그 느슨한 연대로 ‘세상을 움직이는 냉소적인 자’들을 어렴풋이 냉소한다. 그 배경 음악은 슬프게도 ‘정오의 희망곡’이다.

-그의 시에서는 시적 주체들이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 역시 엉뚱하다. “오 분 전과 머나먼 미래가 한꺼번에 다가”(‘결정’)오고, “10년 후의 1루 베이스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10년 후의 야구장’)간다. “여름의 잎새들 사이로 12월의 눈이 내”(‘여름의 인상에 대한 겨울의 메모’)리고, "수도관의 저편에서 빙하의 이동이 시작”(‘지진’)된다. 시간과 공간, 주체가 뫼비우스의 띠로 꼬아놓은 새끼줄처럼 그렇게 종잡을 수가 없다. 그 엉뚱한 시공간 속에서 엉뚱한 주체들은 ‘좀비 산책’을 하고, 길을 가다가 펭귄을 만나기도 한다.(‘엉뚱해’)

-세상이 엉뚱하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세상이 그러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근대의 이성, 그 강박적 질서의식이 세상의 종잡을 수 없음을 정돈해 우리 인식 속에 체계화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세계 인식은 질서 강박의 거푸집으로 주조된 가짜일 것이다.

-이들 시적 주체들의 종잡을 수 없음은 그 종잡을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반항이거나, 냉소이거나, 위로이거나, 견딤의 방식은 아닐까. 그래서 마치 좀비라도 된 듯 산책도 하고, 도시 한복판에서 펭귄을 만나는 공상도 하고, 코를 맞대는 아프리카식 인사를 해보는 것(‘아프리카 식 인사법’)은 아닐까.

-“이제 삼차원은 지겨워. 그러니까 깊이가 있다는 거 말야. 나를 잘 펴서 어딘가 책갈피에 꽂아줘. 조용한 평면.//(…)// 조용한 평면처럼 어떤 내부도 지니지 않는 것들과 함께(…)”(‘중독’ 부분)

-시집은 엉뚱한 세상을 향한 엉뚱한 저항과 냉소와 위안과 희망으로 풍성하다. 최소 저항으로 그 엉뚱함의 궤도 속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삼차원을 ‘조용한 평면’으로 펴야 할지 모른다.(최윤필 기자)

'정오의 희망곡' 진행자 정선희씨.(라디오를 따로 듣지 않기 때문에, 내가 '정오의 희망곡'을 들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정의 레퀴엠'이나 가끔 들었을까?)

동아일보(06. 04. 27) 

-‘당신은 사랑을 잃고 / 나는 줄넘기를 했다. / 내 영혼의 최저 고도에서 / 넘실거리는 음악, / 음악은 정오의 희망곡.’(‘정오의 희망곡’에서)

-이장욱(38) 씨는 시인이고 소설가이며 평론가다. 등단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 씨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게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김민정 황병승 씨 등 젊은 시인들의 실험시가 시단의 주요 경향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보다 앞서 쓰인 이 씨의 시도 주목받게 됐다.(*평론가 이장욱은 무엇보다도 이 새로운 경향의 시인들을 읽어내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그의 두 번째 시집 <정오의 희망곡>(문학과지성사)은 그런 실험 정신으로 가득하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언어인데 한 편의 시로 엮이니 낯설게 보이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오늘은 인형처럼 걸어다녔다… 나는 어떤 편향도 없다 / 무슨 말인가 흘러나오려는 순간에 / 조용히 멈출 수 있다.’(‘가을에 만나요’에서) 인형처럼 생각도, 말도 없이 걷던 화자는 시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감정을 갖는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다. ‘드디어 당신의 미소를 느끼며 / 나는 전진하였다 / 당신을 향해 / 한 발 한 발.’

-이런 독특한 작품들은 시에서 메시지를 찾는 데 익숙해진 독자에게는 당혹스러운 경험일지도 모른다. 이 씨도 “내 시가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면서 “시 너머에 다른 의미가 있으리라는 편견을 갖지 말고, 보이는 그대로 읽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한다. 시에 위대하고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보이는 그대로 읽으면서 언어미를 향유해 달라는 것이다.(김지영 기자)

(*)띄워준다고 해놓고서 시가 난해하다는 리뷰만 나열해놓았으니 이 또한 '수행적 모순'이 아닌가 걱정된다. 걱정을 덜기 위해서 샘플로 올려져 있는 시 '먼지처럼'을 읽어보기로 한다. "시 너머에 다른 의미가 있으리라는 편견을 갖지 말고, 보이는 그대로".

먼지처럼

나는 코끼리의 귀가 되어 펄럭거리고
너는 개의 코가 되어 먼 곳을 향하고
우리는 공기 중을 부드럽게 이동하였다.

活命水를 마시고 있는 약국 안의 사내와 함께
머리를 말리고 있는 여자의 거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배경이 되어
무한히 지나갔다.

오늘 아침의 세계는 역사와 무관하고
어젯밤의 세계는 다만 어젯밤의 세계,
우리는 어지럽고 아름다웠다.
먼지처럼
음악처럼

오늘은 누군가 성수와 뚝섬 사이에서 사라지고
누군가 병든 유태인처럼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누군가 박물관의 입구처럼 조용해지고
아침에는 추리 소설 속의 탐정처럼 깨어났다.

노련한 사서들은 언제나 음악의 비유를 경계했지만
우리는 미래와 음표로 나아가기 위해 현재에
집중해야만 하는 피아니스트와 같이

나는 내일도 기린의 목처럼 부드럽게 휘어졌다.
너는 모레도 하마의 입처럼 무거워졌다.
우리는 삼십 년 후에도 가득한 먼지처럼
천천히 이동하였다.

이 시의 퍼즐을 맞춰보기로 하자. 다른 시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에 여기서는 시인 고유의 어휘적, 통사적, 의미적 반복과 패턴을 재구성할 수는 없고, 단지 이 시에 한정하여 '보이는 그대로' 읽어보는 수밖에 없겠다. 먼저, 시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반복되고 있는가이다(원론적으로 말해서 리듬은 반복에 의해서 만들어지기에 반복은 시의 필수조건이다). '우리는 이동하였다', '우리는 먼지처럼 천천히 이동하였다'가 이 시의 핵심 의미소이다. 묘사되고 있는 나머지 대상들은 이 이동중에 보게 되는 '우리의 배경'이다.   

'우리' 자신을 '먼지'에 비유하고 있는 이 시의 시적 세계관은 허무주의이다. 먼지란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의 유구한 상징이기에. 어차피 아무것도 아니기에 우리는 기꺼이 코끼리이고 개이고 기린이고 하마이다. 하지만, 시적 화자는 그 '먼지적 세계관'의 허무주의를 부드럽게 허락하고 수용한다. 그건 이를 테면 체념이다. 이 체념적 정서에서 '욕망'이 배태될 리 없다. 화자는 다만 관조할 따름이다. 바람결에 떠도는 먼지 같은 세상과 세월과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 '우리는 먼지처럼' 그냥 " 活命水를 마시고 있는 약국 안의 사내와 함께/ 머리를 말리고 있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늘 아침의 세계는 역사와 무관하고/ 어젯밤의 세계는 다만 어젯밤의 세계"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도 그러한 관조적 허무주의이다(풍경 자체가 허무주의의 산물 아닌가?).

모든 의미가 증발해버릴 만한 의미의 영점, 혹은 '가장 짧은 그림자'를 거느린 정오에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내용 없는 아름다움'으로서의 음악일 뿐(이런 시의 계보의 우두머리에 김종삼을 앉힐 수도 있으리라. 중간 보스쯤에는 박상순을)."우리는 미래와 음표로 나아가기 위해 현재에/ 집중해야만 하는 피아니스트와 같이" 포즈를 취하고.

그런데, '피아니스트'로서 이장욱이 연주하는 음악은 지극히 모던해서, 독자의 이지를 자극하기는 하지만 정서적인 감화를 주지는 않는다. 그러한 음악이 '정오의 희망곡'이란 표제로 배달되는 것은 또한 지극한 유머이다. 그 유머에 어떤 트라우마가 배어 있는 것인지는 나는 아직 알지/확인하지 못한다. 하니 나는 당분간 그의 시의 배경으로만 남도록 하겠다...

06. 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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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7-16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형철의 글로 해서 김행숙을 읽으며, 'too deleuzian'이라고 느꼈습니다. 비평가로서는 이런 작가가 얘기하기 쉽겠다 싶은... 하지만 신형철 문장이 워낙 매력 있어서 ... 이별의정거장을 사서 좀 읽었습니다... 그런 건 있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감성... 이때 주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만... 저는 추사 세한도에서 그 극적인 예를 봅니다, 그런데 거기엔 충만한 숭고미의 '배면'이 있습니다. 진짜 기교적이죠!... 또 좀 들여다보니 김행숙의 시에서도 숭고미가 느껴집니다. 신형철은 탈숭고라고 해석했지만요... 그런데 중요한 건 '배면'입니다...

미지 2010-07-16 0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없는 아름다움으로서의 음악... 시는 철학과 음악의 결핍이 겹치는 곳에서 탄생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언어의 순서(학)와 감각의 순서(악)가 조성하는 물질적 공허, 육체적 무의미를 달래기 위해 '노래'가 필요했을 거라는... 결국 시는 물질적으로 충만하고 육체적으로 의미로운 언어이자 음악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자 일종의 요구가 떠오르네요.
 

 

 

 

 

곁다리텍스트(paratext)로 가장 먼저 다룰 텍스트는 바흐친의 <말의 미학>(도서출판 길, 2006)의 서문 역할을 하고 있는 '예술과 책임'이다. 미하일 바흐친(1895-1975)이 1919년, 그러니까 24살 때 발표한 이 두 쪽짜리 텍스트는, 그러나 '최초의 공식 문건'이라는 바흐친 개인사적 의의 이상의 무게감을 갖고 있는 중요한 텍스트이다. 개인적으론 12년 전에 대학원에서 바흐친 강의를 들을 때 가장 먼저 읽은 텍스트이기도 하다(나는 그때 이미 바흐친보다 더 나이를 먹었었다!). 아래 사진은 1920년대의 청년 바흐친.

한데, 역자 해제에서 지적되고 있는 바대로, 책에 실린 대다수 논문들이 그렇기는 하지만, '예술과 책임'은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쓴 완성본(이라기)보다는 이후 출판을 위한 초고적인 성격의 글로서 완전히 전개되지 않은 미완성본 성격의 글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곁다리텍스트로 분류할 수 있지만, '예술과 책임'은 한편으론 바흐친의 이론적 작업 전체의 방향을 시사해주는 마니페스토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 텍스트의 그러한 의의는 '미적 활동에서의 작가와 주인공' 등을 발췌한 영역본의 제목이 <예술과 책임(Art and Answerability)>(1990)인 것에서도 간접적으로 시사받을 수 있다. 참고로 영역본의 서문을 쓴 저명한 바흐친 연구자 마이클 홀퀴스트는 바흐친의 이론적 세계를 아예 '책임의 건축학'이라고 규정짓고 있기도 하다. 바흐친의 기념비적인 저작 <도스토예프스키 시학의 제문제>는 이로부터 10년후인 1929년에 출간된다(개정판이 나오는 건 1963년이며 국역본은 이 개정판의 번역이다).  

참고로 이 텍스트는 <바흐찐의 소설미학>(열린책들, 1988)에 이미 한번 번역/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번역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한편 당시는 <장편소설과 민중언어>(창작과비평사, 1988),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한겨레, 1988) 등이 앞서거니뒤서거니 출간됨으로써 국내에 1차 바흐친 붐이 조성되던 때였다(이젠 바흐친 전집도 기획중이라고 하는데, 바야흐로 새로운 붐이 마련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청년 바흐친이 '예술과 책임'이란 글에서 주장하는 바는 무엇인가? 짧은 분량이므로 내용을 따라가보겠다. 첫 문단이다: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개개 요소들이 공간과 시간 속에서 단지 외적인 연결로만 결합되어 있을 뿐 의미의 내적 통일로 충만되어 있지 않을 경우, 그 전체를 기계적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전체의 부분들은 비록 나란히 놓여 있고, 또 서로 접촉하고 있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서로 이질적이다."

바흐친이 첫 문단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외적인/기계적인 결합이다. 이 경우에 서로간에 접촉은 있다 하더라도 낯설고 이질적인 관계로 남게 된다. 현대사회에서의 이웃관계처럼 필요한 경우에 서로 아는 체는 하지만 서로간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인간적인 교제는 대충 생략하는 것. 그게 외적인/기계적인 결합관계이다. 예술과 삶의 관계가 그러한 결합관계가 돼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 문화의 세 영역인 학문과 예술과 삶은 그것들을 자신의 통일성으로 결합하는 개성 속에서만 통일성을 얻는다. 그러나 이러한 결합은 기계적이고 외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일은 실제로 대단히 자주 일어난다. 예술가와 인간은 순진하게 또 대개는 기계적으로 하나의 개성 속에서 결합된다... 예술은 너무나 뻔뻔스럽고 자만에 빠져 있으며, 너무나 감상적이고, 당연히 그런 예술을 따라잡을 수 없는 삶에 대해 눈곱만큼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래, 우리에게 예술이 무슨 소용이야?' 하고 삶은 말한다. '그건 예술이란 것이고, 우리에게 있는 건 일상사의 산문이라구.'"

 

 

 

 

인상적인 구절은 "예술은 너무나 뻔뻔스럽고 자만에 빠져 있으며, 너무나 감상적이고, 당연히 그런 예술을 따라잡을 수 없는 삶에 대해 눈곱만큼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구절이다. 근대의 예술, 그러니까 예술의 자율성을 획득/확보한 시대의 예술은 너무나 잘난 예술이어서 더 이상 산문적이고 천박한 삶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한국 근대문학의 경우 '아티스트' 김동인의 문학/예술관이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그것이 모더니즘 예술의 엘리트주의이며 '비인간화'(오르테가 이 가세트)이다. 이 고상한 것들은 삶을, 우리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엘레강스한 언니들처럼(사진은 <욕망의 모호한 대상>, <내겐 너무 이쁜 당신> 등의 영화에 출연한 프랑스의 여배우 겸 샤넬의 모델 캐롤 부케).

물론 근대 예술이 정치권력에의 종속으로부터 탈피해온 과정 자체는 진보적인 것이었지만, 삶의 요구로부터 멀어지면서 예술의 자율화는 자기 소외의 과정이 되어버린 것('랄랄라 하우스'는 그 궁극적 귀결이다. 오락은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 문학의 자율성을 전제로 한 러시아 형식주의에 대해 바흐친이 비판의 포화를 늦추지 않는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이다. 삶과 예술의 분리, 기계적인 결합이 문제였던 것이다('기계로서의 예술'은 초기 형식주의자들의 모델이기도 했다).

그렇게 될 경우, "인간은 예술 속에 있을 때에는 삶 속에 있지 않고, 삶 속에 있을 때에는 예술 속에 있지 않다. 그것들 사이에는 어떤 통일성도 없으며, 개성의 통일성 속에서 내적으로 서로에게 속속들이 스며들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개성을 이루는 요소들의 내적 결합을 보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로지 책임의 통일이다. 내가 예술에서 체험하고 이해한 모든 것이 삶에서 무위로 남게 하지 않으려면 나는 그것들에 대해 나 자신의 삶으로써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책임은 죄과와도 결합되어 있다. 삶과 예술은 서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죄과도 떠맡아야 한다... 인격은 전적인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 개성의 모든 요소들은 그저 삶의 시간적 연속 속에서 나란히 배열되는 것을 넘어서, 죄과와 책임의 통일 속에서 서로에게 속속들이 스며들어야 한다." 

여기서 책임은 영역본에서 'responsibility' 대신에 쓰인 'answerability'가 잘 말해주듯이 '응답'하는 것이다. "너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과 호소에 알리바이를 대지 않고 응답하는 것, 출석하는 것, 그것이 책임이다. 삶과 예술은 서로 독립적이지만 우리의 인격 속에서 그러한 상호책임의 관계로 통합된다. 그 책임이 서로에 대한 죄과도 떠맡아야 한다는 바흐친의 주장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반향을 읽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그는 오래지 않아 곧 최고의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서를 쓰게 될 것이다). 

더불어 레비나스(1906-1995)의 윤리적 주체도 상기시켜준다. 바흐친의 미학은 레비나스의 윤리학과 상통한다. 레비나스가 자기보존적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맥락에서 바흐친은 예술의 자율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미 바흐친과 레비나스를 비교하는 논저들이 여럿 나와 있다). 삶과 예술은, 그리고 나와 타자는 서로에 대한 책임과 죄과를 떠안아야 한다(레비나스의 경우에는 1인칭 '나'가 절대적으로 더 많은 책임/죄과를 떠안아야 한다. 왜? 'first person'이니까).  

"무책임을 정당화하기 위해 '영감'에 의지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삶을 무시하고, 그 자신이 삶에서 무시당하는 영감은 영감이 아니라 사로잡힘이다. 예술과 삶의 상호관계, 순수예술... 등등에 대한 모든 오래된 문제들의 거짓이 아닌 진짜 의미, 그 물음들의 진정한 파토스는 그저 삶과 예술이 서로의 과제를 가볍게 해주고, 서로의 책임을 벗겨주려는 데 있을 뿐이다. 삶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창조하는 것이 더 쉽고, 예술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사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으로 '예술과 삶의 관계'나 '순수예술'에 관해 말해져온 것들은 모두 그러한 책임으로부터 '면피'하기 위한 간계들일 뿐이다. 분명, 삶을 책임지지 않는 예술이나 예술을 책임지지 않는 삶은 보다 편한 삶이고, 보다 쉬운 예술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안락한 삶'이다. '안락사'로의 여정만을 남겨놓은.

바흐친은 그러한 삶을 좀 불편하게 만들고자 한다. 이성복의 시구를 빌자면, "詩를 쓰고 쓰고 쓰고서도 남는 작부들, 물수건, 속쓰림..."에 대해서 시는, 예술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책임의 통일성하에서라면 예술의 자기종결성은 가능하지 않다(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비종결성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하여, 결론: "예술과 삶은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 안에서, 나의 책임의 통일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긴 이러한 대사는 우리의 '어린왕자'도 말한 적이 있다: "… 내 꽃… 나는 꽃에 책임이 있어! 그리고 그 꽃은 너무 약해! 너무 순진해… 이 세계와 맞서 제 몸을 지킬 가시 네 개 뿐이야…" 그러한 책임을 방기할 때 잘난 예술은 기교가 되고 못난 삶은 일상이 된다. 삶은 예술을 경멸하고 예술은 삶을 혐오한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비록 그 대답에 책임을 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06. 04. 29.

P.S. 이 텍스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두 가지를 덧붙인다. 첫째는 본문에서 예술과 삶의 결합 방식이 두 가지만 언급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세 가지를 읽어내야 한다는 것. 즉, (1)삶과 예술의 외적/기계적 결합, (2)삶과 예술의 내적 결합(이념에 의한 통일), (3)삶과 예술의 내적 결합(책임에 의한 통일). 이 세가지 입장을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1)형식주의 (2)맑스주의 (3)대화주의가 된다(이 대화주의를 미학적으로만 독해하는 것은 오류이다. 그것은 미학이면서 윤리학이다). 여기서 두번째 결합방식은 소비에트 시기의 공식 이데올로기로서 문학/예술에 가해진 요구였다(그것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귀결된다). 바흐친은 이 두번째 방식/경향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바흐친-도스토예프스키는 내내 소비에트의 '비주류'였다.

그리고 둘째는 인간 문화의 세 영역 가운데, 바흐친이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고 있는 '학문과 삶의 관계'이다. 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시 반복하자면, "학문과 삶은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 안에서, 나의 책임의 통일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건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삶과 학문이 서로에 대한 죄과와 책임을 떠맡지 않는다면 그건 각각 허접한 삶이고 빈곤한 학문이다('직업으로서의 학문'이 전부가 아니다). 비록 얼굴에 기름기 흐르는 삶이고 돈벼락에 허우적거리는 학문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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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4-30 03:13   좋아요 0 | URL
로쟈님, 오늘도 감사~ 올리시는 글마다 너무 혹해서 아예 'from 로쟈'라는 비공개 카테고리를 만들어버렸어요..^^;;;

로쟈 2006-04-30 09:43   좋아요 0 | URL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임감이 느껴지는군요.^^

기인 2006-04-30 13:09   좋아요 0 | URL
늘상 고민하고 있었던 문제에 대해 하나의 방향이 된 것 같습니다. ^^ 삶-문학, 삶-학문을 '나의 책임의 통일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는 일'.
answerability는 바흐찐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라고 고민했던 문제인데, 응답가능성 정도로 생각했었습니다. 읽으면서 이것도 도움이 되었네요 ^^
바흐찐 전집은 연대 최건영 선생님 팀이 금년 안에 출간 시작할 것이라고 들었는데, 워낙 꼼꼼하신 선생님이라서 언제 '진짜'로 나올지는 잘 모르겠네요. 생각해보니 작년에 '올해 나올 것이니까 국문학도들에게 널리 알려요'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_-;

기인 2006-04-30 13:13   좋아요 0 | URL
아 그리고 퍼 갑니다. ^^

로쟈 2006-04-30 13:17   좋아요 0 | URL
기인님/ 바흐친을 좀 읽으셨군요.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수잔 손택의 신간 <강조해야 할 것>(시울, 2006)을 어제 받아들었다. '최근에 나온 책들'이라고 매번 소개하지만, 정작 내가 구입하는 책들은 40% 이내이다. 그러니까 5권을 언급하면 2권 이내의 책을 사는 것이며 그 정도만 돼도 3할은 넘는 '타율'이 아닌가라며 자위하는 편이다. '손택의 모든 책'이라고 할 만하지만, 두툼한 데다가 가격도 만만찮은 책을 바로 주문을 넣은 데에는 호워드 호지킨(Howard Hodgkin, 1932- )의 그림 '인도의 하늘(Indian Sky)'을 두르고 있는 표지도 한몫했다. 원서의 표지이기도 한데,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장정이 가장 화려하며 때문에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다. '강조' 하나는 제대로 하고 있는 표지이다.

국역본이 배달되자 마자 나는 도서관에서 며칠전에 확인해둔 원서 'Where the stress falls'(2001)를 대출했다. 서가의 제자리에 꽂혀 있지 않아서 직원에게 찾아봐줄 것을 부탁까지 했었는데, 다행히도 퇴근시간 전에 연락이 왔고 나는 그 책의 첫 대출자가 되었다(대출시스템이 전산화 돼 있기 때문에 최종대출일이 기록으로 남는다). 말하자면, '새책'이란 얘기이고, 이런 책을 대출할 때는 마치 직접 새책을 구입한 것 같은 부듯함을 느끼게 된다. 아래 사진은 2001년 한 서점에서 자신의 신간을 소개하고 있는 수잔 손택.

그리고 오늘, 읽어야 할 책들의 산더미 속에서도(나는 한번에 대략 10여권 이상의 책들을 건드린다) 마수걸이로 에세이 한편 정도는 읽기로 하고 편 것이 2부 '내가 읽은 것들'의 첫번째 에세이 '시인이 쓴 산문'이다. 처음엔 1부의 첫번째 에세이 '영화의 한 세기'를 읽으려고 했으나, 원서와 대조해본 결과 국역본의 차례는 1부와 2부가 바뀌어져 있었다. 즉 원서에는 '내가 본 것들(Seeing)'보다 먼저 나오는 것이 '내가 읽은 것들(Reading)'이고, 그래서 나 또한 그에 따라 2부를 먼저 읽기로 한 것(아마도 출판사로선 시작부터 '시인의 쓴 산문'을 읽어낼 독자가 많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흥미롭게도 '시인이 쓴 산문'은 러시아 작가들, 특히 여성시인 마리나 츠베타에바(1892-1941)에 관한 에세이였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출전에 따르면 이 에세이는 원래 츠베타예바의 산문집 <사로잡힌 영혼(Captive Spirit: Selected Prose)>(1983)의 서문으로 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손택은 러시아문학에 정통하다). '즐거운 책읽기'까지 적어놓으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그 때문이다. 더불어 몇 가지 번역상의 오류도 눈에 띄기에 교정해두고자 한다.

"19세기의 러시아가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1958년에 카뮈가 파스테르나크에게 경의를 표하는 어느 편지에서 이렇게 단언했다는 걸로 에세이는 시작하는데(그러니 러시아문학에 대한 참조 없이 카뮈를 읽는 일도 속없는 일이다), 그해에 스웨덴 한림원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했었다. "실제로 지난 25년 동안 뛰어난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번역되어 재발견되고 복권되었다."라는 건 지난 1983년 시점에서 영어권의 사정을 말한다. 20년이 더 지난 시점에서의 한국의 사정은 아직 턱도 없는 형편이다(단적으로 츠베타예바의 '시인이 쓴 산문'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전공자들의 반성이 요구된다(어떠한 핑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영혼을 바꿔놓은 19세기의 러시아는 산문작가들이 이뤄낸 업적이었다. 반면 20세기의 러시아는 주로 시인들의 업적이다. 물론 시를 통해서만 이루어진 업적은 아니다. 시인들은 산문을 통해서도 격정적인 의견을 쏟아냈다. 하지만 진지함이라는 이상은 필연적으로 비난을 불러일으킨다."(193쪽)

처음 두 문장은 타당한 주장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두 문장은 좀 의문스럽다. 원문은 "About their prose the poets espoused the most passionate opinions: any ideal of seriousness inevitably seethes with dispraise."(3쪽)이다. 'about their prose'가 '산문을 통해서도'란 뜻이 되는 건지 일단 의문이고(상식적으로 왜 '산문에 관해서'가 아닐까? 손택의 어법인가?), '하지만'은 왜 들어갔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이어지는 내용이 자전적 산문에 대한 파스테르나크의 폄하이기 때문에 맥락상으로도 두 문장의 의미는 와닿지 않는다.

내가 보기엔, 산문에 대해서 시인들이 격정적인 의견을 쏟아낸 것이고, (산문에서의) 어떠한 진지한 목적(이념)도 불가불 (시인들의) 비난을 사기 마련이다, 라는 정도의 뜻이 아닌가 싶다(손택의 어떤 문장들을 상상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읽기가 편하지 않다). 그럼 이어지는 내용은 무엇인가?

 

 

 

 

"파스테르나크는 죽기 전까지 몇십 년 동안 자신이 청년기에 썼던 뛰어나고 섬세한 자전적 산문(예를 들면 <안전통행증>)을 지나치게 자의식적이고 모더니즘적이라며 폄하했다. 반면 당시 집필하고 있던 작품 <닥터 지바고>는 자신이 쓴 글 중에서 가장 진실하고 완벽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비교가 불가능한 자신의 시 작품을 제외하고 말이다." 

번역문에는 오역이 포함돼 있기에 원문을 제시한다: "Pasternak in the last decades of his life dismissed as horribly modernist and self-conscious the splendid, subtle memoiristic prose of his youth (like Safe Conduct), while proclaming the novel he was then working on, Doctor Zhivago, to be the most authentic and complete of all his writings, beside which his poetry was nothing in comparison."

원제인 'A Poet's Prose'를 '시인이 쓴 산문'으로 옮긴 데에서 전문번역자로서 역자의 솜씨를 짐작할 수 있지만(대부분은 그냥 '시인의 산문'이나 '한 시인의 산문'이라고 옮길 것이다), 인용한 대목에서만큼은 실수가 도드라진다. 전체가 한 문장인 원문을 역자는 세 문장으로 분할했는데, 방점은 파스테르나크가 산문을 폄하했다는 데 놓여 있으므로 순서상으론 번역문의 첫번째 문장이 맨마지막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더불어, "beside which(=Doctor Zhivago) his poetry was nothing in comparison."을 "비교가 불가능한 자신의 시 작품을 제외하고 말이다"라고 옮긴 건 이해가 불가능한 오역이다. "<닥터 지바고>에 비한다면 그의 시들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뜻 아닌가?(참고로, <안전통행증>은 <어느 시인의 죽음>(까치, 1977)로 번역돼 있으며, 말년의 파스테르나크와의 인터뷰는 <11인의 위대한 작가들>(책세상, 1997)을 참조할 수 있다. 원래는 <나의 삶, 나의 문학>(책세상, 1989)로 소개됐던 책이다. 언론인 김성우의 러시아문학기행 <백화나무 숲으로>(제3문학사, 1991)의 파스테르나크 편도 유용하다. 아들 예브게니와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아래 사진은 파스테르나크가 숨은 거둔 모스크바 근교의 페레젤키노의 별장(다차). 가보진 못했는데, 지금은 파스테르나크 박물관이라고.  

해서 전체 문장을 다시 옮기면, "자신이 쓰고 있던 소설 <닥터 지바고>가 가장 진실하고 완벽한 작품이 될 것이며, 거기에 비한다면 그가 쓴 젊은 날의 시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공언하면서도 말년의 이십여 년간 파스테르나크는 (<안전통행증)> 같은)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섬세하고 빼어난 자전적 산문을 지나치게 자의식적이고 모더니즘적이라고 격하시켰다." 아래 사진은 1934년 작가동맹회의에서의 파스테르나크.

파스테르나크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모더니즘 최대 시인 중 한 사람인 오시프 만델슈탐(1891-1938)은 산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산문의 핵심은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산문자가나 수필가에 의미있는 것이 ㅣ시인에게는 (전적으로) 헛소리에 불과하다." 손택의 보충설명: "산문작가는 동시대인이라는 구체적인 청중에게 말을 건네야 하는 반면, 일반적으로 시는 시간적으로 먼 미지의 수신인을 향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한데, 웬 그녀? 원문의 '만델슈탐'을 다시 받기가 그랬는지 역자는 인칭대명사로 바꿔주는데, 그렇다고 성(性)까지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 만델슈탐의 아내 '나제쥬다 만델슈탐'이 걸출한 회고록의 저자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이는 '나제쥬다'가 아니라 '오시프'이므로 '그'라고 해야겠다. 사진은 1930년대 체포된 만델슈탐의 프로필 사진. 그는 1938년에 숙청됐다.  

이러한 배경설명하에 등장하는 이가 츠베타예바이다. 그녀 또한 시가 문학의 정점이라고 생각했는바, 어느 정도였느냐면 푸슈킨의 소설 <대위의 딸>에 대해서 "푸슈킨은 시인이었다. '고전적' 산문이라 할 수 있는 <대위의 딸>만큼 시적 호소력을 보여주는 작품은 없다"라고 했다. 즉, 푸슈킨이 소설을 시로 간주하는 것. 왜? 위대하니까? 만약 어떤 산문/소설이 위대하다면 그건 '시'이다. 시만이 위대하니까.

이러한 '편견'은 이 시기 러시아 시인들에게 널리 공유된 믿음이어서 손택은 망명시인 브로드스키(1940-1996)의 예를 덧붙인다(번역서에서 '이오시프 브로드스키'란 러시아식 이름을 '조지프 브로드스키'라고 영어식으로 읽어준 건 유감스럽다. 성경의 인물을 따라 '요셉 브로드스키'라고 타협할 수도 있을 텐대, '조지프'는 아무래도 낯설며 떨떠름하다). 그에 따르면 위대한 산문이란 "다른 표현수단을 통해 씌어지고 있는 시"이다.

"시를 이렇게 정의내리는 것은 실상 동어반복이나 마찬가지이다. 마치 산문을 '산문적인 것'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산문적인'이라는 말을 '지루하고 평범하며 단조로운'이라는 폄하적 의미로 생각하는 것은 정확하게 말해 낭만주의 시대의 사고이다." 손택의 논평이다. 어쨌거나 "문자의 공화국은 실상 귀족사회"이고 "이곳에서 귀족의 작위는 바로 '시인'이다." 여기서 '문자의 공화국'은 'the republic of letters'인데, 복수형의 'letters'는 '문학'을 뜻하므로 '문학의 공화국'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을 듯하다.

요컨대, "러시아 문학은 시인에 대한 낭만주의적 사고를 계승하고 있다. 현대 러시아 시인들에게 '시'는 비참하고 속된 현재와 사회주의 체제의 지리멸렬함에 맞서는 자유이자 개인성이며 체계에 순응하지 않는 정신이다(진정한 산문은 결국 국가라는 듯 말이다). 따라서 그들이 시의 절대성을 단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물론 시의 근원적 우월성을 주장했던 건 러시아 시인들만이 아니며 손택은 발레리와 거트루드 스타인 등의 사례를 더 예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인들이 산문을 썼다는 것. 손택의 서평 대상이 되고 있는 츠베타의 경우를 포함해서 말이다. 이에 대한 애기는 좀더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마저 다루도록 하겠다...

 

06. 04. 29 - 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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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5-0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은 본문에 적은 대로입니다(필요한 문장도 다 적었습니다). 'nothing in comparison'이 '견줄 수 없이 뛰어난'이란 뜻을 갖고 있나요? 'beside which'도 '-는 차치하고'의 뜻인가요? 저로선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더불어, 파스테르나크가 시라는 장르를 높이 평가했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초기시는 높이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닥터 지바고>에 대해선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실상 <닥터 지바고> 자체가 '소설로 쓴 시'입니다... 제가 너무 성급했군요.^^

bluegoby 2006-05-03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실수한 걸 깨닫고 고치려고 들어와 보니 로쟈님이 벌써 답글을 달으셨네요.
먼젓글은 무시해 주세요.

털세곰 2008-01-10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소개해주신 영역본 쯔볘따예바 산문집(Captive Spirit)의 링크를 따라가면 위키의 그녀 사진이 나옵니당^^ 그리고 이제는 영어책 못 읽겠어요. 하도 멀리하다보니 로쟈님 번역문의 오류 등을 원본과 대조해 지적해주시는 것들은, 정말 제게는 어디가 번역이 틀렸지 할 정도입니다 ㅠ.ㅠ

로쟈 2008-01-10 09:49   좋아요 0 | URL
링크가 그쪽으로 바뀌었군요. 러시아어나 영어나 읽는 만큼이죠. 한데, 중요한 건 한국어 같아요...
 

'곁다리텍스트'란 카테고리를 만들어놓고 며칠 묵혔다. 이미 대여섯 권의 책에 관한 대여섯 편의 이야기들이 내정돼 있지만, 따로 짬을 내기가 힘들다. 그래도 시작은 해놓아야겠기에 몇 자 적기로 한다. 사실 곁다리텍스트란 말을 상기하게 된 건 최근에 나온 치프킨의 <바덴바덴에서의 여름>(민음사)에 붙여진 수잔 손택의 서문에서 '범소설(parafiction)'란 단어를 발견한 덕분이다.

 

 

  

 

"나는 이 책을 지난 한 세기의 소설과 범소설(parafiction)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며 창조적인 성취를 이룬 작품에 포함시키고 싶다"라고 그녀는 치프킨의 소설에 대해 적었는데, 거기서 'parafiction'을 '범소설'이라고 옮긴 게 눈에 띈 것이다. 'para'란 접두어는 (against란 뜻도 갖고 있지만) beside란 뜻을 갖고 있으며 'parafiction'은 정격소설에는 포함하기 곤란하지만 소설이란 말의 외연을 최대한 확장시킬 때 포함될 수 있는 가장자리 소설을 뜻한다. 치프킨의 소설이 그렇게 분류된 건 그것이 역자의 지적대로 "소설과 다큐 사이의 경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곁다리텍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paratext'를 가리키며 그것은 텍스트의 범위를 최대한 확장시킬 때 포함될 수 있는 가장자리 텍스트들을 가리킨다. 그걸 '곁다리텍스트'라고 최초로 옮긴 이는 내가 알기에 비평가 김현이었다. 그 번역어를 나는 비평집 <분석과 해석>(문학과지성사, 1988)에 실린 맨마지막 글 '서문과 독자'에서 처음 보았다. 몽테뉴의 <수상록>, 루소의 <고백>,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등장하는 네 개의 서문/서시를 분석하고 있는 그 글에서 김현이 '곁다리텍스트'란 말로 지칭한 것은 '서문'이지만 그 말이 반드시 서문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 점은 비평가 스스로가 미리 밝혀놓고 있다. 그의 논변을 따라가 본다.

 

 

 

 

(1) "어디까지를 텍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그런 질문도 질문일 수 있나 하는 회의가 곧 생겨날지 모른다. 텍스트란 어떤 제목 밑에 딸린 모든 것을 포괄하는 중성적 명칭이다. 텍스트는 모든 쟝르적 구분과 양적 구분을 함축하고 있는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는 매우 자명한 개념처럼 보인다."(*텍스트의 개념은 자명해 보인다.)

(2) "그러나 그 텍스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텍스트를 이루는 요소들이 간단하고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제목과 필자의 이름, 그 다음 책 뒷표지나 앞날개에 붙어 있는, 물론 없을 수도 있는 요약문들과 필자 소개문들; 맨 첫 페이지나 맨 마지막 페이지에 붙어 있는, 이것 또한 없을 수도 있는 인용문들; 띠지에 씌인 글들. 이런 것들은 텍스트에 속하는가, 안 속하는가? 어디까지를 텍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우스꽝스러운 질문도, 그 문제에 허심탄회하게 접근하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하지만 텍스트의 개념/경계를 확정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3) "텍스트와 관련된 모든 것은 다 텍스트이다라고 동어반복적으로 쉽게 말할 수는 없다. 우선 제목과 필자의 이름에 대해 그것을 텍스트라고 분명히 말할 수도 없지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 다음의 것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문제에 대한 비교적 합리적인 접근은 제라르 쥬네트라는 프랑스의 한 비평가에 의해 행해졌는데, 그는 텍스트에 붙어 있는 모든 것을 곁다리텍스(paratexte)라고 부르기를 제안하고 있다."(*쥬네트는 텍스트와 곁다리텍스트를 구분하자고 제안한다.)

(4) "곁다리텍스트란 엄격한 의미에서 텍스트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아니 텍스트라고 부르기는 좀 거북하지만, 텍스트에 붙어 텍스트가 되고 있는 텍스트들이다. 곁다리텍스트 중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서문이다. 서문, 혹은 서시는 텍스트 전체의 구조를 암시하거나 텍스트 생성의 비밀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서문은 텍스트와 그것을 쓴 사람 사이의 가교이다. 그것은 사람과 텍스트에 다 같이 관련을 맺고 있다. 서문 연구는 텍스트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부분이지만, 그 연구는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서문학이라고 불러야 할 서문 연구는 서문이 곁다리텍스트이지만 텍스트 못하지 않는 중요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313-4쪽, 강조는 나의 것)

다시 김현의 정의를 반복하자면, "텍스트라고 부르기는 좀 거북하지만, 텍스트에 붙어 텍스트가 되고 있는 텍스트들"을 우리는 '곁다리텍스트'라고 부를 수 있다. 가령, 치프킨의 소설 텍스트에 에피그라프로 붙어 있는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한 구절이 그런 곁다리텍스트의 또다른 사례이다: "당신의 터무니없는 말은 얼마나 건방지고 뻔뻔스러운가. 그런데, 그러면서도, 당신은 그토록 겁을 먹고 있으니!"

'곁다리텍스트'란 카테고리는 바로 그런 곁다리들, '덧붙어 딸린 것들'을 위한 자리이다. 그런 것들이 생색내는 자리이다. 실상은 이러한 류의 페이퍼 같은 하이퍼텍스트가 곧 파라텍스트가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책으로 묶기에는 거북하지만, 그렇다고 내칠 수도 없는 그런. 나는 그런 텍스트들에 애착을 느낀다...

06. 0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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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3 0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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