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도 2호가 자기 전에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는데 해줄 이야기가 없어 전날 꾼 꿈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내 버전의 몽유도원기 같은 꿈이었다.
- 아주 큰 정원이 있고, 잔디밭이 있어. 아침 열 시가 되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잔디밭에 테이블이 죽 둘러 있어서 사람들이 여기 앉아. 그러면 맛있는 음식을 가득 실은 수레가 하나 둘씩 오고 사람들 앞에 음식이 차려져. 케이크랑 과자 같은 것도 있고, 고기 요리도 있고...
여기 모이는 사람 중에는 동네에서 '마녀'라고 불리는 할머니 자매하고 바보 취급 받는 청년도 있고 아주 신기한 그림을 그리는데 나이가 어려서 사람들한테 무시당하는 어린아이도 있어.
'마녀' 할머니들은 늘 연살구색 정장을 차려 입고 꽃게가 달린 목걸이를 하고 다녀. 그리고 고기를 주면 아주 정성스럽게 나이프와 포크를 이용해서 고기를 잘라서 비계만 먹는 괴상한 할머니들이지. 그런데 사람들이 이 할머니들, 바보 청년 들하고 처음으로 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하게 된거야. 그러고 보니 할머니들은 그냥 취향이 독특한 거고 바보 청년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아주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된 거지. 그림 잘 그리는 아이는 재미있는 그림을 그려서 쇼처럼 보여주고.
다 먹고 나면 이 정원에 있는 커다란 호숫가로 가. 호숫가 주위에는 과일나무가 있고 오렌지, 사과, 감, 포도넝쿨 등등이 있어서 계절마다 따먹을 수가 있어. 호수에서는 봄에는 뱃놀이하고 여름에는 수영하고 가을에는 낚시하고 겨울에 얼음이 얼으면 스케이트를 타고 놀아.
그랬더니 2호가 다시 묻는다.
- 가을에는 낚시하고, 여름에는 수영하고, 겨울에는 스케이트 타고, 봄에는..?
- 뱃놀이하고.
- 좋은 곳이네.
밑도 끝도 없는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2호는 이야기 더 해달라는 말도 안 하고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버렸다.
내 유토피아가 2호에게도 좋은 곳으로 느껴졌다니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