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움베르토 에코‘가 들어가 있지만 저자가 아니라 편자다. 정확히는 공동편자. 리카르도 페드리가와 같이 엮은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2권이 이번에 더해졌는데 아마도 이 구성인 듯싶다. 원저도 분권돼 있는지 통권인지 모르겠다. 잠시 확인해보니 3권까지 있다. 그렇다면 좀 이르게 적는 페이퍼로군.

그럼에도 각각 900쪽 안팎에다가 정가 8만원의 책이니만큼(두권이면 할인가로도 14만원이 넘는다) 꽤나 값진 책이다. 철학사는 많이 나와있으니 나로선 이탈리아 인문학계의 수준과 역량, 그리고 관심사를 엿보게 해주는 책으로 의의를 찾고 싶다. 3권까지 마저 출간된다면 단독저작이지만 독일책으로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철학사와 비교해봐도 좋겠다. ‘철학하는 철학사‘라는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이 책도 현재 2권까지 나와있다.

묵직한 읽을거리들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나로선 언제나 손에 들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1박2일의 지방강의를 다녀와서 12시간을 자고 나서야 겨우 ‘극한피로‘에서 ‘피로‘ 모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고로 지금이 피로한 상태다). 대략 5월말부터 현재까지 심신의 피로가 극에 달해서 버텨온 것이 놀랍다. 일정을 봐서는 8월이나 되어야 한숨 돌릴 것 같다(8월초에야 며칠 휴가를 가질 계획이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내년부터는 강의를 조금씩 줄여나가야 할 듯싶다.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같은 책들도 그때서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래, 3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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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7-15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 글 읽고 고른
이책과 앤서니 케니의 서양 철학사
철학 강의 듣는데 많은 도움이~
책값은 착하지 않아 대출해서 읽는 중

로쟈 2019-07-15 22:54   좋아요 0 | URL
네, 대출기간도 오래 잡아야.~
 

전집까지 나온 김현 선생의 신간이 있어서 무슨 책인가 했다. 전집의 두권에서 고른 산문선이다. ‘문지 에크리‘ 시리즈로 나온 <사라짐, 맺힘>(문학과지성사). 표지에는 이름이 나와있지 않지만 이광호 문학평론가가 엮은이 해설을 붙이고 있다. 제목도 편자가 붙였을 듯하다.

전집에서는 두권이지만 단행본으로는 네권의 책에서 가려뽑은 글들인데, 덕분에 잠시 만감에 젖는다. 네권의 책 가운데 <김현 예술기행>과 <우리시대의 문화><두꺼운 삶과 얇은 삶>까지는 소장하고 있는 책이어서 그렇다(물론 지금은 어디에 책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김현 예술기행>을 제외하면 절판된 책들이어서 아마도 동네책방 구석이나 헌책방에서 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오래전 일이다.

그리고 어느 사이 나는 1990년 세상을 떠난 선생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 군입대를 앞두고 청강하러 들어간 교양불어 강의실에서 뵌 게 마지막이자 그때 들은 육성(불어 동사변화를 말하던)이 선생과의 인연의 전부다. 30년전이고, 내가 21살 때이며, 선생이 47세 때. 바로 이듬해 타계. 지난해 김윤식 선생 역시 타계했고 이로써 젊은 날 나의 문학선생들은 남아있지 않다. 산문집 제목 ‘사라짐, 맺힘‘은 내게 그런 사적인 기억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나 또한 사라짐의 운명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도. 무엇을 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여전히 할일이 많다지만 어느새 그런 일도 생각하는 나이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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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출간된 시리즈의 제목이다. 도서출판b의 ‘예술과 인간의 깊이‘. 일명 ‘와(and)‘ 시리즈로도 불리는데, 이 시리즈의 책 제목에 ‘와‘가 꼭 들어갈 모양이다(‘과‘는 어찌할 텐가). 첫 두권의 제목이 <괴테와 톨스토이>, 그리고 <발자크와 스탕달>이다. 후자는 편저이지만 전자는 토마스 만의 에세이로 1921년의 강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의 영어판을 진작 구했지만 미처 읽지는 못했는데 때마침 번역본이 나와주어서 반갑다(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기대를 갖게 한다). 서두에서 토마스 만은 ‘괴테와 실러‘,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라는 짝을 재구성해서 ‘괴테와 톨스토이‘, 그리고 ‘실러와 도스토옙스키‘를 묶어서 비교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직접적 시범에 해당하는 책이 <괴테와 톨스토이>다(토마스 만이 별도로 <실러와 도스토옙스키>를 쓰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다뤄질 만한 주제이고 러시아에서는 연구서로 나와있다(독어로도 나온 책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괴테와 톨스토이를 비교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사실 저자 토마스 만에 대한 이해에도 필수적인 책이다. 토마스 만의 작품들 강의할 때도 필독해봄직하다. <발자크와 스탕달>은 예전에 같은 컨셉트의 책으로 <발자크와 스탕달의 예술논쟁>(범우사)이 나온 바 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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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4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4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 새 번역본이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는데 무려 ‘전집‘의 첫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전영애 전 서울대 교수가 옮긴 <파우스트>(길)다. 향후 10년간 20권으로 구성된 ‘괴테 전집‘ 출간계획도 이번에 밝혔다. 과거에 괴테학회 차원에서도 전집을 내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작품 전집이었음에도 그랬다) 이번에 기획된 전집은 훨씬 방대한 규모다. 역자에 따르면 1인 괴테 전집은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미 많은 번역본이 나와있는 터라 <파우스트> 번역의 의의는 새삼스러운데 역자는 대부분 운문으로 된 <파우스트>를 가급적 ‘운문처럼‘ 옮기고자 했다. 원작의 운문적 리듬감을 최대한 살리고자 시도한 것이다. 아마도 <괴테 시전집> 번역의 경험이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또 그렇게치면 운문 <파우스트>의 적임자이기도 하다(시인이자 독일시 전공자인 김재혁 교수의 번역본은 펭귄클래식판으로 나와 있다).

좋은 시도기 항상 좋은 결과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셰익스피어 작품들의 운문번역 시도를 고려하건대) 이미 다수의 번역본이 나와있는 상황에서는 이번 시도가 충분히 높이 평가할 만하고 본다. 이미 여러 번 읽고 또 강의에서도 자주 다룬 작품이지만 첫 번역 시도이기에 처음 읽는 작품인 것처럼 읽어보려 한다. 더불어 무탈한 전집 완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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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 한겨레에 실은 '언어의 경계에서' 칼럼을 옮겨놓는다. 지난 목요일에 강의에서 다룬 필립 로스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에 대해서 적었다. 예전에 <미국의 목가>를 강의에서 읽었기에 그의 '미국 3부작'을 모두 읽은 게 되었다(이번에 <휴먼 스테인>과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읽었다). 아직 읽을 작품들이 더 있지만 '미국 3부작' 외에 후기작인 <죽어가는 짐승>, <에브리맨>, <울분> 등을 강의에서 다루었기에 나대로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주부터는 돈 드릴로를 읽는다...
















한겨레(19. 07. 05) 배신의 쾌감이 금지를 대신한 시대 


“모든 사람은 우울에 빠지는 성향을 타고나지만, 일부만이 우울을 습관화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완역본이 나오지 않은, 17세기 영국 목사 로버트 버턴의 저작 <우울의 해부>(1624)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우울의 습관화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버턴은 답하고 있지 않지만 미국 작가 필립 로스는 장편소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1998)에서 나름의 견해를 제시한다. 정확하게는 소설의 화자 네이선 주커먼에게 그의 고등학교 은사 머리 린골드가 들려주는 견해다. 정답은 배신이라는 것. 즉 인간은 배신을 당하면 소질로만 갖고 있던 우울을 습관화한다.


거창하게 보자면 인류의 역사가 배신으로 점철된 역사라고 머리는 말한다. 성서에서 예를 찾자면 배신당한 아담부터 배신당한 요셉과 삼손, 배신당한 다윗과 배신당한 욥까지. 그리고 인간들에게 끊임없이 배신당한 하느님까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의 주제 역시 배신이다. 머리 린골드가 공산주의자 동생 아이라 린골드의 삶을 회고하는 소설에서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1946년에서 1956년 사이로 미국 현대사에서 배신행위가 휩쓴 시대다. 매카시즘의 광기가 횡행했던 이 시기는 가히 ‘배신의 시대’라고 불림 직한데, “그 시대에 배신은 미국인이면 아무 데서나 저질러도 되는 용인된 위반”이었다. 배신의 쾌감이 금지를 대신하고, 배신을 저지르고도 도덕적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에 광산 광부와 레코드공장 노동자로 밑바닥생활을 하던 아이라 린골드는 노조 행사에서 링컨을 연기하며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링컨의 연설들을 감동적으로 낭독한 덕분에 라디오 드라마의 주역이 되고 ‘아이언 린’(강철의 린골드)으로 불리며 대중의 스타로 부상한다. 아이라는 자신이 연기한 영웅들을 몸에 익히고 대중은 그를 영웅의 화신으로 믿었다. 그런 아이라에게 세 번 이혼하고 사십대에 접어든 여배우 이브 프레임이 반한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사랑을 잃은 아이라 역시 이브의 모성적인 면과 불행한 개인사에 끌려 그녀와 결혼한다.


하지만 열정적인 공산주의자와 스타 여배우의 결합은 이미 모순과 충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개방적인 성격과 공산당의 비밀주의. 가정생활과 당”은 양립하기 어려운데다가 아이라는 자식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이브에게는 앞선 결혼에서 낳은 딸이 있었다. 그녀의 딸 실피드는 이브의 배우 생활과 연이은 결혼 때문에 상처를 입고 어머니에게 욕설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아이로 성장했다. 이브는 아이라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실피드의 강요에 따라 낙태하게 되고 부부관계는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급기야는 딸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 때문에 그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브는 남편을 배신하고 아이라의 공산주의자 전력을 폭로하는 책을 발표하기까지 한다. 그 제목이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이다.


이브의 폭로로 아이라는 노동계급의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처지에 이른다. 그렇지만 형 머리가 들려주는 동생 아이라의 또 다른 진실은 그가 열여섯 살에 저지른 살인이었다. 아이라의 인생은 ‘냉혹한 살인자 아이라’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였다. 광산에서 공장에서, 그리고 성우 연기와 민중선동에서, 프롤레타리아 생활과 부르주아 생활에서, 결혼과 간통에서, 흉포한 행동과 예의바른 사교생활 어디에서도 동생은 자신의 삶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형의 평가다. 결국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는 이브의 폭로도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갈망한 남자”와 결혼한 것이기에 그렇다. 여기까지 읽어온 독자라면 필립 로스가 붙인 제목에서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19. 07.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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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7-06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당히 흥미로운 스토리네요
기생충의 이정은 배우보고 감독이 하다하다 인중으로 연기를 다 하네 라고 했다던데 소질 하나 제대로 갖고 있는게 없는데 우울이라는 소질은 있다니 다행인지?ㅎㅎ 결국 배신을 많이 당했다는 얘기가 되나요?ㅎㅎ 뭐니뭐니해도 나 자신한테 당한 배신이 젤 많습니다~그것도 우울의 소질을 드러내는데 큰 역할을 하겠죠!ㅋ

로쟈 2019-07-07 10:23   좋아요 1 | URL
셀프 배신은 강도가 다를 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