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집까지 나온 김현 선생의 신간이 있어서 무슨 책인가 했다. 전집의 두권에서 고른 산문선이다. ‘문지 에크리‘ 시리즈로 나온 <사라짐, 맺힘>(문학과지성사). 표지에는 이름이 나와있지 않지만 이광호 문학평론가가 엮은이 해설을 붙이고 있다. 제목도 편자가 붙였을 듯하다.

전집에서는 두권이지만 단행본으로는 네권의 책에서 가려뽑은 글들인데, 덕분에 잠시 만감에 젖는다. 네권의 책 가운데 <김현 예술기행>과 <우리시대의 문화><두꺼운 삶과 얇은 삶>까지는 소장하고 있는 책이어서 그렇다(물론 지금은 어디에 책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김현 예술기행>을 제외하면 절판된 책들이어서 아마도 동네책방 구석이나 헌책방에서 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오래전 일이다.

그리고 어느 사이 나는 1990년 세상을 떠난 선생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 군입대를 앞두고 청강하러 들어간 교양불어 강의실에서 뵌 게 마지막이자 그때 들은 육성(불어 동사변화를 말하던)이 선생과의 인연의 전부다. 30년전이고, 내가 21살 때이며, 선생이 47세 때. 바로 이듬해 타계. 지난해 김윤식 선생 역시 타계했고 이로써 젊은 날 나의 문학선생들은 남아있지 않다. 산문집 제목 ‘사라짐, 맺힘‘은 내게 그런 사적인 기억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나 또한 사라짐의 운명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도. 무엇을 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여전히 할일이 많다지만 어느새 그런 일도 생각하는 나이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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