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윈치의 <사회과학의 빈곤>(모티브북, 2011)을 서가에 꽂아둔 지는 꽤 됐는데, 아직 책을 펼쳐보진 못하고 있다. 지난주 교수신문에 편역자인 박동천 교수가 책의 의의를 짚어주는 기사를 실었기에 옮겨놓는다. 편역자 해제에도 적혀 있지만, 책은 <사회과학이라는 발상>이란 단행본과 <원시사회의 이해>라는 논문을 같이 묶은 것이다. <사회과학이라는 발상(The Idea of a Social Science)>은 1958년에 초판이 나온 책이며 1990년에 2판이 나왔다고 한다(2판에 붙이는 머리말 정도가 더 붙었을 뿐이라고). 편역자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은 <사회과학의 철학>(서광사, 1985), <사회과학의 이념>(현대미학사, 1997)이란 제목으로 두 차례 번역된 바 있기에 이번이 세번째 번역서이다(나는 현대미학사판도 갖고 있다). '철학에서 이념으로, 그리고 이념에서 다시 발상으로'가 번역서명의 변천사이다. 피터 윈치의 사회학을 해설/옹호하는 책의 제목이 <사회과학 같은 건 없다>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교수신문(11. 06. 15) 사회연구, 과학적 탐구 방법을 모범으로 삼아야 할까

피터 윈치의 짧은 책, 『 사회과학이라는 발상』에 담겨있는 성찰들은 심오한 만큼 대단히 넓은 방면에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함의를 가진다. 윈치는 이어 발표한 논문 「원시사회의 이해」에서 다시 사회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일과 관련해서 과학이라는 탐구 방법이 가지는 의미의 한계를 분명하게 구획했다. 이 두 작품을 모아 한 권의 단행본으로 엮고, 나는 거기에 『사회과학의 빈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두 편의 작품에서 윈치가 말하는 주요 논지 중에 하나는, 실재라는 것이 언어의 바깥에 언어와 무관하게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 사이의 구분이 언어 안에서 이뤄진다는 논증이다.  “습도라는 개념을 가지지 않은 언어를 상상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을 구분할 길이 전혀 없는 언어를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242쪽).” 이 때문에 실재/비실재의 구분은 언어에 의존하는 관습적 구분이 아니라 언어 바깥에서 저절로 존재하는 구분인 것 같은 착각이 쉽게 발생한다.

사회 연구에서도 과학적 탐구 방법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무제한적 발상의 바탕에는 이처럼 ‘객관적 실재’라는 개념의 논리적 지위를 분별해내지 못한 착각이 작용한다. 이는 과학이 무엇인지, 철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의 삶에서 과학과 철학이 각각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등을 분명하게 식별해내지 못한 혼동의 소산이다. 이러한 혼동과 착각을 윈치는 베버, 파레토, 밀, 에반스-프리차드 등등, 일급 지식인들의 강점을 최대한 인정한 위에서 착오가 일어나는 지점만을 추려내는 세밀한 언표에 실어 부각하고 비판한다.

사회연구와 자연과학의 차이를 윈치는 이렇게 표현한다. 내 나라가 전쟁 중이라고 할 때, “ 전쟁이라는 개념은 나의 행태 안에 본질적으로 소속돼 있다. 하지만 중력이라는 개념은 낙하 중의 사과가 보이는 행태에 그와 같이 본질적으로 소속돼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그 사과의 행태에 대한 물리학자의 설명에 소속된다(217쪽).”설령 사과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사과의 행태에 관한 물리학자의 설명에서 사과의 생각은 적실성을 가질 수 없다.

이처럼 자연과학이 목표로 삼는 설명에서 정당하게 사용돼야할 개념들은 연구 대상과 단지 외부적인 관계만을 가진다. 이와는 달리,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싸우는지가 본질적인 요소로서 고려에 포함돼야 한다. 군인과 정치인과 후방 민간인들의 행태에 관한 통계적 일반화로써 이해가 완결된다고 생각한다면, “중국어의 단어 각각이 나타나 쓰이는 지점에 관한 통계적 확률을 간파(201쪽)”하는 것으로써 중국어에 대한 이해가 완결됐다고 치부하는 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회과학의 연구 도중에 제기되는 매우 중요한 이론적 문제 가운데 많은 수가 과학에 속하기보다는 철학에 속한 문제이고, 따라서 경험적 탐사에 의해서보다 개념적 분석에 의해서만 해소될 수 있는 종류(73쪽)”임을 윈치가 지적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회 연구의 목표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행동 및 제도와 관습을 이해하는 데 있다. 물론 도중에 과학적 탐구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실상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사회 연구에서 과학적 탐구 방법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낳는다. 왜냐하면 사회 연구와 관련되는 수많은 주제들 가운데 과학적 방법이 유용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을 분별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줄 뿐이기 때문이다. 이 분별은 전형적으로 과학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라 철학에 속하는 문제인 것이다.

『사회과학의 빈곤』에는 과학이 무엇인지에 관한 윈치의 입장만이 아니라 철학이 무엇인지에 관한 그의 입장도 함께 들어 있다. “인간의 정신이 실재와 어떤 종류라도 접촉을 가질 수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이고, 나아가 만약 가질 수 있다면 그 점으로 인해 그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런지가 또한 문제인 것(62쪽)”이라고 한 버넷의 지적을 윈치는 철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하나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철학은 모든 것을 원래 있던 자리에 그냥 놓아둔다(185쪽)”라고 한 비트겐슈타인의 언표 또한 그는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다.

사람들의 정신, 즉 개념은 실재와 접촉하기도 하지만 접촉하지 못하기도 한다. 각 개인이 가진 생각이 실재와 접촉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나아가 접촉한다면 어떻게 접촉하며 못한다면 어떻게 못하느냐에 따라, 그의 삶이 또한 달라진다. 이때 철학의 역할은 어떤 정신이 어떤 실재와 어떻게 접촉하는지 또는 어떻게 접촉하지 못하는지를 분별하고, 또 그러한 접촉 여부와 양태에 따라 당사자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개념적으로 해명하는 데서 그친다. 실재와 접촉하지 못하는 개념은 폐기하라든지, 어떤 식으로 접촉하는 편이 다른 식으로 접촉하는 편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등의 권고는 철학에 속하는 사항이 아니다. 어떤 방식의 삶이 더 좋은지에 관한 판단이나 선택은 각 개인이 실제 생활에서 내리고 스스로 인생을 통해서 결과에 책임질 사항으로 철학자도 물론 생활인으로서 그러한 결정에 일상적으로 봉착하게 되지만, 철학의 일환으로서 그리하는 것은 아니다.

실증주의 사회과학으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타자화의 문제라든지, 지식이 권력과 유착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고발, 그리고 문화적 상대성과 같은 논제들은 오늘날 한국의 지성계에서도 새로운 화두는 아니다. 그러나 「원시사회의 이해」에서 윈치가 비판의 과녁으로 삼은 에반스-프리차드 역시 문화적 상대성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인정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었던 사람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막스 베버 역시 단순한 실증주의의 신도가 아니었고 오히려 사회 연구에서 행위자들의 주관적 의미를 이해할 필요를 선구적으로 강조했던 인물임에도 과학에 관한 착각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해 『사회과학이라는 발상』에서 윈치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그만큼 이들에 대한 윈치의 세심한 비판은 동시에 그들의 자취에 대한 깊은 존경의 표현임을 모든 독자가 알아챌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이 바른 길을 가려고 의지했고 또한 실제로 바른 길을 향해 여러 발걸음을 떼었다는 업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잘못 뗀 걸음을 비판할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듯 지적 주장의 가치를 곧 비판할 만한 가치에서 구하는 자세 역시 윈치가 철학을 이해한 방식에서 본질적인 구성 요소에 해당한다. 인간의 삶에서 과학의 유용성이 어디까지 인정돼야 하는가, 그리고 철학의 정당한 역할은 무엇인가에 관해 윈치가 직접적으로 표명하는 입장만이 아니라, 지식 공동체에서 동료에 대한 비판과 경의가 어떤 식으로 표명되는 것이 지적 탐구의 본령과 어울리는지에 관해 행간과 문체를 통해 대변되는 그의 입장까지도 한국 지식인 사회의 현재에 대해 풍성한 함축을 지닌다고 나는 믿는다.(박동천_전북대 정치외교과)   

11. 0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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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주말에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문학평론가(이자 가라타니 고진 번역자) 조영일의 <세계문학의 구조>(도서출판b, 2011)이다. 개인적으론 보론으로 실린 '세계문학전집의 구조'의 학회 발표 때 토론을 맡은 인연이 있다. 더 보태자면, '문학들이란 무엇인가'란 주제의 강의를 위해 백낙청의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창비, 2011)과 같이 읽어보려고 한 책이기도 하다. 몇권 더 얹어서 문학과 세계문학에 대한 생각거리를 만들어놓는다. 저자가 번역중인 가라타니 고진의 신작 <세계사의 구조>에 대한 기대도 덧붙이면서, 리뷰기사도 옮겨놓는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한국일보(11. 06. 25) 한국문학에 대한 비판… 설득력은 '글쎄'

한국문학은 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 했을까. 대개의 대답은 '훌륭한 작품은 많지만 지원과 관심 부족으로 번역이 제대로 안 된 탓'이다. 한 걸음 더 나가 '작가의 역량이 부족해 세계 수준을 만족시킬 만한 작품이 없었다'는 자기비판적 목소리도 없지는 않다.

여기서 더 비딱하게 나간 답변은 이렇다. '한국에는 근대문학 자체가 없었다.' 이 과격한 주장을 펴는 이는 소장 문학평론가 조영일(38·사진)씨다. 제도적 문단의 바깥에서 '비평고원'이란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문단 주류를 거침없이 비판해온 그는 올해 초 소설가 김영하씨와의 논쟁으로 대중적 인지도까지 얻었다. 네티즌들에겐 그의 인터넷 필명인 '소조'가 더 익숙할 터다. 

앞서 <한국문학과 그 적들> 등 한국문학을 비판하는 두 권의 비평집을 통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잘 쓴 통속소설'이라거나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노년의 자아도취적 넋두리다' 등 일급의 작가들을 대놓고 비판했던 그가 2년 만에 낸 새 비평집 <세계문학의 구조>에서는 한국문학이 부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진단한다.

한국의 근대문학은 애초에 국민문학의 토양인 국민 공통의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식된 문학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 근대문학이 근대국가 성립 과정에서 국민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매체였다는, 일본의 문학평론가 가리타니 고진의 '근대문학 종언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특히 조씨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 등의 사례를 열거하며 국민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공통의 경험이 다름아닌 '제국주의적 전쟁'이었고, 이를 경험하지 못한 우리로선 제대로 된 근대문학이 나올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통해 그가 겨냥하는 것은 '한국문학을 세계화하자'거나 '민족문학을 발전시켜 세계문학에 기여하자'는 식의 한국문학 응원가들이다. 대개가 출판상업주의적 구호거나 한국문학 권력자들의 공허한 담론이라는 비판이다.

그렇다면 한국문학을 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조씨는 근대국가와 공생관계인 근대문학을 지양하는 세계문학을 추구하자고 하지만, 아쉽게도 그 실체가 뚜렷하지 않다. 과격한 그 주장의 설득력은 둘째치고 그가 파괴하려는 것이 제도권 문학을 넘어 문학 그 자체가 아닐까 싶은 떨떠름한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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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의 구조
조영일 지음 / 비(도서출판b)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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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史の構造 (單行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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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과 그 적들
조영일 지음 / 비(도서출판b)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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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조영일 지음 / 비(도서출판b)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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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지도에 별로 관심을 가진 바 없어서 지도의 역사에도 둔감한 편이다(고등학교 때 선택과목으로 지리 대신 세계사를 고른 탓인지도 모른다. 지리와 역사가 상호배제적이라니!). 그래서 올해가 대동여지도 150주년이 되는 해라는 것도 몰랐다. 게리 레드야드의 <한국 고지도의 역사>(소나무, 2011)의 출간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 저자의 학덕과 열정이 느껴지는 책이다. 해외 한국학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한국 고지도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도 내세울 만한 학술적 업적이 있는 것인지?). 박범신의 소설 <고산자>(문학동네, 2009)에까지 관심이 생겼다...

  

서울신문(11. 06. 25) “콜럼버스 ‘강리도’ 가졌다면 동쪽으로 항해 떠났을 것”

올해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1866)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가 세상의 빛을 본 지 150년이 되는 해다. 지난 4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특별전시회와 학술대회를 시작했고 전국 곳곳에서 잇따라 전시, 강연행사를 가진 뒤 오는 10월 20~21일 서울대에서 종합학술대회를 연다. ‘대동여지도 150주년 기념학술사업준비위원회’가 마련한 150주년 기념행사의 결정판이다. 성대하면서도 꼼꼼히 김정호를 기념하고, 그의 손길이 깃든 성과의 현재적 의미를 따져 보는 자리다.

‘조선 후기까지 조정에 제대로 된 지도가 한 장도 없어 김정호는 10년 동안 조선팔도를 돌아다니고 백두산을 8번 오르내리며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무지한 조정은 나라의 기밀을 적들에게 알려줬다며 김정호에게 억울한 죄명을 씌워 죽음에 이르게 하고 지도와 판목은 압수해 불살랐다.’

이제껏 ‘청구도’, ‘대동여지도’ 등을 만든 김정호에 대한 보통의 인식이었다. 시대와 불화한 삶 속에 관련 문헌의 부족, 게다가 비극적 최후까지 더해졌다니 ‘전설’ 또는 ‘영웅’이 될 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춘 셈이다. 하지만 이는 1934년 일제 총독부가 만든 ‘조선어독본’에 실린 내용이 해방 이후 교과서에까지 이어지며 빚어진 오해와 편견이다.

일제는 김정호 이전에는 제대로 된 지도 한 장조차 없는 것으로 조선의 역사를 부정하며 왜곡하는 식민사관을 주입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학계 일각에서 ‘김정호 바로세우기’를 진행하고 있지만 오랜 세월 이뤄져 온 인식의 벽은 여전히 두껍다.

최근 번역 출간된 ‘한국 고지도의 역사’(장상훈 옮김, 소나무 펴냄)가 반가운 이유다. 한국역사학의 권위자인 게리 레드야드(79)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 석좌명예교수가 쓴 ‘한국 고지도의 역사’는 한국 지도학의 발달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 세계 지도학계에 알린 노작(勞作)이다. 레드야드 교수는 책을 통해 자신을 ‘김정호의 열렬한 팬’이라고 소개하며 ‘김정호 이전의 성과’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지난 22~23일 두 차례에 걸쳐 레드야드 교수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사 전문가인 그는 한국말을 구사할 수 있지만 “고령으로 귀가 어두워 전화 인터뷰는 불가능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하게 한국사와 한국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이글이글했다. 



→한국사 전문인데 지도학에 관심을 두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저는 사실 평생에 걸쳐 한국사를 연구해왔고 한국의 지도학은 역사의 한 부분으로 공부했을 뿐입니다. 그러던 차에 1990년 위스콘신대 지리학부로부터 한국의 지도학에 대한 글을 청탁받았습니다. 바로 ‘세계 지도학 통사’(The History of Cartography)의 동아시아, 동남아시아편에 해당되는 원고였죠. 애초 60쪽 정도로 예상했으나 정리하다 보니 300쪽에 가까워졌습니다. ‘세계 지도학 통사’ 편집위 또한 한국 고지도의 중요성을 흔쾌히 인정했습니다.

→‘세계 지도학 통사’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세 권을 펴낸, 전 세계와 고금을 아우르는 세계 지도학의 종합연구서 시리즈입니다. ‘한국 고지도의 역사’는 제2권의 아시아 동남아시아편에 수록돼 있습니다. 모두 8권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앞으로 적어도 20년 더 걸려야 마칠 수 있는 현재진행형 작업이죠. 애초 위스콘신대에서 편집기획을 시작한 영국 출신 지리학자인 J B 할리 교수와 데이비드 우드워드 교수는 이미 돌아가셨고 새로운 편집기획위원을 선정해 계속하고 있습니다. 인공위성, 디지털 과학기술의 발달도 반영할 생각입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도서관이 이 책을 비치해 두고 있습니다.

→김정호 팬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지도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전부터 고산자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대동여지도가 중요한 연결 고리였군요. 그런데 왜 대동여지도의 팬이 되신 겁니까.

-한국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세계의 학자들은 별로 없습니다. 설령 있다 해도 대동여지도와 같이 구체적인 성취에 대한 것은 잘 모르죠. 제가 ‘세계 지도학 통사’ 원고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그는 이것을 ‘동아시아 최초의 진정한 세계지도’라고 일컬었다-에도 관심이 남다릅니다. 아시아편 표지 사진으로 ‘강리도’를 실은 이유이지요. 아마 콜럼버스가 1492년 이 지도를 갖고 있었다면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항해를 떠났을 겁니다. 세계사도 많이 바뀌었을 테고요. 



→한국의 옛 지도를 연구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는지.

-글을 쓰는 데만 2년 반이 걸렸습니다. 한국의 많은 저작은 물론 일본, 중국, 유럽 학자들의 이론도 충분히 검토하고 종합했어요. 그 과정에서 김정호나 대동여지도 외에도 한국 지도학에 많은 성취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너무 대동여지도에만 관심을 쏟으며 다른 것에는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앞서서 노력한 이들, 예컨대 양성지(梁誠之·1415~1482), 정척(鄭陟), 정상기(鄭尙驥·1678~1752) 등에 대해 좀 더 주목했으면 합니다.

“지금도 날마다 한국 뉴스를 챙겨 본다.”는 레드야드 교수는 “김정호와 같은 천재를 둔 한국인 여러분에게 축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정겹게 말했다. 대동여지도 150주년 행사에 대해서도 축하의 말을 잊지 않았다. 국내판은 흑백 도판을 쓴 원서와 달리 컬러 도판으로 바꿨다. 번역을 맡은 장상훈 박사는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에서 학예연구관으로 일하고 있다.(박록삼기자) 

11. 06. 25.  

P.S. '06. 25'란 날짜를 적고 보니 한국전쟁에 관한 책도 언급해둔다. 러시아와 중국, 미국, 3개국의 학자가 쓴 <흔들리는 동맹: 스탈린과 마오쩌둥 그리고 한국전쟁>(일조각, 2011)이 번역돼 나왔기 때문이다. 원제는 'Uncertain Partners: Stalin, Mao, and the Korean War"(1993)이다.   

다소 오래된 책이긴 한데, 부제대로 소련과 중국, 스탈린과 마오의 '미덥잖은' 파트너관계를 조명한 책이다. 자세한 리뷰는 '6.25전쟁 관련저서'를 특집으로 다룬 <해외 한국학평론2>(일조각, 2001)에 수록된 이완범 교수의 서평을 참조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김학준의 <한국전쟁>(박영사, 2010)에서 책에 대한 소개를 읽었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중국쪽 시각에서 본 한국전쟁 관련서도 몇 권 나와 있다. 하지만 스탈린과의 관계는 <흔들리는 동맹>이 가장 자세히 다룬 듯싶다. 책의 집필 자체를 러시아의 외교관이자 중국문제 전문가 세르게이 곤차로프가 주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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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11-06-25 17:12   좋아요 0 | URL
빗소리 들으며 로자님의 글을 읽으니 좋네요. 이제 산에서도 들에서도 잠시 로자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로쟈 2011-06-26 12:23   좋아요 0 | URL
스마트폰을 쓰시나 보군요.^^
 
대청제국과 사고전서

서지학에 과문한지라 미처 알아보지 못했는데, 중국 서지학의 고전도 출간됐다. 섭덕휘의 <서림청화>(푸른역사, 2011). '중국을 이끈 책의 문화사'란 부제가 좀더 다가가기 편하다('중국책'이라곤 하지만 당연히 조선의 지식인들과 무관하지 않았다). 켄트 가이의 <사고전서>(생각의나무, 2009)에 대한 욕심이 다시 생긴다. 뤄슈바오의 <중국 책의 역사>(다른생각, 2008)도 배경이 돼줄 수 있겠다. 수년 전 중국여행 시 소주에서 한 장서가의 집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책을 사모으느라 가산을 탕진한 집이었다) 이런 책들을 미리 읽었다면 느낌이 조금 달랐을 듯싶다. 뭐든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니까...    

세계일보(11. 06. 18) 100년 전 중국의 서재를 엿보다

‘서림청화’는 청나라 말기 판본학·목록학의 대가 섭덕휘(葉德輝·1864~1927)의 저술로, 책 자체를 다룬 저작으로는 전무후무하다는 평을 듣는 중국 서지학의 고전이다. 고서의 판본에 사용되는 각종 용어와 명칭을 정리하고 그 근원을 추적했으며, 또한 역대 출판기관과 그곳에서 출판한 서적들을 시대별로 개괄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판본학, 목록학 분야의 고전이 된 ‘서림청화’는 이후 등장한 수많은 저술에서 중요하게 인용되고 있다. 중국 고서의 판본과 고대 중국의 출판문화를 이해하는 데 이보다 더 적당한 저술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옮긴이의 생각이다.

저자 섭덕휘의 가문은 대대로 유학을 했고 장서에 취미가 있었다. 섭덕휘가 수집한 고서 중에는 송·원대의 판본도 있었지만, 명·청 이래의 정각본(精刻本)·정교본(精校本)·초인본(初印本) 및 초교본 등이 핵심이었다. 특히 청대 장서가들의 장서가 포함된 별집(別集)은 당대에 독보적이었는데, 이는 섭덕휘 장서만의 특색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 시대 고문헌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고 평가받는 옮긴이 박철상씨가 ‘서림청화’를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중국의 출판문화와 중국 고서에 대한 이해야말로 조선시대 우리 출판문화 이해의 첩경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중국 고서는 조선시대 출판물의 저본(底本)이었다. 조선시대 출판 방식의 하나는 중국에서 간행된 서적을 수입하여 활자나 목판으로 재간행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의 출판은 정보의 수입과 유통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했기 때문에 중국과 교류를 시작한 이래 꾸준히 추진되었고, 간행된 서적도 상당수에 이른다. 중국 고서가 조선의 출판과 장서문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이다.

조선과 중국 출판문화의 가장 큰 차이는 상업출판의 성행 여부에 있었다. 안정적인 수요층을 전제로 하는 상업출판은 광범위한 서적의 유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책이 다양해진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했다. 그러나 조선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빈약한 경제력과 주자학 위주의 사상적 흐름, 일부 계층에 한정된 서적 수요는 관판(官版) 중심의 출판 시스템을 유지하게 했고, 본격적인 상업출판의 출현을 지연시켰다. 이때 중국본의 수입은 조선 출판문화의 취약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 출판되지 않은 서적들을 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또한 중국 고서는 조선시대 출판의 공백을 보충해 주었다. 특히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출판 시스템이 붕괴되었던 시기에는 그 역할이 더욱 컸다. 임진왜란은 조선 역사상 가장 큰 문화적 파괴가 자행된 시기였다. 조선 전기에 간행된 중요한 전적(典籍)의 상당수가 멸실되었고, 출판의 핵심이었던 동활자와 고려조부터 전해오던 왕실도서들이 약탈당하거나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출판을 하려고 해도 그 저본마저 구하기 어려운 출판 공황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멸실된 전적들을 정비하기 위해 국내에 흩어져 있던 서적들을 수집하는 한편, 사행을 통해 명나라로부터 수입을 추진했다. 중국본의 수입은 빠른 시일 안에 부족한 서적을 보충하는 성과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조선 지식인들의 장서구조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문학과 사상에까지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다양한 중국본을 대량으로 수장한 새로운 형태의 장서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라고 옮긴이는 말한다.

이후 정조가 등극하면서 출판과 장서문화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일어난다. 정조가 청나라 문물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면서 청나라에서 간행된 서적들을 대량으로 수입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국본을 직접 수입해 지적 갈증을 채워나갔고, 청나라 문사들과 교유를 넓히면서 청나라에서 간행된 서적들이 조선 지식인들의 서재에 넘쳐나게 되었다.(조정진기자) 

11.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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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덕끄덕 2011-06-27 03:05   좋아요 0 | URL
葉을 '섭'이라고 읽는 오류를 박철상씨도 범하고 있군요. 분명히 '葉'의 중국어 발음은 '엽'(ye, 중국음으로는 '예')과 '섭'(She, 중국음으로는 '셔') 두 가지입니다. '셔'(She)의 중국어 표기법이 대문자인 이유는 저 발음이 고유명사에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지명인 경우와, 고대인의 성씨인 경우가 그렇습니다. 한문만 공부한 사람들은 저 음을 무조건 '섭'이라고 읽습니다. 물론 이는 잘못이고요. 이런 오류는 중국 고대문헌에 '葉'자가 고유명사로 나온 경우, '섭'으로 발음한다는 주석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인들도 저 글자가 성씨나 지명으로 읽을 때 '엽'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달린 주석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후대에 와서, 특히 명청시대에 들어와서는 성씨의 경우도 저 음을 '예'(ye)라고 발음하기 시작했습니다. 명청대부터도 '葉'을 '섭'(She, 중국음으로는 '셔')이라고 발음하는 경우는 점차 사라졌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어떤 중국사람도 葉을 섭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없고요. 따라서 우리는 엽덕휘도 근대인이니, 당연히 섭덕휘가 아닌 엽덕휘라고 발음해야 합니다. 중국사람들이 중국어로 저 인물을 언급할 때 '셔더후이'(She Dehui)가 아니라 '예더후이'(Ye Dehui)라고 발음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덕택에 유명해진 중국의 권법가 '엽문'(葉問)이라든가, 대만출신의 유명한 영화배우 엽천문(葉蒨文)을 영화계에서는 모두 '엽'씨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 경우가 타당해 보입니다.
사소한 문제이겠지만, 국내 한학계 상당수의 학자들이 습관적으로 葉氏를 무조건 섭씨라고 읽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지적해봤습니다.^^

로쟈 2011-06-27 10:5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중국어는 너무 어려운 듯해요.^^;
 

사회적 관심이 반값 등록금에 쏠려 있는 시점이 '기회'인 것인지 정부, 여당이 다시금 인천공항 지분 매각 방침을 들고 나왔다.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나 고려가 백지(백치) 상태라는 걸 말해준다(사실은 '마지막 큰 건'이란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문제인지 따지는 선대인 씨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세금혁명당이 왜 필요한지 한번 더 상기하게 된다.  

   

한겨레(11. 06. 23) 인천공항공사, 지금 왜 파나?

정부·여당이 인천공항공사 지분 매각을 위한 법 개정안을 6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이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공공기관의 민영화나 지분 매각 문제는 개별 공공기관의 성격 및 역할, 존속 필요성 등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 한다. 또한 시기와 구체적 방법론도 면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의 인천공항공사 지분 매각 방침은 문제가 적지 않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외환위기 직후 부족한 외화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적자 공기업과 시대적 소명을 다한 공기업들을 위주로 민영화를 추진했다. 특히 포항제철이나 한국중공업처럼 더는 공기업 형태를 유지할 필요성이 없는 공공기관들이 민영화됐다. 이에 비춰 보면 현 정부가 왜 굳이 현시점에서 인천공항공사 지분 49%를 민간에 매각하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인천공항에는 1990년 이래 공항·도로·철도·대교 등에 모두 18조원가량이 투입됐다. 그 결과 인천공항공사의 2010년 말 기준 자산가치는 7조8096억원에 이른다. 자본이 꾸준히 확충되는 가운데 부채는 3조1877억원으로, 2년 만에 9000억원 이상 줄어들었다. 또한 2007년 이후 총수익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2010년 3242억원에 이르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또한 일반적으로 차입금이 불어나는 다른 공기업들과 달리 인천공항공사의 차입금은 2004년 3조3000억원 수준에서 2010년에는 2조1980억원 수준으로 꾸준히 줄어들었다. 이미 4~5년 전부터 상당히 우수한 경영실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굳이 경영 개선이나 자금 확보 등의 명분으로 인천공항공사를 다급하게 매각할 이유가 없다. 또한 인천공항이 안보 측면뿐만 아니라 신종플루 등 각종 국제전염병을 차단하기 위한 검역 시스템 측면에서도 공공성이 매우 강한 시설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처럼 공공성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양호한 재무구조와 뛰어난 경영실적을 올리고 있는 인천공항공사 지분을 서둘러 매각할 이유는 없다. 이런 식으로는 군사정권 시절처럼 특정 민간사업자들에 알짜배기 사업을 넘겨주는 특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인천공항공사를 대통령 친인척이 대표로 있는 외국계 자산운용회사에 헐값에 매각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편 인천공항공사의 지분을 매각하면 정부는 수조원대의 세외수입을 올리게 된다. 2010년 예산안의 국토해양부 소관 교통시설 특별회계 가운데 공항 계정에는 유가증권 매각대금으로 약 5909억원이 계상돼 있었다. 이는 정부가 계획한 인천공항공사 지분 10%의 매각대금으로 추정됐다. 정부가 모두 49%의 지분을 비슷한 가격에 판다면 2조8954억원의 세외수입을 얻게 될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인천공항공사의 자산가치나 영업실적 등을 고려할 때 이 정도면 헐값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헐값에 넘긴 돈으로 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거나 재정적자 부담으로 할 수 없었던 다른 사업에 매각 수입을 투입할 수 있다. 결국 급증한 재정적자를 건실한 국가 재산을 팔아 메우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현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24개 주요 매각 추진 공공기관의 매각 예상액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19조원에 육박한다.

결국 현 정부의 인천공항공사 매각 추진 방침은 특혜와 재정적자 땜질용 헐값 매각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현 정부가 인천공항공사 지분 매각을 강행한다면 다음 정권에서 반드시 상응하는 책임 추궁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선대인_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11. 06. 24.  

P.S. 인천국제공항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발의한 의원들의 명단은 아래와 같다(이미 인터넷상에 '인천공항 팔아먹는 법안 발의한 36명의 매국노 명단'으로  공개돼 있다).  

강길부, 강명순, 김낙성, 김성조, 김정훈, 김태환, 김학송, 나성린, 박상은, 박준선, 배영식, 백성운, 송광호, 신영수, 안상수, 안홍준, 유정복, 윤영, 이경재, 이두아, 이사철, 이인제, 이학재, 이한성, 장광근, 전여옥, 정의화, 정진섭, 정태근, 조전혁, 조진래, 조진형, 최병국, 허천, 현경병, 황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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