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민주(통권 10호)의 '삶과 문학' 코너에 실린 인터뷰를 일부 옮겨놓는다. 이 코너를 맡고 있는 문학평론가 정여울 씨가 제안을 해와서 연초에 동대 근처 카페에서 가졌던 인터뷰다. 전문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블로그(http://blog.kdemo.or.kr/1183)에서도 읽을 수 있다(인터뷰 중에 나오는 <생애 바깥에서>란 시집 제목은 <생의 바깥에서>의 오기다).   

 

 

 

민주(2013년 겨울호)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요구, 그것이 민주주의의 희망이다

 

(...)

 

정여울: 올해 경향신문에서 뽑은 ‘뉴 파워라이터’ 20인에 선정되셨는데, 그 인터뷰에서 ‘나는 문학극대주의자다’라는 표현을 쓰셨더라구요.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이현우: ‘문학은 자고로 시와 소설, 희곡이지’ 이런 식으로 딱 정해진 장르와 분과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문학 극소주의자라면, 역사도 철학도 넓은 의미의 문학이라고 보는 것이 문학극대주의자이지요. 저는 모든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평을 쓰는 것도 문학의 일부이지요. 문학을 공부하면서 문학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문학적 지식에 대한 궁금증이 늘어갔어요. 우리는 문학에 대해 뭘 알 수 있는지, 어떤 작품, 어떤 작가에 대해서 안다고 할 때 뭘 알고 있는지를 밝혀야 할 것 같았어요. 문학이 무엇을 알려주는가에 대해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로쟈 버전으로 쓰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문학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인식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좀 더 깊이 있게 탐구하는 책을 써보고 싶어요. 문학극대주의자이기 때문에 문학이 전부로 보이고 모든 것이 다 문학으로 보여요. 문학은 제가 아는 것들 중에서는 가장 커다란 무엇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것만이 문학이다’라고 주장하는 문학주의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죠.

 

정여울: ‘내가 아는 것들 중에서는 문학이 가장 크다’라는 표현이 문득 뭉클합니다. 과학보다도, 철학보다도, 역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문학이 크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러시아 문학이 바로 그런 문학극대주의자의 유토피아를 실현시켜주는 것이겠지요?(웃음)

 

 

 

이현우: 그렇죠. ‘문학과 정치’, ‘문학과 사회’, 이런 식으로 나눌 필요가 없어져요. 모든 것이 문학이니까요. 문학극대주의자의 망상이지요(웃음). 러시아 문학이 바로 그래요. 문학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망상보다 더 큰 망상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바로 그것이 제가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톨스토이는 합리주의자이면서 문학극대주의자는 아니지요. 제가 좋아하는 도스토예프스키는 바로 이 문학극대주의자의 과대망상증 계보를 잇지요.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문학이에요. 그리고 문학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과대망상증도 도스토예프스키다운 것이지요. 문학은 문학으로서만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하는 건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 쪽이구요. 그래서 톨스토이는 문학을 끝내 버릴 수 있었던 거예요. 톨스토이는 문학이 자기가 원한 것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버릴 수 있었던 거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든 곳에서 문학을 보았기 때문에 문학으로 인류를 구원하려 했던 거죠.

 

정여울: 저도 사실 그 ‘과대망상증 계보’가 참 좋아요. 아직도 문학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과대망상증에 계속 빠져 살아가지요(웃음).

 

이현우: 톨스토이는 영혼의 구원이라는 걸 소설에서 다룰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건 문학의 임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자신이 쓴 위대한 작품들도 말년에는 다 ‘쓰레기’라고 부정할 수 있었던 거예요. 도스토예프스키는 문학이 뭔가 거창한 소명을 떠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위대한 예술은 톨스토이에게 의미가 없었지요.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은 문학이 아니라 사상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위대한 작가고 톨스토이는 거대한 작가라는 말이 있어요. 도스토예프스키는 문학이라는 것 자체를 위대하게 만드는 작가라면, 톨스토이에게 문학은 너무 ‘작은 것’이었고 그 이상의 뭔가 원대한 이상을 꿈꾼 사람이었던 거죠.

 

정여울: 이 위대한 작가와 거대한 작가가 한 나라에서 났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내심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중한 만큼 톨스토이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결국 두 사람이 품은 이상은 ‘구원’이라는 거대한 판타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 무기가 ‘문학’인지 문학이 아닌지는 조금 작은 문제라는 생각도 들어요. 문학이 인류를 구원하는 대단한 소명을 다 하지 못할 때 문학을 버리는 것은 가라타니 고진과도 비슷하네요.

 

이현우: 그렇죠.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이야기하면서 톨스토이를 언급하기도 해요. 소설이라는 예술 형식이 인류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들에 더 이상 대답할 수 없을 때 문학을 가차 없이 버릴 수 있었던 거죠. 더 이상 문학으로 세상을 치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쓴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작품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칠 수 있는 작가가 바로 톨스토이였던 거죠.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이 그런 중요한 일을 ‘안 하고’ 있으니까 버린 거고, 톨스토이는 아예 문학은 그런 중요한 일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버린 거죠.

 

정여울: 박사논문에서는 푸쉬킨과 레르몬토프를 다루셨는데요. 푸쉬킨이 선생님의 문학관에 끼친 영향은 어떤 것인지요.

 

이현우: 푸쉬킨은 기본값이예요. 푸쉬킨은 ‘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좋아’, ‘나는 투르게네프가 좋아’라는식으로 선택할 수 있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지요. 푸쉬킨은 러시아 문학의 수원(水原)이고 러시아 문학의 전부예요. 러시아는 푸쉬킨 공동체지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국민문학의 힘이에요. 푸쉬킨은 러시아 근대문학의 출발점이면서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이지요. 국민문학이라는 것의 개념 자체가 흥미로워요. 물론 국민문학이라는 개념도 판타지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분열이나 모순을 봉합시켜줄 수 있는 판타지라는 점에서 소중하지요.

 

정여울: 푸쉬킨은 기본값이다,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 문학은 푸쉬킨 공동체다, 이 모든 말들이 무척 의미심장하게 들리는데요. 공동체의 분열과 사회모순을 통합할 수 있는 것이 푸쉬킨 식의 국민문학이라면, 우리나라에는 어떤 작품들이 그런 국민문학의 수원(水原)에 속할 수 있을까요.

 

 

 

이현우: 옛날에는 국민문학의 계보로 이광수의 <무정> 같은 작품을 떠올렸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춘향전>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춘향전>에는 사회적 모순이 응축되어 있죠. 그 모순 때문에 사회가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봉합하려는 흔적을 담고 있어요. 양반층의 요구와 천민층의 요구가 결합되어서 묘하게 화해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양반집 규수처럼 수절하겠다고 버티는 춘향이는 그리스 비극의 안티고네를 닮았죠. 자신의 비참한 상황에서도 양반과 대등하게 대우받기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변사또는 권력층에 기대는 악의 무리 중 한 명이고, 그렇기 때문에 좋은 양반, 선한 양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몽룡을 차별화하기 위한 설정이 아닐까 싶어요. 양반도 천민의 편을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양반도 천민도 둘 다 만족시키려는 것이에요. 자아가 초자아와 이드 사이를 중재하는 것처럼 국민문학은 하층계급과 상층 계급을 화해시키고 있어요. 푸쉬킨의 <대위의 딸>도 그렇지요. 민중의 편만 들어주지도 않고 귀족의 편만 들어주지도 않아요. 국민국가라는 판타지를 유지시켜주는 것은 바로 이 통합의 환상, 푸시킨적 판타지이지요. 그건 민주공화국이라는 환상이기도 하구요.

 

정여울: 아, 그럼 러시아 문학이 푸쉬킨 공동체라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춘향전 공동체이 아닐까 싶어요(웃음). 푸시킨과 연결시키니까 춘향전이 훨씬 깊이 있는 텍스트로 다시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춘향전>은 어쩌면 봉건사회 안에서 민주주의의 테마를 태동시킨 집단무의식을 보여주고 있다는생각도 들어요.
 
이현우: <춘향전>에 여러 가지 판본이 있지만 춘향이 ‘양반의 서녀’라는 입장과 ‘천기 출신’이라는 입장, 크게 두 가지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어요. 성참판의 서녀 성춘향보다는 월매의 딸 천기 출신의 춘향이 훨씬 더 래디컬한 버전이죠. 서녀 신분보다는 천기 신분이 훨씬 더 급진적이고 도발적이고, 더 도전적인 문제제기예요. 이건 거의 세계문학 수준이죠. 성춘향이라는 것은 뭔가 저항의 가능성을 거세시키고, 춘향을 좀 더 양반 쪽에 가깝게 순치시킨 버전이지요. 춘향의 고결한 태도나 수절의 의지를 그냥 핏줄로 해결해버리면, 절반은 양반의 피를 타고났다고 하면, 이것은 양반 쪽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버전이니까요. 하지만 천기 버전의 <춘향전>은 세계문학사의 고전이 될 만해요. 아래로부터의 문학이거든요. 그것보다 더 분명하게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것을 말한 텍스트는 고전문학에서는 거의 없어요. 한국문학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텍스트죠.

 

정여울: 그럼 오늘 우리의 대화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춘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정리해도 되겠네요(웃음).

 

이현우: 홍길동만 해도 율도국이라는 별도의 유토피아를 정해서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도피해서 인정을 받는 것이지요. 춘향은 체제 내에서 인정을 받아요. 임금이 이몽룡과의 결혼을 허락하고 정경부인으로 봉했다는 것이니까 ‘저 세계’가 아닌 ‘이 세계’ 안에서 천민의 존재가 처음으로 인정받는 거예요. 춘향전의 판본이 이렇게 엄청나게 범람하는 것도 민중들이 보였을 어떤 열광의 흔적이라고 봐요.

 

(...)

 

14. 0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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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다른, 2014)란 제목만으로는 눈에 띄지 않는 특별한 인터뷰집이 출간됐다.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는 부제로도 충분하지 않다. 핵심은 '파리 리뷰 인터뷰'다. 미국의 저명한 문학잡지 '파리 리뷰'와 가진 인터뷰 모음집이어서 '파리 리뷰 인터뷰'다.

 

 

국내 독자들에게 친숙한 작가들의 인터뷰만 모은 걸로 생각했는데, '파리 리뷰 인터뷰1'라고 돼 있는 걸로 보아 시리즈로 나온다는 의미다. 자세히 보니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도서출판 다른에서는 국내 문예창작학과 대학생들과의 설문을 통해 「파리 리뷰」에서 인터뷰한 250여 명의 소설가들 중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작가 36인'을 선정했고, 이중 12인의 이야기를 <작가란 무엇인가>로 묶어냈다.

그럼, 두 권 정도는 더 나온다는 얘기인가? 그러길 기대한다. 찾아보니 영어판으론 피카도르출판사에서 네 권짜리 선집이 나온 바 있다.

 

 

선집은 피카도르에서만 나온 건 아니고, 모던라이브러리에서는 '작업실의 작가들'이란 타이틀로 몇 권의 인터뷰 선집을 묶어낸 바 있다. 국내에서 처음 나왔던 파리 리뷰 인터뷰집의 저본으로 추정되는 책이다.

 

 

안정효 선생의 번역으로 나왔던 <나의 삶, 나의 문학>(책세상, 1989)가 바로 첫 번역본이었다(<11인의 위대한 작가들>(책세상, 1997)로 다시 나오기도 했지만 현재는 모두 절판된 상태다). '20세기 대표작가들과의 대화'라는 부제하에 11명의 인터뷰를 싣고 있는데, 그 명단은 아래와 같다.

 

로버트 프로스트
T.S.엘리어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월리엄 포크너
어네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네루다
아이삭 바셰비스 싱거
아더 밀러
소울 벨로우
월리엄 개스
해롤드 핀터

 

개인적으로는 파스테르나크의 인터뷰를 인상 깊게 읽었고, 강의시간에 종종 인용하기도 한다. 이번에 나온 <작가란 무엇인가>에 실린 12명의 작가는 에코, 파묵, 하루키, 오스터, 매큐언, 로스, 쿤데라, 카버, 마르케스, 헤밍웨이, 포크너, 포스터 등이다. 헤밍웨이와 포크너가 겹치는 걸로 보이는데, 이어질 선집들에서 다시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파리 리뷰>를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모두 가지고 있다. 여기에 게재된 인터뷰를 엮어 책으로 펴낸다면 더없이 훌륭한 책이 될 것이다." 그 '더없이 훌륭한 책'이 이번에 나온 걸로 보면 되겠다...

 

14. 0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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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이틀 늦게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전주의 책'이라고 해야 할까. 타이틀은 알랭 바디우의 책 <세기>(이학사, 2014)를 풀어서 적었다. 바디우가 염두에 두고 있는 '세기'가 '20세기'이며, 그가 본 20세기의 가장 큰 특징은 '실재에 대한 열정'이다. 지젝의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에 인용된 문구를 통해서 처음 접하고 영어본 <세기>를 구해놓은 기억이 난다. 이제 편하게 한국어본으로도 읽어볼 수 있게 됐다.

 

바디우에 따르면 20세기를 지배했던 진정한 열정은 결코 상상적인 것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열정도, 메시아적 열정도 아니었다. 지난 세기를 지배했던 그 무시시한 열정은, 19세기의 예언주의와 반대로, 실재에 대한 열정, 즉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참된 것"을 활기 있게 하기 위한 열정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바로 이 열정을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 또 이를 통해 지난 세기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판단을 시도해보기 위해, 실재에 대한 열정, 의지, 욕구 등을 담은 여러 자료를 찾아 탁월하게 분석한다.

두번째 책은 에즈라 보걸의 <덩샤오핑 평전>(민음사, 2014)이다. 마오주의자였던 바디우와 짝을 맞추자면 <마오쩌둥 평전>이 더 어울리겠지만, 덩샤오핑 역시 덩샤오핑과 함께 지난 세기 중국의 건설자다. '현대 중국의 건설자'란 부제가 무안하지 않게 말이다. "세계적인 동아시아 전문가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학교 명예교수는 정부 인사, 당 역사 연구자, 가족, 주변 인물 등과의 인터뷰와 최근에 공개되거나 발굴된 각종 문서 등 방대한 자료를 통해 덩샤오핑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그의 생애와 맞물린 중국의 전환기를 세밀히 그려 낸다."

 

 

세번째 책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KH사업단에서 엮은 <사회인문학과의 대화>(에코리브르, 2013). 사회인문학총서의 네번째 책으로 "국내외 학자 일곱 명의 사유 과정을 보여준다. 그들은 사회와의 만남 속에서 기존의 인문학적 사유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독자적인 사유의 틀을 일구어내고자 애써 온 사회인문학자의 삶을 잘 보여준다." 사회인문학의 실제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어림해볼 수 있을 듯싶다.

 

네번째 책은 홍윤철의 <질병의 탄생>(사이, 2014)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가 오늘날 현대인이 앓고 있는 수많은 질병들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또 우리는 어떤 이유 때문에 과거 선조들보다 훨씬 더 질병에 잘 걸리는지를 수백만 년 전의 수렵채집 시대부터 21세기 현재에 이르는 기나긴 역사를 통해 그 원인을 파악하려 한 독특한 문명사 책이다." 조지 윌리엄스의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사이언스북스, 1999)와 내용이 다른지 궁금해서 관심을 갖게 된다.

 

 

끝으로 전방위 인문학자 박홍규 교수의 <독서독인>(인물과사상사, 2014). '독서는 인간을 어떻게 단련시키는가'란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독서는 인간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단련시켰으며, 책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과 만나느냐에 따라 권력자가 될 수도 있고, 반권력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독서는 한 영혼을 단련시키면서도 세상을 혁명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박홍규 교수의 독서론으로 읽어도 되겠다. 모르고 지나쳤는데, 저자의 인생론으로 <서른 이후, 문득 인생이 무겁게 느껴질 때>(경향미디어, 2011)도 수년 전에 나왔다. 매일같이 신간을 검색해보는 나도 모르게 출간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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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알랭 바디우 지음, 박정태 옮김 / 이학사 / 2014년 1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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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평전- 현대 중국의 건설자
에즈라 보걸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50,000원 → 45,000원(10%할인) / 마일리지 2,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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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문학과의 대화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사업단 엮음 / 에코리브르 / 2013년 12월
21,000원 → 18,9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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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질병의 탄생- 우리는 왜, 어떻게 질병에 걸리는가
홍윤철 지음 / 사이 / 2014년 1월
21,000원 → 18,9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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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연재 '로쟈가 푸는 문학을 낳은 문학'도 옮겨놓는다. 이번 회에서 다룬 건 카뮈의 <페스트>와 김은국의 <순교자>다. 작가가 <순교자>란 작품을 아예 통째로 카뮈에게 헌정했기에, 두 작가의 영향 관계라는 건 에둘러 말할 필요도 없는 사안이다. 두 작가의 공통적인 주제가 무엇인지를 나대로 짚었다.

 

 

 

중앙선데이(14. 01. 19) 절망에 맞서 계속 희망하라 … 인간이니까

 

“도스토옙스키와 카뮈의 문학 세계가 보여준 위대한 도덕적, 심리적 전통을 이어받은 빼어난 작품!”

미국 언론으로부터 이런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는 뜻밖에도 석사학위 청구 작품으로 『순교자』(1964)를 쓴 재미 작가 김은국이다. 한국인 작가의 소설이 미국 평단을 뒤흔들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그런데 헌사에서 김은국은 “나로 하여금 한국 전선의 참호와 벙커에서의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 카뮈에게 작품을 바친다”고 적었다. 이 작품의 문학적 계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문제작이었던 카뮈의 『페스트』(1947)에서 이어진 것이다.

 



『순교자』는 출간 과정에서 여성 인물이 등장하지 않고 전투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부정적 의견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점이라면 『페스트』가 한술 더 뜬다.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남자이며, 게다가 ‘전후 문제작’이라는 평판에 어울리지 않게 전쟁은 ‘페스트’라는 알레고리로서만 암시되기 때문이다.

전쟁과 페스트는 모두 ‘감옥살이’를 강제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페스트』는 카뮈가 대니얼 디포를 인용했듯 “한 가지 감옥살이를 다른 한 가지의 감옥살이에 빗대어 대신 표현한” 소설이다. 현대적인 도시 알제리 오랑에서 사람들은 “시간이 없고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달리 특징 없는 무료한 곳에, 갑자기 페스트가 번진다. 도시는 폐쇄되고 시민은 감금 생활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 간다. 의사 리유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이 환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보건대를 꾸리지만 역부족이다. 무고한 어린아이들까지 고통 속에 죽어 간다. 당초 페스트를 죄인들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고 설교했던 파늘루 신부에게 리유는 이렇게 항의한다. “이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

어째서 신은 죄가 없는 아이들까지 고통받게 하는 걸까? 신의 심판론에서 한 발짝 물러서 신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신의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뜻이다. 신부 입장에서는 이것만이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반대로 리유에게 페스트라는 재난은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고통일 뿐이다. 하지만 리유는, 비록 패배가 예정돼 있을지라도, 죽음에 굴복하지 않고 반항한다. 카뮈는 신이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성인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페스트』에서 페스트로 비유된 전쟁의 고통과 부조리성이 어린아이의 고통으로 응축되었다면, 『순교자』에서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체포되어 고문받고 처형당한 목사들의 운명으로 집약돼 있다. 당초 열네 명의 목사가 심문을 받았지만 젊은 목사 한 명은 실성하고 신 목사라는 노(老)목사만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살아남는다. 반공주의 선전에 활용하기 위해 육군 정보대 장교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 가는 과정이 『순교자』의 줄거리다.

다른 목사들을 배신했을 거라는 의혹을 받는 신 목사는 입을 열지 않고 있는데, 결국 진상은 체포된 북한군 소좌를 통해 밝혀진다. 열두 목사는 위대한 순교자로 죽은 것이 아니라 목숨을 구걸하며 “꼭 개새끼들처럼 죽어 갔다”는 것이다. 반면 신 목사만이 유일하게 대항한 자였다. 북한군의 얼굴에 침을 뱉기까지 했지만 오히려 그런 당당한 태도 덕에 사형을 면하게 된 것이다. “난 내게 침을 뱉을 수 있는 자를 존경해”라는 게 소좌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신 목사는 왜 오해를 무릅쓰면서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에겐 여전히 신에 대한 믿음과 마찬가지로 숭고한 순교자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신 목사는 무신론자다. 평생 신을 찾아 헤맸지만 찾지 못했다는 게 그의 토로다. 그 대신에 신 목사가 발견한 건 무정한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뿐이었다. 그에겐 쓰라린 경험이 있다. 느지막이 결혼해 얻은 첫아이를 잃었을 때, 그의 아내는 상심과 죄책감에 빠진다. 온종일 기도하던 아내에게 그는 참다 못해 저승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죽는다고 해서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일러 준다. 신 목사는 진리를 일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그 진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그때 신 목사는 “나의 그 잘난 진리, 남들이 모르는 내 진실”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절망에 맞서 계속 희망해야 하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오.”

『페스트』에서 카뮈가 보여준 죽음에 대한 반항은, 『순교자』에서 절망에 맞선 희망으로 나타난다. “나는 인간이 희망을 잃을 때 어떻게 동물이 되는지, 약속을 잊었을 때 어떻게 야만이 되는지를 거기서 보았소. (…) 희망 없이는, 그리고 정의에 대한 약속 없이는 인간은 고난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 희망과 약속을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다면 다른 데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14. 0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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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에서 돌아와 커피 한잔 마시며 밀린 페이퍼를 적는다. 오늘내일 여러 편 써야 할 것 같다. 알라딘을 비운 게 날짜로는 삼일인데, 꽤 오래 전처럼 여겨진다(설마 적응이 필요할까?). 휴가중에 택배가 세 개 와 있었는데, 그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주말과 오늘자 신문까지 올라온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에 대한 리뷰기사 몇 편 가운데, 일부를 옮겨놓는다. 반응이 나쁜 건 아니어서 다행스럽다.

 

 

필명 로쟈로 활동해온 서평가이자 러시아 문학 전공자인 지은이 이현우씨는 “푸시킨이 ‘인생의 소설을 다 읽기도 전에 떠난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듯이 우리도 이 인생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읽지 않고 덮었더라면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밝은 슬픔’에서 시작해 도스토옙스키의 ‘정신병동’을 지나 레프 톨스토이의 불화의 세계와 맞닥뜨리노라면 문득 청년기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수도, 러시아 고전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들고 싶을 수도 있다.(한겨레)
이 시대 타고난 이야기꾼 로쟈가 러시아 문학 강의를 펴냈다. 저자는 작정하고 러시아 문학을 파고드는 듯하다. 러시아의 역사와 지리적 특성, 문학사 전반의 특징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러시아 문학 거장의 삶과 작품 세계를 해설한다. 하지만 저자의 타고난 입담은 단순히 러시아의 문학을 소개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국민 시인으로 칭송받은 푸시킨이 원고지 매수를 세어가며 글을 쓰는 강박증세를 보였고,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는 그 시대 모든 작가와 사이가 나빴다는 점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대문호들의 기행을 들려준다. 그들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동시에 은밀한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국제신문)
책은 푸슈킨에서 시작해 19세기를 마감하는 체호프로 끝난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레이먼드 카버의 공통분모가 체호프다. 하루키의 소설 '1Q84'에 체호프가 쓴 사할린 섬 이야기가 나오고, 카버는 마지막 작품 '심부름'의 주인공을 체호프로 삼았다. 그러면 왜 체호프일까.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탄 앨리스 먼로가 '캐나다의 체호프'로 불리듯, 그는 단편의 절대지존이다. 이른바 '등신들'만 데리고도 4막 희곡을 끌어간다. '잘난 놈들'의 이념이 아니라 '못난 놈들'의 무능으로 위대한 문학을 창조했다. 한국 독자에게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만 알려진 푸슈킨은 러시아 문학의 핵심이다. 키가 작았지만 유머와 글재주로 유혹한 여성이 결혼 전에만 100명을 넘었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잘 썼을까. 1강 '예브게니 오네긴'을 읽어 보시라.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된다.(조선일보)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강의실을 책 속에 옮겨 놓았다. 책장을 펼치면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황금시대를 빛낸 문호들의 삶과 대표작을 누비는 장대한 여정에 동행할 수 있다. 러시아 작가의 계보는 푸시킨에서 시작한다. 푸시킨과 더불어 고골, 레르몬토프까지 이 3대 작가들이 1820∼1840년대 러시아 근대 문학의 토대를 쌓았다. 이후 1856∼1880년 활동한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3대 작가로 꼽힌다. 19세기의 문을 닫은 작가는 체호프였다. 푸시킨은 러시아 최초의 ‘전업 작가’였다. 기울어진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그는 자기가 쓴 원고 매수까지 꼬박꼬박 기록해뒀다. 부유한 귀족 작가인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는 작품을 쓰지 않아도 생계에 지장이 없었지만 푸시킨은 달랐다. 푸시킨 문학은 기본적으로 슬픔을 다루지만 밝고 경쾌하다. 오네긴과 타티아나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 ‘예브게니 오네긴’에도 푸시킨 특유의 ‘밝은 슬픔’이 관통한다.(동아일보)
서평가 ‘로쟈’이자 러시아문학 연구자 ‘이현우’인 저자가 자신의 전공인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세계로 안내한다. 학생이 아니라 일반 독자를 위한 러시아문학 입문인 이 책은 푸슈킨에서 시작해 레르몬토프,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를 거쳐 체호프에서 끝난다. 투르게네프와 도스토예프스키는 2편, 나머지 작가는 1편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이들의 문학세계를 설명한다.18세기 표트르 대제 이전까지 러시아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문명이랄 게 없었다. 몽골의 침입과 지배로 인해 르네상스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 문화를 수입하면서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인텔리겐차 계급이 형성된다. 인텔리겐차는 전문 지식인을 뜻하는 영어 인텔렉추얼과 달리 비판적 지식인을 뜻하는데 이들이 러시아문학의 전성기를 이끈 독자층으로 자리 잡는다.(경향신문)  

14. 01. 20.

 

P.S. 가장 의외의 평은 '이 시대 타고난 이야기꾼'이란 호명이다. 담당기자가 누군가와 혼동한 게 아닌가 싶다. 서평꾼과 이야기꾼은 종류가 좀 다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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