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연재 '로쟈가 푸는 문학을 낳은 문학'도 옮겨놓는다. 이번 회에서 다룬 건 카뮈의 <페스트>와 김은국의 <순교자>다. 작가가 <순교자>란 작품을 아예 통째로 카뮈에게 헌정했기에, 두 작가의 영향 관계라는 건 에둘러 말할 필요도 없는 사안이다. 두 작가의 공통적인 주제가 무엇인지를 나대로 짚었다.

 

 

 

중앙선데이(14. 01. 19) 절망에 맞서 계속 희망하라 … 인간이니까

 

“도스토옙스키와 카뮈의 문학 세계가 보여준 위대한 도덕적, 심리적 전통을 이어받은 빼어난 작품!”

미국 언론으로부터 이런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는 뜻밖에도 석사학위 청구 작품으로 『순교자』(1964)를 쓴 재미 작가 김은국이다. 한국인 작가의 소설이 미국 평단을 뒤흔들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그런데 헌사에서 김은국은 “나로 하여금 한국 전선의 참호와 벙커에서의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 카뮈에게 작품을 바친다”고 적었다. 이 작품의 문학적 계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문제작이었던 카뮈의 『페스트』(1947)에서 이어진 것이다.

 



『순교자』는 출간 과정에서 여성 인물이 등장하지 않고 전투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부정적 의견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점이라면 『페스트』가 한술 더 뜬다.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남자이며, 게다가 ‘전후 문제작’이라는 평판에 어울리지 않게 전쟁은 ‘페스트’라는 알레고리로서만 암시되기 때문이다.

전쟁과 페스트는 모두 ‘감옥살이’를 강제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페스트』는 카뮈가 대니얼 디포를 인용했듯 “한 가지 감옥살이를 다른 한 가지의 감옥살이에 빗대어 대신 표현한” 소설이다. 현대적인 도시 알제리 오랑에서 사람들은 “시간이 없고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달리 특징 없는 무료한 곳에, 갑자기 페스트가 번진다. 도시는 폐쇄되고 시민은 감금 생활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 간다. 의사 리유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이 환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보건대를 꾸리지만 역부족이다. 무고한 어린아이들까지 고통 속에 죽어 간다. 당초 페스트를 죄인들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고 설교했던 파늘루 신부에게 리유는 이렇게 항의한다. “이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

어째서 신은 죄가 없는 아이들까지 고통받게 하는 걸까? 신의 심판론에서 한 발짝 물러서 신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신의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뜻이다. 신부 입장에서는 이것만이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반대로 리유에게 페스트라는 재난은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고통일 뿐이다. 하지만 리유는, 비록 패배가 예정돼 있을지라도, 죽음에 굴복하지 않고 반항한다. 카뮈는 신이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성인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페스트』에서 페스트로 비유된 전쟁의 고통과 부조리성이 어린아이의 고통으로 응축되었다면, 『순교자』에서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체포되어 고문받고 처형당한 목사들의 운명으로 집약돼 있다. 당초 열네 명의 목사가 심문을 받았지만 젊은 목사 한 명은 실성하고 신 목사라는 노(老)목사만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살아남는다. 반공주의 선전에 활용하기 위해 육군 정보대 장교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 가는 과정이 『순교자』의 줄거리다.

다른 목사들을 배신했을 거라는 의혹을 받는 신 목사는 입을 열지 않고 있는데, 결국 진상은 체포된 북한군 소좌를 통해 밝혀진다. 열두 목사는 위대한 순교자로 죽은 것이 아니라 목숨을 구걸하며 “꼭 개새끼들처럼 죽어 갔다”는 것이다. 반면 신 목사만이 유일하게 대항한 자였다. 북한군의 얼굴에 침을 뱉기까지 했지만 오히려 그런 당당한 태도 덕에 사형을 면하게 된 것이다. “난 내게 침을 뱉을 수 있는 자를 존경해”라는 게 소좌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신 목사는 왜 오해를 무릅쓰면서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에겐 여전히 신에 대한 믿음과 마찬가지로 숭고한 순교자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신 목사는 무신론자다. 평생 신을 찾아 헤맸지만 찾지 못했다는 게 그의 토로다. 그 대신에 신 목사가 발견한 건 무정한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뿐이었다. 그에겐 쓰라린 경험이 있다. 느지막이 결혼해 얻은 첫아이를 잃었을 때, 그의 아내는 상심과 죄책감에 빠진다. 온종일 기도하던 아내에게 그는 참다 못해 저승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죽는다고 해서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일러 준다. 신 목사는 진리를 일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그 진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그때 신 목사는 “나의 그 잘난 진리, 남들이 모르는 내 진실”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절망에 맞서 계속 희망해야 하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오.”

『페스트』에서 카뮈가 보여준 죽음에 대한 반항은, 『순교자』에서 절망에 맞선 희망으로 나타난다. “나는 인간이 희망을 잃을 때 어떻게 동물이 되는지, 약속을 잊었을 때 어떻게 야만이 되는지를 거기서 보았소. (…) 희망 없이는, 그리고 정의에 대한 약속 없이는 인간은 고난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 희망과 약속을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다면 다른 데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14. 0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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