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신문에서 읽은 인터뷰 기사를 하나 옮겨놓는다. 딱 북한 핵실험이 실시된 날 방한한 월러스틴 교수와의 짤막한 인터뷰를 담고 있는데,  북핵 문제에 대한 외부자의 시각, 혹은 '세계체제론자'의 시각을 보여주는지라 흥미롭다. 그의 미시적인 정세분석과 예측이 거시적인 세계체체론만큼이나 현실적합성을 보여줄지 주목해볼 만하겠다.  

경향신문(06. 10. 11) “北 핵실험 별로 놀랄만한 일 아니다”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의 관점에서 보자면 너무나 논리적인 선택입니다. 남북한 통일의 미래상은 미국도, 중국도 아닌 바로 한국 사회의 여론이 이번 핵실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를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로 나눠 설명한 ‘세계체제론’의 저자 이매뉴얼 월러스틴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76)는 자신의 한국 방문과 동시에 터진 북한의 핵실험에 “별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월러스틴 교수는 1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북한 핵실험의 의미와 향후 전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담담하게 밝혔다.

“공교롭게도 제가 오는 날 일이 발생했더군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북한이 그렇게 행동하리라는 것은 다 예상됐던 것 아닙니까. 북한의 관점으로는 너무나 논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보인 반응 역시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중국의 반응은 예상보다 강한 듯하고요.”

월러스틴 교수는 외부 분석가 입장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한국의 입장이라고 했다. “나는 한국 여론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당분간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입니다. 향후 한국 내 여론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미래 운명이 결정될 것입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생겨난 주요 분단국가 가운데 독일과 베트남이 이미 통일됐고, 이제는 한국과 중국만 남았다”며 “두 나라의 통일도 이르면 10년 내에, 늦어도 30년 안에는 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통일해야 한다’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뤄져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 어떤 조건으로 통일이 이뤄지느냐이다”라며 “현재의 북한 핵실험 국면에서 한국 내 여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바로 통일의 방식, 조건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사회의 여론 형성과 관련해 어떤 방향이 바람직하냐’라고 묻자 그는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즉답을 회피했다. ‘핵실험이 남북한 통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으냐’고 돌려 묻자 그는 “한국 내 여론이 이번 핵실험에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그에 따른 결과가 나올 것이고, 반면 의연하게 대처하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남북한 통일이 어떤 형태로 얼마나 이른 시기에 올 것이냐의 문제 역시 지금 한국 여론의 반응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 월러스틴은 “화나고 분하겠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병력이 이라크에 묶여 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는 선택할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그는 “2주쯤 지나서 보면 알겠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의아해 하는 기자들의 표정에 그는 “미국이 이라크에 했듯이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중국이나 러시아의 협조 없이는 군사제재는 불가능하고 성공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유엔 안보리 제재가 거론되지 않느냐’는 반문에 그는 “미국의 제재 의지가 매우 강경한 만큼 어떤 종류든 성명서가 나오기는 하겠지만 설득력 있게 준비된 제재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그는 두 가지를 말했다. “우선 내부적으로는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내적 정책기조가 있을 것이고 외부적으로는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 군사적으로 보복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을 것입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협정(FTA) 협상에 대해 월러스틴 교수는 “미국이 전세계적으로 추진하는 ‘자유무역’이란 것은 결코 자유무역이 아니란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완벽한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것을 누구보다 미 의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역시 자국 이익에 맞게 조금 더 보호주의적인 것에서 조금 덜 보호주의적으로 움직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가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일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미국이 서유럽과 FTA를 맺고 있지 않다는 점이 한·미 FTA가 자동적으로 선진국 진입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잘 말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협상이 시작됐고 국가간 경제협력이 불가피한 이상 한·미 FTA의 세부 항목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월러스틴 교수는 11일 고려대에서 ‘미국 이후의 세계(Post American World)에서 살아가기: 지정학적 긴장과 사회적 갈등’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이다. ‘미국 이후의 세계’에 대해 그는 “미국이 유일한 슈퍼파워로서의 힘을 잃어간다는 뜻”이라며 “이미 미국은 쇠퇴기에 들어와 있으며 좀더 구체적으로는 70년대부터 미국의 쇠퇴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단적인 예로 존 볼턴 유엔대사의 말이 유엔에서 먹히지 않는 것을 들었다. 미국의 말 한마디로 결의안이 통과되던 50~60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월러스틴 교수는 “이제는 미국이 단일한 슈퍼파워가 아니다. 미국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월러스틴 교수는 고려대 문과대 설립 60주년을 맞아 고려대측의 초청으로 부인 베아트리체 여사와 함께 지난 9일 입국했으며 11일 고려대 강연 및 전문가 포럼에 이어 13일에는 ‘자유·정의·진리: 시장 근본주의를 넘어서’라는 주제의 학술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할 예정이다.(손제민 기자)

06. 10. 11.

 

 

 

 

P.S. <근대세계체제1.2.3>(까치글방) 외에도 월러스틴 교수의 책들을 다수 소개돼 있다. 내가 읽은 건 <유토피스틱스>(창비사, 1999) 정도가 마지막이었던 듯싶은데,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창비사, 2001)의 역자 백승욱 교수가 쓴 세계체제론 입문서가 근간 예정이라고 한다. 월러스틴 자신이 쓴 입문서로는 <세계채제분석>(당대, 2005)이 작년에 소개된 바 있다. 월러스틴 읽기는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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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oli 2006-10-12 21:25   좋아요 0 | URL
월러스틴이 왔네요...북한 핵실험만큼이나 반가운 임...

로쟈 2006-10-13 01:11   좋아요 0 | URL
'반가운 임'은 반어법이신가요?..

parioli 2006-10-13 16:31   좋아요 0 | URL
반반이에요. 제가 좀 과격파거든요. ㅎㅎ
 

오늘자 메일로 배달된 창비주간논평에서 문학평론가 차미령의 '혼인 권하는 사회'를 옮겨놓는다. 아직 미혼인 후배 강사와 같은 연구실을 쓰는지라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종종 있다. 후배는 지난 연휴에 지방에 다녀왔고 직접적인 '압력'을 받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무언의 압력'을 느꼈을 법하다. 초혼과 재혼 어떻게 다른가, 같은 인터넷 기사 타이틀에 흥미를 갖는 걸 보아도 알 수 있다. 그와 관련한 몇 마디 잡담을 나누다가 메일을 열어보았는데, '아베 정권의 등장' 이후의 한일관계에 대한 논평과 함께 올라온 것이 '혼인 권하는 사회'였던 것. 겸사겸사 옮겨놓는 이유이다.

창비주간논평(06. 10. 10) 혼인 권하는 사회

이런저런 일로 해서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 한분을 세차례 뵐 기회가 있었다. 처음 뵈었을 때 여차저차 소개를 올리자 넌지시 물으셨다. "자네 혼인은 했는가?" 요즘은 쉬이 쓰지 않는 혼인이라는 단어가 은근히 멋스러웠고, 그래서인지 그 질문이 그리 거북하지는 않았다. 두번째 뵈었을 때도 같은 말씀을 던지셨지만 그러려니, 했다. 겨우 두번째 대면이었고 그러니 잊어버리셨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세번 반복되면 우연이 필연이 된다고 하던가.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그 어르신은 식사중에 다시 내 쪽으로 몸을 돌리셨다. "그런데 자네 혼인은 했는가?"


종종 들르곤 하는 인터넷 모 싸이트 게시판에는 지난 추석 연휴 동안 이런 종류의 상황을 탄식하는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결혼은 왜 안하는 거냐, 눈이 높은 거냐, 노력을 안하는 거냐, 선이나 봐라……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이라든가 백수들에 못지않게, 30대 씽글들 역시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의 안부인사가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세상에 여자(남자)가 반인데 뭘 망설이느냐고? 어서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라는 주변의 다정한 관심은 어떤 의미에서는 잔인한 것이다. '인연'이라는 낭만적 우연을 더이상 기대하지 않는다면, '기회'를 만들기 위해 발벗고 뛰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흔히들 이야기하듯, 자신의 상품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냉정히 가늠해보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결혼정보회사의 세분화된 등급이 특정 직업에 대한 사회적 지위의 척도로 통용되기 시작한 지는 벌써 오래다.


꼭 그렇게라도 해서 짝을 만나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과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처럼 이 시련을 무사통과하고 싶다는 욕망이 뒤엉켜 만혼(晩婚)시대 젊은이들의 머릿속은 혼란스럽다. 계급, 권력, 성, 가족제도 등이 얽혀 있는 이 세계의 복잡한 지형도는 세태에 밝은 젊은 작가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소재다.


김윤영의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문학수첩> 2006년 가을호)에서 결혼이라는 "과열경쟁 시장"을 "블루오션" 전략으로 돌파하려는 주인공은 자신의 결혼 전망을 마치 주식시세처럼 분석한다. "부잣집 공주님"이나 "희귀한 고소득 전문직"이 아닌 이상 더욱 냉철해져야 한다고 다짐하는 작품 속 여성 펀드매니저의 내면은, 만에 하나 성공적인 결혼을 못한다면 인생의 하향곡선의 경사가 가팔라질 것이라는 불안심리로 얼룩져 있다.


그런가 하면 백가흠의 <조대리의 트렁크>(<문학판> 2006년 가을호)는 또 어떤가. 다소 주변적으로 처리되고는 있지만 '짝짓기'에 작용하는 계급과 성의 함수관계에 대한 백가흠식 문제제기는 이 소설에서도 여전하다. 소설의 서두에 묘사된 것처럼 대리운전기사 '조대리'에게 관건은 "가능성 있는 여자"를 찾는 것이어서 "생각보다 예쁜 여자의 외모"는 오히려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폭력에 쉽게 호소하거나 혹은 퇴행적인 면면을 보이는 백가흠의 남성인물들은 생존(번식)의 본능적 욕구가 현실과 만나 일어나는 불협화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그들에게 결혼이라는 제도적 안착은 어불성설이다.


그 어조가 냉소적이건 풍자적이건 혹은 자학적이건, '결혼은 선택' 나아가 '미친 짓'임을 도발적으로 규정하는 소설들의 맞은편에, 이를 생존의 문제와 결부시켜 고찰하는 소설들이 자리한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 사회의 많은 평범한 씽글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결혼의 무게는 여전히 후자 쪽에 좀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길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한다는 가장 원초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씽글들에게 관대하지 않은 이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배척당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이다. 특정한 연령대를 지나면 '결혼 이외의 삶'에 대해 상상하는 것조차 봉쇄되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씽글은 언제까지나 비혼(非婚)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는 미혼(未婚)일 뿐이다.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까닭이나 혹은 반대로 할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하지 않는 연유는 다양하겠지만, 그것이 무심한 권고이든 절박한 채근이든 주변의 결혼 강요가 씽글들을 옥죄면서 그들에게 단 하나의 선택지만을 이구동성 가리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우리 혹은 우리의 이웃들은 너도 나도 '아주 쉽게' 결혼을 권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사 대신 전하는 안부인가, 타성에 젖은 관습인가? 국가의 안위와 미래를 우려하는 애국심의 발로인가, 타인의 고독을 연민하는 착한 이웃사랑인가? 인생의 참맛을 전파하고 싶은 전도심인가 아니면,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놀부심보인가? 짧기만 한 소견으론, 출산율 걱정하시는 분들은 쌍춘년을 맞아 러시를 이루는 결혼행렬을 보고 조금 안심하셔도 될 듯하고, 누군가의 말년을 염려하시는 분들은 TV 리퀘스트 프로그램에 전화 한통 하시는 게 더 나을 듯도 싶은데 말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결혼을 강권하는 사회에 초연하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에 아랑곳하지 않는 천하장사급 뚝심과 그것을 뛰어넘는 마돈나급 파워가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올가을 소설과 영화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게 본, 노동계급 출신의 트랜스젠더 성장담을 여유있게 펼쳐낸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떠올리며 하는 말이다. 이질적인 두 단어를 조합해낸 제목이 말해주듯, 영화는 남성적 가계에서 자란 소년(/녀)의 여성적 꿈을 다룬다는 점에서 영국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성적 소수자를 다룬다는 점에서 게이 카우보이들의 고통을 섬세하게 그린 미국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혹은 의심하며) 사회가 강요하는 바를 따라야 했던, 그래서 차마 신음소리조차 낼 수 없이 속울음을 삼키던 카우보이들과는 달리, <천하장사 마돈나>의 주인공 오동구는 단 한순간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씩씩하게 전진한다. 물론 그 씩씩함의 근원이, 영화가 주인공의 새로운 눈뜸 이후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고 막을 내린다는 점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영화가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시종일관 따스하고,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팝가수 마돈나의 노래 'Like a virgin'을 부르는 오동구는 너무나 대견해서 보는 사람을 뿌듯하게 한다. 영화 속 오동구를 보고 있노라면 사랑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 사랑스러움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그런 사랑스러움이다. 오동구는 아마도 앞으로 더 외롭겠지만, 인생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기에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올해 유난히 휘영청 밝은 추석 달을 보면서 우리 사회 어디에나 있을 오동구들은, 사회의 태클에 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면서 살아가게 해달라고 소원했을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남녀들이 결혼하기를 기도하는 대신, 차라리 그 오동구들 틈에 지금 이대로의 삶을 충분히 사랑하고 있음에도 결혼을 종용당하는 씽글들을 세우고 싶은 마음은 과연 지나친 것일까. 때는 바야흐로 다시 결혼의 계절이다.

 

06. 10. 10.

 

 

P.S. 개인적으론 논평을 읽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가 비디오로 출시되기를 더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를 보면 어떨까란 생각도 해보고.그런데, 한편으로 우리는 엊그제부터 이러한 '일상적 시간'의 배면에서 '묵시록적 시간'을 동시에 살게 되었다(예컨대 '9.11 이후의 시간'을 살고 있는 미국처럼).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 아무래도 우리는 실질적인 '위험사회'로 진입한 게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혼의 계절'보다 한발 먼저 도래한 것은 '북핵의 가을'이다(창비의 논평이 아베정권이나 혼인 문제 정도를 다루고 있는 것은 북핵 위기가 현실화되기 이전에 씌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시간차'가 새삼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어제는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에 대한 서평을 주문받기도 했지만, 혹 '혁명'보다 먼저 오는 것이 '전쟁'은 아닌지(실제로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여 일어났다)? 낮에 도서관에 들어온 비릴리오의 책 <탈출속도>(경성대출판부, 2006)를 복사하면서도 자못 비장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로 '탈출'해야 할 것인가? 어떤 속도로? 해서, 한동안은 '혁명-전쟁-탈출'이란 주제의 페이퍼들을 쓰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묵시록 속의 일상'을 사는 한 가지 방식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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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겜보이 2006-10-10 19:50   좋아요 0 | URL
중,고,대학때까지만 해도 연애한다면 펄쩍 뛰는 어른들이 조금 있으면 결혼 언제 하느냐고 하고, 결혼한 사람들에겐 애는 언제 낳느냐고 묻고, 출산 후엔 둘째는 언제 갖느냐고 하지요. 그저 인사치레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할 말이 너무 없는 나머지...

비로그인 2006-10-10 20:04   좋아요 0 | URL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가이드 라인이랄까요. 문제는 그 가이드 라인을 거역하는 그 순간부터 '정상'이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는...

마노아 2006-10-10 23:11   좋아요 0 | URL
마돈나 엄청 이쁘게 나왔네요. 케이트 윈슬렛으로 착각했어요..;; 천하장사 마돈나 참 따뜻한 영화였는데 좀 더 오래 상영했으면 좋았을 것을...

로쟈 2006-10-10 23:33   좋아요 0 | URL
'엄청 이쁘게 나왔네'가 아닌데요. 20년전의 마돈나이니까요!(매주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던 'Like a virgin'을 FM으로 들으며 잠들던 기억이 새롭기까지 한...)

라이더 2006-10-12 18:11   좋아요 0 | URL
저기요. 이거 퍼가도 되요?

로쟈 2006-10-13 00:45   좋아요 0 | URL
알라딘의 공개페이퍼는 퍼가기에 '자동적으로' 노출돼 있습니다.^^

라이더 2006-10-13 12:09   좋아요 0 | URL
출처를 밝히고, 님의 글 펌 할께요. 감사해요.
 

2004년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의 기일이 오늘(10.09)인 줄 알고 있었는데, 위키피디아의 데리다 항목을 찾아보니까 10월 8일, 어제였다. 그에 관한 글이라도 내놓으면 좋겠지만 아직 형편이 닿지 않아서 재작년에 씌어진 주디스 버틀러의 애도 기사 정도를 읽어보는 걸로 입막음을 한다(연초에 나온 번역서 <목소리와 현상> 이후에 데리다 관련서가 한권도 더 출간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다). LRB의 Vol. 26, No. 21(2004. 11. 04)에 게재되었던 것이다. 내가 한 일은 문단을 나대로 정리한 것뿐이다.

Jacques Derrida

Judith Butler

'How do you finally respond to your life and your name?' Derrida raised this question in his final interview with Le Monde, published on 18 August this year. If he could apprehend his life, he remarked, he would also be obliged to apprehend his death as singular and absolute, without resurrection and without redemption. At this revealing moment, it is interesting that Derrida the philosopher should find in Socrates his proper precursor: that he should turn to Socrates to understand that, at the age of 74, he still did not quite know how best to live. One cannot, he remarks, come to terms with one's life without trying to apprehend one's death, asking, in effect, how a human learns to live and to die.

Much of Derrida's later work is dedicated to mourning, and he offers his acts of public mourning as posthumous gifts. In The Work of Mourning (2001), he tries to come to terms with the deaths of other writers and thinkers through reckoning his debt to their words, indeed, their texts; his own writing constitutes an act of mourning, one that he is perhaps, avant la lettre, recommending to us as a way to begin to mourn this thinker, who not only taught us how to read, but gave the act of reading a new significance and a new promise.

In that book, he openly mourns Roland Barthes, who died in 1980, Paul de Man, who died in 1983, Michel Foucault, who died in 1984, and a host of others, including Edmund Jabès (1991), Louis Marin (1992), Sarah Kofman (1994), Emmanuel Levinas (1995) and Jean-François Lyotard (1998). In the last of these essays, for Lyotard, it is not his own death that preoccupies him, but rather his 'debts'. These are authors that he could not do without, ones with and through whom he thinks. He writes only because he reads, and he reads only because there are these authors to read time and again. He 'owes' them something or, perhaps, everything, if only because he could not write without them: their writing exists as the precondition of his own; their writing constitutes the means through which his own writing voice is animated and secured, a voice that emerges, importantly, as an address.

In October 1993, when I shared a stage with Derrida at New York University, I had a brief, private conversation with him that touched on these issues. I could see in him a certain urgency to acknowledge those many people who had translated him, those who had read him, those who had defended him in public debate, and those who had made good use of his thinking and his words. I leaned over and asked whether he felt that he had many debts to pay. I was hoping to suggest to him that he need not feel so indebted, thinking as I did in a perhaps naively Nietzschean way that the debt was a form of enslavement: did he not see that what others offered him, they offered freely? He seemed not to be able to hear me in English. And so when I said 'your debts', he said: 'My death?' 'No,' I reiterated, 'your debts!' and he said: 'My death!?'

At this point I could see that there was a link between the two, one that my efforts at clear pronunciation could not quite pierce, but it was not until I read his later work that I came to understand how important that link really was. 'There come moments,' he writes, 'when, as mourning demands [deuil oblige], one feels obligated to declare one's debts. We feel it our duty to say what we owe to friends.' He cautions against 'saying' the debt and imagining that one might then be done with it. He acknowledges instead the 'incalculable debt' that one does not want to pay: 'I am conscious of this and want it thus.' He ends his essay on Lyotard with a direct address: 'There it is, Jean-François, this is what, I tell myself, I today would have wanted to try and tell you.'

There is in that attempt, that essai, a longing that cannot reach the one to whom it is addressed, but does not for that reason forfeit itself as longing. The act of mourning thus becomes a continued way of 'speaking to' the other who is gone, even though the other is gone, in spite of the fact that the other is gone, precisely because that other is gone. We now must say 'Jacques' to name the one we have lost, and in that sense 'Jacques Derrida' becomes the name of our loss. Yet we must continue to say his name, not only to mark his passing, but because he is the one we continue to address in what we write; because it is, for many of us, impossible to write without relying on him, without thinking with and through him. 'Jacques Derrida', then, as the name for the future of what we write.

It is surely uncontroversial to say that Jacques Derrida was one of the greatest philosophers of the 20th century; his international reputation far exceeds that of any other French intellectual of his generation. More than that, his work fundamentally changed the way in which we think about language, philosophy, aesthetics, painting, literature, communication, ethics and politics. His early work criticised the structuralist presumption that language could be described as a static set of rules, and he showed how those rules admitted of contingency and were dependent on a temporality that could undermine their efficacy. He wrote against philosophical positions that uncritically subscribed to 'totality' or 'systematicity' as values, without first considering the alternatives that were ruled out by that pre-emptive valorisation.

He insisted that the act of reading extends from literary texts to films, to works of art, to popular culture, to political scenarios, and to philosophy itself. This notion of 'reading' insists that our ability to understand relies on our capacity to interpret signs. It also presupposes that signs come to signify in ways that no particular author or speaker can constrain in advance through intention. This does not mean that language always confounds our intentions, but only that our intentions do not fully govern everything we end up meaning by what we say and write.

Derrida's work moved from a criticism of philosophical presumptions in groundbreaking books such as Of Grammatology (1967), Writing and Difference (1967), Dissemination (1972), Spurs (1978) and The Post Card (1980), to the question of how to theorise the problem of 'difference'. This term he wrote as 'différance', not only to mark the way that signification works - one term referring to another, always relying on a deferral of meaning between signifier and signified - but also to characterise an ethical relation, the relation of sexual difference, and the relation to the Other. If some readers thought that Derrida was a linguistic constructivist, they missed the fact that the name we have for something, for ourselves, for an other, is precisely what fails to capture the referent (as opposed to making or constructing it).

He drew critically on the work of Emmanuel Levinas in order to insist on the Other as one to whom an incalculable responsibility is owed, one who could never fully be 'captured' through social categories or designative names, one to whom a certain response is owed. This conception became the basis of his strenuous critique of apartheid in South Africa, his vigilant opposition to totalitarian regimes and forms of intellectual censorship, his theorisation of the nation-state beyond the hold of territoriality, his opposition to European racism, and his criticism of the discourse of 'terror' as it worked to increase governmental powers that undermine basic human rights. This political ethic can be seen at work in his defence of animal rights, in his opposition to the death penalty, and even in his queries about 'being' Jewish and what it means to offer hospitality to those of differing origins and language.

Derrida made clear in his short book on Walter Benjamin, The Force of Law (1994), that justice was a concept that was yet to come. This does not mean that we cannot expect instances of justice in this life, and it does not mean that justice will arrive for us only in another life. He was clear that there was no other life. It means only that, as an ideal, it is that towards which we strive, without end. Not to strive for justice because it cannot be fully realised would be as mistaken as believing that one has already arrived at justice and that the only task is to arm oneself adequately to fortify its regime. The first is a form of nihilism (which he opposed) and the second is dogmatism (which he opposed).

Derrida kept us alive to the practice of criticism, understanding that social and political transformation was an incessant project, one that could not be relinquished, one that was coextensive with the becoming of life and the encounter with the Other, one that required a reading of the rules by means of which a polity constitutes itself through exclusion or effacement. How is justice done? What justice do we owe others? And what does it mean to act in the name of justice? These were questions that had to be asked regardless of the consequences, and this meant that they were often questions asked when established authorities wished that they were not.

If his critics worried that, with Derrida, there are no foundations on which one could rely, they doubtless were mistaken. Derrida relies perhaps most assiduously on Socrates, on a mode of philosophical inquiry that took the question as the most honest and arduous form of thought. 'How do you finally respond to your life and to your name?' This question is posed by him to himself, and yet he is, in this interview, a 'tu' for himself, as if he were a proximate friend, but not quite a 'moi'. He has taken himself as the other, modelling a form of reflexivity, asking whether an account can be given of this life, and of this death. Is there justice to be done to a life? That he asks the question is exemplary, perhaps even foundational, since it keeps the final meaning of that life and that name open. It prescribes a ceaseless task of honouring what cannot be possessed through knowledge, what in a life exceeds our grasp.

Indeed, now that Derrida, the person, has died, his writing makes a demand on us. We must address him as he addressed himself, asking what it means to know and approach another, to apprehend a life and a death, to give an account of its meaning, to acknowledge its binding ties with others, and to do that justly. In this way, Derrida has always been offering us a way to interrogate the meaning of our lives, singly and plurally, returning to the question as the beginning of philosophy, but surely also, in his own way, and with several unpayable debts, beginning philosophy again and anew.

06. 1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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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10-09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제 기억에도 여러 애도 기사가 나돌았던 듯하네요. 읽는 거야 이 참에 읽어보죠. 지젝이 데리다에 관한 책을 쓴다는 소문이 있어서 저는 내년을 은근히 고대하고 있습니다. 내년 이맘때는 저도 빈손이 아니기를 바라구요...

이럴수록 2006-10-1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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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의 마지막날이지만 집안일도 밀리고 강의준비도 밀려 있는지라 마음이 분주하던 차에 체젠 보도로 널리 알려진 러시아 여기자의 피살 속보를 접하게 되었다(기사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그녀는 청부살해 당했다). 이 소식을 전하고 있는 국내 일간지 두 곳의 기사와 함께 여기저기서 검색한 이미지 자료들을 옮겨놓는다. 모처럼 다루는 러시아 관련 기사를 음울한 내용으로 채우게 되어 유감스럽다. 분명한 건 이 또한 러시아의 얼굴이라는 사실이다. 대낮에도 활개치는 이런 류의 청부살인이 아직도 낯설지 않은 나라.  

 

한겨레(06. 10. 09) 누가 러시아의 양심을 쏘았나

 

“위험은 내 일의 일상적 부분이 됐다. 러시아 언론인으로서의 일, 내 임무이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 체첸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며 러시아 정부를 줄기차게 비판한 중견 여기자가 청부살해가 분명해 보이는 총격으로 숨져 파장이 일고 있다. 체첸전쟁 현장을 누벼온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48)에게 총을 겨눈 세력이 누구인지를 두고 러시아와 친러시아적인 체첸 정부에 의혹의 눈길도 쏠린다.(*아래는 피살 소식과 함께 생전의 폴리트코프스카야를 보여주고 있는 러시아의 한 TV방송 모습.) 

 



7일 오후 4시30분(현지시각)께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채 발견된 <노바야가제타>의 폴리트코프스카야는 독보적인 언론인이다. 그는 1년 전 영국 <비비시>(BBC)와의 인터뷰에서 앞날을 예견한듯 일상화된 위협을 얘기했다. 그러나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의사가 환자한테 건강을 주고 가수가 노래하는 것처럼, 언론인의 임무는 본대로 현실을 쓰는 것”이라며 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옛 소련 관영지 <이즈베스티야>에서 언론계에 입문한 폴리트코프스카야는 1999년부터는 대표적 비판언론인 <노바야가제타>를 통해 2차 체첸전쟁 참상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다른 매체들이 눈귀를 닫을 때 폴리트코프스카야는 폐허가 된 체첸 수도 그로즈니 등지의 현장취재로 참상을 폭로했다. 러시아군과 체첸 정부군의 고문과 집단처형, 납치, 돈을 받고 주검을 가족한테 넘기는 행태 등이 밖으로 전해졌다. <더러운 전쟁> 등 두 권의 책으로도 수십만명이 희생된 전쟁 실상을 알렸다. <푸틴의 러시아: 실패한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삶>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다(*이미지는 영역본들).

 



영국 <옵저버>는 폴리트코프스카야가 러시아군 잔학행위만 부각시켰다는 주장도 있지만, 체첸 반군의 잔혹한 전술을 비판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런 활동으로 국내외 여러 언론상을 받은 폴리트코프스카야는 2002년 10월 체첸 반군의 모스크바 극장 인질사태(*위의 사진) 때 중재를 위해 극장에 들어가기도 했다.

숨지던 날에도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체첸 정부의 고문을 폭로하는 기사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지난 4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폴리트코프스카야는 고문 증거를 확보했다며, 람잔 카디로프 체첸 총리한테 직접 고문당했다는 사람의 증언도 있다고 말했다. 폴리트코프스카야는 폭로기사에 대한 경찰 간부의 보복 위협 때문에 2001년 오스트리아로 피신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비행기에서 마신 차 때문에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그와 동료들은 암살 시도로 추정했다. 그는 또 러시아와 체첸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들이 자신을 제거하겠다는 위협을 일삼았다고 말해 와, 이번 사건이 러시아와 체첸 정부 중 어느 쪽과 관련됐는지를 두고 추측이 무성하다. 사건 발생일이 푸틴 대통령 생일이고, 이틀 전이 카디로프 체첸 총리의 생일이라는 점에서 그의 희생이 두 지도자의 ‘생일 선물’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2000년 이후 러시아 언론인 12명이 청부살해로 의심되는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 <노바야가제타>의 지분 5%를 인수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야만적 범죄”라고 비난했다(*<노바야가제타>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 피살사건과 관련하여 가장 많은 분량의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Политковская была честным журналистом

범인이 머리에 권총을 난사한 점이나 희생자 곁에 총을 버리고 간 것은 청부살해의 전형적 흔적이다. 체첸 반러시아 세력과의 화해를 주창하다 1998년 피살된 갈리나 스트로모이바 두마(하원) 의원 피살사건과 이번 사건은 닮았다. 당국은 방범카메라에 잡힌 모자를 눌러쓴 범인의 모습을 단서로 추적에 들어갔다고 밝혔고, 유리 차이카 검찰총장은 수사를 몸소 지휘하겠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적 동기가 담긴 다른 청부살해처럼 이번에도 범행세력의 꼬리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범행세력을 잡는다면 러시아가 아니다).(이본영 기자)

 

 

국민일보(06 10. 09) ‘체첸 참상’ 보도 러시아 여기자 피살

 

러시아의 잔혹한 체첸 지배 등을 고발해온 유명 러시아 여기자가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외신들은 주로 러시아 일간지 ‘노바야 가제타’에서 활동해온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48) 기자가 7일 그녀가 거주하던 모스크바 중심부 아파트 건물 엘리베이터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경찰관들의 말을 인용,엘리베이터 안에서 권총 한 자루와 탄환 4발이 남겨져 있었다면서 폴리트코프스카야 기자의 온몸에서도 총상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기사에 불만을 품은 전직 군인이나 우익단체 회원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폴리트코프스카야 기자는 체첸 내 인권 상황을 집중 보도해 러시아 당국에 정면으로 맞섰으며 이후 여러 차례 보도를 통해 정부와의 긴장 관계를 계속해왔다. 이 때문에 2001년 10월에는 살해 위협까지 당했으며, 오스트리아 빈으로 망명했다가 귀국하기도 했다. 그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체첸사태 대응과 관련, 정부군의 민간인 인권유린 상황을 비판한 책도 펴낸 적이 있다.

2004년 러시아 북오세티아 공화국의 작은 도시 베슬란에서 벌어진 체첸인에 의한 학교 인질사건 때는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남부행 열차를 탔다 차를 마신 뒤 심각한 식중독 증상을 보여 취재를 하지 못하기도 했다. 당시 동료 언론인들은 이 사건이 폴리트코프스카야의 생명을 노린 암살사건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폴리트코프스카야는 2002년 체첸 반군이 모스크바 극장을 완전히 장악해 인질극을 벌일 당시 체첸 무장세력의 특별 요청을 받아 정부와 중재활동에 나서기도 했으며 2001년 러시아 언론상인 아르촘 보로비크상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1980년 옛 소련 치하의 모스크바 국립대학을 졸업한 뒤 공산당 기관지 이즈베스티야에 입사, 26년째 언론인으로 활동해 왔다.(신창호 기자)

 

 

06. 10. 08-09.

 

 

 

 

 

 

 

 

 

P.S. 시간이 나면 그녀가 쓴 기사와 피살과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국내에는 체첸 관련 단행본이 단 한권도 출간돼 있지 않다. 한 장이 할애돼 있는 <전쟁의 풍경>(실천문학사, 2004)을 제외하면).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 그녀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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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러시아 인권운동가의 죽음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7-18 22:09 
    러시아의 여성 인권운동가가 또 피살됐다. 2006년 피살된 여기자 폴리트코프스카야의 친구이기도 하다고. 러시아 인권과 법치주의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사건이어서 음울하고도 씁쓸한 소식이다. 어제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9. 07. 17) 체첸 비판 러시아 인권운동가 또 피살 체첸의 인권 실태를 비판해온 러시아의 여성 인권운동가가 또다시 피살됐다. 영국 BBC방송 등은 15일 체첸 인권단체 ‘메모리얼
 
 
 

연휴 기간이어서인지 알라딘에 새로나온 책들이 업데이트되고 있지 않다. 아니, 새로나온 책들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출판사도 대개는 휴무일 테니까. 그런 틈을 타서 예술분야의 책들로만 '최근에 나온 책들'을 꼽아보기로 한다. 최근에 나왔다고는 하지만 더러는 몇 달 전에 나온 책도 포함돼 있는 리스트이다. 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의 경우가 그러한데, 카파와 건축가 리베스킨드를 꼽은 데는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려는 개인적인 '계산'이 반영돼 있다. 너무도 친숙한 우리의 모차르트와 반 고흐에서부터 '낙천주의 예술가' 리베스킨드에 이르는 여정이 연휴를 마무리하면서(갑자기 늘어난 할일들!) 부려보는 '마지막 사치'쯤 되겠다(일상의 시간들과 대립된다는 의미에서 사실 '휴일의 시간'들은 '예술의 시간'들이지 않은가?).   

 

 

 

 

제일 먼저,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프로이트 전문 연구자 피터 게이"가 <모차르트>(푸른숲, 2006). 역사학자답게 "기존의 모차르트 전기에 나타난 신화적이고 감상적인 색채를 걷어냈다. 천재 예술가 삶의 주요 국면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그의 음악이 탄생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보여주며 모차르트에 대한 낭만적인 추론을 비판한다. 연대기 순이 아니라 '천재', '아들', '종', '자유 음악가', '거지', '거장' 등 테마별로 각 장을 구성하여 화려한 수식이나 부풀려진 신화 없이 위대한 음악가의 진면모를 확인해볼 수 있다."

그러한 소개의 글에서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책은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모차르트>(문학동네, 1999)이다. 엘리아스의 유작인 이 책은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이란 부제를 갖고 있고, "철저한 사회 문화사적 시각으로 모차르트를 해석한다.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당시의 사회 상황에 초점을 맞춰 모차르트의 천재성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한 것. 사회의 여러 양태가 구조적 제도적 맥락에서 개인의 천재성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을 풍부한 일화와 편지들을 근거로 깊이 있게 논하고 있다."

해서, 나는 이 두 사람의 책을 나란히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저자인 피터 게이에 대해서는 그의 <부르주아전>(서해문집, 2005)을 소개하면서 다룬 바 있다. 그리고, 모차르트 관련서로 올해 나온 책으로는 파울 바르츠의 <소설 모차르트>(자음과모음, 2006)가 눈길을 끈다.  

 

 

 

 

두번째 책은 나탈리 에니크의 <반 고흐 효과>(아트북스, 2006). 저자 소개에 따르면 나탈리 에니크는 "사회과학자로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책임 연구원이다. 주요 저작으로는 <예술가의 화법>, <여성의 지위 - 서구 소설에서 여성의 정체성>, <예술 사회학>,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사회학>, <반 고흐 효과>, <반 고흐의 영광>, <찬미의 인류학에 대해> 등이 있다"고 돼 있는데, <여성의 지위>는 <여성의 상태>(동문선, 1999)로 번역돼 있다. 해서 나는 문학연구자로 알고 있었는데, 전공은 '예술사회학'이라고 해야겠다. 아래 사진을 보면 전공이 무색하지 않은 미모의 학자이다.

예술사회학자답게 저저의 관심은 '반 고흐' 자신이 아니라 '반 고흐 효과'에 두어진다(원제는 '반 고흐의 영광'이다). 우리가 아는 '반 고흐'가 어떻게 탄생했는가 하는 것. 곧, 저자는 "고흐를 실마리 삼아 치밀하게 예술가 숭배의 매커니즘을 밝힌다. 예술은 현대의 종교가 되었다는 저자의 분석은 치밀하면서도 복잡한 논리의 직조를 통해 하나의 완성된 이론으로 거듭난다. 예술이라는 종교의 첫 번째 성인으로 저자는 고흐를 뽑고, 그가 성인으로 추대된 이후 고흐 이전과 이후의 예술가들은 그 틀 속에서 자리를 잡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이 '예술사회학'은 '종교사회학'이기도 하며(에니크는 종교학자 엘리아데의 구절을 에피그라프로 삼고 있다) 저자는 그 '틀'을 문제삼겠다는 이야기겠다.

뒷표지에 붙어 있는 한 추천사에 따르면, "에니히는 반 고흐를 진화하는 문화현상이자 오늘날의 미술 실천을 강제하는 신화로서 독해한다... <반 고흐 효과>는 우리가 영웅을 만드는 방법뿐 아니라 그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에 대해 상상력에 넘치면서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고로 고흐를 좋아하거나 숭배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반 고흐 효과>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또 다른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화염 속에 사라진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을 소재로 쓴 팩션", <반 고흐 컨스피러시>(마로니에북스, 2006)이다. "사랑, 음모, 배반이 얽힌 긴박한 추격전,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미술품 약탈의 진상, 유럽의 여러 나라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하니까 '다빈치의 독자들'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가난에 쪼들렸던 고흐는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와 비교하면 상상력이 무기가 되는 작가들은 형편이 좀 낫지 않나 싶다(거꾸로 자기 얘기만 쓰는 작가들은 아무래도 '빈티'가 나는 걸 감수해야겠지만).  

 

 

 

 

세번째 책은 에곤 쉴레/실레(1890-1918)의 <세상의 하이페리온>(미디어아르떼, 2006). 미술비평가 아투어 뢰슬러가 에곤 쉴레와 나눈 대담집 <에곤 쉴레를 회상하며>(미디어아르떼)와 나란히 출간됐다. 책을 낸 출판사 '미디어아르떼'의 데뷔작들이기도 한 이 책은 언젠가 한 인터뷰를 읽어보니까 '볼 만한 도판'에 대한 펴낸이의 욕심이 최초로 얻어낸 성과물이기도 하기에 그 결과가 주목된다(나는 아직 책의 실물을 보지 못했다). 쉴레와 관련하여 내가 이제까지 내가 갖고 있는 책은 프랭크 휘트포드의 <에곤 실레>(시공사, 1999) 정도였다.

<세상의 하이페리온>은 "요절한 천재 미술가 에곤 쉴레와 가족간의 편지, 그리고 감옥에서 쓴 편지들을 엮"은 책이라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살았기에 대화가 단절되었던 쉴레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예술관, 그리고 일상에 대한 열정을 가족들에게 표현하고 또 설득했다"고 하고, "편지자료는 쉴레가 태어나고 성장했던 툴른에서 수집한 것들"이라고. 이런 식의 편지들이다: "내 그림 중에 어떤 것들은 그런 고통과 슬픔 속에서 스스로 생겨난 것입니다. 다른 그림에는 나의 행복한 상태를 같이 그려놓았어요. 왜냐하면 예술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식에 대한 경고를 하고, 그것들을 일깨우고, 또 풍부하게 해주는 사람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언젠가는 알려지게 될까요? 나는 회의적입니다."

책은 쉴레의 그림 애호가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필독서이겠고, 더불어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거기에 추가하고 싶은 독자층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을 즐겨보는 관객들인데, 기억력이 아주 나쁘지만 않다면 <나쁜 남자>에서 여주인공 서원이 서점에서 훔치려던 (그러다 결국 자신의 신세를 망치게 되는) 화집이 에곤 쉴레의 것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감독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라고.  

 

 

 

 

네번째 책은 세계적인 보도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1913-1954)의 이야기 <로버트 카파>(강, 2006)이다.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알렉스 커쇼가 재구성했다는데, "피가 튀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주요한 역사의 현장에서 불후의 이미지들을 건져 올려 현대사의 생생한 기록으로 남긴 로버트 카파의 열정적이고 모험적이며 자유로운 삶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고 한다. 원제는 <피와 샴페인>(2002).



저자 커쇼는 "부다페스트의 양복장이집 유대인 청년이 1931년 정치 난민으로 헝가리를 떠나고, 베를린을 거쳐 파리, 런던, 마드리드, 뉴욕, 모스크바, 인도차이나 등 전세계를 누비며 '카파이즘'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기까지, 그리고 전장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자신의 목숨을 잃기까지 명료하고 생생한 언어로 복잡한 현대사와 극적인 여러 순간들을 영화를 보여주듯 박진감 있게 재구성한다"고 하니까 카파의 사진들에 매혹되는 바 없지 않다면 펼쳐들어볼 만한 책이다.

아무래도 그의 사진의 주무대는 전장이었고, '카파이즘(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정신)'이란 용어 자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직분은 '전쟁사진작가'이다. "보도사진계에 신화와도 같은 존재로 남은 전쟁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의 제2차 세계대전 종군기"가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필맥, 2006)이다. 이 또한 <로버트 카파>와 나란히 꽂아둘 책이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드의 건축 이야기 <낙천주의 예술가>(마음산책, 2006)이다. "911 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현장을 새롭게 재창조하게 될 건축가 리벤스킨트의 열정과 모험담"이라는 좀 장황한 부제 자체가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해주고 있는 듯싶다.

2년에 한번씩 전세비나 걱정하는 처지에 건축에 대한 유난한 관심을 가졌을 리 없는 나는 이전에 리베스킨드란 이름을 들어본 바 없다. 한데, 그는 대단히 유명하다고 한다. "그가 설계한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현재까지 독일에서 관람객이 가장 많은 박물관으로 꼽힌다"고 할 만큼. 게다가 국내에선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본사의 외관을 설계했다고 하니까 우리와 아주 무관하지도 않다.

Daniel Libeskind's original plan

소개에 따르면, "리베스킨트가 생각하는 훌륭한 건축이란 인생의 굽이굽이 등장하는 갖가지 색을 모두 담아내어 영혼에 내재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축이다. 그는 돌, 쇠, 콘크리트, 나무, 유리처럼 말 못하는 물질을 가지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역사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빛, 소리, 영혼, 장소 감각, 역사에 대한 경외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 말한다. 건물이 영적인 울림을 지니기 위해서는 실제 존재하는 대상과 보이지 않는 힘이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대표작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View from south of the Statue of Liberty

아무려나 쌍둥이 무역센터빌딩을 대신하여 들어설 그의 건축물들이 '영적인 울림'을 지닌 건물들, "실제 존재하는 대상과 보이지 않는 힘", 곧 산자와 죽은자, 그리고 살아남은자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고통을 전달해줄 수 있는 그런 상징물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구 종말의 시대에도 우리를 낙천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06. 1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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