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기간이어서인지 알라딘에 새로나온 책들이 업데이트되고 있지 않다. 아니, 새로나온 책들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출판사도 대개는 휴무일 테니까. 그런 틈을 타서 예술분야의 책들로만 '최근에 나온 책들'을 꼽아보기로 한다. 최근에 나왔다고는 하지만 더러는 몇 달 전에 나온 책도 포함돼 있는 리스트이다. 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의 경우가 그러한데, 카파와 건축가 리베스킨드를 꼽은 데는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려는 개인적인 '계산'이 반영돼 있다. 너무도 친숙한 우리의 모차르트와 반 고흐에서부터 '낙천주의 예술가' 리베스킨드에 이르는 여정이 연휴를 마무리하면서(갑자기 늘어난 할일들!) 부려보는 '마지막 사치'쯤 되겠다(일상의 시간들과 대립된다는 의미에서 사실 '휴일의 시간'들은 '예술의 시간'들이지 않은가?).   

 

 

 

 

제일 먼저,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프로이트 전문 연구자 피터 게이"가 <모차르트>(푸른숲, 2006). 역사학자답게 "기존의 모차르트 전기에 나타난 신화적이고 감상적인 색채를 걷어냈다. 천재 예술가 삶의 주요 국면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그의 음악이 탄생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보여주며 모차르트에 대한 낭만적인 추론을 비판한다. 연대기 순이 아니라 '천재', '아들', '종', '자유 음악가', '거지', '거장' 등 테마별로 각 장을 구성하여 화려한 수식이나 부풀려진 신화 없이 위대한 음악가의 진면모를 확인해볼 수 있다."

그러한 소개의 글에서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책은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모차르트>(문학동네, 1999)이다. 엘리아스의 유작인 이 책은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이란 부제를 갖고 있고, "철저한 사회 문화사적 시각으로 모차르트를 해석한다.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당시의 사회 상황에 초점을 맞춰 모차르트의 천재성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한 것. 사회의 여러 양태가 구조적 제도적 맥락에서 개인의 천재성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을 풍부한 일화와 편지들을 근거로 깊이 있게 논하고 있다."

해서, 나는 이 두 사람의 책을 나란히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저자인 피터 게이에 대해서는 그의 <부르주아전>(서해문집, 2005)을 소개하면서 다룬 바 있다. 그리고, 모차르트 관련서로 올해 나온 책으로는 파울 바르츠의 <소설 모차르트>(자음과모음, 2006)가 눈길을 끈다.  

 

 

 

 

두번째 책은 나탈리 에니크의 <반 고흐 효과>(아트북스, 2006). 저자 소개에 따르면 나탈리 에니크는 "사회과학자로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책임 연구원이다. 주요 저작으로는 <예술가의 화법>, <여성의 지위 - 서구 소설에서 여성의 정체성>, <예술 사회학>,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사회학>, <반 고흐 효과>, <반 고흐의 영광>, <찬미의 인류학에 대해> 등이 있다"고 돼 있는데, <여성의 지위>는 <여성의 상태>(동문선, 1999)로 번역돼 있다. 해서 나는 문학연구자로 알고 있었는데, 전공은 '예술사회학'이라고 해야겠다. 아래 사진을 보면 전공이 무색하지 않은 미모의 학자이다.

예술사회학자답게 저저의 관심은 '반 고흐' 자신이 아니라 '반 고흐 효과'에 두어진다(원제는 '반 고흐의 영광'이다). 우리가 아는 '반 고흐'가 어떻게 탄생했는가 하는 것. 곧, 저자는 "고흐를 실마리 삼아 치밀하게 예술가 숭배의 매커니즘을 밝힌다. 예술은 현대의 종교가 되었다는 저자의 분석은 치밀하면서도 복잡한 논리의 직조를 통해 하나의 완성된 이론으로 거듭난다. 예술이라는 종교의 첫 번째 성인으로 저자는 고흐를 뽑고, 그가 성인으로 추대된 이후 고흐 이전과 이후의 예술가들은 그 틀 속에서 자리를 잡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이 '예술사회학'은 '종교사회학'이기도 하며(에니크는 종교학자 엘리아데의 구절을 에피그라프로 삼고 있다) 저자는 그 '틀'을 문제삼겠다는 이야기겠다.

뒷표지에 붙어 있는 한 추천사에 따르면, "에니히는 반 고흐를 진화하는 문화현상이자 오늘날의 미술 실천을 강제하는 신화로서 독해한다... <반 고흐 효과>는 우리가 영웅을 만드는 방법뿐 아니라 그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에 대해 상상력에 넘치면서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고로 고흐를 좋아하거나 숭배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반 고흐 효과>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또 다른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화염 속에 사라진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을 소재로 쓴 팩션", <반 고흐 컨스피러시>(마로니에북스, 2006)이다. "사랑, 음모, 배반이 얽힌 긴박한 추격전,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미술품 약탈의 진상, 유럽의 여러 나라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하니까 '다빈치의 독자들'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가난에 쪼들렸던 고흐는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와 비교하면 상상력이 무기가 되는 작가들은 형편이 좀 낫지 않나 싶다(거꾸로 자기 얘기만 쓰는 작가들은 아무래도 '빈티'가 나는 걸 감수해야겠지만).  

 

 

 

 

세번째 책은 에곤 쉴레/실레(1890-1918)의 <세상의 하이페리온>(미디어아르떼, 2006). 미술비평가 아투어 뢰슬러가 에곤 쉴레와 나눈 대담집 <에곤 쉴레를 회상하며>(미디어아르떼)와 나란히 출간됐다. 책을 낸 출판사 '미디어아르떼'의 데뷔작들이기도 한 이 책은 언젠가 한 인터뷰를 읽어보니까 '볼 만한 도판'에 대한 펴낸이의 욕심이 최초로 얻어낸 성과물이기도 하기에 그 결과가 주목된다(나는 아직 책의 실물을 보지 못했다). 쉴레와 관련하여 내가 이제까지 내가 갖고 있는 책은 프랭크 휘트포드의 <에곤 실레>(시공사, 1999) 정도였다.

<세상의 하이페리온>은 "요절한 천재 미술가 에곤 쉴레와 가족간의 편지, 그리고 감옥에서 쓴 편지들을 엮"은 책이라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살았기에 대화가 단절되었던 쉴레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예술관, 그리고 일상에 대한 열정을 가족들에게 표현하고 또 설득했다"고 하고, "편지자료는 쉴레가 태어나고 성장했던 툴른에서 수집한 것들"이라고. 이런 식의 편지들이다: "내 그림 중에 어떤 것들은 그런 고통과 슬픔 속에서 스스로 생겨난 것입니다. 다른 그림에는 나의 행복한 상태를 같이 그려놓았어요. 왜냐하면 예술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식에 대한 경고를 하고, 그것들을 일깨우고, 또 풍부하게 해주는 사람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언젠가는 알려지게 될까요? 나는 회의적입니다."

책은 쉴레의 그림 애호가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필독서이겠고, 더불어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거기에 추가하고 싶은 독자층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을 즐겨보는 관객들인데, 기억력이 아주 나쁘지만 않다면 <나쁜 남자>에서 여주인공 서원이 서점에서 훔치려던 (그러다 결국 자신의 신세를 망치게 되는) 화집이 에곤 쉴레의 것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감독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라고.  

 

 

 

 

네번째 책은 세계적인 보도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1913-1954)의 이야기 <로버트 카파>(강, 2006)이다.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알렉스 커쇼가 재구성했다는데, "피가 튀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주요한 역사의 현장에서 불후의 이미지들을 건져 올려 현대사의 생생한 기록으로 남긴 로버트 카파의 열정적이고 모험적이며 자유로운 삶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고 한다. 원제는 <피와 샴페인>(2002).



저자 커쇼는 "부다페스트의 양복장이집 유대인 청년이 1931년 정치 난민으로 헝가리를 떠나고, 베를린을 거쳐 파리, 런던, 마드리드, 뉴욕, 모스크바, 인도차이나 등 전세계를 누비며 '카파이즘'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기까지, 그리고 전장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자신의 목숨을 잃기까지 명료하고 생생한 언어로 복잡한 현대사와 극적인 여러 순간들을 영화를 보여주듯 박진감 있게 재구성한다"고 하니까 카파의 사진들에 매혹되는 바 없지 않다면 펼쳐들어볼 만한 책이다.

아무래도 그의 사진의 주무대는 전장이었고, '카파이즘(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정신)'이란 용어 자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직분은 '전쟁사진작가'이다. "보도사진계에 신화와도 같은 존재로 남은 전쟁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의 제2차 세계대전 종군기"가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필맥, 2006)이다. 이 또한 <로버트 카파>와 나란히 꽂아둘 책이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드의 건축 이야기 <낙천주의 예술가>(마음산책, 2006)이다. "911 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현장을 새롭게 재창조하게 될 건축가 리벤스킨트의 열정과 모험담"이라는 좀 장황한 부제 자체가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해주고 있는 듯싶다.

2년에 한번씩 전세비나 걱정하는 처지에 건축에 대한 유난한 관심을 가졌을 리 없는 나는 이전에 리베스킨드란 이름을 들어본 바 없다. 한데, 그는 대단히 유명하다고 한다. "그가 설계한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현재까지 독일에서 관람객이 가장 많은 박물관으로 꼽힌다"고 할 만큼. 게다가 국내에선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본사의 외관을 설계했다고 하니까 우리와 아주 무관하지도 않다.

Daniel Libeskind's original plan

소개에 따르면, "리베스킨트가 생각하는 훌륭한 건축이란 인생의 굽이굽이 등장하는 갖가지 색을 모두 담아내어 영혼에 내재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축이다. 그는 돌, 쇠, 콘크리트, 나무, 유리처럼 말 못하는 물질을 가지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역사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빛, 소리, 영혼, 장소 감각, 역사에 대한 경외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 말한다. 건물이 영적인 울림을 지니기 위해서는 실제 존재하는 대상과 보이지 않는 힘이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대표작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View from south of the Statue of Liberty

아무려나 쌍둥이 무역센터빌딩을 대신하여 들어설 그의 건축물들이 '영적인 울림'을 지닌 건물들, "실제 존재하는 대상과 보이지 않는 힘", 곧 산자와 죽은자, 그리고 살아남은자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고통을 전달해줄 수 있는 그런 상징물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구 종말의 시대에도 우리를 낙천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06. 1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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