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하루 앞두고 날이 풀렸다. 날씨도 수험생들을 배려하다니 기특하다. 어제 아는 집의 자제도 고3이어서 우리 가족이 '합격기원' 선물 배달을 갔었다(어디에 합격하나?). 중학교때 본 아이는 어느새 나보다도 키가 더 커 있었다. 그렇듯 자라나는 게 '도덕'이라고 믿는 나로선 아이의 '도덕성'이 또한 기특했다. 물론 성적은 도덕순이 아니므로 내일 애써 분전해야 하리라. 그의 건투를 빈다.

 

 

 

 

잠깐의 외출 뒤에 집에 돌아와 내가 잡은 책은 다시 손택의 <우울한 열정>(시울, 2005)이다. 거기서도 벤야민을 다루고 있는 "토성의 영향 아래". 이미 한번 읽은 걸 찬찬히 다시 읽고 있다. 손택의 벤야민론을 정리하는 건 지난번에 폴 굿맨과 롤랑 바르트 얘기를 정리하면서 미뤄둔 일인지라 마음 한구석에 숙제로 남아 있었는데, 마저 다 읽지 못한 상태이지만 쉬엄쉬엄 진도를 빼기로 한다.

손택의 벤야민론은, 사진에 관한 책도 낸바 있는 저자답게, 벤야민 사진 몇 장에 대한 얘기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갖고 있는 Picador판의 원서 "Under the Sign of Saturn"(2002)에도 그렇고, 우리 번역서에도 이 사진들을 싣고 있지 않다. 구글에서 이미지를 따다가 대략 설명과 맞추어본다.

첫번째 사진은 손택이 본 가장 오래된 사진인데, "1927년, 그가 서른 다설 살때의 사진이다." 이어지는 묘사는 이렇다: "넓은 이마 위에 짙은 색 곱슬머리, 두툼한 아랫입술까지 덮은 콧수염. 젊고, 잘생겼다고 할 수 있을 모습이다. 머리를 숙이고 있어 재킷 속의 어깨가 바로 귀 뒤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엄지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고 나머지 손은, 둘째, 셋째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입가를 가리고 있다. 안경을 통해 보이는 내리깐 시선, 근시안의 부드럽고 몽상가 같은 시선은 사진의 왼쪽 아랫부분으로 더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65쪽)

그리고 두번째 사진. "1930년대 후반에 찍은 사진은, 이마는 거의 벗겨지지 않았음에도 젊음이나 미모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얼굴이 커졌고 상체는 육중하고 건장해 보인다. 숱 많은 콧수염과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밀어 넣은 통통한 손이 입가를 덮었다. 시선은 불투명하다. 전보다 더 내면을 향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생각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열심히 듣는 사람은 보지 않는다." 벤야민을 카프카에 대한 글에 이렇게 썼다). 등뒤에는 책이 꽂혀 있다."

세번째 사진은 "1938년 여름의 사진"으로 "1933년부터 덴마크에 망명하여 살고 있는 브레히트를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찍은 것이다." "브레히트의 집앞에 서 있는 벤야민은 46세의 노인으로 흰 셔츠와 타이, 양복바지에 회중시계를 달고 있다. 느슨하고 비만한 몸집으로 카메라를 도전적으로 응시하고 있다."(66쪽)

네번째 사진은 "1937년의 또 다른 사진"으로 "파리 국립도서관에 있는 벤야민의 모습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두 남자가 벤야민 뒤쪽에 좀 떨어져 있는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다. 벤야민은 오른쪽 전경에 위치하는데 아마도 10여 년 동안 집필 중인 보들레르와 19세기 파리에 대한 책을 위한 메모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테이블 위에 왼손으로 책을 펼쳐 잡고 있는 책을 보고 있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사진의 오른쪽 아랫부분을 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어서 손택이 인용하고 있는 숄렘의 증언은 <한 우정의 역사>(한길사, 2002)에 나오는 내용이기도 한데, 벤야민의 절친한 친구 게르숌 숄렘은 1913년 벤야민을 처음 보았을 때를 이렇게 묘사한다. "시오니스트 청년 단체와 스물 한 살의 벤야민이 회장을 맡고 있는 자유 독일 학생 협회의 유태인 회원들의 조인트 모임이었는데, 벤야민은 <청중을 한번도 쳐다보지 않고 천장 구석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즉흥 연설을 했다. 격정적으로 열변을 토했는데, 내가 기억하기론 바로 글로 활자화해도 될 그런 연설이었다.>"(66쪽) 

이제 본론이다. 먼저 제목 '토성의 영향 아래'에 대한 해명. "프랑스인들은 벤야민을 '슬픈 사람(un triste)'이라고 불렀다. 젊은 시절 벤야민의 모습은 '심오한 슬픔(a profound sadness)'이 그의 특징인 것처럼 보였다고 썼다. 벤야민은 스스로를 우울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현대 심리학에서 붙이는 명칭을 경멸하여 전통적인 점성술적 개념을 끌어온다. <나는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가장 느리게 공전하는 별, 우회와 지연의 행성...>"

 

 

 

 

점성술에 관한 책들이 국내에 몇 권 나와 있지만, 그런 것까지 참조할 형편은 못된다. 아마도 서양 점성술에서 토성(Saturn)은 우울증적 기질을 상징하는 듯하다. 하기야, 과거엔 토성이 태양계의 가장 마지막, 외곽의 행성이었을 테니까 그렇게 간주되었을 법하다(명왕성의 영향 아래 태어난 이들은 어떻게 되나?). 그래서 요일에서도 맨마지막에 자리하고('즐거운 토요일'의 이미지는 어쩌면 그런 우울증을 상쇄하기 위한 마스크일는지도 모르겠다). '토성의 영향 아래'라고 번역돼 있지만, 우리식으론 '토성의 기운 아래' 혹은 '토성의 기를 받아'라고 새기는 게 더 이해하기 편하겠다.

"벤야민의 주된 작업, 1928년에 출간된 독일 바로크 연극에 관한 책과 완성되지 못한 <파리, 19세기의 수도>는 이 책이 우울증 이론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면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67쪽) 역자는 이런 대목들에서 복수형을 대개 단수형으로 옮기고 있는데, 한국어답긴 해도 의미의 모호성을 유발한다('이 책이'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손택이 벤야민의 주된 작업(major projects)으로 들고 있는 것은 박사학위청구논문이었던 <독일 비극의 기원>(1928)과 '파리, 19세기의 수도'를 다룬 미완의 주저 <아케이드 프로젝트>이다. 알다시피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지난번에 절반이 출간됐고, 나머지 절반도 근간 예정인 걸로 안다. <독일 비극의 기원>은 번역이 진행중인 걸로 알지만, 언제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다. 일어로는 <독일 비애극의 근원>으로 옮겨져 있다. 'Traurspiel'(비극)은 문자 그대로 '비애극(sorrow-play)', '애도극'이란 뜻이다.

벤야민 비평의 두 가지 키워드는 알레고리와 멜랑콜리(우울증)이다. 따라서 우울증적 기질에 대한 손택의 강조는 당연하며 정당하다. "벤야민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기질을 모두 자신의 주요 연구과제에 투사했으며, 그의 기질이 그의 글쓰기의 주제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해서, 비평가로서 그가 다룬 대부분의 작가들에서 그가 본 것이 '우울함'이었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면서도 간과될 수 없는 부분이다. 하다못해 벤야민은 괴테에게서도 '토성적 기질'을 발견한다.

 

 

 

 

벤야민의 괴테론은 <친화력>에 관한 에세이가 유명한데, 종종 번역서들에서는 <선택적 친화성> 등으로 (잘못)옮겨지고 <우울한 열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영어의 'Elective Affinities'의 번역이긴 하지만, (이전에 자주 언급한 대로) 고유명사의 번역은 주의를 요하며 기존의 관행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여간에 우리의 우울증적 벤야민은 그가 읽어내는 모든 걸 블루로 채색한다. "벤야민은 프루스트의 '세상을 그 혼란상 속으로 끌어당기는 고독'을 묘사하고, 카프카도 파울 클레처럼 '본질적으로 외로웠다'고 설명하며, 로버트 발저의 '인생에서의 성공에 대한 공포'를 인용한다." 가히, 구제 불능이라 하겠다. 손택에 따르면, "삶을 이용해서 작품을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품을 이용해서 삶을 해석할 수는 있다."(One cannot use the life to interpret the work. But one can use the work to interpret the life.) 바로 벤야민의 경우가 그렇다...

05. 11. 22.

P.S. 다른 볼일들 때문에 일단은 여기에서 끊는다. 필요 때문에 도서관에서 가서 사르트르에 관한 자료들을 좀 뒤적거려야 한다. 어젯밤에도 사르트르를 좀 뒤적이다가 고유명사 표기에 관해서 좀 어리둥절한 일이 있었는데, 가령 사르트르의 희곡 'Huis clos'(1945)에 대해서도 <유폐의 방>, <닫힌 방>, <닫힌 문>, <출구는 없다>, <출구 없는 사회> 등등으로 표기돼 있었다(영역은 'No Exit'). <유폐의 방>과 <출구 없는 사회>가 같은 작품을 지칭하는 거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 과연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려야만 하는 건지 의문이다. 

그러다 보면,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기는 건 당연한 일. 사르트르의 장편 <자유의 길>의 1권은 'L'age de raison'이고 '철들 무렵' 혹은 '철들 나이' 등으로 번역돼 있다. 한데, 래빈 여사의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까지>(동녁, 1993, <방송강의 철학사>로 다시 나왔다)에서는 영역본 제목('The age of reason' )을 옮기느라 거창하게도 '이성의 시대'라고 번역해놓았다. 이해할 만한 오역이지만, 피할 수 있는 오역이란 것도 분명하다(작품을 읽지 않았더라도 확인해볼 수는 있는 노릇이다). 참고로, 래빈 연사의 강의 철학사는 권장할 만한 책이다.  

 

 

 

 

P.S. 주말에 장진 감독의 <박수칠 때 떠나라>를 DVD로 대여해 봤는데(이 작품의 진리는 간명하다. '대한민국 검찰은 쇼'라는 것, 나머지 드라마는 그걸 떠받치기 위한 구색 맞추기일 텐데 내겐 별로 흥미롭지 않았다), 네번째 에피소드인가의 제목이 '전설(傳設)'로 돼 있었다. '전설(傳說)'이 아니라. 이건 또 무슨 장진식인가, 하며 보았지만, '전설(傳設)'과 관련된 내용은 따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오타였던 것(타이틀 목차에는 '전설(傳說)'로 돼 있었다). 이런 해프닝들이 '옥의 티'로 즐거움을 주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나는 어수룩한 '쇼'를 좋아하지 않는다(보여주는 것 없는 국내판 '쇼걸'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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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1-2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베호벤 감독
에로틱과 피의 감독이죠. 요즘은 뭘 한대요?

로쟈 2005-11-2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까지 소식이 오는 건 아니지만 저보다 바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계속 영화들을 찍고 있다니까...
 

 

 

 

 

 

 

옛날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철학에 대하여>(동문선, 1997)를 (부분)정리해놓은 게 눈에 띄어서 옮겨놓는다. 요컨대 개인적인 작업노트이다. '철학과 마르크스주의'를 주제로 한 페르난다 나바로와의 대담은 개인적으로 알튀세를 이해하는 데 가장 유익한 대담이라고 생각한다. 1993년인가 <이론>지에 번역/소개되었던 자크 데리다와의 대담(대담자는 마이클 스프린커)과 함께(이상하게도 이 대담은 원문의 절반 정도만이 번역되었다). '묘한' 사제간이었던 데리다와 알튀세르의 관계를 살펴보는 데에도 핵심적인 문헌이다.

 

1부. 철학과 마르크스주의 - 페르난다 나바로와의 대담

1장-마르크스주의를 위한 하나의 철학: 데모크리토스의 노선

 

-“마르크스의 발견의 핵심이 과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수학적 철학이나 물리학적 철학에 대해 말하는 것이 곤란한 것처럼 마르크스주의적 철학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리고 그는 자기비판을 통해 <인식론적 단절>이 전면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경향적인 것이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마르크스가 헤겔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다.(19)

 

-당시 나는 프랑스에서 내가 1948년 이래 당원으로 있던 프랑스 공산당에 개입하기를 원했습니다... 당시 내겐 선택가능성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당에 정치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내게 남아 있던 개입의 길은 단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순수한 이론, 즉 철학을 통한 개입이 그것입니다.(27) 나는 <자본> 속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될 만한 것을 탐구하는 데 전념했습니다.(30) 당은 이제는 나를 추방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었던 나의 개입이 마르크스에 의거하고 있었고, 나는 하나의 <비판적이고 혁명적인> 마르크스 해석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가 <불가침의 聖父인 사상가>가 되어 당 내부에서 나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데리다가 지적하고 있는, 알튀세르에게서의 당의 문제: "그에게 있어서 할 수 없었던 것이 한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당을 떠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의 투쟁이 당 내부에 있다고 간주했습니다. 반면 저는 당원이 아니었고 그래서 저는 당 밖에 있는 알튀세르를 또한 생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는 거기에 있었고 저는 아니었습니다. 차이를 아시겠지요? 그것은 무시될 수 없습니다."

 

-내 생각에 <진정한> 유물론, 마르크스주의에 가장 적합한 유물론은 에피쿠로스와 데모크리토스의 노선에 서 있는 우발적 유물론입니다.(33) 우리는 마르크스를 위하여 <상상적> 철학(레이몽 아롱)을 만들어 냈습니다. 즉, 마르크스의 텍스트들에 문자대로 엄격하게 매달린다면 그의 저작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철학 말입니다.(36) 어떤 것이건 그것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철학, 철학사에 속하는 하나의 철학일 것입니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이용했던 개념적 발견들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위한 하나의 철학일 것입니다.(37) 그가 탐구한 것은 <비철학>, 그 이론적 헤게모니 기능이 철학의 새로운 존재 형태들에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소멸할 <비철학>입니다.(38) 이처럼, <자본>이라는 과학적-비판적-정치적 저작을 씀으로써 그는 자신이 결코 쓰지 않은 철학을 실천한 것입니다... 현재 과제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위한 하나의 철학을 가공해 내는 것입니다.(39)

 

-이 유물론[우발적 유물론]은 주체(신이든 프롤레타리아트이든)의 유물론이 아니라, 지정할 수 있는 목적이 업이 자기발전의 질서를 지배하는 (주체없는) 과정의 유물론입니다.(40) 의 철학, 의 철학은 기원 등등에 대한 모든 고전적인 질문들을 척결합니다. 이 철학은 우리가 그 속에 <던져져> 있는 세계의, 그리고 세계의 의미의, 일종의 선험적 우연성을 복원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던집니다... 이렇게 세계는 우리에게 하나의 <증여>입니다.(42)

 

-여기서 내 의도는 철학사에서 인정받지 못한 유물론적 전통 하나가 존재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데모크리토스-에피쿠로스-마키아벨리-홉스-루소-마르크스-하이데거의 전통입니다... 그것은 통상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의 것으로 돌려지던 유물론, 즉 합리주의 전통의 모든 유물론과 마찬가지로 필연성과 목적론의 유물론, 즉 합리주의 전통의 모든 유물론과 마찬가지로 필연성과 목적론의 유물론, 다시 말해 관념론의 위장된 형태인 저 유물론을 포함하여 유물론으로 인정받던 유물론들에까지 대립하는 마주침의 유물론, 우성의 유물론, 요컨대 우발성의 유물론입니다.(43) 모든 형태에 대해 무가 우선하며, 현존에 대해 부재가 우선합니다.(44)

 

*데리다가 대담에서 지적하고 있는 하이데거의 중요성: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알튀세르에게 있어서 하이데거는 금세기의 회피할 수 없는 유일한(the) 위대한 사상가입니다. 유일한 위대한 적수이자 또한 동시에 일종의 매우 중요한 동맹자 또는 잠재적인 후원자로서 말입니다(알튀세르의 전저작은 이러한 징후에 따라 읽혀져야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그것을 <세계는 일어나는 것 전체이다>(<세계는 우리에게 떨어져내리는 것 전체이다>)라고 훌륭하게 표현했습니다... 이 훌륭한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세계에는 예고 없이 <우리에게 떨어져 내리는> 사례들․상황들․사물들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례들, 즉 서로 전적으로 구별되는 개별적 개체들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테제가 바로 명목론의 기본 테제입니다... 나는 명목론이 유물론의 대기실이었을 뿐 아니라 유물론 그 자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49)

 

 

 

 

 

 

 

 

-세계는 전적으로 개별적이고 유일고유한 사물들고 구성되어 있고, 사물들은 제각기 고유한 명칭고 속성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결국 <지금 여기> 있는 것, 이것은 단지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을 뿐이지 명명할 수는 없습니다. 말은 이미 추상이기 때문입니다. 말에 대한 몸짓의 우위, 기호에 대한 물질적 흔적의 우위가 뜻하는 바를 말을 사용하지 앟고서 말해야, 즉 가리켜야 합니다.(50) 마르크스도 엥겔스도 유일고유하고 우발적이며 예견 불가능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의미의 역사의 이론에도, 정치적 실천의 이론에도 접근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역사의 이론, 현재 속의 정치적 실천의 이론에 대해 유일하게 사고한 사람은 마키아벨리입니다.(51)


2장-철학-이데올로기-정치

-내 생각에 철학이 엄밀한 의미에서 철학으로서 성립한 것은 수학이라는 최초의 과학이 성립한 시기입니다... 철학은 과학에서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어떤 것, 즉 철학에 불가결한 합리적 추상화의 모델을 끌어왔습니다... 요컨대 순수한 합리적 담론, 그 모델이 과학들 속에 있는 합리적 담론이 미리 존재하지 않고서는 철학이 등장할 수 없었습니다.(54)

 

-모든 철학은 자신의 대립물이라는 유령을 안고 있습니다. 관념론은 유물론이라는 유령을, 유물론은 관념론이라는 유령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의 목적 중의 하나는 이론적 전투를 개시하는 것입니다... 

 

05. 11. 21.

 

P.S. 데리다의 대담에 대한 정리, 그리고 데리다의 알튀세르 비판의 요점 등은 따로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겠다. 물론 그 자리는 공간이지만 시간의 좌표를 갖고 있다. 기약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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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천식 때문에 잠이 깨어 보니 2시 반이 넘은 시각이었고(알레르기성 천식이 나의 오랜 지병이다), 습관처럼 TV를 켰다. 보통 YTN의 뉴스를 소리없이 (자막만으로) 보거나 하는데, 일어난 김에 SBS에서 예고돼 있던 영화 <클린>의 마무리 장면을 보기 위해 채널을 돌렸다. 올리비에 아샤야스 감독의 영화 <클린>은 작년 칸느영화제에서 장만옥(장만위, 매기정, 메이첸)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던 작품(나는 수상식장에서 그녀가 호명되는 모습을 작년 모스크바에서 TV뉴스 시간에 볼 수 있었다).

 

 

원래 0시 50분부터인가 예정돼 있던 영화를 컨디션도 안 좋은지라 포기하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었는데, 마침 영화가 끝나는 시각인 3시 이전에 깨 잠을 설치는 김에 마지막 장면을 봐두기로 했다. 그건 문학평론도 겸하고 있는 영화평론가 강유정이 동아일보의 프로그램 소개란에서 강추해놓았기 때문. 장만옥의, 장만옥을 위한 영화라고. 그녀의 전남편 아샤야스에 의한.  

 

"잘나갔던 한때 이후, 곧 재기의 날이 오리라 허영 같은 자존심을 부리는 여자가 있다. 그녀가 바로 에밀리.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상처뿐이다. 약물 과용으로 죽은 남편, 그리고 자신과 헤어져 살 수밖에 없게 된 아들. 약물 소지 혐의로 실형을 언도받고 아이마저 시부모에게 뺏겨 버린 에밀리에게 일상은 고통이다. 마약의 습관과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는 고통, 사랑했던 남편을 잃은 고통, 그리고 아들을 볼 수 없는 고통. 이 외로운 마음의 감옥에서 에밀리는 아들을 데려올 수 있을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프랑스 런던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는 그녀의 유랑기는 장만위의 유창한 3개 국어 실력과 더불어 묘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멀리 방랑하는 만큼 그녀의 삶은 신산하고 애처롭다. 시아버지 역할을 맡은 닉 놀테의 우려하는 듯 고즈넉한 눈빛 연기 역시 일품이다. 아들을 위해 다 타버린 재와 같은 삶에서 희망을 찾는 여자 에밀리. 타인과 소통하기 힘든 삶의 상처를 지닌 자들에게 아마 <클린>은 속 깊은 상담자와 같은 위안을 줄 법한 영화이다."(★★★★★)

 

나는 영화의 끝에서 닉 놀테와 장만옥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 그리고 장만옥이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 등을 보았다. 비록 불우한 처지에 놓여 있긴 하나 내가 감정이입할 여지가 적은 영화여서 노래가 나오는 장면 빼고는 볼륨도 제로로 해놓고 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장만옥을 매개로 해서 몇 가지 추억을 떠올렸다. 작년 봄과 늦가을에 쓴 모스크바통신들도 새삼 들춰가면서. 먼저 작년 칸느영화제의 수상식장으로 잠시 돌아가본다.   

 

 

 

 

 

  

 

 

 

-지난 토요일에 제57회 칸느영화제가 폐막됐다. 나는 토요일밤 이곳의 심야뉴스를 통해서, 마이클 무어가 그랑프리를 받았다는 소식은 접했지만,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의 수상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TV뉴스를 들을 때는 일단 화면에 비치는 걸 토대로 들리는 단어들을 재구성해보는 것인데,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의 수상에 대한 장황한 소식을 전하면서도 두 번째 상(심사위원상)을 받은 감독과 영화에 대해서는 단 한 장면도 할애되지 않았고,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화면에 장만옥(메이 첸)의 모습이 잡히길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지 않았나 짐작해본 정도가 뉴스를 통해서 내가 받은 인상의 전부였다(수상소감을 말하는 장만옥이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있는 장만옥만 카메라에 잡았기 때문이다. 메이 첸이 장만옥의 이명(異名)이란 걸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이번주 월요일자 신문을 보면서이다).

 

-일요일 저녁에 사업을 하는 친구와 몇 주만에 만나서 같이 산책을 하고 맥주를 마셨다. 산책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인데, 그건 친교를 나누기 위해서 가장 흔하게 쓰는 회화표현이 같이 차 마실래요?같이 산책할래요?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도심에 나무와 숲, 공원이 많기 때문에 산책을 즐길 만한 여건도 된다. 우리처럼 매연을 마시면서 산책하는 게 아니란 얘기다. 대로에서 몇 걸음만 옆길로 새면, 바로 숲속이고 새들이 지저귀는 자연의 품이다. 물론 비가 오는 날 산책하는 건(영화제목대로, 우중산책!) 권할 만하지 않지만.

 

-비가 흩뿌리지 않아도 잔뜩 흐린 날씨였다. 그가 사는 아파트에서 출발하여 가까이에 있는 작은 호수(어느 정도 크기의 못이면 호수로 쳐주는지 모르겠지만)를 한 바퀴 돌아서 도로변을 걷다가 숲길로 빠졌다. 그가 자주 애용하는 산책 코스라고 하는데, 저녁에 혼자 돌아다닐 때는 골프채를 들고 간다고(혹 다섯 명이 시비를 걸어와도 문제없다고 한다!). 호수를 한 바퀴 돈 건 가끔 그곳에서 낚시를 즐기는 북한 외교관들을 볼 수 있다고 해서였다. 북한대사관 건물은 바로 호수 건너편에 있었는데, 이날은 흐린 날씨 탓인지(외교관들이 바쁠 일은 없을 것이기에) 북녘 사람들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다른 유학생의 말에 의하면, 크레믈린 광장에서도 가끔 북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한번은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걸었더니 황급히 자리를 피하더라고. 덧붙여, 이곳의 북한대사관 직원들이 근래에 차를 새 걸로 다 바꿨다고 한다.

 

-숲길을 20분쯤 더 걸어가니까 바로 엠게우(모스크바대학) 정문 앞 광장과 연결되었다. 알고보니, 이전에 한 유학생이 한번 가보라던 산책로를 거꾸로 걸어온 셈이었다. 바로 앞이 참새언덕. 사전을 보면, 참새언덕은 엠게우가 위치하고 있는 레닌언덕의 옛 지명(地名)이다. 그렇다면 그 지명이 레닌언덕으로 완전히 대체되지는 않은 셈인데, 마치 러시아 혁명미완의 기획으로 남은 것과 상관적인,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레닌은 끝내 이 언덕에서 참새들을 다 쫓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남은 건 일종의 타협인데, 대로(大路)레닌이 차지하고 전망은 참새가 차지하는 식. 우편물의 주소엔 레닌언덕이라고 쓰지만, 전철역 이름은 또 참새언덕이다. 해서, 혁명은 혁명이고, 참새는 참새이다(유구한 참새들의 일상이여!).

 

-이전에 소개한 바대로, 참새언덕은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고, 그런 만큼 가장 좋은 전망을 제공하는 장소이다. 그래서 맑은 날이면 사람들이 북적대지만, 이날은 흐린 날씨 탓인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지는 않았다. 나는 친구가 안내하는 대로, 야외 레스토랑에서 러시아산 생맥주 두 잔과 러시아식 고치구이인 샤슬릭을 안주로 먹었다. 나중에 계산하는 걸 보니, 샤슬릭 한 접시에 250루블, 즉 만원이었다. 사업하는 친구도 굉장히 비싸다면서, 가격을 한번 더 확인했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전망도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칸느영화제 소식을 아느냐고 물으니까(친구는 낮에 사무실에 들렀다가 오던 길이었다), <올드보이>가 심사위원상을 받아서 한국은 난리란 얘기를 했다(왜 아니겠는가?). 타란티노가 좋은 일 한번 한 셈인데, 사실 (타란티노의 취향을 고려한) <올드보이>의 수상가능성은 (한국에서야 더 잘 알겠지만) 이미 외국 언론쪽에서도 점쳐온 것이었다. <이즈베스찌야>의 영화제 취재기자이자 영화담당 기자인 마리야 쿱쉬노바에 의하면, 영화제 중간에 타란티노가 <올드보이>를 밀고 있다는 소식을 이미 <버라이어티>지가 보도했고, 쿱시노바 역시 <올드보이>가 빈손으로 돌아가진 않을 거라고 예견했었다.

 

-그밖에 영화계쪽은 잘 모르는 친구가 전해준 소식은 일본의 14세 배우가 최연소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게 전부였다(나중에 신문을 보고 안 이름은 이유라 야기라인데, 러시아식 표기라 우리와는 다를 수 있다). 홍콩 여배우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느냐고 물으니까, 그건 아니라고 했는데(아마 장만옥을 모르든가, 메이 첸을 모르든가), 그건 그럴 만했다. 알고 보니까 프랑스 영화에 출연한 걸로 수상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장만옥은 이전에도 프랑스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다. <이마베프> 같은. 어쨌든 홍콩영화의 디바 한 명이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은 축하할 일이다(문득 든 생각이지만, 장만옥은 관금붕의 <완령옥>으로도 어디서 주연상을 받았는데, 그게 국내영화제였는지 국제영화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번이 최초 수상이라면, 좀 늦은 감도 없지 않지만...

 

Irma Vep Demonlover (Unrated Director's Cut)  

<이마베프>(1996)는 <클린> 이전에 국내에 유일하게 비디오로 소개됐던 영화인데, 아샤야스가 찍은 영화라는 걸 나는 나중에 알았다. 영화는 장만옥이 주연을 맡았었는데, 감독과 주연배우로 만났던 두 사람은 이후 결혼에까지 골인하지만 3년 후에 다시 헤어진다고. 즉, <클린>(2004)는 헤어진 전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뒤늦게) 찍은 영화이다. 그 사이에 아샤야스가 내놓은 영화가 <데몬러버>(2002)인데, 나는 작년 겨울인가 모스크바에서 TV로 이 영화를 보았다. '산업스파이에 관한 사이버스릴러'인데, 씨네21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데몬러버>는 일본 성인 아니메의 세계배급권을 협상하는 프랑스 다국적 기업의 여성 간부가 거대 인터넷 기업의 사주를 받아 스파이활동을 하며 야심을 키우다가 온라인 SM클럽의 노예로 전락한다는 이야기"인데, "관객과 평론가들은 <데몬러버>의 형식적 '자폭'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영화가 포르노적 이미지를 비판하는 것인지 탐닉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김혜리 기자)

 

 

 

 

  

  

 

 

나 또한 내가 유일하게 본 아사야스의 영화를 불쾌하게(더불어 정신없게) 보았기에 그에 대한 인상이 그닥 좋지 않았다. 해서, 가스파르 노에나 프랑수아 오종, 아샤야스 등이 프랑스 영화의 '장래'라면 참 암담하다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재치나 파격만으로 영화의 장래를 짊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여하튼 장만옥에 대한 생각은 그녀가 나온 영화들을 꼽아보는 순서로 이어졌는데, 내가 본 최초의 영화는 주윤발과 공연한 <로즈>(1984)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유금세월>(1988) 같은 게 조금이라도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이다(모두 극장에서 봤다). 미인대회 출신으로 기억되는데, 글래머라는 것 말고 별로 인상에 남지 않았었다.

   

 

 

 

 

 

 

 

 

    

그러다 장만옥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순전히 왕가위 <아비정전>(1990) 덕분이다. 아주 오래 전 대학가에서 하숙할 때, 가끔 비디오가게에서 아예 비디오와 함께 테이프 5개를 빌려다가 밤새 보곤 했는데(보다가 지쳐 떨어질 때까지), 어느 날 빌린 5개의 테이프 중 하나가 <아비정전>이었고, 나는 이 영화를 그 자리에서 연거푸 봤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봤고, 지금은 테이프를 아예 가지고 있다(그때 이후로 물론 왕가위의 모든 영화이다!). 왕가위의 데뷔작 <열혈남아>(1988)와 관금붕의 <완령옥>(1991)은 그 이후에 본 걸로 기억된다.

 

 

장만옥의 베스트로 많은 이들이 꼽을 만한 영화는 역시나 왕가위의 <화양연화>(2000)이겠지만, 개인적으론 홍콩영화의 또다른 디바 임청하와 공동으로 주연한 영화를 나는 좋아한다(임청하에게 장만옥만큼 좋은 영화운이 따르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왕가위의 <동사서독>(1994)이 그것이다(그런 영화로 서극의 <신용문객잔>도 있다. 두 여우 주연의 연기 대결만으로도 볼 만한 영화). 이 영화에는 물론 장국영이 주연으로 나오며(<아비정전> 이후의 해후인가?) 다른 조연들도 모두 홍콩영화 최강의 배우들이다. 그렇게 1990년대 전반기가 (주로 왕가위의 영화들에서) 장만옥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적어도 내가 경탄하는 이미지와 연기의 장만옥은 그때 그 시절의 장만옥이다.

 

언젠가 나는 <동사서독>이 개봉하던 날 혼자 을지로 3가의 명보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그 길로 종로로 가 명보아트홀에서 연이어 같은 영화를 또 본 기억이 있다. 아마도 겨울이었던 것 같은 그날 저녁 을지로에서 종로까지 걸어가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혼자였지만 적어도 그런 날만큼은 덜 행복하지 않았다. 이후에 이 영화를 나는 비디오로도 소장하게 됐다. 하지만, 집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다(이 영화는 집안에서 보는 영화로 적절하지 않다. '집밖'에서 봐야한다). 한번 사그러진 시간의 재(Ashes of Time)는 다시 쓸어담을 수 없다. 우리에게 남은 건 일상일 뿐. 마약의 습관과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는 고통, 사랑했던 남편을 잃은 고통, 그리고 아들을 볼 수 없는 고통. 이 외로운 마음의 감옥에서 아들을 데려올 수 있을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에밀리처럼.

 

 

 

05. 11. 21.

 

P.S. <동사서독>에 나오는 장만옥의 가장 아름다운/처연한 대사: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 나는 혼자였어요..."

 

P.S.2. 장만옥 대사의 풀버전은 이렇다: "전엔 사랑이란 말을 중시해서 말로 해야만 영원한 줄 알았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하든 안 하든 차이가 없어요. 사랑 역시 변하니까요. 난 이겼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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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5-11-21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만옥과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
로쟈님, 천식 정말 조심하셔야 하는데.
집안에 약간의 내력이 있어서 잘 아는데, 별 것 아닌것 같지만
그게 사실은 사람 잡는 병이예요.
그런 주제에도 저는 잘도 담배를 피워대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건강 조심하세요.

로쟈 2005-11-21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은 좋은 약들이 나와 있는데, 주말에 약이 떨어져서 하루 고생했던 것뿐입니다(그러니 염려 놓으시길). 그리고, 금연하세요!..

하이드 2005-11-2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린' 보며, 장만옥이 정말 부럽더군요. 불어와 중국어와 영어를 원어민처럼 자유롭게 하고, 노래하고, 연기하고, 예전에는 좀 식상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전 임청하팬이었습니다.^^) 클린에서의 모습을 보니, 아시아배우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멋지게 나이들어가는 배우가 아닌가 싶더군요. 클린, 마지막 장면이 정말 찡한 영화였어요.

로쟈 2005-11-2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유일하게'?!(비교대상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데뷔 20년쯤 되는 장만옥의 나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우리 나이로 42살이니까. 마돈나보다 6살이 적은. 그리고 임청하보다는 10살이 적은!..

이리스 2005-11-2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로 캔맥주 마시며 이 글을 보는 지금, 아.. 간절히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ㅠ.ㅜ

로쟈 2005-11-2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 문턱에도 캔맥주를 즐기시나 보군요. 좀 춥지 않으세요?^^

이리스 2005-11-2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헷..집은 더운편이라서욤. ^^

하이드 2005-11-22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 아시아계 배우중에서 사실, 40대에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아시아 배우 장만옥 말고는 떠오르지가 않네요. 임청하.. 가 52! 살이라구요. (그녀의 마지막 영화를 본게...)
 

 

 

 

 

 

  

 

 

한 지인의 블로그에 갔다가 어제 열렸던 한국과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축구 경기를 빌미로 발칸의 나라 (구)유고에 대해 떠올리고 있는 글을 읽었다. 과거 걸출한 공산주의자였던 티토에 의해 스탈린식 사회주의와는 다른 '제3의 길'을 진작에 모색하기도 했던 유고 연방은 1989년부터 몰아친 동구권 사회주의의 연쇄적인 몰락과 함께 해체되어 현재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으로 분할돼 있다. 그간에 축구강국으로 이름을 떨치던 나라는 크로아티아였지만, 알다시피 내년 독일 월드컵에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가 출전하며 어제 우리 국가대표팀과 평가전을 가진 것.

 

Do You Remember Dolly Bell?When Father Was Away on Business

 

지난 90년대 초반 민족간/종교간 갈등 문제로 불거진 보스니아 내전으로 언론에서 자주 접하기도 했던 나라이고 지역이지만, 유고란 이름을 내게 처음 각인시켜준 이는 영화감독 에미르 쿠스투리차(1954- )이다('에밀 쿠스트리차'로 처음 소개되었었다). 기억에 88년쯤에 종로의 피카디리 극장에서 <아빠는 출장중>을 보았고 단번에 쿠스투리차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것(영화의 끝장면에 유고 대표팀의 축구 경기가 TV로 중계되는 장면이 나온다).

 

Time of the GypsiesArizona DreamUnderground

 

그는 작년까지 25년 동안 7편의 장편영화를 찍었는데, 기억을 더듬어 차례로 나열하면, <돌리 벨을 아십니까?>, <아빠는 출장중>, <집시의 시간>, <아리조나 드림>, <언더그라운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삶은 기적이다> 등이다. 이 중 맨처음 영화와 마지막 영화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고, <아리조나 드림>은 수입됐지만 내내 창고에 있다는 얘기를 들은 듯하다(이기팝의 주제가만이 드라마 등에서 자주 흘러나왔다).

 

Crna Macka, Beli Macor (Black Cat, White Cat) - PAL DVDZivot Je Cudo (Life Is a Miracle) - PAL DVD (Official Russian release)

 

알라딘에 이미지가 없어서 영화의 타이틀 이미지들은 아마존에서 따왔는데, 마지막의 <검은 고양이, 흰고양이>와 <삶은 기적이다> 두 이미지는 러시아판의 것이다.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를 나는 몇년 전에 동숭아트홀에서 봤었고, 국내에서 아직 개봉되지 않은 영화 <삶은 기적이다>는 작년 연말에 모스크바에서 비디오CD를 구해서 봤다(영화는 작년 칸느영화제 출품작이었고, 모스크바에도 일찍 소개됐다). 그때 쓴 모스크바 통신의 내용을 잠시 옮겨온다.

 

삶은 기적이다

 

-‘Life is a miracle은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최근작 <삶은 기적이다>(2004, 155)의 영어/공식 제목이다(러시아어 제목을 영어로 옮기면, Life as a miracle). 이 영화는 지난 봄에 칸느영화제에 출품됐었고(내 기억에, 쿠스투리차는 <아빠는 출장중> <언더그라운드>로 칸느에서 두 차례 작품상을 받았으며, <집시의 시간>으로 감독상을 받은 바 있다. 이 신작의 돈줄도 프랑스이다), 지난 6월에 모스크바 영화제에 초청되었고(이 영화제에서 그는 공로상을 받았다) 이어서 8월에 공식 개봉되었다. 나는 최근에 비디오CD로 출시된 걸 사서 봤다(영화관람료의 1/2로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출시되기를 기다렸었다).

 

 

-감독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보스니아 전쟁의 패러독스와 부조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 영화는 에미르 쿠스투리차 종합선물세트 같다(*발칸의 운명을 다룬 영화들로 <언더그라운드>와 함께 꼭 비교해서 보아야 할 영화들은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율리시즈의 시선>과 밀코 만체브스키의 <비포 더 레인>이다). 나는 그의 영화 <아빠는 출장중>을 오래 전 피카디리극장에서 처음 보고서 한 방 얻어맞았고(그날 밤의 종로 3가를 아직 기억한다. 나는 비틀거리며 하숙방에 돌아오자 마자 혼수상태에 빠졌었다), <집시의 시간>을 개봉되기도 전에 조야할 필름으로 여러 번 보면서 넉다운됐었다. 그는 영화는 기적이란 걸 내게 보여주었다.

 

 

-<집시의 시간> 이후의 그의 영화들은 더 이상 나를 놀라게 하지는 않는다(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거기엔 낯선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친숙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나는 그의 데뷔작 <돌리 벨을 아십니까?>와 미국에서 찍은 <아리조나 드림>을 보지 못했다. 그 영화의 주제가가 이기 팝의 노래이다. 나중에 국내의 드라마 주제가로도 쓰인). 모스크바에 곧잘 들르는 그가 지난 17일에는 자신이 조직한 밴드 를 이끌고 와서 연주공연을 했는데(영화감독들 중 열렬한 밴드부원들이 몇 있는데, 쿠스투리차와 함께 우디 알렌, 짐 자무시, 아키 카우리스마키 등이 내가 아는 사례들이다), 이를 계기로 언론에 게재된 인터뷰를 보고서 나는 이 친숙한 세계에 대해서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세계, 혹은 집시의 시간을 그는 중세적 세계라고 불렀다(물론 자신에 영화에 등장하는 집시들은 언제나 은유라고 그는 <아피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리고 인터뷰어가 밝히는 바에 따르면, 세르비아에 다녀온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쿠스투리차가 낭만주의자가 아니라 리얼리스트라고 말한단다. 쿠스투리차의 영화세계가 (지나치게)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르비아에 한번 가볼 일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포스트모던을 새로운 중세라고 불렀지만, 쿠스투리차에게 있어서 이 둘은 서로 대조/대립된다. 하지만, 에코와 쿠스투리차의 중세가 동일한 외연을 갖는 건 아니므로 이러한 의견차이는 수긍할 만하다. , 이탈리아 사람 에코의 중세가 중심부 중세라고 한다면, 세르비아(구 유고) 사람 쿠스투리차의 중세는 주변부 중세이기 때문이다(역사상 집시들이 중심부에 있었던 적은 없지 않은가). 하여간에 쿠스투리차에게 2004년은 아주 뜻 깊은 한 해였는데, 그건 그의 신작 영화 때문이 아니라 그의 도시 때문이다. 도시라고는 부르지만 우리식 명칭으론 마을이라고 해야 할 텐데(우리로 치면 민속촌 같은 집시촌이다. 한번에 50여명 정도가 거주할 수 있다고 하니까), 그는 실제로 영화 <삶은 기적이다>의 배경으로 나오는 이 마을을 직접 건설하여 자신의 소유로 갖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는 그 마을의 시장이자 촌장이다(그가 꿈꾸는 마을은 초기 기독교 수도원이나 히피공동체이다).

 

-쿠스투리차의 그 중세적 마을은 베오그라드로부터 200킬로쯤 떨어져 있으며, 여관/호텔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관광객(구경꾼들) 사절이다. 쿠스투리차는 자신의 말마따나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지만, 자선(自選) 시장으로서 자신의 시민들을 직접 뽑아서 살게 할 계획인데, 주로 영화나 미술, 문학 등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2달 정도씩 (집시적으로 혹은 히피적으로) 함께 살면서, 전통 제련술부터 개념주의(예술사조로서의 개념주의를 말한다)까지 배우면서, 한마디로 Culture and agriculture하면서, 연구와 세미나, 잔치(축제) 같은 걸 벌이게 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도시/마을의 이름이 어떻게 정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쿠스투리차란 이름은 한 거장의 이름이면서 이젠 한 지명(地名)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쿠스투리차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요?(*구글 어스에서 찾을 수 있을까?)

 

Unza Unza Time

 

 -쿠스투리차가 베이스 기타를 맡고 있는 집시 테크노 밴드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의 지난번 모스크바 방문은 유럽 투어의 일환이었는데, 이들의 새 앨범이 바로 <삶은 기적이다>의 사운드트랙이었고, 이 앨범 출시를 계기로 이루어진 투어의 타이틀은 삶은 그냥 여행(투어)이 아니라 기적이다였다. 그런 걸 말하기 위한 투어였으니까 이들의 투어는 수행적 혹은 화용론적 모순의 일례라 할 만하다. 인생은 여행길이고 나그네길이고 소풍길이란 얘기들을 하지만, 나는 그러한 태도의 이면이 기적으로서의 삶에 대한 회피가 아닌가 싶다. 누가 여행을 하는가? 자신의 삶을 기적으로 만들기/연출하기가 두려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의 기적과 남들의 기적을 구경하러 다닌다. 그리고 그런 기적들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남들의 기적이 자신에게 옮기를 바라는 듯이.

 

 

 

 

 

 

 

 

  

 

-세르비아인으로서 쿠스투리차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이보 안드리치이다. <드리나강의 다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유고 작가(안드리치의 허름한 작품집을 헌책방에서 봤지만 사지는 않았다). <도서평론>이란 저널에서 한 해를 결산하는 설문들을 명사(名士)들에게 돌렸는데, 그가 거기에 답한 내용이다. 연말이고, 이미 이달 초부터 발행년도가 2005년이라고 찍힌 책들이 나오고 있다. 내게 2005년이 갖는 의미는 다른 것이 아니다. 2005년의 책들이 나온다는 것. 이미 나온 2005년의 책들 가운데는 타르코프스키에 관한 책도 있고, 라캉 노트 포켓북 시리즈로 지젝과 류블랴나 학파의 책들도 있다. 지젝의 것은 <상호수동성>이란 제목으로, 돌라르와 보조비치, 주판치치 글을 묶은 책은 <사랑이야기>란 제목으로 나왔다(*주판치치의 글은 얼마전에 번역서가 나온 <정오의 그림자>에 부록 '희극으로서의 사랑에 대하여'이다)...

 

 

 

 

 

  

  

 

 

그랬던 게 작년말이니까 어느새 일년이 지나고 있다(곧 2006년의 책들이 나온다!).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강의 다리>는 (무거운) 러시아어본을 구해왔었고, 지금은 친구에게 빌린 국역본과 함께 내 서가에 누워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들처럼(로쟈 왕자는 내내 일없이 출장중이다). 안드리치에 이어서 내가 떠올리는 이름이 슬라보예 지젝인데, 그는 과거 유고연방을 구성했던 슬로베니아가 낳은 최고의 스타 지식인이다. 슬로베니아 사람 지젝이 세르비아 사람 쿠스투리차에 대해 비판의 메스를 가하고 있는 대목이 <환상의 돌림병>(인간사랑, 2002)의 한 절 '인공청소의 시'이다(123-130쪽; 'The Plague of Fantasies', 60-64쪽). 이에 대한 정리는 물론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가능하다...

 

05. 11. 17.

 

P.S. 쿠스트리차와 자주 같이 작업을 하고 있는 고란 브레고비치의 집시밴드도 내한 공연을 했던 듯한데,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의 음반이 국내엔 나와 있지 않은 것인가? 음악을 같이 올려놓지 못해 약간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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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5-11-17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평소에 월드뮤직...이랄 것까지는 없고, 중남미를 중심으로 세계 여러 곳의 음악을 듣는 걸 즐기는데, 로쟈님 글 보고 찾아보니 MP3가 몇 개 있더군요.
찾아서 구해놓기만 하고 듣지 않은 음악 파일이 몇 십 GB 단위까지 올라가는 마당에, 이렇게 기억을 되돌이켜 주시니 감사하네요.
"Bulgarian Dance"란 곡인데, 방문객 여러분도 한 번 들어보시죠? ^^

로쟈 2005-11-18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까지 서비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은 (취향이 좀 촌스러워서) 어코디언이 많이 들어간 쪽입니다. 피아노 소리보다 어코디언 소리를 더 맘에 들어하는 걸 보면 전생에 집시였는지도...

불한당들의 모험 2005-11-18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 소리도 좋지만,아코디언도 좋아요,집시까진아니지만멜로트론같은구닥음도 좋답니다.간만에 들으니 아싸!흥~이.삶은기적ost는 1년이 지났는데도못구해서Unza Unza Time으로 위로를 삼고 있죠.작년인생은기적을봤었는데,이글보면서또즐거운되새김질하고있습니다.쿠스트리차마을얘긴신기하면서재밌는소식이었요.

2005-11-18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5-11-1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험님/ '신기하면서재밌는 소식'이셨다니 저도 신납니다. 밥먹으러 가야겠습니다.^^

jiwok 2005-12-2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십니까? 로쟈님.
저는 2차대전 러시아 사회에 대해 관심이 있는 회사원 입니다. 실례되는 것은 알지만 마땅한 자료를 구하지 못해서요. 궁금한 것은 한국에 번역된 서적 중 1940년대 독-소 전쟁 시기에 대한 경험담/개인적인 회고록/소설/ 역사서 등이 있는지요? "여기 들어오는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와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은 읽었습니다만 자주 인용되는 서적 중에 Vasilli grossman의 "Life & Fate"가 있던데 매우 궁금했습니다만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vandal 2006-01-26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밀 쿠스트리차의 아빠는 출장중 볼수없나요?? DVD도 품절이고 갖고 계신분 있으면 공유해서보면 안될까요??? 이작품아니고도 다른작품도 괜찮습니다. 구하기가 힘드네요.....
부탁합니다.^^
 

 

 

 

 

'토성의 영향 아래(Under the Sign of Saturn)'는 작년말에 세상을 뜬 수잔 손택(1933-2004)의 신간 <우울한 열정>(시울, 2005)의 원제이면서 책에 실린 '발터 벤야민'론의 제목이기도 하다. 소설가이자 비평가이기도 한 이 전방위 지식인이 특히 빛을 발하는 것은 에세이들을 통해서인데(에세이의 한 전범을 보여준다), <토성의 영향 아래>(1980)는 <해석에 반대한다>(1966)와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1969)에 뒤이은 세번째 에세이집으로서 1972년부터 1980년까지, 그러니까 40대 중년의 손택이 쓴 에세이 7편을 묶은 책이다. 그녀는 이러한 에세이 30쪽짜리를 쓰기 위해 (믿거나 말거나) 수천 페이지를 쓴다고 하는데, 그 '열정'이 경이롭다(동시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우울한 열정>의 속표지에는 근간예정으로 손택의 또다른 에세이집과 소설들도 거명돼 있는 걸로 보아 이대로라면 조만간 '손택 전집'이라도 갖추어질 듯하다. 나는 그녀의 다른 책들을 현재는 품절된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을 제외하곤 모두 갖고 있다. 하니 나름대로 손택을 읽을 준비는 돼 있는 셈인데,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읽은 몇 편의 에세이들보다 이번 <우울한 열정>에 실려 있는 에세이들이(아직 다 읽지 않았지만) 더 편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거꾸로 읽어나가야 할 모양이다.   

책을 열면, 처음에 '조지프 브로드스키에게'란 헌사가 나온다. 두 페이지 뒤에 가서 브로드스키에 대한 역주가 나오는데, 'Joseph Brodsky'(1940-1996)는 '러시아 태생의 미국망명시인'이다. 그의 이름은 러시아어로 '이오시프 브로드스키'라고 읽으며 국내에도 그렇게 소개돼 있다. 198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러시아에서는 1990년대 이후에 소개되어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러시아 시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된다), 국내에서 브로드스키의 책들이 번역돼 나온 건 물론 그 수상을 계기로 해서이다.

예컨대 <소리없는 노래>(열린책들, 1987), <겨울결혼식>(정음사, 1987), <20세기의 역사>(문학사상사, 1987) 등의 시집과 에세이집 <하나반짜리 방에서>(고려원, 1987), 희곡인 <대리석>(한마당, 1987)까지 앞을 다투듯이 나왔던 것. 역주에서 '하나도 채 못되는(Less than one)'이란 옮겨진 것이 <하나반짜리 방에서>이며 안정효 번역이다(다른 역자에 의해 <하나도 채 못되는>(성원, 1987)이란 번역서도 나왔는데, 실물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안정효의 책과 원저를 갖고 있다). 원저(1986)가 5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인 걸 고려하면 국역본은 발췌역이겠다. 

 

 

 

 

시집이 여러 권 번역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말로 브로드스키를 읽고 감상한다는 건 먹다 남은 가시만 가지고 생선의 맛을 음미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넌센스에 가깝다(브로드스키의 성탄시 한 편에 대해서 나는 '모스크바통신'에서 자세하게 분석한 바 있다). 러시아시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일찍부터 영시에도 조예가 깊었던 브로드스키는 특히 존 던을 애송했었고, 미국 망명 이후에는 로버트 프로스트에 바치는 시들을 쓰기도 했다. 지난 2002년에는 그가 쓴 영시들이 (사후)출간되기도 해지만, 러시아시만큼 평가받는 것은 아니며 그의 본령은 역시나 러시아시이다. 하지만, 에세이스트로서 그의 명성은 언어에 구애받지 않는데, 손택과의 교분은 그런 배경하에서 이루어진 듯하다(브로드스키에 대한 에세이도 손택이 썼음 직하다. 한번 찾아봐야겠다!).  

어쨌거나 생각난 김에 브로드스키의 시 한편을 옮겨놓는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시이며, 노벨상 수상 기사와 함께 언론에 게재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겨울 물고기>. 좀 드문 일이지만, 이 시는 우리말 번역으로도 시가 된다.

겨울 물고기

물고기는 겨울에도 산다.
물고기는 산소를 마신다.
물고기는 겨울에도 헤엄을 친다.
눈으로 얼음장을 헤치며,
저기
더 깊은곳
바다처럼 깊은곳으로.
물고기들
물고기들
물고기들
물고기는 겨울에도 헤엄을 친다.
영원히 같은
물고기 방식으로.
물고기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얼음덩이속에 머리를 기대고
차디찬 물속에서
얼어붙는다.
싸늘한 두눈의
물고기들이
물고기는 언제나 말이없다.
그것은 그들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고기에 대한 시도
물고기처럼
목구멍에 걸려 얼어붙는다. 

아직은 11월이고 '가을 물고기'의 목구멍은 아직 멀쩡하기에 계속 떠들어보기로 한다. 여하튼 손택이 <우울한 열정>을 브로드스키에게 헌정하고 있다는 말씀이고, 엊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나는 책에서 세편의 에세이를 읽었다. '폴 굿맨에 대하여' '토성의 영향 아래' '바르트를 추억하며'. '폴 굿맨'은 손택이 다루고 있는 인물들 가운데 내겐 가장 생소한 이름이었는데(내가 아는 '좋은 사람'은 '넬슨'밖에 없다), 그의 부고를 듣고 쓴 '폴 굿맨에 대하여'(1972)에서 그녀는 그가 자신의 '영웅'이었음을 열정적으로 고백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손택에 따르면, "D. H. 로렌스 이래로 여어를 그만큼 설득력 있고 진실하고 독창적으로 구사한 사람은 없다."(18쪽)

그런 그와 손택은 친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그녀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그를 싫어했다. 이유가 (이해할 만한) 가관인데 "그의 생전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곤 했듯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 그럴 만했던 게 "폴 굿맨은 원래 여자를 인간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나중에 그 자신이 터놓고 고백한 바대로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해서 손택의 사랑은 일방적인 짝사랑일 수밖에 없었던 것. 아무려나 이 에세이를 읽은 독자라면 '폴 굿맨'이란 이름을 쉽게 잊어먹지 못할 것이다.

 

 

 


 

'바르트를 추억하며'(1980)는 풀 굿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르트의 부고를 듣고 쓴 에세이이다. 짤막한 분량이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학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초상을 생생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그리고 바르트 정도라면 내게도 낯설지 않다. 청년시절 병약했던(폐결핵을 앓았다) 바르트가 첫 책을 출간한 것은 37살의 일이니까 우리 기준으로도 좀 늦깎이다. 하지만 "뒤늦게 출발한 뒤에는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많은 책을 썼다." 특별히 손택만의 의견이랄 건 없는데, 하여간에 "그는 무엇에 관해서든지 간에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것 같"은 지식인이었다.

 

 


 

 

젊은시절에 바르트는 지방 극단에서 연기도 하고 연극비평도 했다. 거기서 비롯된지 모르지만, 그의 아이디어들을 극적이었다(His sense of ideas was dramatugical). "프랑스의 지적 무대에 스스로를 올리면서 그는 전통적인 적에 반기를 들었다. 그것은 플로베르가 '기성관념'이라고 불렀고 '부르주아'적 감성이라고도 알려진 것, 마르크스주의자가 허위의식이라는 개념으로, 사르트르 추종자들이 '나쁜 믿음'이라고 맹렬히 비난한 것, 고전 연구로 학위를 받은 바르트는 '최근 의견'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134쪽)

 

 

  


 

플로베르의 '기성관념'(received ideas)은 <통상관념사전>(책세상, 2003)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르주아적 감성'은 부르주아적 멘탈리티를 가리키고 마르크스주의에서의 '허의의식'이란 말 그대로 '이데올로기'를 지칭하겠다. 사르트르의 '나쁜 믿음'은 흔히 '자기 기만'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바르트의 '최근 의견'이란 건 그리스어 'doxa'의 번역으로(예전엔 '억견'이라고 번역했다) 'current opinion'이라고 병기된 걸 참조한 듯하지만 오역에 가깝다. 근거 없는 믿음을 뜻하므로 '통속적인 의견' 정도가 어떨까 싶다. 어쨌든 그러한 '우상들'에 대한 바르트의 공격은 <신화학> 혹은 <현대의 신화>(동문선, 1997)로 묶여나왔다. 

"바르트를 매혹한 것은 정신적 분류학이다"라고 손택은 진단하는데, 구조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초기 바르트의 세계가 특히 그에 해당한다. "그는 문학에 대해 말하는 행위를 통해 문학을 만들어내는, 무책임하고 장난스러운 형식주의자였다"라는 게 손택의 지적이며, 변태적인 것에 면밀한 관심을 가졌던 바르트는 "그것이 해방적이라는 낡은 시각을 갖고 있었다"라고 그녀는 꼬집는다(폴 굿맨과 마찬가지로 바르트 또한 동성애자였으며 "그와 같은 성적 취향과 유명세를 가진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상당한 성적 특권을 누렸다"). 그래도 "그가 쓴 글은 무엇이든 다 재미있다."

두 권 정도가 예외인데, "초기에 쓴 라신에 관한 논쟁적인 책." 흔히 프랑스 문학에서 신구비평 논쟁을 가져온 저작인데, <라신에 관하여>(동문선, 1998)로 국내에는 소개돼 있다. 또 한권은 "보통 책 길이의 패션 광고의 기호학에 관한 책"인데, 우리말로는 <모드의 체계>(동문선, 1998)로 번역돼 있다. "학회 회비를 내기 위해 쓴 것으로 몇 편의 거장다운 에세이를 담고 있다."라고 했는데, '학회회비를 내다'는 'to pay his academic dues'의 번역이다. 그런 관용표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드의 체계>가 바르트가 제출한 박사학위청구논문이었으므로 직역해서 (학위논문심사에는 비용이 듦으로) '학위논문 수수료를 내기 위해 쓴'이라거나 의역해서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정도의 뜻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바르트의 지적 생애에 관심있는 독자에게 궁금한 것 중 하나는 <기호학 요강>과 <모드의 체계> 같은 책을 쓰던 그가 <텍스트의 즐거움>이나 'S/Z'의 저자로 변신한 내막이다. 이에 대한 손택의 해명이 명쾌하다. "바르트의 작업은 극복되거나 부인된 슬픔에 관한 것이다. 바르트는 모든 것을 하나의 체계, 하나의 담론, 하나의 분류체계로 취급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모든 것이 체계이므로,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체계에 싫증을 냈다. 그의 정신은 너무 민첨하고, 야심적이고, 모험에 끌렸기 때문이다."(138쪽, 번역 일부 수정)

체계 이후에 바르트가 선택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고, 그는 자기 자신의 '위대한 작가'가 되었다. 즉, "그는 자기 자신이라는 양떼를 끄는 양치기가 되었다."(139쪽에서 '바르트가 쓴 바르트가 쓴 바르트'란 책명은 '바르트에 대한 바르트에 대한 바르트'라는 '리뷰명'으로 바뀌어야 한다.)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나 <사랑의 단상> 같은 책들은 그 대표적인 목록이다. 1977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뒤늦은 명성을 구가하던 바르트도 남모르는 욕심을 품고 있었으니 그건 그가 흠모하던 프루스트 같은(그는 프루스트를 자신의 '수프'라고 말했었다) '진짜 소설'을 써보고 싶어했다는 것. 그러나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불의의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면 혹시 모를 일이다.

 

언제나 텍스트의 즐거움을 만끽할 줄 알았던 바르트는 '정신적 방탕자'이자 '위대한 화해자'였다. 해서 "그는 비극적인 것에 대해서는 별 감정이 없었다. 그는 늘 불리한 상태에서 유리한 점을 찾았다. 현대 문화비평가들의 고정 주제 중 여럿을 그도 다루지만 종말론적인 관념은 거의 없었다... 그는 극도로 정중하고, 약간 탈세속적이고, 쾌활했다. 그는... 언제나 슬픈 빛을 띤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 쾌락에 관한 그의 말 전체에 무언가 슬픔이 있다... 그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며 그의 쓰지 못한 책의 목적은, 삶을 찬미하고,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141-2쪽) 그의 '쓰지 못한 책'이란 그가 쓰려고 했던 '소설'을 말한다.

 

 

대략 이런 것이 생전에 "아, 수전, 언제나 충실한 친구(Ah, Suzan. Toujours fidele.)"라고 만날 때면 그녀를 호칭했다는 바르트에게 끝까지 충실하게 남은 손택의 스케치이다. 그리고 이만한 분량으로 바르트에 대한 이보다 더 예리하면서도 정감있는 스케치를 그려낼 수 있는 이는 따로 없을 듯하다. 그런 손택과 바르트가 만나는 또다른 지점은 바로 '사진'이고 국내에서 출간된 <사진론>(현대미학사, 1994)는 두 사람의 사진론을 묶어놓은 적이 있다(번역은 신뢰할 수 없지만). 각각 따로 읽어야 할 책은 물론 <카메라 루시다>(열화당, 1998)과 <사진에 관하여>(시울, 2005)이다(*<카메라 루시다>는 <밝은 방>으로 재번역돼 나왔다).

 

 

 

 

 


 

 

 

05. 11. 15.

P.S. 분량상 벤야민론, 즉 '토성의 영향 아래'는 다른 자리에서 정리하기로 한다. 한편, 얼마전 '북데일리'란 저널에 <우울한 열정>에 관한 리뷰 기사가 실렸는데(다시 확인해보니 '얼마전'이 아니라 '오늘자' 리뷰이다), '독일 지성 벤야민이 독일어를 몰랐다?"란 제목을 달고 있다. 전반부의 내용은 이렇다.

 

지난해 12월 백혈병으로 타계한 ‘행동하는 지성’ 수전 손택(1933~2004)이 7명의 예술가에 대한 평전 <우울한 열정>(시울. 2005)을 통해 독일 유태계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왕성한 독서가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실천하는 사회운동가, 에세이스트, 소설가, 극작가, 예술평론가였던 그녀는 발터 벤야민에 대해 “그가 쓴 글은 무엇이든 다 재미있다. 쾌활하고, 빠르고, 조밀하고, 날카롭다”고 말하고 “그는 꼼꼼한 독서가였지만 왕성한 독서가는 아니었다”는 독특한 해석을 내린다. 이런 판단은 벤야민이 읽은 내용에 대해서는 대부분 자신의 글 소재로 삼거나 평론을 썼기 때문에, 쓰지 않은 것은 읽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에 근거한다.  

 

수전 손택은 “벤야민이 외국어를 몰랐고, 외국 문학은 번역된 것도 거의 읽지 않았다”고도 말한다. 독서를 하느라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독서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던 사람은 아니며, 오히려 유명세를 즐겼다는 수전 손택의 평가는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극도로 정중하고, 약간 탈세속적이고, 쾌활했다. 그는 폭력을 혐오했다. 언제나 슬픈 빛을 띤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 쾌락에 관한 그의 말 전체에 무언가 슬픔이 있다”

 

짐작하겠지만, 인용문에서 주어 '벤야민'은 전부 '바르트'로 바뀌어야 한다. 무얼 읽고 쓴 리뷰인지는 모르겠지만, 엉뚱한 내용을 받아적은 듯하다. 독일 사람인데다가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벤야민이 독일어를 몰랐다?" 이런 턱도 없는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도 서평지 기자의 목이 아직 붙어 있는 건지, 나로선 그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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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6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5-11-1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브로드스키의 시집들을 저는 다 갖고 있었는데, 역시나 번역본의 한계를 넘어서기가 힘들더군요. 이장욱의 <혁명과 모더니즘>에 한 장이 브로드스키의 시세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도 여건만 되면 동참하고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