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입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탈리아문학기행에 견주면 로마 입성을 눈앞에 둔 것과 같다. 영국 시간으로는 저녁 7시가 넘었는데 런던 초입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3일간 묵을 숙소로 이동하면 오늘의 일정이 마무리된다.

어제 셰익스피어에 이어서 오늘의 주제는 제인 오스틴이었다. 오스틴과 관련해서 더 중요한 장소는 생의 마지막 8년을 보내면서 주요작들을 개고하고 집필한 남쪽의 초턴이지만(그곳에 제인 오스틴 박물관이 있다) <노생거 사원><설득> 등의 소설에 나오는 바스를 목적지로 정했다. 바스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관광지이면서 제인 오스틴 센터도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스로 가는 중에는 중세 건축양식이 잘 보존된 마을 캐슬콤에 들렀는데 매우 아름다운 시골마을이었다. 중심부의 저택은 현재 호텔로 쓰이고 있었다.

바스에서 점심을 먹은 후의 주요 일정은 바스의 명소인 로열 크레슨트(초승달 모양의 대저택)와 로만 바스(로마시대에 지어진 온천목욕탕이자 종교시설)를 둘러보는 데 할애되었다. 작가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전시품이 빈약하다는 사전정보에 따라 바스의 오스틴센터 앞에서는 사진만 찍었다. 물론 바스의 명소를 둘러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바스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 오스틴 소설에서 바스는 온천 휴양지이면서 사교의 공간이다. 그리고 시골과 도시(런던)을 매개해주는 중간지역이기도 하다. 실제로 바스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큰 도시였다.

이제 런던에 들어선 듯싶다. 저녁은 8시쯤에 먹게 될 듯하다. 바야흐로 영국문학기행도 막바지, 런던에서의 일정만을 남겨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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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정은 온전히 셰익스피어에 할애되었다. 그의 고향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생가와 거주했던 집, 와과의였던 맏사위의 집, 무덤이 있는 트리니티성당, 그리고 아내 앤 해서웨이의 생가를 차례로 찾았다. 이미 길잡이 책으로 황광수의 <셰익스피어>(아르테)를 읽은 터라 낯선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현지에 있다는 실감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비가 흩뿌리는 흐린 날씨여서 렌즈를 닦아놓은 듯 모든 것이 더 깨끗하고 명료하게 보였다.

스트랫퍼드는 생각보다 큰 마을이었다(지방도시라고 해야할 듯). 가령 헤세에 대한 기억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은 독일의 작은 마을 칼브처럼 셰익스피어로 ‘도배‘돼 있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그에 비하면 셰익스피어는 마을의 자연스런 일부처럼 보였다. 그 당시 튜더양식의 집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어서 셰익스피어의 생가나 뉴플레이스(그의 집)가 돌출돼 보이지 않았다.

현장방문 덕분에 셰익스피어의 연보를 새로 환기하게 되었다. 모호한 가운데서 신고기록으로만 남아있는 그의 자취를 실물들이 증언해주고 있어서다. 생가에 있는 침대(유언에 적힌 ‘두번째로 좋은 침대‘)와 당시 두번째로 큰 집이었다는 뉴플레스를 구입한 33살의 셰익스피어의 모습이 그려졌다(그는 바로 전해에 아들 햄닛을 잃는다). 당시로서는 상당한 재력이었다(구입에 6년치 교사 연봉의 비용이 들었다고).

은퇴후에 다시 내려온 집에서 맏사위와 돈독하게 지내는 모습도 인간 셰익스피어의 잘 알려지지 않은 대목이다. 죽기 직전에 둘째사위가 불륜으로 아이를 갖게 되자 부랴부랴 유언장을 고쳐적었다는데(둘째 내외한테는 유산을 남기지 않았다), 이미 셰익스피어 자신이 몸져누운 상태였다. 그는 1616년 4월 23일에 세상을 떠난다. 단순계산으로 52세의 나이였다.

그렇지만 진정한 셰익스피어의 신화가 시작되는 것은 사후 그의 지인들에 의해 1623년 첫 전집이 출간되면서부터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만나는 셰익스피어와 스트랫퍼드 출신의 ‘글쟁이‘ 셰익스피어 간에는 간극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강의에서는 강조했다. 평범한 셰익스피어와 비범한 셰익스피어. 이 간극이 근대 영국문학의 원점이면서 세계문학의 출발점이다. 인간을 발명해낸 작가가 바로 셰익스피어이기에.

스트랫퍼드에까지 들고온 책은 <셰익스피어> 외에도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까치)와 <셰익스피어 소네트>(민음사)가 더 있는데, 당연히 조금 들춰보려는 의도였지만 숙소로 들어서자 곧바로 잠이 들고 말았다(빌 브라이슨의 책은 이곳에서도 기본서였다). 서서히 여독이 쌓이는 모양이다. 현재 머무는 곳은 옥스퍼드인데 아침식사를 마치면 제인 오스틴 투어를 위해 바스로 이동할 예정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종착지 런던에 드디어 입성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런던, 찰스 디킨스의 런던,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런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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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10-0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런던이라는 문학의 보고를 앞두고 여독에 쓰러지시면 안되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면서 하세요.

로쟈 2019-10-01 22:24   좋아요 0 | URL
남은 일정이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리버풀을 떠나서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로 이동중이다. 2시간반이 소요될 예정. 중간에 휴게소에서 한 차례 쉬어갈 예정이다. 점심과 오후를 셰익스피어 투어로 진행한 다음에 옥스퍼드로 이동하는 게 오늘 일정이다. 스트랫퍼드에는 비가 예보되어 있지만 가는 길의 날씨는 화창하다. 흰구름만 많이 낀 날씨.

스트랫퍼드는 셰익스피어의 명성 덕분에 관광지가 되었지만 사실 셰익스피어의 전기가 그의 작품을 읽는 데 얼마만큼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작가의 전기와 작품의 관계에 관한 원론적인 문제를 제쳐놓더라도 셰익스피어는 난점을 갖고 있는데 일단 불확실한 부분이 너무 많다. 성장기와 청년기의 경험을 거의 알 수 없기에. 그런 난점 때문에 전기 작가들은 갖가지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고 한쪽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저작권을 둘러싼 논란을 벌인다. 작가의 전기가 상상력으로 필요로 한다면 그런 전기를 참고하여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셰익스피어와 관련한 책을 몆권 챙기면서 평전류는 모두 빼놓은 이유다(실제적인 이유는 책들이 무겁다는 점도 있지만 독읾문학기행 때는 훨씬 무거운 괴테 평전도 챙겨갔었다). 그렇게 놓고온 책이 스티븐 그린블랫의 <세계를 향한 의지>(민음사)와 파크 호넌의 <셰익스피어 평전>(삼인), 그리고 제임스 샤피로의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글항아리) 등이다. 작가의 전기가 어느 정도까지 참고사항인가라는 문제를 다룰 때도 셰익스피어는 준거적이다. 휴게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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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문학기행도 중반을 지나고 있다. 어제는 브론테 자매의 날. 브론테 자매(샬럿과 에밀리, 그리고 앤)를 포함한 브론테 가족이 1821년부터 1861년까지 살았던 교구 목사관이 현재는 브론테 박뮬관이 되었다(아버지 패트릭 브론데가 가족들 가운뎨 가장 늦게, 1861년에 세상을 떠난다). 유품과 자료가 잘 모아져 있어서 당연한 말이지만 브론테 자매의 삶을 둘러보는 데 필수적인 장소다.

브론테 박물관이 있는 하워스는 영국 북부 요크셔 주의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리버플에서는 2시간 가량 떨어져 있다. 그제 윈더미어 방문과 마찬가지로 숙소인 리버풀의 호텔에서 버스로 이동했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일정을 마무리하는 식이다.

오전에 브론테 박물관을 둘러보고 마을에서 오래 된 식당(브론테 자매 시절에 문을 연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서는 마을(브론테 빌리지)을 두러보고 커피를 마셨다. 비오는 날의 풍경이 차분하면서 깔끔하게 여겨지는 마을이었다.

오후에는 주된 일정으로 폭풍의 언덕(작품에서는 언쇼 가의 저택 이름이지만 장소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간주해도 무방하겠다) 트래킹에 나섰다. 당초 3시간을 예정했지만 비가 오는 날씨여서(보슬비였고 비는 차츰 잦아들었다) 2시간 정도로 단축하여 진행했는데(일행 모두가 신발이 물에 다 젖는 ‘모험‘을 감수했다) 풍광이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히스(헤더 꽃)가 만발한 초원이라면 언제건 다시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호수지역(레이크 디스트릭트)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트래킹 코스라고 한다.

이동중에는 오며가며 영국소설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샬럿의 <제인 에어>와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1847년, 같은 해에 발표된 두 소설이 내게는 여성 주체성의 두 모델을 제시하는 작품으로서 여전히 현재적 의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리버풀로 돌아와서는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많은 분들이 비틀즈와 인연이 있는 캐번 클럽을 찾아 영국식 클럽문화를 경험했다. 낯선 밴드의 공연도 볼 수 있었는데 꽤 수준급 연주를 들려주었고 이들의 마지막 곡은 ‘헤이 주드‘였다. 리버풀의 밤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와 긴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했는데, 이제 날이 새면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로 이동하게 된다. 바야흐로 영국문학기행도 후반전으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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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리버풀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더블린공항으로 출발했던 어제 일정은 그래스미어에 있는 워즈워스의 도브코티지(1799년부터 1808년까지 살았던 곳)와 묘지를 방문하고 인근 윈더미어(호수)까지 둘러보는 것이었다. 윈더미어는 영국 호수지역(레이크디스트릭트)의 최대 호수. 빙하의 흔적으로 생긴 호수와 주변경관은 영국이 자랑하는 자연관광의 명소다.

당초 도브코티지가 공사중이라 내부 관람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관람이 혀용되었고 센터 안내인의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한국어로 된 안내문도 비치돼 있었다). 뜻밖의 유익한 일정이었다.

도브코티지에 세를 내 처음 이사올 때 워즈워스(윌리엄)는 동생 도로시와 둘이었지만 1802년 워즈워스가 메리 허친슨과 결혼하면서 식구가 는다. 이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도로시가 일기(그래스미어 저널)를 통해 자세히 적어놓고 있어서 흥미로운 자료가 된다(워즈워스 가족 다음의 도브코티지 세입자가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의 저자 드 퀸시와 그의 가족이라는 건 이번에 알았다).

영국문학기행에서 호수지역보다 먼저 선택한 건 워즈워스이고 그의 자연시의 배경이 되는 이 지역이 자연스레 방문장소가 되었다. 그렇더라도 강의에서 고른 건 <서곡>(1850)인데, 사후 유작으로 발표된 이 ‘개인 서사시‘가 워즈워스뿐 아니라 영국 낭만주의와 서정시의 특성, 그리고 그 운명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생각이다.

워즈워스는 케임브리지 재학중이던 1790년 알프스 여행차 처음 프랑스를 찾게 되고 이듬해 대혁명의 한복판에 다시 뛰어들어 프랑스 여인(그리고 혁명)과 사랑에 빠진다. <서곡>에서도 가장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는 시기인데, 문제는 영국으로 떠나고 1793-4년 공포정치를 목도하면서 차츰 혁명에 대해 불신하게 된다는 점이다(젊은 진보주의 청년에서 늙은 보수주의자로의 자연스런 이행?). <서곡>에는 두 명의 워즈워스가 모순적으로 공존하고 또 충돌하고 있기도 하다(<서곡> 자체가 네 종류의 판본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 1805년판과 1850년판이 번역본으로 나와있다).

호수지역을 떠나 리버풀로 돌아오는 길에 대략 이런 내용 위주로 강의를 했고 비가 흩뿌리는 리버풀에서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오늘 저녁에는 비틀즈의 자취를 찾아볼지도 모르겠다. 리버풀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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