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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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 그해 가을 주인은 떠나 없고 그리움이 몇 개 그릇처럼 아무렇게나 사용될 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짧은 촛불들을 태우곤 했다. 그렇게 가을도 가고 몇 잎 남은 추억들마저 천천히 힘을 잃어갈 때 친구여, 나는 그때 수천의 마른 포도 이파리가 떠내려가는 놀라운 空中을 만났다. 때가 되면 태양도 스스로의 빛을 아껴두듯이 나 또한 내 지친 정신을 가을 속에서 동그랗게 보호하기 시작했으니 나와 죽음은 서로를 지배하는 각자의 꿈이 되었네. 그러나 나는 끝끝내 포도밭을 떠나지 못했다. (「포도밭 묘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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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문학 2014.봄 - 통권64호
21세기문학 편집부 엮음 / 21세기문학 / 2014년 2월
품절


진보는 우리의 원죄를 줄이는 데 있다고 보들레르는 말했다. 우리가 생명이기에, 우리가 인간이기에 저질러야 하는 죄를 늘 의식하고 한 걸음이라도 벗어나려는 정신의 훈련이 곧 진보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욕망이 없이 생명은 유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욕망의 피안을 상상하지 않는 인간의 삶은 없다.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윤리와 미학의 이 근거를 한시도 잊지 않을 수 있는 근력을 기르기 위함이다. 당신보다 더 날카로운 칼이 어디 있겠는가. - 282쪽

문학의 이론은 대체적으로 모든 작품이 어떻게 서로 같은가를 말한다. 문학의 현장에서 일하는 당신은 한 작품이 다른 작품과 어떻게 다른가를 말해야 한다. 그 일을 위해 가장 많이 협조를 구해야 할 곳은 바로 당신이 읽고 있는 그 작품이다. 작품은 제 출생을 말하고 제 성장을 말하고, 자신이 왜 여기 있으며 왜 여기 있어야 하는가를 말한다. 작품은 저를 폭로한다. 작품은 또한 자신을 감춘다. 제 출생과 성장을 감추고, 제 존재 이유를 감춘다. 당신은 작품의 말을 찬찬히 듣고, 때로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하며 따귀를 갈겨야 한다. 당신은 작품의 마음을, 그 핵심을 공략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독창성을 발견해야 한다. 당신은 작품의 발자국을, 그것이 멈출 때까지, 밟아가야 하며, 멈춘 다음에도 다시 가게 될 방향을 짐작해야 한다. - 283쪽

비평가가 아직 평가를 받지 못한 작가에 대해 언급하려면 여러 가지 위험이 뒤따른다. 그러나 문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험이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백지 앞에 앉아 있을 때, 그가 쓰려는 한 낱말, 한 문장이 다른 낱말, 다른 문장보다 더 낫다고 말해주는 확실한 지표는 아무것도 없다. 한 낱말이 모험이고, 한 문장이 모험이다. 소설가와 시인이 모험할 때 당신도 모험하지 않을 수 없다. 모험이었던 것이 이미 모험이 아닌 것이 되었을 때만 당신이 말을 하려 하다면,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나 같다. 모험하지 않는 당신의 말에 새로운 말이 있을 수 없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비평가는 몇 개의 빈약한 개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그러나 눈치 보며 휘두르며, 평생을 산다. 새로운 재능을 발굴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을 발굴하는 것이다.- 289-290쪽

우울증 환자는 어디서나 패배를 본다. 이 패배의식은 어떤 종류의 순결성에 그 밑거름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는 좋은 소설가가 될 수도 있고 좋은 시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울증으로 좋은 비평가가 되기는 어렵다. 비평가는 자기 앞의 텍스트를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려는 사람이다. 당신이 읽는 모든 것이 쓸모없어 보인다면 그것은 당신이 엄격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태하기 때문이며, 당신이 상상했던 것과 세상이 다르다고 떼를 쓰는 식의 유아적 분노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확신 없는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불안을 자신이 이야기하려는 작가의 책임으로 돌리고, 동료들이 성공하는 원인을 세상의 몰이해에서 찾는다면 당신은 길을 잘못 든 것이다.(...) 시인과 소설가는 외롭게 자기 길을 모색한다. 비평가인 당신은 여러 길에서 그들과 더불어 한 시대의 길을 모색한다. 그 길이 덜 외로운 것은 아니지만, 당신의 우정을 당신의 독창성으로 삼을 수는 있다. 현장의 사상가는 늘 명랑하다.(황현산)- 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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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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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 따라야 할 좋은 방법이 있나요?

포크너: 99퍼센트의 재능,99퍼센트의 훈련, 99퍼센트의 작업. 소설가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결코 만족하면 안 됩니다.(...) 소설가는 자기 자신보다 더 나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예술가는 악마가 몰아대는 그런 피조물이지요. 악마가 왜 그를 선택했는지 그는 모릅니다. 소설가는 대개 너무 바빠서 왜 그런지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 438쪽

-그렇다면 작가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어떤 것일까요?

포크너: 예술과 환경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예술은 어디에서 창조되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제안받았던 가장 좋은 직업은 유곽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죠. 제 의견으론 그곳이 예술가가 작업을 할 수 있는 완벽한 환경입니다. 그 일은 예술가에게 완전한 경제적 자유를 주어 두려움과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줍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지붕이 있고, 간단한 계산을 좀 하고 매달 한 번씩 지역 경찰서에 가서 돈 좀 집어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지요.(...) 예술가가 필요로 하는 유일한 환경은 평화, 고독, 너무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즐거움뿐입니다. 나쁜 환경이란 혈압이 올라가는 상황, 즉 좌절하고 분노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상황이겠지요. 제 경험으로는, 제 직업에 필요한 것이 종이, 담배, 음식과 약간의 위스키뿐입니다. - 439쪽

-경제적인 자유를 말씀하셨는데, 작가에게는 경제적인 자유가 필요한가요?

포크너: 아니요, 작가는 경제적인 자유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연필과 약간의 종이입니다. 돈을 지원받아서 좋은 글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좋은 작가는 재단에 후원금을 신청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엇인가를 쓰느라고 너무 바쁘지요. 그가 일류 작가가 아니라면 그는 시간이 없다거나 경제적인 자유가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속이지요. 좋은 예술은 도둑놈이나 밀주 양조자나 경마장의 마부로부터도 나올 수 있습니다. - 440쪽

-작가는 독자에게 어떤 의무를 지고 있나요?

포크너: 작가의 의무는 최선을 다해 최고의 작품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나머지 의무는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너무도 바빠서 독자들에 대해 거의 신경 쓰지 않습니다. 누가 제 작품을 읽는지 궁금해할 시간도 없어요. 저나 다른 작가의 책에 대한 사람들 의견 같은 것엔 관심없답니다. 제 기준만이 중요하며, <성 앙투안의 유혹>이나 구약성경을 읽을 때 제가 느끼는 것을 제 책에서 느낄 수 있다면 기준이 만족된 것입니다. 그것들은 저를 기분 좋게 만듭니다. - 445쪽

-'이따금씩 돈을 조금'을 벌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포크너: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저는 거의 모든 일을 조금씩 할 수 있었습니다. 배를 조종한다거나 집에 페인트칠을 한다거나 비행기를 조종하는 일 등이지요. 그 당시 뉴올리언스에서 사는 것은 돈이 크게 들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원하던 것은 잠잘 곳, 약간의 음식, 담배와 위스키였습니다. 2-3일 동안 하면 거의 한 달 동안 먹고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습니다. 성격상 저는 부랑자입니다. 돈 때문에 일을 하고 싶을 만큼 돈을 간절히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너무도 할 일이 많다는 것이 수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슬픈 일 중의 하나는 사람이 하루에 매일 여덟 시간씩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일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람은 매일 여덟 시간 동안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사랑을 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여덟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일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을 그토록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455쪽

-비평가의 기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포크너: 예술가들은 비평가들이 하는 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서평을 읽겠지만 진정으로 글을 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서평을 읽을 시간이 없어요. 비평가의 기능은 예술가를 향하지 않습니다. 예술가는 비평가 위의 계층입니다. 왜냐하면 비평가는 예술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감복시킬 무엇인가를 쓰는 반면에, 예술가는 비평가들을 감탄시킬 무엇인가를 쓰기 때문입니다. - 4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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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독인 讀書讀人 - 독서는 인간을 어떻게 단련시키는가
박홍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1월
절판


최근 독서 기피 현상이 인터넷이나 소비문화 때문이라고들 하나, 그전부터도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가령 흔히들 책과 함께 산다고 하는 나 같은 교수도 그렇다. 물론 교수의 연구실이나 집에는 책이 많으나, 그 대부분은 기증 받은 전공 분야의 교과서나 잡지다. 요컨대 직업적인 이유 외에 교수들은 책을 사지도 읽지도 않는다. 그런 교수에게 배우는 대학생 중에는 교과서조차 사지 않고 취직에 필요한 문제집 정도만 사는 경우가 많다. 초중고 학생들에게는 교과서 구입이 강요되므로 교과서라도 사고, 수험을 위해 참고서까지 사지만, 아마 대학처럼 자유롭게 한다면 마찬가지로 그것조차 사지 않을지 모른다. 여하튼 초중고 학생들은 교과서 이외의 책은 읽지 못하거나 읽을 수가 없다. - 339-340쪽

그리고 대학에 들어오면 책읽기와 철저히 무관한 군대를 거쳐 오직 취직 공부에 몰두하기 때문에 취직을 위한 문제집 외에 역시 다른 책을 읽지 못하거나 읽지 않는다. 그 뒤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신문이나 잡지를 포함하여 가구당 책값에 투자하는 비용이 한 달 1만원 정도로, 그런 교과서나 취직준비서나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가벼운 실용서 이외의 책을 살 수 없다. 그러니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팔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340쪽

대학은 물론 초중고 시절에 고전을 비롯하여 다양한 책을 읽고 생각하며 토론하는 교육으로 바뀌지 않으면 우리 국민이 책을 읽지 않는 습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책 읽는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다양성과 민주성에 관련되는 문제다. 사고의 다양성과 민주성이 없는 곳에 독서 혐오의 문제는 끝없이 악순환한다. 사고의 다양성과 민주성을 부정하는 일부 언론도 교과서와 같은 절대적 권위의 괴물로 국민의 판단력을 획일적으로 몰아가는 원흉일지 모른다. 참된 교육을 받을 인권의 내용으로 국정 교과서 제도를 폐지하고 다양한 책읽기를 하자는 주장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 341쪽

무책임하게 게바라 같은 혁명가가 되리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와 같은 독서가는 되라고 말하고 싶다. 나쁜 세상은 독서가 없는 세상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계속 강조하듯이 진정한 혁명가는 진정한 독서가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히틀러나 스탈린, 폴 포트나 박정희가 아닌, 톨스토이나 마르크스나 간디나 게바라나 모두 그렇다. 물론 그 반대는 아니다. 즉, 독서가가 혁명가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독서가는 혁명가다. 적어도 진정한 독서가는 혁명적이다. 독서는 바르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의 변화를 위한 것이다. 그 변화 앞에 비판이 있다. 현실에 대한 비판이 있다. 그 비판 앞에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고능력이 있다. - 343-344쪽

독서는 생각하기 위한 것이다. 독서는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라면 독서가 필요하다. 그처럼 참된 독서를 하면 혁명가가 된다. 제대로 된 책들은 현실을 혁명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도 책을 읽다보면 현실이 잘못되었음을 알기 마련이고 책은 잘못을 고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게바라가 혁명과 독서를 함께한 것도 독서를 통해 혁명의 바른 길을 찾기 위해서였지 무슨 멋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 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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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정동호 지음 / 책세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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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죽음이 진정한 해방이 되고 인간이 본래의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할 일이 있다. 죽은 신이 남긴 그림자인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어떻게 허무주의를 극복할 것이다. 길은 옛 신에 근원을 둔 낡은 가치를 파기하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존재 의미를 회복하는 데 있다. 니체는 이 작업을 가치의 전도라고 불렀다. 이때의 새로운 가치는 본연의 가치, 즉 도덕 이전의 자연적 가치를 가리킨다. 앞으로는 이 대지, 이 자연이 모든 가치의 모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의 초월적 이념과 신앙, 그리고 도덕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서 니체는 루소의 말을 빌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호소하게 되었다. - 18쪽

자연은 다양한 형태의 힘이 지배하는 힘의 세계다. 자연을 움직이는 것은 신도 신적 섭리도 아니다. 자연은 도덕적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자연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보다 많은 힘을 확보해 자기를 전개하려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어진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많은 힘을 얻기 위해 끝없이 분투한다. 힘에서 밀리는 순간 도태되기 때문이다. 힘에 대한 이 같은 지향이 힘에의 의지다. 니체는 이 힘에의 의지를 인간의 삶과 역사를 포함해 세계 내의 모든 운동을 추동하는 것은 물론 우주 운행을 주도하는 원리로까지 받아들였다. - 18쪽

힘에의 의지와 함께 니체의 우주 이해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당시 자연과학에서 유력한 우주 모델로 수용되고 있던 것은 우주가 총량이 일정한 힘(에너지)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즉 공간은 유한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힘은 운동을 본성으로 하기 때문에 힘의 운동에 끝이 있을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운동에서 산출되는 시간은 무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니체는 공간이 유한하고 시간이 무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끝없는 이합집산에 의한 순환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가 우주 운행의 원리로 제시하게 된 영원회귀 교설의 내용이다. - 18-19쪽

영원한 회귀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단순한 반복이 있을 뿐이다. 끝없는 단순 반복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여기서 인간은 극단의 권태와 공허에 빠지게 된다. 이때 인간을 엄습하는 것이 허무주의, 또 다른 허무주의다. 이 허무주의는 우주적인 것으로서, 파괴력에서 신의 죽음 뒤에 오는 허무주의를 능가한다. 가치 전도를 통해 극복할 수 있었던 앞의 허무주의와 달리 여기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허무주의에 의해 파멸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는가. 파멸로 끝나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치유는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 허무주의 또한 극복되어야 한다. 니체는 영원한 회귀가 우리의 운명이라면 운명을 사랑하라고 권한다. 거기에 세계와 우리의 존재에 대한 최고 긍정이 있다. 운명에 대한 사랑, 이것이 니체가 요구하는 '운명애'다. 이 경지에서 허무주의는 극복된다. - 19쪽

문제는 초월적 이념과 이상 속에서 왜소해질 대로 왜소해진 오늘의 인간에게 신의 죽음을 받아들여 가치를 전도시키고 허무주의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힘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니체는 그럴 힘이 없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인간이 달라져야 한다. 존재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지닌, 정직하며 강건한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렇게 거듭난 인간이 바로 위버멘쉬다. 우리가 성취할 최고 유형의 인간이다. - 19-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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